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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공포를 이기는 평범한 이들의 고귀한 친절과 강인한 회망 읽을때는 어려운이름들로 진도가 잘안나가지만 2권이 지날때쯤에는 너무 마음에 와닿는 책으로 자리잡는다. 창비세계문학 100번째 책으로 이런책을 만든 창비 출판사 한번 업어주고싶다. |
문학을 잘 알지 못해도 러시아문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뭔가 크고 웅장하고 엄숙한 무언가...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같은 대문호들이 구축해놓은 이미지들일 테지만 그 대문호들 외에 소소한 문학작품들은 그리 알려진게 없다는 점에서 창비에서 새로나온 현대러시아문학작품이라는 이 <삶과 운명>에 관심이 갔다. 그리고 러시아가 다시 전쟁을 일으킨 시대에 러시아인이 경험한 전쟁이야기라...
책날개에 쓰여진 작가소개글에 의하면 바실리 세묘노비치 그로스만(1905~1964)는 우끄라이나의 유대인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나 모스끄바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으나 대학생시절부터 소설을 썼고 2차대전 중 유대인 학살로 어머니를 폭탄 폭발로 큰아들을 잃었다. 전쟁당시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소련 최초의 홀로코스트 보고서를 집필했고 그의 작품들은 평생 검열과 지난한 출간 과정을 겪었다. 대문호 선배?!들의 영향 때문인지 러시아문학 분위기가 원래 그런건지 현대문학인 이 작품도 3권에 달하는 대작인데 작품해설과 작가연보는 3권의 말미에 있으니 이 부분을 먼저 읽고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작가나 작품을 읽을 땐 이러한 정보들을 먼저 읽는 것이 도움이 되곤 했었기 때문이다. 미리 알아두면 참고될 것은 '<삶과 운명>이 그 자체로 충분히 한편의 소설로서 완결적이지만, 실상 이 소설은 1952년작 <정의로운 일을 위하여>의 속편이라는 점이다. (3권 p. 418)' 그래서인지 본문을 읽는 내내 주석으로 '앞소설'에선 이러이러한 내용이 있었다 라는 설명이 자주 나온다. 또한 소설의 많은 부분이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 하다. 작가연보를 보면 그렇다.'1905년 혁명에 열성적으로 참가했던 화공 엔지니어 아버지와 프랑스어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개회한 유대인 지식인 가정에서 자라면서 아무런 전통적 유대인 교육을 받지 못함. 아버지는 사회민주당원으로 멘셰비끼에 합류함. (3권 p. 423) 친구이자 동료 작가 보리스 구베르의 아내 올가 미하일로브나와 사랑에 빠져 1935년 10월부터 동거를 시작, 1936년 5월에 결혼함. 193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작가로 전업. (p. 424) 9월15일 베르지체프에 머물던 어머니가 2만~3만명의 그곳 유대인들과 함께 대량학살에 희생됨. (p. 425) 1953년 1월 유대인 의사들이 체포된 후 유대인 지식인들이 스딸린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함. 이는 실상 스딸린의 대규모 유대인 박해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것이었으나, 이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서명한 데 대해 이후 그로스만은 무척 죄책감을 느꼈으며 이는 소설 <삶과 운명> 및 <모든 것은 흐른다>에 표현됨.(p. 426)' <모든 것은 흐른다>는 작가의 생전 마지막 작품이다.
