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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송은주 북스코프/2009.7.15. sanbaram 한 달여 전에 ‘문학소녀’님의 책 나눔 이벤트에서 받은 책인데, 밀린 서평 쓰고, 여행하느라 바빠 못 읽다가 시차적응 기간에 읽게 된 책이 <집으로 가는 길>이다. 처음엔 난민문제인가 하는 생각으로 책을 신청했던 것인데 받고 보니 내전으로 혼란한 아프리카의 소년병 이야기였다. 요즘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은 중동의 시리아지방이지만, 아프리카의 내전은 서방세계의 자원침탈 과정에서 지방호족들과 결탁 하여 내전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 곳곳에서 내전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어른들의 욕심으로 순진한 소년들이 기아와 공포, 그리고 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리고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저자 이스마엘 베아는 1980년 시에라리온에서 태어났다. 친구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가 어른들의 전쟁 속에서 부모 형제를 모두 잃은 이스마엘은 전쟁터를 누비는 소년병이 되었다. 1998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교육을 마치고 ‘유니세프 소년병 캠페인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랩 음악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춤추기를 즐기던 평범한 열두 살 이스마엘이 내전에 휩쓸려 소년병이 되었다가 다른 이들의 도움과 스스로의 노력으로 전쟁의 불구덩이를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가족과 헤어져 몇 달을 헤맨 끝에 간신히 가족과의 상봉을 눈앞에 둔 순간, 간발의 차로 반군들에게 가족들이 몰살당한 현장을 확인하는 대목은 읽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책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무자비하게 무고한 민간인들을 살상하는 반군들이나 정부군의 잔혹함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어른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생명을 담보로 병정놀이하듯 사람을 죽이는 앳된 소년들의 활동이 섬뜩하다. 그들의 행동을 보며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잔인함의 끝이 과연 어디인가 생각하게 한다. 마약과 마리화나를 과자나 간식처럼 달고 살면서 ‘사람을 죽이는 일이 물 한 잔 마시는 것만큼이나 쉬웠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황폐함 그 자체라 할 만하다. 재활 센터에 들어가서도 반군과 정규군이었던 소년들이 서로 패를 나누어 싸우고 죽이며, 마약의 금단 증상을 이기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처연했다. 그런 아이들에게도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라고 진정을 다해 말하는 어른들의 진심이 전해졌다. 간호사 에스더와의 만남을 통해 이스마엘이 마음을 열고 변해가는 모습은 한 인간에 대한 조건 없는 믿음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내전이 격화되어 정부가 전복되고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의 혼란함에서 벗어나 이웃 나라로 피난하는 과정 또한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국경을 지키는 군인들의 행태는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급급한 인간들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이두가 잠시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올 때마다 나는 눈을 꼭 감고 죽음을 기다려, 아직 살아 있다 해도 체념하고 죽음을 받아들일 때면 내 일부가 조금씩 죽어가는 것을 느껴, 머잖아 난 완전히 죽고 너희들과 함께 걸어가는 나는 텅 빈 껍데기만 남게 될 거야.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말이 없겠지.”(p.102) 배가 고파 하늘에서 떨어져 죽은 까마귀 고기를 나누어 먹고 이틀이 지난 후 사이두가 죽어 가면서 한 말이다. 그래도 주인공은 ‘살아 있는 한, 더 나은 날이 오고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희망이 있단다. 더 이상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희망을 잃게 되면, 그때 죽는 거야.’라고 한 아버지의 말을 되뇌면서 버텨낸다. 부모들 앞에서 투정을 부릴 나이에 죽음의 문턱을 넘으면서 일찍 어른스러워진 주인공 이스마엘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어릴 적에 할머니는 나에게 하늘이 자기를 쳐다보고 귀를 기울이는 이들에게는 말을 걸어준다고 하셨다. “언제나 하늘에 모든 것에 대한 답과 설명이 있단다. 고통이든, 괴로움이든, 기쁨이든, 혼란이든, 뭐에 대해서든 말이다.” 