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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령을 아무리 내려도 조선의 숭음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조선왕들, 금주령을 내리다
"금주령을 아무리 내려도 조선의 숭음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조선왕들, 금주령을 내리다" 내용보기
1920년대 미국 전역에서 술의 제조, 판매, 운반, 수출입을 금하는 법, 이른바 '금주법' 이 실시된 적이 있었다. 당시 빈발하던 범죄가 술 때문이라는 판단하에 술을 금하게 된 것인데, 이 금주법이 효과를 거두었다는 평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대대적인 밀주 사업을 통해 알 카포네 같은 범죄자가 막대한 돈을 벌었고, 밤의 황제로 등극하는 역효과가 벌어졌던 것이다. 조선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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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미국 전역에서 술의 제조, 판매, 운반, 수출입을 금하는 법, 이른바 '금주법' 이 실시된 적이 있었다. 당시 빈발하던 범죄가 술 때문이라는 판단하에 술을 금하게 된 것인데, 이 금주법이 효과를 거두었다는 평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대대적인 밀주 사업을 통해 알 카포네 같은 범죄자가 막대한 돈을 벌었고, 밤의 황제로 등극하는 역효과가 벌어졌던 것이다.

 

조선에서도  법이 아닌 임금의 명령으로 술을 금하는 금주령이 꽤 자주 내려졌는데,쌀을 비롯한 곡물을 아끼려는 의도가 주였지만 언행을 바로하고 술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고 업무에 태만해지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도 금주령의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금주령의 효과는 역시나 미미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조선에서는 기본적으로 술을 숭상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아침마다 열렸던 조회 후에 임금까지 참여해서 술을 마시는 경우도 다반사였고, 밥이 보약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술을 곧 약으로 여겼고, 심지어 혹은 밥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있었다.

예외의 경우도 많았다. 음복이 필수인 제사에 혼례, 장례 등의 집안대소사 행사로 인한 음주는 예외였다. 덧붙여 금주 단속에서 부정까지 횡행했고, 고관대작부터 여전히 술을 마셨으니 금주령이 제대로 지켜질리가 만무했다.

 

 '조선 왕들 금주령을 내리다'를 읽으면서 어째 3공화국 시절 요정정치가 공공연히 이루어졌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대궐에서 술을 마실 수 있었고, 신하가 임금에게 술을 권하는가하면 교류와 풍류를 즐기는데 술은 중요한 수단이었던 것을 보면. 이렇게 숭음(崇飮)하는 풍토 속에서 술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졌던 것은 필연적이었던 것일까. 

 

자동차가 있는 시대에 살았더라면 음주운전 사고를 저지르고도 남을만큼 술을 통제하지 못하는, 그렇게 계속 마시게 되면 요즘으로 치면 알콜 의존증에 걸릴 것같은 인물도 있었다.

정인지의 경우에는 술에 취해 세조에게 너라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자칫하면 불경죄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한 것인데, 다행히  세조 자신이 호주의 군주라서 그랬는지 정인지의 주사를 불문에 붙였다.

문제는 이렇게 엄청난 주사를 부리고도 정인지는 또 임금에게 실수를 저질렀으니, 낮술에 취하면 애비 에미도 몰라본다는 속설이 허언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하지만 정인지처럼 행운어린 인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금주령을 어겨 사형당하고 효수됐던 경우도 있었으니, 금주령에 대한 처벌도 복불복이었던 셈이니, 처벌에 일관성이 없어보였다.

 

아무리 봐도 금주령은 그다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았다. 금주령이 아니더라도 임금이  술을 경계하는 계주교서(戒酒敎書)를 반포해도 술을 숭상하는 분위기는 여전했다. 조선 중기 술이 일상화되었고, 후기에 이르면 한양에는 술집이 차고 넘치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새해가 며칠 남지 않았는데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금주를 선언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그만큼  술의 유혹을 이겨내는 데에는 강한 의지와 결단력이 필요한 것인데, 그렇다면 2018년 지금 이 시점에서 금주법이 시행된다면? 입법 자체가 불가능하겠지만, 금주법이 제정된다 해도 역시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음성적으로 술을 구할테니 술값이 폭등하거나 밀주가 성행하는 부작용마 두드러지지 않을까.