카메라로 줌인되듯 수용소 가는 길 풍경이 묘사되면서 시작하는 이 소설은 1942년 9월경에서 1943 3월경까지 약 6개월 가량 러시아 스딸린그라드와 인근에서 세계2차대전 독소전쟁 중 스탈린그라드전투를 주요 배경으로 한다. 읽는 내내 가장 헤깔리는 것은 이름들이었는데 창비 특유의 낯선 번역(예를 들어 톨스토이가 아니라 똘스또이로 번역)까지 더해지니 3권을 다 읽는 동안에도 결국 그 이름들과 가족관계는 다 파악하지 못했다;;; 대표적 인물들의 이름들과 관계를 예로 들자면, 물리학자 빅또르 파블로비치는 주로 시뜨룸이라고 불리고 때론 비쩬가 라던가 비쨔라고도 불린다. 여기에 별칭이 더 있었던 것 같긴한데;;;; 아내 류드밀라의 여동생 예브게리나 니꼴라예브나 는 주로 제냐 라고 불리고 전남편 니콜라이 그리고리예비치는 주로 끄리모프로 현연인 뾰뜨르 빠블로비치는 주로 노바코프로 불린다. 류드밀라의 아들은 주로 똘랴 라고 불리는데 세료자 샤뽀시니코프 가 원래 이름인것 같다. 똘랴는 류드밀라의 전남편 모스똡스코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모스똡스코이가 류드말라의 전남편인지 전아버지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같은 이름을 대대로 쓰는 유럽식 네이밍이라;;; 여하튼 똘랴는 류드밀라와 전남편 사이의 아들이다) 그리고 이들을 부르는 별칭들이 아마 더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이름도 이런 식이다;;;; 이렇게 긴 이름들도 입에 잘 안붙는데 별칭들이 하도 여러개라 그사람이 그사람인지 헤깔리고 그 헤깔리는 이름들 속에 가족관계까지 얽혀 있으니 누가 누구의 아들이고 딸이고 동생이고 손녀이고 남편인지 잘 모르겠다;;; 책 앞부분에 가족관계도를 첨부해주었으면 좋았을 껄 싶은 심정이다. ㅠㅠ 여하튼 소설의 시작은 독일의 한 수용소다. 여기에 볼셰비키 모스똡스코이와 멘셰비키 체르네쪼프 그리고 똘스또이주의자이자 신부 이꼰니코프 모르시의 대화와 상황들로 전쟁 속 러시아 모습의 한 단면이 묘사된다. 원래는 정치범 수용 였으나 전쟁 후 형사범이며 이런저런 다양한 죄목들의 죄수들이 함께 수감되면서 정치범들은 모두에게 가장 만만한 약자들이 되었다. 그렇게 모여진 '수용소들은 새롭게 확장된 신유럽의 도시가 되었다. (p. 17)'
모스똡스코이는 철저한 공산주의자 였다. 뒤에 나올 끄리모프 또한 그렇다. 하지만 전쟁이 계속될 수록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조국이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한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목숨바쳐 이룩했지만 국가는 그들을 버렸다. '종종 전쟁을 예술이라 부를 권리를 부여하는 근거는 바로 이러한 변환을 이해하는 데 있다. (p. 61)'
시뜨룸의 어머니는 우끄라이나에서 게토로 몰렸다가 결국 수용소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시뜨룸은 한번도 자신이 유대인이고 자신의 어머니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유년 시절에든 학창 시절에든 어머니가 이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모스끄바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학생이나 교수나 세미나 강사도 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p. 132)' 하지만 독일점령지 수용소에서 죽은 유대인어머니는 소련에 사는 아들 시뜨룸에게 앞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주로 외부적으로. 류드밀라는 아들 똘랴의 편지를 받고 고생고생하여 병원에 서둘러 갔지만 묘지앞에서 이름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항상 이런 소수들이 문제였다. 항상 이런 소수들이 권력의 최상층을 점유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 소설은 긴 전쟁중 6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서사의 진행이 완전히 연대기적은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류드밀라는 1권 초기에 아들 뽈랴의 묘지에 다녀왔는데 1권의 말미에서 뽈랴는 '6동1호'에 참전중이다. 여하튼 똘랴는 만나이로 19세였다.
이 작품에서 순간적 충격을 주는 사건이 유대인학살이라면 작품 전반적으로 지속해서 충격을 주는 사건은 강제집단화 이다. 저자 자신의 성장배경도 그러하고 작품 속 주요 캐릭터들의 성장배경도 모두 지식인 층이다. 즉 강제집단화와 강제평등화가 불리하고 불편했던 입장의 사람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말들이 너무 많은 사람들의 입 밖으로 나온 이후의 시대였다. 그 말들을 뒤늦게 모으고 있는 세력들이 있다는 건 나중에야 깨달았다. 빅또르도. 모스똡스코이도. 끄리모프도. 아직 몰랐을때 빅또르는 학자로서의 자존감이 하늘을 찔렀고 모스똡스코이는 수용소에서조차 공산당의 조직적 활동을 재개했으며 끄리모프는 웅변과 선동으로 공산당에 충성을 바쳤다. 그들은 모두 공산주의자 지식인이었으나 국가는 이미 공산주의의 탈을 쓴 민족주의로 변하고 있었다. 독일과의 전쟁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솔직히 1권을 읽는 동안은 사람과 시간과 사건이 뒤섞이며 정리가 안되서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1권의 고비를 넘고나면 2권과 3권은 비교적 술술 읽힌다. 1권에서 언급됐던 것들의 상세버전 같았달까. 1권에서 사람도 시간도 사건도 여하튼 모든 다양한 것들이 펼쳐지고 2권에서 가속도가 붙다가 3권에서 급정지 한다. 죽음과 파멸 속으로.