그날 밤하늘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p.244) 이처럼 하늘을 보며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해보지만 이제 동심을 잃어버린 마음으로는 더 이상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껍질에 붉은 수액이 말라붙은 나무 옆에만 서면, 나무에 포로들을 묶어놓고 쏘아 죽였던 기억들이 되살아나곤 했다. 포로들의 피는 나무 속 깊이 스며들어 우기가 와도 씻겨나가지 않았다. 나는 삼촌에게 가족들이 일상적인 일을 하는 모습, 아이가 아빠를 껴안는 모습, 엄마 옷자락에 매달리거나 부모의 손을 잡고 가는 모습, 홈통을 흔드는 모습을 보면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떠오른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마다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바꾸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p.278)” 이처럼 조숙해 버린 주인공이 자기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삭여야 하는 진한 아픔이 배어나온다. 그러면서 꿈을 꾸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전쟁이 남긴 상처는 마음 깊이 자리하여 항상 불안하고,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어른도 전쟁 후유증으로 일생을 쫓기듯 불안을 안고 사는 경우가 많은데, 아직 감수성이 예민하고 여린 마음을 가진 아이들은 얼마나 큰 충격과 후유증이 있을까 짐작이 간다. 철없는 우리 아이들이 읽으면 지금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고, 많은 어른들이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의 영혼에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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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은 랩 음악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춤추기를 즐기던 평범한 열두 살 이스마엘이 내전에 휩쓸려 소년병이 되었다가 다른 이들의 도움과 스스로의 노력으로 전쟁의 불구덩이를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가족과 헤어져 몇 달을 헤맨 끝에 간신히 가족과의 상봉을 눈앞에 둔 순간, 간발의 차로 반군들에게 가족들이 몰살당한 현장을 확인하는 대목은 읽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책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무자비하게 무고한 민간인들을 살상하는 반군들이나 정부군의 잔혹함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어른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생명을 담보로 병정놀이하듯 사람을 죽이는 앳된 소년들의 활동이 섬뜩하다. 그들의 행동을 보며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잔인함의 끝이 과연 어디인가 생각하게 한다. 마약과 마리화나를 과자나 간식처럼 달고 살면서 ‘사람을 죽이는 일이 물 한 잔 마시는 것만큼이나 쉬웠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황폐함 그 자체라 할 만하다. 재활 센터에 들어가서도 반군과 정규군이었던 소년들이 서로 패를 나누어 싸우고 죽이며, 마약의 금단 증상을 이기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처연했다. 그런 아이들에게도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라고 진정을 다해 말하는 어른들의 진심이 전해졌다. 간호사 에스더와의 만남을 통해 이스마엘이 마음을 열고 변해가는 모습은 한 인간에 대한 조건 없는 믿음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내전이 격화되어 정부가 전복되고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의 혼란함에서 벗어나 이웃 나라로 피난하는 과정 또한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국경을 지키는 군인들의 행태는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급급한 인간들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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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우연히 집어들고 보다가 그 다음 내용이 계속 궁금해졌던 책이다. 그게 실화여서 더 그랬나보다. 현실이란 게 원래 비현실적이라고 말한 영화 속 어느 대사처럼 이 책 역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현실을 말하고 있어서였다. 이스마엘은 시에라리온의 소년이다. 춤을 좋아했던 이 소년은 옆 동네에서 장기자랑을 하려고 친구와 함께 집을 떠났다가, 내전이 일어나 정부군과 반란군이 서로 전쟁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죽을 고생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지만 가족을 포함해 마을 전체가 이미 몰살당했다. 갈 곳이 없어지고 살 길이 막막해진 이스마엘은 여기저기 정처 없이 떠돌다가 군인들에게 잡히면 선택의 여지 없이 소년병이 되어야 한다. 