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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57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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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벼운 마음으로 산 책이건만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지는 책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철철 넘치는 그의 허무주의와 비관주의에 동화되어 함께 냉소적이 되어가는 듯 했다. 우습지만, 읽으면서 '자주 읽으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약간 들기도 했고. 꽤 오래전에 나온 시집인데, 나이가 들면서 세상과 타협을 하게 된건지 긍정적인 변화를 한건지 잘 모르겠지만, 최근에 번역한 더 블루데이북과는 정말 극과 극을 달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세기말 블루스 읽고 블루데이북으로 중화시키면 될 것 같기도 하고...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괜찮은 시집이다. 시인도 좋다. 굉장히 자아가 강한 여성이라는 느낌이 든다. 약간은 부럽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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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신현림이라는 시인을(시인인가? 수필가이기도 하고 사진가이기도 하고...) 알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예쁜 시집 표지 때문인가, '세기말'이라는 제목의 일부 덕분인가, 아니면 한때의 베스트셀러 목록 때문인가.. 어쨌든 난 이 시집을 읽고 한 마디로 신현림 팬이 됐다.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희망의 누드', '나의 아름다운 창', '빵은 유쾌하다' 등 그녀의 저서라면 다 찾아 읽게 되었다. 내 친구들에게 소개도 하고 선물도 하면서.
그녀는 그 나이또래의 여성의 심리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녀는 마치 여성이라면 성에 대해 당연히 부끄러워야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에 대고 큰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 정말 그녀는 '세기의 여전사'다. 그녀에게 동감의 박수를 보낸다. 그녀는 '매독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는 최승자와는 또 다른 면에서 과격하고, 그래서 내가 최승자와는 또 다르게 그녀의 작품을 사랑한다. [인상깊은구절] 꿈꾸는 누드 이 남자 저 남자 아니어도 착한 목동의 손을 가진 남자와 지냈으면 그가 내 낭군이면 그를 만났으면 좋겠어 호롱불의 무드를 살려놓고 서로의 누드를 더듬고 핥고 회오리바람처럼 엉키고 그게 엉켜봤자라는 걸 알고 싶고 섹스보다도 섹스 후의 갓 빤 빨래 같은 잠이 준비하는 새 날 새 아침을 맞으며 베란다에서 비둘기의 노랫소리를 듣고 승강이도 벌이면서 함께 숨쉬고 일하고 당신을 만나 평화로운 양이 됐다고 고맙다고 삼십년을 기다렸다고 고백하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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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 소설가로 사진작가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선보이는 96년도 발간 신현림의 초창기 시집입니다. 어느날 오빠가 들고온 세기말 블루스라는 시집하나로 신현림을 알게 되었다. 죽음보다 무서운게 허무주의라 말하면서도 신현림의 시에는 리힐리즘이 숨어있다. 이쁜척 하지 않는 멋있는 척하지 않는 그녀의 시가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독특한 느낌으로 다가와서 강한 모습의 여류 작가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얼마전 신현림의 모습을 잡지에서 본적이 있다. 그녀는 임신을 하고 있었다. 독신으로만 알고 있던 그녀가 임신이라니.. 잡지 내용을 읽어보니 남편은 동양화가이며 결혼은 했지만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싫어 혼인신고는 하지 않고 동거도 하지 않은채 각자의 생활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무척이나 그녀다운 선택이라 생각된다.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는 그녀의 당당함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그녀의 작품을 보다보면 그런 그녀의 당당함과 확고한 자신의 의지를 느낄수 있다. [인상깊은구절] 34세 독신녀인 나는 지친 소같이 쓰러져 있다가 더이상 읽지 않는 시집처럼 인기척없는 서울의 새벽을 봤다 멸망을 상상하면 현실은 저녁 성찬처럼 근사하고 드라마틱하잖아요 어차피 인생은 허무의 시네마 천국 아니겠어요 신음하는 지구촌의 사진보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건 허무주의다 구부러진 못 같은 시든 좆 같은 너의 체념이다 |
