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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이는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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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황금연휴. 적잖은 교통체증을 경험하리란 사실을 잘 알면서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여유라곤 누릴 틈이 없는 현대인의 갑갑한 삶으로부터 탈출할 기회는 이 때뿐이라는 믿음이 컸다. 차 속에서 보낸 시간이 제법 길었고, 눈썹을 휘날리며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몇몇 장소는 다음을 기약하고플 만큼 강렬한 인상으로 내게 남았다. 소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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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황금연휴. 적잖은 교통체증을 경험하리란 사실을 잘 알면서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여유라곤 누릴 틈이 없는 현대인의 갑갑한 삶으로부터 탈출할 기회는 이 때뿐이라는 믿음이 컸다. 차 속에서 보낸 시간이 제법 길었고, 눈썹을 휘날리며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몇몇 장소는 다음을 기약하고플 만큼 강렬한 인상으로 내게 남았다.

소쇄원 들어가는 길. 좁은 이차선 도로에는 차량이 즐비했다. 규모가 작아 30분이면 충분히 둘러볼 거라 했다. 작다는 소리에 큰 기대를 않았고,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짐작대로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가 울었다. 고요한 가운데 흐르는 물은 뜨거운 태양빛을 잠재웠다. 묘한 장소였다.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더라면 난 그곳에 반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몰려든 사람들 탓에 그날 난 사람 구경을 제대로 하고야 말았다.

아는 만큼 더 보인다. 소쇄원에 가려거든 이 책을 필히 읽어라. 입구 부근에 간략한 설명이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지만 한 장소에 얽힌 숱한 이야기를 모조리 풀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지금이야 차를 타고 입구까지도 어렵잖게 도달 가능하나 예전에는 분명 인적이 드문 산골짜기였을 것이다. 왜 누군가는 깊은 산중까지 들어와서야 소쇄원을 짓고 기거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를 알고 난다면 소쇄원은 아담한 정자 이상의 장소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한 때 이 땅은 천국이었다. 공자가 말하길 “거기에는 군자들이 살고 있다”고 했단다. 그러나 현재는 물욕에 찌든 사람들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을 따름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조선시대도 순수하진 못했다. 권력을 탐하는 이들이 숱하게 일어났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내쳐야만 했다. 승승장구를 하면서도 후일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보니 권력을 지녔을 때 모든 걸 긁어모으려 애썼다. 잊고 있던 천국을 지향하는 흐름이 일어났던 건 중종 시절이다. 연산군의 실정을 뒤엎고 즉위한 중종의 시대야말로 이제까지의 흐름과 단절을 선언하기에 좋은 때였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닌, 오래전 우리의 선조들이 추구했을 홍익인간의 정신을 다시금 추구하며 천국에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정암 조광조는 애썼다. 하지만 그는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갔고, 남곤 심정 등의 모함으로 꺾이고야 말았다. 조광조의 뜻을 받들고자 했던 하서 김인후는 스승의 스러짐과 함께 좌절을 경험하고야 말았다. 중앙 정계에 진출해 큰 뜻을 이루는 건 포기했지만 삶 자체를 놓아버린 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인종의 스승으로 다시 한 번 스승이 이루지 못한 이상세계를 만들고자 애썼다. 인종의 갑작스러운 승하와 함께 모든 뜻을 접어야 했을 때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양산보를 만나 소쇄원을 탄생시켰다. 외면적으로는 제 뜻을 이룰 수 없어 낙향한 것이었지만, 소쇄원은 그가 꿈꿨던 이상세계 그 자체였다.

앞서 언급했듯 입구에 선 대나무들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다 말해도 좋을 만큼 큰 키를 자랑한다. 속세에서 뒤틀린 마음이 있거들랑 대나무숲에 모조리 털어버리고, 꼿꼿한 대나무의 성품을 대신 제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뜻이리라. 내면을 갈고 닦는 것이야말로 이상세계의 실현을 위해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모든 과정이 어렵겠지만 그 중의 으뜸은 수신(修身)이다. 수신의 과정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무어가 됐건 억지로 추구한다면 그것은 윽박이요, 결과는 부러짐이다. 소쇄원 내부는 정갈하면서도 인위적인 것일랑 하나도 없었다. 바위 하나도 깎아내린 흔적이 없고, 높지 않은 담마저도 자연의 일부처럼 보인다. 사방이 뻥 뚫린 만큼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시원하다. 행여나 방문한 손님이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담을 치기는 했는데, 적당히 사생활을 보호해줄 만큼의 높이다. 담과 담 사이에는 공간이 있어 식사 때면 음식이 놓인다. 손님(客)은 그저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며 편히 머물면 되는 것이다.

시대가 하수상하여 담양 곳곳에 천국이 생겨났다. 송강 정철의 넋이 깃든 가사문학관과 송순 선생의 면앙정 역시 소쇄원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정철의 사람 됨됨이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름 성공가도를 달렸고, 숱한 정쟁에도 몸을 담았던 인물이라는 사고가 내 안에 깊이 박혀 있다 보니 그를 마냥 긍정적으로 평가하긴 어렵다. 하지만 송순 선생은 다르다. 수능 시험 언어영역 지문으로도 곧잘 등장했던 그의 시조는 여전히 기억난다. 가난한 가운데 초가삼간을 지어 달과 바람에게 각각 한 칸씩을 내어주고, 강산은 제자리에 놔둔 채 감상하겠다는 시조 말이다. 돈과 명예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오늘날의 사고로서는 공감이 쉽지 않은 대목이지만, 흘러가는 구름 좇아 풍월을 읊는 삶이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다시금 나의 시선은 소쇄원으로 향했다. 30분이 아니라 30일의 시간이 주어져도 충분히 알았노라 말하기 힘든 곳이 소쇄원이었다. 내가 바라본 것은 인간이 지은 자그마한 정자와 그 주변의 풍광이었는데, 난 그 곳에서 천국을 읽어냈어야만 했다. 천국을 거닐면서도 그 곳이 천국인 줄 몰랐으니 마음의 평온은 아직 멀었다.

 

q*****2 2014.08.3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