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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도서소개] 불광출판사, 붓다가 된 어느 흑인 사형수 글 / 사진 : 서원준 (news@toktoknews.com) ![]() 이 포스팅은 똑똑한도서소개를 통해서 불광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으며 도서소개 (구매가이드) 성격이 강한 글입니다. 2024년도 어느새 하반기로 접어들어 이제 8월 초순입니다.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일텐데요. 잘 다녀 오시기 바랍니다. 최근 들어 세월의 가는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진 듯 합니다. 장마철에 건강관리 잘 하시고 막바지 무더위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어느 흑인 사형수가 붓다가 된 이야기를 통해서 인생의 어둠 속에서 어떻게 하면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지를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엄혹하다는 말을 필자가 도서소개를 할 때마다 계속 드리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전쟁, 극우화, 부익부빈익빈, 질병으로 인한 팬데믹 등 전 지구적, 아니 전 세계적으로 계속 다양한 요소들이 한꺼번에 어우러지다 보니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정신을 차린다는 것이 쉽지는 않아보입니다. ![]() 사건, 사고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또 대형 이슈들이 곳곳에서 빵빵 터지는 것을 보면 인간의 참 의미를 잊고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필자가 최근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에 대한 이해 즉, 인문학이라는 것입니다. 이 인문학은 분야가 참 다양합니다. 그 중 인간의 영적인 삶과 관련된 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종교만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분야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감옥에서 그것도 사형수라면 깊은 절망감과 패배감, 그리고 이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체념, 위기감 등이 있습니다. 그 어둡고 기나긴 터널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작은 희망은 어떤 것일지에 대해서 필자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책을 한 권 꺼내들었습니다. "우선 책부터 읽어라", 그렇게 하고 책을 펼쳐 보니 의미심장한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들께 오늘 소개해드릴 책이 바로 "붓다가 된 어느 흑인의 사형수" 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형수는 가장 악명 높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인문학"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진정한 내면의 자유를 얻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가 소중한 줄로만 알았지, 내면 속의 자유는 생각조차 하지를 못 했던 터라 이 책이 가지는 의미가 더욱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 마치면서 "붓다가 된 어느 흑인의 사형수" 란 책은 전 세계에서 어느 누구보다 가장 영향력 있는 분인 "오프라 윈프리" 의 추천도서입니다. 그 정도로 이 책은 생각 밖으로 유명하고 내용도 좋습니다. 누구보다 내면의 자유를 가지고 싶고 매우 힘든 여건과 상황에 처해 있는 청춘들의 마음을 다잡아 주면서 필자에게는 메말라가는 마음에 단비를 뿌려 줄 만한 고마운 책입니다. 필자가 이 책을 읽고 불교에 대한 생각과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이 리뷰는 똑똑한도서소개단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협찬 #유료광고 #도서협찬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 #독서스타그램 #도서 #도서스타그램 #책추천 #도서서평 #불광출판사 #붓다가된어느흑인사형수 #자비스제이마스터스 #똑똑한도서소개 #똑똑한도서소개단 |