| 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모든 것 가슴을 까맣게 태우는 모든 것 실패와 실패 끝의 치욕과 습자지만큼 나약한 마음과 저승냄세 가득한 우울과 쓸쓸함 줄 위를 걷는 듯한 불안과 지겨운 고통은 꺼지라구.. 시집을 접하며 작가의 시선을 통해 인생을 봤다. 신경 정신과에 다니는 그녀의 삶은 그리 평탄한 것은 아니였다. 자신의 가족이 적이 되기도 하고 옛 사랑의 가슴 아픈 추억이 적이 되기도 하고,세상의 고정관념들이 적이 되기도 하는..그녀의 삶은 예사로운 것은 아니였다.그러나 그녀 또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마련하여 살아가는 한 인간이었다. 신현림..나는 이 작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그녀의 상처들,인생을 헤쳐 나가는 모습 하나하나..책장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 마다 들을 수 있었고 볼 수 있었다.그리고 인생이라는 좁은 틀안에서 자신만의 방법들을 강구하여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막막한 인생이었지만,절대 굴하지 않고 인생의 난관을 헤쳐 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본다. 세기말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한 장 한 장 삽입 되어있는 사진을 통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며 인생의 어려움들을 표현하지만,글의 내면으로 들어가다 보면 인생을 결국은 긍정하며 사랑하는 그녀의 시선과 만나게 된다. 읽는 동안 내내 내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인생을 보는 사는 그 따뜻한 시선 때문에.. 2001년이 마무리 되어지는 이 시점,한 해를 마무리 지으며 돌이켜도 보고 다시 마음도 다잡으며 이 책 한 권 손에 줬으면 한다. 넉넉한 마음을 선사해 줄 것이다. |
| 신현림 시인의 시집 『세기말 블루스』에서 시인은 현실에 맞서려는, 싸우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제기랄, 바꿔져라, 바꿔져라,/부익부 빈익빈 세상이여’(「오백원 대학원생」). 이렇게 욕설을 섞어 내뱉으므로 시인은 현실에서 달아나려하지 않고 싸우려한다. ‘지겨운 고통은 어서 꺼지라구!라고 말하면서 격렬한 언어로 대뜸 소리치며 그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시인은 현실에서 오는 고통을 때로는 사랑으로 극복하려고도 한다. 시인은 사랑을 꿈꾼다. 시인은 이 현실에서의 고통과 죄를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런 사랑에게서 구원 받기를 바라며 그런 사랑의 존재를 기다리며 외로워하기도 한다. 현실 극복을 가져다줄 사랑의 존재를 갈망한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으로 극복하는 것을 실패하고 만다. 「포옹과 상처」에서도 시인은 사랑이 돌아올 것을 외치지만 결국 그 외침은 울림 없이 그치고 만다. 그렇다면 시인은 현실 극복의 방안을 어디에서 찾을까. 시인은 현실에서 부딪히는 고난과 절망의 극복 방안을 사랑에서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 그 사랑에서 찾지 못하고 자신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싸움」에서 시인은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고 말하고 있다. 시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사진을 몇장 실은 것이었는데 사진이 특별히 대두되어 오히려 시를 해치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어떠한 효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었다. 굳이 이 시에 이 사진이 필요할까 싶은 생각이 드는 사진이 많았다. 남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여성의 입을 통해 내뱉는 것 역시 많았는데 여자의 심경을 대변하는 한변 안에 남자들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여자라는 존재에서 오는 아픔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는 「나의 시」인데 시에서 시인은 불만을 대놓고 말하고 있다. 시인은 미혼모 문제에 일침을 가하고 모성에 대한 예찬을 하고 있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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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서 자신의 셀프 누드 사진을 실어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시집 <세기말 블루스=""> 내가 이 시집을 처음 접한 것은 제목에 나오는 세기말이라는 그 특유한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어 가는 98년말이었다. 스물 넷의 나이에 내가 읽어 낸 이 시집의 단상은 외로움, 고독, 시에 대한 사랑, 그리고 시에 대한 생각, 욕망(섹스), 가족, 20대, 마지막으로 아이이다.
