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책 #하리뷰 #시집식물과 손잡고 슬픔이라는 물속으로 침잠해가는 우리들의 여름 #작약은물속에서더환한데 #이승희시인 #문학동네시인선217 #문학동네 이승희 시인의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라는 시집을 내내 품고 있던 때가 있었다. 그정도로 그 시집을 좋아했었다. 지금도 늘 좋아하는 시집 리스트에 꼭 자리잡고 있는 시집이다. 이승희 시인의 신간시집이 나왔으니 무조건 사야지. 무조건 읽어야지. 무조건 좋을 수밖에. 맹목적인 믿음. 불호따윈 생각하지 않는 강력한 애정. 슬픔 속에 가라앉아도, 어둡고 나약하고 아픈 순간순간들이라 할지라도. 그로 인해 나도 함께 가라앉아도 좋다고, 그리하여 슬픔이 물속에서 더 환하게 보이게 된다면 ‘슬픔을 슬픔으로 견디지 않아도 좋았’(14)으므로. 지나가는 풍경이고 사라진 풍경이므로. ‘사실 나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26)고. 물속에 좀 가라앉으면 어때. 간절해지지 않아도 괜찮아. 이대로도 상관없잖아. 여름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든 다정하게 굴어보는 것(38) 여름이라서. 좀 간절하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깊어지지 않아도 좋겠다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건 다 여름이라 그래요. 여름은 그런거니까. #그건다여름이라그래요 나는 지나가는 중이고 지나가는 풍경이 된다. 사라지고 나면 사라진 풍경이 된다. #물속을걸으면물속을걷는사람이생겨난다 우린 서로의 망명지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독립시켜야지 #망자들 붉은 문을 열어두었다 슬픔을 마음껏 열어두고 폐허가 한없이 늘어나 반짝였으므로 작약이 피었다 #어떤마음에대하여 나의 일기는 누군가 모르는 곳에서 적고 있을 거예요 밤은 뱀처럼 온다고 방마다 들어가 운다고 나는 그런 방이 많다고 #즐거운우리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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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에는 초음파 검사가 예약되어 있었다. 나는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일어나는데, 새벽에 일어나 남편 아침과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고, 금식해서 기운이 없어 잠깐 쉬려고 소파에 앉았다가 한국의 계엄 소식을 접했다. 윤 정권 하에 일어났던 이태원 참사 때도 그랬지만,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았다. 검사를 받고 집에 돌아와 유튜브로 상황을 지켜봤다. 박근혜 때와 다른 점이라면 시차 없이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는 거. 유튜브의 순기능이다. 정보 통제가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랬겠지만 그 뒤로 모든 일상이 멈췄다. 눈과 귀와 마음이 온통 계엄과 탄핵 추이에 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허술해보였던 계엄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된 내란 행위였는지가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소름이 끼치면서도 시민들, 특히 102030 대한민국 여성들이 보여주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민주의식에 눈물이 났다. 암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잠자는 것마저 힘들었던 그 엄혹했던 시기에 나는 이장욱의 <음악집>과 이승희의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를 조금씩 읽었다. 두 시집 모두 슬픔의 정서가 지배적이다. 우울이나 좌절과는 또 다른 감정일텐데, 왜 우리 세대가 이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다. 어쩌면 그 시집을 읽는 내 감정이 이입된 결과일 수도 있겠다. 책을 읽는 독자의 감정 상태나 상황이 언제나 독서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니 말이다. 두 시집 모두 자기 전에 취침전독서로 읽었는데, 이 두 시집을 읽는 보름 동안 종종 악몽을 꿨다. 익사와는 다르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물 속에 잠식된 채 허우적거리다가 깨곤 했다. 무언가를 정리하기엔 그때의 내 상황이나 건강 상태가 여의치 않아 정돈된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내가 느끼기에 두 시집 모두 내가 꾼 악몽과 유사한 부분들이 있다. 이장욱이나 이승희는 본인들이 처한 상황 혹은 '거기'에서 굳이 나오려는 어떠한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내 또래 혹은 우리 세대가 느끼는 슬픔이나 매너리즘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다시 분연히(?) 떨쳐 일어났다면, 그건 역설적이게도 계엄이 일깨운 경각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11월과 12월은 물리적으로 30일 미만의 차이일 뿐이지만, 그 짧은 사이에 내 사적인 영역뿐 아니라 거의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변하고 말았고, 그 중심에 이 시집이 있었다. 