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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방정환 선생의 책에는 가난하고 힘들지만 가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을 한다. 만년샤쓰의 창남이도 마찬가지이다. 가난한 살림에 집마저 불에 반이나 타버려 가세가 기울었을텐데도 다 타버린 이웃 사람들에게 옷과 먹을 것을 나눠주는 마음 착한 아이이다. 아무리 마음이 착해도 그 추운 겨울에 입을 옷도 다 벗어줘버린 창남이를 이 시대의 아이들은 이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들긴 했다. 한겨울에 샤쓰도 없이 얇은 교복 겉옷에 구멍나고 해진 겹바지와 버선도 없이 맨살에 신은 짚신은 우스운 꼴이 아니라 애닯고 서글픈 모습일 것이다. 체육 선생의 명령에 부끄럼도 없이 씩씩하게 만년샤쓰도 괜찮냐고 넉살을 부리는 것을 보고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스로를 마음 아프게 생각하면 절대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창남이 어른 못지않은 깊은 생각을 가진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홀어머니는 두 눈이 보이지 않는 불편한 몸이셨던 것이다. 그러기에 창남은 자신이 가진 바지와 버섯을 두 벌씩이라 속이고 한벌을 추위에 떨고 계신 어머니를 위해 벗어드린 것이다. 어머니를 위해 하얀 거짓말을 하고도 마음 아파하는 창남이. 그 사연을 듣고 선생님과 친구들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 시절에는 누구나 다 가난하여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것이 없을 것만 같은데,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서로 도와주며 정을 베풀었던 것 같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풍족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 풍족함에 만족하거나 나누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남을 돕는 것은 오지랖이 넓다는 말로 대신하기도 한다. 만년샤쓰의 창남이를 보면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늘 남탓을 하고, 남의 일을 말하기 좋아하며, 배려하기 보다는 무시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는지.... 세상 모든 사람이 창남이와 같이 되길 바라진 않지만,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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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초등학교 3학년인 우리 작이 딸이 읽었다. 책장을 넘기기 전 작가 방정환이란 이름을 보더니 어린이 날과 관련있는 분이라면서 아는척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한장 한장 정독을 하면서 책을 다 읽고는 왜 주인공이 만년샤쓰인지 알게 되었다며 그 이유는 샤츠가 한벌뿐이어서 그런거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묻는다. 산불이 나서 그불이 번져 마을까지 타버린 거냐고 사실 왜 불이 난는지는 책에 나와 있지 않다. 다만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동네에 큰 불이 났다고만 쓰여 있을 뿐이다. 그리곤 책을 일고 난 느낌을 이렇게 이야기 했다.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 창남이가 어머니를 위해 거짓말하는 부분이 좋았다고..
사실 조금 놀랐다. 지금 학교 다니는 시대와 이 책의 배경 즉 주인공인 창남이가 살던 시대는 너무나 틀리기 때문에 과연 지금을 살고 있는 아이들이 과연 이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오기 위해 먼 길을 걸어오는 것도 없고, 아이들은 언제나 깨끗한 옷, 새옷을 입고 다니며, 구멍난 신발이나 한벌뿐인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요즘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공감하는 이유는 아마도 주인공 창남이 때문이 아닐까? 창남이는 언제나 당당하다. 찢어진 옷을 꿰메고 다니고 구멍난 신발을 신고 다녀도 옷이 한번 뿐이여도 창피해 하지 않은다. 창남이는 공부도 열심히 한다. 그 먼길을 걸어 다녀도 단 한번도 결석한 적이 없는 아이로 나온다. 그리고 창남이는 착한 아이다. 그뿐인가 이세상에 둘도 없은 효자이다. 눈이 먼 어머니를 위해 착한 거짓말도 하고, 불이 자기 집에도 났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조금더 피해를 많이 본 이를 도와 주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읽은 이로 하여금 대단하다, 착하다, 본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만년 샤쓰> 사실 이 책은 아주 예전 학창시절 문학공부를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단지 공부하기 위한 목적으로 읽었기에 작가가 방정환이란 이름밖엔 뚜렷한 기억이 없다. 내용도 가물가물했는데 이렇게 다시 <만년쌰쓰>를 읽으니 새롭다. 비록 나도 창남이의 세대는 아니지만 나 역시 창남이의 그런 면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마지막 부문은 선생님과 학생들처럼 훌쩍거리는 나만 있었을 뿐이다. 