그 가운데서 겪은 고통과 비극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나는 불법 입국자가 되었다. 나중에 문제가 될 줄은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엔 유니세프의 도움으로 심리치료를 받으며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되는데, 현재는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단다. 그 때 소년병이 되어 다른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은 너희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아.. 애들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가해자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재활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상깊었다. 물론 보통 상황에서의 범죄 가해와는 다르게 다뤄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대체 이게 어느 나라인지 모를 정도로 같은 얘기가 나라만 바뀌어 진술되는 느낌이다. 누구라도 전쟁 같은 상황에서는 짐승 같고 그보다 더한 악을 저지르고 물드나보다. 우리의 한계다. 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 이야기꾼이 원숭이를 잡으러 간 사냥꾼 얘기를 들려주었단다. 가만히 있던 원숭이가 "네가 나를 쏘면 네 어머니가 죽게 될 거야. 쏘지 않으면 아버지가 죽을 것이고." 라고 말했다. 이야기꾼은 너희들이 사냥꾼이라면 어쩔 테냐고 물었다. 이스마엘은 일곱살 때 나름대로 답을 찾았다. "내가 만약 사냥꾼이라면, 나는 그 원숭이를 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야 다른 사냥꾼들이 다시는 똑같은 곤경에 처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꾸 생각에 잠기게 된다. 폭력을 대물림하지 않는 일,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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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이온 내전으로 인한 비참한 현실을 담은 책인데, 이런 책을 읽으면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저런 땅에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안도감, 저 아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일시적인 나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저 아이들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는 나 자신을 볼때면 경멸감마저 들기도 한다. 그들은 많은걸 바라지도 않았다. 발붙이고 살 수 있는 땅과 약간의 먹을 것.... 그것마저도 그들에겐 허락되지 않는 듯 다국적기업은 땅을 밀고 들어와 그들을 내몰아쳤다. 고압전선을 아무렇게나 널부러뜨려 그걸 밟은 아이는 통닭구이처럼 타버려 목숨을 잃었고, 원주민들이 먹는 식수엔 녹물이 흘러들게 했다. 지나가는 여자를 강간했고, 차를 몰고 들어와 흙먼지를 일으켜 사람들의 호흡기를 위협했다. 광산개발을 위한 위험천만한 일에 원주민을 고용했고, 매몰되어 사망자가 나오면 쥐도새도 모르게 그들을 없애버렸다. 정부는 자본가들와 손을 잡았고, 경찰은 썩을대로 썩었다. 고위간부는 대놓고 맘에 드는 여자아이를 골라 하룻만을 지냈고, 교육을 실천해야할 교장은 혼자 잘먹고 잘사는 방법을 택했다. 나름 배웠다는 엘리트에 속하는 선생들은 밀린 월급을 받지못해 가족을 부양하기도 힘들었다. 교육의 결과가 이러하니 아이들은 교육이라는것에 회의를 느꼈고, 당장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하니, 여자아이들은 몸을 팔았다. 누가 이 아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소년병들은 총으로 자기 부모를, 이웃을 죽였다. 7살 여자아이의 팔을 잘랐고, 6살 남자아이의 두 팔을 잘랐다. 이 소년병들마저도 우리는 비난할 수가 없다. 그들또한 희생자이다. 전쟁이 끝나면 소년병들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으로 인해 팔을 잃은 아이를 위해 용서를 빌며, 평생 그들을 위한 삶을 살기도 결심한다. 소년병들은 잔인했지만, 그 잔인성이 그들 마음 깊은곳까지 들어가진 못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자본가들의 이익,,, 그들의 이기심이 뿌리뽑히기 전엔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어 보였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서로가 서로의 가족이 되어준다. 팔이 없는 아이들 입에 먹을것을 넣어주고, 부모가 없는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어주기도 한다. 전쟁으로 모든것이 피폐해졌지만, 그들은 다시 처음부터 모든것을 일구어간다. 그들에겐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늘보다 조금은 더 나은 내일이 오지 않을까. 그들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빛을 보는 사람들이었다.