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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힘을 알게 해 준, 살인자에서 어머니에 이르는 여자의 일생 "나는 흙을 먹었다." 강렬한 문장으로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생의 시작을 알리는 이 이야기는, 어느 요양원에서 묵 할머니가 소설 속의 부고 쓰는 글쓴이, "나"를 만나면서 세상 밖으로 나온다. 삶의 변화무쌍함을 겪은 이름 없는 여자, 묵 할머니와 이제 삶의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글쓴이의 상황이 대비되면서 정해진 인연이 만난 것처럼 신비롭다. 무엇보다 흙을 먹는 것에서 시작한 어느 여인의 생이 입안에 흙을 담아 마감하는 것은 마치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생의 이치와 같았다. 글쓴이가 요양원에서 만난 묵 할머니는 호기심이 많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었으며 냉철한 결단력을 지녔지만 때로는 온정적이었다. 자신과 어머니를 해하려는 아비에 대해서는 냉철한 살인자가 되었으며, 전쟁 통에 끌려온 위안부를 괴롭히며 감히 "관용"을 이야기하는 일본 군인에게도 자비는 없었다. 한편으로 미친 여자에게도 친절을 베풀던 어린 소년이 지뢰가 터지며 위기에 처하자 끝까지 뛰어가 살려내기도 했으며, 한국 전쟁 통에 하우스에 갇힌 여인들을 풀어주기 위해 기꺼이 테러리스트가 되기도 했다. 노예, 탈출 전문가, 테러리스트, 스파이, 연인, 어머니와 같은 단어로 요약되는 이름없는 여자의 이야기는 섬세하면서도 깔끔한 묘사로 독자로 하여금 당시 상황을 그리듯 떠올리게 하면서 흡인력 있게 다가온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정제된 알약처럼 독자의 입안에 들어가 소화되는 작가의 글은 한번 책을 잡으면 놓치 못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한편으로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현대에 이르는 우리 역사 속에서 듣기만해도 살벌한 스파이나 테러리스트의 삶을 살아온 여자의 생은 우리나라 역사의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며, 당시 국가가 여성의 평온한 삶을 얼마나 지켜주지 못했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가늠자가 된다. 여자의 어머니는 언어가 무기가 되고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알았다. 묵 할머니는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어휘의 풍부함으로 "세상에서 인식하는 모든 미묘한 차이와 다양한 색과 맛과 냄새와 감각을 묘사"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고 이어받았다. "말은 우리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단순 도구 이상이야." 어머니는 여자에게 말했다. 여자는 위기 속에서 언어를 통해 기회를 만들어내면서 때로는 스파이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가기도 한다. 어쩌면 한국에서 자라 홍콩에 거주하며 영어로 된 소설을 쓰며 언어의 중요성을 알았을 듯한 작가의 생각이 소설 속에 비춰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에는 여성에 대비되는 남성들이 등장한다. 여자의 아비는 무지했고 폭력적이었다. 아비는 결국 자신의 무지함과 폭력성으로 여인의 어머니를 겁탈했으며 눈을 병들게 했다. 이로 인해 여자는 어머니의 눈병을 고쳐주겠다는 감언이설에 넘어가 머나먼 이국 땅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여인의 험난한 여덟 가지 삶의 발단이 아비의 무지와 폭력에서 비롯된 것이 마음 아프다. 아비의 폭력으로 시작된 위안부 삶에 이어서 "이것은 볼록한 점에 관한 이야기이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다음 삶의 이야기는 위안부 생활에서 알게 된 친구, "용말"을 대신해 돌아온 여자와 그 남편에 관한 것이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볼록한 점"이 어떤 복선이 되는지에 관한 서사를 풀어내는 작가의 글솜씨는 소설 전반에 걸쳐서 때로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으로, 어떤 때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으로 다가온다. 그 글솜씨로 빚어진 여인의 남편의 이야기는 무지몽매한 아비의 폭력과 달리 감동적이다. "가장 큰 속임수, 그리고 가장 친절한 속임수는 속아주는 거란다." 여인의 남편은 자신의 딸, 미희에게 그렇게 말한다. 결국 여자가 속일 수 없었던 유일한 사람은 바로 그녀가 사랑한 남편이었다. 여자의 딸인 미희는 "기다림"의 상징인 자신의 아버지와 닮았을 법한 혼혈 미국인인 루소 목사를 만난다. 무지하며 폭력적이던 여자의 아비와 달리 여자와 그녀의 딸인 미희의 남편들은 자신의 여인들에게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속은 척 기다려 줄 수 있는 남성상을 지녔다. 어려운 시절을 겪은 모녀가 기대어 잠시 행복을 느낄만한 배우자의 모습이었고,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들이 폭력적인 아비와 관용 없는 일본군과 같은 악인들로만 채워져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삶의 변화를 추구하던 글쓴이를 통해 세상에 나온, 이름 없는 여자의 살인자로부터 어머니에 이르는 여덟 가지 인생이 담긴 이야기는 매일 밤 유튜브 쇼츠에 빠져 살던 나를 디지털 세상에서 끄집어 내어 아날로그 감성의 종이책 세상으로 밀어 넣었다. 