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영국의 지배 하에 성장했다. 아편전쟁 이전 인구 8000명에 불과한 어촌이었던 홍콩 섬은 영국 지배 하에 인구도 성장하고 특유의 체제를 만들어간다. 영국의 식민지 초기에는 중국의 하층민이 대거 유입되었다. 하지만 이후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고 당시에는 고위층이 대거 유입된다. 이후에도 영국의 보호 하에 있다는 특성 덕분인지 중화민국 건국, 국공내전, 중일전쟁 등 중국(청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나 피난민들이 몰렸다.
180년 이상 차이가 난다면 같은 민족이어도 이미 특유의 문화는 다른 것이 당연하다. 미국이 유럽과 다르듯 홍콩도 어디까지 중국과 똑같을까? 홍콩은 소수의 영국인이 만든 체제 속에 중국인이 사는 특이한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지속적으로 본토에서 인구가 넘어오며 규모를 성장해간 만큼 독립된 정체성만을 가지고 크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실제 반환 전후 중국 정부의 정책 상 이런 특징이 도드라졌는데 현재 약 700만명의 홍콩 인구 중 1982년 이후 이주해 거주하는 '중국인'이 40%가량 될 것으로 추정한다.
정치 구조를 크게 보면 영국 총독이 있고 입법과 행정 요직이 있는데 실질적 지배는 중국인들이 가졌다. 하지만 특이하게 민주주의는 시행되지 않았는데 그러면서 나온 시스템이 민주주의는 없지만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 홍콩이었다. 실제 경제자유지수는 2010년대까지 홍콩이 세계에서 1등을 차지했고, 정부도 불간섭주의를 지향했다.
2차세계대전 중 잠시 일본의 통치를 겪기도 했지만 종전 이후 또 다시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홍콩은 1950년 6.25 전쟁의 수혜국가이다.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자 수출을 통제하는 금수조치를 당했는데, 상대적으로 물건 수입이 쉬웠던 홍콩을 통해 중국으로 물자가 많이 유입되었다. 덕분에 중계무역을 하게 된 홍콩의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홍콩은 그에 힘입어 1958년 영국으로부터 재정적 독립을 하게 된다.
이후 1966년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홍콩에서도 그에 동조한 시위가 많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일반 시민들은 좌파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졌다. 1982년 중국 정부는 홍콩 반환 방침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였고 1984년 영국과 중국은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홍콩 시민들은 꽤 많은 수가 이민을 가기도 했고 당시 홍콩의 주가와 주택 가격은 폭락을 겪는다.
덩샤오핑은 일국 양제를 주장한다. 중국과 홍콩은 한 나라이지만 지금까지 해온 대로 서로 다른 정치 시스템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과연 중국이 약속을 지킬 것이며, 그렇다면 한 나라로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 할아버지 세대나 아버지 세대는 북한과 통일을 주장하는 비율이 다소 높았을 것이다. 반대한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이유는 이념적 적대감일 것이라 생각한다(정확한 통계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다르다. 북한과 전쟁을 직접적으로 겪은 사람도 없고 간첩이라 하면 크게 와닿지 않는다. 이념적 차이는 느껴본 적도,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최근 대한민국에선 이런 문제가 큰 문제가 안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통일을 반대하는 비율은 더 늘어난 것 같다. 이유는 더욱 많이 바뀌었다. 우리 돈을 많이 써가며 낙후된 북한을 발전하게 도와야 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민족이냐 물어보면 한민족이라 말할 수 있다. 70년 넘게 분단되어 살고 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할까? 이게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우리는 한민족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정체성은 공통점을 찾는 행위이다. 우선 남북한은 언어가 같다는 아주 큰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본론으로 넘어가 홍콩인들은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있을까?
홍콩인에게 물어보면 홍콩인이라 대답하는 비율이 30%정도라고 한다. 자신은 홍콩인이기도 하고 중국인이기도 하다는 비율이 40%, 중국인이라는 비율이 30% 정도이다. 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이 중국 본토인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아까도 말했듯 이 차이를 줄이기 위해 중국 정부에선 부단한 노력을 한다. 중국인이 이주할 수 있도록 많은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다. 홍콩과 거래시 무관세 정책, 투자 우대 정책, 고속철도, 해상대교 등을 시공해준다.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 통합을 위해 광둥성과 문화 통합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체성 차이는 여전하다. 홍콩인은 자유도가 높은 대신 규칙에 철저하다. 이는 싱가포르도 마찬가지이다.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 국가에서 치안과 경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장치라고 생각한다. 그런 홍콩인들은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서 뭘 절대 먹지 않는다. 하지만 2012년, 중국인이 홍콩 지하철에서 과자를 먹었고 홍콩인이 먹지 말라고 하며 벌어진 말싸움 영상이 공개된 적이 있다. 이 영상에 대해 베이징대 쿵칭둥 교수는 홍콩인이 영국의 개가 되었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홍콩 내부에서도 역시나 많은 비판이 있었다. 아직까지 문화적 정체성은 통일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중국 입장에서는 홍콩의 정체성은 매우 중요하다. 홍콩의 정체성이 완전 독립된다면 대만 문제도 해결하기 힘들 것이고, 티베트, 신장 지역 등에서 독립이나 소수민족의 불만이 튀어나올 것이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홍콩 시민을 중국 국민으로 만드는데 집중한다. 대표적으로 뉴스 방송 전 '조국' 학습 영상을 방영하는 것이다. 역사 교육에서는 더더욱 이념이 드러난다. 아편전쟁의 추악함을 강조하고 문화대혁명의 이념적 의미를 많이 이야기하고 대기아 현상, 1970년대 민주화 운동, 천안문 사태 등은 삭제하거나 축소한다. 또한 홍콩에서 사용하는 광둥어 뿐 아니라 중국 표준어 교육도 시행하고 최근에는 국가안전부와 공안부가 홍콩 내부의 기관과 인사를 감시하고 검열하는 것을 늘리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는 최근 중국 정부의 정책을 보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2020년 중국에서 국가보안법이 통과됐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홍콩인이든, 외국인이든 국가 분열, 정권 전복, 테러, 외국 세력과 결탁 등을 기도한 경우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심지어 이 법률은 과거 시위도 소급적용하기에 과거에 시위했고 국가에서 불만을 가진 인사들을 대거 숙청할 수 있는 법이다. 법 제정 후 1년만에 117명 기소되었고 홍콩 내 범민주진영 정치인도 47명이나 기소되었다. 최근에는 홍콩 내에서 정치인 출마 시 애국심, 준법 정신을 기준으로 출마 자격을 심사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