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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장편소설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 이후 첫 소설! 순수하면서도 도발적인 상상력이 가득한 김멜라 신작 #환희의책 #김멜라 #현대문학 아주 낯설고 독특한 소설을 만났다. 김멜라 작가는 저녁놀을 통해 처음 만났다. 그후로 젊은 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고 했지만 아직 읽지 못했다. 이 책도 지난해 사두기만 하고 책장에 있다가 이번 여름 건져낸 책이었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물음표투성이었다. 응? 이게 무슨 소리야? 벌레라고? 서술자가 지금 세 마리의 곤충이란 말이지? 시작부터 독특한 이 소설, 꽤 흥미로웠다. ** 관찰 기록을 매끄럽게 정리하는 톡토기(톡토기라는 곤충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 목격한 장면들을 시나리오의 형식으로 재현하는 거미 ** 그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종합하는 해석자 역할을 맡은 모기 톡토기와 거미, 모기는 '비생식 동거 집단’인 두 레즈비언(일명 두발이엄지, 호랑&버들)을 관찰한다. 그들은 두발이엄지의 삶이 슬픔의 계절과 기쁨의 계절이 서로 다른 시점으로 찾아오지만, 그 안에서 서로를 각성시키고 관계를 단단히 만들어나가는, 어떤 시절의 주기로 반복되는 시간의 연속체라고 결론 내린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수의 정상인(이라는 말도 좀 웃긴 표현이라고 생각한다)의 평범한 일상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 틈에 소수자의 들어갈 틈을 내주질 않는다.(세상이 점점 바뀌고 있다고는 해도) 다수에 포함되지 않는 소수의 삶은 이해하려 하지도 인정하려 하지도 않는다. 소수는 다수를 이해하려 노력하는데 다수는 왜 소수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가. 우리는 모두 두발이엄지일뿐인데 말이다.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게 아무리 얻어맞고 무너져도, 그렇게 지더라도 기어이 사랑하고 마는 것. 그렇게 사랑으로 껴안아 결국에는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P. 110~111 나도 그렇다고, 나에게도 당신의 그 상처가 있다고. 그렇게 입을 열어 자신의 생채기를 꺼내 보이면 어떤 이들은 버들 앞에 재판소를 세워 땅땅땅 판사봉을 때렸지. 냉소와 야멸찬 웃음으로 버들의 진심을 내동댕이쳤어. 그렇게 멍들고 찢어져도 버들은 계속 사람들과 연결돼 있고 싶어 했어. 「왜 너 자신을 낭비해. 왜 그렇게 너 자신을 꺼내서 진열해놔.」 호랑은 버들을 이해하지 못했어. 버들의 마음은 알았지만 버들의 방식은 위험하고 어리석어 보였지. 하지만 기절하듯 쓰러져 잠이 든 버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의 몰인정함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 끝없이 싸우고 있는 버들을 느낄 수 있었어. P. 136 버들 : 나는 언제나 네가 전부야. 네가, 내, 전부야. 호랑 : 그럼 됐네. 내가 전부니까 세상이 망하든 말든 상관없잖아. 버들 : 나는 괜찮아. 난 받아들였어. 근데 넌 어떡해? 호랑 : 내가 왜? 버들 : 넌 무서워하잖아. 죽는 것도 사는 것도. 그래서 나랑 못 헤어지는 거잖아. P. 148~149 여전히 번개가 내리치던 어느 밤, 침대에 누운 호랑이 버들의 허벅지를 끌어안았다. 버들은 호랑의 옷 속에 손을 넣어 등을 만졌고, 호랑은 버들의 아랫배에 뺨을 문질렀다. 두 사람의 팔과 다리가 등나무의 줄기처럼 엇갈려 있을 때, 불현듯 버들이 고개를 들어 창가를 봤다. 기척을 느끼고 귀 끝을 움찔하는 개나 고양이처럼. 잠시 뒤 창밖에서 빛이 번쩍했다. 버들은 번개가 치기도 전에 번개의 기미를 알아차린 것이다. 고양이를 어루만질 때 야옹 하고 고양이가 울기 전 그르릉 하는 배 속의 울림을 먼저 느끼듯이. 저 얼굴이 그 얼굴일까. 호랑이 버들을 바라봤다. 그래, 이제 나도 괜찮아. 죽음이든 삶이든. 그러니 나에게 무너져 내려. P. 163 호랑이 헛웃음을 지으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어. 뭐라고 설득해야 할지 몰라 눈앞이 막막했지. 호랑에겐 버들의 마음을 돌릴 근거나 당위가 남아 있지 않았어. 버들이 자신에게 어떤 사랑을 주든, 그 마음의 크기가 어떻든, 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어야 했으니까. 