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은 아이들이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미래의 어떤 세대를 그린 영화다. 원인 모를 불임이 전세계에게 닥친 것이다. 어떤 이유이에서건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세계는 카오스 그 자체이다. 책을 읽으면서 환경의 오염으로 인한 재앙의 그 실제를 확인하면 사실 그런 종류의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 허구 속의 일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다국적 대기업의 이윤에 기생하는 과학자의 양심이 휴지조각처럼 버려지는 탐욕스런 자본주의는 멈출 줄 모른다. 멈추려 속도를 낮추는 순간 두려움은 곧바로 파멸과 이어진다. 우리가 지금만큼 파괴하며 살기 전의 어느 세대로 돌아가더라도 그 파괴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삶이란 인간에게 얼마나 척박한지 상상할수도 없고 어쩌면 살아남을 수도 없을 지 모른다. 시간여행이라는 허구 속의 모험은 단지 상상속에선 달콤한 로맨스일뿐이다..그 로맨스 속의 불편함에 현대 인간은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어떤 환경적 재앙 앞에 기업과 정부, 단체들이 신처럼 받드는 믿음은, '얻는 이익'이다. 예를 들어 일일섭취허용량이라는 것의 개념은 실제 인간에게 위험한 리스크의 범위를 나타내는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규범적이며 정치적이고 상업적인 개념이다. 허용범위의 개념 뒤에는 얻는 이익에 비해 리스크를 허용할 만한가가 항상 숨어 있고, 그 화학물질을 사용해서 이익을 얻는 쪽은 소비자가 아닌 기업이다.
미국 의학 드라마 닥터 하우스(House MD)는 환자에게 닥친 질병의 원인을 알아 내기 위해 환자의 몸에 차가운 기계 와 주사바늘을 들이대는 대신 수련의들을 환자의 집으로 보내 집안 구석구석을 탐정처럼 조사한다 . 하우스의 의료 팀들은 냉장고 속과 욕실의 약품 선반, 그리고 청소도구함에서부터 쓰레기통과 배수구까지 집안 구석구석을 뒤진다. 또한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의 가족 친구들과의 면밀한 인터뷰를 통해 그가 방문했던 나라, 그의 행동 습관과 환경을 조사해서 병의 원인과 병명을 규명해 낸다. 병은 먹은 것, 공기를 통해 들이 마신 것, 생활을 통해 만진것 , 여행한 곳에서 옮겨온 것 , 그리고 가족력에서 기인한다는 아주 일반적인 상식을 이용해 범인을 잡듯 병의 원인을 잡아내어 치료방법을 적용하는 매우 이상적인 시스템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아무리 꿀같은 의료보험 혜택이 주어진다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일 듯하다.
18C 산업 보건 의학의 선구자 이탈리아의 베르나르디노 라마치니는 환자를 만났을 때 맥박을 재기 전 환자의 직업은 무엇인가를 질문해야 한다고 그의 저서 <노동자의 질병>에 전하고 있다. 오늘날 산업사회가 시작된 이래 질병의 원인이 작업장 환경에서 기인하는 경향이 폭발적으로 강해졌다. 특정한 화학물질의 장기간의 노출이 특정암, 파킨슨병, 신경정신병, 면역체계이상 등을 유발하는 사실을 누가 왜 어떻게 은폐하고 그러한 직업병을 가진 사람들을 기업과 국가와 단체는 어떻게 외면해 왔는가에 대한 적나라하고 방대하고, 신뢰성있는 고발 내용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일일섭취허용량은 선량한 소비자들에게 어떤 절대적이고도 과학적인 기준이라는 권위를 부여받아왔다. 세계보건기구니 미 유럽의 식품위생국이니 하는 선진국과 국제 단체들이 어련히 알아서 인류의 건강에 치명적인 해가 되지 않도록 일일섭취허용량을 정했겠느냐 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 책을 읽기 전 나와 같은 우민의 전형적인 믿음이었으니 말이다. 일일섭취허용량은 누군가가 창조해낸 블랙박스라는 사실이 책의 한 파트를 통해 샅샅이 해부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두렵고 고통스럽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동물들이 '겉으로 보기에' 아무 효과를 일으키지 않을 때까지 2주에서 2년까지 일정 농도의 독을 섭취시키고, 관찰한 후 그것을 무독성량으로 정하고 그것을 인간에게 적용하기 위해 10에서 100 혹은 1000까지의 계수를 아무렇게나 적용시켜 나눈다. 그 '아무렇게나' 결정되는 계수는 순수하게 결정권자의 상상력에 의존된다. 그러니까, 일일섭취허용량은 기업들이 맹독성 화학 제품들을 팔기 위해 고안해낸 허구이다. 실제로 아스파탐의 경우 일일섭취량을 훨씬 못미치는 양을 섭취해도 광범위하고 심각한 질환을 보이고, 임산부를 통해 아이의 혈액에 침투해 그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암을 유발하기까지 한다. 슈퍼마켓의 진열대에 가득찬 식품의 포장에는 깨알같은 글씨의 식품 첨가물이 수십가지씩 적혀져 있다. 이제 우리는 먹는 것에 대해 어떤 기준에 의지해야 할까.
죽음에 이르는 위험한 독성 화학 물질이 해충방재를 위해 농약을 치는 농부들과 화학물질을 다루는 작업장에서 시작하여 먹거리 전반과 일상 생활 전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게 되는 것을 묵과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살게 된 지금 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독성화학물질의 연구 자금과, 역시 기업의 인사들에 의해 좌우되는 각종 보건단체들에 또다시 나, 내가족, 내 아이의 생명을 맡기고 있는 현실이다. 목적이 이윤인 기업의 돈으로 움직이는 구조에 고스란히 인류의 생존을 맡겨야 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국제잔류농약전문가그룹과 같은 대표적 국제 전문가 그룹은 기업의 이윤을 위해 엄청난 자금을 받고 일하고, 기업에게 유리한, 근거도 없고 조작된 보고서를 대량 생산 생산, 인용하여, 무에서 유를, 엉터리 주장에서 학술적 진리로 탈바꿈시키고, 영업비밀이라는 방침아래 원데이터소스는 공개하지도 않는다. 기업에게 불리한 주장을 하는 일부 과학자들은 정부 기관을 통해 해고와 위협을 당하고 기업의 대변인들은 승승장구 다시 국제 기관의 핵심 위원으로 회전문 인사에 위촉되는 일이 세계의 건강을 책임지는 쪽 사람즐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독성 화학 약품과 환경적 재앙을 피해 과거로 돌아간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그 편리함의 댓가로 맞바꾼 것은 아이러닉하게도 죽음이다. 편리함을 생산하기 위해 독성 화학물질이 노출된 작업장에서 일하는 공장 노동자들. 독성 화학물질을 뿌려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들, 근거도 없이 화학물질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편리하게 조작된 일일허용기준에 적합 판정을 받고 당당하게 식탁에 오른 먹거리와 미실거리들, 세계 유수의 화학 업체들과 화학 독성학 전공 과학자들의 만성적인 유착 관계는 죽음을 앞당기는 독극물의 오염을 가속화시켰다. 획기적이고 선구적인 암 치료법이 꾸준하게 개발되고 있지만, 산업화 이후 급작스레 많아진 암 유병률은 계속 증가했고, 60세 이상의 나이가 되면 모두들 한줌의 약을 끼니때마다 먹어야 하는 게 표준인의 삶인 것처럼 만성적인 질병이 골골백세라는 사회 현상을 설명해주고, 정부가 나서서 인공수정을 지원해줘야 할 정도로 불임률은 급속도로 높아졌다. 농약은 인류 역사상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기 파괴적인 발명품이다. 인간이 다른 생물체를 해 하거나 죽이기 위해 만들어 꾸의 적으로 자연애 방출한 유일한 화학 제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거다.
LD50은 노출되는 동물의 반이 죽는데 필요한 화학 물질의 양을 측정하는 독성 지표로 화학 물질의 질량을 노출된 개체의 몸무게로 나눈 값 mg / kg으로 표시 한다. Ld50이 5mg/kg 이하인 고체 화학물질 20이하인 액체 화학물질 지극히 위험한 물질로 간주 된다 비타민c는 11900. 소금은 3000 청산가리는 0.5 ~ 3, 다이옥신은 0.02다. 독일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주입했던 치명적인 독가스,치클론B의 ld50은 1mg/kg이다. 이 유태인을 죽인 독성 물질이 곡물 종자를 처리하고 저장 곡물을 보호하기 위해 1997년까지 쓰여져왔다. 과학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독성 지표는 탐욕스런 기업 논리에 편리하게 이용된다. 기업들은 소금도 많이 먹으면 반쯤 죽는다는 이러한 논리를 확장하고 왜곡하여 독성 식품에도 섭취량에 못미치는 양을 먹으면 해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친다는 것이다.
