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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2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했기 때문에, 이를 두려워한 일본이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항복해서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나?
하지만 이런 인식에 반대되는 자료도 있다. 일본이 정말로 두려워한 것은 원폭이 아니라, 소련군의 침공 소식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 <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의 저자인 워드 윌슨은 원폭 투하에 관한 문제를 거론하며, 실제 일본이 항복하는데 원폭은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미 원폭을 투하하기 전에, 미군은 도쿄 대공습 등 일본 본토에 무수한 공중 폭격을 감행하여 많은 도시들을 파괴하고 인명을 살상했으나, 정작 일본의 전의를 약화시키는데는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일본군은 1억 총옥쇄라고 하여, 전 국민이 다 죽더라도 결코 미국에 항복하지 않겠다는 결의까지 다질 정도였다.
심지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도, 일본 정부의 강경한 자세는 누그러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소련군이 일본의 점령 하에 있던 만주를 침공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일본 정부는 그제서야 부랴부랴 계엄령을 선포하는 등 위기 의식을 느끼고 허둥대기 시작했다.
실제로 소련군의 진격은 그야말로 폭풍 같은 기세였고, 불과 11일 만에 무려 70만 관동군이 지배하고 있던 만주를 파죽지세로 휩쓸고, 일본군을 굴복시켰으니까.
그리고 일본의 점령 하에 있던 남사할린과 쿠릴 열도도 소련군의 공격을 받고 순식간에 점령당했다. 그 여세를 몰아 소련군은 훗카이도까지 점령하려 했었다. 그 때 미국이 나서지 않았다면, 오늘날 훗카이도도 러시아 영토가 되었으리라.
아무튼 소련군의 침공 소식이 전해지자, 그제서야 일본 정부는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국 등 연합국과 종전 협상에 들어가서, 1945년 8월 15일 항복 선언을 한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나자, 일본 정부와 군부의 주요 인사들은 한결같이 원폭 때문에 항복을 했다고 말하고 다녔다. 이것은 왜일까?
저자인 워드 윌슨은 이것이 일본 정부의 교묘한 책략이라고 말한다. 일본이 전쟁에 패하게 된 원인이 일본 정부나 군부의 잘못된 전략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만든 무서운 신무기인 핵폭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면, 정부를 포함한 권력자들은 책임을 모면하게 된다는 논리에서였다.
즉, 무모하게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간 일본 정부의 잘못이 아닌, 미군의 핵무기 떄문이라고 그 책임을 돌려버린다면, 상층부는 무사할 테니까.
아울러 원폭 사실을 부각시킴으로써 일본은 전쟁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슬그머니 동정론을 살 수도 있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굴고.
일본 원폭 투하 관련 부분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워드 윌슨는 핵무기가 실제로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만큼 안보에 좋지도 않으며,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을 거론하며 핵무기가 있다고 해서 전쟁을 피할 수 있지도 않다고 말한다.
핵무기를 만들고 관리하는데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생각한다면, 핵무기가 결코 좋은 무기가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이 말하고 싶은 내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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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핵전쟁이라고 하면 온 세상이 폐허로 변한 아포칼립스적인 세계를 떠올립니다. "나는 제3차 세계대전에서 무슨 무기를 사용하게 될 지 모른다. 단, 제4차 세계대전에서 돌과 곤봉으로 싸울 것이라는 것은 말할 수 있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은 그가 살았던 냉전 시대 핵전쟁의 공포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지금도 "폴아웃"이나 "메트로 2033", "터미네이터" 등 수많은 소설과 영화, 게임에서 핵전쟁 이후 문명이 사라진 세상을 묘사하죠. 그러나, 이런 막연한 공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핵무기를 가지려고 하고 있으며 핵무기를 마치 힘의 상징으로 생각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5대 강대국은 물론이고, 심지어 파키스탄처럼 가난한 나라조차 핵을 가지고 있으며 북한은 심각한 가난과 기근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이래 꾸준히 핵개발에 도전하여 세번에 걸친 핵실험을 실시하여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사회 일각에서 강대국들에게 둘러싸인 지정학적인 이유를 내세워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믿음은 "핵무기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핵무기는 그 어떤 재래식 무기보다도 강력하기에 핵무기 앞에서는 재래식 무기는 무용지물일 뿐이며 어떤 적국도 함부로 나를 대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냉전에서 미, 소 양국은 수만발의 핵병기를 일선에 배치하여 상대를 위협했지만 그 파멸적인 결과가 두려워 마지막 순간까지도 발사 버튼을 누르지 못했죠. 