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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보여주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표현에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할 것이고 대화에는 수화가 가장 풍성한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 수화를 배워보고 싶었지만,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알파벳과 몇 가지 기본인사만 배우다 말았다.
발화와 문자가 가능하니 동기부여도 아쉬움도 적었다. 농인 친구나 친지도 없었다. 문제 제기의 합리성보다 동의인의 숫자가 여전히 더 막강하고 설득력을 가지는 사회에서 주류와 정상의 범주 외의 세계는 너무나 비가시적이다.
만약 이 숫자가 뒤바꾸면 어떻게 될까. 어떤 사회가 구성되고 어떤 삶의 풍경이 펼쳐질까. 이 작품에서 소설이 가진 거침없는 혁명성을 시간을 잊고 만났다. 상상력과 이야기의 힘 덕분에 기차의 이동 속도만큼 설렜다.
“나는 바닷물이 모래밭을 향해 달려들었다가 뒷걸음치는 모습을 지켜본다.”
‘모든 사람이 수어를 할 수 있다면’이 농인이 아닌 이들이 정상인 사회의 질문 방식이라면, ‘모든 사람이 소리 내어 말하고 수어는 하지 않는다면’은 선천적 청각장애인 인구가 많아 섬 주민 모두가 수어를 했던 마서스비니어드(Martha’s Vineyard)섬에서 할 법한 질문이다.
“나는 리코더를 부는 낸시를 바라보며 나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감상한다. 하늘을 나는 새를 바라보면서 새소리를 상상하는 것과 비슷하다.”
따옴표 안의 말들이 모두 보이는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읽으니 주변도 고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소리의 본질이 울림과 떨림이라면, 농인의 세계도 소리가 없는 조용한 세계는 아니란 걸 깨닫는다.
“집 안에 활기가 넘칠 때는 나무 바닥으로 진동이 전해진다.”
“나는 기분이 좋은 때면 벌처럼 윙윙 거린다.”
2부가 시작되고 스릴러 범죄 소설 같은 전개가 이뤄져서 조금 멍했다. 한참을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장면들이 이어져서 섬에서 다소 느긋했던 나도 긴장감에 기분이 팽팽해졌다. 스포일링이 되겠지만 메리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온다.
“옆방에 있는 엄마 아빠한테서 나는 진동을 느끼려고 깨어 있고 싶다.”
부록도 꼭 읽어 보시기 바란다.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선택이든 아니든 다양한 종류의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를 가진 이들은 늘 존재할 것이다. 이분법은 허위 구성이다. 실재하는 건 다양성뿐이다.
발화 언어처럼 수화도 지역에 따라 다르다. 외국어와 방언처럼. 차별하는 사회는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개인으로서 참여와 연대가 작아서 지쳐도, 지향은 헷갈리지 말아야겠다. 어떤 다름이라도 장애로 만들지disabling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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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를 보여줘. 이 제목과 (수어의 섬 마서스비니어드) 이 문장이 어쩌면 나에게 편견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서정적이며 잔잔하고 조금은 슬프게 흘러갈것이란 내 예상은 기분좋게 깨졌다. 이책은 대단히 역동적이고 주체적이며 모험과 스릴까지 가득하다. 그건 분명 주인공 메리의 삶과 모험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우리 주변, 청각장애인들의 다양하고 진취적인 일상을 대변하는게 아닌가싶다. 그리고 우리의 무지한 편견은 여전히 계속되고있다는 따끔한 충고도 잊지않는다. 이 책이 부디 많은이들의 가슴에 다양한 목소리로 다가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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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휴머니스트#작업책방씀#너의목소리를보여줘#앤클레어르조트#마서스비니어드 시력을 교정하기 위한 도구인 안경은 숨겨야 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외적인 매력을 배가하는 패션아이템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반면, 보청기의 심미성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정도에 따라 결정되곤 한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김초엽 작가는 청각장애인이 청인들의 세계에서 직면하는 패싱과 커버링에 관해 기술한다. 청각장애인의 청력 신장을 위한 사회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하지만 수어와 고유한 문화를 지키기 위해 교정수술을 거부하는 농인들의 사례를 볼 때, 청각능력의 결여를 질병으로 간주해 온 사회가 과연 옳았는지 자문하게 된다. 앤 클레어 르조트의 <너의 목소리를 보여줘>는 수어의 섬 마서스비니어드에서의 메리의 일상, 그리고 질병을 지닌 하찮은 존재로 농인을 인식하는 앤드루와 만나면서 겪는 메리의 고초를 진실한 목소리로 담아낸다.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것들을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보면 당연하지 않게 된다. 장애도 마찬가지다. 농인의 비중이 높았던 덕분에 농인과 청인이 동등한 대우를 받았던 마서스비니어드 섬에서 청인인 매슈 아저씨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기 사람들은 다들 수어로 말해요. 누가 청인이고 누가 농인인지 때로는 깜빡할 정도죠. 귀가 들리고 안 들리고를 구분하는 게 의미가 있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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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를 보여 줘
너의 목소리를 보여 줘
사실 나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 외의 타인의 삶은 잘 모른다.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래서 문학작품을 읽으면 우리는 우리가 아는 삶 외의 삶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도 있고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너의 목소리를 보여 줘>라는 제목만 보면 공감각적 표현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말을 소리로 하지 않고 보여주는 방법으로 손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농인에 대한 이야기인데 소설인가? 했는데 실제 존재했던 섬과 마을이라고 한다. 아마 사실을 바탕으로 허구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운 소설인 것 같다. 1-3부로 내용이 나누어져 있는데 유독 농인이 많은 섬의 시골 마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마을에는 농인이 많기 때문에 마을사람들 모두가 자연스럽게 수어를 구사하고 청인과 농인이 뒤섞여 산다. 주인공인 메리는 날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하는 농인인데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마을에 사는 또래의 다른 여자아이들과 같다. 메리의 가족에게 아픔이 있지만 아이는 아이인지라 1부에서는 엉뚱하고 장난기 많고 그냥 딱 청소년의 메리의 모습이 보여진다.