![]()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이가 접하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다. 읽는 내도록 선하다는 느낌이 가득했던 사람. 제대로 사랑받고 제대로 보살핌을 받았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랑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를 사랑해 주는 이와 함께 한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그를 제일 많이 보살펴주었어야 하는 엄마는, 그를 사랑했고 그를 보살피고 싶어 했지만 그녀 자신의 삶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악마의 소굴을 피해 처음 접한 새로운 보금자리는 너무나도 편안했다. 나름대로 싫은 것은 있었지만 그래도 편안함을 느낀 곳. 자라난 성향과 비교해 너무 다른 세상이었지만 그래도 그곳의 경험이 그를 선한 이로 남게 해 주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운은 그게 끝인 듯 보였다.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게 된 그의 앞에 펼쳐진 보금자리는 더 이상 그를 보살펴 줄 장소가 아니었다. 악이라 생각한 곳에서 더 최악인 곳으로 옮겨가고. 그러던 중 잠시 다시 만나게 된 진짜 가족들은 사랑을 듬뿍 주지만 아이가 정서적으로 올바른 성장을 할 환경은 아니었다. 마약을 쉽게 구할 수 있고, 남을 해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 안전하지만 안전하지 않은 그곳. 그래도 그는 행복했다. 엄마도 만났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새로 가게 된 곳은 최악이었다. 아이들을 케어하는 곳이라고 하기엔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견뎌온 아이들에게는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상황은 또 다른 두려움이었다. 최악을 경험한 이가 세상에 발을 디딘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보고 들은 것. 주변에 많은 어른들이 하던 것. 당연하게도 그는 그런 삶을 살게 된다. 의도치 않았지만, 더 나빠지지 않게 노력하지만 그것을 알아주는 이는 없다. 그렇게 감옥에 가게 된 그. 그곳에서 그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아니 어쩌면 진작에 경험했어야 하는 것을 드디어 깨달을 수 있는 상황과 시간에 놓인다. 그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를 죄인으로 만든 것은 누구일까? 그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세상마저 무너트린 것은 누구일까? 좋은 경험조차 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들보다 조금 나은 삶을 살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 ![]() 어느날 갑자기 하루 아침에 인생이 달라진다면? 어떠한 잘못을 저질러서 (무장 강도죄라고 한다)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보다 더 한 운명은 무고한 일로 사형수가 된다면? 영화보다 더 영화같고,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 이야기는 저자 "자비스 제이 마스터"의 실제 인생이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별일 다 있다지만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연민과 안타까움, 그리고 사형수가 된 지금은 놀라운 경탄까지 든다. 아마 이런 일이 인생에 생긴다면 억울하고 화가 나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냐고 따지고 또 따지다가 무기력해지거나 분노로 남은 세월을 낭비할 수도 있었을텐데. 하지만 저자는 다르다. 변했고 또 변했다. 어쩌면 그대로일 것이다. 원래의 마음 그대로로 돌아왔을 뿐이다. 우연히 교도소에서 불교를 접하게 된 저자는 이 책의 제목 <붓다가 된 어느 흑인 사형수>처럼 진정한 내면의 자유와 용서와 연민을 구했다.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끼친 폐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억울한 누명과 그동안 겪은 일들을 받아들였으며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기구할 수 있다니. <붓다가 된 어느 흑인 사형수> 책에는 챕터별로 저자의 어린시절 일화부터 교도소 일화, 어떻게 지내고 명상하며 희망과 용서를 구하는지 바로 곁에서 들을 수 있다. 마지막 저자의 말처럼 "모든 아이들은 중요하다". 그리고 소중하다. 아마 저자도 흑인이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나은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다면 애초에 어두운 길로 빠지지 않았을텐데라는 안타까움이 컸다. 저자도 그 부분을 깊이 생각하고 모든 이가 더 행복하고 자비롭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소망하고 있었다. 사형수가 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그러한 일을 겪고 우리에게 삶의 희망과 용서,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가르쳐주는 <붓다가 된 어느 흑인 사형수>. 영화 같은 이 이야기를 읽으며 마지막 인생 수업이 희망의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생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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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과 함께>를 보면 죽은 사람은 망자가 되어 저승에서 재판을 치르는 장면이 있어요. 