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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낙원, 타인의 모방, 그리고 좌절된 해방 기록 - 구소은 작, <종이비행기>(봄의 영토, 2024년) 장 폴 사르트르는 그의 <타인론>에서 기술하길, 타인이라는 존재는 나의 지옥이면서 나의 근거라고 했다. 매혹적인 어록 같다. 그런데 그 함의가 꼭 그럴까? 그렇지는 않다. 예리한 인간론을 전개하며 사르트르는 타인의 출현(혹은 타인의 존재)은 ‘나’가 주체적으로 삶의 내용을 채워가는 일에 방해가 된다고 적어두었기 때문이다. 본래 적극적인 무신론자인 사르트르는 신이 부과한, 혹은 타자가 부여한 본질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을 두고 텅 빈 ‘무’(無, le neant)라 칭했다. 다만 그와 같은 백지상태에서 우리는 내 존재의 본질과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할 ‘자유’를, 마냥 천형(天刑)과 같이 짊어진다. ‘오늘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하며 소소하게 고민하는 자유와, ‘이 직장을 때려치울까, 말까?’ 하는 심중한 자유로부터 ‘살기 싫은 이 세상, 콱 등질까?’ 하는 절체절명의 자유까지 실제로 자유란 엄청난 모험과 파국까지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소은 작가의 소설에 나오는 제2의 주인공 연지는 정신병원에서 나온 후, 그야말로 ‘텅 비어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채우기 위해 나름대로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그녀는 혐광성(嫌光性) 곤충처럼 한국 사회의 그늘에서 그늘로 배회하다가, 늘상 부러웠던 은설 언니의 삶을 모방하고 그 삶의 일부를 훔치고 마침내 안타까운 파국을 맞는다. 헤어나올 수 없는 인생의 음습한 음지에서는 조금 더 볕이 드리워진 타인의 삶 자체가 하나의 낙원과 같이 보였던 셈이다. 다만 그 낙원은 성서에 나온 ‘선악과’처럼 마냥 바라만 보기만 해야 할, 강직한 제한이 드리워 있었다는 점을 짐짓 외면했던 것 같다. 연지를 잔잔히 연민하고 도움의 손길을 주었던 은설은, 연지가 시나브로 자신의 삶에 침투해 들어온 일들로 적잖이 동요하고 그녀가 드리운 삶의 얼룩으로 인해 복잡한 심경에 휩싸이게 된다.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연지가 자신의 세세한 것들을 모방하다, 마침내 사랑마저 탈취해 가려 했던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 은설이 배은망덕한 연지에 대한 인간적 동정을 끝끝내 거두지 않았던 데에 있다. 그리고 타인에 의해 한 입 베어진 자신의 삶이 ‘정작 무엇이었던가?’ 하며 삶을 반추하고 그 이유를 구할 계기로 삼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타인에게는 도피처나 낙원처럼 보였던 자신의 실존도 심중한 번뇌 가운데 놓여있음은 피장파장, 일반이었다. 이것은 독자에게 던져진 열린 결말이 잘 보여준다. 두 주요 인물 중 하나는 실존적 허기를 채우기 위한 모방으로, 또 하나는 베풀었던 도움만큼 양보하고 싶지는 않은 현대인의 이율배반적 관용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소설은 주인공 은설을 통해 인간애와 인간됨에 대한 마지막 기대는 끝끝내 버리고 있지 않음을 내보인다. 나는 이것이 지금껏 세상에 선뵈었던 구작가의 작품들로부터 찾아지는 일관된 주제의식이라고 본다. 소설이 발간될 즈음 구소은 작가는 SNS에서 자신이 직접적으로 겪은 체험을 소재로 했다고 밝혔다. 제삼자가 관찰하자면 마냥 블랙 코메디와 같은 사건에 휘말려 작가가 실제로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한 적이 있던 것이다. 소설 속의 두 여인 중에 언니인 은설이 바로 작가 자신의 투사이다. 그렇다면 동생으로 삼은 연지는 실존 인물일까? 실존 인물이겠지만, 작가는 자신과 그녀를 등장인물 삼아 상상을 더해 풀어 내고자 하는 사유와 주제를 더 확충해 갔다. 그러니 오해하지 마시라. 이야기 대부분이 픽션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구소은 작가의 전작 <검은 모래>, <무국적자>, <파란방>은 전통적인 소설 기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한다면 새 작품의 구성은 사뭇 특이하다. 소설 공간 안의 주인공 은설을 따라서는 소설로 쓰고 있고, 소설 속 영화 공간 안에서는 재가공된 주인공 설하를 따라서 시나리오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기법을 통해 작가는 우리 각자가 자신의 인생과 사건에 대해 괄호를 치고 엄밀하게 바라볼 것을 촉구하는 듯하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공하여 소설로 쓰고 그 소설 속에서 그것을 다시 시나리오로 쓰는 방식을 통하여, 우리의 실존과 사연들이 제각각 다른 공간에 둘 때마다, 다른 매체로 형상화할 때마다, 재가공될 때마다 어떠한 다면체로 보일지 실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물적인 생활에 도취된 현대인들에게서 성찰의 미덕을 발견하기 어렵다. 기실 성찰이라는 것도 마냥 쉽지 않다. 단회적이고 단면적인 성찰은 십중팔구 실패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여 성찰은 몰성찰의 나를 성찰하고, 다시 성찰하는 나를 성찰하고, 또다시 그렇게 성찰하는 나를 다시 성찰하는 식으로 겹겹이 진행되어야 그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현실의 구작가가 소설 속의 은설로 등장하고, 그 안의 시나리오 속의 설하로 등장하고 있는 구성에 큰 영감을 받았다.