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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역사를 보면 좀 이해안가는 구석이 두 가지가 있다. 둘다 외세의 침략을 받았음에도 완전 '멸망'이라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는 건데 바로 원나라의 고려 침략과 청나라의 조선 침략이었다. 둘다 임금이 사로 잡히고 무릎까지 꿇었으나 고려와 조선이 망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원나라가 고려와 와서 임금을 사로잡고 했던 일 중의 하나가 고려를 부마국, 즉 사위의 나라로 만든 것이다. 당시 팍스 몽골리아라고 불리며 위세를 떨치던 원나라는 고려를 멸망시키는 대신 관리하기 편할 정도로만 만들었다. 그래서 귀족의 딸을 고려 왕의 왕비로 보내고 거기에 여러가지 물건들을 실어보냈다. 해서 고려에 일시적으로 몽골의 풍습이 들어왔고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언어 속에 몽골어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를 몽골풍이라고 불렀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법, 왕비가 온 대신 고려에선 공녀들이 차출되어 원나라로 보내졌는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인물이 있다. 나중에 황후가 되는 기씨. 그녀 뿐 아니라 고려에서 몽골로 보내진 다양한 문물들이 당시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몽골의 사회에 고려 붐이 일어나서 고려의 옷을 본뜬 유행이 있었거나 모자, 신발, 머리 모양새들이 유행했다고 하며 이를 고려양이라고 했다.
지금말로 보면 k-컬처의 고려버전인 셈인데 아무튼 그 이야기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주로 우리가 배웠던 역사 교과서의 내용은 고려왕의 호칭이 죄다 충0왕으로 바뀌었다거나 공녀로 수많은 처녀들이 끌려갔다거나 하는 부정적인 내용들인데 이 책에선 그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도 적지 않았다. 특히 배움을 위해 자발적으로 원나라 행을 택한 학자들과 승려들의 이야기도 있고, 고려말이 식민지 국가였다라는 수세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해 언급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조선시대와 비교하면 고려에 대한 이해는 상대적으로 충분치 않다. 특히나 원나라 침략이후 역사에 대해선 부러 감추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공백 상태인 역사서도 많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분기탱천한 고려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무인들이 지배한 암울한 시절에도 다들 각자도생했던 시절이기도 했을 것이다. 역사는 꾸준한 이해다. 감추고 왜곡하고 모르게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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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의에 의해서든 자의에 의해서든, 어쩌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환자가 되어 원 조정에 들어간 고려 출신 환관들은 일차적으로는 개인적으로 원하던 권력과 부귀영화를 성취했을 것이며, 기회가 닿을 경우 고려와 고려 국왕을 위해 자신들의 힘을 쓰기도 했을 것이다. 이들은 낯선 타지를 찾아온 고려인들에게 이미 완벽하게 정착한 선배이자 동향인으로서 도움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p.140)
적어도 나의 선 안에서 고려양에 대해 제대로 다루고 있는 책은 거의 없는 듯하다. 고려양, 사전적인 의미로는 “고려 말기 원나라에서 유행하였던 고려의 풍습”을 의미하는 것으로 k 문화처럼 복식, 음식 등 전반적 생활상이 몽골에서 유행했던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름답게 기록되지 못했는데, 고려 출신의 황후를 들인 것 때문에 원나라가 몰락한 것으로 판단하던 당대의 세태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일까. 처음 이 책을 알고 호기심과 고민이 동시에 들었다. 고려와 몽골에 관해 기술한 책을 그리 많이 읽지 않았기에 오는 호기심과, 같은 이유에서 오는 부담감이랄까. 얼마 전 한 책에서 “알려진 모든 사실이 수집되고 그것들이 객관적으로 재현된다면 논쟁할 필요가 없다”라는 (역사에 대해 생각하기, 사라마자) 말을 읽고 생각이 많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기록과 해석의 역사”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고려양은 분명 단순한 문화교류가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역사, 시대상, 욕구, 관계, 사회적 지위 등까지 모두 담고 있어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 사람 (적어도 내 세대까지는) 고려양을 이런 풍습이 있었다 정도로만 배웠을 듯하다. 나 역시 그랬기에 이 책은 더 울림을 준다. 고려와 몽골의 관계사를 지속해서 공부해온 작가님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고려양에 대해 진지한 태도로 임했다. 이 책을 읽으며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 한마디로 이 부분을 넘겨버린 역사 선생님이 떠올랐는데, 만약 그때 10분이라도 이 부분을 짚어주셨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쉬이 읽어지는 책은 아니나, 시간을 들여 읽을 가치가 있는 책임은 분명하다. 이 책으로 인해 고려에 대해, 원나라에 대해, 또 명나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니 말이다.