매일 밤 보던 영상을 대신해 활자로 된 책을 읽고 또 읽다가 머리맡에 두고 잔 것이 몇 십년만인지 모르겠다. "언어"가 지닌 다양한 힘을 알려준 여자의 삶과 같이 책에 담긴 언어의 힘을 다시금 나에게 깨닫게 한 작가의 필력에 감사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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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다, 지은이는 한국인인데 소설을 영어로 썼다. 첫 장편소설이라고 믿기지 않으리만큼 짜임새가 탄탄하다. 지루하고 무료한 나날이었는데 눈이 번쩍 뜨일만큼 흥미롭다. 뭐, 재밌는거 없나 싶은 때, 우연히 출판사 책소개를 봤다.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살짝 보여주는 책 속의 문장들이 기어코 책을 사게 만들었다. 시대의 소용돌이라는 말이 있다. 불가역적인 역사의 흐름에 태어난 한 여자의 이야기다. 치열하고 숨막히고 팽팽하고 긴박하지만, 그것또한 한 날의 일상이고 그저 하루하루일 뿐이다. 한 사람이 살아내기엔 그 격동과 굴곡이 어마어마하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일을 겪을 수 있는가? 참으로 너무 흥미로워서 책을 덮을수가 없다. 그 치밀한 이야기의 서사와 구조가 이 소설이 진정 첫 소설일수가 있는가… 이야기 솜씨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정말 추천하는 책이다. 책의 독특한 이야기와 인물들을 만나 보시라. 문장이 살아서 팔딱이는 느낌이 좋다. 주인공이 들고나는 여러가지 시점도 책읽기를 즐겁게 한다. 아픈 역사를 살아온 한 여자의 일상이 그저 참혹하지만은 않아서, 살아내는 강인함이 무척 현실감 있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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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 그 달의 책으로 선정되지도 않았는데, 입소문으로 재미있다고 자꾸 언급이 된 책이다. 뭐, 당연히 궁금하니까 한 권 구매해서 읽어봐야지 ㅎㅎ 이야기가 순삭으로 휘리릭 넘어간다. 이 책에 대한 내용이나, 작가가 영어로 먼저 썼던 책이라는 특징 등은 인터넷에 이미 이야기가 많이 올라와 있어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사실 사람이 바뀌고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느라 조금 이해가 안 가거나 헷갈렸던 부분은 도서 사이트에서 리뷰 달아놓은 사람들의 줄거리를 다시 보기도 했다. (이건 안 비밀. ㅎㅎ) 처음에는 진짜 여덟 명의 여자들의 인생을 풀어놓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인물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환경에 따라 어떠한 모습으로 어떻게 삶을 살아내는지에 대한 이야기책이다. 전쟁과 위안부 등의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실이 더 뼈아프게 하는 책이다. 역사를 찾아볼 수 있는 소설에 특히 애착이 간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떠오른 내용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페르소나이다. 페르소나는 심리학이나 마케팅 분야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 개인이나 집단이 특정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사회적 역할, 행동, 이미지 등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엄마의 역할로서의 페르소나, 직장 내에서의 위치에 맞는 페르소나, 친구와의 만남에서의 내 모습 이렇게 각기 다른 모습들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결국 각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그 모든 모습이 다 나라는 것이다. 그것을 나쁘다 좋다로 구분 짓기보다는 적절한 페르소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모습이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내가 늘 모든 사람에게 엄마처럼 하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즉, 사람은 여러 모습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지난해, 중복전문사회복지사 과정을 함께 했던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을 만나서 이야기 나눴던 주제가, '당신은 몇 개의 페르소나가 있다고 생각하나요?'였다. 이 주제로 이야기 나눈 시간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는데, 첫째, 자연스럽게 자신의 진짜 모습에 대한 이야기가 편안하게 연결되어간다는 것 둘째, 사람들이 나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하나하나가 또 나의 진짜 모습이 맞다는 것을 이해했다는 것 셋째, 상대방이 처한 상황에 따른 제각각의 페르소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것 넷째, 가장 내가 편안한 모습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것 등등 이 책을 보면서, 주인공은 상황에 따라 적절한(?) 