신뢰성 있는 자료로를 충분히 납득 가능할만큼 지면을 아끼지 않고 조목조목 설명하고 따지고 해부한다. 저자의 지칠줄 모르는 탐구 정신으로, 우리의 식탁, 우리가 숨쉬는 공기, 우리의 토양, 우리의 물을 화학적 근본 성분을 파멸로 이끌고 있는 탐욕스런 기업과 그에 결탁한 과학자들 이란 이름의 또다른 기업인들, 민간연구와 공공연구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서 기업과 한 번도 일한 적이 없는 전문가를 구하기 조차 불가능한 사회. 이런 것들을 면밀히 해부하고 나면, 배반감과 충격으로 치가 떨린다.
1부에서는 농약으로 인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농부들의 사례. 다국적 화학기업과 이들을 옹호하는 연구자 집단의 검은 밀착 관계. 길고 지난한 과정의 법정 투쟁에서 농약 피해자들에게 들이대는 이중 잣대가 적나라하게 파헤쳐진다. 지시한 대로 적적량의 농약을 사용한 농부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수 배에서 수시배까지 특정암, 파킨스병, 면역 이상, 정신병 등에 걸렸다. 2부에서는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빼앗아간 많은 기업들의 독성 물질과 이들이 어떻게 독성물질이 파괴한 노동자들의 폐해를 은폐하고 조작하고 외면해 왔는지에 대해 다룬다. 3부에서는 아스파탐의 예를 들어 독극물 '일일섭취허용량'에 대한 과학적 사기극과 해결되지 않는 잔류 농약 최대 허용량에 대해 파헤친다. 여기서 예로들은 아스파탐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후 치가 떨렸다. 교묘한 방법으로 아스파탐은 설탕보다 좋은 건강식품이라는 이미지를 심어놓은 기업 광고에 속아, 그동안 아무렇게나 마신 아스파탐은 일일섭취허용량보다 적게 섭취하더라도 매일 몇주간 계속 섭취했을 때 나타나는 변화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아스파탐 섭취 연구에 자원했던 동료 의사에게 되돌아온 것은 실명이라는 무시무시한 결과였다. 연구는 중단되었지만, 보고서는 완성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규제기관은 아스파탐의 유해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기업이 돌아가는 전형적인 방식은 일단 화학자가 새로운 물질을 합성해서 시장에 내놓으면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물질이 초래할 수 있는 효과를 알게 된다. 이것이 기업이 돌아가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이 불활성물질이 아니라 천연 호르몬을 모방하는 합성 물질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도 에스트로겐과 암과의 관계를 연구 도중 우연히 증식하는 암세포가 새로운 플라스크의 사용에서 비롯되었다는 우연한 발견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인류는 한꺼번에 그 부작용이 어떤 형태로 일어날 지 모르는 탐욕스런 기업의 마루타가 되어, 언제 어떻게 파멸을 맞게 될 지, 파멸보다 더한 고통에 몸무림치는 지옥 속에 살게 될 지 모르는 일이다. <칠드런 어브 더 맨>은 엉뚱한 무한 상상력의 결과에서 출발한 공상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미래의 어느날 실제로 닥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경고한 통찰력 있는 영화이다.
|
|
지구촌이 경제성장에 매달려 오다 보니 물질적 생활은 풍요로워진 것은 틀림없다.돈과 물질만 풍족하면 권력과 명예도 저리가라 할 정도이다.그런데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농경사회에서 볼 수 없었던 문제들이 지구의 대재앙을 예고라도 하듯 그 조짐이 하나 둘씩 다가오고 있다.우선 기후변화,환경문제,식량문제가 바로 그것이다.인구 증가와 함께 식량문제가 대두되면서 1960년대 필리핀과 멕시코가 미곡의 신품종을 개발하여 녹색혁명을 이루어냈고,1975년에는 헬싱키 선언에 따라 경제,과학,기술 및 환경문제가 국제적인 협력에 따라 실천해 나갈 것을 약속했으며,1997년에는 교코 기후협약이 맺어지기에 이르렀다.하지만 혁명과 선언은 현실과는 따로 노는 것 처럼 보인다.이 문제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 들면서 각국의 이익 상충과 맞물리기도 하며,구체적으로는 정치가와 기업가 간의 암묵적인 합의에 따른 것으로 보여진다.
인간에게는 자연과 분리하여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경제개발은 개인의 삶을 풍요롭고 소득을 제고하는데 기여를 하지만 반면 개발이익과 상업 메커니즘에 의해 산과 강,토지의 형질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인체는 치사에 이를 정도로 그 심각성이 경악할 수준이다.아직 읽지를 못한 도서인데,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살충제 남용에 따른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경고한 환경학의 고전으로 불리우고 있으며,지금은 절판된 마리 모니크 로뱅(상기 도서의 저자)의 비윤리적이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의 실태를 고발한 《몬산토》는 곡류를 비롯하여 과일,야채에 이르기까지 농약의 잔류성분이 소비자의 인체에 흘러 들어간다는 것이다.마리 모니크 로뱅저자는 유전자 조작으로 잘 알려진 《몬산토》사의 연장선상 내지 다 말할지 못한 내용을 추가하여 《죽음의 식탁》을 현장감을 살려 리포트 형식으로 들려 주고 있다.저자는 설치류 및 원숭이와 같은 포유류에 대한 임상실험에 대한 소름 돋는 사례를 소개하고 있어 재삼재사 경각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체에 가장 좋은 식자재는 유기농 식품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유기농만을 찾아 나서기가 쉽지만은 않다.물론 요근래에는 생산자 표시가 구체적으로 표기되어 있고,성분 및 원산지까지 기입되어 있어 어느 정도 신뢰는 가지만 실제 눈으로 보지 않은 이상 100% 안심할 수는 없다.손과 발로 경작하던 농사가 기계로 대체화되었다.비료를 비롯하여 농약 살포를 하는데 제초제,살충제,살진균제 등을 때에 맞춰 살포를 하게 된다.저자는 살충제를 살생제로까지 불리고 있는 만큼 인체에 농약 잔류물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2차 세계대전과 함께 화학산업이 발달하면서 농산물 및 집안에서 사용하는 세제류,샴푸류 등도 강과 호수,바다의 생태를 오염시키고 있다.농약과 같은 식물 약재는 발암성,변이원성,생식 독성이 있는 물질로 분류되고 있기도 하다.식물 약재를 자주 사용하는 농부는 알레르기 비염,습진,천식,고혈압,당뇨병,경색,파킨슨병,알츠하이머병이 생긴다고도 한다.특히 먹이사슬상 농약 잔류물을 흡입한 미세생물이 생물의 꼭지점인 인간의 인체에 들어올 수가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농약의 위험성을 다시 한 번 생각케 한다.
농약의 잔류물은 인체의 신경계,면역계,내분비계에까지 교란을 시키면서 각종 질병을 유발시키고 있다.국민 안전과 노동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가 농약 잔류물에 의해 발병이 되었다면 해당 기업측에서는 쿨하게 사과하고 재발방지책을 내놓으면서 피해자에게는 위로와 보상을 해야 하는데,변명과 면피로 일관한다는 것이다.이는 정치가와 기업가 간의 이익 상충관계라는 함수에서 찾을 수가 있는데,매우 불쾌하고 비윤리적이다 라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파라셀수스가 말한 "양은 독이다"라는 말은 적든 많든 독성물질이면서 질병의 원인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이익창출에만 몰두하고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은 도외시한다는 것이 실정이다.게다가 누가 어떠한 기준으로 만들어 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납과 같은 물질이 인체에 유입되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일일섭취허용량'을 정해 놓기만 하고,사후대책은 손을 놓고 '나 몰라라'하고 있고,관련부서의 책임자마저도 '일일섭취허용량'의 기준 및 산정방법을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어물쩡거리며 딴전을 피우고 있다."이러면 안되잖아요!"라고 면박을 주고 싶다.
현실 속에서 먹고 마시며 바르고 잠자는 주거 공간에 이르기까지 인체에 무해한 것들이 얼마나 될까.아이러니하게도 가는 곳마다 독성물질,화학오염물질로 가득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소비자 모두는 개인의 생활지혜를 최대한 발휘하여 농약 잔류성 물질을 깨끗히 씻어 내고,인스턴트와 같은 가공 식품 및 식품첨가제,화학제품을 스스로 멀리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또한 일상에서 접하는 담배 연기나 방사선 혹은 과다한 자외선 노출 뿐만 아니라 음식,공기,토양,수질에 이미 들어 있는 산업 공정,농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화학오염물질에 대해 소비자 및 시민의 높은 의식 및 부도덕 기업체에 대한 고발 및 규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저자가 30년 동안 연구해온 책과 자료에는 납 오염,광우병,유전자 조작 생물체,농약,식품첨가물,아스파르탐,비만,일일섭취허용량 등이 잘 정리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저자가 국제잔류농약전문가그룹과 식품첨가물전문가회의를 위해 정부,유관 기관,제조업체,개인에게 보유한 데이터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을 하면서,이것은 농약의 독성학 데이터를 확인하려는 소비자단체나 환경 단체를 위해서인데,왜 원자료가 영업 비밀이 되어야 하냐에 대한 답변이 혀를 끌끌 차게 만든다.