뒷받침없이 우리의 문화라고 우기기만 한다면 우리의 모습이 중국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중국이 우리에게 영향을 준 문화도 아주 많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를 공부해야 함은 당연하다. 우리가 우리의 문화를, 또 역사를 잘 모른다면 한복과 김치에 한푸, 파오차이 등의 오명을 씌운 역사는 또 되풀이될 것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우리가 우리 것을 잊고 살면 먼 훗날에는 우린 것이 아닌 게 된다. 부디 이런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 우리 역사를 조금 더 많은 생각으로 바라볼 일이, 바라보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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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초 테무친이 몽골 초원의 여러 부족들을 통합하고 '칭기즈칸'으로 추대되어 몽골 제국을 수립한 후 정벌전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화북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금나라의 세력이 위축되자 금나라의 지배 아래 있던 거란이 몽골에게 쫓겨 고려 영토로 침입하게 된다. 이에 고려와 몽골이 연합하여 강동성에서 거란을 격퇴한 후 '형제맹약'을 맺었다. 이를 계기로 몽골에서는 고려에 사신을 파견했는데, 이들은 무리한 조공을 요구했고 사신들의 태도 또한 예의를 벗어났다. 이러한 논란으로 고려에서는 몽골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던 중 1225년 몽골 사신 저고여(차쿠르)가 고려에 과중한 공물을 요구하고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이다가 귀국 길에 압록강 부근에서 피살된다. 몽골은 이를 고려 소행이라 주장하며 국교를 단절하였고 6년 후 이 사건을 빌미로 고려를 침략하였다.
1231년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고려 조정은 몽골 장수 살리타가 이끈 몽골군에 개경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강화를 요청하였고, 몽골군은 철수하며 다루가치를 설치한다. 이에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무신집권자 최우가 강화도 천도를 결정했고, 이 결정에 자극받은 몽골은 1232년 살리타의 지휘 아래 고려를 다시 침입한다. 그러나 이때 김윤후와 처인 부곡민들이 처인성 전투에서 적장 살리타를 사살한다. 이렇게 40여 년간 고려는 몽골의 간헐적 침입을 받아야만 했다.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몽골과의 강화 여론이 높아져 항쟁 지속을 주장하던 무신집권자 최의를 제거하고 강화를 추진하게 된다. 고려는 태자를 몽골에 파견하여 고려의 독립을 약속받고 강화를 체결한다. 그러나 개경 환도와 일본 원정 조건에 대해 무신 정권이 반발을 일으키자 오랜 전쟁에 힘들어하던 반대파들이 무신집권자 임유무를 제거하고 개경으로 환도한다. 끝내 개경 환도를 거부하고 항쟁을 유지한 삼별초는 여몽 연합군에 의해 진압된다.
