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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한국학에 계보학적으로 다가가기 근대 한국학의 뿌리와 갈래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되기 이전에 계보학에 대한 미셸 푸코의 서술이 실려있는 것은 이 책의 섬세한 디테일이라고 생각한다. 제목만을 보았을 때 한국학의 기원을 좇아 올라가는 단순한 서술로 오해될만한 인식을 바꿔주면서 민족주의적 시각에 물든 내가 기대할 수 있는 종착역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란 압박을 은연중에 내포하는 것 같다. 단순히 기원을 찾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종착지 없이 종횡무진 사료를 살펴보는 방식, 그 과정에서 발견한 지금까지 역사적 시각과는 맞지 않았던 사실, 그들이 규정한 정상의 궤도에서 이탈한 부분들을 포착하고 구체적으로 파고드는 것, 이것이 아마도 그동안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틀에 맞지 않아 버렸던 혹은 억지로 끼워놓은 것 등등 한국사에 심연에 잠든 부분들과 마주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 근대 한국학 물결의 흐름 서양 선교사로 시작되는 한국학의 제 1물결을 보다보면 그동안 ‘순혈주의’를 고수한 한국사가 애써 외면하고자 하는 부분들이 수면위로 드러난다. 초기 프랑스 선교사들이 한국학의 초석을 쌓으며 만들어낸 틀은 이후 식민지 시대 지식인들에게 그대로 답습되었다. 이후 한국학 연구의 주도권은 불어권에서 영미권 넘어가며 『코리아 리포지터리』,『코리아 리뷰』,『트랜잭션』등 근대 한국학의 저수지를 형성하며 근대 학문으로서 한국학이 발표되고 논의되고 공유되는 진정한 의미의 학문적 아고라가 탄생했다. 만일 우리가 순수한 한국학만 좇아 소위 한국인들의 손에 탄생해야만 하는 한국학의 기원에 강박적으로 매몰되었을 때,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것들이다. 외면했다는 것과 존재를 완전히 몰랐다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앞서 서양 선교사들이 쌓아놓은 연구들, 그리고 식민시대 이를 답습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사실 한국학 형성에 있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때문에 순혈주의를 외치며 민족주의 향수에 흠뻑 적셔진 기존의 한국사가 이를 몰랐다기 보다는 애써 외면하며 숨겨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언어적, 인종적, 하물며 민간 신앙적인 부분들 까지 닮아있는 조선인들을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조심성이 요구된다. 일본-조선과의 관계는 다른 제국주의 열강이 취했던 식민지 지배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상황이며 서구 열강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다가는 이미 손쉽게 삼켰던 조선을 힘겹게 게워내야하는 부담을 져야했다. 초기 1물결의 연구에 탑승하여 본격적인 식민지 조선의 세계로 이행하기 전, 일본 관학자를 중심으로 일어난 1.5물결은 서양 선교사들이 쌓아올린 한국학의 초석을 본인들의 방식으로 다듬은 동시에 앞으로의 활용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 책에서 언급된 바와 같아 서양 선교사들과 일본 관학자들의 한국학 연구는 기독교 문명의 선교활동, 식민지 근대화라는 명분적인 차이만 있을 뿐, 한국의 후진성을 강조하고 일개 하류 문명으로 취급하는 것에는 어느정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연구가 결코 한국학의 후진성 강조하는 데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들이 큰 틀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틀에 맞지 않아 버린 부분들, 억지로 우겨놓은 부분들을 더욱 쉽게 포착할 수 있었다. 물론 앞선 바람대로 초기의 조선인 한국학 연구자들이 이러한 시각을 갖고 연구에 매진하였다면 우린 훨씬 앞선 시기에 ‘가장 한국적인 것’ 들을 포착하고 발전시킬 수있었을 것이다. 식민시대 조선 지식인의 등장과 시작된 한국학 제 2물결은 선대 연구들에 대한 저항의식과 조선인 주도적인 새로운 시각을 “잠깐” 보여주었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 계층의 현실적인 한계와 더불어 가뜩이나 식민지배라는 강한 목적성이 바탕이 된 분야에 경성제국대학 출신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학벌주의가 들어서며 한국학은 더욱 배타적이고 고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답습한 한국학 모습은 단순히 앞선 1세대부터 1.5세대의 연구 내용중 그 목적성에 너무 매몰되어 왜곡된 부분들을 ‘다듬고’, 조선인의 말로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는 그들의 세계관이나 시각에서 전혀 이탈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책에 말미에 소개된 고유섭과 같이 제 2물결은 단지 좌절의 연속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맹아의 출연으로 볼 수도 있다. 다시말해 진정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어쩌면 기존에 쌓아온 세계관을 깨뜨리는데 시발점이 되는 고뇌들이 새로운 물고를 트는 시기였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종국에 식민사관에서의 탈피로 이어지며, 앞서 강하게 자리잡았던 식민사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한국학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었다. 물론 지금은 완전히 역전되어 오히려 민족적 향수에 흠뻑 젖은 한국학이 되어버려 다시 고유섭 반복했던 고뇌가 필요한 시기가 된 것이 굉장한 아이러니이다.