그래야 버들이 조금이라도 덜 아플 테니까. 세상을 사랑하는 너는 언제나 세상에 지게 되어 있고, 널 사랑하는 나는 그렇게 세상에 두들겨 맞고 돌아온 너를 또다시 아프게 할 수 없으니까. 그게 내가 아는 사랑, 너에게 배운 사랑의 방법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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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이 마르고’, ‘저녁놀’, ‘제 꿈 꾸세요’ 등등 김멜라 작가와의 만남을 늘 유쾌하지만, 또 묵직하다. 자칫 암울해지거나 깊은 생각이 빠져들 수 있을만한 내용들도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사랑스러움으로 ‘툭툭’ 던지고 간다. 하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김멜라라는 작가의 작품이 계속 기대가 되고, 나 또한 그의 작품 안에서 내 생활을 투영해보고, 나를 돌아보게 되고, 그러면서 또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자는 희망 또한 품어본다. 필력도 필력이지만 깊은 고민 끝에 세상에 던져낸 김멜라의 문장들은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고수하면서 간단한움직임만으로도 흐름을 잃지 않고 전체 판을 장악하는 고수의 느낌을 받게 한다. 그 또한 아픔과 슬픔과 우울함 속에서도 결국에는 지금 사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아름다워야 한다고, 우리 모두 사랑해야 한다고 하는 따뜻한 마음이 우선됐기 때문이리라. 특히 이번 작품을 읽으며 더욱 확고해진 생각은 김멜라 작가는 독자를 결코 위로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독자를 같은 자리로 데려간다. 도망치지 않고, 정리하지 않고, 함께 서서 같이 보고 같이 흔들리게 만든다. 쉽게 위로받는 말들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 김멜라 작가의 태도와 이 작품이 이끌어가는 곳은 그래서 더더욱 나에게 정직하게 깊이 다가왔다. 『환희의 책』 또한 환희를 말하지만, 그 환희는 밝거나 가볍지 않다. 오히려 죽고 싶음, 외로움, 파괴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 이 책의 환희는 기쁨이라기보다 끝끝내 흐르기를 멈추지 않는 힘에 가깝다. 소설은 처음부터 ‘이름’을 의심한다. 이름이란 하나로 고정할 수 없는 우리의 탈바꿈을 가두는 형식일 뿐이며, 우리는 한시도 멈춰 있지 않고 늘 다른 것으로 흐른다는 선언처럼 시작된다. “지구의 모든 구성원에겐 실상 어떤 이름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름이란 하나로 고정할 수 없는 우리의 탈바꿈을 가둬놓는 두발이엄지의 형식이다. 우리는 한시도 멈춰 있지 않고 늘 다른 것으로 흐른다.” 김멜라의 세계에서 인간은 정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계속 변형되고 탈피하는 존재다. 이 소설의 사랑은 더욱 그렇다. 『환희의 책』에서 사랑은 위안이 아니다. 상대를 살게 해주는 말도, 고통을 덜어주는 장치도 아니다. 오히려 “같이 죽을 수 있으니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는 문장처럼, 사랑은 죽고 싶음의 자리까지 기꺼이 동참하는 선택에 가깝다. “얼어붙은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뜬금없는 표정을 그리는, 그리지 않는, 흙탕물의 인간이라면, 그게 너라면, 나는 주저 없이 너의 죽고 싶음에 동참해주겠다고 (..) 같이 죽을 수 있으니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았어. (…) 죽고 싶은 삶에서 사는 힘을 주는 죽음으로,” 그래서 이 소설의 사랑은 위험하다. 세상을 사랑하는 이는 언제나 세상에 지게 되어 있고, 그 사랑을 아는 이는 두들겨 맞고 돌아온 사람을 다시 아프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세상을 사랑하는 너는 언제나 세상에 지게 되어 있고, 널 사랑하는 나는 그렇게 세상에 두들겨 맞고 돌아온 너를 또다시 아프게 할 수 없으니까. 그게 내가 아는 사랑, 너에게 배운 사랑의 방법이니까.” 김멜라는 사랑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사랑이란 결국 상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윤리이며, 그 고통 때문에 더 깊이 흔들릴 각오다. 