"지적 재산권 보호 때문입니다.법적인 문제지요.데이터는 기업의 소유입니다.저희에게는 그것을 제3자에게 알릴 권리가 없습니다." -P349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효성에 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투명성이 담보되어야 생기는 신뢰도를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외 인간 감미료인 아스파르탐과 디에틸스틸베스트롤에 노출되면 각각 뇌종양 및 난소나 음경 기형을 일으킨다는 보고가 있다.일명 내분비계 교란물질로서 갑상선,뇌하수체,부신,난소,고환 등의 호르몬 활동을 조절한다.생명과 직결된 배의 성장,혈당,혈압,뇌 기능,신경계 기능,생식능력의 과정을 조절하기도 한다.플라스틱 포장재와 랩,PVC로 만든 물건,샴푸와 같은 바디 용품도 조심해야 하며,모유에 들어 있는 프탈레이트 농도와 요도밑열림증 같은 남아의 태아 기형 비율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산업화 및 기업의 이윤창출를 목적으로 기후,환경,생태계는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전락되었다.먹고 마시고 씻고 잠자는 환경이 이제는 안전지대가 아닌 만큼 소비자의 각성과 의식제고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형태로 소비자의 눈과 귀를 기만하고,발각되면 벌금 몇 푼으로 끝내려는 몰지각한 상업윤리의 근절은 언제 사라질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내 건강과 안전은 스스로 챙기면서 건강에 유해한 독성물질의 위험에서 벗어나야겠다.저자는 언론인으로서 인류의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위해 30여 년을 두 발로 뛰고 취재한 결과를 담대하게 들려 주고 있는 점에서 존경의 염(念)을 보내고 싶다. |
|
매일 마주하는 식탁에 죽음이 드리워져 있다는 제목이 자극적이다. 웰빙 이라는 단어가 광풍처럼 번지며 너도나도 좋은 먹거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전까지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있던 기업들마저 자사의 제품 광고에 유기농, 웰빙이라는 카피를 넣어가며 유행을 부추겼다. 시사프로그램들 중 소비자의 먹거리를 고발하는 몇몇 프로그램은 방송 중에 주요 포털의 실시간검색어 상위에 랭크되기도 한다. 그만큼 사람들은 먹거리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단지 농촌을 떠나 도시에 정착한 이전 세대들이 고향에 대한 향수와 도시생활에서의 전원을 느껴보고자 텃밭을 가꾸거나 하던 것이 이제는 대규모 주말농장을 분양받기도 하는 사업으로 커지기도 했다. 근래에 들어서는 생산과 구매의 복잡한 중간과정을 한 번에 없애버리는 협동조합 형태의 사업들도 유행이다. 어린 아이를 가진 지인들 중 대다수가 지역 내 협동조합에 조합원으로 가입해 일반 대형마트에서는 찾을 수 없는 유기농제품을 다소 비싼 가격에 구입해 먹기도 한다. 아무리 자본주의사회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먹는 음식에 장난질 하거나 단지 돈의 논리로 불법을 자행하겠나 싶지만 가만히 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 했다. 바로 생각나는 것은 삼양라면 사건이었다. 폐유에 가까운 기름으로 만든 면발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건 이후 판매가 중지되었으나 슬며시 지금은 다시 판매되고 있다. 과자류에서 쥐의 꼬리로 의심되는 이물질이 나오거나 하는 사건은 유명했다. 내가 먹고 내 가족이 먹고 내 아이들이 먹는 음식에 이런 장난질을 하는 회사가 드러나면 소비자들은 분개한다. 불매운동을 펼치기도 하고 비난을 쏟아 붓기도 한다. 그런데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그 제품을 사 먹는다. 이것이 이 책 「죽음의 식탁」서평의 결론이다.
이 책은 거대 다국적 농약회사와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회사가 어떻게 우리들의 식탁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는지, 드리우고 있는지를 고발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이전 책에서 거대 다국적 농화학기업 몬산토를 고발했다. 그런데 이 책은 단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존재론적 당위인 사기업만을 고발하지 않는다. 그렇게 소비자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농약과 화학물질의 생산과 유통, 소비가 단지 사기업의 천박한 이익추구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신뢰가 팍팍 가는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유럽정부의 각종 국영 협회와 연맹들이 어떻게 사기업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들의 공공연하지만 내밀한 유착이 작용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2009년 6월 11일,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마거릿 챈이 엄숙하게 ‘신종플루 대유행’을 선언하면서 세계는 공포에 떨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수만 명이 죽어 나갈 것이라던 예측과 달리 ‘돼지 독감’의 희생자는 해마다 찾아오는 일반 독감보다 열 배나 적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백신을 제조하는 다섯 개 업체 - 노바티스,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사노피 파스퇴르, 백스터, 로슈 - 에게는 황금 같은 기회였다. 백신 판매로 60억 달러나 되는 이익을 나눠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에 자문을 했던 ‘전문가’들이 이 ‘비통한 사기극’을 이용한 기업들과 유착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p.356)
기억난다. 벌써 4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2009년 초여름 한국 주요 언론에서도 연일 보도를 쏟아냈었다. 들어보지도 못했던 ‘신종플루’라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이고 어린아이나 노약자 심지어 성인에게도 치명적이라는 것이었다. ‘플루’라는 것이 단지 감기바이러스를 일이키는 것에 불과하지만 ‘플루’라는 단어 앞에 ‘신종’이 붙게 되면서 사람들의 공포는 가중되었다. ‘신종’이라는 단어가 전염병을 수식할 경우에 그것이 가져오는 불확실성에 의한 공포는 재난 수준이 이를 수도 있다. 그래서 미리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며 난리도 아니었다.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으나 보건당국에서는 어린 아이와 노약자들에게는 무료로 접종을 실시했고, 그 기준에 속하지 않은 대다수의 성인들은 자기 돈을 주고 백신을 접종해야 했었다. 실제로 TV에서는 ‘신종플루’로 인해 사망한 사례를 계속해서 보도했고, 유명 탈렌트의 아이조차 그것으로 인해 사망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 ‘신종플루’를 파헤친 저자의 기록은 충격적이다. 세계보건기구라는 정말 이름만 들어도 무한 신뢰가 가는 기구의 사무총장이 새로운 전염병의 대유행을 선언했을 때, 전 세계의 사람들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에서 선언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신뢰를 가진 기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이없게도 대형 다국적 제약회사의 배를 불려주는 것에 그쳤다는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신뢰를 있는 대로 던져주고 싶은 세계보건기구의 사무총장의 대유행 선언이후 1년이 지나면 수만 명이 사망할거라고 했던 신종 전염병의 치사율은 매년 찾아오는 일반 독감의 그것보다 10배나 작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공포로 인해 뭉칫돈을 벌어들인 이들은 백신을 만든 제약회사들이었다는 것이다. 다국적 제약회사들과 유착된 ‘전문가’라는 놈들이 세계보건기구를 펌프질 했다는 것이다. 이런 거대한 사기극이 일어날까? 싶은데, 실제로 일어났다.
“식품 사슬을 오염시키는 해로운 제품을 규제할 때 주로 사용하는 도구인 일일섭취허용량은 소비자의 건강보다는 기업을 더 보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p.305)
일일섭취허용량. 이 단어도 낯설지 않다. 우리의 식탁위로 올라와서 섭취하게 되는 음식물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제품들에 명시된 단어다. 일일섭취허용량. 소비자를 죽음으로부터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되는 이 단어의 탄생 일화가 허무맹랑하다.
“몇 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정했지요.” (p.327)
몇 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일일섭취허용량이라고 정합시다.”라고 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과학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허용 범위’란 사회적이고 규범적이며 정치적 혹은 상업적인 개념입니다. 또 누구를 위해 ‘허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허용 범위의 개념 뒤에는, 얻는 이익에 비해 리스크를 허용할 만한가하는 질문이 늘 숨어 있습니다. 이익을 보는 쪽은 항상 소비자가 아닌 기업입니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쪽은 소비자이고 이익을 가져가는 쪽은 기업인 것이죠.” (p.333)
맞다. 우리의 섭취허용량을 정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물론 테이블에 둘러앉은 몇 몇은 전문가들이었다. 일반 소비자들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공부한 사람들이다. 그렇다 해도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그들에게 위임한 적이 없다. ‘허용범위’라는 개념은 철저하게 정치적이고 상업적인 개념이다. 몇 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정했으니, 그 ‘허용범위’의 주체와 객체가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책의 설명대로 기업 입장에서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셈이다. 너무 흔하고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있어서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던 ‘일일섭취허용량’이라는 개념에 이토록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몰랐다. 이런 일들이 왜 벌어졌던 것일까?