아니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모습을 가지고 살아내는 걸 보면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페르소나의 역할이나 필요성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기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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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은 그저 파란만장하고 기구한 한 여자의 개인의 인생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살려고 애쓰던 역사, 그래서 울었던 역사, 그런 역사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채 그 무게를 어떤 방식으로든 감당해 내는 여자를 빌려 작가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야 할, 그리고 전해야 할 우리의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은 지루함 없이 쭉쭉 나간다. 몰입도가 좋다. 시간의 순서가 순차적이지 않으면서 화자까지 달라지기 때문에 순간 흠칫하는 부분들이 있고, 그런 것들이 반전으로 느껴지는 재미도 있다. 사건과 사건 사이, 책에서는 인생과 인생 사이에 시간과 공간적인 인터벌이 있어서 연결 과정에서 비었다는 느낌을 받는 곳이 있는데 그것은 여덟 번째 인생 이야기에서 등장인물들의 대화로 설명되며 매끄럽게 이해시켜 준다. 시대 배경상 얼마 전에 읽었던 '파친코'를 떠올리게 하는데, 같은 역사의 시간에서 파친코의 선자는 휘몰아치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두 발을 땅속에 깊이 박아 꿋꿋하게 서서 뚝심으로 최선을 다해 버텨냈다면,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에서의 그녀는 그 소용돌이와 궤를 같이 하며 역사의 생채기를 온몸으로 받아낸다. 넷플릭스 시리즈에서 머지않아 만나게 될 것 같은 흥미진진함. 재밌는 단편 소설을 이어 만든 장편 같은 생동감 있는 구성이 참 마음에 드는 책이다. 특히 책의 마지막에 있는 작가의 '감사의 말'을 통해 이 책의 가치가 드러난다. 그 시대의 그녀들이 죽어서도 원한이 없도록 우리는 부채감을 가지고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고 매듭지을 것이 있으면 제대로 매듭지어야 한다. 좋은 책을 읽으면 일관되게 하는 나의 마지막 마무리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주신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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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에서 출판한 이미리내 작가님께서 집필하신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에 대한 리뷰입니다. 다 읽고 작성한 리뷰이므로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할 수 있으니, 스포일러에 민감하시거나 해당 도서를 다 읽지 않으신 분들은 이 리뷰를 피해주시거나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한국사람이 영어로 써서 해외에서 상받고 한국어 번역되었다고해서 신기했던 책. 시대적 아픔을 겪으면서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한 챕터 한 챕터를 읽으면서 어떻게 이게 한 사람의 인생일 수 있을까 싶지만 한국역사는 충분히 그런 시대를 살아왔다. 읽으면서 고통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잘 읽었다. |
| 위즈덤하우스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미리내 작가 저 정해영 역의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리뷰입니다. 출간 당시 홍보글을 보고 흥미로움을 느껴서 구매하였습니다. 한국의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배경으로 주인공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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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동 느낌의 표지가 실제로 보면 더 멋지다!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국제 시장이었다. 국제 시장이 남성의 입장이 두드러졌다면 이 책은 여성의 입장에서 쓰인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평양 전쟁과 한국 전쟁 그리고 분단으로 이어진 역사 속에서 소녀에서 여성으로 그리고 어머니로 살게 된 여인. 평범할 수 없었던 여인의 인생이 그려진다. 전쟁 혹은 역사 속 피해자이지만 앞으로 계속 살아가는 아니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래도록 남았다. 