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출판한 빅토리아 베넷 작가님의 들풀의 구원 리뷰입니다 여름내내 너무 더웠고 내내 일이 많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는데요 어머니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제목부터 목차까지 보는 순간 힐링이 되는데 본문내용이야 말할것도 없네요 지친 현대인들에게 강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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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들도 좋고 미리보기 읽고 문장들이 좋아서 구매하였는데 선택이 틀리지 않았네요. 인생의 고난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해쳐나가는 과정들이 마음에 와닿아요. 들풀을 타이틀로 해놓았지만 들풀보다는 전원 생활, 더 정확히는 아들이 함께 하기에 견디고 살아나간 과정으로 느껴지네요. 아들이 하는 말들이 정말 사랑스럽고 아름다워요. 또 시인이기에 문장들도 아름답고.. 읽고 또 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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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책으로 받아서 읽고 너무 좋아서 친구에게 나눠주고 나서도 또 읽고 싶어서 따로 구입했네요. 곳곳에 실려있는 들풀 때과 들풀들의 효능 사용법 그리고 작가님의 이야기들 그런 모든 것들이 다 어우러져서 너무나 매력적인 작품이 완성된 것 같아요. 그래서 또다시 이북으로 구입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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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멋진 정원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프랑스나 일본식 정원보다는 영국의 정원을 좋아한다. 왕의 정원들은 보기엔 좋지만 갖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난생 처음으로 이런 정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해준 게 타샤 할머니의 정원이었다. 꽃들이 제 아름다움을 수수하게 드러내는, 꽃들이 삶을 사는 공간같은 느낌.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 그 자체로 평안하고 아늑한 느낌. 모든 것이 평화로운 공간. 그런 느낌을 들게 해주는 소박한 정원이었다. 빅토리아 베넷의 정원도 그런 영국식 전통에 기인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정원'이라고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스갯말로 손바닥만한 땅만 있어도 농사를 짓고 꽃을 심는 게 한국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하는데, 그런 정서와 일맥상통한다고 할까. 척박하고 진흙탕같은 곳일지라도 꽃이 있으므로 아름다워지는 경험, 그런 것을 마음으로부터 동경하고 추구하는 마음씨, 어쩌면 그런 마음이 우리를 구원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나도 너무 가난하게 유학생활을 해서 스타벅스 커피는 언감생심이었는데, 그렇게 아끼고 절약하는 와중에도 가끔 꽃은 샀다. 그것이 나 스스로의 생활을 삭막하게 만들지 않는, 나 스스로 피폐해지지 않는 나만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꽃다발을 양손 가득 들고 집으로 올 때의 그 풍성함과 풍족함이 그 당시의 나를 살려주었다. 모두에게 그런 기억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나는 다섯 시 반이면 일어나는데,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아침 준비를 하고 운동을 다녀온 후 하는 일이 식물들에게 물을 주는 일이다. 한여름이라 이 일이 매우 중요한데, 20여분 그렇게 정성스럽게 물을 주는 게 내게는 다른 아침 일과들만큼 중요한 리추얼이다. 누군가는 스프링클러를 쓰면 좋지 않냐고 반문하지만, 식물과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식물에게도 중요하겠지만, 내게도 하루를 시작하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1월부터 지루하게 계속되는 투병을 이기게 해주는 힘을 거기에서 얻는다. 그런 구원. 이 책이 말하는 구원이 바로 그 구원이다. 일방적인 것이 아닌 상호적인 구원. 글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간의 관계가 그러하듯, 자연과 인간의 관계도 그러한 것 같다. 당신의 삶이 지금 진흙탕처럼 엉망진창일지라도, 진흙탕같은 삶에도 꽃은 핀다. 우리는 그것을 희망이라 부른다. |