□ 한국학의 새로운 물결과 앞으로 가야할 길 과연 선대 연구를 무작정 따라가는 것만이 정도인가, 지금의 민족주의 사학에 반하는 내용을 역설하는 것이 불순분자로서의 낙인으로 받아들여져야 되는가, 한국학은 한국 고유의 것이어만 하는가.. 등등 도전적인 질문이 필요한 때가 도래한 듯하다. 이러한 질문에 접근하기 위해서 우리는 미셸 푸코가 말한 계보학적 접근을 통해 과거를 종횡무진하며 사료를 찾아내고 일전에 언급한 방식대로 우리 한국학이 정한 틀에 맞지 않아 버린 것, 억지로 틀에 끼워 맞춘 것 등을 포착하여 연구함으로써 새로운 역사적 지평을 열어야 할 것이다. 그 출발점으로 나는 ‘경계 넘나들기’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기존에 틀에 잡힌 연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트랜스네셔널한 연구, 경계를 넘나드는 발칙함 등이 앞으로 한국학 연구의 출발이자 이후 유지되어야 할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또한 오랜 시간 뒤에 틀에 고착된 방식으로 여겨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 완성을 위한 새로운 질문들 서양 선교사들이 근대 한국학 연구의 출발이자 초석을 다졌다는 것은 굉장히 도발적이면서도 어쩌면 지금까지 만연했던 한국사의 민족주의적 시각이 애써 부인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근대 학문분야에서 한국인 개척자를 찾고 한국인이 만들어낸 일종의 ‘순혈주의’적 시각을 버리고, 우리가 믿었던 한국학이 순혈하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문득 든 생각은 과연 이러한 문제들이 근대 한국학에만 국한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구한말 서양선교사들은 본인들이 제 3자의 눈을 가졌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조선을 넘어서 동양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런 부분들이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한국학의 진수를 포착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예컨대 그들에게는 신기하게 느껴지는 우리의 언어와 생활상, 무속 신앙을 믿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 민요를 흥얼거리고 기원 모를 자장가를 들으며 잠에 드는 것 등은 사실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상이기에 우리는 이것을 연구할 대상으로 자각하기 힘들다. 제 3자의 눈에 들어서야 발견되는 이런 부분들은 결론적으로 ‘우리와는 다른 타자’와 접촉하였을 때 비로소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떠한 존재인지 자각 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생각은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진부한 질문임과 동시에 스스로 나를 자각해야 비로소 타자를 인식하는 것인지, 타자의 존재를 통해 비로소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며 기원을 찾아가는 과정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타자가 일깨워준 나라는 존재를 큰 틀로 놓고 본다면 우리에게는 한국학으로 일컬어지는 ‘자국학’은 결코 스스로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유지되려면 우선 세계 자국학의 발전이 외부에서 일깨워줌 없이 발전한 사례가 있는지 찾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사실 우리가 굳게 믿고 있었던 서양 근대 학문들 또한 외부 세계와의 충돌로 비로소 인식된 ‘잡종’의 학문일 수 있다. 결국에 이 책에 나타난 한국학의 발전과정은 모든 학문이 공유하는 근대 학문의 발전과정일지도 모른다. 특히 민족의식의 강조가 심한 한국사가 유난히 이를 받아들이기 싫어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궁극적인 질문은 ‘나의 존재 인식하기’이다. 과연 타자를 통한 나의 존재 인식이 먼저인지, 내가 스스로 나를 인식하고 타자를 규정할 수 있는지, 역사 연구에 나타난 그 미묘한 차이를 알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