노예, 탈출 전문가, 살인자, 테러리스트, 스파이, 연인 그리고 어머니. 8가지의 인생으로 나눠진 이야기들이 더욱 실감 나게 다가왔고, 순차적으로 이어지지 않아 앞과 뒤를 유추해가며 더 빠져들어 읽었다. 개인의 인생이면서 다수의 인생 이야기를 대변하는 듯한 느낌도 들게 했다. 여덟 가지 인생 속 많은 사건들이 실화라고 한다. 지난 역사 속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는 것 같아 계속 읽게 되고 긴 여운이 남았다. 정말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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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가 너무 풍부해 사전을 서너 번 뒤졌습니다. 문장도 독특하고 재미있고 읽는 내내 저의 인생도 여덟 번 변하는 느낌. 수십 억 개의 은하, 그 은하 하나 속 수십 억 개의 별, 그 별 중 하나에 불과한 태양에 빌붙어 매달린 지구에 사는 인간들의 세계가 어찌 이다지도. 아, 먹먹. |
| 요즘 책에 흥미가 떨어져서 그저 재밌는 흡입력이 좋은 글을 찾다가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초반은 생각만큼 진도가 안 나가서 잘못 구매한 건 아닌가 살짝 의심도 했지만 뒤로 갈수록 왜 이렇게 호평이 많은 책인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저 재밌는 소설로 그치지 않고 생각할 거리도 함께 남겨 줘서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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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을 독해하면서 서문과 프롤로그에서부터 내가 살아온 인생과 공감대가 형성되어 평소의 글 읽기와 다른 상상력이 발휘되는 경험을 하였다. 즉 제목이 주는 의미심장함이 호기심을 발동시켰다면, 한 인생을 부고라는 명분으로 작가가 펼쳐나갈 서사를 마주하기에 앞서 반세기를 넘게 살아온 독자의 인생을 자의적으로 반추하는 계기도 되었다. 죽음을 마주할 때 나의 인생을 정리하는 부고 기사를 쓸 기회가 온다면 세 개의 단어로 내 인생을 정리할 수 있을까? 왠지 내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만 같다.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소설 속에서처럼 내 인생을 몇 번의 삶으로 정리해 볼 수 있을까? 숙고해 보니 ‘탄생 & 죽음’, ‘재수 중학생’, ‘쩐 없는 인생의 목청’, ‘조무사로서 간호사의 삶’, ‘독신 & 만혼 그리고 불편한 성생활’, ‘만학 & 상담사’, ‘거절 & 박탈’, ‘공허와 우울’ 등 대충 여덟 가지 인생 실타래로 정리가 된다.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국가 간 전쟁과 민족 전쟁 간 이념 갈등으로 인한 폭력의 피해자로 불운의 격동기를 살아낸 묵 할머니의 인생에 비하면 파란의 무게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그러나 불행이든 행복이든 모든 삶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서사가 있기 마련이다. 독자의 인생은 통계치의 평균적인 삶으로부터 뒤처지는 인생을 살아왔다. 나의 삶을 소설처럼 정의한 ‘여덟 가지 인생’의 실타래를 한 뼘씩만 풀어보겠다. 첫 번째 인생은 ‘탄생 & 죽음’으로 나의 신생아기에 대한 정의다. 맨 위 장남 그 아래로 딸 셋, 나는 음력 1965년 12월 23일 넷째 딸로 태어났다. 아들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딸로 태어난 나를 두꺼운 이불로 돌돌 말아 차디찬 윗목에 방치해 놓았다고 한다. 마침 이웃집 아주머니가 발견하여 나를 살리셨다고 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어머니가 섭섭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당시 나는 밑으로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는 상태로 부모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인생은 ‘재수 중학생’이다. 친구들은 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중학교에 입학하는데 나는 가정 형편상 객지에 나가 일 년간 돈을 벌어와 일 년 후배들과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아이러니는 나이가 너무 어려 공장에서 받아주지 않아 당시 중3인 언니의 호적으로 공장 생활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때 나의 정신은 일 년 후 고향에 돌아가 중학생이 되는 상상뿐이었다. 세 번째 인생은 ‘쩐 없는 인생의 목청’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서 모 대학 국악과 판소리로 지원했으나 불합격했다. 선배들이 소리 너무 잘한다고 했지만, 나는 탈락을 예감했다. 이미 그 학교의 강사한테 자기 문하생들을 합격시킬 수밖에 없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판소리를 배우기 위해 숙식 제공(1986년 당시 월 300)되는 재수는 도서 벽지 빈농의 여식으로 태어난 내게 가당치 않았다. 목청만 좋은 고달픈 쩐 없는 설움을 체험 후 포기를 선택했다. 네 번째 인생은 ‘조무사로서 간호사의 삶’이다 나는 대학 입시에 낙방 후 간호전문대를 일 년 다니다 바로 밑에 남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바람에 중퇴하고 간호양성소 학원에 다녀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해 산부인과에 취업했다. 