공산주의 국가라고 불리는 곳에서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은 하나둘 사라져가는 시대였다.
정치는 한 사람에게 넘어갔고 국민은 국가에게 패했다. 운명은 삶을 지속시키되 자유는 사라지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 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독일이 침공하지 않았다면 러시아는 어떤 모습이 됐을까... 어차피 뜨로쯔키를 죽이고 스딸린이 권력을 잡았으니 결국은 같은 모습이 됐으려나...
러시아 과학계에 큰 파장을 던질만한 연구성과를 거두고 있는 빅또르 였으나 휘몰아치는 정치광풍에 쓰러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유대인이었으므로. 출신이 그의 과오였으므로.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사랑이 싹트니 시대가 기이해서인지 사랑도 기이한 상대에게 느꼈다. 제냐는 장군의 아내가 아니라 전남편 끄리모프의 옥중수발을 선택하고 빅또르는 절친의 아내이자 자신의 아내의 절친에게 고백을 하고. 제냐는 그럴 수 있다쳐도 솔직히 빅또르의 사랑은 이 작품속 옥에 티가 아닐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거대한 작품에 이런 사랑을 집어넣은 것은 작가의 경험이자 인생의 선택이기도 했던 자신의 사랑에 대해 소설로나마 인정받고 싶었던 걸까...
어머니가 평소에 어떤 삶을 사는지 자식들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심지어 그 어머니들이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이 됐을 때에도. 하지만 자신들이 불안하고 고달플때엔 어머니를 찾았다. 죽은 어머니든 살아있는 어머니든. 그런데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작가가 혈연을 중심으로 한 국가의 민족주의에 대해선 날을 세우면서도 어머니를 비롯한 혈연관계의 가족주의에 대해선 너무 추앙적인 것이 아닌가하는... 둘다 그닥 좋아뵈지는 않는데 말이다...
시뜨룸과 류드밀라 사이의 딸 나쟈는 십대소녀이고 작품속에서 가장 어린 목소리를 담당한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믿는 구세대를 어리석다 말하며 믿음 자체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된 신세대가 세월이 흘러 구세대가 된 지금의 러시아에선 과연 신세대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그들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나...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는 스딸린이다. 에혀 정말이지 이 작품속에서 이름들이란;;; 여하튼 위기의 순간 시뜨룸은 스딸린의 전화를 받는다. 과연 이들 가족 개개인의 삶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책속에서 확인할 수 있기를.