“나는 회전문 인사(Revolving Door) 기업 대표들이 정부 단체나 국제기구의 고위직을 차지하고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임무가 끝나면 다시 기업으로 돌아가는 시스템” (p.359)
이유는 바로 ‘회전문 인사’다.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친숙한 단어다.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부터 현재 박근혜 정권에까지 이 ‘회전문 인사’의 폐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나마 정권과 여당 주변에서 가장 깨끗한 인사라고 평가되던 안대희씨가 총리직 발표 6일 만에 황급히 사퇴했던 것을 보면 현 정권의 인사 난맥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우리나라 상황이고. (여러 번 반복하게 되는데) 이름만 들어도 신뢰가 가득 가득 가게 되는 국제기구에서도 이런 ‘회전문 인사’가 만연해 있다고 하니 충격적이다. 미국이 유령기구처럼 만든 IMF나 국제은행 같은 기구는 경제·금융 분야니까 그런 일들이 있으리라 짐작했지만 보건과 환경을 다루는 국제기구들조차 이런 ‘회전문 인사’가 만연해 있다고 하니 막막하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다국적 농화학·합성화학 기업들이 각국의 정부 단체는 물론 국제기구의 고위직에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독성학자와 화학자 들이 화학 업계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p.39) “우선 기업이 돈을 대는 연구소 대부분은 에스트로겐 성질이 있는 화학물질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쥐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p.502) “현재 사용되는 농약 중 동물이나 인간에게 암을 유발하는 제품은 전무하다. 농약과 암의 상관관계는 추정일 뿐이지 견고한 데이터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다.” (p.237)
이들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책에서 소개된 유명한 학자는 줄곧 다국적 농화학 기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그 기업의 고위직에 가게 되고 이후에는 그 기업의 막대한 연구 지원을 받아 저런 연구결과들을 내놓는 것이다. 이런 어용과학자들의 연구결과는 다국적기업과 각국의 정부단체, 국제기구의 삼각 회전문 인사를 용이하게 하는 윤활유가 된다. 일부 환경단체나 저자와 같은 운동가들에 의해 농약과 화학물질의 폐해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어 증거로 제시되었을 경우, 자신들이 고용한 유명한 어용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반증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했다 하더라도 100% 증거란 존재하기 어렵다. 수많은 농약 피해자들의 임상사례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100% 기업의 책임으로 입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관련 학계에 종사하는 모든 학자와 과학자들이 기업의 책임을 묻는다 하더라도 각국의 정부기관과 국제기구에 유착된 다국적 기업들을 벌할 수 없을 텐데, 기업이 제시한 당근에 넘어간 어용과학자들이 소수라도 있는 한 기업은 계속해서 돈을 벌수밖에 없다. 기업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식탁에는 죽음이 가까워지고, 그 농도가 짙어진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운 개혁은 인간이 환경에서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모든 상황을 고려한 ‘노출학’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p.552) “화학오염물질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능한 한 유기농을 드세요.” (p.557)
책의 결론 부분을 읽으며 맥이 빠졌다. 가능한 유기농을 사 드시라니. 물론, 기업과 정부단체 국제기구까지 유착된 현 상황을 타계할 다른 방법이 없으니 이해된다. ‘일일섭취허용량’이라는 낯설지만 전혀 모르고 있었던 기업의 사기멘트에 속지 말고 제품 하나를 사더라도 더 꼼꼼하게 따지고 찾아보고 검색하는 적극적인 소비자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렇지 않으면 만연한 자본주의의 서슬을 감당할 수 없다. 알아서 찾아보고 알리고 공유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나도 생각한다. 다른 가계 영역에서의 소비를 줄여서라도 시중가격보다는 다소 비싼 유기농 음식을 찾아서 구매하는 것도 노력 여하에 따라 가능한 일이다.
“조지 W. 부시가 연임하면서 공공 보건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지요. 피터 안판테가 그랬듯이 저도 잘릴 뻔했습니다.” (p.254)
하지만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미국 국립환경보건원 제임스 허프 박사는 지난 대선 결과를 받아 든 한국의 49% 시민들이 가졌던 그 멘붕과 비슷한 멘붕을 겪은 사람이다. 조지 W. 부시가 연임하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부시의 연임이후 미국의 보건당국에서 일하던 제임스 박사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표현했다. 보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미국 국민들의 안전과 보건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어야 하는데, 거대 기업이나 정부의 정책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 잘라버리는 것이었다. 지난 이명박 시절 그 어떤 말단직이라도 참여정부에서 했다면 이유를 막론하고 잘라버렸던 사례와 유사하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위축된다. 하고 싶은 말은 목 뒤로 넘기고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국가에서는 ‘규제 철폐, 규제는 암덩어리’라는 표현을 써가며 어떻게 해서든지 규제를 없애버리려 하는 모양이다. 세월호 이후에도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면, 3년 반 남은 임기동안 정말 무수히 많은 규제를 철폐할 생각인가 보다. 그런데, 국민의 건강·보건·환경에 관한 규제도 철저한 자본의 논리로 처리한다면 죽음의 식탁은 이미 바로 내 밥상머리에까지 와 있는 꼴이 될 것이다. 어떤 규제는 수십 년 이어 온 관성과 관습에 의해 불필요하게 존재하는 것도 있을 수 있고 어떤 규제는 개발이나 성장에는 걸림돌이 되기는 하지만 전체의 안전과 안녕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정부나 정부단체, 전문가들께서는 일반 소비자 혹은 시민들보다 똑똑하시고 더 잘 알고 계시니 그런 규제들을 잘 구분해 내시겠지만 불일 듯 일어나는 의심과 노파심은 거둘 길이 없다.
“그때까지 다뤘던 농약 때문에 병에 걸렸다고는 정말 단 한 순간도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제조업체를 믿었고, 판매를 승인한 기관을 믿었으니까요.” (p.119)
기업에서 정부 기관에서 괜찮다. 괜찮다. 해서 농약을 사용했는데, 내 몸이 완전히 망가진다면 도대체 어디에다가 하소연을 할 수 있을까. 단지 농약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화학물질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것들이 정확하게 어떤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어느 정도의 노출이나 섭취로 인해 어떤 질병이나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지 차근차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곳도 없다. 앞서 말했듯이 소비자가 알아서 찾아나서야 한다. 암담하고 슬픈 일지만 딱히 다른 대안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갑자기 한날한시에 그간 자신들의 잘못된 논리와 제조행태를 사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의 제품을 사용한 소비자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현재 시스템은 질병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정치, 경제, 규제, 이데올로기의 규범이 인간의 건강이나 환경보다 이윤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p.558)
![]() |
|