이 책은 기존에 많이들 다루고 있는 이러한 우리 역사 속에서 고려와 몽골의 전쟁과 간섭과 저항의 역사가 중심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이루어진 두 나라 사이의 문화적 교류에 초점을 맞추어 당시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고려에서 몽골풍이라고 하여 몽골식 복장과 머리 모양 등 몽골 풍습이 유행한 것처럼 몽골에서는 고려양이라는 고려의 의복, 음식 등의 고려의 풍습이 유행했는데 그것에 대해 자세하게 나와있다. 그리고 몽골에 건너간 고려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아무래도 고려에서 몽골로 간 인물 중에 가장 성공한 사람은 기황후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기황후의 원나라 내에서의 이미지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그려지는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원사』 권 114, 「열전」 제1, '후비' 1, 완자홀도 황후 기씨'에 따르면 기황후는 평상시 책을 보며 현숙한 황후들의 행적을 모범으로 삼고, 그에게 선물로 들어오는 진미들을 황실 조상을 위한 태묘에 먼저 올리며, 기근이 들었을 때는 구휼에 앞장서는 등 황후로서 현숙한 면모를 안팎으로 내보였다고 한다. 기황후의 득세를 보며 다들 '제2의 기황후'를 꿈꾸며 자신의 딸을 몽골로 시집보내는 고려의 권세가들이 많았다. 이른바 '몽골리안 드림'을 꿈꾸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황후의 득세 하에 고려 양식이 몽골의 궁중에서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는 권형의 『경신외사』에도 잘 나와 있다. '지정 이래 궁중의 급사와 사령 태반이 고려의 여인이었다. 이에 사방의 의복과 신발, 모자와 기물이 모두 고려의 것을 따랐다.'라고 기록하였으니 원나라 말기에는 궁정 안팎으로 고려 여성의 비중이 커지고 고려양이 크게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지정'은 혜종 토곤테무르 때의 연호로 혜종 토곤테무르는 기황후의 남편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몽골에서 고려의 공녀 차출이 단순 허드렛일을 위한 급사 수요 충당만이 아니었음이 나와있다. 몽골에서 동녀를 요구 시 '양가의 딸'을 요구하기도 했고 고려 조정에서는 공녀 차출을 위해 국내 결혼 제한 조처도 취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고려의 지배층 가운데서도 원 황실 측의 요구를 받은 경우나 혹은 자원해서, 혼인해서 몽골로 간 사례도 있었음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원 지배층과 결혼을 하게 된 고려 여성들은 그 자손들이 원 정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고려의 환관 역시 동녀와 함께 몽골에서 요구하는 주요 대상이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어 스스로 국경을 넘은 이곡과 이색의 이야기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몽골행을 택한 승려 태고보우, 나옹혜근 등의 이야기도 자세하게 나와있다.
여태껏 고려에 대한 역사가 조선에 대한 역사보다 적게 다뤄졌던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일반 대중들 또한 고려에 대해서는 조선만큼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 4대 임금의 이름은 금방 말할 수 있겠지만 고려 4대 왕의 이름을 금방 말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려의 문화와 인물들이 중국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커다랗게 장식하는 몽골의 원나라에서는 중요하게 대우받았었다는 사실과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꿈을 이룬 고려인들의 이야기 등 고려 역사와 문화, 인물에 대한 연구가 좀 더 활발히 이루어져 일반인들에게 소개되었으면 한다. 물론 혹자는 원나라는 몽골의 역사이지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을 때 중국의 왕조 중 하나로 배웠으니 그 문제는 말하지 않겠다.
이 책은 단편적으로 알고 있고 무조건적인 핍박의 역사로만 알고 있는 고려 말기 몽골과의 관계에 대해 더 넓고 풍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 이야기이니 소설책처럼 쉽게 술술 읽히는 것은 기본이다. 포켓북 사이즈의 책이니 부담 없이 자주 찾아 읽을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세창미디어>에서 출간된 역사산책 시리즈를 1권부터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출판사로부터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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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몽골에 가다』
이명미(지음)/ 세창미디어(펴냄)
내게 철학 책 읽기의 재미를 가르쳐준 세창출판사의 역사 산책 시리즈 신간 《고려, 몽골에 가다》를 읽었다.
