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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러버] 질병 각본 고쳐 쓰기 - [아픈 몸을 이야기하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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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각본 고쳐 쓰기<아픈 몸을 이야기하기>를 읽고  아프면 만사가 귀찮은 법이다. 이른바 '환자'는 한시라도 빨리 질병의 손아귀에 놓여나고 싶은 따름이다. 대체로 질병은 건강의 반대말로 아픈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몸을 통제(관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과 타인 또는 사회의 눈치를 살피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환자는 모든 책임, 즉 결과적으로 건강에 소홀했던 점과 자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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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각본 고쳐 쓰기
<아픈 몸을 이야기하기>를 읽고


  아프면 만사가 귀찮은 법이다. 이른바 '환자'는 한시라도 빨리 질병의 손아귀에 놓여나고 싶은 따름이다. 대체로 질병은 건강의 반대말로 아픈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몸을 통제(관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과 타인 또는 사회의 눈치를 살피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환자는 모든 책임, 즉 결과적으로 건강에 소홀했던 점과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얼른 나아야 한다는 부담을 지고 병에 맞서 싸우는 선수(군인)처럼 보인다. 또한 이런 일들은 언제든지 누군가의 손에 각본처럼 쥐어져 '환자 역할'을 되풀이하면서 벌어질 것이다.
  저마다 병에 대한 감각은 천차만별이겠으나 대개의 현대인들은 가벼운 병은 식단 관리, 운동, 약 복용 등으로 다스리고, 무거운 병은 수술이나 화학요법 등으로 치료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질병 자체를 이야기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예방적) 치료적 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마흔의 경계에서 심장마비와 고환암을 차례로 경험한 뒤 질병이 품고 있는 것들에 천착하여 1월의 북클러버 선정작이기도 한 <아픈 몸을 이야기하기>을 쓴 아서 프랭크이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공명이 있어야만 비로소 온전한 이야기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화자(환자) 못지않게 청자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그리고 상대방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서로가 전제하는 공통의 틀이 필요할 것이다. 이에 저자는 질병 서사의 유형을 크게 복원, 혼돈, 탐구 등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복원’은, 건강했던 때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하지만 대개의 경우 환자가 아닌 의료진이 주도하는 서사로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는 경우가 많음을 간과한다. ‘혼돈’은, 복원과 정반대로 본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여기며 혼란과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탐구’는, 복원과 혼돈과 달리 질병을 회피하지 않고 고통을 받아들이며 무엇을 상실했는지 살피고 그것들에 대하여 충분히 애도를 포함한 치료의 과정을 통해 질병의 의미에 대해 재발견하게 만든다.
  올리버 색스, 오드리 로드 등 유명인들과 더불어 저자가 오랜 시간 많은 질병 모임에 참여해 만난 사람들의 질병 경험 사례를 통해 질병 서사의 세 가지 유형이 하나씩 구현되는 게 아니라 여러 조합으로 나타남을 엿볼 수 있다. 각 유형의 분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질병 이야기가 활성화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한다면, 한 사람의 질병이 결코 개인에만 머물지 않고 타인의 그것과 사회적 차원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리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자 바람이다.
  비록 <아픈 몸을 이야기하기>를 읽어내는 게 쉽지 않았지만, 의료진과 환자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의료계의 권위(권력)에 눌려(가려져)왔던 아픈 몸들을 가시화하고 질병을 살아낸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끝으로 만일 나처럼 이 책이 어렵게 다가온 독자라면, 저자의 전작인 
『아픈 몸을 살다(리뷰 바로 보기)』를 일독해보시길 권한다. 전자가 질병 서사에 관한 이론서라면 후자는 이론을 실전에 적용한 글쓰기의 좋은 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k*****o 2025.01.25. 신고 공감 1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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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러버] 그럼에도 우리가 아픔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아픈 몸을 이야기하기"_1월
"[북클러버] 그럼에도 우리가 아픔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아픈 몸을 이야기하기"_1월" 내용보기
P.103"내 몸은 인지적이고 초월적인 나를 어쩌다 가두고 있는 살덩어리인가, 아니면 나는 오직 내 몸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몸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몸인가?"바야흐로 유병장수의 시대다. 운이 좋으면 120세, 운이 나쁘면 140세까지 산다고 이야기할 만큼 인간의 기대수명은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길어졌다. 하지만 수명이 길어진 만큼
"[북클러버] 그럼에도 우리가 아픔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아픈 몸을 이야기하기"_1월" 내용보기
P.103
"내 몸은 인지적이고 초월적인 나를 어쩌다 가두고 있는 살덩어리인가, 아니면 나는 오직 내 몸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몸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몸인가?"

