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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아파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아프다는 건 미래를 상실'당하는' 일이다. 나는 파워 제이 혹은 대문자 제이이다. 단기 계획은 물론 중장기 계획까지 차곡차곡 짜야 직성이 풀리지만, 아픈 사람은 당장 단기 계획도 세우기 힘들다. 일주일 뒤에도 내가 존재할까, 라는 질문 앞에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물며 한 달 뒤, 일년 뒤를 계획하고 도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슬픔도 비슷하지 않을까? 슬픔 역시 미래를 거세당한다. 슬픈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회한 가득한 마음으로 과거를 돌아본다. 그래서 슬픈 사람에겐 미래는 존재하지 않고 현재와 과거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가 존재한다면 그건 어떻게 가능해지는 걸까? 표제시를 비롯해서 꽤나 긴- 시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는 이번 시집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나의 아픔이, 나의 슬픔이 과거를 살게 하려고 할 때, 과거로 돌아가려고 할 때, 어떻게 나는 현재를 살고, 미래를 도모할 수 있을까? 이건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고, 우리 공동체 혹은 사회의 문제일 수도 있을텐데(팬데믹 이후 슬픔이나 아픔은 더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시인은 더없이 시인다운 감수성과 더불어 인문학자나 사회학자같은 치밀함과 분석력으로 이 문제를 깊이 깊이 천착하고 파고든다. 그리고 독자인 나는 시인과 더불어 그 천착에 참여한다. 깊이 깊이 파고 들면, 마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처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깊은 터널을 만들 수 있을 것처럼. 그렇게 닿은 미래에서 단단한 돌멩이 하나를 손에 쥔다. 그 돌의 실재성, 손 안에 든 돌멩이의 실감이 현재를 살아가게 할 것이다. 그런 믿음이 생기게 하는 시들이었다. 그러니 나는... 중장기까지는 몰라도 단기 계획이라도 차곡차곡 성실히 짜며 현재를 살아야겠다. 회한의 과거보다는 불확실하더라도 손 안의 돌멩이만큼의 실감을 주는, 미래를 떠올려보면서. |
인간에게는 늘 기적이 부족해서 누구나 자신의 삶이 슬픔의 종교란 걸 알았다. 라는 문장에 이끌려 바로 구입했어요. 기대에 부흥하는 제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시집이었어요. 자주 꺼내어 읽을 것 같아요. 세상에 아름다운 것은 아직 세상에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고 말하는 사람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