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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고대 국가 중 하나인 백제의 역사는 상당부분이 베일에 쌓여있다. 동시기에 공존하였던 신라는 삼국을 제패하며 끝까지 살아남아 승자의 역사를 썼고, 고구려는 비록 신라와 협공한 당나라에 망하였으나 후손들이 기어코 계승의식을 이어나간 끝에 후기의 이름인 고려를 되살려내었다. 그러나 후삼국 혼란기를 고려가 정리하면서 백제 유민의식은 붕 뜨게 되었다. 영토가 북한과 만주 일대에 속하여 현대의 우리가 쉽게 조사하지 못하는 고구려나 발해와는 달리, 한반도의 가장 알짜 지역을 차지했던 백제는 영토가 여전히 우리나라 땅에 그대로 속하고 있음에도 자료가 많이 부족하여 아쉽다. 특히 백제의 멸망은 오해를 많이 받는데, 궁녀 삼천명을 거느렸던 의자왕이 사치와 향락 끝에 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삼천궁녀설은 근거조차 없으며 의자왕은 망하기 전까지만 해도 라이벌 신라를 궁지에 몰았던 꽤나 능력있는 군주였다고 한다. 신라 영토를 탈환하며 자신의 위세를 세우고, 그 업적을 활용하여 내부 정치에서도 귀족들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귀족들의 파워가 강했던 백제에 갑작스레 카리스마있는 군주가 나타나 정계를 휘어잡으며 갈등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것이 당나라의 대군이 나타나자 빛나는 전공을 자랑하던 의자왕이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백제는 신라와 근 백년간 철천지 원수가 되어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였는데, 의자왕은 한술 더 떠 틈만 나면 신라를 공격해온 정복군주였으니, 원수인 신라로부터의 모함과 의자왕으로부터 권력을 빼앗긴 후 신라에 귀순한 백제 귀족들의 원망이 모두 의자왕에 대한 부정적인 기록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 아닐까. <백제의 마지막 왕은 누구인가>는 백제의 멸망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 따르면 그때 당의 관심사는 고구려였으며 백제에는 관심이 적었다고 한다. 백제는 신라가 이를 갈던 대상이었으나, 동맹의 주도권을 갖고있던 당은 백제의 멸망보다는 복속 정도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당의 의도 역시 백제의 빠른 항복에 주요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생각보다 항복한 백제에 대한 당의 대접은 박했고, 의자왕과 귀족들에게 가해지는 모욕 속에 백제인들 사이에서는 속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부흥군이 꿈틀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백제를 함락한 당나라는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융을 앞세워 백제땅을 다스리게 하였다. 백제에 웅진도독부라는 이름을 붙여 자신들의 지방으로 임명한 것이다. 사실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중국의 여타 지방호족세력들과 같이 백제 세력의 명맥은 이어졌을 것이나, 그러려니 하는 당에 비해 동맹인 신라는 기회가 왔을때 백제의 씨앗을 말려버리고 싶은 철천지 원수였다. 한편, 군대를 가졌음에도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나라를 빼앗긴 백제 세력은 충실한 우군인 왜국으로 나가있던 부여풍을 데려와 추대하여 백제부흥전쟁을 벌인다. 부여융과 부여풍은 각기 다른 백제세력으로 맞붙었다. 백제의 영토를 거진 회복했던 부흥군은 명목상 세웠던 풍의 생각 이상으로 강한 에고에 내분이 일어나 버렸고, 상대적으로 유약해 보이는 부여융이 당과 함께 이끄는 세력에 패배한다. 풍은 고구려로 도망가 저항하지만 고구려마저 무너지면서 그 마지막 희망도 달아나게 된다. 융은 통일을 완성하겠다며 줄기차게 공세하는 신라를 도저히 못버텨 결국 당으로 달아나 버린다. 백제는 그렇게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일찍이 한강유역과 한반도 최고의 알짜 곡창지대를 독차지하고 전성기에는 일본과 중국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강성했던 백제 역사의 소실은 후손으로서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흥미로운 것은 백제의 최후를 결정지은 백강전투가 한중일이 모두 맞붙은 동아시아 국제전이었다는 사실이다. 백제 부흥군-왜/ 백제유민-당-신라 로 나뉜 이 전투가 향후 고대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이때 신라에게 크게 당한 왜군은 이후로 영영 신라에 적대감을 갖고 심지어 통일신라 침공계획까지 세웠다고 한다. 비록 계획에 그치다 흐지부지 되었으나, 이후 역사적으로 일본 정치 세력들이 주기적으로 꺼내드는 한국에 대한 적개심의 직접적인 뿌리가 바로 형제국과 같던 백제의 멸망과 백강전투 대패로 인한 신라에의 감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백제의 마지막 왕은 누구인가>에는 기존에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백제 멸망과정에 비하여 훨씬 더 자세하고 정확한 탐구들이 실려있다. 예식과 예식진이 동일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 여전사 계산 공주 설화, 교과서에 이름만 짤막하게 언급되는 복신과 도침, 흑치상지의 행적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미스터리한 백제 멸망사를 비교적 합리적인 추론으로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어 읽고 난 후 긴 여운을 떨칠 수 없게 한다.