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이 할 수 있는건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진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진실을 알아야 한다... 모든 이야기는 여자, 어머니, 할머니, 소녀, 아이와 함께 시작되고 끝난다. 모든 이야기는 '탄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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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사관학교에서 후보생 교육을 받을 때 처음 총을 쏴봤다. 입교 초기부터 총은 또 하나의 몸이라면서 철저하게 청소하고 관리할 것을 명령했다. 교육훈련을 받을 때에도 항상 총은 내 몸에서 떨어지지 않게 해야 했다. 쉬는 시간 화장실에 갈 때에도 어깨에 총을 둘러메고 다녀와야 했다. 그래도 실전 사격은 달랐다. 실탄 사격 일정이 잡힌 날 오전부터 훈육교관들의 얼차려는 시작되었다. 사격장으로 이동하는 중간 중간에 별 이유도 없이 얼차려를 다시 받고 사격장에 가서 사격을 하고 안전검사 후 정렬해 자리에 앉기 전까지 얼마나 호통을 치고 얼차려를 주는 지 정신없이 사격을 했던 것 같다. 사격에는 실탄이 지급되고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총구방향을 비틀어 격발을 하면 엄청난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의미에서 그랬던 것 갔다. 처음으로 해본 실탄 사격은 생각보다 더 위력적이었다. 입교 시 지급된 K-2소총을 매일 몸에 끼고 살아도 ‘이게 과연 발사가 되는 건가?’싶을 때가 많았다. 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마치 장난감이나 레저용 장비인 것처럼 느껴지던 찰나였다. 실탄 사격은 반동이 생각보다 심하고 소리도 생각보다 컸다. 가장 놀랐던 것은 생각보다 정확했다는 것이다. 총 20발 중 12발 이상 표적을 넘어뜨려야 합격이 되는 훈련인데, 대부분의 후보생들이 이 기준을 넘었다. 장난감 총 내지는 레저용 정도로 생각했던 총이 살상무기라는 사실을 인식한 순간 식은땀이 났다.
10대 초반 어린아이들이 AK소총과 RPG포를 들고 다니는 장면을 상상할 수 없다. 내가 후보생이던 시절 훈련의 일환으로 사격을 한 것이 아니라 실제 전투에서 사람을 죽이는 사격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끔찍한 사실이다. 이 책 「집으로 가는 길」을 읽으며 신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신이 있다면, 그 어떤 신이든 있다면 이 책의 내용처럼 비극적이고 암담하며 절망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싶다. 순전히 어른들의 욕심으로 아이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일이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다. 이스마엘은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여러 날을 계속 걷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남자 두 명이 총을 들고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났다. 그들은 총구를 들이대며 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p.161)
힙합 음악과 춤을 좋아해서 형과 친구들과 함께 연습하는 것을 좋아했던 이스마엘. 옆 동네에서 열리는 장기자랑 대회에 나가기 위해 집을 나선 것이 이스마엘에게는 악몽의 시작이 되었다.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에라리온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어른들의 욕망이 가득한 곳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유럽과 미국, 이른바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의 다이아몬드 수요는 끊이지 않았고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정치적인 다툼과 쿠데타, 반군을 지원해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려는 라이베리아. 이런 아귀다툼은 고스란히 시에라리온에 사는 국민들이 피를 흘리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중에서도 어린 소년병들의 무분별한 징집(납치)은 시에라리온의 가장 큰 악몽이다. 이스마엘도 옆 동네 장기자랑에 참석하기 위해 간 그 길로 소년병이 되었다. 이스마엘은 반군과 맞선 정부군의 소년병이 되었는데, 정부군인가 반군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 시체들이 두렵지 않았다. 나는 경멸하는 마음으로 시체들을 발로 차서 뒤집었다.” (p.189) “사람을 죽이는 일이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쉬웠다.” (p.192) “우리는 2년간 전투를 했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과는 살인이었다.” (p.198)
2년 동안 이스마엘은 소년병으로 전투에 참여했다. 눈앞에서 가족들의 죽음을 목격한 후 들어온 정부군에서는 오로지 반군에 대한 적개심만을 주입했다. 그 불타는 복수심을 이용해 아이들이 총을 쏘고 대포를 발사하고 전장으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는 것을 전혀 가르치지 않은 채 아이들을 사지로 내 몬 것이다.