주인공이자 소방관인 김자홍은 아이를 구하다가 죽음을 맞이했기에 귀인으로 분류되었지만 재판 과정에서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죄들이 하나씩 드러나게 돼요. 저승에서조차 한 사람의 죄를 판가름하기가 이토록 어려운데, 현실에서는 오죽할까요. 소소하게 드러나지 않는 잘못들을 끊임없이 저지르는 인간과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회개한 인간, 둘 중에서 누가 더 나쁠까요. 문득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누군가에겐 끔찍한 지옥일 수도 있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폭력과 학대로 얼룩져 있던 소년은 열아홉 살에 저지른 강도 사건으로 샌 퀜틴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교도관 살해 공모 혐의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그는 결백을 주장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무죄를 믿고 구명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붓다가 된 어느 흑인 사형수》는 자비스 제이 마스터스의 책이며, 논픽션 작품이에요. 이 책은 자비스가 힘겹게 써내려간 자신의 인생 이야기예요. 독방에 수감된 사형수인 자비스가 글을 쓰기로 결심할 수 있었던 건 명상에서 배운 인내 덕분이에요. 열아홉 살에 샌 퀜틴에 수용된 자비스는 4년 후인 1985년 교도관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약물주사형 사형을 선고받았어요. 살인 재판을 받는 동안 자비스는 전혀 몰랐던 과거들을 알게 되었어요. 엄마가 얼마나 오랫동안 학대를 당했고, 어두운 거리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자비스와 형제누이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중독자 생활을 얼마나 오래 했는지 등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자비스는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궁금해졌고 감옥에서 내가 나를 도울 수 있는 길이 뭔가를 생각하게 됐어요. 그때 자비스의 사건을 담당하던 민간 조사관 수잔이 명상하는 방법과 고통과 아픔을 다루는 방법에 관한 책을 보내줬고, 불교 잡지에서 티베트 불교 영적지도자 라마인 차그두드 툴쿠 린포체가 쓴 글을 읽고 출판사에 편지를 보냈다고 해요. 그 뒤에 린포체를 만날 수 있었고, 린포체는 자비스에게 넓게 생각하고 "무해함, 유익함, 순수함"을 위해 지성을 사용하라고 격려했어요. 린포체는 자신이 있는 곳이 감옥이든 바닷가 저택이든 매 순간이 원인과 조건이라는 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인 이 세 가지 약속을 실천할 기회라고 상기시켰고, 이런 식으로 마음을 단련하면 수많은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며, 이는 한 사람을 돕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어요. 그의 조언 덕분에 자비스는 의심스러운 생각을 다스리고 불교의 길에 더 깊이 헌신할 수 있었어요. 샌 퀜틴의 지옥 속에서 자신에게 더 큰 고통을 주지 않는 법을 배운 거예요. 모든 존재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영적 수행에 전념해온 자비스에게도 위기는 있었어요. 그때 면회 온 다르마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자비스, 자네가 처음에 마음속으로 느낀 바로 그 분노가 바로 이 사회의 거의 모든 사람들, 사형이라는 제도를 믿고 사형 집행을 외치는 모든 이들이 자네에게 느끼는 감정이라네." (410p) 아주 적확한 표현인 것 같아요. 사형수인 자비스가 정말로 결백한지 안닌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과거 불우했던 삶을 보며 연민을 느꼈고, 영적 수행을 통해 견뎌내는 모습에서는 감동했어요. 자비스가 다른 이들에게 끼친 피해와 고통에 대해 깊이 후회하고 반성하는 것이 진심이라면 그 마음을 지지해주고 싶어요. "내가 얻은 진리, 내가 다른 모든 아이들로부터 얻은 진리는 아이들은 자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믿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삶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믿고 싶어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와 함께 자란 젊은이들, 그리고 어떤 이유로든 나만큼 혹은 그 이상의 고통을 겪었거나 겪게 될 수많은 젊은이의 숨은 외침이 이 책에 담겨 있기를 바란다. (···) 몇 번이고 날개를 잘렸다고 해도 그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소중하고, 세상을 바꿀 힘이 있으며, 날 수 있다는 진리가 그들의 손을 잡고 있다." (448-449p) 마지막으로 자비스가 "저 새가 내 날개를 갖고 있으니까!" (447p)라고 했던 말이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혔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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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를 담았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제목이 말하고 있는 느낌으로 책을 판단하기엔 스토리 중반을 넘어가도 그런 내용이 등장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계속 읽었다 그냥. 