정말 오랫만에 한국 명작동화를 읽게 되어 기뻤다. 이렇게 순수하게 문학 작품을 읽으니 그 감동이 두배가 되는데 말이다. 우리 작은 딸도 이 책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좋은 책을 읽었다고 오래동안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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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샤쓰』를 읽고 올해 내 자신의 나이 육십이다. 예전 같으면 할아버지에 속할 나이이지만 젊은 그 자체를 유지하면서 더 당당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자신해본다. 참으로 많은 변화다. 그 만큼 일상적인 것조차 확실하게 변할 정도로 예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삶을 유지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옛말에도 나이가 들면 어린이가 되어간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이 ‘눈이 깊은 아이 문학을 보다’ 시리즈는 소설, 시 등의 문학 작품에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그림을 더해 어린이 독자들이 풍부한 상상력으로 읽을 수 있는 그림책 시리즈로 첫 번째 책이다. 정말 오래전에 들어보고 거의 멀리 했던 아동문학가인 방정환 선생님의 작품을 대할 수 있어 오래 만에 어린이 세계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물론 작품의 배경 세계가 지금 현대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많이 혼동이 될 우려도 없지 않으나 오히려 이런 계기를 통해서 당시 우리나라 현실을 확실하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우리나라의 가장 역동기인 조선말에 태어난 선생님이 결국 일제에 대항하는 여러 활동들을 통해서 많은 고난을 겪는다. 고문과 옥살이는 물론이고 경찰에 쫒겨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거기에서 ‘색동회’를 조직하였고, 오늘날의 어린이날까지 만들었으니 선생님의 위업은 대단하였다. 아울러 어린이 잡지를 창간하였고, 각종 어린이 문화 발전에 기여하다가 32세의 한참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어린이’에 대한 확실한 개념과 함께 실제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한 선생님의 모습에 존경을 표해본다.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의 작 품속에서도 당시 힘들고 어려웠던 어린이들 세계에서 당당하게 활동해가는 모습을 담은 이 책은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주인공인 창남이가 펼쳐내는 이야기 속에서 바로 우리의 그 힘들고 어렵던 시절을 박차고 나올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아울러 시원스럽게 그려진 큰 그림을 통해서 직접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의 세계는 정말 압권이었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아니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똑같이 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책을 보는 순간만은 어린이나 노인이나 똑같은 마음으로 만드니까 말이다. 그 시절 대부분이 가난했지만 오히려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위해 과감하게 옷을 벗어주며, 한겨울 추위와 맞서면서도 이웃을 생각하고, 불편한 앞을 못 보는 어머니에 효를 다하는 듬직한 주인공의 모습은 오늘의 모든 사람들이 본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아무리 생활자체가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아직도 어렵고 불편한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이 이 책을 통해서 정말 당당하게 일어서고 앞을 개척하는 특별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가는데 이 책은 분명하게 큰 몫을 제공하면서 확실하게 변하게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보는 뜻 깊은 시간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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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어린이날~
그리고 방정환 선생님이 떠오르는 5월이다.
<만년샤쓰> 1927년 3월 1일 잡지 <어린이>에 발표한 작품이다.
원문 그대로 쓰기에는 아이들이 모르는 옛말이 있어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쉬운 말로 바꾼 것 이외에는 방정환 선생님의 문체를 최대한 살렸다고 한다.
덕분에 방정환 선생님의 작품이 가진 느낌과 발표 당시의 시대상을 읽을 수 있어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는 한 편의 이야기가 재미뿐 아니라 공부가 될 것 같다.