“어린 군인 하나가 뭔가 알약이 가득 든 비닐봉지를 들고 왔다. 캡슐처럼 보였는데, 그냥 하얀색이었다.” (p.183)
더 심각한 문제는 마약이다. 아무리 가족에 대한 복수심에 불탄다 할지라도 소년병들은 아이들이다. 실제로 총알이 빗발치고 동료가 죽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면 제정신으로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마약을 먹인다. 별 것 아닌 것처럼 그냥 비닐봉지에 가득 담은 채로 배급하듯이 아이들에게 마약을 준다. 너무 처참하다. 이것은 마약이니까 많이 먹으면 안 되고, 혹시나 부상을 당하거나 도저히 전투에 나갈 자신이 없는 소년병들에게만 지급한다는 기준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감기약 먹듯이, 매일 아침 습관적으로 비타민 알약을 챙겨 먹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마약을 줬다. 아이들의 몸은 물론 정신까지도 완전히 황폐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소년병들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무기에 불과했다. 쓰고 나면 버리는 것이 당연하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마약을 지급해 환각 상태에서 전투에 뛰어들게 하고 죽으면 그만이고 살아 돌아오면 다시 마약을 먹이면 그만인 것이다.
“총 한 발이 후골을 박살내고 목구멍 뒤에 깊숙이 박혔다. 시체의 얼굴을 덮은 천을 들친다. 내 얼굴이 보인다.” (p.45)
하지만 이스마엘은 마약으로도 악몽을 떨쳐낼 수 없었다. 2년 동안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살인이 습관화 되더라도 악몽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전쟁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몇 시간 뒤 트럭 한 대가 마을로 들어왔다. 깨끗한 청바지와 ‘유니세프(UNICEF)'라는 파란 글씨가 큼지막하게 박힌 흰색 티셔츠를 입은 남자 네 명이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p.201)
그러던 중 유니세프가 정부군을 찾아와 부대장이던 중위와 상의한 후 어린 소년병들 몇을 데리고 간다. 이때부터 이스마엘과 다른 소년병들의 힘든 재활이 시작된다.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마약에 찌들어 전쟁 기계가 된 아이들은 갑작스런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아이들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금단현상이었다. 쉽게 먹지도 잠들지도 못한 채 마약을 갈구하며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재활센터에서 마련해준 포근한 숙소도, 학교도, 사람들도 그들의 적개심과 폭력성을 쉽게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나한테 그런 짓을 한 건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 (p.219)
아이들은 서서히 변해 간다. 어김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심지어 재활센터에서조차 정부군 소년병과 반군 소년병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 아이들이 죽기도 했지만 재활센터의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잘못을 돌리지 않는다.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 It's not your fault. 숀 교수로부터 윌 헌팅이 들었던 그 말. It's not your fault. 아이들은 서서히 마음을 연다. 마약으로부터 멀어지고 금단현상으로부터 멀어진 후 원래 아이의 모습을 되찾는다. 물론, 죽음의 현장에서 전쟁기계가 되었던 절망적인 상처가 한꺼번에 치유될 수는 없었지만 이스마엘은 유엔에서 시에라리온 아이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발표도 하게 되고 훗날 양어머니가 되는 로라도 만나게 된다.