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자신의 상처와 멍이 새겨진 바이오그래피를 객체화하여 분리하고, 그것을 이중 삼중으로 사용하고 있는 용기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리고 작품 곳곳에서 삶에 대한 아포리즘을 심어가며 삶을 복기하고 있는 태도에 감동 받았다. 작가는 자신의 소설이 영화화되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삽입된 시나리오의 꼼꼼함이 그 단서이다. 그녀의 오랜 애독자로서 꼭 그리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그리고 작가는 <종이비행기>의 본문 중에, 영화화된 켄 키시(Ken Kesey)의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를 일부러 언급함으로써 두 작품을 비교하며 읽을 것을 제안하는 듯하다. 물론 구작가 자신의 체험담을 녹인 작품이기 때문에, 그 어떤 표절이나 오마주에 관련한 섣부른 평은 비껴갈 듯하다. 그저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고 비교하며 널리 화제로 삼게 되는 일을 더 반길 것이다. 열린 창문에서 애처롭고 절박하게 종이비행기를 날렸던 여인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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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정신병원" 하필 내가 근무하는 회사 무지개***인데 뭔 이런 우연이 다 있을가? 우리가 알수없는 그 세계에서 사는 인간의 고통과 그 속에서 살아숨쉬는 인간의 따뜻한 감정들을 생생하게 그려내고,마음 따뜻한 인간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인간도 머리검은 짐승이라고 소름돋게 그려지는 글을 읽으면서 책 표지 뒤면에 쓴 작가님의 글을 마음깊이 새겨듭니다 사실 뒤에 숨은 진실 진실 뒤에 숨은 사실 둘의 간격은 얼마나 될가 당신은 알고있나요? 인간세계의 진실과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있을가요? 인간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옮겨 멋진소설을 펴낸 작가님에게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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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종이비행기는 소설이다. 그러나 나는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다. 영화 시나리오와 소설을 접목시켜 하나로 완성한 구성이 낯설었으나 꽤 흥미롭게 읽었다. 작가는 물었다. 사실 뒤에 숨은 진실 진실 뒤에 숨은 사실 둘의 간격은 얼마나 될까. 당신은 알고 있나요. 나는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과연 내 삶 속에 사실과 진실이 따로 있었던지.... 그러고 보니 그랬다. 사실과 진실이 늘 같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나리오 속 설하의 나레이션이 오래 머물렀다. "이 얼굴이 진짜 내 얼굴일까? 지금까지 나는 내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없다. 남들은 내 얼굴을 본다. 나는 거울 같은 반사체를 통해서만 나를, 나라고 믿는 얼굴을 볼 뿐이다. 여기 이 창에 비친 얼굴이 진짜 내 얼굴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살다 보면 사실과 진실이 다른 경우가 있다. 사실 뒤에 전혀 다른 진실이 감춰져 있거나 내가 믿는 진실 뒤에 낯선 사실이 있다면,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두렵다.... 아주 많이." (P354-355) 이 소설이 영화화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또 어떤 분위기일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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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진실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될까.... 마치 화두처럼 작가는 질문을 던졌다. 친절하지 않다. 그러나 소설 혹은 시나리오, 종이비행기의 흡인력은 대단했다. 시나리오와 소설의 서사를 오가며 닮은 듯하면서 뭔가 일치하지 않는 복선들에 자칫 길을 잃을 뻔했다. 담담하고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정갈한 문장들이 이미 작가의 이력과 실력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시나리오와 소설을 섞은 실험작은 성공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너무 재밌었으니까! 은설과 연지 혹은 설하와 연우 사이에 놓인 사실과 진실을 찾아 헤매다 가볍게 결론을 내렸다. 은설이 했던 말에 방점을 찍기로 했다. 