내가 30대가 되었을 때 떠올리기 싫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가오는 새로운 세기와 30대를 벅차게 생각했던 것이었다. 이제 21세기가 되었고 30대와 2년 더 가까워졌다. 나는 다시 이 시집에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 정리가 되지는 않는다. [인상깊은구절] 빈민가 담벼락 같은 가슴을 뚫고 겨울이 온다 슬픔은 미친 종처럼 울고 슬픔은 끝없이 날으는 연 저 환장한 연을 잡았으면 내가 너 대신 아팠으면 너를 안고 날으는 갈매기였으면 아우야, 추운 너를 안고 어머니가 금강산을 날으셨구나 애인아, 그리운 너를 안고 나는 바닷속을 달렸다. 마음으로라도 날고 뛰지 않으면 살 수 없던 날들 열린 차창처럼 비명을 지르고 싶던 날들 불탄 아현동 사람들이 묻머으로 던져진 어제 저녁이 오기도 전에 식탁의 빵들은 부패했다 장송곡보다 무거운 원피스를 입고 너는 꿈 속 강변을 헤메고 버림받은 자들이 부르는 유행가가 싸락눈으로 날린다 의지대로 되는 일이 없다 우리는 토실토실한 쓰레기나 불리며 살고 작별의 꽃을 던지며 사나니 술잔은 자꾸 죽음을 향해 기울어지더라 기나긴 밤마다 아무 위로 없이 남겨진 나의 너여 더이상 탄식의 나팔을 불지 마라 현세가 지옥인 때는 슬픔의 독을 품고 가라 무자비한 세상, 지옥의 슬픔을 월경하기 위하여세기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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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중에 한 명은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줄 때, 자기가 오래 갖고 있던 물건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을 준다고 하더라. 이 시집이 그렇게 귀한(?) 책은 아니지만 힘들고 슬플 때는 나한태 큰 力이 되어준 very good book 이쥐. 흐흐 너에게도 좋은 느낌을 줄 수 있길 바라며...
대학교 2학년 시절.. 친한 친구의 권유로 만나게 된 신현림 시인의 세기말 블루스는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집에서 전율을 느낀 내겐 딱! 맞는 시집이었다. 특히 "곧 잊을 수 없는 저녁이 올 거야"라는 부제를 달고, 꼴라주 그림과 함께 실린 세기말 블루스1은 내겐 참 매력적인 시였다. 연작시로 구성된 이 시는 [20년 후에 나는 폐경기야 / 막 낳은 달걀처럼 매일이 따뜻할 수 있다면 / 성서나 베케트가 마약일 수 있다면 / 쓰러져가는 혼에 불을 지필 사람이 필요해 / 함께 죽어갈 사람이] 처럼 세기말에 대한 불안과 반성, 혼돈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도발적인 어휘들로..
나는 신현림 시인의 이러한 직설적이고 당당한 시들이 맘에 들었고.. 대학교 2학년 시절 한동안을 세기말 블루스를 끼고 지냈었다. 나지막히 읊조리는 신현림 시인의 [보다 혹독한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 그 외침을 함께 느껴보자~~!! [인상깊은구절] 20년 후에 나는 폐경기야 막 낳은 달걀처럼 매일이 따뜻할 수 있다면 성서나 베케트가 마약일 수 있다면 쓰러져가는 혼에 불을 지필 사람이 필요해 함께 죽어갈 사람이 |
| 이 시집을 읽기 시작한 것은 중간고사가 끝나고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하기 위해서 버스에 올랐을 때였다. 5월의 햇살은 따사롭고 세상은 이상적인 푸르름을 머금고 있다. 책을 읽기 전 난 책의 맨 끝 부분에 있는 작가의 '후기'를 훑어보았다. 그것은 책을 읽기 전에 약간의 사전지식을 같기 위한 나의 버릇이다. '슬럼가처럼 낡은 아파트 단지에 벚꽃 핀 모습이 장관이라. 바람이 불면 눈보라처럼 꽃잎이 와하하하 웃으며 날아가더라..........(중략)........이 모습에 누구든 취할 수 있다면 내 시를 읽지 않아도 좋다. 풍광자체가 성서처럼 살아있는 시니까 말이다.' 후기의 맨 처음 단락이다. 이를 읽고 나는 난 그럼 안 읽어도 되나?, 하고 생각했다. 촌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자연경관을 즐기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러한 도취가 너무 지나쳐 주위의 동료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시를 읽었을 때 나름대로 나는 시인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보는 세기말의 풍경은 어둡기만 하다. 현실 자체가 지옥이라고 해야할까? 그녀가 생각하는 희망인 '빵을 가진 남자는 멀기만 하다. 카메라와 같은 창문을 통해 본 세상은 도덕의 몰락, 황금 만능주의, 과학 기술의 기형적 발달과 환경 오염, 등 진부하고 평범한 어휘들이 녹아있는 커피 잔과 같아 독처럼 쓰기만 한 것이다. 