자고로 인간의 욕구를 법으로 강제한다고 성공한 예는 동서고금 그 예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술이 주는 인간사의 즐거움도  분명 존재하는 법이고, 부정적인 면이 있다고 법으로 강제하는 법률 만능주의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을테니. 

 

 

 

e****0 2018.12.29. 신고 공감 1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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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들, 금주령을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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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술을 좋아하고 즐겨 마시는 터라 술에 관한 이야기로 '조선 왕들, 금주령을 내리다'는무척이나 궁금증을 유발하는 책이었다.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살펴 본 조선의 술 문화를 만나 볼 수 있어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술은 만악의 근원이라고 첫 문장에 띄워 놓았지만 나로서는 그렇게 까지 술을 폄하하고싶은 생각은 없다. 아니 어쩌면 나는 문장과는 달리 술 예찬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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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술을 좋아하고 즐겨 마시는 터라 술에 관한 이야기로 '조선 왕들, 금주령을 내리다'는

무척이나 궁금증을 유발하는 책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살펴 본 조선의 술 문화를 만나 볼 수 있어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술은 만악의 근원이라고 첫 문장에 띄워 놓았지만 나로서는 그렇게 까지 술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니 어쩌면 나는 문장과는 달리 술 예찬론자가 될지도 모른다.

다만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통해 선조들의 음주 실태가 그러한 경향을 띄었을

것이란 사실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술과 정치의 불가분의 관계는 통치의 행위로 생각할 수 있다는 이야기고 애주가를 넘어

호주가로 치부되는 태종과 세조, 영조는 대단한 술 실력을 자랑 했던 모양이다.

반면 성군으로 알려진 세종은 술을 가장 싫어 했던 왕이고 주량도 약했다고 하니 성군의

자질을 타고 나지 않았나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주식동원(酒食同原)이자 주약동원(酒藥同原)이라는 말처럼 술은 바로 음식이요, 약이었던

것으로 보아 술에대한 사람들의 사랑이 매우 높았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 시대의 술에대한 평가와는 달리 음식이자 약으로 술의 가치가 격상되는 사회였고

그런 대상으로의 술을 대하는 음주 풍습은 숭음의 풍조를 낳게 되었고 이는 조선 중기이후

음주에 대한 폐해의 사회화로 임금의 금주령이 내려지는 사례가 되었다.

금주령은 사람들의 총명함을 잃게 하고 술을 빚는 양조로 인해 곡식의 감소가 심화되어

금지해야 하고, 국가전매와 사치금지와 같은 폐단을 그 이유로 들었는데 이러한 금주령은

개인적인 금주령이라기 보다는 집단적 숭음 또는 집단적 음주를 제한하고자 하는 뜻이

더욱 강했다고 생각하는것이 옳을 듯 하다.


우리의 현실에서도 최근까지는 술을 마시고 저지른 실수 또는 범죄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처벌을 내린것이 조선의 왕들이 그 시대 사람들이 저지른 실수를 관대하게 처분했던데 

기인하는 것은 아닌지 그 내력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다고 하겠다.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밝혀 낼 수 있는 다양한 문화와 법체계 등은 그 시대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 종합적이고 총제적인 사료라 조선시대라는 일 단면만을 나타내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겠지만 근대를 잇고 현대를 탄생시킨 역사로 현대 한국의 술 문화의 기원

같은 맥을 보존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지난 과거에서 배울 수 있는 좋은 점들을 오늘의  새로움으로 배우고 익혀 나감이 옳으나