의사가 자신 의과대학에서 공부한 수술 기술을 나에게 가르쳐 나는 간호사가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을 마스터해서 20여 년의 세월을 간호사 일을 하며 직장생활을 하였다. 그 시절에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반사로 있었다. 다섯 번째 인생은 ‘독신 & 만혼 그리고 불편한 성생활’이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이성이나 결혼생활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독신을 주장하면서도 주위의 소개를 받으면 만나보곤 하던 것이 50번의 선을 보았고 현재 50번째 선본 남자와 서른여덟에 결혼하여 슬하에 딸 하나를 두고 살고 있다. 그러나 내게 부부생활은 여전히 불편하다. 여섯 번째는 ‘만학 & 상담사’이다. 결혼 후 만학으로 배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도 하고 학사, 석사, 박사 등 배움의 과정을 경험하면서 자아실현의 경험도 했다. 일곱 번째는 ‘거절 & 박탈’이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마치다 보니 취업하려고 하면 어느 조직에서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그 박탈감의 울적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만큼 자존감이 무너져 내렸고, 후원해 준 남편에게도 미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여덟 번째는 ‘공허와 우울’이다. 지금 나는 가끔 상담도 하고 건강관리를 위해 운동도 하고 독서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상실감이 휘몰아칠 때면 우울한 감정이 나의 기분 전반을 압도해 공허를 달래기가 힘들다. 내가 마치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껴져서 견딜 수가 없다. 그나마 나를 견디게 해주는 것은 고맙게도 독서라는 간접경험을 통해 젊은 작가들의 신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창조적 문학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즐거움이다. 어쩌면 묵 할머니가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없었던 초년기의 삶을 제외한 나머지 삶은 주체적인 선택이었던 것처럼 나의 삶도 ‘탄생 & 죽음’이라는 첫 번째 삶을 제외한 모든 인생은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 인생을 여덟 가지 색깔의 실타래로 정의해 한 뼘씩 풀어보았지만, 이 실타래도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저자인 작가 선생님을 만난다면, 실타래가 풀리는 과정에서 굴곡진 매듭을 마주할 때 의미 있는 서사로 한 인생의 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작가가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사람마다 각자가 마주하는 환경이 다르고 발달하는 속도도 다르다는 것을 독자 역시도 삶의 경험은 물론 교육의 경험을 통해서 배웠다. 천천히 조용히 늦되는 대기만성 유형들이 있는 것이다. 인생에서 삶의 이유로 인해 기회나 자신감을 박탈당하고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던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희망을 버리지 않고 마음으로부터 포기를 멈추지 않았기에 어느 순간 선택지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었다. 다만 독자의 경우 배움에 대한 ‘갈증’ 때문에 최종 교육 과정까지 이수하고도 시기가 너무 늦은 생애주기이다 보니 배운 것을 활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떤 조직에 몸담고자 할 때 거절에 대한 박탈감 때문에 한동안 울적함을 달래느라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작가가 영어에 대해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고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이토록 멋진 소설을 창작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준 것에 대해서는 마치 내 자신의 일처럼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철없이 들릴지 모르지만, 가슴속으로부터 영어 회화 정도의 능력이라도 갖출 수 있는 공부에 도전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솟아났다. 이러한 마음도 유종의 미를 거두어 나의 부고장 한 페이지를 장식할지 어찌 알 수 있으랴. 