[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탄산음료가 몸에 안 좋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한번쯤은 괜찮지 않나?’하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본 실험이 기억이 난다. 식품첨가물이라고 해서 단맛을 내는 첨가물이 즉석요리 식품에 들어간다는 것을 방송했다. 식품첨가물은 단맛을 내는데 쓰인다. 그런데 그렇게 달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실험을 하였다. 그 첨가물의 양만큼 설탕 또는 소금을 썼을 때 실험참가자들은 “퉤” 하고 뱉어버렸다. 못 먹을 맛이라는 것이다. 비단 식품첨가물이 즉석요리식품에만 들어갈까? 많은 사먹는 식품에는 모두 식품첨가물이 들어간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 못 먹을 맛, 우리는 그것들을 먹으면서 사는 것이다. 알지만 지나치기 쉬운 판도라 상자 같은 책 <죽음의 식탁>을 봤을 때 나는 앞서 말한 이 실험이 뇌리에서 스쳐지나갔다. 주느비에브 바르비에 박사와 작가인 아르망 피라시가 그들의 공저인 『발암사회』에서 강조했듯이, “농약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사람들은 농약이 원래 생명을 죽이기 위해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44쪽) 오늘날 농약 산업에 널리 사용되는 포스겐은 원래 전쟁 중에 사람을 죽이기 위한 독가스로 사용된 화학무기였다. 포스겐은 독성이 매우 강한 염소와 일산화탄소를 혼합한 가스이다. 가스를 단독으로 살포했을 때는 눈이나 코에 자극을 덜 주지만 독일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화학무기 중 가장 치명적인 독가스로 꼽힌다. 이는 흡입된 포스겐이 폐에서 염산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포스겐을 들이마시고 간신히 살아남는다 해도 수년 내에 후유증으로 사망하게 된다. 21세에 협동조합에서 일하던 농부의 아들은 맨손으로 농약을 만졌다. 장 마리 보니는 1993년 대장의 종양성 용종 수술을 받았다. 9년이 지난 뒤에는 정기점진에서 B형 중심모세포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직업병 인정을 권했다. 그는 제조업체를 믿었고, 판매를 승인한 기관을 믿어 농약 때문에 병에 걸렸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제럴드 마코위츠와 데이비드 로스너는 “미국이나 여타 국가에서 인체 실험은 긴 오욕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 연구는 특히 사악하다.”고 지적했다. “연구의 목적이 납 중독 환자의 치료법을 알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혈액에서 납을 검출되는 것이 정상이며 산업 제품으로 인한 중독은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증명하려는, 산업계가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1980년 초까지 제련소에서 납 노출량 기준은 공기 1㎥당 200㎎이었다.” ‘위험하지 않은’ 혈액 내 납 농도는 1dL당 성인은 80㎍(마이크로그램), 어린이는 60㎍이었다. 이 수치는 케호가 아무도 모르게 만들어 낸 임의적인 기준이고 결국 잘못된 수치로 판명되었다. 그런데도 전 세계 규제 기관들이 그의 기준을 액면가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198쪽) 과학자들이 기업과 손을 잡고 실험을 한다. 그것은 납중독환자의 치료법이 아닌 어느 정도 납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안 주는가 이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그것을 보균할 만큼의 허용치일지도 모른다. 혈액에 납이 있는 게 정상이라니! 그렇게 말하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이 없는 태도에 화가 나며, 정부조차도 이러한 상황을 알면서도 기업 편에 선 과학자가 논문으로 보고한 허용치, 기준을 의심치도 않고 실험을 검증해보지도 않고 그대로 표준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반면 라마치니 연구소는 28개월 차에 여러 암이 유발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죠. 모든 과학자가 라마치니 연구소의 연구 프로토콜을 따라야 합니다. 매우 중요한 문제니까요. 사람들은 수명이 연장되었다고 좋아하지만, 화학물질 노출을 잘 관리하면 피할 수도 있었을 온갖 종류의 질병에 걸려 꼼짝도 못하면서 10년, 15년 더 살면 뭐합니까? 그런 의미에서 라마니치 연구소가 했던 아스파르탐에 관한 두 건의 연구를 보면 참 심란합니다. (417쪽) 라마치니 연구소는 세계의 화학기준을 강력하게 한 것으로 유명한 연구소이다. 그들은 기준을 많이 높여놓았다. 그러므로 많은 이들의 생명을 살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스파르탐은 혹은 E951을 단맛 내는 성질이 사탕수수보다 200배나 강한 합성 감미료이다. 6000개 이상의 식품에 사용되며 전 세계 약 2억 명의 인구가 섭취하고 있다. 캔더럴이나 이퀄같은 설탕대용 감미료는 아침식사용 시리얼, 껌, 탄산음료(코카콜라 라이트를 비롯한 ‘무설탕’음료), 요구르트, 디저트류, 비타민 및 300개 이상의 의약품에 아스파르탐이 들어간다. 생각해보면 다이어트용 시리얼에서 단맛이 나는 것을 기억한다. 맛있게 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니 기쁘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평소 달달한 시리얼을 좋아한 한 사람으로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아스파르탐은 강력한 발암물질이기 때문이다! 설탕을 줄였다고 기뻐했더니 설탕보다 더한 발암물질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은 코카콜라 라이트를 매일 마셨을 때 손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그런데 콜라를 끊자 그 미세한 떨림은 멈추었다. 이렇게 아스파르탐에 부작용으로 알려진 것만 해도 90가지가 된다. 그런데 이를 이용해서 제품을 내놓는 기업과 정부관료는 손잡고 2009년 10월, 식품의약국은 “아스파르탐은 안전한 물질이다”라고 서명했다. 정부는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했지만 기업과 행동을 같이 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잘못된 정부 기준과 규제로 발암물질이 안전한 물질로 받아들이고 이러한 부작용으로 생긴 암이 왜 자신에게 생기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먹는 것에서 모든 질병이 시작된다는 말도 있다. 오늘 하루 먹은 것을 돌아보게 된다. 야채와 과일은 농약제거를 위해 식초에 충분히 담갔는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의 실험을 해보았다. 라면을 데쳐본 것이다. 포트에 물을 끊여 라면에 담가보았다. 라면 특유의 노란빛 색소가 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과 함께 끊여 먹었던 라면이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책을 읽으면서도 콜라를 먹었던 자신의 한심함을 상기하게 된다. 건강을 위해 좋은 것을 먹지 못할지언정 발암물질을 먹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후회가 된다. 앞으로는 알게 된 사실에 기초해 콜라도 그리 즐겨 먹게 되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죽음의 식탁> 이 책이 떠 오르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야채에는 농약이 있어. 사먹는 식품에는 아스파르탐이라는 발암물질이 있어”라고 말이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이러한 농약, 아스파르탐이 내 몸에 쌓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확성이나 설명, 많은 주석과 참고 자료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신경 썼다고 비난할 독자가 있다면 용서를 바란다. 내가 세운 목표는,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전문가가 될 수 있게 하거나, 적어도 탄탄한 논리로 무장해서 능력껏 행동하고 더 나아가 우리 건강을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을 바꿀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아는 것이 곧 힘이므로. (16~17쪽) |
|
빙하기가 끝이 나면서 기후는 온난해졌다. 하지만 몇 십만년 동안 인류의 먹거리였던 대형 초식동물이 사라졌다. 당시 수렵인에게는 커다란 충격과 혼란이었다. 사냥할 동물이 없어졌다. 생존의 달인인 인류는 세계 각지에서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생활방식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농업"이다. 인류는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농업을 하면서 정착이 이루어지고 영야의 개선으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신석기 혁명이라고 부르는 1차 농업혁명은 인류에게 생존을 가져다 주었지만 노동 또한 짊어지게 만들었다.
빙하기가 끝난지 약 일만 이천년 후 인류는 또 한번 도약을 이루었다. 1차 농업혁명에 이어 화학혁명을 이루어냈다. 화학이라는 과학기술로 인류는 의학을 발전시켜 수명을 연장시켰고 화학비료와 "농약" 덕분에 2차 농업혁명을 이루어 농업생산량은 급속히 증대되고 인구는 맬서스의 저주를 벗어 났다. 농업혁명 이후 지속적으로 꾸준히 증가되어오던 인구는 화학혁명의 기반위에서 새로운 번영을 이루었다. 하지만 1차 농업혁명이 자유로운 구석기인에게 노동이라는 굴레를 씌웠다면 화학혁명은 건강의 위협이라는 새로운 걱정거리를 안겨주었다. 수명은 증대되고 인구는 늘었지만 화학약품에 의해 질병을 앓는 사람의 수도 늘었다. 새로운 화학성분이 계속해서 우리 주변에서 사용되고 우리 몸에 쌓여간다. 새로운 질병이 늘어나고 드물었던 질병또한 흔해진다. 화학의 역설이다. 분명 화학덕분에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도시적 문화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화학이 도시문명을 위협하고 있다. 죽음의 식탁에서 저자는 단순하게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지 않고 "확신"을 공유하고자 한다.