메리의 마을에 농인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 앤드루 라는 사람이 마을로 오는데 연구를 한다고는 하지만 이미 연구 결과에 대한 잘못된 예측을 하고 있다. 선입견에 가득차 있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우등하고 열등하고를 따지기 때문에 연구하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이 불쾌해지기도 하고 메리가 큰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과학’이라는 이름 하에 그 시절에는 진짜 사람에게 몹쓸짓을 많이 했는데 현대인들이 기겁할만한 것들을 그 시절에는 ‘과학’ 이라는 이름하에 행했기 때문에 2부의 내용을 읽으면서는 사실 마음이 편하지 않다.
157p. 내가 농인이라는 게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걸까?
메리가 스스로에게 되묻는 장면이었는데 나는 저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청인이라는게 나의 가치를 결정하나? 라고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었다. 아마도 작가가 독자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넣은 대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2부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지만 정말 다행인 방향으로 이야기가 끝이 나는데 284p. 메리가 아빠와 나누는 대화가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닌가 생각했다.
“누군가 나랑 다르다는 이유로 하찮게 대하는 건 공정하지 않잖아요”
“남을 판단하지 않는 게 좋아. 자신을 먼저 성찰하렴. 자신부터 선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최선을 다하고. 사람들이 네 모범을 보고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게.”
#너의목소리를보여줘 #앤클레어르조테 #휴머니스트 #곰곰 #청소년문학 #역사소설 #서평단활동 #북스타그램 #문학추천 #청소년문학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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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세상이 있던 것처럼 메리만의 세상이, 낸시만의 세상이, 또, 그들의 세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청각장애인/농인은 모두 동일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기에 멋있는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고 살았다는 것에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그들이 보기에 난 보스턴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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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이 많이 산다는 것에 유전적으로 연구하러 온 과학자는 농인들을 지능이 떨어지고 무능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당시의 과학자들의 만연했던 생각이었다고 한다. 과학자는 단지 농인이라는 이유로 메리를 납치하여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다행히 메리는 탈출하여 부모가 있는 섬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말할 수 없는 힘든 일들을 겪게 되는데……
차별을 당하고 실험 대상으로만 농인을 바라보는 그들을 보면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것이 예전부터 뿌리 깊이 존재했었음을 실감했다. 메리의 ‘나는 처음으로 의문이 든다. 내가 농인이라는 게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걸까? 세상에서 청각장애가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과연 올까? 완벽한 인간이 정말 존재할까? (p.157)’ 라는 말이 가시처럼 와서 박힌다.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데 장애와 비장애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은가. 지금 우리 사회의 비장애인중심주의는 어디까지 왔을지도 생각해 보게 하며, 우리는 차별 없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지 질문하는 소설이었다.
적막. 많은 청인, 특히 농인에 대해 잘 모르는 청인들은 우리가 적막 속에 산다고 짐작한다. 하지만 틀렸다. 내 안에 활력과 즐거움이 가득하고 앞날에 대한 기대로 흥분한 순간은 결코 적막에 싸여 있지 않다. 나는 기분이 좋은 때면 벌처럼 윙윙거린다. 기분이 안 좋은 날, 망연자실하거나 슬픔에 잠긴 때만 모든 것이 적막하게 느껴진다. 엄마와 나만 있는 우리 집처럼.(p.59)
아빠가 옳았다. 우리는 창조된 그대로 괜찮다. (p.62)
나는 처음으로 의문이 든다. 내가 농인이라는 게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걸까? 세상에서 청각장애가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과연 올까? 완벽한 인간이 정말 존재할까?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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