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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며) 자(연스럽고) 이(로운) 오사무를 만나다 <마음의 왕자>를 읽고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던가. 갈대처럼 연약하지만 생각하는 힘을 통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뜻이(라고 들었)다. 이런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단 한 번의 삶을 살아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어떤 이는 자신을 인간으로서 자격 미달이라고까지 자조하면서 그야말로 생각하는 갈대처럼 살다갔다. 일본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가 그러하다. 대중에게 알려진 그의 삶과 죽음 그리고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의 강렬한 여운 탓인지 모르겠으나, 내 주변에서 작가 혹은 작품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평범한 독자로서 비범한 작가를 단 하나의 작품으로만 평가한다는 게 애당초 말이 안 되기 때문에 그가 남긴 다른 글들을 찾아 읽음으로써 타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그래서 다자이 오사무가 살아생전 쓴 에세이들을 가려 모은 <마음(心)의 왕자(王子)>라는 책을 집어든다. 그가 작가의 길로 접어들 무렵인 1933년부터 스스로 생을 마감한 1948년까지 신문, 동인지, 단편집 등에 수록(收錄/手錄)한 글들을 시대순으로 읽어나가다 보면, 다자이의 삶과 문학에 대한 생각과 마음이 잡힐 듯 말 듯하다. 먼저 표제작인 「마음의 왕자」에서 뜻밖에 그의 다정함을 느낄 수 있다. 1939년의 어느 날, 한 대학 신문에 실을 수필을 청하러 온 학생들을 돌려 보내며 그는 진정한 '마음의 왕자'가 누구여야 하는지, 아울러 그런 사람은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독일 작가이자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지구의 분배」를 인용하면서, 제우스 신이 인간에게 세계를 나눠줘서 다들 각자의 영역을 차지하고 난 뒤 마지막으로 나타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시인에게 제우스는 더 이상 나눠줄 것이 없으니 대신 천상으로 오면 자기 곁을 내주겠다고 타이른다. 여기서 다자이는 '자유롭고 고귀한 동경심'을 건져 올리며, 사회의 어떤 부분에도 속하지 않고 또 속해서도 안 될 학생이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언젠가는 노련한 사회의 수많은 구성원ㅡ편집자, 공무원, 학자 등ㅡ 중 하나가 될 것이므로 학생 시절에 산책자처럼 마음껏 사색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어쩌면 다자이 자신도 세태에 물들어 잃어버린 마음을 조금이나마 다시 되찾고자 하는 바람을 담아낸 발언이 아니었을까. 가장 말랑말랑한 사유의 시간을 거닐 수 있는 학생을 동경해마지 않으면서 말이다. 비단 학생만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귀 기울여도 괜찮으리라. 다음으로 문학과 생활을 오가는 다자이의 행보를 따라가며 어설프게나마 문학의 본질과 생활의 정수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책 곳곳에서 그가 삼다(三多), 즉 다독(多讀), 다상(多相), 다작(多作)을 실천한 문학가였음을 엿볼 수 있다. 문학에 대한 연구가 깊지 않아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오롯이 이해하지 못하여 어림짐작해 볼 따름이지만, 일본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책들을 읽으면서 그가 사색과 집필의 양분을 섭취하고 자기만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능력이 탁월했던 인물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다.