저자 마리 모니크 로뱅은 농약과 질병을 중심으로 각종 화학약품의 독성과 그런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기업의 폐해를 폭로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 다시 구석기 시대 혹은 최소한 이백 년 전으로는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초조함이 생긴다. 다만, 책에서 주는 대안이 유기농을 드세요, 농약을 금지합시다라고 하는데서 힘이 빠지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책에서 말하는 다양한 화학약품은 국가 자본주의를 글로벌 자본주의로 변화시키는 주역이다. 인구 천만명이 넘는 도시가 수두룩한 2014년 과연 유기농이 화학약품을 없애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일부 유기농을 소비할만한 계층을 위한 새로운 청담사상이 되지 않을까? 화학약품이 생존을 지탱하는 계층에게는 유기농이라는 뜬구름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대안은 대량생산체제의 발전적 해체인데 가능할까? 2014년 건강도 계급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
|
죽음의 식탁 : 우리는 매일매일 독을 먹고 있다! 책 제목과 표지가 인상적이다. 요즘 식품에 대한 위험성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기에 이 책도 그런 이야기를 다룰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알고 먹으면 세상에 먹을게 어디있겠냐는 생각도 함께 모르는게 약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게된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이 책은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인간이 건강이나 환경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것이 정치, 경제, 규제 기관의 논리입니다." 지난 수십 년 간 암, 백혈병,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불임, 자가면역질환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인도, 칠레 등 10개국에서 50명의 과학자, 활동가, 규제 기관 대표들과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2년간의 끈질긴 추적 끝에 우리 일상을 점령한 수만 개의 화학물질이 그 질병의 주요 원인임을 밝힌다. 또한 밭에서 쓰는 농약에서부터 식탁 위의 플라스틱 용기까지 먹거리가 생산되는 방식을 거슬러 올라가 우리의 '일용한 양식'을 '일용할 독'으로 바꾼 정치, 경제, 규제 기관의 시스템을 낱낱이 파헤친다. 우리가 지금껏 애써 무시하며 눈감고 먹고 있던 것들은 결코 모르고 먹어야하는 것들이 아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숨겨진 시커먼 비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어쩌면 알고 먹으면 세상에 먹을 것 하나도 없다며 그냥 먹으라고 하는 말도 그냥 나온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이 책은 식탁의 특정제품을 먹지말라는 것보다는 조금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농장에서 태어나 농사꾼의 딸로 자란 저자의 경험이 녹아있기에 설득력 있게 들린다. 농약때문에 생긴 질병. 농약이 물, 공기, 음식을 오염시킨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미국의 다국적기업으로 제초제를 생산하는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을 다큐멘터리와 책으로 발간한 저자의 또 다른 이야기다. 농부 폴 프랑수아는 몬산토의 제조체 라소를 흡입해 급성중독에 빠졌고 몬산토를 상대로 소송에 들어갔다. 하지만 기업은 이를 부인하고 결국 소송은 기업의 손을 들어주었다. 저자는 이는 화학 산업과 공권력이 사탕발림으로 덮고 넘어가려는 것이라 말하며 농약이 독이라는 사실을 피력한다. 농약은 인간이 다른 생물체를 해하거나 죽이기 위해 만들어 고의적으로 자연에 방출한 유일한 화학제품이라는 말에 다시한번 농약의 심각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살충제가 우리의 생명을 파괴하는 살생제가 되는 구체적인 이야기들도 들려준다. 해충을 죽이기 위해 뿌려지는 농약들이 결국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매일매일 독을 먹고 있다!" - 전쟁에서 쓰던 화학무기가 농약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 병충해 '킬러'에서 식물 '약제'로 변신한 농약을 사실 해충보다 인간에게 더 큰 타격을 준다? - 일일섭취허용량, 잔류농약 최대 허용치 등 독성 규제 기준은 화학 기업과 결탁한 과학자와 규제 기관들이 합작하여 만든 개념이다? - 공권력의 의도적인 침묵으로 발암물질인 아스파르탐이 현재 6000개의 식품과 300개 이상의 의약품에 첨가제로 쓰이고 있다? - 플라스틱 용기, 통조림과 음료수 캔, 젖병 등에 들어 있는 비스페놀A는 불임을 불러일으키고 태아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책에서 제기하는 의문들은 간과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그냥 눈감고 지금처럼 먹을 수는 없는 내용들에 자리를 바로잡고 책을 보게 한다. 아스파르탐! 아이들이 좋아하는 감자칩, 시리얼, 음료수, 껌뿐 아니라 술에도 들어있다. 6000여개의 식품과 300개 이상의 의약품에 첨가제로 쓰이고 있다고 하니 대부분의 제품에 쓰이고 있는 것이다. 설탕보다 200배나 높은 단맛을 내는 인공 감미료. 그런데 이 독성화학물질이 제조 기업과 결탁한 규제 기관들의 묵인 하에 사용 승인되어 현재 약 2억 명의 인구가 섭취하고 있다고 한다. 몸에 이렇게 나쁜 것임을 알면서도 섭취허용량만 지키면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말로 판매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이 외에도 PVC, 비스페놀A, PCB등 문제가 드러나 일부 품목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물지들이 어떤 품목에서는 여전히 쓰이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것일까? 무엇이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지 저자는 그런 것들에 주목하며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보라, 더이상 어쩔 수 없다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물에 퍼져 있는 독을 흡수한 플랑크톤을 초식동물이 섭취하고 그 초식동물을 작은육식동물이 먹어치우며, 작은 육식동물은 대형 육식동물에게 잡아먹힌다. 우리의 식탁에는 하위 포식자들이 축적한 모든 오염물질이 올라온다." "그런 일을 할 과학자들을 어떻게 찾느냐? 돈을 주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몸 파는 과학'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왜곡된 연구 결과가 규제 기관에 전달되고, 규제 기관은 그 결과를 그대로 믿는다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이것이 독성이 강한 물질들이 우리 환경, 먹을거리, 논바, 공장을 수십 년 동안 오염시킨 방법입니다." "일일섭취허용량을 과학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리스크의 범위를 나타내는 값이 아니라 허용 범위니까요. '허용 범위'란 사회적이고 규범적이고 정치적 혹은 상업적인 개념입니다. 누구를 위해 '허용할 수 있다'는 겁니까? 이 개념 뒤에는 얻는 이익에 비해 리스크를 허용할 만한가 하는 질문이 늘 숨어 있습니다." "내분비계 교란물질이 도처에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프탈레이트처럼 임산부가 절대로 피해야 하는 물질이 있습니다. 플라스틱 포장재와 랩, PVC로 만든 물건뿐 아니라 샴푸 같은 바디 용품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 책이 들려주고 있는 이야기들은 이익만을 위한 기업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 예방 원칙의 논리는 제약 산업의 사적 이익과 대립하는 것이고 제약산업에게 암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라는 의견에 끄덕이게 한다. 이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유기농 식품을 먹이며 농약의 위험에서 아이들을 보호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업의 이윤추구 논리에 더이상 휘둘리지 말고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을 좀 길러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규제 기관이 화학물질에 권리를 빌려 주는 일을 멈춰야 한다. 화학물질에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 그 권리의 주인은 인간이다." - 미국 식품의약국의 독성학자 재클린 베렛 563page 목적을 위해 타인을 희생키시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인류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 말을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들에게 다시 한번 각성시켜주고 싶다. |
|
결혼해 아이를 키우며 주변의 유해물질을 차단하기 위한 혼자만의 노력이 얼마나 고되고 부질없는가에 대한 생각에 이르며 적당한 타협점을 찾고 있던 차에 『죽음의 식탁-독성물질은 어떻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나』를 읽게 됐다. 이 책은 거대자본논리의 물질주의 시대에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 얼마나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있고 그것을 과학적이고 전문적으로 기술 좋게 포장하여 합리화시키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읽는 내내 거대기업과 기관에 맞서며 우리 현실을 밝히고 바꾸기 위해 진실을 파헤치고 낱낱이 알려준 저자 마리 모니크 로뱅에게 존경과 경의의 마음이 일었다. 이 책은 농약에서부터 식품첨가제와 플라스틱 용기에 이르는 우리가 식탁에서 접할 수 있는 관련된 화학물질에 대한 생성과정과 경로를 알려준다. “…다시 말해 급성중독, 만성중독, 농약에 직접 노출된 농부에서 시작해 우리 몸속에 축적된 화학 잔여물의 영향이라는 점점 더 복잡한 문제로 넘어갈 것이다.(p.14)” 1부 농약은 독이다 농약에 대해 과학이라든지, 식량문제 해결에 필수적인 물질이라든지, 농부의 수고를 덜어주는 긍정적인 인식이 만연하고 국가의 허가를 받은 어느 정도 안전한 필수불가결한 물질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농약은 인체에 치명적인 독일뿐이라는 걸 확연히 알게 된다. “호수의 물고기를 분석해 본 결과 생물학자들은 원인이 되는 현상을 알아냈다. 바로 생물 축적이다. ‘물에 퍼져있는 독을 흡수한 플랑크톤을 초식 동물이 섭취하고, 그 초식동물을 작은 육식동물이 먹어치웠으며, 작은 육식동물은 대형 육식동물에게 잡아먹혔기 때문이다.’ ……그것은 먹이사슬을 따라 동물들의 몸속에 점점 축적되었다. …… 바로 이 생물 축적 과정 때문에 먹이사슬의 최종 포식자인 인간이 잔류성유기오염물질의 피해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식탁에는 하위 포식자들이 축적한 모든 오염물질이 올라오는 셈이다.(p.70)” 2부 의구심을 생산하는 공장 파라셀수스의 “독이 아닌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독이다. 양이 곧 독이다.”를 원칙으로 삼아 이를 자신들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자본이 논리를 펴는 모습은 가히 경악할만하다. 