자비스 스스로 말하는 인생 경로를 따라가며. 마지막 장을 덮게 됐을 때까지 크게 불교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은 없어도, 불교적인 색채는 분명 느낄 수 있었고 왜 오프라 윈프리가 극구 추천했는지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이 책의 가치라면 주인공 자비스가 스스로 평가해보며 돌아보는 자신의 인생이야기에 있었다. 그 이야기들은 상대를 침묵하게 만든다, 삶이 준 슬픔이니까. 마약상이라기 보다는, 마약하는 사람들을 위해 공간을 빌려주는 식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자비스의 친엄마와 그의 양부는 항상 자신의 아이들을 홀로 내버려 뒀다. 어린 자비스는 그럼에서 그 안에서 신이 나 있다. 인사불성이 되어가는 중독자들뿐인 어른들 모습과는 별개로 여기저기 집안에서 몰려다니며 놀거나 군것질 할 걸 사러 몰래 창문밖을 넘다드는 등 자신의 형제자매들과 동심 속에 희희덕 거리기 바빴으니까. 때로는 캐리어 가방을 작은 방삼아 들어가 노는 장난도 해 보면서. 하지만, 자비스의 실상은 사회복지사 역할을 하는 인물들에 의해 발견 아닌 구조가 된 이후 다른 묘사로 입혀진다. 몇일 먹지 못할 때도 있던 그 집 아이들, 그걸 아는지 이웃 할머니가 가끔 놓고가는 음식을 먹거나 마약중독자들의 가끔 사온 도넛 등이 아이들의 유일한 주식. 그렇게 방치되어 진 아이들에게 부모랑 함께살던 집이란 깨끗이 씻겨줄 보호자도 음식을 챙겨주는 이 없는 환경이었다. 팡팡 뛰놀던 매트리스엔 그냥 거기에 대소변을 보며 지내도 아이들의 하루는 오늘도 내일도 같았던 그 시절. 아이들은 결국 부모와 격리되어 뿔뿔이 위탁가정에 맡겨진다. 자비스는 이때를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때로 회상하며, 처음 맡겨졌을 때 그 위탁가정의 노부부는 당시 경계의 대상이었지만 그건 자신이 세상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해생긴 긴장감 때문이라 떠올린다. 왜냐면, 좋고 나쁨을 구분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자라지 못했기에 나쁨만이 일상이었고 익숙했던 자신은, 잘해주는 누군가가 다가오더라도 어떤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거나 그걸 분별있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게 애초에 부족했으리라 설명했다. 필요한 자질을 교육받지도 못한 자신의 어린시절 탓이라고 지금은 판단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또다르게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 그는, 부족함과 정서적 결핍 속에서 자랐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엇나가거나 실수 안했던 건 본능적으로 순수한 내면을 계속 간직했기 때문이라 믿는다. 현재 사형수로 복역중인 그가 이렇게 자신을 묘사하는게 누군가에겐 뻔뻔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은 누군가를 죽인 적이 없이 누명을 써서 사형수까지 됐음을 설명한다, 덤덤하게. 절대적으로 착하고 결백하게 살았다고 할 순 없지만 누군가를 죽인적 없고 현재의 죄명으로 사형수가 될 만한 짓 또한 저지르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변호하는 그다. 그렇다면, 왜 단순 범죄 수준이 아닌 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았다는 그가 사형수로써 판결을 받고 복역중일까? 그는 이 모든 원인엔 자신이 살면서 갈구했던 소속감과 동료의식, 거기에 자포자기나 방관이 있었다고 느낀다. 같은 제소자들이 좋지않은 일을 꾸밀 때 본인이 주축이 되진 않았지만 일원으로써는 참여되길 거부하진 않았고, 반론을 제기하거나 막지도 않았던 건 원초적으로 내면에서 자신의 그들의 동료로 인식되길 갈구했기 때문이었으며, 결론적으로 자신은 무고하니 상황이 어떻게 오해를 받고있던 간에 결백함은 자연스럽게 밝혀지리라 지켜본 건 일종에 자기 인생의 방관이라 평가했다. 상황의 흐름이 예상과 너무 달라지더라도 그냥 원래부터 노력해도 힘들기만 했던 지난 과거처럼 아니더라도 부정적으로 흘러가게 자포자기 식으로 지켜볼 뿐이었다는 것. 이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그가 쓴 본인의 인생을 읽어보면 어느정도 이해갈 변호일거라 생각되며, 굳이 동정받기 위해 지어냈다거나 뻔뻔스럽고 허황된 거짓말로 보이지 않을 그냥 믿어도 되는 주장이라 말하고 싶다. 그의 결백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한다까진 아니더라도. 그의 인생 중 가장 안타까운 장면은 지금 생활의 시초가 된거로 보이는 무리들과의 좋지 못한 어울림이나 끝나지 않은 교도소 생활 자체가 아니었다. 첫 위탁가정에서 두번째 위탁가정으로 맡겨지고 다시 소년 보호시설로 옮겨지던 그 시절이 어쩌면 그의 인생 중 가장 슬펐고 수정이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첫 집에서의 행복이 끝나야 했던데는 지병으로 인해 노부인이 더이상 위탁가정 일을 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 그걸 어린 자비스에게 다 이해시키진 못했으나 느낌만으로 서로 사정은 이해하고 헤어진다. 