주인공 창남이는 선생님 앞에서도 태평하게 너스레를 떨 정도로 활달하고 밝은 성격이라 반에서 제일 인기가 좋은 소년이다. 이름이 창남이고, 성이 한씨로 비행사 안창남 씨와 이름이 같다고 친구들이 비행가라고 부른다. 교복은 비록 낡고 해어졌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주눅이 든다거나 남의 것을 부러워하지 법이 없고, 평상시 우스운 말을 잘 지어내고 친구들이 곤란할 때 좋은 의견을 내다보니 비행가라는 별명처럼 시원시원한 소년이다.
그러던 어느날 창남이가 지각을 한다. 이유인즉슨 구두가 뜯어져 손수건과 대님으로 싸매어 신고 오느라 늦은 것이다.
체조 시간에는 선생님이 검은 양복저고리를 벗으라고 명령하였는데 창남이만 벗지를 않아 야단을 치니 늘 태평하기만 하던 창남이가 고개를 숙이며 얼굴까지 빨개졌다.
"선생님, 만녀샤쓰도 좋습니까?
"무엇 만년샤쓰? 만년샤쓰란 무어야?"
"매 매 맨몸 말씀입니다."
......
"한창남은 오늘 웃옷을 입고해도 용서한다. 그리고 학생군에게 특별히 할 말이 있으니, 제군은 다 한창남 군같이 용감한 사람이 되란 말이다.
누구든지 샤쓰가 없으면 추운 것은 둘째요, 첫째 부끄러워서 결석이 되더라도 학교에 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같이 제일 추운 날 한창남 군은 샤쓰 없이 맨몸,
으으음 즉 그 만년샤쓰로 학교에 왔단 말이다. 여기에 서 있는 제군 중에는 샤쓰를 둘씩 포개 입은 사람도 있을 것이요, 자켓에 외투까지 입고 온 사람이 있지 않은가 ….
물론 맨몸으로 나오는 것이 예의는 아니야.
그러나 그 용기와 의기가 좋단 말이다.
한창남 군의 의기는 일등이다 제군도 다 그 의기를 배우란 말야." -본문 중에서
줄거리 자체는 가난하지만 밝고 착한 창남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지만 그것만으로도 가슴뭉클함이 전해진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창남이처럼 제대로 입지 못하고 먼 길을 걸어 학교를 다니는 학생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난이 결코 부끄럽거나 감춰야 할 일만은 아니란 것을 창남이를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어려운 환경이지만 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창남이와 창남이 어머니의 마음은 세상 그 누구보다 부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참 예쁜 이야기다. 만년샤쓰뿐일지라도 당당한 창남이를 보면서 희망과 용기를 본 것 같다. 그것이 방정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주는 가장 멋진 선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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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샤쓰. 참 정겨운 제목의 이 이야기는 방정환 선생님이 몽견초란 필명(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그는 수많은 필명을 돌려가며 썼다고 한다)으로 1927년 잡지 <어린이>에 발표했던 원고를 되살린 책이다. 1927년이면 발표된 지 거의 90년이 다 되어가는데... 좋은 이야기는 세월을 거슬러 빛을 발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슴 따뜻한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아니, 모든 것이 흘러넘치도록 풍요로우면서도 오히려 마음은 더 공허한 시대라 더 그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나는 사실 만년샤쓰에 대한 소중한 추억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담임선생님이 이 책의 주인공 창남이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던 것이다(그때는 현대화(?)해서 '만년셔츠'라고 들려 주셨다^^;). 키가 작았던 나는 교탁 바로 앞 맨 첫째줄에 앉아 선생님을 올려다보며 열심히 창남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집이 타 버린 상황에서도 더 딱한 처지의 동네 사람들을 위해 가지고 있던 옷들을 나누어주었던 창남이와 창남이의 어머니. 추워서 떨고 있는 어머니를 위해 거짓말까지 해 가며 자신의 하나뿐인 셔츠와 양말을 벗어 드린 창남이. 새 원피스가 갖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랐던 철없던 나를 너무나 부끄럽게 만들었던 이야기였다. 나도 창남이같은 사람이 되어야지,하며 일기도 썼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창남이. 여전히 밝고 쾌활하고 시원스럽게 잘 웃고, 누구보다도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창남이를 보면서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난다. 이십 리 밖에서 학교를 걸어 다니면서도 언제나 씩씩하고, 다 해져서 너털거리는 구두를 헝겊과 새끼줄로 감아매고 오느라 생전 안 하던 지각을 하면서도, 체조 시간에 양복저고리를 벗으란 선생님의 호령에 맨몸 '만년샤쓰'를 보이면서도 언제나 구김살 없이 꿋꿋한 창남이. 하지만 그 시린 겨울에 맬가슴에 양복저고리, 다 해진 겹바지에 맨밥에 짚신으로 먼 길을 걸으며 얼마나 추웠을까. 그리고 아무리 밝은 창남이지만 친구들의 시선과 놀림이 왜 부끄럽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저리다.