1924년 미국에서 발생한 유연휘발유 사건에서 납 수중기에 중독된 노동자들이 환각 증세를 일으키고 잠재적 위험이 크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스탠더드 오일 정유소에서 노동자들이 사망했다고 해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제품의 사용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일반 대중에 대한 위험이 측정 불가한 상황이므로 화학자들은 제품 생산을 중단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p. 193)" “…케호가 ‘턴키 방식’으로 기업에 제공한 이론은 네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으며, 그 덕분에 기업들은 유연휘발유를 50년 이상 판매할 수 있었다. ①납은 자연 상태에서도 흡수된다. ②인체는 납을 동화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③일정 수준 이하의 납은 무해하다. ④대중의 노출 정도는 그 수준보다 훨씬 낮아 우려할 필요가 없다. …… 이 논리는 농약이나 식품 첨가제 등 독의 ‘일일섭취허용량’, 다시 말해서 매일 복용해도 질병에 걸리지 않는 독의 양을 정하는 근거가 되었다.(p197)” 이런 식으로 20세기 내내 우리의 환경과 식탁을 오염시키는 화학물질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고 있으며 밝혀지는 유해물질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옹호될 것이다. 기업들이 자신의 제품을 옹호하는데 쓰는 에너지는 놀라울 정도이며, 불러올 끔찍한 결과에 대해서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그들의 냉혹한 생리가 가히 경악스럽다. 이를 감독하고 통제할 기관도 기업과 다르지 않다. 지금이야 포름알데히드가 발암물질임은 명확한 사실이지만 이 역시 오랫동안 인정되지 않았다. “국제 암 연구소도 기만적인 논리를 펼친 적이 있다. 2000년 프탈레이트 계통의 강력한 독성 물질 다이에틸헥실프탈리에트(DEHP)를 2B그룹에서 3그룹으로 등급을 낮출 때였다. 플라스틱 가공에 사용되는 이 물질을 폴리염화비닐(PVC)에 첨가하면 플라스틱이 유연해진다. 풍선, 비닐 식탁보, 장화, 샤워 커튼, 우비, 의료 기기, 식품 포장 등 물렁물렁하거나 잘 늘어나는 플라스틱 제품에는 DEHP가 항상 들어 있다. 유럽에서는 2005년까지 화장품과 장난감에도 사용되었다. …… 대기, 실내 먼지, 물, 심지어 모유에서도 이 오염물질이 발견된다. 비스페놀A와 같은 프탈레이트 계통 물질은 생식 독성을 가진 내분비계 교란물질이다. 많은 실험 연구가 DEHP에 노출되면 간암과 췌장암에 걸린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 (p. 260, 261)" 3부 기업을 섬기는 규제 여기서는 독극물 ‘일일섭취허용량’과 과학사기, ‘잔류농약 최대허용량’, 아스파르탐의 위험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과학적이고 안전하고 객관적일 것 같은 용어로 포장해 기만하는 작태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다. “일일섭취허용량은 몸무게 1kg당 허용된 독성 물질을 mg으로 표현한 값이다. 일일섭취허용량이 0.2mg인 농약을 예로 들어 보자. 소비자의 몸무게가 60kg이면 60*0.2=12, 즉 12mg의 농약을 매일, 그리고 평생 섭취해도 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소리가 된다. 결국 상당히 관료주의적인 이 그럴싸한 개념은 우리가 매일 수백 개의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있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셈이다. 그 화학물질들은 체내에서 상호작용할 수도 있고, 내분비계 교란물질과 같은 것은 최첨단 도구로만 찾아낼 수 있을 만큼 극소량이라도 인체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p. 329)" 4부 내분비계 교란물질 스캔들 이 장에서는 특히 임산부와 태아에게 프탈레이트와 같은 내분비계 교란물질이 끼치는 위해성을 알려주고 있다. 플라스틱 포장재와 랩, PVC로 만든 물건 뿐만 아니라 샴푸 같은 바디용품의 사용을 주의해야 하는데 이미 생활에 광범위하고 빈번하게 쓰이는 용품들이라 더 충격적이다. “심포지엄을 마친 참가자들은 ‘윙스프레드 선언’을 발표했다. …… ‘인간 활동으로 인해 환경 속으로 침투한 수많은 화학물질은 어류를 포함한 동물과 인간의 내분비계를 교란시킨다. 내분비계 교란은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발달을 제어하는 호르몬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많은 야생 동물이 이러한 내분비계 교란물질에 이미 오염되었다. …… 효과의 종류는 생물종과 화학물질에 따라 다르지만 네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화학물질의 효과는 배와 태아, 출산 전후, 그리고 성인일 때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둘째, 효과는 부모보다 자손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 셋째, 성장 중인 개체의 노출 성격과 잠재적 효과를 알기 위해서는 노출 시기가 중요하다. 넷째, 배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많은 양에 노출되었다고 해도 밖으로 드러나는 징후는 성인이 되어야 나타날 수 있다.’ (p.443, 444)" 소량으로도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비스페놀A는 강성 플라스틱 용기, 물병, 젖병, 전자레인지 용기, 선글라스, CD, 영수증으로 쓰이는 감열지 등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든 많은 일상 용품과 통조림이나 음료수 캔의 내벽과 치과용 시멘트에 쓰이는 에폭시코팅제에 들어있다. 극소량으로도 영향을 미치는 물질 중 비스페놀A는 단연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태아는 “비스페놀A뿐 아니라 모든 내분비계 교란물질에 민감합니다. 우선 태아에게는 성인과 달리 보호 시스템이 없기 때문입니다. …… 태아의 몸속으로 화학물질이 일단 침투하면 그대로 영원히 머무는 것입니다. …… 근육세포든, 지방세포든, 뇌세포든 세포의 유전자는 모두 같지마 특정 호르몬에 의해 다른 세포를 만들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비스페놀A는 모든 내분비계 교란물질이 그렇듯이 세포 분화 과정을 방해합니다. 일단 비정상적인 경로에 들어서면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피해가 영구적이기 때문입니다. ‘유전자 프로그래밍’으로 일부 기관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들어져서 몇 십 년 뒤에는 암이 발생합니다. …… 태반 장벽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독성물질이 태아에 닿지 않도록 막아 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마치 함정처럼 독성물질이 태반을 뚫고 들어오면 다시 나갈 수 없게 만들지요. ……(p. 495, 496)" 칵테일 효과에서는 소제목만 보더라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아트라진, ‘강력한 화학 거세제’ / 농약을 섞으면 효과는 증폭된다. / 체내 화학물질 축적량: 화학 수프에 모두 오염되다. / 탯줄 속 농약 칵테일 / 새로운 혼합식 0+0+0=60 / 폭증하는 유방암, 합성 호르몬 칵테일이 원인이다. / 소리 없는 전염병의 첫 번째 희생자는 어린이다. / 농약으로 기형이 된 아이들 책을 접하게 된 행운에 감사하며, 이미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독성물질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기업과 기관에서 제시하는 기준에 안일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던 낡은 사고를 타파해야한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했듯이 이 책을 통해 각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
|
0+0+0=기형 60% 아마 내가 이런 공식을 들이대면 주위 친구들이 모두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 공식은 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한다면 다들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사실 나 역시 '죽음의 식탁'을 읽기 전까지는 이러한 화학 혼합물 연구의 수학공식에 대해서 생각해본적이 없다. 그리고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미 많은 부분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을 했지만 무의식중에 생활하면서 잊고 살았던 부분들,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여기며 무심코 넘겨버리곤 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심각하고 끔찍한 결과를 갖고 오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죽음의 식탁이라는 말 그대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큰 위험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바라 볼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득 엊그제 친구와 여행가고 싶다는 얘기를 나누다가 일본은 방사능 위험이 있어 안된다는 얘기에 농담처럼, 사는 사람도 있는데 며칠은 괜찮아,라는 말이 나왔는데 그게 단순히 양의 문제가 아닌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농약 이야기를 할 때도, 과일을 열심히 씻고 있으면 그 정도의 농약 정도는 먹어도 괜찮아,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이야기들이 기업의 지원을 받아 그 목적에 맞게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자료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다. 화학물질의 반응은 양의 문제가 아닐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흔히 얘기되고 있는 '일일섭취허용량'이라는 개념조차 어떻게 시작되어 어떠한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것인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일일섭취허용량이라는 것은 우리가 건강에 아무런 문제 없이 평생 동안 매일 섭취할 수 있는 화학물질의 양,이라고 하는데 이 개념이 나오게 된 근거, 연구 자료의 출처는 아무곳에도 없다는 것이다. 잔류농약허용량이라는 것도 믿을 수 있겠는가? 저자는 인터뷰를 하는 도중 연구소 소장에게 유기농 식품을 먹느냐는 질문을 던지는데 그에 대한 공기관의 장으로서 답변은 거부당했다. (372) 합성감미료 아스파르탐에 대한 이야기 역시 내가 알고 있는 상식 수준을 넘어 좀 더 충격적인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코카콜라의 숨겨진 진실에 대해 알고 있지만 중독되다시피 되어버린 그 맛은 여전히 소량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가끔은 마셔대곤 하게 한다. 물론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중독된 것은 아니지만 가끔 강하게 그 맛에 끌려 일부러 탄산음료를 사서 마시게 되는 것이다. 코카콜라의 끔찍한 화학반응들은 아주 많지만 그 중에서도 충격적인 것은 녹을 녹여버리고 치아를 녹여버린다는 것일것이다. 그런데 코카콜라에 치아를 담아놓으면 삭아버린다는 연구결과에 많은 이들이 우리가 콜라를 하루종일 입에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반박을 하며 마셔대곤 하는 것을 봤는데 여기에 그에 대한 재미있지만 심각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어린 아이가 하루에 코카콜라 라이트를 다섯 캔이나 마실 수 있는지,그래야 아스파르탐의 일일섭취허용량'이 된다는 언급에 연구자료와 반대논증을 펼치는 대신 메첸바움 상원의원은 씨익 웃으며 탄산음료, 껌, 시리얼, 요구르트, 의약품, 비타민 등 아스파르탐이 들어 있는 제품 수십 개를 하나씩 꺼내보였다. (401)
"약국에 가서 약을 사면 다른 약과 함께 복용할 때 주의하라는 사용 방법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가지 효과가 결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학물질이 같은 현상을 일으킨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지요. (...) 우리는 양이 적으면 효과도 적고, 양이 많으면 효과도 크다고 배웠습니다. 양과 효과의상관관계가 직선을 그리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 모델이 적용되지 않는 물질이 많습니다."(540)