그리고 또 거의 일년의 2/3가 흘렀고, 나는 차라리 악몽이라도 꿀 때가 좋았다 싶을 만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어찌 보면 내 세대가 느끼는 많은 감정들의 대부분은 몸의 아픔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실재적인 통증들이 그들의 정신과 영혼까지도 지배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종종 하기도 한다. 정신력이나 의지로도 상쇄 불가능한 어떤 쇠약해짐, 죽음을 시시때때로 떠올리게 만드는 그런 연약함에서 기인하는 감정이나 생각들 말이다. 그렇게 한여름의 끝에 이 시집을 다시 한 번 펼쳐보니 겨울의 시작점에서 느꼈던 물속의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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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좋다 하더니 진짜로 좋았다. 어느 정도로 좋았냐면 최근에 등단한 젊은 여성 시인의 첫 시집인 줄 알았을 정도로 좋았다. 시집 해설을 여간해선 잘 읽지 않는데 시가 너무 좋아서 조금 읽어 봤다. 요동치는 감정을 직시하기. 슬픔에 충실하기. 전작도 읽으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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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어울리는 시집인지라 아직 다 안 읽고 아껴뒀습니다. 반만 읽고 나머지는 여름에 읽으려구요. 진득하게 오래 읽기보단 짧은 시간 틈틈이 읽기 좋아요. 시집 읽은지는 얼마 안 되었는데 소설과는 다른 매력이 있더군요. 초판인지 모르겠지만 스티커도 들어있어서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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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가득한 곳에 서 있는 듯하다. 그곳은 물로 가득하고 슬픔이 감돈다.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눈부시다. 식물과 물고기 사이로 빛이 스며든다. 슬프고 슬퍼 바닥에 가득한 물은 강물같은 눈물 같다. 눈물같은 강물 위로 해가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어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다. 시인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런 시를 썼을까, 읽을수록 궁금했다. 여전히 모르겠는 말이 많지만 슬픔을 위로하고 삶을 앞으로 밀어주려고, 아니면 그냥 슬픔을 슬픔으로 지나가게 하려고 물과 물고기와 버드나무와 유령과 여러 식물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거면 충분하다. 이곳에 수록된 시들은 (잠시 작가의 손끝을 거쳐 - 『사진과 시 / 유희경』 중에서) 내게 당도했고 나의 시가 되었으므로. 돌본다는 것은 그 옆에서 함께 잠든다는 것 함께 잠드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꿈 같은 거 없이도 살이 붙는 것 - <해국> 부분 시집을 읽다 자꾸 잠이 들었다. 잠들었다기보다는 졸았다. 늦은 밤 소파에 앉아 책을 보노라면 눈은 침침하고 허리는 아파온다. 몸은 점점 소파를 침대 삼아 눕고 책을 상하좌우로 움직여가며 활자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나는 시집을 안은 채 졸고 있다. 시는 이렇게 여름과 가을, 어둠이 내려앉은 밤 시간을 함께 하며 나를 돌봤다. 성인이 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누군가의 돌봄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밤이 더욱 따뜻해진다. “돌본다는 것은 그 옆에서 함께 잠든다는 것”이라는 구절을 읽고는 더더욱 열심히 잠들려고 했다. :) 겹겹이 작약작약 작약이 이렇게나 피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 잘 찾아올 수 있을 것인데 물은 고요하고 대문 앞 가로등이 작약의 낯을 보고 있다 오래 만지고 있다 물속을 날아가는 나비 한 마리 같았다 - <헤어진 후> 부분 귀퉁이가 접힌 곳을 다시 한번 펼쳐볼 때,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될 때 알았다. 시인은 작약이 환하게 꽃피울 수 있도록 물을 주며 정성껏 가꾸었고 작약은 이내 등불처럼 환한 꽃을 피웠다는 것을. 그 작약은 시인이 피워낸 시 일 테다. 세상은 자꾸만 물 아래로 내려가 어둡지만 그렇게 피워낸 겹겹이 작약 덕분이 물속은 환하다. 식물이 등장하는 시가 많아 시집을 읽는 동안 시집 자체가 하나의 식물로 존재하는 듯했다. 제목에 작약이 들어가서 그런지 머리맡에 작약을 한가득 꽂아 놓은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렇게 여름을 지나고 가을이 계속되는 동안 이승희 시인의 시집은 오래도록 작약이 되어 나의 밤을 밝혔고 나를 돌봤다. 작약은 5~6월에 꽃이 핀다. 내년에는 진짜 작약을 한가득 사 와서 집안에 꽂아 놓은 채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를 다시 한번 펼쳐보며 여름을 맞고 싶다. 시는 또다시 내 밤을 어루만져 줄 테니. |
| 시집의 제목과 표지마저여름과 어울린다. 마치 말하듯이 마치 풍경을 그려내듯 표현한 여름의 느낌들을 여름이라서 더 잔잔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시 하나하나 잔잔하게 아껴두며 읽데 되는 매력이 있었다. 봄부터 시작한 시집이었는데 마지막을 덮으니 여름이 다 지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