"한창남! 왜 웃옷을 안 벗나?" 창남이의 얼굴은 푹 수그러지면서 빨개졌다. 그가 이러기는 참말 처음이었다. 한참동안 멈칫멈칫하다가 고개를 들고, "선생님, 만년샤쓰도 좋습니까?" "무엇 만년샤쓰? 만년샤쓰란 무어야?" "매 매 맨몸 말씀입니다."(26~27쪽)
항상 유쾌하게 웃던 창남이가 마지막에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눈물방울을 뚝뚝 흘리는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남이 걱정이 있어 얼굴을 찡그릴 때에는 우스운 말을 잘 지어내고, 동무들이 곤란한 일이 있을 때에는 좋은 의견도 잘 꺼내는'(12쪽) 창남이에게 그런 아픔이 있었다니. 날마다 한 가지씩 옷이 없어지는 이유를 묻던 체조 선생님도, 창남이의 모습을 보고 고아원이다, 밥 얻어먹으러 다니는 아이 같다고 떠들던 아이들도 아마 같은 마음으로 함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여덟 살의 내가 처음 만났던 창남이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 일기장에 썼던 그 다짐도. 어른이 되어서 떠올려보니 참 부끄럽기만 하다. 자기연민과 번민으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던 것이 부끄럽다. 창남이는 결코 자신의 아픔 속에 갇혀있지 않았는데.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하거나 비관하는 대신, 다른 이들의 아픔을 더 헤아리고 보듬어주었는데. 나는 창남이보다 훨씬 큰 어른이지만 마음의 키는 너무나 한참 아래다. 부끄럽고 막막하지만 마음을 다잡아본다. '만년셔츠'입은 창남이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려주셨던 선생님을 떠올리면서. 그리고 33세의 나이에 서울대학병원 병실에서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라는 말을 친구들에게 남기고 눈을 감은 방정환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그 어두웠던 시대에서도 오직 어린이들을 생각했던 방정환 선생님. 일제의 눈을 피해 필명을 써가며 창남이의 이야기를 쓰면서, 아마 행복한 얼굴이셨을 거다. 우리가 창남이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라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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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관련된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라는 이름이 나올 정도로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온 꽤나 익숙한 분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을 소중하게 더욱 따뜻하게 돌봐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신 분이기에 정말 감사드린다. 더구나 가정의 달, 특히 어린이날이 있는 5월에 이 책을 읽게 되어 더욱 반가웠고 기뻤다.
“노란 샤쓰 입은 말 없는 그 사람이 (이하 생략) ” 유명한 옛날 가요에 불리던 샤쓰라는 단어가 때론 귀에 익지만, 요즘은 샤쓰보다는 셔츠라고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만년샤쓰>라는 제목이 더욱 눈에 들어왔고, 오래전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만년샤쓰>는 1927년도에 단편동화로 첫 출간되었고, 이번에 어린이 그림책으로 재출간 된 것이라고 한다.
굵직굵직한 선으로 페이지 가득 큼직하게 그려진 그림들도 한 눈에 들어와 기억에 남는다.