그렇게 옮기게 된 다른 위탁가정의 생활은 그 전과는 180도 다른 분위기. 거기서 살 수 없다 느낀 저자는 당시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해본다. 혼자 다시 전에 살던 집을 찾아가 호소도 해보고 자신을 보호관찰 하던 감독자에게도 설명해 본다. 첫번째 맡아줬던 노부부에겐 상황을 이야기 해 본들 모든게 통하지 않았던 건, 두번째 위탁가정 부부가 철저하게 연기를 해가며 자신의 행실은 숨긴채 주변 모두를 설득하며 저자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갔기 때문. 거기서 어린 자비스는 단순 좌절만이 아닌 깊은 자포자기를 배운거 같았다. 거기에 더해지는 슬프며 웃긴 이야기는 그 다음에 간 소년원에서 이어진다. 결국 2번째 집을 떠나 집단 소년시설로 옮겨졌을 때 자신의 이런 처지를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니 거기서는 힘들게 진실을 믿어달라 주장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면, 그곳 아이들은 모두 엇비슷하게 그런 상황을 겪었었기 때문. 되려, 사랑을 줬다는 첫 위탁가정의 이야기를 다른 아이들은 받아들이지 못하는게 힘들었다던 주인공. 이건 절망적인 아이러니였다. 고통은 공감하지만 행복은 공감될 수 없는 공통된 경험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교도소에서 민간수사관의 권유로 명상과 불교를 접한 건 이 책의 매우 적은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인성을 스스로 돌아보게 했고 교도소 담장 밖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어 준 것은 결국 명상과 불교 덕이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자서전 같이 쓰인 이 책을 읽으며 결국엔 무얼 느끼며 끝나게 될지 궁금했다. 슬픈 공감 속 삶의 궁극적 의미가 뭔지 돌아보게 될까? 행복? 극복? 가족? 잠깐 보청기를 맞추러 교도소 밖 민간병원에 왔다가 호송직원과 입씨름을 하게 된 그는, 밖에서 살아가는 요즘 민간인들이 다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생긴거 같은데 갇혀 사는 자신에겐 보이지만 일상이 된 호송관은 둔하게 못본다며 농담처럼 타박을 한다. 그 말에 상대방은 여러번 웃으며 몇년간 그가 교도소에 있었는지 헤아리려 보게 한다. 그러다 저들의 혼잣말이란 자비스 시대엔 없던 무선 전화통화라고 이해시켜 준다. 그러다 자비스는 현재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게 무엇인지 다시금 느낀다. 그건, 잠시 교도소 담장 안에 들어왔다가 다시 날아가 버리는 갈매기의 그 날개. 그게 자기 것이라 말해 보면서... 결국 깨달았지만 다시 가질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것. 자비스에겐 그건 '자유'였다... 그 자유를 반납한 건 자신의 과오였지만 자신의 순수한 의지라고만 할 수 없었을 과거들. 깨달음과 현실의 간극이 너무 커 안타깝던 자비스의 인생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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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사회 부조리를 폭로하고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증언하고 사이비 조직의 추악한 민낯을 들추는 고발 탐사 저널리즘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네모난 내 손 안의 디지털 미디어는 왕따, 폭력, 학대, 성추행, 강간, 중독, 사기 등의 각종 불쾌한 이슈를 편하게 구경할 수 있는 화려한 무대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가난한 무명 흑인의 고통과 아픔을 다룬 미국식 트라우마 문학은 한국의 장삼이사에게 비현실적인 거리감과 지울 수 없는 위화감을 간혹 남기고 만다. 다 마시고 난 머그잔의 커피가루처럼 말이다. 여기 한 흑인 사형수가 자신의 삶을 회고한다. 비극적인 가정사를 시작으로 잡다한 일탈과 일련의 범죄를 거쳐, 결국은 악명 높은 감옥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 사연을 회고한 성장 에세이다. 죄수의 이름은 자비스 제이 마스터스. 1981년 열아홉 살에 저지른 일련의 무장 강도 사건으로 샌 퀜틴 교도소에 송치되었다. 1985년 6월, 교도관이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자비스는 억울하게도 교도관 살인 공모 혐의라는 누명을 쓰고 사형을 선고 받는다. 한창 나이인 23세 때부터 무작정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인종과 성별, 국적을 막론하고, 성인 교도소를 종착지로 삼은 죄수의 성장기는 매우 엇비슷한 점이 있다. 특히 죄수가 빈민가 출신의 흑인 소년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위탁 가정, 소년의 집, 캠프를 전전하다 소년원에 가게 되고, 거리에서 총에 맞아 죽지 않는다면 감옥을 학교 삼아 들락날락하게 되는 그런 루틴 말이다. 우리는 자비스가 힘겹게 볼펜 심지로 눌러쓴 글에서 가난과 폭력, 방치와 학대, 위탁 가정의 빛과 그림자, 가출과 유랑, 노숙, 트라우마, 헤로인 중독, 범죄로 얼룩진 동네를 만나게 된다. 