“프리타운에 계속 있다가는 결국 다시 소년병이 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예전 군대 동료들 손에 죽든가 둘 중 하나일 것 같았다. 떠나야 했다. 나와 함께 재활 과정을 거쳤던 친구들 몇은 벌써 군대로 돌아갔다.” (p.321)
이스마엘은 힘든 재활과정을 이겨내고 삼촌 식구들과 함께 살게 된다. 엄마, 아빠보다 더 사랑을 쏟고 보살펴주는 삼촌과 숙모, 사촌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가 싶었는데, 수도인 프리타운을 반군이 점령하게 되면서 이스마엘은 다시 한 번 집을 떠나야 했다. 이스마엘의 말대로 그대로 프리타운에 남아 있다가는 다시 소년병이 되거나 소년병들의 손에 죽거나 둘 중 하나였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는 자명했다. 미국으로 가기 전 바로 옆 나라 기니로 탈출하기 위해 또 다시 험난한 여정을 겪는다. 미국으로 가서 어떻게 양어머니를 다시 만나는지에 대한 과정은 책에는 없지만 이런 책을 출간하고 한국에도 자신의 책이 출간되어 나와 같은 독자들이 그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꼭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것이 이스마엘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성인으로, 한명의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을 이스마엘의 앞길에 축복이 있기를 기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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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카리는 다시 교사직을 구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아 학위 논문을 대신 써주는 일자리를 얻는다.쿨라 역시 호텔 일을 구한다.이제 행복만 남았다고 생각한 가족에게 다시 위기가 닥친다.보카리의 회사 사장이 마약 연루 혐의로 붙잡히고 쿨라 역시 억울하게 해고당한 것이다.부부의 손에는 아이들을 먹일 최소한의 돈조차 바닥났다.모든 희망을 잃고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는 가족들....., 절망 속에서도 희망에 대한 기다림과 과거의 반짝이는 기억으로 오늘을 버텨 가는 사람들을 그리는 소설 내일의 빛은 전쟁이 할퀴고 간 상흔의 시에라리온의 작은 마을 임페리에서 시작하고 있다.모두들 큰 상처를 갖고 있었지만 고향이 아닌 곳에서는 진정한 평온과 안식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제일 먼저 도착한 마을 노인들이 쌓여 있는 유해를 정리하고 망가진 마을을 이곳저곳을 치웠다. 임페리 주민들도 전쟁이 벌어졌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하지만 마을로부터 수백 마일 멀리서 벌어진 일이 이곳까지 닥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그들의 삶을 처참하게 망가뜨릴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그날 오후 그 일이 일어났다.
학교가 문을 열면서 보카리도 교사로 복직한다.동료 교사 벤자민과 그의 가족들이 임페리로 이주하며 두 사람은 깊은 우정을 맺는다.그러나 희망은 오래 가지 않았다. 탄광 회사가 들어선 것이다. 마을엔 술집이 생겨났고, 마을 어른들의 옛 이야기로 마무리되던 하루는 시끄러운 노래 소리와 술 먹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의 다툼으로 끝났다.돈 주고 여자를 사거나 강간하고,선량한 주민에게 시비를 걸기도 한다. 준설기가 쓰러지면서 벤자민이 죽는 사고가 벌어지고 그의 마지막 통화를 전하던 보카리도 일자리를 잃는다.보카리는 벤자민의 가족을 그들의 고향으로 데려다 주며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하지만 그곳은 매일 벌어지는 무자비한 공습에 멍든 지 오래였고,보카리와 가족들은 고민 끝에 수도이자 도시인 프리타운으로 이주할 계획을 한다.프리타운으로 온 보카리와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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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에 '망고 한조각'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서정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아주 힘들게 읽어내려 갔던 책이었다. 내전으로 인해 신체적으로 고통을 당하던 아이가 쓴 책. 다른 나라들간의 전쟁도 힘든데 왜 사람들은 자기네들끼리 싸워야만 할까. 사람이 어디까지 잔인해질수 있는지를 책을 통해서만 느꼈고 이일들이 실제로 지금도 존재하는 일이라 더욱 마음 아팠던 것 같다. 아직도 내가 모르는 지구 반대편 어디에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더욱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비슷한 류의 책을 몇권 보다가 일부러 외면하고 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종류의 책들을. 내가 해줄수 있는 것이 없어서.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책의 저자인 이 책의 주인공도 그러하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다던 '집으로 가는 길'. 나는 읽지 못했다. 아마도 관심이 없어서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이 역시도 내전으로 힘들게 고통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했는데 이 이야기는 그 이야기의 후속편이라 할수 있겠다. 물론 그 책을 보고 난 후에 이 책을 보았다면 더 좋겠지만 이 책만 본다 해도 그렇게 읽는데 지장은 없다. 한 마을 자체가 없어지고 사람들은 죽거나 다 뿔뿔이 흩어진 마당에 이 마을을 일으켜 보겠다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돌아온다. 그들은 페허로 변해버린 마을을 보면서 자신의 집이 어디였는지도 모른채 시체와 뼈들이 가득 쌓여 있는 것을 보면서 한숨을 쉰다.