고등보통학교(현재의 중학교) 1학년생인 ‘한창남’과 선생님들, 그리고 반 친구들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창남’이의 우스갯소리에도 마냥 웃어주는 선생님들과 반 친구들이 왠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화를 내거나 벌을 주거나 야유를 보내는 경우도 많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에 특히 선생님의 반응에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비행가 ‘안창남’과 이름이 같아 비행가로 불렸던 우리의 주인공 '창남'이는 너무나도 유쾌한 소년이다. ‘창남’이는 가난이라는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밝은 성격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더구나 불우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들을 흔쾌히 줄 수 있는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제목의 만년샤스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창남’이의 천연덕스러운 표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주변에는 ‘창남’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들이 그렇게 꿋꿋하게 씩씩하게 자랐고, 덕분에 현재의 우리가 풍요로운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몇 장 되지 않는 책을 덮으면서 눈물이 핑 돌아 마음이 찡했다. 너무 짧아 아쉬운 마음에 내가 다 읽지 않고 넘겨버렸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많이 여운이 남는다. ‘창남’이의 뒷이야기가 궁금하지만, 그의 훗날을 우리가 각자 상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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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샤쓰] 창남이가 만년샤쓰를 입은 사연은 어려운 시대, 유쾌하게 함께 이겨내는 창남이 시대를 초월하는 교훈, 본받을 그의 매력과 미덕
누구든지 샤쓰가 없으면 추운 것은 둘째요, 첫째 부끄러워서 결석이 되더라도 학교에 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같이 제일 추운 날 한창남 군은 샤쓰 없이 맨몸, 으으음 즉 그 만년샤쓰로 학교에 왔단 말이다. -본문 中
고등보통학교 1년급 을조 한창남(현재 중1;일제 강점기에는 오늘날 중고등학교를 통합한 개념인 5년제 고등보통학교 체계였다), 비행사 안창남과 이름이 비슷해 비행가란 별명을 가진 창남이는 시원스럽고 유쾌한 성격에 인기가 많다. 선생님께도 넉살 좋게 농담을 건네며 항상 학급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창남이는, 철봉을 좀 못하는 것 말고는 연설도 잘하고 토론도 잘하는 등 다재다능하다.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창남이는 사실 넉넉한 형편이 아니다. 이십 리도 넘는 길을 걸어 학교를 오고, 옷이고 모자도 다 헤어졌다. 하지만 한 번도 얼굴 찌푸리거나 불평하는 법이 없다.
그도 모자라, 굽이 완전히 분리되어 악어처럼 입 벌리는 신발을 신고 오질 않나, 맨몸에 교복 저고리만 입고 오질 않나(이 사건으로 창남이의 별명은 비행가에서 만년샤쓰로 바뀐다), 교복 바지 대신 구멍 뚫린 조선 겹바지에 맨발로 온다. 궁금하다 못한 선생님이 묻는다. “어째 그리 없어지느냐? 날마다 한 가지씩 없어진단 말이냐?” 그 뒤로 뭉클한 창남이의 선행 사연이 이어진다. 온 마을에 불이 나서 모두 불탄 집도 있는데 우리 집은 반밖에 안 탔으니 어머니와 나 당장에 입을 옷 한 벌씩만 남기고 이웃에 나눠졌다는 이야기, 창남이는 그도 모자라 교복바지도 남 주고 벌벌 떠는 어머니에게 사실은 두벌이 있다 거짓말하고는 셔츠에 버선까지 벗어줬단다.