"나는 꽃이면서 꽃을 가꾸는 사람. 나 아직 알맞은 시기를 알지 못하네. Alles oder Nichts(독일어로 '전부냐 전무냐'라는 뜻)."(41쪽)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나아가 깊게 뿌리 내리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진다. 그럼에도 우울과 허무는 늘 다자이 곁에 드리운 그림자처럼 존재했던 듯하다. 여러 차례의 자살 시도로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그는 환자(患者)로, 그 자신은 생'환자(生還者)'로 취급될 때마다 대체 건강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천착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무의지(無意志) 상태는 그 사람이 건강하기 때문이며, 역사적 인물들ㅡ나폴레옹, 미켈란젤로, 이토 히로부미 등ㅡ이 한 모든 작업들은 미치광이 상태에서 비롯됐다고 결론을 내린다. 오랜 세월에 걸쳐 그가 정의한 울적함과 쓸쓸함의 상관관계도 곱씹어볼 만하다. 1936년에 "울적한 나를 쓸쓸하게 해 다오 뻐꾸기여(74쪽)"라는 하이쿠를 인용하면서 닫힌 상태의 울적함보단 열린 마음의 쓸쓸함이 낫다고 말하며, 1939년에는 아내에게 "쓸쓸함에 져선 안 돼. 그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라고(124쪽)" 얘기하고, 1948년에 이르러서는 도당(徒黨, 무리)의 정치에서 '고고함'을 경계하면서 "고저(孤低)는 있고 고고(孤高)는 없으나, 고독(孤獨)이란 건 있을지도 모르겠다(225쪽)"고 털어놓는다. 또한 책속에서 다자이의 유머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다. 어두컴컴한 대중목욕탕에서 거울도 없이 척척 면도를 해내는 노인을 보면서 '경험의 퇴적' 앞에서는 물구나무서기를 해도 질 수밖에 없다고 표현한다. 그의 첫 소설집 『만년』을 영업하는 모습에서는 특유의 귀여움마저 느껴진다. 이 소설 한 권을 쓰기 위해 태어났으며 독자가 애독할 것을 상상하면 행복진다고 속마음을 드러낸다. 읽으면 재미있는 소설도 있으니 짬 날 때 봐 달라 해놓고, 이내 독자의 생활에 별다른 도움은 되지 않을 테니 권하지 않다가, 그럼에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건 오로지 독자의 몫임을 재차 강조한다. 이런 밀당의 기술을 의도한 것인지는 작가만이 알겠지만, 요즘의 독자가 읽어도 웃음이 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다자이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紹介)하다가 전혀 생각지 못한 국면에 다다른다. 바로 '소개(疏開)'라는 낯선 낱말을 마주하면서 그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굴레 속에 갇혀 있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무시로 발생하는 공습에서 투하되는 폭탄을 피해 여러 곳으로 옮기던 어느 날, 달리는 기차의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자 한껏 달떠 연신 환호하는 다자이와 아빠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 딸은 엄마에게 저것은 강이 아니냐고 묻는다. 이에 그는 결코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며 열을 올리는 장면에서 왠지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뭉클해진다. 다사다난한 개인사와 전쟁이라는 시대적 굴곡 속에서 다자이에게도 단란한 가정과 소소한 행복이 깃든 순간들이 있었음을 새삼 발견한 까닭이다. "중요한 것은 꺽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던가. 생각하는 갈대라 분명 꺾일 때도 많았지만 다시 일어나 남은 생을 어떻게든 살아나가려 했던 다자이 오사무, 나에게 그는 그런 사람으로 그려진다. 문득 그가 꺾일지언정 뿌리 뽑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 속에는 내가 너무도 많아 겉으로는 고요해 보이나 그 이면에는 한시도 바람 잘 날이 없었기에. 책을 덮으며 더 늦기 전에 '마음의 왕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다자이가 전하는 다정한 위로인 '자유롭고 고귀한 동경심'을 찬찬히 내 안에 새겨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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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였다. 사양은 좋았으나 고평가 받는 인간실격이 뭔가 위화감이 많이 들었다. 부잣집 멘헤라 도련님의 한심한 일대기를 그린 듯한 느낌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이번에 쏜살문고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산문집이 나온다고 하여 구매했다. 내가 오해한 부분이 있을까? 산문집을 읽으면 다자이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까? 결론적으로 좋은 산문이고 조금은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산문집을 읽으면서 세 개의 산문이 좋았다. 첫 번째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쓴 글, 두 번째로는 젊은 청춘들에게 말하는 마음의 왕자, 마지막으로 작가 말년 죽음에 이르기 전에 쓴 분노를 쏟아내는 듯한 여시아문. 특히 여시아문에서 악에 받친 듯한 분노를 쏟아내는 에세이는 가와바타에게 쓴 산문과는 다른 분위기가 매우 흥미롭다. |
| 다자이 오사무의 글을 읽을 때면 마치 이 사람을, 그 자신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는데 실은 관심 없다면서, 한편 치열하게 살아내고 싶어했을 것만 같은 그는 그의 글에서 안쓰럽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그러다가도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게 만드는. |
|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부터 사양, 단편까지 읽은 독자로서 다자이 오사무의 수필집은 꽤나 매력적인 책으로 내게 다가왔다. 적당한 사이즈에 다자이 오사무가 느꼈던 감정들과 생각, 사상을 짧거나 적당한 글귀의 모음집이 주는 만족감이 있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