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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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백제, 신라 이렇게 삼국시대의 경쟁은 나당연합군에 의해 결국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통일신라시대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은 우리가 국사시간을 통해 익히 배운바이고 백제가 망했지만 다시 백제를 재건하기 위한 운동이 있었음 역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의자왕의 두 아들인 부여융과 부여풍이 어떤 인물이었고 그들이 백제의 흥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으며 그 과정중에 일어난 다양한 백제의 의병운동 그리고 흥복운동시기에 왕성이었던 주류성과 백강의 위치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는데요. 특히 백제가 멸망한후 의장왕의 아들들인 부여융과 부여풍이 각각 친당, 친왜를 기반으로 어떻게 다른 길을 가야만 했는지를 비교함으로써 과연 누가 백제의 마지막 왕으로 칭할수 있는지를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무너졌지만 다시 빠르게 세력을 회복하여 당과 신라에 대항을 하였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더라구요. 아울러 백제가 멸망하지않았다면 고구려 역시 아마도 더 길게 존재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당나라의 목적은 신라와 달리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는데요. 신라는 당의 세력을 이용하여 백제의 땅과 고구려의 땅 일부를 합쳐서 통일신라를 이루었지만 고구려가 중국의 수,당과 대등한 관계를 가졌던 자주성이나 독립성은 없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불행하게도 백제의 역사는 훗날의 삼국사기등에 의존해야하고 당나라나 일본의 역사서에서 기록을 찾아야했기에 백제에 대해 우리는 신라보다는 잘 모르고 있으며 앞으로 역사계에서 더욱 관련 유적이나 기록을 발굴해서 잃어버린 백제의 진면목을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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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고구려, 신라와 더불어 우리 고대사의 찬란한 한 부분을 담당했던 나라다. 중국 만주 지방과 일본까지 진출해서 국력이 셀 때는 고구려까지 위협했던 나라다. 경주에 신라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반면에 백제는 그 유구한 역사에 비해서 유물 유적이 적게 남아 있어서 무척 아쉬운 나라이기도 하다. 사실 삼국은 신라가 했지만 국력 자체를 보자면 신라 보다 훨씬 강했던 나라가 백제다. 신라를 멸 하지는 못해도 당과 연합한 신라에게 그렇게 쉽게 멸망당한 나라는 아니었다. 사실 신라가 당을 끌어들인 이유도 지속적으로 백제에 압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백제의 국력은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신라가 국력을 모으고 당과 연합해서 고구려, 백제를 멸하고 3국을 통일했다고 보통 알고 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까지 백제의 공세를 받아 내기도 힘겨워했던 신라가 어찌 보면 생각 보다 쉽게 백제를 멸망 시킨 것은 미스테리하다. 아무리 백제 의자왕이 말년에 흐트러졌다고 해도 국력이 급속도로 줄어 들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백제 말기의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는데 제목에서 느껴 지듯 기존의 개념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책은 백제 말 무왕부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무왕은 신라 선화 공주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왕인데 책에서는 무왕과 선화 공주와의 이야기와 함께 익산으로의 천도도 이야기한다. 무왕이 좀 더 오래 살았거나 의자왕의 의지가 있었다면 백제 최후의 왕도는 익산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무왕의 재위 기간이 길어지고 태자 책봉이 된지가 오래된 의자는 10년만에 왕위에 올랐다. 어렸을 때부터 영특하다고 소문한 그는 즉위하면서 지방을 돌면서 민심을 다독였다. 이때 죽을 죄를 지은 자를 제외하고 갇힌 자들을 용서하면서 큰 칭송을 들었다. 민심을 아우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공격해서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그리고 외치만 잘 한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는 왕권을 확립하고 국가를 풍요롭게 하는 등 대단한 군주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의자왕이 내내 그런 모습을 보였으면 우리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내외적으로 나라가 안정되었다는 안도감이었을까. 그는 그 이후에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다. 