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옥살이를 하고있는 주인공은 자신과 같은 방을 쓰는 칠십넘은 노인이 재판을 받고 다시 방으로 돌아오자 다가가서 판결은 어찌되었냐고 묻기 시작한다. 잠시 뜸을 들이던 노인이 태형 구십대라고 얘기하니, 주인공은 그거 잘됐다며 그것 좀 맞고나면 바로 나갈수있는게 아니냐는 소리와 함께 반색을 띄기 시작한다. 그에 분노한 노인은 칠십줄에 태형 구십대 맞는게 좋아보이냐며 주인공에게 화를 내기 시작하지만 여기서 죽어나가는 사람도있는데 겨우 그딴걸로 고민하냐며 다시 역정을 내기 시작했고 같은 방 사람들을 선동하여 노인에게 핀잔을 주기시작한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노인도 생각이 바뀌었는지 그 중한 벌을 받기로 마음먹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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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는 여러 服役囚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갑갑함에 겨운) 우리들에게는 부러움의 標대였였다. 그들은 마음대로 바람을 쏘일 수가 있었다. 목마르면 看守의 許諾을 듣고 물을 먹을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갑갑함이 없었다. 즉, 어느덧 그치라는 看守의 號令이 울리었다 우리의 二十秒 동안의 沐浴은 이에 끝났다. 우리는 (매를 맞지 않으려고) 時間을 猶豫치 않고 빨리 옷을 입은 後에 看守를 따라서 監房으로 돌아 왔다. 꼭 가장 더울 時間이었었다. 문을 닫는 瞬間, 우리는 벌써 더위 속에 파묻혔다. 더위는 즐거움 뒤의 復讐라는 듯이 容恕없이 우리를 내리쪼인다. "벌써 덥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매를 맞구라도 좀더 있을 걸......" 누가 이렇게 말한다. 서너 사람의 웃음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뒤에는 먹먹하였다. 몇 時間 동안의 沈默이 連續되었다. 우리는 무서운 소리에 화다닥 놀랐다. 그것은 斷末摩의 부르짖음이었다. "히도오쓰(하나), 후다아쓰(둘)."
看守의 헤어나가는 소리와 함께, "아이구 죽겠다. 아이구 아이구!" 부르짖는 소리가 우리의 더위에 痲?된 귀를 찔렀다. 그것은 笞 맞는 사람의 부르짖음이었다. 서른까지 헤인 뒤에 看守의 소리는 없어지고 笞 맞는 사람의 앓는 소리만 凄?히 우리의 귀에 들렸다. 둘째 사람이 笞刑臺에 올라간 모양이다. "히도오쓰." 하는 看守의 소리에 連한 것은, "아유!" 하는 기운 없는 외마디의 부르짖음이었다. "후다아쓰., "아유!" "미이쓰(셋)." "아유!" 우리는 그 소리의 主人公을 알았다. 그것은 어젯밤 우리가 내어쫓은 그 영원 令監이었었다. 쓰린 매를 맞으면서도 우렁찬 呻吟을 할 기운도 없이 '아유' 외마디의 소리로 부르짖은 것은 우리가 억지로 매를 맞게 한 그 令監이었다. "요오쓰(넷)." "아유!" "이쓰으쓰(다섯)." "후-." 나는 저절로 목이 늘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머리에는 어젯밤 그가 이 房에서 끌려나갈 때의 꼴이 떠올랐다. "七十 줄에 든 늙은이가 笞 맞고 실길 바라갔소? 난 아무케 되든 老兄들이나......" 그는 이 말을 채 맺지 못하고 ?然히 看守에게 끌려나갔다. 그리고 그를 내어쫓은 張本人은 나였었다. 나의 머리는 더욱 숙여졌다. 멀거니 뜬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려 하였다. 나는 그것을 막으려고 힘껏 감았다. 힘있게 닫힌 눈은 떨렸다.
笞刑은 五刑 가운데 罪人의 볼기를 작은 刑杖으로 치던 刑罰이다.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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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는 여러 服役囚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갑갑함에 겨운) 우리들에게는 부러움의 標대였였다. 그들은 마음대로 바람을 쏘일 수가 있었다. 목마르면 看守의 許諾을 듣고 물을 먹을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갑갑함이 없었다. 즉, 어느덧 그치라는 看守의 號令이 울리었다 우리의 二十秒 동안의 沐浴은 이에 끝났다. 우리는 (매를 맞지 않으려고) 時間을 猶豫치 않고 빨리 옷을 입은 後에 看守를 따라서 監房으로 돌아 왔다. 꼭 가장 더울 時間이었었다. 문을 닫는 瞬間, 우리는 벌써 더위 속에 파묻혔다. 더위는 즐거움 뒤의 復讐라는 듯이 容恕없이 우리를 내리쪼인다. "벌써 덥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매를 맞구라도 좀더 있을 걸......" 누가 이렇게 말한다. 서너 사람의 웃음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뒤에는 먹먹하였다. 몇 時間 동안의 沈默이 連續되었다. 우리는 무서운 소리에 화다닥 놀랐다. 그것은 斷末摩의 부르짖음이었다. "히도오쓰(하나), 후다아쓰(둘)."
看守의 헤어나가는 소리와 함께, "아이구 죽겠다. 아이구 아이구!" 부르짖는 소리가 우리의 더위에 痲?된 귀를 찔렀다. 그것은 笞 맞는 사람의 부르짖음이었다. 서른까지 헤인 뒤에 看守의 소리는 없어지고 笞 맞는 사람의 앓는 소리만 凄?히 우리의 귀에 들렸다. 둘째 사람이 笞刑臺에 올라간 모양이다. "히도오쓰." 하는 看守의 소리에 連한 것은, "아유!" 하는 기운 없는 외마디의 부르짖음이었다. "후다아쓰., "아유!" "미이쓰(셋)." "아유!" 우리는 그 소리의 主人公을 알았다. 그것은 어젯밤 우리가 내어쫓은 그 영원 令監이었었다. 쓰린 매를 맞으면서도 우렁찬 呻吟을 할 기운도 없이 '아유' 외마디의 소리로 부르짖은 것은 우리가 억지로 매를 맞게 한 그 令監이었다. "요오쓰(넷)." "아유!" "이쓰으쓰(다섯)." "후-." 나는 저절로 목이 늘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머리에는 어젯밤 그가 이 房에서 끌려나갈 때의 꼴이 떠올랐다. "七十 줄에 든 늙은이가 笞 맞고 실길 바라갔소? 난 아무케 되든 老兄들이나......" 그는 이 말을 채 맺지 못하고 ?然히 看守에게 끌려나갔다. 그리고 그를 내어쫓은 張本人은 나였었다. 나의 머리는 더욱 숙여졌다. 멀거니 뜬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려 하였다. 나는 그것을 막으려고 힘껏 감았다. 힘있게 닫힌 눈은 떨렸다.
笞刑은 五刑 가운데 罪人의 볼기를 작은 刑杖으로 치던 刑罰이다.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