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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 페이지에서 살인 사건의 범인을 알려주고, 친절하게 살인의 이유까지 말해준다. 그러니 더 읽을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 소설의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다. 더 큰 궁금증이 생겼으니까. 내가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게 내 일상을 불편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한 가족을 죽일 이유가 된다고 금방 떠올릴 수 있을까? 문맹이 왜 살인의 이유가 되는지, 그 궁금증이 이 소설을 더 펼쳐보게 한다.
유니스가 글을 배우기 시작해야 할 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녀는 글을 배우지 못했다.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성장 환경을 신경 쓰지 못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오랫동안 아플 때 그녀가 간병했다. 제법 잘 해냈다.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자 더는 견디지 못했던 그녀는 아버지를 질식사로 죽게 했다. 들키지 않았다. 그저 죽는 게 이상해 보이지 않을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그녀의 생존법은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다. 누군가의 약점을 잡아내어 돈을 갈취하면서 협박도 일삼았다. 그녀에게 만족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그냥 살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커버데일 가족의 가정부로 일하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 되었다.
커버데일 일가가 돈이나 쓰면서 즐기는, 그저 그런 날들을 보내는 사람들이었다면 아직 살아있었을까 싶기도 하다만. 학력이 높고 오페라도 즐기면서, 집안 곳곳에 책을 쌓아두고 즐기는 사람들이라서 유니스의 눈에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 잡은 건지도 모르겠다. 서재에는 책이 가득했고, 딸은 학교 과제를 하느라 책을 읽어야 했고, 아들은 주방의 식탁에서도 책을 들고 와서 읽을 정도였다. 조지의 책상 위에는 온갖 서류가 쌓여있고, 재클린도 잡지와 책을 읽었다. 유니스는 이 많은 책과 활자들이, 이 가족이 자기를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말싸움도 아니고, 쌓여 있는 책이 누군가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는 걸 나는 처음 알았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글자를 모르는 것을 시작으로 한 사람의 인격 형성에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하는, 문맹이 낳는 또 다른 문제를 들여다보게 하는 일이었다.
그녀가 문맹이라는 사실은 그녀의 동정심을 앗아갔고 상상력을 위축시켰다. 심리학자들이 애정이라고 부르는,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은 그녀의 기질 안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74페이지)
유니스는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이후 처음으로 조지의 시체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다음에는 응접실로 다시 들어가 재클린, 멜린다, 자일즈의 시체 역시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연민도 회한도 일지 않았다. 사랑, 기쁨, 젊음, 평화, 안식, 생명, 먼지, 재, 낭비, 가난, 폐허, 절망, 광기,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사랑을 제거하고 생명을 파괴하고 희망을 부수며 지성의 가능성을 훼손하고 기쁨을 종식시켰다. 유니스는 매장하는 사람들조차 신음을 흘릴 정도로 커버데일 가족의 시체를 썩어가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훌륭한 양탄자가 엉망이 되어 안타까웠고, 자신에게는 피가 한 방울도 튀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257페이지)
단순히 글자를 모르는 건, 앞서 말했듯이 한 사람의 일상을 불편하게 하는 정도로 여겼다. 어디에 가서 내 정보를 써넣거나 필요한 내용을 메모하지 못해서 나중에 찾아보지 못하게 하는 그 정도의 불편함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불편함만 생각한다면, 유니스가 보여준 행동을 그 어느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글자를 모르니 타인의 감정을 읽는 것도 어려웠다. 타인의 감정을 읽거나 소통할 수 없으니, 자신의 필요로 저지른 일의 잘못도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방법, 감정의 교류나 도덕 같은, 같이 살아가는 방식도 알지 못해서 그녀만의 생존법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던 거다. 그렇다고 그녀의 살인이 범죄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의 첫 문장에서 알려준 유니스의 살인이 왜 시작되었는지를 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문맹은 일종의 시각 장애’(47페이지)라는 말처럼, 그녀의 문맹을 장애로만 받아들였다면 의료적 지원이 필요한 일이다. 글자를 모른다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니라, 다방면의 지원으로 이 장애를 치료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다. 