사치와 향락에 빠지면서 긴장이 풀린 것이다. 당시 신라와 당이 밀접하게 연결되고 고구려는 정정 불안의 상황에 있었는데 이것이 국제적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의 백제가 부강하다는 자만심에 빠져있었다. 당장 신라나 고구려를 멸망 시키지는 못해도 백제가 망할 가능성은 없다고 여긴 것이다. 어찌 보면 목표 상실이었을 수도 있겠다. 나라의 경제력도 괜찮고 당과 고구려와의 사이도 나쁘지 않고 신라는 언제든 쳐들어가서 밀어붙일 수 있으니 그냥 그 상태로 만족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백제의 압박에 처절한 생존 의지를 가진 신라가 전방위적으로 노력한 결과 당과 연합해서 백제를 칠려고 했다. 이것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당이 직접 침략 하리라고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도성인 사비가 당군에 포위 당한 상태지만 의자는 웅진에서 굳건히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비가 함락당하고 며칠 후에 바로 항복한다. 사실 여기까지 보면 백제의 군사력이 떨어져서 항복했다고 할 수 있다. 책에서는 의자의 항복의 뜻이 말 그대로 전투에 졌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 왕조의 멸망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음을 말한다. 당시 의자왕은 당의 요구를 들어주고 친당적인 정권을 세우면서 전쟁을 끝낼 생각이었을 것이다. 비슷한 경우가 역사에는 많다. 당도 굳이 백제를 멸망 시키기 보다는 자신들의 유리한 아군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신라가 백제에 대한 원한이 너무나 깊었고 이후 이어지는 부흥 운동으로 결국 수 백 년 역사가 사라지게 된다. 백제는 의자왕이 수 많은 사람들과 당으로 끌려감으로 끝이 난다. 의자왕이 생각한 대로 단순 항복이었다면 끌려 갔으면 안된다. 끌려 갔다고 해도 다시 오거나 아니면 새로운 왕이 옹립 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백제에 공식적인 왕은 그 후로 없었다. 대내외적으로 인정 받는 왕 즉위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백제의 마지막 왕은 의자왕이라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 이후 백제땅에 왕이 새롭게 나타났음을 근거로 마지막 왕은 의자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의자왕이 당으로 끌려간 뒤에 당은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세우고 직접 통치를 하려고 한다. 여기에 도독으로 의자왕의 아들인 융을 임명한다. 그러나 백제땅에는 당군에 저항하는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른바 백제부흥운동. 복신과 도침을 중심으로 저항에 나선 결과 대부분의 백제 땅을 수복할 수가 있었다. 이때 이들이 왕으로 삼은 사람이 풍이었다. 풍왕은 일본에 가 있던 의자왕의 아들이었는데 친당적인 융과 친왜적인 풍이 대립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모든 멸망에는 분열이 있는데 이들에게도 분열이 있었다.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이어서 풍이 복신을 죽이면서 부흥 운동 세력은 분열되고 만다. 결국 구심점을 잃은 저항 세력은 광복에 실패하고 만다. 당의 도독이 된 융도 신라에 대한 공포감으로 당으로 떠나게 되고 결국 백제는 더 이상 저항할 세력도 의지도 없게 되고 수 백 년 역사가 끝이 나게 된다. 책은 백제 최후의 전투로 백강 전투를 들고 있다. 풍왕의 요청으로 원군으로 온 왜군과 백제의 연합군이 당과 신라의 연합군에 대패를 하면서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게 된다. 백강 전투에 대해서는 사실 많은 연구가 된 것이 아닌데 이 책에서는 정예 수군이 따라온 당에 비해 단순 병력 수송선만 온 왜군이 패할 수 밖에 없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나름 설득력이 있다. 지리와 상황을 잘 아는 백제 연합군이 힘도 못 쓰고 패한 것은 단순한 전력 차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책에서 제시한 관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 긴 분량의 내용은 아닌데 좀 난이도가 있는 내용이다. 기본적으로 삼국 시대와 백제사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 있어야 설명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지은이가 주장하는 바에 대한 반론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읽히진 않는다. 그러나 백제 멸망의 상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많은 토론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어서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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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마지막 왕은 누구인가』 ![]() 이도학 (지음)/ 주류성 (펴냄) 글쎄, 가끔 백제 역사는 과연 어디까지 왜곡된 건지 의문이 생기는 순간이 많다. 