동화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가슴 한편을 툭치는 결말처리가 마음에 들었다. <만년샤쓰>는 방정환이 몽견초란 필명으로 1927년 <어린이> 3월호에 발표한 동화이다. 거의 90년 전 이야기니 할아버지도 넘어 최소 증조할아버지뻘은 되는 창남이인데 지금 우리 아이들도 배울 점이 많고 친구하고 싶은 아이다. 1927년이면 일제 강점기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기였지만 그래봤자 수탈받는 식민지 국민이었고 고달픈 시대였다. 그런 시대를 창남이처럼 밝고 건강하게 이웃과 연대하며, 자신을 잃지 않으며 이겨내는 사람들이 있다. 책마루가 임프린트 눈이깊은아이의 첫 그림책으로 <만년샤쓰>를 선택한 것도 이러한 시대를 초월하는 교훈성 때문이리라. 최대한 원문을 살리되 오늘에 맞게 다듬은 문장과 이일선의 익살스런 삽화가 어우러져 즐겁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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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샤쓰는 소파 방정환 선생의 소설이다. 그저 어린이 날을 만든 위인으로 알고 있었는 데, 소파 방정환 선생의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이 이 책에서는 그대로 전해져온다. 10여년전 광화문의 한 책방에 들렀다가 시간이 남아 어린이 코너에서 만년샤쓰를 처음 읽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그만 "울컥"햇다. 남이 볼 세라 눈물을 훔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요즘처럼 우리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고,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때, 어른도 어린이도 소파 방정환의 소설 만년샤쓰를 한 번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투박한 문체인데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 그리고는 다시 확인하게 된다." 사람이 먼저다." 자그마한 이익 앞에서 움츠러들고, 냉정한 게 사회라고 무심코 인정해버린 나의 삶을 잠시나마 반성하게 된다. 어렸을 때, 우리는 약한 사람을 도와주라고 배웠고, 남을 도와주고도 티내지 말라고 배웠다. 그리고 가난은 죄가 아니고 세상 앞에 당당하라고도 배웠다. 만년샤쓰의 주인공 창남이는 정말 그렇게 한다. 약간은 모자라고 남의 비웃음을 사기도 하는 아이지만, 창남이는 몸으로 행동으로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가르침을 준다. 그런데 나의 삶은 그렇지 못해 눈물이 난다. 순수한 창남이의 속 깊은 행동은 우리에게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깨우쳐 준다. 성공을 하려면 친구를 멀리하라는 교육(?)광고를 버젓이 하는 효율성으로 가득찬 이 세태에, 방정환 선생의 소설 만년샤쓰는 "우리가 진짜 바라는 것은 사람의 온기가 가득한 세상이라는 것을, 조건없는 순수한 손길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돌직구로 던져준다. 어린이 날,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이 제일 소중하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우리 아이에게 만년샤쓰를 통해서 꼭 들려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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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어주쯤 있으면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어린이 날입니다. 필요할때 부모를 통해 공급받을수 있기에 어린이 날과 그날에 받을 선물에 큰기대를 안하게 된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다만 그날의 선물이 놀이공원가는 것이거나 최신 유행하는 값이 제법나가는 캐릭터 장난감을 각게되는등 풍속이 약간 변했을 뿐이죠. 맨 처음 어린이 날을 지정했다는 사실을 대한민국의 어른과 글을 깨친 어린이들 대부분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방정환 선생님이 쓴 작품(동화)은 우리에게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진 않아 보입니다. 그런 사실에 무관심했던 제가 일년전에 읽었던 선생님의 웃음과 감동 그리고 가난의 아픔에 처한 시대적 상황에 사랑과 극복의지를 전해주는 귀한 동화책 한편을 소개할까 합니다. 제목이 <만년샤쓰> 란 동화인데요 웬지 제목이 동화라기 보단 어른용 장편소설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죠? 만년샤쓰의 의미는 독자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기 위해 여기서 밝히지는 않기로 합니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짧은 동화 책입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속에서도 지금으로 치면 유머와 긍정의 마인드로 무장하고 게다가 마음씨까지 천사표인 아이가 바로 창남이랍니다. 