책은 포켓북 사이즈로 가방 안에 쏙 넣어 다니기 좋았다^^ 이번 책은 늘 독서 하기 전 두툼한 노트와 필기구 등 독서 기자재(?)를 풀 세팅하는 내게 간단 독서의 묘미를 맛보게 해 주었다. 역사산책 시리즈는 현재 16권까지 출간된 상태다. 시간순으로 서술된 학교 역사 시간의 프레임이 아니라 흥미로운 소재로 역. 알. 못 독자님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유목 민족인 몽골의 역사가 문서로 많이 기록되어 있지 못한 점은 아쉽다. 광활한 대륙을 다스렸을 몽골, 상대적으로 유럽사에 비해 천대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 이전에 중국인 학부모에게 중국사에 대해 개인적인 견해를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녀도 기본적으로 '중국은 대국이다. 중국은 관대하다. 따라서 모든 소수민족의 역사는 우리 중국 꺼야!'라는 정부의 정책을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동북공정'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도 갖고 있었다. 몽골에 수난 당한 고려인들, 끌려간 공녀들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심정이지만 조금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해외 식민지를 위해 배를 띄웠던 유럽이나 몽골이나 힘의 논리로 국제 사회를 좌지우지한 것은 같다. (절대 편드는 거 아님) 그럼에도 우리 사학자들은 서양의 것, 그리스 로마적인 것은 위대(?)하다, 그 외에 비서양적인 것은 상대적으로 관심 밖이다.
저자의 생각 역시 고려 VS 몽골을 '수난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보자는 의견이다. 고려 사람들이 당시 동아시아의 가장 유력한 나라(대국이라는 말 쓰기 싫어서 유력이라고 표현합니다) 몽골과의 교류를 통해 더 넓은 세계를 인식하고 그 안에서 성취를 이뤄낸 점을 높게 보자는 의도로 이 책을 집필했다. 책은 우리를 13~!4세기로 데려간다. 조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료나 기록이 적은 고려사, 일단 고려 책을 만나면 무조건 반갑다.
최근에 중학교 역사 시험지를 보면 과거에 몽골의 영향을 받은 것들을 골라보라는 문제와 상반되는 고려양, 고려가 몽골에게 영향을 준 것들을 많이 질문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고려의 기황후 모습? 욕심 많고 괄괄한 성격, 권모술수와 온갖 모략이 모습으로 묘사되는 점이 안타깝다. 책에서 저자는 한미한 가문 출신 공녀에서 시작해 무수한 장애물을 극복하고 황후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본인 스스로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 것일까? 그것은 권력 장악의 문제를 넘어 본인 생존의 문제였을 것이다. (기황후를 편드는 것은 아닙니다)
공녀로 끌려간 여인들 그나마 기록을 살펴보면 관리의 딸들 중에도 정실부인의 딸은 없고 첩의 딸이나 양딸이 대부분이다. 하물며 기록에 들어가지 못한 여성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딸일 것이다. 같은 사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조선의 강제위안부 역사를 봐도 같다.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농민의 딸들, 양반의 딸도 강제위안부로 끌려갈 상황이 있었으나 돈으로 딸을 빼내고 대신 노비의 딸을 돈으로 매수해서 자기 딸 대신 보냈다는 이야기를 김 숨 작가님 강연에서 들었다. 결론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딸들이 수난을 당한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약자다? 누구도 편 들어 주는 이 없는 약자들, 지금 우리 사회도 13세기의 고려와 마찬가지다. 코로나 19로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은 것은 일용직, 알바생들 그리고 그들의 자살, 막노동 현장에서의 실족사, 추락사, 감전사 등등 수많은 죽음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고 있지만 기사로 나오지 않거나 기사화되어도 사람들은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왜? 가난하고 별 힘없는 영향력 없는 사람의 죽음이니까...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니까...
책의 좋았던 점은 기존에 많은 역사가들이 범한 오류, 한 쪽으로만 보는 역사가 아니라 사건을 입체적으로 해석하는 점이 가장 눈에 띄었다. 기황후의 사례나 고려 여인 김장희, 포로 출신의 강수형 등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인물들을 책에서 언급한 점도 인상깊다. 조선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축소된 고려의 역사. 끌려간 고려인의 프레임을 넘어 이 책 3장의 내용도 인상 깊다.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어 스스로 국경을 넘은 용감한 고려인에 주목해야 한다. 한 쪽으로 치우친 시각은 세상을 바로 볼 수 없다는 것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고려사였다. 개인적으로 고려사가 많이 주목받고 많이 연구되기를 바란다.