『환희의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이 윤리가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해설이 말하듯, 이 소설에서 윤리는 관념이나 규범이 아니라 직접 삶을 살아낸 자의 고통에서 출발한다. 삶과 죽음, 생성과 파괴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담담히 수용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름과 경계로 쌓아 올린 인식의 벽을 허물 수 있다. 이 소설에서 환희는 무언가를 더 갖게 되었을 때 오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나’라는 틀을 벗어나는 순간, 나의 생각과 불안과 환희로 흐르며 나 자신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던 그 찰나에 가깝다. 그래서 자연과 인간, 사랑과 죽음은 계속 서로를 침범하고 겹쳐진다.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앎이 찾아왔다. (…) 그 한때의 지구, 한때의 태양, 한때의 수소 덩어리와 한때의 반짝임, 한때라는 찰나조차 없었을 때 그때 비로소” “나는 너의 생각과 너의 느낌과 너의 불안과 너의 환희로 흐르면서 나라는 틀 밖으로 나갈 수 있었으니까.” 김멜라의 문장은 종종 이렇게 묻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외로웠을까, 잠깐 반짝였다 사라지는 번개에 마음을 줄 만큼.” 그 질문은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왜 사랑하고, 왜 절망하고, 왜 그럼에도 다시 살아가려 하는지를 조용히 되돌려준다. 『환희의 책』을 읽으며 나는 이 작품이 삶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인간의 감정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윤리가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들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보여준다. 상처와 아픔, 서로에게 남긴 흔적들, 그리고 그 흔적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태도에서. 작가의 말에서 김멜라는 자연을 향한 경이감이 연인을 바라보는 자신의 틀에 박힌 시선을 깨뜨려주었다고 말한다. “이 소설을 쓰게 한 추동력에는 자연을 향한 경이감과 감탄이 있었지만, 자연이 주는 그러한 해방감은 저의 틀에 박힌 시선을 깨뜨려주었기에 더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 미처 알지 못했을 뿐, 우리가 웃거나 아파할 때 우리를 지켜보는 무수한 눈과 섬세한 몸들이 함께였습니다. 그 깨달음이 준 환희를 세상에 전하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말 中) 우리가 웃고 아파할 때 우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눈과 섬세한 몸들이 함께 있었다는 깨달음. 그 깨달음이 준 환희를 김멜라 작가는 끝까지 놓지 않고,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어한다. 그리고 김멜라 작가는 말한다. 죽음과 고통, 악과 파괴 속에서도 삶은 끝없이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며,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나’를 벗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이 작품은 설명하지 않지만, 짙은 감정과 잔상으로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 같다. ‘환희’를 약속하지 않지만, ‘환희’의 벅참을 느낄 것만 같은 감정. 결코 밝지 않지만, 그럼에도 삶을 꿋꿋하게, 담대하게 살아낼 것 같은 ‘단단해짐’. 그리고, 사랑이란 무엇인지, 윤리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그리고 환희란 어쩌면 끝까지 흐르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
| 김멜라 작가의 환희의 책입니다. 톡토기와 거미, 그리고 모기가 연구원이자 저술가가 되어 인간 연인인 버들과 호랑의 사계절을 곤충의 시점으로 관찰한 이야기로, 곤충들이 자신들의 연구 대상인 인간 연인이 치열하게 사랑하고, 때론 과거의 상처에 아파하며,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독특한 시점의 소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