하지만 유니스가 보여준 행동으로 생각하자면, 문맹은 시각 장애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듯하다. 문맹을 부끄러워하면서, 이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지경에 이른 유니스를 보면 말이다. 글자를 모른 채로 사는 일상을 상상해 본 적도 없고, 습관처럼 읽고 끄적이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 역시도 읽지도 않을 책을 가방에 꾸역꾸역 넣고 외출하는 습관을 보면, 어디서든 읽는 일을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이 책의 소개에서 본 김상욱 교수의 말을 곱씹어봤다. 다들 영어로 얘기하는 자리에서, 영어를 모르는 내가 느끼는 감정은 부끄러움과 분노였다.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있으니, 혹시나 이 사람들이 내 얘기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것도 영어도 모른다면서 비웃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의심이 가득해진다. 그것만이 아니다. 영어를 모르는 내가 느끼는 좌절감, 이 부끄러움을 감당하게 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스쳐 지나간다. 어디까지나 상상으로 경험하는 감정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보게 되는 건 살인의 과정이 아니라, 문맹이 단순히 읽고 쓰는 일을 못 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나쁜 마음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재밌는 건, 누구나 글을 알고 쓰는 세상이라고 해서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거다. 유니스와 대조적으로 커버데일 일가는 읽는 일에 집중한다. ‘우리 집에는 이렇게 책도 많고, 우리는 종종 오페라도 즐기면서, 주변 사람을 불러서 파티도 한다?’ 부족할 게 없어 보이고,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서 누리는 삶이라고 과시하는 듯한 태도는, 그들이 나에게 특별히 잘못이 없다고 해도 미움 받을 행동으로 각인된다. 너는 왜 열심히 일하면서 집에서만 지내? 새로운 동네에 왔으니까 소개 좀 해줄게, 이런 것도 있으니까 좀 즐기면서 살아, 뭐 이런 우월감을 유니스에게 보이기도 했다. 주인님, 마님 호칭을 좋아했던 것도 지금 생각해 보니 웃기긴 하다. 유니스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타인과 다른 방식으로 일상을 즐기고 싶은 사람도 있지 않나? 휴가 때 꼭 여행을 가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집콕으로 쉬고 싶다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내가 아는 방식으로 상대에게 권하는 것도 실례가 된다는 것을, 커버데일 사람들은 몰랐다.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유니스가 일상을 사는 방식을 이해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그들처럼 살아가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두 사람은 흰색 메르세데스 자동차를 타고 출발했다. 조지는 커버데일 통조림 회사로, 자일즈는 마그누스 와이든 재단 학교로 가는 길이었다. 조지는 자일즈에게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해 보겠노라 다짐했던 터라 바람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건네 보았지만, 자동차에 타고 있는 그들 위로 침묵이 내려앉을 뿐이었다. 자일즈는 “음” 소리만 내고는 언제나 그렇듯 책을 펼쳐 들었다. 제발 이번에 만나는 여자가 괜찮은 사람이기를. 재키가 이 넓은 집을 혼자서 감당하려는 모습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그녀에게 그런 짐을 지우는 건 부당한 일이야. 어디 단층집 같은 곳으로 이사라도 가야 할 형편인데…….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 어림도 없는 소리. 그러니 제발 E. 파치먼이라는 여자가 괜찮은 사람이기를. (13~14페이지)
단순히 문맹인 한 사람의 살인으로만 보여주지 않은 책이라 더 인상 깊다. 문맹이거나 문맹이 아니거나, 책을 읽고 살거나 안 읽고 살거나, 어느 틈에 파고드는 우월감이나 박탈감을 조심해야 한다. 유니스의 살인을 무조건 혐오하기에도, 커버데일 일가의 죽음에 애도만을 표하기에도 어렵기만 했다. 문맹이 한 사람의 성장과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유니스의 감정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확인하게 하면서,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들이 그러지 못한 사람들의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도 되는가 하는 문제를 던져주었다. 커버데일 일가는 유니스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당연한 일이 유니스에게는 언급하지 않아줬으면 하는 공포로 다가오는지 알지 못했다. 멜린다는 유니스의 문맹을 알고 글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선의는 선의로 다가오지 못하고 강요와 공포가 되기도 한다. 유니스에게 멜린다의 제안은 자신의 약점을 파고드는 공격이었다. 글자를 읽고 쓸 줄 안다고, 책 읽는 것을 즐긴다고 해서 상대의 마음을 잘 읽고 선을 잘 지키기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적당히 거리를 지키고,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고 살아가는 법은 여전히 어렵다. 문맹으로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인격이 결국에는 한 가족의 몰살하고, 문맹을 모르는 사람들이 저지른 실례는 파국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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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 파치먼이 커버데일 일가를 살해한 까닭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7페이지)