바야흐로 유병장수의 시대다. 운이 좋으면 120세, 운이 나쁘면 140세까지 산다고 이야기할 만큼 인간의 기대수명은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길어졌다. 하지만 수명이 길어진 만큼 생의 길이에 마주하게 되는 질병은 더 다양하고 많아져 가는듯하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설명하는 이야기에는 질환 서사와 몸의 이야기가 반드시 포함될 수밖에 없다. 책 제목처럼 "아픈 몸을 이야기하기"는 쉽지는 않지만, 한편으로는 일생에서 당연하게 지나갈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고민하며 책에 메모를 끄적거리게 되었다. 결국 이 책을 읽는 동안 수십 개의 밑줄과 포스트잇을 붙이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의 표현에 따르면 '회복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질병을 앓고 돌아와 과거 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여전히 회복 과정은 지난하기에 불안하고 두렵기도 하다.

P.64
회복사회의 구성원들은 두 개의 여권 중 하나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그들은 영원히 비자 상태에 있는데, 그 비자는 주기적으로 갱신이 되어야 한다. 모더니스트 의학의 승리로 인해 이러한 비자가 없었다면 죽었을 수많은 사람들이 설령 언제든지 추방당할 수 있을지라도, 건강한 사람들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특히 나는 이 표현에서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질병을 앓고 난 후의 나는 과거의 나와는 완벽하게 같아질 수 없고, 질병이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항상 '비자 심사'를 받는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며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여전히 나는 이 세계에 속해있을 수 있는가, 정상적인 사람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나 자신도 품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 추가로 들게 되는 것이다.

P.100
고프먼은 낙인이 찍힌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낙인에 직면하여 반응을 보여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낙인은 당황스러운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낙인이 찍힌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은 단지 통제가 기대되는 상황에서 하지 못함으로써 부끄러워지는 것을 피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그 사람은 또한 다른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을 피해야 하는데, 그들은 몸의 통제를 상실한 광경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질병의 발병은 질환 서사를 가진 이에게도 그리고 그 주변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난치병 선고를 받은 이에게 질병의 유무를 고백하는 것은 사실 당황스럽다. 나 역시도 그랬다. 내가 내 몸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이 사실을 듣게 되는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듣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지 않기 위해 때로는 과장과 블랙 유머를 섞어 말하기도 하고, 질병을 앓고 있는 내 모습을 유쾌하게 꾸며내기도 했다. 이는 타인을 당황하게 하지 않기 위함과 그로 인해 내가 덜 불편해지기 위함이 동시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질환 서사가 금기시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질환 서사는 더 건강하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되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지점을 짚고 있다. 왜 우리는 아픈 몸을 이야기하여야 하는가. 질병을 본인의 경험으로써 겪는 사람들과 그 주변인들에게 질병의 존재는 생의 큰 전환점으로 다가오기에, 질병을 이야기하는 것이 결국 우리의 삶의 일부를 이야기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p.51
여전히 질환을 앓고 있든 혹은 그로부터 회복되었든지 간에, 몸은 모든 종류의 새로운 이야기의 원인이자 주제이며 도구이다.

결국 질환을 앓고 있듯 회복되었든 그 질환 서사를 가진 몸은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게 된다. 그렇기에 질환 서사를 가진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서사에 집중하게 된다. 저자의 말을 빌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것은 개인의 자아와 몸을 고통의 공동체 내에 위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라면. 개인의 고통을 나누어 '우리의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감정은 전이되는 것이지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감정은 주관적이기에, 사건을 해석하는 데 있어 화자와 청자가 가진 감정의 크기도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슬픔을 나눔으로써 슬픔 전체의 총량은 줄어들지 않을지 모르나, 적어도 감정을 공유한다고 느끼면서 위안을 얻는다면 슬픔이 주는 고통을 경감시키는 데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저자가 이야기하는 개인의 서사가 우리의 서사가 될 때 서로를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고, 위안이 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P.313
이야기와 함께 사고하는 것은 이야기와 함께 행동하는 것이고, 이야기에 내재하는 인과성, 시간성, 서사적 긴장의 논리를 자신의 사고에 차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타자의 감정을 내면화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공명하는 것이다. 타자의 자아-이야기는 내 것이 되지 않지만, 나는 그 이야기와 충분히 공명하게 되어서 그 뉘앙스를 느끼고 플롯에서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먼저 질문해야 할 것은 어떻게 타자의 이야기와 함께 생각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당신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생각할 것인지다.

결국 '아픈 몸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이야기를 통해 나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고 그 이야기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아픈 몸이 가진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고통에 저항함으로써 새로운 힘과 의미를 얻는 것이다. 아픈 몸으로 살아낸 사람들은 아픔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나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서사에 함께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로 다른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이 글의 초입에 말하던 문장을 다시 읊어본다.