수업시간에는 재치있는 농담으로 반 분위기를 99도까지 끌어올리기도 하고, 가난의 역경에 굴하기는 커녕 유쾌하게 올라서는 강한 정신력을 보여줍니다. 사랑의 모습도 보여주는데 이는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에 비쳐볼때 다시한번 돌이켜 보게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요. 예를들면 교복바지를 양복바지로 표현_들이 아이들이 읽기에 생소할 수 있으나 요즘 아이들이 워낙 똑소리가 나서 어른들이 설명해주면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적극 추천해 봅니다. 선물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한 방울씩 떨어진 빗물이 모이고 모이어 큰 홍수가 되는 것이니, 누구든지 콧물 한 방울이라도 무섭게 알고 주의해 흘려야 하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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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샤쓰'는 초등학교 필독서이기에 아이는 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읽은 책이지만 이번에는 그림책으로 만나본다. 처음 제목만 봐서는 어떤 의미일지 잘 몰라 아이가 정말 궁금해했다. 지금은 '셔츠'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조금은 촌스럽게 느껴지는 샤쓰. 책을 읽다보면 촌스럽지 않고 정겨운 '샤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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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보통학교 1년급 을조 창남이는 반에서 인기가 많은 쾌활한 소년이다. 비행사 안창남과 같은 이름을 가졌다하여 친구들에게 '비행가'라 불린다. 시원스럽고 유쾌한 창남이는 항상 해어진 모자와 궁둥이에 조각조각 붙인 양복바지를 입고 다닌다. 이런 옷차림을 보면 집안이 그리 넉넉한 친구는 아닐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근심하는 빛이 있거나 남의 것을 부러워하는 눈치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가 처음 이 책을 읽을때 공감하지 못한 부분은 해어진 옷을 입고 다닌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때만해도 없어서라기 보다는 습관처럼 옷을 수선해서 입었다. 구멍난 양말을 바로 버리지 않고 해어지거나 구멍난 옷이 있으면 그옷에 예쁘 장식을 대어 몸에 맞지 않을때까지 입곤 했다. 지금 아이들이 해어져서 옷을 입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전보다 옷감이 좋아졌을뿐만 아니라 계절마다 새 옷을 구입하는 아이들이 하나의 옷이 해어질때까지 입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창남이의 성격이 활발하고 수업 시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니 아이들은 창남이의 집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다. 그의 집이 궁금하여 뒤쫓아 가보려했지만 중간에서 실패하고 만다. 이십 리 밖에 있는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친구들이 먼 거리를 따라가다 포기를 하고 마는 것이다.
몹시 추운 겨울 날 한 번도 결석하지 않는 창남이가 오질 않는다. 왜 오지 않을까 궁굼해하는 친구들. 첫째 시간이 반이나 지나 교실로 들어오는 창남이의 모습은 친구들과 선생님을 웃게 만든다. 오른 쪽 구두는 헝겊으로 싸매고, 또 새끼로 싸맨 후 그 위에 손수건으로 싸맸다. 자신이 늦을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창피한 기색없이 말하는 창남. 체조 선생은 학생들에게 모두 웃옷을 벗으라고 말한다. 모두들 선생님의 말씀에 웃옷을 벗는데 창남이만 벗지 않고 서 있다. 얼굴을 푹 수그리고 빨개지며 머뭇거리는 창남. 그런 모습은 처음이다. 항상 당당하기만한 창남이였는데 오늘만큼은 다르다.
"선생님, 만년샤쓰도 좋습니까?" "무엇 만년샤쓰? 만년샤쓰란 무어야?" "매 매 맨몸 말씀입니다." - 본문 중에서
창남이가 웃옷을 벗지 못한 이유는 만년샤쓰 때문이다. 제목의 비밀(?)이 밝혀지는 대목이다. 절대 웃을수 없는 장면이다. 창남이는 유머스럽게 표현했지만 정말 슬픈 장면이다. 아주 추운 겨울 날 하나의 옷만을 입을수 밖에 없는 소년. 벗겨진 신발을 여러번 묶어서야 학교로 올수 있었던 소년.
우리의 잣대로 본다면 창남이의 현실은 비참할 정도이다. 그건 우리의 기준일 뿐이다. 누구보다 밝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친구이다. 누구나 자신의 현실에 만족할수는 없을 것이다. 당장 바꾸지 못할 현실을 원망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헤쳐나가고 이겨내야 할 것이다. 창남이를 보면서 작은 일에도 현실을 원망하는 우리들을 돌아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