어머니와 의붓아버지, 네 남매(샬린, 자비스, 버디, 칼렛)가 살아가는 집은 기실 마약 소굴이었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범죄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비스의 어머니는 약쟁이에 매춘부였고, 의붓아버지는 마약상, 큰형과 사촌은 폭력을 숭배하는 갱스터였다. 고향 마을에는 크고 작은 갱들이 바퀴벌레처럼 우글거렸다. 가까운 피붙이들과 죽마고우들이 말그대로 원수였고, 집안에서까지 늘 범죄에 노출되어 있었다. 공판이 시작되자 한 민간 조사관이 그에게 명상서를 건네 준다. 자비스는 진정한 내면의 자유를 도모하는 불교식 명상이 가슴에 와닿았다. 여전히 분노의 불길이 가끔 치솟곤 했지만, 그래도 교도소에서 할 수 있는 한 이타적인 일들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성실한 방청소와 소유품의 나눔이 그러하다. 시절인연으로 티베트 금강승인 차그두드 툴구 린포체를 스승으로 섬기게 되고, '비폭력'과 '타인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는 두 가지 서원을 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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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1. 누명을 쓴 것처럼 억울한 일이 있을까. 저자는 1990년 교도관 살해 공모 혐의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저의 일대기가 담겨 있는 이 책을 통해서 한 사람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 지를 바라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불교에서 말하는 한 사람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 어린 시절부터 불운한 가정에서 마약과 함께 한 가족들과 마주한 것은 업의 관점에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우울한 가정 속에서 학대와 인권 유린을 읽으면서 한편으론 이러한 환경 속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 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하며 생활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일화 중 한 가지를 들려주면, "친척들과 친구들은 엄마가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공중 높이 발차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268)." 어떤가.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이런 환경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3. 불법에서는 자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을 저자는 시작하며, 잘못된 선택을 했던 과거를 회상한다. 그러던 중 불교를 만나게 되며,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며 현재의 글이 세상에 등장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정당한 일일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 그런 상황 속에 처해보지 않았다면 신뢰성 없는 발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참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4. 소중한 존재라는 것은 생명이 있기에 모두가 같은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그게 내가 그동안 배워온 불교의 가르침이다. 모두의 생명에 불성이 있기에 모두가 존귀하다. 나의 스승은 한 사람의 위대한 인간혁명이 한 나라의 숙명도 바꾼다는 신념을 관철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내 주변이라도 조금씩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또 다른 자비스 제이 마스터스가 생기질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생각나는 구절 그 순수한 삶으로 돌아가려고 하면 할수록 내 안의 어린아이는 더 사라지는 것 같았다(160). 쓰라리고 적대적이며 절망적인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길에서 거칠게 구르는 것뿐이었다(286). ★질문 한 가지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도가 과연 있을까? ★추천해주고 싶은 분 ★독서 기간 2024. 7. 15. ~ 7. 17.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빅터프랭클 의 #죽음의수용소에서 ★추천도(지극히 주관적인) ★★★★ p.s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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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1. 누명을 쓴 것처럼 억울한 일이 있을까. 