| 최근에 읽은 에세이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가난한 중년의 여성 예술가가 들려주는 삶에 대한 이야기. 불행 속에서도 삶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느껴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은 한 단위의 기쁨과 한 단위의 슬픔으로 이뤄진다는, 도달해야 할 행복의 봉우리란 없고, 성취해야 할 완벽한 삶도 없으며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어지럽고 끔찍하고 아름다운 삶뿐이라는 저자의 말에 깊게 공감한다. |
|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상실을 외면하거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기도 한다. 또한 궁극의 행복과 최종의 목적이 있는 삶을 추구한다. 하지만 상실은 삶의 한 부분이며 행복의 봉우리란 없으며 성취해야 할 완벽한 삶도 없고 우리에게는 이 어지럽고 끔찍하고 아름다운 삶뿐이라는 저자의 말에 깊게 공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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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의 구원[지은이 빅토리아 베넷, 옮긴 이 김명남, 펴낸 곳 웅진지식하우스, 428쪽]을 읽고
뭉클하다. ‘시인이자 정원사, 그리고 어머니‘로 명명되는 작가의 인생에 그대로 스며든다. 몇 번의 유산, 언니의 익사 사고, 제1형 당뇨를 진단받아 간병의 손길이 절실한 아들. 그에게 닥친 삶의 시련은 너무도 혹독하다. 어쩌면 부서진 땅이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더구나 예술가의 삶은 늘 가난하다. 작가 베넷은 이 끝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이사를 하고, 그리고 어머니와 언니가 가르쳐준 대로, 그 역시 아들과 함께 들풀의 씨앗을 받아 뿌린다. 누군가는 잡초라 부르는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때로 인생은 부서짐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서진 덕분에 살아갈 수도 있다.‘고 말하는 작가를 만날 행운을 준다. 지금도 여전히 시를 쓰고 야생 정원을 돌보는 작가를 따라나서 본다. 분홍바늘꽃은 교란되고 불탄 땅에서 무성하게 자란다. 폭탄잡초라고도 불리며 갇힌 에너지를 풀어내는 데 쓴다. 이 꽃 뒤로는 작가의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그녀는 떠나야 한다. 짐을 정리하는 시간, 친구를 부른다.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 필요해?” 친구가 말한다. “그건 시 낭독회용이야. 필요할지도 몰라.” 내가 말했다. 사적인 고고학의 지층을 한 겹 한 겹 파헤치면서 끈으로 묶은 연애편지, 부모가 되기 전에 입던 초록색 벨벳 스모킹 재킷, 결국 갖지 못한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서 남겨둔 아기 옷가방...... 사랑하는 사람을 붙들어 둘 수도 없는 마당에, 물건은 뭣 하러 붙들고 있겠는가? 우리는 내 삶의 유물을 네 무더기로 나눈다. 간직할 것, 재활용할 것, 버릴 것, 태울 것. 아이에게 이 발굴은 보물을 찾아낼지도 모르는 흥미진진한 일이다. 내게 이 일은 살갗을 한 겹 한 겹 벗겨내어 생살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젠 데이지다. 이 꽃도 교란된 불모지에서 살아남는 능력 덕분에, 회복력을 상징한다. 출산, 모성,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고 북유럽 신화의 프레이야 여신을 뜻하는 성스러운 꽃이란다. 요정들이 아이를 바꿔치기하지 못하게 막으려면 데이지꽃을 엮어서 아이의 목에 걸어주라. 그리고 요정들이 아기를 훔쳐 가는 것을 막으려면 요람 위에 로즈메리 가지를 매달아 두라. 또한 교란지에서 잘 자라는 개양귀비는 고통으로부터 휴식과 위안을 준다. (’교란‘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 뜻은 ’마음이나 상황 따위를 뒤흔들어서 어지럽고 혼란하게 함.‘이다. 교란지라는 단어는 사전엔 없다.) 다시 작가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우리는 매일 뗏장을 자르고 뒤집고 옮긴다. 마당 곳곳에 큰 거북 같은 흙무더기가 생겨난다.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썩은 나뭇가지와 어둠의 냄새를 풍기는 낙엽이라는 특이한 수확물을 모은다. 모든 것이 모여서 때를 기다리며 형태를 갖춰간다. 그리고 나의 나날은 다시 단순해진다. 돌과 흙의 침묵이 나를 달랜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밤에 잠이 든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이렇게 흘러간다. 가끔 울고 가끔 작별한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 민트 차를 마시면 당신의 말에 힘이 부여된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처음 들어본 이름, 불란서국화다. 역시 불란서국화도 교란지에서 번성한다. 뿌리를 베개 밑에 넣어두고 신발을 침실 문 앞에 놔두면 꿈에서 미래의 연인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새 식물을 살 형편이 안 되기 때문에, 아들과 나는 단지를 돌아다니면서 옮겨 심을 잡초를 찾아본다. 