짜릿한 소설의 첫 문장이다. 활자중독이라고 할 만큼 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인물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굉장히 불편할 거로 여겨진다. 한 저택의 가정부로 들어간 여성이 글자를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인 것처럼, 커버데일 일가가 유니스 파치먼을 채용하면서부터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소설은 커버데일 일가가 유니스 파치먼에게 살해되기까지의 과정이 시간 순서대로 나온다. 커버데일의 안주인 재클린이 하녀를 구하면서 편지에서 보이는 의문점을 전혀 찾지 못하는 것이 재앙을 불러왔다. 질문을 할 수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많은 조짐이 있었으나 놓친 거다. 불행은 이처럼 아주 간단한 것부터 시작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들 가족의 미래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
커버데일 가족의 저택에 처음 도착한 날 유니스의 방에 있던 텔레비전이 그녀를 더 폭력적으로 변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항상 바라 마지않았던 텔레비전이 눈앞에 있었고, 하필이면 텔레비전을 처음 켰을 때 화면에 총을 든 남자가 등장한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가 어떤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 어휘력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폭력과 총이 등장하는 장면을 맞닥뜨리고 난 뒤 그녀의 폭력성을 자극했을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처럼 조앤 스미스를 친구로 둔 점일 것이다. 텔레비전의 폭력과 총, 종교에 빠져있는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을 가진 조앤 스미스를 만난 것부터 비극이었다. 이 모든 요소가 갖춰진 상태에서 커버데일 가족은 비극의 운명을 선택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는 활자로 도배된 세상이 끔찍했다. 활자를 자신에게 닥친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활자는 거리를 두고 피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그녀에게 활자를 보여주려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였다. 활자를 피하려는 버릇은 몸에 깊게 배어 있었다. 더 이상 의식하고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따뜻한 마음이나, 타인을 향한 애정, 인간적인 열정이 솟아나는 샘은 이러한 이유로 오래전에 말라 버렸다. 이제는 고립된 상태로 지내는 일이 자연스러웠고, 이러한 자신이 상태가 인쇄물이나 책, 손으로 쓴 글자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행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74페이지) ![]()
발췌문장처럼, 유니스에게 활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위협이었으며 폭력적이었다. 유니스는 활자만 빼면 재클린을 포함한 커버데일 가족에게 완벽한 하녀였다. 그릇이며 바닥, 침대 시트 등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청소했다. 다만 재클린이 쓴 쪽지의 내용이 두려워했으며, 급한 일로 회사에서 서류를 준비해달라는 조지의 전화가 폭력적으로 느껴진 건 당연했다. 글자를 모른다는 걸 절대 밝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밀하게 준비한 죽음이 아니었지만, 치밀하게 움직인 게 되었다. 커버데일 가족을 죽인 뒤, 조앤의 흔적을 지우는 장면은 압도적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흔적을 지우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집에 찾아온 형사에게 차를 대접하며 사건이 추이를 관망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활자를 몰랐기에 살인자로 체포되었다. ![]()
유니스의 유년 시절이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유니스에게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문맹으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활자 때문에 두려워하고, 문맹을 감추려 다른 사람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유니스 파치먼의 폭력성과 공격성은 기본적으로 잠재된 성격이었는지도 모른다. 『활자잔혹극』은 이처럼 한 사람으로 인하여 비극을 초래했고 한 가족이 몰살당했다. 한편으로 안타까웠다. 유니스의 문맹을 일찍 알았더라면 커버데일 가족은 유니스에게 글을 가르쳤을 것이고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모든 상황에 만약이란 가설을 세워본다. 이미 일어난 일이지만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는 거에 안타까움을 표해본다.