그렇지만 그것은 잠시뿐 곧 자리를 잡고 자신들이 이곳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모으고 정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 뒤로 또 다른 동네 사람들이 자신들의 집을 찾아서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말 그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돌아온 사람들 중에는 가족이 온전히 다 돌아온 가족이 없었다. 단 한 가족을 제외하면 누군가는 죽어서 다시 돌아오지 못했고 돌아 오더라도 잔악한 적들에 의해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의 손이나 팔이 잘려진 채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자신들이 할수 있는 일을 하게 된다. 그렇게 겨우 정리가 되어가고 사람 사는 것 같이 되어가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그들. 그런 평화가 계속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사람들이 중장비와 함께 들어오고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새소리와 함께 눈을 뜨던 그들의 아침은 우르릉 거리는 기계들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던 그들에게 일자리라는 것이 제공되기는 하지만 사정도 열악하고 그들을 인정해주기 보다는 잡일꺼리를 하는 잡부들로써 그들이 필요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이미 그곳에서 일을 하고 돈이 필요해지는 상황이 된 그들에근 쉽사리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그런 와중에서도 사건은 계속 일어나고 안타까운 목숨들은 죽어가지만 회사측에서는 사건을 묻어 버리고 은폐시키고 죽은 사람 따위는 가볍게 처리한다. 또한 비리가 만연하고 돈이면 다 되는 그런 세상으로 바뀌어 버린다.
어찌 보면 지금의 한국 사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더욱 답답하다. 모든 일은 대충 눈 가림으로 하고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더욱 대충 하며 남들이 보지 않는 것이면 그 역시 대충 하며 모든 것은 뒤로 대는 돈이라던가 권력의 앞잡이로써 연줄을 통해서 다 해결해 버리는 지금의 한국. 썩어도 너무 썩었고 냄새가 나도 너무 난다. 이것이 지금에 와서 갑자기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이때까지 계속 그렇게 유지되어 온 것이 바람 가득 찬 풍선 터지듯 빵하고 터져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정말 나라 자체가 바뀌는 한이 있더라도 조금은 청렴결백한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에게 자신의 몸과 돈을 들여서 도와주는 소중한 손길들이 있듯이 이들에게도 도와주는 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드러낼수 없어서 몰래 보복을 하고 되갚아 주기도 하지만 회사라는 거대 조직에 개개인이 대항하기에는 너무나도 힘들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그냥 그들이 사는대로 두었다면 그들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결국 그들이 힘겹게 회복해 온 마을은 없어지게 되고 그들은 강제로 이주를 하게 된다. 겨우겨우 힘들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또다시 집으로 향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내일의 빛이 있다. 그들에게 이 희망이라는 빛이 있는 한 그들에게 내일은 있을것이고 그들의 미래도 존재 할 것이다. 앞으로는 환하고 희망적이고 기쁜 소식만 언제나 들려오기를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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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빛
언젠가부터 이런 종류의 책들이 서점가를 차지하고 있는 것같다. 이런 종류의 책들을 여러 권 읽어와서인지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한 도서였지만, 책을 덮고나서도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는 것같다.
항상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책 속의 주인공들과 우리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맞는 건가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마치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머나먼 과거,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비단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데, 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부상당하고 사라져가고 있다. 이런 도서들이 갈수록 많은 서점가를 메우고 있다는 사실이 독자들로 하여금 읽고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것만이 아니라, 작은 것 하나라도 새로 깨우치고 실천해야한다는 느낌이 든다.