"내 몸은 인지적이고 초월적인 나를 어쩌다 가두고 있는 살덩어리인가, 아니면 나는 오직 내 몸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몸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몸인가?"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스스로 내린 결론은 내 몸은 곧 나이기도 하며, 물리적으로 존재하기 위한 대상이지만, 동시에 나를 설명하기 위한 매개가 된다는 것이다. 몸이 있기에 나의 이야기를 구체화하여 표현할 수 있고, 이 몸은 인지적인 나를 연결하는 대상이 된다. 결국 몸과 나는 계속 변화하겠지만 결국 몸이 없이는 나를 설명할 수 없다.

P.402
용기란 소망 실현의 기쁨도 절망도 없이 그저 주어진 대로, 삶의 예기치 않은 결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다.

다만, 예측할 수 없는 질병이 고난처럼 닥쳐와도 질환 서사를 우리가 모두 같이 품고 이해함으로써 이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질환 서사를 풀어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개개인이 품게 되는 용기를 통해 완성되리라 믿는다.
j*****2 2025.02.0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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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러버] 아픈 몸을 이야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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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전체 윤곽은 희미하게 알 것같았으나...원문 자체가 꼬아놓은 것인지, 번역이라는과정을 거치니 꼬인것인지 문장 하나하나가 읽어나가기벅찼다. 물론,  나의 독서력 내공이 못 따라갔던 것도어느 정도 일조 했기도 했으리라.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힘을 얻을 수 있다.저자는 본인이 겪었기에 병으로부터의 고통을 주제로이렇게도 진실되고 어렵게도 관련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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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전체 윤곽은 희미하게 알 것
같았으나...원문 자체가 꼬아놓은 것인지,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치니 꼬인것인지 문장 하나하나가 읽어나가기
벅찼다. 물론,  나의 독서력 내공이 못 따라갔던 것도
어느 정도 일조 했기도 했으리라.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본인이 겪었기에 병으로부터의 고통을 주제로
이렇게도 진실되고 어렵게도 관련 내용을 독자에게 전달
한다. 진실성은 느껴진다. 다만, 읽으면서 내내 나의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저자는 본인 및 작품에 등장시킨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모더니스트(순수 몸에 대한 의료적 치료 지향)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모더니스트적+윤리적)로의 전환을 지향하는 것 같았지만, 이것은 어쨌든 '치료'가 전제되어 있는 복귀 또는 회귀로의 목적이 있는 듯 했고, 이를 향한 공식(?) 안에 저자 스스로가
갇힌 것 같았고, 어떤 경우를 놓치고 있는것 같았다. 그건 바로 종교적 신앙심이다. 물론, 본문에서 불교 얘기도
중간중간 나오긴 했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종교 가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치병으로 인해 삶의 끝에 다다른 당사자와 가족들은 마지막을 모더니스트 및 포스트모더니스트 적 치료가 전제되는 접근을
초월한 다른 안식을 찾는 것도 있다는 것 말이다. 뭐...
나의 생각은 어찌보면 죽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대비에 수긍한다는 부정적인 면이 크겠지만, 현실에서는
병에 따른 고통을 굳이 말하기 위해 기록, 모임을 대외
활동 보다는 대내적으로 이 비극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꽤 있다는 것. 그때는 초월적 존재인 신에게로
가는 준비만을 할 것이다. 종교에 의지하면서...그런
그들의 마지막 목소리는 어떨까라는 그리고 저자는
어떻게 받아들일까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본 작품을
읽으며 머릿속에  맴돌았다(엔도 슈사쿠 작품 중
'깊은 강'에 나오는 장면 중 주인공 남편에게 죽어가는
 아내가
 "나 반드시 다시 태어날테니 이 세상 어딘 가에서
   찾아요, 날 찾아요, 약속해요, 약속해요"
라고 말하는 장면이 고통에 대한 기록보다는 이 대화가
더욱 와닿는다)

본 작품 내용 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혼돈의 서사'
파트였다(프리모 레빗 작가도 반가웠고, 최근 독서 모임에서 다룬 '쥐'작품도 반가웠던). 감히 건들면 안될 것
같은...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블랙홀.
저자가 작품 내내 말하는 질병 +몸의 기록과 이야기가
이 영역에서는 갑자기 사그라드는 듯...촛불의 노란불보다 센 파란불인가...

작품 전반이 병으로부터 오는 고통만을 다루니 어쩌면
협소해보이기도 했다(물론 아우슈비츠 사례도 들지만). 현미경으로 가로 세로 1cm의 책상을 확대하면 그안에는
엄청 많은 세균이 있듯이 그 정보를 알려준다고 해도,
그렇구나 정도이다. 어쩜, 작품에서 말한대로 병을 걸려
봐야지 건강을 안다는 법칙이 맞는 것 같기도...다만,
작가는 경험으로부터 나온 주제를 잘 활용하고
팩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살아가면서 병으로 고통
받지 않지만 삶이 지옥이며 그것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많기에, 현미경의 세상을
깊이 어렵게 이야기한 작가에게 솔직히 공감하지 못했다.

d*****n 2025.01.1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