세상에는 그냥도 있고, 비밀도 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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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와 소설이 하나로 묶인 독특한 구성임에도 가독성이 높았다. 재밌다. 아주 재밌게 읽었다. 시나리오 상에서 일어난 일과 소설 속에서 일어난 일이 맞물리면서 또 다른 설정이 반복된다. 정신병원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가 하면, 병원 운영의 불법 실태에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병원에서 만난 두 여자의 인연이 퇴원 이후에도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과정에서 나는 연우(연지)보다 설하(은설)에게 더 이끌렸다. 여린 듯, 강한 면도 보이고, 순수하다고 할까, 아니면 애잔하다고 할까...... 어쨌든 나는 설하(은설)에게 매력을 느꼈다. 두 여자에게 운명이 낸 상처는 너무도 깊었다. 영화 시나리오 상에서는 연우가 죽지만, 은설로 설정된 소설 속에서는 은설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걸로 이야기가 끝난다. 둘 중에 어느 것이 사실이고 진실인지 무척 헷갈린다. 어쩌면 둘 다 사실이고, 둘 다 진실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둘 다 허구이므로 사실도 진실도 없는 것인지 모른다. 단숨에 읽었지만, 책장을 쉽게 덮지 못했다. 구소은 작가의 소설은 다 읽었다. 그녀가 만드는 소설은 구성이 평범하지 않다. 작가가 얼마나 고심했을지 짐작이 된다. 구소은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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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비행기 리뷰: 와 이책 제가 보고 싶어서 눈여겨 보고 있었던 건데 이번에 페이백으로 나와서 운 좋게 봣습니다. 정말 너무 재밌게 잘 봤구요 내용도 너무 좋았어요.. 다 보고 여운이 남는 책이었던거 같습니다. 작가님 다른 작품도 보고 싶어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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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은 작가님의 [100% 페이백][대여] 종이 비행기 리뷰입니다. ‘무지개 정신병원’의 입원 환자로 만난 두 사람, 은설과 연지의 시절 인연을 담고 있다. 그 둘의 이야기가 재현되는 영화에선 설하와 연우로 만난다. 연지/연우는 은설/설하에게 특별한 애착을 갖는다. 연민과 이해, 선망과 애정으로 만나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선의의 손을 내민다. 그 다른 한 사람도 진심과 애정으로 그 손을 맞잡지만, 그 손이 파국을 향한 예고라면, 그 또한 운명일까. 주인공들의 운명적인 만남과 미묘한 갈등, 그리고 그들이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들은 독자들을 여운 깊은 여행으로 이끌며 빠져들게 합니다. 은설은 자신과 연지의 이야기가 재현된 영화를 보고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의심한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지만,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은설에게는 여전히 미궁으로 남는다. 허구와 실제의 간극을 파고들수록 은설에게 현실은 파악 불가한 것이 되고 결국 그 현실 속에서 길을 잃고 만다. 우연과 인연, 운명의 삼각관계가 만든 파국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진실 그러나 무엇이 진실인가, 진실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라는 의문을 풀어가는 책입니다. |
| 구소은 작가님의 [대여] 종이 비행기 단권을 대여하여 보고 쓰는 리뷰입니다 한 편의 시나리오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와 허구를 넘나들며 잠녀 가족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마지막까지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과감한 장르에 대한 작가님의 도전이 잘 나타납니다 |
| 100% 페이백으로 대여한 구소은 작가의 종이 비행기라는 책이다. 소설과 영화, 두 허구의 세계를 넘나드는 진실의 추적이라고 해서 1차로 흥미로웠고, 소설 작가인 구소은 작가가 정신병원에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해서 글을 썼다고 해서 이미 진실인지 허구인지 헷갈린다. 각각 떼놓고 보면 흔한 소재인데 둘을 섞은데다 작가의 경험까지 곁들여져 내용이 너무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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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비행기를 읽고 쓰는 리뷰입니다. 저마다 사연을 갖고 정신병원에 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독특한 배경과 이리저리 튀는 시점 때문에 어지럽다는 게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파편들이 한 군데 모이자 진정한 맛이 살아났다. 여러번 곱씹을만 한 글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