저자는 1990년 교도관 살해 공모 혐의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저의 일대기가 담겨 있는 이 책을 통해서 한 사람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 지를 바라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불교에서 말하는 한 사람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 어린 시절부터 불운한 가정에서 마약과 함께 한 가족들과 마주한 것은 업의 관점에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우울한 가정 속에서 학대와 인권 유린을 읽으면서 한편으론 이러한 환경 속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 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하며 생활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일화 중 한 가지를 들려주면, "친척들과 친구들은 엄마가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공중 높이 발차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268)." 어떤가.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이런 환경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3. 불법에서는 자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을 저자는 시작하며, 잘못된 선택을 했던 과거를 회상한다. 그러던 중 불교를 만나게 되며,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며 현재의 글이 세상에 등장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정당한 일일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 그런 상황 속에 처해보지 않았다면 신뢰성 없는 발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참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4. 소중한 존재라는 것은 생명이 있기에 모두가 같은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그게 내가 그동안 배워온 불교의 가르침이다. 모두의 생명에 불성이 있기에 모두가 존귀하다. 나의 스승은 한 사람의 위대한 인간혁명이 한 나라의 숙명도 바꾼다는 신념을 관철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내 주변이라도 조금씩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또 다른 자비스 제이 마스터스가 생기질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생각나는 구절 그 순수한 삶으로 돌아가려고 하면 할수록 내 안의 어린아이는 더 사라지는 것 같았다(160). 쓰라리고 적대적이며 절망적인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길에서 거칠게 구르는 것뿐이었다(286). ★질문 한 가지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도가 과연 있을까? ★추천해주고 싶은 분 ★독서 기간 2024. 7. 15. ~ 7. 17.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빅터프랭클 의 #죽음의수용소에서 ★추천도(지극히 주관적인) ★★★★ p.s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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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 ‘자비스’의 삶은 사형수가 되어 교도소에 갇히고 스승 린포체를 만나기 전인 불우한 가정환경, 성장 환경, 범죄의 연속적인 삶과 스승을 만나고 불도자로서의 수행의 길을 걷게 된 후의 삶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확실히 달랐다. 살인의 누명을 썼다고 한 작가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사형수’라는 것이다. 이게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게 중요했을 것이다. 그것은 본인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그러한 것을 뛰어넘어 불도자로서의 명상과 수행을 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의 영혼은 책을 읽는 동안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늘 양심을 달고 있었다는 점이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범죄, 마약, 폭력 등의 환경에 빠져버린 저자의 삶은 교도소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흐름이고 또한 사회 시스템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전반부의 그의 불우했던 가정환경, 그가 커가면서 마약, 범죄, 폭력 등 사회 악의 한 축에 발을 담글 수밖에 없었던 점, 그로 인해 청소년 교화시설에 수용되고 탈출하고 또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저자의 감정 등등이 너무 세밀하게 자세하게 서술되고 있어서 현장감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억울하게 잘못된 판결 등등으로 사형수가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 그리고 자신에게 찾아 온 스승과의 만남, 명상과 수행 등으로 거듭나는 자비시의 교도소에서의 생활은 분명 사람을 이렇게까지 바꾸어놓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과함께’라는 영화의 ‘성주신’(마동석 분)은 이렇게 말했다. ‘나쁜 사람은 없다. 