이 저자의 전작 '집으로 가는길'이라는 책 또한 수많은 극찬과 찬사를 받은 책이라 들었는데 한 번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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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전쟁이 갖고 있는 파괴성과 잔혹성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일의 빛>을 읽으며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몸도 마음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 채 전쟁으로 파괴된 그 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전쟁 그 자체보다 더욱 큰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시에라리온하면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는 어린 아이들과 그 다이아몬드를 판 돈으로 전쟁무기를 구입하고 아이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여 소년병으로 만들어 전쟁터로 내몬다. 세계 최빈국중의 하나인 시에라리온에게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풍부한 천연자원은 도리어 나라를 분열시키는 원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일의 빛>을 집필한 이스마엘 베아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에서 소년병이 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집으로 가는 길>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내일의 빛>은 전쟁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사람들에게 내일에 대한 희망이 가득한 빛이 함께한 것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평온하고 아름다웠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을을 뒹구는 뼈 조각과 유골을 수습하던 모이와는 적막한 마을로 돌아온 친구 케이디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친구가 말짱한 모습 그대로 돌아왔음을 알고 겨우 마음을 놓지만 그들은 서로의 가족의 안부조차 묻지 못한다. 아니 서로의 마음을 위로해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그저 새로운 삶이 시작될 가능성만을 생각한다. 마을로 하나 둘 돌아오는 사람들. 한때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던 시간은 마치 꿈처럼 변해버리고 손이 잘린 아이들이나 누구의 씨인지 밝히고 싶지 않은 아이의 손을 잡고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마을을 이끄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닥불을 피고 모여 앉게 되는 모습을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작게 웃게 되었다. 불신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폭력으로 발전되는지에 대한 우화는 그들이 겪어야 했던 기나긴 전쟁의 본질을 읽어주는 듯 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앞으로 그들에게 다가올 위협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그저 전쟁이 있기 전처럼 소박하지만 다 함께 어울려 웃고 싶었던 마을 사람들에게 그들의 땅이 갖고 있는 풍요로움은 어떻게 보면 저주나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탄광회사를 세운 외국인들이 몰려들면서 마을은 다시 한번 큰 위기를 만나게 된다. 도대체 어디에 ‘내일의 빛’이 있냐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마을을 버리려는 사람들을 돌려세우고 마을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내일의 빛’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사람들의 마음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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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없이 맑은 미소를 보이는 아이들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책 <내일의 빛>을 만났다.
밝은 미소를 보이는 아이들은 미소만큼이나 밝은 모습으로 살아가면 좋을텐데 책을통해 만난 아이들을 그렇지 못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왜 그들은 슬픔을 안고 살아가야 되는지...
긴 전쟁이 끝나고 마을에 평온이 찾아오면서 전쟁을 피해 다른곳으로 떠났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오게 되는데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을 살짜기 들여다본다. 전쟁이라는 큰 상처를 가지고 있는 그들은 고향이 아닌 곳에서 안정을 찾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을 다시 일구기도 하고 유해를 정리하고 마을 곳곳을 보수하기도 하면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려고한다.
전쟁이 끝나고 옛 고향으로 돌아왔다고해서 순조롭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을 아니었다. 자신들의 땅임에도 정작 자신들이 설 곳은 더 이상 없으며 자신들의 고향이라고 목소리를 낼 수 조차 없었다. 그곳을 이용하려는 외부인들에 의해 점점 자신들의 자리는 없어지고 그들과 결탁한 자본들에 의해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할 곳도 없으며 최소한의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그곳에서 그들은 그럼에도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책을 읽는내내 마음 한쪽이 먹먹하니 아픔을 느꼈는데 우리나라도 전쟁을 겪은 나라라 예전 두리들의 모습과 지금 그들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 시대에 살지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뭐라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부모님들로 부터 들은 이야기,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어려움들을 겪으면서도 옛어른들의 피나는 땀과 노력으로 우리는 이만큼 성장을 하게 되었고 그 시절 이야기를 옛 이야기처럼 할 수 있을만큼 성장을 했지만 그곳은 아직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그들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으니 언제쯤이면 그들에게도 빛이 찾아올 수 있게될지 이야기하기 어려울 듯 싶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희망을 발견 할 수 있었는데 어른들이 앞장서서 마을을 지키려고 노력하는가 하면, 젊은이들을 설득하는 모습들을 보며 멀지 않은 미래에 그들도 우리처럼 밝고 환한 세상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며 살아가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한다. 어른들이 지혜를 모아 자신들의 안식처인 마을을 굳건히 지켜낸다면 그들에게도 반드시 밝은 빛이 비치게 되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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