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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짜증을 몸에 달고 산다. 더위가 한풀 꺾이면서 날씨에 대한 짜증은 줄어들었지만, 모든 일이 생각한대로 풀리지 않으니 자연히 짜증을 달고 살 수밖에 없다. 주말에 집에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혹은 회사와 집 사이를 왕복하면서 만나는 상황, 그리고 벌어지는 일들 모두가 짜증을 유발시킨다. 이런 짜증나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없다 보니, 짜증이 또 다른 짜증을 불러오는 악순환에 빠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짜증에 대해 과학적으로 분석한 책을 만났다. 우리 모두는 습관적, 아니면 조건반사적으로 짜증을 내며 살아가지만, 왜 이런 짜증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해보지를 않는다. 짜증이 나니까 짜증을 낸다고 하면 끝나지만, 그래도 우리의 감정 중 하나인 짜증에 대해 체계적으로 고찰해본 책을 읽음으로써, 그런 짜증의 원인을 알게 된다면 일상에서 조금은 덜 짜증나는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인간이 가장 폭넓게 경험하는 감정이지만 연구가 가장 진행되지 않은 감정이 아마 짜증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짜증이 너무나 주관적이며 또 전후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감정이기 때문일 게다. 똑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짜증을 느끼지만, 다른 사람은 느끼지 않을 수도 있음을 우리는 쉽게 경험할 수가 있다. 또한 우리는 흔히 분노나 좌절, 그리고 혐오감을 짜증과 동일시 하지만, 저자는 이것들을 엄밀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휴대폰은 오늘날 우리에게 짜증을 유발시키는 전형적인 물건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공공장소에서 들려오는 휴대폰 대화내용을 듣고 있다 보면, 우리는 어김없이 짜증이 난다. 우리의 뇌는 생물학적 적응을 위해 어떤 일을 접하면 예측을 하는데 초점을 맞추지만, 휴대폰 대화내용은 반쪽대화이기 때문에 우리의 뇌가 예측을 할 수 없게 만든다고 한다. 또한 언제 끝이 날지 모르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을 조급하게 만들기도 하며, 그리고 듣기 싫어도 어쩔 수없이 들어야 하기 때문에 주위가 산만해지고 그것은 불쾌감으로 연결된다. 이처럼 예측불가능성, 조급성 그리고 불쾌감이 바로 짜증을 유발시키는 세가지 원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지만 짜증이 꼭 이 세 가지의 짜증유발요소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의 감각이 짜증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왜 짜증을 나게 하는지를 많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가 살펴보는 짜증유발 요소는 휴대전화 외에도 정신 사납게 울려대는 사이렌소리,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고추,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 스컹크의 냄새, 정신 산만하게 날아다니는 파리 등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그것들이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원인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일례로 현대인을 가장 짜증나게 하는 소리인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는 인간의 청각보호 혹은 우리의 두뇌에 각인된 원시적 공포를 일깨우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인간의 귀는 가청주파수 대역의 특정주파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와 같이 짜증을 유발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주파수는, 인간의 귀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파수 대역 중에서도 아래쪽 끝에 해당된다고 한다. 그것은 영장류가 위험을 경고하는 울음소리와 비슷한 주파수이며, 이것은 진화적으로 우리의 뇌에 각인된 공포를 일깨우기 때문에 짜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또한 냄새에 대한 인간의 선호도는 학습과 전후 맥락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따라서 특정한 냄새에 대해 우리가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생존을 위해 진화되어온 회피반응의 일종이라고 한다. 이런 짜증요소들은 인간이 피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뭔가를 연상시켜 강력한 반응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들은 달리 말해서 우리가 실제위협과 그 위협을 흉내 내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본능적인 착각 때문에 짜증을 유발시킨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종류의 짜증이 우리들 주위에 존재한다. 신체적으로 불쾌한 짜증이 있는가 하면, 계획이 좌절되었을 때 일어나는 짜증도 있다. 좌절은 기대치와의 간극 때문에 발생하지만, 기대치를 벗어난다는 것이 불쾌감을 유발시키고, 그것이 우리들을 짜증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식물이나 동물을 막론하고 생물들은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있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기에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짜증을 유발시킨다. 따라서 누군가가 특정한 사회적 규율을 위반하거나, 혹은 그러한 규율이 스스로의 가치체계와 충돌하거나 할 때, 우리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오늘날은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과도 유대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살아온 방식과 환경이 다르기에 역사적인 태도나 문화적 차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도 우리에게는 짜증을 유발시키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이 원하는 상황 속에서만 살수가 없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온갖 상황에 처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짜증나는 사람들이 꼭 끼어있기 마련이다. 