역시, 마포 김사장의 말발(혹은 글발)에 속아 구매한 책이다. 북스피어의 책은 순전히 마포 김사장의 글을 보고 구매하게 된다. 사지 않고는 못 배길 글발이라고 해두자. 짜릿하고 재미있다. 루스 렌들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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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간한 소설이라고 해서 의심반 기대반으로 구매하여 읽어보았는데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소설은 처음부터 범죄자가 누군지 왜 범죄를 일으켰는지 알려주며 시작하는데 그 사건의 발자취와 트리거가 되는 일들을 조금씩 추적하며 이어지는 그 과정이 굉장히 흥미로울뿐더러 탄탄하다. 개인적으로 유니스 파치먼이라는 인물에게 생각보다 이입 되면서도 범접할 수 없는 싸이코패스와 같은 느낌도 들었다. 자신과는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커버데일 가족들 사이에서 가정부로 고용되어 자신의 치부인 문맹임을 숨기며 하루하루 스스로 받는 압박감을 생각하면 숨이 안쉬어지면서도 유니스의 싸이코패스적인 성향은 동정과 혐오감을 동시에 불러 일으켜 때로는 유니스의 입장에서, 때로는 커버데일 일가의 입장에서 감정이입하게끔 된다.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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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책과 독서에 대한 집착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뒤틀고 파괴할 수 있는지를 그린 심리 스릴러이다. 살인이나 추격보다 인간의 내면을 치밀하게 파고들며, 평범한 집착이 광기로 변해 가는 과정을 섬뜩할 만큼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주인공은 책을 사랑하는 인물이지만, 그 사랑은 점차 소유욕과 강박으로 변질된다. 독서라는 고상한 취미조차 극단적인 집착과 만나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며, 인간 심리의 어두운 이면을 냉정하게 드러낸다. 단순한 범죄소설이 아니라, 집착이 인간을 어디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아이러니한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독특한 심리 스릴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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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렌들작가님의작품활자잔혹극입니다.표지가강렬한데다가제목과딱어울리는느낌이라서좋았습니다.루스렌들작가님의작품은처음이었는데이번에너무재미있게읽어서작가님의다른작품도읽어봐야겠다고생각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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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모임 지정도서로 구매했습니다. 추리 소설이지만 초반부터 범인과 이유가 나와있어서 책을 읽는 내내 결말은 알지만 이유의 원인에 대해 빨리 알고 싶어서 흥미롭게 읽었어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인 것 같습니다. 추리소설 복잡하지 않게 읽어 보실 분들.. 추천합니다. |
| 술술 읽힙니다. 결론을 알고 보는데도 이렇게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다니 대단해요. 첫 문장에서 사건의 모든 것을설명했는데도 책을 놓을 수 없게 재밌습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고 재미나 의미 모두 잡은 책이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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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랜들의 <활자잔혹극>은 단지 재미 측면으로만 소비하는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활자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상대가 원하지 않는 관심은 과연 선의인가? 여러 측면으로 철학적 사고를 하게 해 주는 것 같다. 이런 게 문학의 힘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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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 파치먼이 커버데일 일가를 살해한 까닭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소설의 첫줄에 범인과 범행 동기를 밝히는 소설. 원래 범인 맞추기가 맛이어야 하는 범죄소설인데 범죄 동기까지 밝히면 무슨 재미로 소설을 읽어야 되는걸까? 하는 생각도 잠시,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살해했다는 저 괴팍한 말은 도대체 뭘까하는 궁금증이 더 커진다. 유니스는 조지와 재클린 부부 집안의 가정부로 고용됐다. 그녀는 가정부 일을 잘 하는 사람이다. 집정리는 타고난 것 같은 이 사람에게는 약점(?)이 있다. 그녀는 문맹자이다. 1930년이 배경인 소설이지만 문맹은 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약점을 잘 숨기며 일한다. 조지는 그녀가 인간미가 전혀 없는 싸늘한 사람이라 의심하지만 재클린이 만족하기에 모른 척 넘어간다. 유니스는 조앤이라는 여자를 만난다. 조앤은 매춘부로 생활하다 노먼과 결혼하여 이 마을에서 지낸다. 그녀는 과도하게 종교에 심취해 있다. 문맹을 숨기는 유니스, 그녀를 조금씩 의심하는 커버데일 집안, 광신교가 되어가는 조앤. 책을 다 읽고 표지를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빼곡한 글자를 파고드는 칼. 칼이 지나간 자리는 빨간 글자가 나타난다. 아슬아슬하던 유니스의 모습이 이어지다 문맹임을 들키자 커버데일 가족을 망설임없이 살해한다. 문맹이라는 것이 그녀에게 그토록 참담한 비밀이었을까. 처음부터 밝혔다면 어땠을까? 왜그리 아슬아슬한 거짓말을 계속했을까? 특별한 이유없이 남을 혐오하는 모습이 이 소설에 가득하다. 왠지 기분이 안 좋아. 조앤과 조지, 그리고 유니스. 그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에 왜는 없다. 그냥 내 기분이 그렇다며 서로를 쳐다보고 확정한다. 왜 이 소설이 폐간되었을까하는 의문과 복간되어 다행이다는 만족감. 유명한 소설의 시작들이 있다. 이 소설도 그들과 어깨를 마주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의 구성에도 당연함이 없고 사람의 행동에도 당연함이 없다. 우리가 무엇인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렇지 않은 것은 혐오를 일으킬 수 있다는 김상욱 교수님의 추천사. 이렇게 멋진 활자가 살인의 이유가 되는 아이러니를 선사하는 멋진 범죄 소설. |
|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라는 지금 시대를 생각하면 다소 황당한 범행 동기에 대해서 왜 소설 속 등장인물은 이런 선택을 했을 지 어떤 사회적인 문제나 개인적인 문제가 있을 지 등을 생각하면서 읽게 되며 단순히 문맹이 아니라 내 콤플렉스라는 점이 대입해서 읽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