당나라와 힘을 합친 신라가 당대 백제 역사를 어디까지 설정한 건지, 삼국사기를 읽을 때마다 어디까지나 역사란 승자의 관점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읽는 역사이지만 독자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다 ^^ 이 책은 무왕 시대 배경으로 시작하여 백제 멸망 이후 흑치상지 등 부흥 운동에 이르기까지를 포괄적으로 서술한다. 백제의 옛 땅은 어디에서 어디까지였는지 궁금하다. 의자왕의 아들 웅과 풍이라는 인물.... 부여풍은 의자왕의 몇 째 아들이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 의자왕 4년 융을 태자로 책봉했다는데 풍이 융보다 먼저 태자로 책봉되었다면 그 원년 사이어야 한다. 부여풍의 배우자는 누구였을까? 책이 주는 질문 외에도 많은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다. 무왕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선화공주와의 결혼이다. 마를 캐던 서동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을 아내로 맞이하기까지 우리는 동화나 설화로 만나왔다.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의자왕 초기 기록에서 의자왕은 자애롭고 지혜로운 왕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왕의 타락한 모습만 기억하고 있다. 왕과 공주의 갈등은 우리 설화의 원형이다. 이 책에서 의자왕과 계산 공주 이야기를 처음 알았다. 미녀 여전사라니 더더욱 놀랍다. 백제를 지원하기 위한 왜의 움직임, 일본에 남은 7세기 후반 동아시아 정세, 백제 관련 설화 자료들도 흥미롭다. 의자왕의 항복 과정 역시 의혹스러운 부분이 많았는데 이 책에서 짚어준 기존 역사책에서 만났던 채워지지 않은 공백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백제에 대한 애틋한 마음, 그리움이 남아있다.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 문화유산을 살펴보면 무덤의 장식 하나도 예사롭지 않게 보존되어 있다. 반면 부여 여행에서 계백 장군의 묘를 보았던 10년 전이 떠오른다. 자리는 명당 중 명당이었다. 마지막 전장터인 황산벌 가까운 곳이었다. 나는 마치 내 장군이 돌아가신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어린아이들 두어 명이 장군의 묘에 올라가서 놀고 있었다. 망한 나라의 장군은 죽어서도 짓밟히는 채로 방치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더 잘 복원되고 꾸며져 있으나 그 당시에는 왜 그리 초라하게 느껴지던지... 사라진 기록, 지워진 기록에 대해 그리고 일본에 남겨진 백제 관련 기록을 모두 모으면 하나의 퍼즐이 맞춰질까 늘 안타까운 역사의 장면이다. 7세기 백제 동북아시아 국제 정세와 역사인식을 새롭게 하는 책이다. 역사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
![]() 역사를 배운 입장에서의 나, 우리가 기억하는 한 백제의 마지막 왕은 의자왕이다. 그런데 지금 다시 백제의 왕은 누구인가 하고 묻는 의미는 무엇일까? 분명코 나당 연합군에 의해 660년 백제가 멸망했다지만 그 이후 의자왕의 두 아들 부여융과 부여풍의 벡제 재건운동이 존재했음을 생각하면 국가체제로의 백제는 사라졌을지언정 재건을 위한 노력으로의 백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음을 살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국제정세는 그리 만만치 않게 한반도의 백제에 미치고 있었으니 부여융과 부여풍의 백제 제건운동의 향방에 따라 백제의 마지막 왕이 결정될 수도 있는 계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대척점에 선 형제 부여융과 부여풍, 그들의 백제 재건운동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백제의 마지막 왕은 누구인가?" 는 660년 의자왕을 끝으로 멸망한 백제의 모습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의 국가적 위상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교훈을 얻고 나아갈 길을 올바르게 새길 수 있도록 도움주는 책으로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백제의 마지막 왕과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언뜻 생각하면 그 연결 고리를 쉬 찾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 나, 우리는 그러한 물음이 대한민국의 현실적 국제위상에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의자왕의 두 아들 부여융과 부여풍은 모두 왕자의 신분으로 멸망한 백제의 재건을 위해 고군분투한 인물로 각각이 지향하는 바는 같았으나 결과는 끝을 이루지 못한 상황으로 결말을 맺는다. 백제 멸망 시기의 국제정세는 신라와 당의 연합, 백제와 왜의 연합이라는 국제정세가 그 흐름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대상이었지만 이러한 백제의 위상은 백강전투를 통해 극명해 진다. 