아이가 잔해 틈에서 자란 불란서국화를 포착하고 나를 부른다. 그렇게 이 꽃을 만났으니, 이 꽃도 폐허에서 잘 자랄 것이고, 뛰어난 회복력으로 살아남길 기대한다. 새매발톱꽃은 초원, 도랑, 오래된 집터 주변에서 곧잘 볼 수 있다. 인생은 우리가 내리는 크고 작은 선택으로 이뤄진다. 아버지는 기술자 직업을 선택함으로써 우리 인생의 이야기를 바꾼 셈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기로 선택함으로써 역시 그렇게 한 셈이었다. 이런 선택은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선택이 인생을 바꾼다. ’만약‘, ’이랬다면‘. 하지만 우리는 늘 어떤 선택이든 할 수밖에 없다. 누구도 처음에는 그 방식을 알 수 없다. 결과가 기대와 다르게 나올 때, 그제야 우리는 탓할 대상을 찾는다. ’현재는 이렇다.‘고 말하지 않고, ’만약 이랬다면‘ 하고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작가 베넷은 다들 익숙한 이름 장미에겐 무어라고 말을 건넸을까? 장미는 우리가 진정한 힘을 발견하려면 우리에게 기쁨과 고난이 둘 다 필요 하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장미는 약초원에서 오랜 그리고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약용, 식용, 미용으로 다양하게 쓰이는 식물이다. 기독교 전설에서 가시가 있는 장미는 우리에게 인간의 타고난 불완전성을 상기시키는 존재다. 벚나무를 심으면 집안에 행운과 사랑을 불러온다. 양벚나무는 주술을 접지해 주고 힘을 강화한다고 하여 마법봉 제작에 쓰인다. 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은 껌 대신 씹을 수 있고, 비타민 C가 풍부하다. 미신, 또는 주술 같은 이야기가 계속 등장한다. 믿어도 좋고 믿지 않아도 좋을, 그저 웃어넘겨도 괜찮을. 달이 이지러질 때 기는미나리아재비를 목에 걸면 제정신을 회복할 수 있다. 선갈퀴를 가죽 주머니에 담아 지니고 다니면 해를 막을 수 있다. 헤지운드워트를 집에 들이면 가눌 수 없는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계속 기다리고 있는 흙 위에 씨앗을 뿌린다. 그리고 정원이 가르쳐준 것을 기억한다. 달리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을 때는 앞으로 자라 날 작은 것들에게 돌아가라는 교훈이다. 그렇다. 맞다. 정원에는 나무가 필요하다. 나무가 없으면 우리가 상상놀이를 할 곳도 없다. 망가진 애도의 땅에서, 그저 무엇이 자랄 수 있는지 보고 싶다면, 그러니 우리도 씨앗을 심자. 비록 그것이 꽃 피우는 것을 우리가 볼 수는 없을지라도. 그러하므로 이 책은 앞에서부터 읽어도 흥미롭고, 뒤쪽을 펼쳐 읽어도 괜찮다.
[뒷이야기] 지금 내 아들의 창밖에도 나무가 자란다. 재생의 상징인 자작나무다. 아이도 나처럼 제 나무의 계절이 흐르는 모습을 지켜볼 테고, 나무의 모든 변화를 제 기억으로 간직할 것이다. 나무는 아이의 삶 가운데 몇 해를 목격할까? 몇 번의 추위를 견딜까? 그 시간을 살아남으려면 우리가 조금은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면 봄이 늘 돌아온다는 사실도 알게 될 테니까. 더구나 나무처럼 모든 시간과 계절이 우리 삶에 나이테를 새긴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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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삶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현실과 인간 내면의 힘, 그리고 구원의 의미를 탐구한다.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점은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과 타인을 구원하려는 인간의 강인함이다. 가난과 절망이 주는 무게 속에서 인물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연대와 이해, 작은 선택을 통해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나간다. 이를 통해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인간애를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베넷은 사건과 인물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여, 고난 속에서의 인간의 갈등과 성장을 사실감 있게 전달한다. 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물들의 선택과 변화는 삶의 복잡성과 인간성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책을 읽고 난 후, 어려운 환경에서도 인간은 희망과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작은 행동과 선택이 삶을 바꾸는 힘이 된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타인을 이해하고 연대하는 마음이 진정한 구원의 시작임을 깨닫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