거와 같은 금주령은 없지만  스스로 자제하고 술을 즐기는 새로운 숭음의 시대를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n********1 2014.08.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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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지 말라 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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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취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선처를 해달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취하도록 술을 마신 것 자체가 그리 옳진 않을 터임에도 그로 인한 잘못에 대해 사회는 이상할 정도로 관대하다. 술을 끊는다는 게 담배를 끊는 것만큼은 아니나 결코 쉽지만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려나. 술로 인한 문제는 이전에도 끊이지 않았음을 역사 속 많은 기록은 보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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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취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선처를 해달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취하도록 술을 마신 것 자체가 그리 옳진 않을 터임에도 그로 인한 잘못에 대해 사회는 이상할 정도로 관대하다. 술을 끊는다는 게 담배를 끊는 것만큼은 아니나 결코 쉽지만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려나. 술로 인한 문제는 이전에도 끊이지 않았음을 역사 속 많은 기록은 보여준다.

성리학에 뼛속까지 물든 양반들이 지배했던 조선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겉으로는 오로지 근엄한 것만을 따르는 듯했으나 술 없는 삶은 그들에게도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였던 모양이다. 급기야 왕이 나서 금주령을 내려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는데,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 그와 같은 시도가 성공했을 리는 없다. 사실 왕도 인간이다. 본인부터가 술을 좋아해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명령을 내리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스스로도 위신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였던지 술을 마시는 것 자체를 금지했던 왕도 물론 있었으나 만취해 처신을 잘못하는 것만을 제지하려 들었던 왕도 꽤 여럿이었다. 무엇이 되었건 법과 제도를 동원해가며 강제하는 것은 부작용을 야기할 소지가 크다. 술에 관한 부분도 마찬가지였으니, 공신을 비롯한 고위층의 경우 대개가 처벌로부터 자유로웠던 반면 탁주를 즐겨 마셨던 백성은 어김없이 법망에 걸려들었다. 곡식으로 술을 빚었고, 그로 인해 백성이 굶주리는 것을 방지하고자 내렸던 것이 금주령인데 오히려 백성에게 고통을 선사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라 하겠다.

여느 시대보다 조선에 대해서는 나름 잘 안다고 자부하던 이들도 이 책을 통해 조선의 진면모를 엿볼 수 있을 듯하다. 대궐에서 조회를 마친 후 국왕은 신하들에게 술을 하사했다. 이는 왕이 제 권위를 표하는 방식일 수도 있으나 동시에 신권이 훨씬 더 강했던 조선이라는 사회의 특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이기도 했다. 술이라는 도구를 동원해 신하들을 다독여야만 위신이 살았던 조선시대의 왕은 허수아비까지는 아니어도 결코 무소불위의 권력을 소유했던 존재는 아니었다. 술이 약으로 활용되기도 하였으니, 왕이라면 매일매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술을 마셔야만 했다. 술을 하사하는 데는 능했으나 스스로 술을 마시는 것만큼은 끔찍이도 꺼려했던 세종은 재위 기간 내내 고통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거듭되는 신하들의 요구를 매번 물리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아무리 권위를 드러내는 도구이자 의약품의 일환이라 하여도 술은 술이다. 과음은 언제나 문제를 야기했으니, 왕을 부정하는 말을 하거나 양반 신분에 어긋나는 추한 행동을 한 이는 어김없이 목숨까지도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취한 자는 벌할 수 없다는 논리 덕분에 살아난 이들이 꽤 많긴 하였으나 그렇다 하여 그 행동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법의 심판을 받지 아니 한 이들의 경우 과음으로 요절에 이르기도 하였으니 이래저래 안타까운 인생을 야기했던 게 바로 술이지 싶다.

폭탄주에 벌주까지, 이야기들은 오늘날과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은 음주 문화를 담아냈다. 결국 오래도록 우리는 술을 즐겨왔고, 앞으로도 술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뭐든 적당히가 답이다. 자칫 국민들이 자제력을 발휘하지 못할까 너무도 염려한 나머지 착한 국가가 나서 주류에 거한 세금을 매겨가며 국민 건강을 챙기려 드는 모양인데, 그 정도의 선택은 국민에게 맡겨두는 게 옳다는 생각을 해본다. 조선시대에 금주령이 결코 성공을 거두지 못했듯 술에 관한 시도는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q*****2 2014.10.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