이처럼 사회생활에서 인간 간의 관계에서 유발되는 짜증을 사회적 알레르기라고 말하는 저자는, 특히 그러한 짜증은 부부 사이에서도 발생하기 쉽다고 한다. 처음에는 좋았던 태도나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바로 짜증유발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습관을 받아들이고, 뭔가 개선을 위해 노력을 하면 짜증은 줄어들겠지만, 그러나 그러한 사회적 알레르기 원을 다 통제할 수는 없기에 결코 쉽지만은 않다. 저자는 이처럼 다양한 짜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원천적으로 짜증나는 것을 제거하거나, 혹은 짜증을 초월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며,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일시적으로 기분이 나아질 수는 있으나,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다고 말한다. “짜증은 삶의 일부분이다. 피할 수도 없고, 어디에나 존재한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최선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짜증은 우리를 약 올리고,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눈앞에 당면한 일에서 집중력을 흩으러 뜨린다.” (122쪽) 결국 우리들은 살면서 결코 짜증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일 게다. 비록 짜증은 부정적인 느낌이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짜증이 나면 뭔가 잘못되었다는 신호로 여기며 위안을 삼자고 한다. 짜증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없음에 감사하자는 것이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면서도 마음대로 써지지가 않아 짜증이 난다. 아니 이건 뭐가 잘못되었다는 신호일까? 더 심각한 문제가 있기라도 하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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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루에 얼마나 많이 짜증을 내나요?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면서 좌절하는 당신, 정확한 횟수를 말하기는 그렇지만, 짜증은 우리의 생활의 일부이고,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너무 좌절하지 마시기를. 대부분 사람들은 어떤 사건을 마주할 때는 버럭 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런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이러면 안 되는 줄도 알지만, 이 ‘버럭’하는 신경질을 다스리지 못한다. 내가 하는 행동이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니 ‘버럭’에는 내가 없는지 아니면 또 다른 내가 있는지? 의문의 연속이다. 짜증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에 꼭 맞지 아니하여 발칵 역정을 내는 짓. 또는 그런 성미.”이다. 이런 짜증이 왜 나는가? 나도 몰라, 당신도 몰라, 우리도 몰라 그러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짜증과 싸우는지 모르겠다. 과연 짜증을 우리가 전혀 모르는가? 얼마나 아는가? 느끼지만, 무어라고 명확하게 대답하기는 어려운 것이기에 그렇게 반응 할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의문 즉 짜증이 무언가? 라는 질문에 대한 과학적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만족할만한 답은 아니겠지만. 최소한의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를 둘러 싼 환경, 그 자체가 짜증을 유발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의 잘못으로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는 것일까? 우리의 반응은 뇌가 좌우하는 것이기에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를 알면 짜증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이며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는 인간이기에, 현재는 짜증의 일부를 이해하는데 그치고 명쾌한 답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지식은 조금씩 쌓여가기에 짜증의 베일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하지만, ‘좌절한 자석’처럼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하나의 절충안에서 다른 절충안으로 옮겨 다니는 것이 우리이기에 짜증에 대한 탐구는 끝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자석이 생물인가? 짜증도 유전적 차이? 절대음감의 비애, 절대의 벽이 그들을 괴롭히고 있다. 꼼꼼함과 큰 맥락의 차이, 분노와 짜증, 불쾌감과 역겨움 하지만, 유쾌함과 불쾌함은 종이 한 장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즉 사회통념이 우리를 많이 좌우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가치체계의 침해, 사회적 알레르기원(가령 무례한 습관), 통제의 욕망과 짜증 그 땔래야 땔 수 없는 사이, 감성의 역전 등 많은 배움이 있다. 전체적으로 딱딱한 내용(?)을 이야기로 풀어나가기에 딱딱한 과학책은 아니지만, 읽기가 그렇게 매끄럽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 같다. 내용 자체가 워낙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은 분야라서 그런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짜증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해준다는 점이다. 