멸망한 백제를 재건키 위한 부영융을 회유한 당, 30년간 일본에서 삶을 살았기에 왜의 힘을 빌어 백제 재건에 나선 부여풍은 자신이 할 수 있다 생각했을 방법으로 백제의 재건을 위한 구국운동을 벌였지만 멸망한 백제의 재건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제정세 속에서 당은 신라와 협력해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 까지 멸망시키는 과정 속에서 신라는 어부지리의 이득을 얻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백제의 왜와의 결속은 오랜 교류와 전통적 결속을 배경으로 한 국가 재건운동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부여융과 부여풍 그 어느 누구도 백제 재건이라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음을 아쉬워 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백제의 국제적 위상이 현실의 대한민국이 가진 국제적 위상과 맞물려 있음을 생각해 보면 반면교사라는 말을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역사에 대한 인식만큼이나 역사를 해석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하지만 기준이나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 합리적인 근거의 제시와 추론을 통해 보다 진실에 가 닿을 수 있는 역사해석이 아쉬울 뿐이다. 더구나 지금 현실의 대한민국의 역사학계의 수장들이 역사왜곡에 앞장서고 있는 뉴라이트계 인물들이고 보면 그마저 있는 역사적 위상마저 흔들리고 고스란히 나라를 누군가에게 바치는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백제의 재건을 위해 고군분투 했던 부여융과 부여풍과 같은 대척점에 선 인물이 있었던 백제 시절의 그 때가 지금보다 더 나은 시대 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저자는 그러한 국제적 위상 속에 부여융과 부영풍의 백제 재건운동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담아내고 백제, 신라, 당, 왜의 국제적 질서 속에 존재하는 지속가능한 백제를 꿈꾸었을 그들의 모습에서 오늘 나,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판단을 해보게 된다. 그 해답을 명쾌하게 내릴 수 있는 상황인가, 그렇다면 나, 우리는 어떤 방법을 택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꿔볼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은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삶의 문제들이라도 부차적인 일들이라 판단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역사를 잊은 민족을 말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상황은 역사를 잊고자 하는것 같은 작태를 보여준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책을 통해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길 전해본다.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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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은 개인 역량 발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갈등이 심해지면 비극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라이벌의 신분에 따라 나라에 위기를 가져오거나 멸망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삼국지의 영웅인 유비, 조조, 손권은 각 나라의 군주면서 라이벌 관계였고, 이들의 갈등은 대를 이어 위나라의 통일까지 이어졌다. 후백제의 견훤의 아들들의 갈등은 후백제가 멸망하는 원인 중 하나였으며, 고구려 또한 연개소문 아들들의 반목으로 멸망하고 만다. 조선 조 이방원과 이복 동생들의 라이벌 관계는 왕자의 난이라는 비극으로 끝맺음 되었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융과 부여풍도 라이벌 관계였다고 한다. 이도학의 <백제의 마지막 왕은 누구인가?>는 두 형제의 갈등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백제의 마지막을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역사의 대척점에 선 형제, 부여융과 부여풍'이다. 대륙을 차지한 당나라의 압박이 한반도에 까지 미치자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볼모가 되어 당나라로 보내지고, 부여풍은 일본(왜)로 가게 된다. 약소국의 왕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익을 위해 타국으로 보내져서 두 형제는 만 리가 넘는 먼 거리로 나눠진 것이다. 특히 태자였지만 정치적인 문제로 원자로 각하되었다가 백제 멸망 후 다시 당나라에 의해 태자가 된 부여융의 이야기와 왜에서 30년간 머물며 가정을 이루었지만, 고국을 구하기 위해 한달음에 원군을 끌고 왔지만 처참한 패배로 당나라에 끌려가게 된 부여풍의 이야기에서 형제 간의 애증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현존하는 백제의 유물과 역사적 기록을 통해 두 형제의 관계와 그들의 인생에 대해 조명한다. 그리고 이들이 겪은 백제 마지막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며, 두 형제가 왜 라이벌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의 마지막은 어떠했는지를 학자의 시각에서 살펴 보고 있다. 특히 역사적 배경지의 현재 사진을 수록하여 단지 역사책에 실린 옛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임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다. 그래서 백제의 마지막 왕은 누구일까?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