이에 그녀는 이와 홀로 맞서 싸우는 꼴이다. 누가 뭐라 하든 손가락질을 하든, 달콤하기도 하고 감옥 같기도 한 독신을 선택한 30대 중반의 여자의 언어는 거칠고 직설적이다. 허나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욕이 아니다. 그녀가 선택한 언어는 분명 여러 번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탄생한 귀한 말들이다. '나의 이십대'라는 연대기적 독백의 시를 통해 본 그녀의 인생, 그리고 그 가족의 삶은 분명 평탄치만은 않았다. 그러한 생활 속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 전투적인 자세는 그녀의 입장에서 이유있고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시 전반에 걸쳐 풍겨나는 허무주의 비관주의적 악취는 시집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나로 하여금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세상이 사공이 많은 배가 산으로 올라가듯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은 물론 동의한다. 모두가 이에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중심에 인간이 있는 이상 이 궤도는 오랜 시간에 걸쳐 수정되고 보완될 것이다. 성이란 것이 무슨 운동 경기처럼 일회적이고 쾌락적인 부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아직도 정말 사랑하는 연인들에게는 고귀한 최후의 프로포즈인 것이다. 시인이 얘기한 '세기말'의 시간을 난 군대에서 보냈다. 정말 우울했다. 새 천년을 맞이하는 이 기념비적인 순간을 일개 육군 병장으로 당직을 서며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보신각 종이 울리던 그때 난 담배를 피워 물어야 했다. 지난 20세기는 내게 크게 대학 초년 시절과 그 이전의 시절로 구분되었다. 80년대의 학생운동과 그 이전 역사의 소용돌이를 거치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나의 20세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 외에는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던 만큼 21세기는 이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내가 살아야하는 시간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런 약간은 쓸쓸하면서도 희망적인 생각을 받쳐주는 장치로는 영하의 날씨, 난로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웃으며 말하던 'Happy new millennium!'이 있었다. 21세기에 가장 강조되는 학문이나 분야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와 생명복제로 대표되는 과학이라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그러한 비약적인 과학기술과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인문학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
| 신현림의 시들을 읽는다. 신현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느 얇은 잡지에서였다. 그녀의 순탄치만은 않은 20대를, 나는 거기서 읽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시보다 그녀의 삶을 먼저 읽은 것이었다. 그녀의 스산한 20대에서 詩들은 피어올랐다. 「나의 이십대」라는 시에도 거칠게 그 삶이 기록되어 있다. 그녀의 이십대가 새롭지만은 않았기에 어떤 시적인 충격은 얻을 수 없지만, 진실된 삶의 모습은 얻을 수 있었다. 아마도, 자기 삶을 시로 쓰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리라. "빈민가 담벼락 같은 가슴을 뚫고 겨울이 온다"(「슬픔의 독을 품고 가라」)라는 표현이나 "우울하도다 개 같은 세월 / 승냥이나 되어 컹컹 울어나 보고 싶도다"(「제니스 조플린과 함께」)라는 우울과 절망의 정서, 그리고 블랙유머. 나는 이 시인이 아마도, 최승자에게서 영향을 받지 않았는가, 하는 추측을 해보았다. 그러나, 무슨 상관 있으랴. 이런 시들은 허허로운 바람이 되어 내 가슴을 파고든다. 사진, 판화, 꼴라주 등을 활용한 시들은 형식을 파괴할 정도라거나, 특별히 전위적이지는 않지만 시집 전체로 볼 때는 몇몇의 액센트를 부여하고 있다. 그녀의 "첫사랑인 시각적인 매혹"은 시를 해체시키지 않고 시에 옷을 입히고 있는 셈이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