이런 결과가 서서히 밝혀지는 것은 그만큼 과학적으로 규명하기가 어렵기에 과학은 짜증이라는 주제를 무시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짜증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알기가 아닐까? 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짜증을 낼까? 하지만, 난 그들을 짜증나게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나를 짜증나게 하는 것이라고 믿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타인의 간극 이 차이가 우리 사회를 꽉 채울 때 짜증이 만연할 것 같다. “문화마다 자기 정체성이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나라는 정체성도 어쩌면 문화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타인을 나와 같이 여긴다면 좀 더 나은 사회가 될 것 같다. 짜증이 날 때는 쉼 호흡 크게 한번 하고 가끔 하늘을 올려다 봅시다. 웃고 또 웃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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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짜증나는가. 조 팰카. 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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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은 모두가 달가워하지 않는 감정 중 하나다. 모든 상황이 통제 가능하다면 짜증이 나는 일도 없을 터인데, 서로 다른 스타일의 사람들의 끊임없이 부대끼고 경쟁해야만 하는 상황인지라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짜증을 낸다. 때론 남에게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고는 너무 격한 반응을 보인 게 아닐까 후회를 하며, 때론 스스로에게 화가 있는 대로 치밀어 짜증을 부리기도 한다. 마치 토라진 어린 아이라도 된 것마냥 구는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고서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은 적도 많다. 대체 짜증이란 놈은 무엇이기에 시도때도 없이 우리의 마음속을 파고드는 걸까. 크게 호감이 가는 주제가 아님에도 짜증을 연구한 학자가 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놀라웠다. 저자가 제시한 상황은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도 보편적으로 만날 수 있는 경우였다. 공공장소에서 큰 목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는 이들이 있다. 통화를 할 때는 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하는 게 일종의 에티켓이라고 다들 알고는 있지만 모두가 고분고분 에티켓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저 사람 뭐지’ 하는 심정으로 한 번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럼에도 통화가 끊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딱히 방법이 없어 차라리 무시해보자며 이어폰 볼륨을 올리기도 한다. 저자는 휴대폰 통화가 특별히 다른 상황보다 더 짜증이 나는 이유로 예측 불가능성을 꼽는다. 통화는 두 사람이 존재해야 성립 가능하다. 나는 둘 중 어느 한 사람이 내뱉는 언어에만 주목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통화 대화를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들여도 내용을 정확하게 이야기하기란 불가능하다. 왜 저런 표현이, 문장이 나왔는지 예측이 불가능한 것이다. 상대가 말을 알아듣지 못해 같은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경우에는 짜증이 극대화된다. 편리함을 받아들인 대신 감수해야만 하는 일종의 대가라고 하겠다. 한 가지 더 공감이 갔던 사례는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에 대한 내용이었다. 어떠한 소리인지 글자를 보는 순간 바로 짐작이 갔고, 자연스레 소름이 돋았다. 이 소리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 이가 과연 있을까? 관절 꺾는 소리, 구토하는 소리 등에 대한 혐오반응도 보편적이다. 특정 주파수가 인간에게 불쾌감을 조장한다는 식의 가설을 세운 학자들이 있었지만 이에 대한 증명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진화적으로 해당 소리를 꺼려하도록 진화 된 게 아닐까 짐작을 해볼 따름이다. 무엇이 ‘짜증’인지에 대한 합의조차도 사실은 쉽지가 않다. 5점 혹은 10점 척도를 사용했을 때 사람들은 다분히 주관적으로 같은 사항에 대해서도 다른 점수를 매길 것이다. 심지어 스컹크가 내뿜는 악취에 대해서도 호감을 드러내는 이도 있을 정도다. 짜증이 지나쳐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이거나 짜증에 대해 아예 인식조차 못한다면 물론 문제가 될 것이다. 엄연한 질병이자 현재로서는 약도 없는 헌팅턴병은 좋은 사례다. 이 병을 앓으면 짜증을 내면서도 자신이 짜증이 났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등의 증상을 보이게 된다. 이런 것을 보면 짜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각은 결국 생존과 직결돼 있으며, 대부분의 감각은 경험을 통해 체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부는 직접 경험을 하지 않아도 이해가 가능한데, 불을 굳이 만지지 않더라도 뜨겁단 사실을 아는 것 등이 이에 해당된다. 짜증 역시 유쾌하지는 않지만 생존 차원에서 인류가 끊임없이 보유해온 능력이 아닐까 싶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아마도 숱하게 들어보았을 것이다. 짜증을 피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꿈꿨던 이들에게 이와 같은 답변은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무언가 불편하다는 인식하는 것이 마냥 나쁘지는 않다. 불편하기 때문에 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나아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면 말이다. 어쩌면 짜증 역시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일종의 본능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