이미 논문이나 연구자료의 결과가 어떤 목적으로 시행된 연구인지에 따라서 그 데이터의 유의미한 부분만 골라내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에 맞게 조정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구나 싶어진다. '독성물질은 어떻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다'라는 부제를 보면서도 무심코 지나갔었는데, 건강에 대한 염려를 하면서도 내가 결코 끊어내지 못하는 과자와 빵을 완전히 끊어야 하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심각하게 할 만큼 이 책은 우리의 무뎌진 독성물질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죽음의 식탁"에는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고,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있고 또 그만큼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
|
![]() 오랜동안의 언론인의 생활을 통해 바라본 우리의 식탁은 참으로 위험성에 노출된 많은 소재들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음을 세삼 실감한다. 식탁은 일반 가정에서 온 가족이 둘러 앉아 하루의 일상을 정리하고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기본적인 요건이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우리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식탁에서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큰 모순이고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국민을 위협하는 요소이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식탁에서의 위협은 최근 산업화와 더불어 과학의 발전 그리고 대량 생산이라는 미명하에 보다 빨리, 많이 생산하여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이와 더불어 더 큰 이익을 차지하려는 기업들과의 관계에서 빚어진 일인지도 모른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이 느리고 산업화가 진행되기 이전의 사회에서는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하는 의식과 더 많은것에 욕심을 부리기 보다는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고 탐욕을 부리지 않으며 나의 욕구만 충족된다면 그것으로 행복하다는 시대가 있었을 것이고 이러한 상황하에서의 인간의 행복 지수는 지금의 사회와 비교하여도 훨씬 높을 것이다. 최근에도 기사를 통해 접한 적이 있지만 아프리카에서 사는 어느 부족의 행복 지수가 최고에 달하고 그들의 생활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을 살펴보면 외부인과의 접촉이 시작되면서 부터 급격한 궁핍 상태에 이르게 되고 자본주의 경제에 노출되게 되면서 행복지수는 급격하게 떨이지고 모든 환경이 파괴되기 시작하면서 멸종에 이를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아무리 경제에 있어 자본주의 경제 이론으로 앞으로의 경제 상황을 예측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더라고 그 과정중에는 수많은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가진자는 더 많은 부를 원하고 없는 자는 원하는 것을 얻기위해 더 많은 노력과 희생을 하지만 결코 행복을 얻기 힘들다는 사실 또한 이미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부의 재분배라는 관점에서 기업이 얻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게 함으로써 보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있기는 하지만 가진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재분배에 대해 동의할 기업이나 기업인은 드물기만 하다. 그러기에 국가 차원에서 이러한 정책을 도입하고자 하는 물결은 언제나 공약으로 등장하지만 수많은 로비와 그들만의 방법에 의해 좌절되기 십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소비자를 어떻게 바라 볼 수 있을까? 기업에 있어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고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자본을 빨아들이기 위한 대상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자신들에게 불리는 상황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회피하고 좋은 점 만을 부각시켜 소비자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두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서 소비자에게는 최상의 제품으로 최대의 행복을 준다는 식으로 그들의 욕심을 숨겨두는것이 오늘날의 기업의 행태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최근에도 서울시장 선거에서 불거져 나온 농약 급식 재료 사건들을 통해 자라나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조리하여 밥상에 올리는 모든 재료들이 오염되어 우리가 섭취하게 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암 진단을 받게되고 원인도 알 수 없는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다. 유기농 재료들이 시장이나 마트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것도 이러한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식품관련법이나 제 규정등은 사실 미국이나 일본의 자료를 인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도 미국 FDA에서 인증을 받은 제품이라면 국내에서 어떤 규제나 사실 입증없이 판매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오늘날의 우리나라의 식품에 관한 법률인 식품위생법, 제조에 관한 법률등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왔다. 그리고 식품공전이나 첨가물 공전의 내용 또한 일본과 미국의 관련 법률을 근거로 제정된 내용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의 식품에 관한 법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일례로 특정 식품이나 첨가물을 법률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수 많은 자료를 첨부하지만 국내 실정에 맞는 검사법이나 분석 방법, 위해성의 검증등은 일부에 그치고 대부분 선진국의 사례와 자료를 통해 인정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도서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유럽과 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하나의 제품 소재에 대한 검사 결과의 위해성 분석에 대한 자료를 일체 공개하지 않는다는 내용에서 그들 국가에서도 문제시 되는 제품들을 공공연히 결과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고 이러한 결과에 의해 많은 희생자들이 나오고 있음에도 그 원인에 대한 규명이나 책임에 대해서는 회피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농약의 위험서에 대해서는 농약의 효과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그들의 독성 분석연구가들에 의해 도출된 결과를 은폐함으써 책임을 회피하여는 행동에 대해서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몬사토라는 기업은 종자회사이면서 농약을 생산 판매하는 회사이다. GMO작물로도 몇차례 언론에 언급되었던 회사이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거대 회사에서 제조, 판매된 제품이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과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러한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자세는 글로벌 회사로서의 무책임과 더불어 사회악으로 취급하여 마땅하지 않을까? "양은 독이다"라는 어느 학자의 말처럼 아무리 좋은 소재이고 음식이라도 섭취량이 지나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강력한 제조체의 성분이 아무리 소량을 사용하고 유효량 이하의 양으로 살포한다고 해도 살포 횟수가 많아지게 되면 반드시 인체는 그런 약품에 대항하게 되고 많은 대항으로 인해 일부의 신체기능이 저하되기 시작하면서 면역체계의 교란으로 인해 인체는 서서히 파괴된다. 이와 같이 제조사에서 아무리 사용에 대한 유효한계를 낮추어 제시한다고 해도 많이 사용하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소비자 뿐만 아니라 생산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저자는 이러한 농약 뿐만 아니라 유해성이 인정되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과 더불어 이러한 제품의 사용을 허가한 공익단체와 정부단체와의 관계와 그들이 소비자를 기만하는 밀착 고리 뿐만 아니라 기업이 이러한 유해성의 결정과 제품의 퇴출에 대한 검증 과정등을 상세하게 취재하고 관계를 검증함으로써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을 알려주고 기업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이러한 기업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한 도서이다. |
|
본인의 부모님과 일가친척들 중엔 암환자가 많다... 씁쓸하기도 하고 공포스러운 현실 속에서 아는 것이 곧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필수 지식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인간을 위해 개발된 것이 아닌 돈을 위해 개발된 각종 독성물질들... 당연히 알아야 할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몬산토와 같은 거대기업의 돈벌이를 위해 꼭두각시처럼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힘없이 당하는 농부들과 우리들...
저자는 용감하게도 거대기업들의 더럽고 파렴치한 생명을 담보로한 위험한 돈놀이를 까발린다. 자세히 알면알수록 더이상 대충 살아도 괜찮을거라는 식의 사고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지 깨닫게 된다. 잔류농약에 대한 의구심을 이제는 더 확실히 갖고 유기농을 지지하는 소비자가 될 것임을 자신과 약속해본다. 책을 읽기 전까지만해도 사실 농약의 심각성에 대해 점점 생각이 옅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완벽히 독성물질을 피해가겠어? 남들도 다 대충대충 잘 살고 있는데 뭘....
하지만 책을 읽은 후 그렇게 안이한 생각으로 살아가기엔 기업들의 자본주의가 시퍼런 칼날처럼 무섭고 잔인하게 느껴진다. 생명이란 돈과 얼마든지 바꿔치기 할 수 있는 그들의 사고가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다. 부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식품을 먹으며 땅을 살리고, 나를 살리는 운동을 전개해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거대기업들의 지구몰살행위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풍요로움을 거부하고 하나씩 먹거리와 환경을 그리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느리게 살아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