묵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에 공감대를 형성할 어르신들이라면 이미 작고하신 어르신들이 대부분일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각종 문헌이나 문헌을 참고한 허구나 논픽션 형태의 자전적 소설을 취한 글로 경험하게 되거나, 구전 및 영상의 기록물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아비규환 상황에서 폭력적 피해자로 겪는 개인들의 경험적 서사를 당사자의 입을 통하지 않고 어찌 진실을 논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묵 할머니의 경험적 부고야말로 진정한 인간사의 리얼리즘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이러한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된 억울한 사례가 얼마든지 많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어쩌면 묵 할머니 체험을 초월하는 수많은 비극적 인간사를 상상해 봄으로써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인간의 본성에 대한 딜레마에 빠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묵 할머니의 여덟 가지 인생에서 선택은 언제나 삶의 욕구였고, 그 욕구에 대한 수단은 묵 할머니로서는 무언가 꺼림직하고 두려울망정 늘 정당한 선택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선택으로부터 해방감이 토식증을 멈추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즉 묵 할머니의 토식증은 정의될 수 없는 갈증의 반증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한편으로 독자가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을 독해하면서 주인공에 대해 경외감이 들기도 하고 재미있었던 점은 묵 할머니가 격동의 시대에 파란만장한 한 세기의 삶을 보고하는 과정이 매우 인상 깊었다는 점이다. 묵 할머니의 절제력 있는 보고는 오히려 독자의 호기심을 발동시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였다. 또한 아비규환의 고통과 폭력을 경험한 아픔을 유머러스하게 전달함으로써 독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줬다는 점에서 묵 할머니야말로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보통의 어르신들이라면 이런 정도의 인생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내려면 울분과 분노에 휩싸여 평정심을 잃기 마련인데 묵 할머니는 잔잔한 호수에 규칙적으로 작은 조약돌을 던져 파문을 만들 듯이 절제력 있게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또한 각 인생을 불러올 때마다 전 이야기의 파문이 사라질 즈음에 다시 조약돌을 던지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차분한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때에 따라서는 전형적인 이야기꾼처럼 그 잔혹하고 험난한 전기적 회고를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지.”라는 증언식 표현이 그러하다. 직접적으로 경험한 인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유머를 잃지 않는 생기 넘치는 점도 존경스러웠다. 안타까움은 시대를 잘 만났다면 위대한 외교관으로 기억될 인물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시대가 묵 할머니에게 감각이나 직관력,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질긴 생명력으로 단련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그러한 삶이 묵 할머니가 삶에서 담대한 통찰력을 스스로 터득하는 지혜의 토양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우리는 삶에서 고단하든 평탄하든 잠시 멈춰 사색의 시간을 통해 인생을 관조할 마음의 여유를 의도적으로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야만 자신의 삶을 냉정하게 직면하게 되며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였다는 착각에 빠지거나 오해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어느 정도의 인생주기를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면밀히 성찰해 보면 오히려 내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살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타인을 이용하고 자신을 속이며 그렇게 우리의 편리대로 삶을 속이며 생존해 온 것이다. 인간의 욕구가 죽음보다는 생존본능이 강하다고 볼 때 억척스럽게 살아남은 묵 할머니의 삶이 이해받아야 하고 수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장구의 세월을 대서사의 부고로 막을 내린 묵 할머니의 영전에서 휘몰아치는 경외감으로 가슴에 깔깔한 모래가 섞인 무거운 흙 주머니가 올려지는 압박감을 느낀다. 그런데 묵 할머니의 요양원 탈출을 누가 도왔을까 독자는 아직도 그것이 미스터리이다. 아무리 전직이 스파이에 탈출 전문가라도 이미 쇠약해지고 허약한 노구의 몸으로 폐쇄된 요양원을 누군가 돕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도 늘 곁에서 돕는 요양사가 아니라면 휴대폰 사용도 탈출도 불가능했을 텐데? 요양사도 첩보원? 아니면 외부의 첩보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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