책을 읽으며 궁금한 점이 생겨 도서관을 찾고, 검색을 하느라 리뷰가 더 늦어졌다. 이 책 고려사는 무한한 상상력과 영감을 준다.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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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을 보자면, 13세기에서 14세기 고려와 몽골에 관한 이야기다. 몽골로 건너간 고려인이 많았기에 ‘고려양’이라는 고려스타일들의 문화, 의복, 음식 등이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예쁜 고려인을 부인으로 삼으려는 귀족층과 고위관료가 많았으며, 기왕후의 등장을 기점으로 고려의 문화전파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공녀들 중 불쌍하게 뽑혀 간 사람들도 있지만, 집안을 일으키는 목적이 있어서 간 사람들도 있었다. 인력으로 뽑혀 간 사람들도 있었고, 왕실의 공녀로 간 사람들도 있었다. 관료의 자재이거나 왕족의 자재들은 몽골의 왕족이나 귀족들과 결혼하여 가정을이루는 경우는 고려에 있는 친정에 힘을 실어 줬던 것 같다. 또 환관들이 몽골로 많이 갔었는데, 그들은 고려에서는 7급이상의 관직으로는 진급이 안되었지만, 몽골에서는 높은 관직으로 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로 올라 갈 수 있었다. 그들은 외교관처럼 고려와 몽골의 징검다리 역할도 했고, 고려에 있는 가족들에게 힘을 실어 보란듯이 권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고려의 관료들이 원의 과거제 응시가 흥미로웠다. 고려의 관료진출 방법은 과거제, 천거제, 음서제였다. 제도를 통해 관료가 되더라도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는 원의 과거에 급제해서 자신의 능력을 더 인정받고 싶어했고, 급제하게 될 경우 고려에서 자신이 올라 갈 수 있는 곳보다 더 높은 자리와 힘을 얻게 되었다. [원에서부터 인정받은 자!] 이런 타이틀이 였던 것 같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타이틀만이 꼭 과거의 합격만이 목적은 아니었을 것 같기도 하다. 더 큰 세상의 경험을 희망했던 고려인들의 꿈이었을 수도 있다. 요즘도 유학할 수 있는 것이 큰 경험이듯 그때도 그랬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공녀, 환관, 케식 이렇게 세 단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공녀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의 요구에 따라 바치던 여자이고, ‘공물로 바치는 여자’ 라는 뜻이다. 비참했던 역사이지만, 그녀들은 비참함으로만 끝나지 않고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고려의 문화전파 했다는 것이 놀라웠고 경이로웠다. ★환관은 거세된 남자로서 궁중에서 벼슬하는 사람. 왕의 최측근 비서(?)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내가 아는 것 보다 훨씬 폭넓은 영향력이 있었고 정치적으로도 힘이 있었다는 것이다. ★케식은 칸의 친위대이며, 기사단 같은 기능이 있었으며, 고려의 귀족, 왕족들의 자식들이 여기를 거쳐 고려로 돌아오게 되면, 왕의 자리에 오르거나 높은 관직으로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려 상인들의 [노걸대]와 [박통사]라는 회화집도 대단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 언어를 빨리 받아들이고, 외국 가수 와서 떼창부르는건 아마도 옛날 그 옛날부터 외국어 교육을 많이 해서 진화 발전한 결과물 아닐까 생각해봤다. ? 예~전에 티비 드라마로<기왕후>를 봤던게, 인상에 많이 남아있었던 것인지 몽골에 대해서 막연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불쌍한 여자들이 원나라로 막~ 끌려가 공물대신 받쳐지고, 거기서 어떤 훌륭하고 예쁜 여자가 왕에 눈에 똭!! 들어서 왕후도 되고 천하를 호령한다. 이렇게…인생극복, 금의환향 내용으로만 알았던 나의 무지를 깨우쳤고, 13~14세기의 고려인들과 몽골이 관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마지막으로 기황후의 놀라운 문화 영향력과 비주류에서 정치적 핵심으로 부상하고, 지략을 펼쳤던 점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