다만, 나쁜 상황이 있을 뿐이다.’라고. 나는 그 말에 100% 공감한다. 그리고 늘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듯이 저자 ‘자비스’는 스승을 통해 수행과 명상을 통해 거듭났고 그는 영혼의 구원을 얻었다. 그는 감사해 할 줄 알았고 또 자신의 처지에 대해 수긍하게 되었다. 사형수라면 늘 죽음에 대한 공포에 짓눌려 살텐데 그는 그러한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수행과 명상을 했다. 처음 책의 표지 제목을 보았을 때 사형수와 붓다가 참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후 확실히 사람은 붓다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자비스는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지루한 범죄 행위 등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책의 2/3동안은 그렇게 많은 감동이 아니었지만 이어지는 자비스의 변화를 보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참 좋은 책이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라면 한번은 읽어볼만한 소중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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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붓다가 된 어느 흑인 사형수 - 가장 악명 높은 감옥의 한 무고한 사형수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
저자 자비스 제이 마스터 번역 권혜림 출판 불광출판사 발행 2024.07.05.
불행과 불운, 폭력과 범죄, 그리고 절망으로 이어지는 인생을 살던 이가 자신 안의 부처와 마주하며 성찰과 통찰을 가진 인간으로 거듭나는 여정을 그린 책 ‘붓다가 된 어느 흑인 사형수’를 쓴 이는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형수이다. 사실에 기반하여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 시작되는 이야기는 붓다의 메시지를 설파한다.
19세에 강도 사건을 저질러 교도소 복역 중 갱단의 폭력사태에 휘말려 교도관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누군가의 거짓 증언으로 교도관을 살해한 무기를 갈았다는 혐의로 주인공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나 자신만은 진실을 알고 있다. 나는 교도관의 죽음에 대해 전적으로 결백하다”고 단언하고 2008년 4월,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마스터스의 유죄 판결에 관한 실질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증거 청문회를 명령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갱생 일기, 다른 누군가에는 변명의 일기,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스스로를 구원한 이야기로 읽힐 수밖에 없는 태생적 운명을 가진 이 이야기는 ‘우리가 먼 타국의 사형수의 이야기를 왜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낳는다. 자신을 변명하지 않고, 자신이 지은 죄는 속죄하며 출생 이후 시작된 악몽 같은 시간 속에서 다시는 길을 잃지 않고 정주행하려는 의지와 참회, 인간이 선함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성선설을 믿게 하는 이야기를 외면하지 못한다.
불법 마약거래를 일삼는 마약 거래상의 아이로 자라며 학대가 일상이 가혹한 환경에 노출된 주인공이 불교와 만나 치유와 구원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이 방대하게 펼쳐지며 주인공을 응원하게 한다. 좋은 선택지가 없는 인생이 어떻게 의지를 가지고 성장해 가는지에 대한 진짜 이야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깃털처럼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날고 싶었고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고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었다. 기어를 빨리 변속할 수 없었다! 지금 나는 나들이를 나와서 십대 때부터 보지 못한 세상을 구경하고 있다.
여름의 태양이 차창에 반사되었고, 나는 밖을 내다보면서 모든 것이 느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눈이 카메라 렌즈가 되어 자동차, 나무, 집의 사진을 찍었다. 나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감미로운 자유의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