핵무기는 나와 너를 파멸시킬 수 있는 무기이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점 때문에 파멸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보편적인 생각에 대해 "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는 의문을 던집니다. 왜 우리는 핵전쟁에 대해 2천년전에 쓰인 성경에 나오는 묵시록적인 모습을 상상하는가. 정말 핵무기가 전쟁을 억제했던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위협에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 "누가 핵무기는 사용되지 않을 것이며, 공포의 이성적 균형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성적 존재인 인간이 그 파괴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무모하고 무지한 짓이다. - 로버트 케네디" 본문 p.188 저자는 일본이 항복한 이유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이 일본을 항복케 한 것이 아니라 소련의 참전 때문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일본 지도부는 핵무기에도 불구하고 항복을 논의하지 않았으나 소련이 만주와 사할린을 전격 침공하고 훗카이도마저 위협하자 경악하여 비로소 무조건 항복에 동의했다는 것입니다. 핵전쟁의 위기가 고조되었던 냉전시대에 베를린 봉쇄부터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중동전쟁에서 상대는 핵무기를 가지지 않았음에도 핵무기를 가진 상대를 공격하였고 핵무기의 사용을 경고했음에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연 핵무기가 전쟁 억지력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죠. 물론 저자의 이런 논리는 일정부분 일리는 있으나 제가 보기에 저자는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소련의 만주 침공이 일본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나, 사실 일본은 포츠담 회담 이전부터 이미 항복을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 항복은 전혀 생각지도 않다가 어느날 갑자기 "소련이 공격했다"라는 말 한마디로 항복하자, 라고 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미 더 이상 싸울 수 없다는 것은 천황을 비롯해 모두 인정하고 있었으나 단지 어떻게 항복할 것인가, 어떤 조건으로 항복할 것인가, 누가 항복의 총대를 맬 것인가를 놓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소련의 참전 역시 이미 시간 문제라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핵무기가 떨어지고 소련의 참전이 사실화되자 더 이상 결단을 미룰 수 없게 된 것이지 어느 하나의 요인만으로 결정된 것이 아닙니다. 제4차 중동전쟁에서 핵무기를 보유한 이스라엘을 핵무기가 없는 이집트, 시리아가 공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은 핵이 없지만 미, 소가 가진 핵이 억지력이 되었기 때문이죠.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와 시리아는 제1차 중동전쟁처럼 이스라엘의 완전한 점령이 목적이 아니라 빼앗긴 영토의 탈환이라는 제한된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핵을 사용한다면 미, 소는 이를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스라엘은 가장 최악의 순간이 되지 않는 한 핵의 사용을 쉽사리 선택하지 못하리라고 계산한 것이죠.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중국과 북한, 베트남은 핵이 없지만 그 뒤에 있는 소련의 핵이 미국의 핵을 견제하였고 미국은 끝까지 핵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핵무기는 핵무기가 억제해 준 것입니다. "다섯가지 신화"라고 하나 다소 장황한 논리를 전개하는 저자의 결론은 "핵무기는 전쟁을 억제하지 못하며 따라서 이 세상에서 핵을 없애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당연한 얘기이기는 하나, 현실적으로는 가능한가는 별개이죠. 핵은 왠만한 경제력과 기술력을 가진 나라라면(심지어 파키스탄이나 북한조차) 만들 수 있기에 설령 5대 핵강국들이 모든 핵을 포기한들 그 외의 나라들이 몰래 만들 것이고 5대 핵강국 역시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다시 제조가 가능합니다. "핵무기 만능론"이 없어지지 않는 한 이 세상에서 핵무기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현재와 같이 핵균형을 유지하면서 더 이상 핵무기가 확산되거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테러집단에 넘어가는 불상사가 없도록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자의 생각이 담겨 있을 뿐 딱히 색다르거나 새로운 주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없기 때문에 별로 추천해 줄 만한 책은 아닙니다. 가령 냉전시절 진짜로 핵전쟁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세상이 멸망했을까, 아닐까같은 가상적인 주제를 다루었다면 훨씬 재미있었을 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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