전쟁속 거대한 서사로 시작하는듯 했던 이 작품은 작가 개인의 잘못된 사랑과 잘못된 선택이 고스란히 투영된 소설속 시뜨룸의 사랑과 선택에 대한 자기변명으로 마무리된다. 다양한 인간 군상과 개개인의 사연들을 통해 전쟁이라는 폭력을 현실적으로 묘사했지만 주인공 시뜨룸에게 집중해본다면 시뜨룸=작가의 참회록이었달까. 그리고 삶은 여전히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했다. '모든 것이 고요하고 전쟁은 스딸린그라드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물러났지만, 그와 함께 돌아온 것은 평안이 아니었다. 고요와 함께 돌아온 것은 슬픔이었다. 공중에 독일 항공기들이 울어대고, 폭탄이 터지고, 삶이 화염과 공포와 희망으로 가득하던 시절이 오히려 수월했던 것만 같았다. (p. 375)'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진실이 '삶과 운명'이 될 수 있도록 바라는 작가의 희망도 여실히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ps. 거의 다큐에 가깝게 읽혀지는 이 작품은 그렇기에 더욱 묵직하고 그렇기에 더욱 천천히 읽혀지는 소설이다. 전쟁이 삶을 폭발시켜 버린듯 파편적으로 나열되는 사람과 사건들은 시간의 연속성과 관계없이 조각난채 방치되어 있고 이를 묶어내기엔 나의 역량이 모자랐기에 이 거대서사를 완독하고서도 그닥 만족스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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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나? 어떤 이의 의지가 역사의 운명을 결정했는가?” 제2차 세계대전은 한반도의 운명도 바꾸었다는 점에서, 작품 속 인물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약속이, 신념이, 철학이, 사상이, 조약이 변하고 깨지고 무시되고 소멸되는 시간의 흐름이 주춤거림이라고는 없는 무자비한 광풍과 같다. ‘선’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전쟁은 바로 그 신념의 소유자들을 잡아 가둔다. 외부의 적과 싸워 이긴 후에도 전쟁은 멈추지 않는다. 전쟁은 하나가 아니며 애초에 그 끝을 누구에게도 약속하거나 보장하지 않았다. 상대를 달리하는 전쟁은 또다시 새로운 인간들의 삶과 운명을 부수고 짓밟는다. “선생님은 삶이 곧 자유라고 하셨죠. (...) 온 우주에 흩어진 그 생명이 제 위력을 무생물의 노예 상태보다 더 무서운 속박의 건설에 쏟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 그 인간에게 현재 우리가 지닌 동물적 자기확신과 계급적, 인종적, 국가적 이기주의가 남아 있다면 (...) 그 인간은 결국 온 우주를 은하계 강제수용소로 변화시키지 않을까요?” 이성과 합리성과 절차적 정당성 모두를 무력화시키는 전쟁 중에 결백할 수 있는 이들은 매순간 권력을 잡은 이들, 승자들뿐이다. 이들은 자신이 승자인 동안에 수많은 죄인들을 양상해내고, 그 폭력의 방식으로 전체주의를 강화한다. 한때 삶을 살았던 이들이 이유도 없이 처형되고 기록도 없이 지워진다. “운명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분명한 감각이 찌를 듯 선명하게 일어났고, 여기에 무언가 이상하게도 사랑스러운 것, 감동적인 것, 훌륭한 것을 상실하고 있다는 슬픔이 섞여들었다.” ![]() 인간에 대한 수많은 낙관주의가, 지식이, 이상이, 상상이 버려질 농담이 된다. 이는 한때 한반도에서도, 내 세대의 많은 친인들도 꿈꿨던 내용들이었으나, 비슷한 조롱을 받고 현실의 이익 앞에, 혹은 이익을 매개로 한 패거리 권력에 수없이 패배했다. 1945년 8워 15일, 일본이 항복을 시인한 것은 맞으나, 한반도가 광복을 만난 건지는 문득 의아하다. 그럼에도 국가가 경축하는 이 날의 의미는, 이 책에서 만난 잊히지 않는 메시지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개인을 찌그러뜨리는 속박을 이기는 자유(를 향한 추구), 살해와 학살을 서슴지 않는 가혹한 운명의 폭풍 속에서도 살아남아 이어지는 삶. 그리하여 잊히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전해온 가치들. 그 이름들을 기억하는 한 그만큼 희망의 바람은 불어온다. 인간은 그렇게 인간으로 남아 살아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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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운명』은 혼란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을 조명한다. 독일-소련 전쟁 중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전쟁 속에서 개인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를 버텨낸다.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선을 택하고 또 누군가는 악을 택한다. 작가는 이를 '각자가 다 자기 식으로 비를 피하는 법'이라고 서술한다. 『삶과 운명』 속에는 2차 세계대전과 엮인 모든 삶이 있다. 전쟁 중인 병사들, 수용소에 갇힌 수감자들, 일반 시민들, 스탈린과 히틀러… 소설이긴 하지만 작가가 종군 기자였던 만큼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현장감을 자랑한다. 작가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인간의 다양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것 같다. 혼란한 시간, 참혹한 공간, 암흑의 시대를 살아가더라도 누군가는 자신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고. 우리의 삶과 운명을 좌우하는 건 강력한 국가가 아니라 인간 하나하나라고.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 책은 개인의 고유성에 대해,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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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인 세계의 전쟁과 그 안에서의 인간의 삶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얽혀가는지를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보여준다. 우리의 시간이 지난 후에 전쟁을 바라 보는 시선과 전쟁 그 한 가운데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시각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것 같다. <삶과 운명 2> 333p. 매일, 일이 끝날 무렵 실속파 치과의사가 금으로 된 크라운 몇개를 종이로 싸서 로제 에게 건네주었다. 이 작은 종이 꾸러미는 수용소 행정부로 들어가는 귀금속 중 극소 량에 불과했지만 로제는 벌써 두번이나, 거의 1킬로그램에 달하는 금을 아네에게 보 냈다. 그들에게 이것은 밝은 미래와 편안한 노년이라는 꿈의 실현이었다. 젊은 시절 그는 너무도 약하고 소심해 생존 투쟁에 진정으로 임할 수 없었다. 그는 당이 작고 약 한 이들의 행복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 다. 그는 이미 자신에게서 히틀러 정치의 유익한 효과를 느꼈다. 그 또한 작은 인간, 약한 인간이었고, 이제 그와 가족의 생활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수월하고 좋아 졌으므로. 전쟁의 참상과 역사적 기록보다 이런 전쟁 시대에 살아나갈 운명을 가진 사람들, 그 안에서도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삶이 이어지고 있음으로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무지하게 느껴질 정도였는지도 알게 되었다. 지금 우리도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많은 변화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그들이 알려주는 이데올로기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오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는 느낌을 받았다. * 1권은 러시아식 표기의 등장인물의 이름 표기때문에 읽어나가는데 정말 시간이 오래걸렸다. 입에 붙지 않는 발음을 읽을 떄, 눈으로도 뇌로도 이해도가 낮아지는 독특한 경험도 했던 것 같아 여러모로 기억에 남을 작품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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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합쳐 1,200페이지는 됨직한 #러시아 #역사대하소설 #삶과운명 마지막권을 덮었다. 1, 2권에서 너무나도 낯선 러시아식 이름 표현과 쌍자음의 등장 인물들... 수시로 바뀌는 장면에 넋을 놓았다가 3권에선 그나마 집중할 수 있고 그동안 등장한 주요인물들간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어서 다 읽고 난 결론... 다시 읽어야겠다. (인물관계도를 적으면서 가야 이해가 쉽다.) 그리고 2권 읽고 다른 분들 리뷰를 읽으면서 알게 된건데 러시아는 보통의 성과 이름외에 아버지의 이름인지 가족의 이름인지가 들어가서 더욱 헷갈린단다. 내가 2권인가에서 시뜨룸인가 하는 이름만 기억난다고 했는데 그 이름의 주인공이 이 책의 주인공인 물리학자이자 유대인인 빅또르 빠블로비치다. 이렇게 등장 인물이 머리에 박혀야 내용이 이해가 쉽게 가는데 결국 이 책 1-3권은 6개월 가량 독일군과 소련군의 스탈린그라드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설명에 나오듯 전작의 속편이라 전작 없이는 처음에 이 책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뭏튼 인정받던 물리학자이자 유대인인 시뜨룸이 전쟁 막바지 쉽게말해 낙인찍히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배경이 된 스탈린그라드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모습... 그리고 그 외에 가스실이나 수용소등 삶과 운명이 대비되는 모습을 전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소련과 스탈린, 그리고 유대인 억압에 대한 내용등으로 막상 소련에서 출간되지 못하고 작가 사후 유럽에서 출간되고 큰 반향을 누렸다는데... 이 책을 읽게 된 중국 대하소설 #원청 과는 또다른 느낌이라 한번 더 읽어보기 전에는 그렇게까지 대단한 책임을 느끼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 책을 번역하신 교수님의 고집이 가뜩이나 어려운 러시아 이름외에도 쌍자음의 지옥으로 우리를 이끄사... 좀 더 독자들에게 친절하시면 어떨까 마지막 맺음말을 적어본다. 어쨌든 종군기자로 전쟁에서의 삶과 죽음을 목도한 저자가 녹여낸 이 소설 한번 읽고 가타부타할 책은 분명히 아님을 밝혀 둔다.... "1-3권 모두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어렵게 끝까지 읽어가며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