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수시로 바뀐다. 정권에 따라 바뀌기도 하지만 연령층의 변화에 따라서 큰 맥락도 바뀔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박정희나 노무현 일 것이다. 하지만 김대중에 대한 평가만은 바뀌면 안된다. 우리 당대사는 그에게 너무나 많은 빚을 졌기 때문이다.
김대중하면 나는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장에서 서럽게 울던 모습이 떠오른다. 단순히 인간적 관계가 아니라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이렇게 위태롭게 갈 수 있구나하는 참담함이 그분을 통곡하게 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에 대한 공과 과를 평가해도 나는 김대중에 대한 평가만은 달라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김대중이라는 인물을 만난 것은 <옥중서신>을 통해서 였다.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온 편지>나 신영복 선생의 옥중서신이 주는 감동처럼 그 책도 나에게 깊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한사람이 지적으로 성숙하기 위해 어떤 독서 커리큘럼을 가져야 하는지도 간접적으로 배웠다.
이번에 출간한 <김대중 육성회고록>이 도착하고, 나는 가능하면 꼼꼼히 전체를 읽으려 노력했다. 술자리가 끊이지 않기 때문에 아침 출근 전철에서 주로 읽으며서 열흘정도에야 완독할 수 있었다. 책을 통해 한 인물을 깊게 공감하는 깊은 성찰의 시간이 되어 주었다.
한편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육성을 읽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현실 정치와 너무나 대비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몰상식의 대통령과 무능한 팬덤 정치의 1야당이 존재감 없는 정치 현실이 그대로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김대중이 기초를 세운 공공의료나 국가재정, 외교는 끝없는 나락을 향해가는 느낌이다. 경종을 울려야 할 언론은 어디에 있는지 존재가 없고, 진보세력들도 이미 부른 배를 소화시키기 위해 너무나 조용한 느낌이다.
이 책은 2006년부터 2007년까지 김대중 대통령과 41차례의 구술 인터뷰를 바탕으로 정리한 책이다. 주제별로 시간이 오가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김대통령의 삶의 전반을 정리했다. 2009년 8월에 작고하셨으니 인생 최후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데, 소중한 작업이라 생각된다.
어릴적 이야기에서는 역시 부모님의 헌신적인 희생에 눈이 갈 수 밖에 없다. 특히 잠자는 엿장수의 물건을 훔쳐온 소년 김대중에게 어머니가 했던 행동은 아이에게 행동 하나하나를 가르치는 부모의 역할을 생각하게 한다.
앞 부분 김구선생을 평가할 때 “정치인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심지어 최악을 막기 위해서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정치인은 현실 속에서 미래를 향한 진리를 구해야지 진리만 붙들고 현실을 도외시하면 안됩니다.”라는 말이 머리에 박힌다. 지난 대선에 나 역시 일선에서 뛰어든 것을 스스로 평가해보기 때문이다. 이 말은 후반 후배 정치인에게 드리는 말과 연결된다. “정치인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함께 가져야 합니다. 둘 중 하나만 있어서는 안됩니다.”라는 말이다. 지금 정치를 읽을 때도 유효한 말 같다.
내가 김대중에 대해 가진 잘못된 선입견을 확인한 것도 있다. 아마 공산주의와 미국에 대한 대통령의 관점일 것이다. 그렇게 까지 있을지 몰랐는데 김대통령은 철저하게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삶을 살았다. 아울러 미국은 추종에 가까우리 만큼 중요시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이 나라에서 그를 빨갱이라 낙인 찍은 정치적 고난을 생각하면 참 모순되어서 생경할 정도다.
끝없는 공부를 통해 역사나 국제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가졌다는 점은 놀라웠다. 71년 대선에서 사실상 이긴 패배를 당한 후 김대중의 고초는 쉽게 예견된 것이다. 이후 박정희나 전두환, 노태우 등 권력자는 계속해서 김대중을 회유해 편한 길을 가자고 한다. 하지만 그는 역사에 대한 믿음으로 외로운 길을 가고, 1997년 우리 역사 최초로 평화권 정권교체를 이룩한다. 그가 그 길을 가지 못했다면 누가 성공했을까. 우리는 일본 자민당 못지 않은 일당 지배국가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
일상이나 외교, 남북정상회담 등 주요한 순간에 힘을 발휘한 경청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연설의 달인이 경청의 달인이 된다는 것은 초인적 능력이다. 부시나 김정일의 말을 들어주는 그의 모습에는 진정한 소통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읽는다 페북에 올렸을 때, 한 페친이 87년 김영삼과 단일화에 실패한 장면을 질타했다. 다행히 이 의견을 듣고, 그 부분을 더 자세히 읽었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알려진 대로 1969년 11월 신민당에 분 40대 기수론을 내세울 때부터 깊은 경쟁관계가 시작된다. 이때 김대중이 대선 후보가 된다. 둘의 인연이 정점으로 치닫는 것은 당연히 1987년 대선 과정이고, 노태우가 당선되면서 둘 다 비판을 받는다. 이 과정에 대해 김대중은 당시 김영삼 측이 대선후보는 물론이고 당권을 독점하려 하고, ‘김대중이 되면 군에서 쿠테타를 일으킬 수 있다’는 방식으로 공격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1979년과 1985년에 김영삼이 당권을 잡도록 양보했는데, 너무 일방적이었다는 점을 판단의 근거로 든다. 이후 두 사람의 정치적 행보를 생각하면 김대중의 김영삼에 대한 생각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87년과 93년 대선 패배 후 김대중은 정계를 은퇴했다가 1995년 7월 정계에 복귀해 ‘새정치국민회의’를 참여한다. 사실 나도 대학 4학년인 그해 9월 쯤 이 당의 당직자 시험에 응시해 면접을 본 후 떨어졌다. 당연히 내 인생을 걸 인물이었고, 정당이었다.
이후 1997년 IMF위기 후에 치러진 선거에서 김대중은 당선된다. 국망을 초래한 여당의 무능과 이인제의 표 분할에도 표 차이는 1.53%, 39만표 차이였다.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은 그가 가진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5년간 상상할 수 없는 이들을 해낸다. 우선 3년 일찍 구제금융에서 벗어나고, 국민연금, 국민의료보험, 실업 등의 기초를 세운다. 국제관계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도 그의 통찰력과 실천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통한 문화 강국 기초 쌓기, 전자정부 구현 등도 그의 혜안으로 가능했다.
김대중은 다행히 노무현으로 정권재창출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후에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맞는다. 아울러 노무현의 사망 등 힘든 일 들도 겪어야 했다.
김대중이 생각하는 정치는 무엇일까. 김대중이 노무현을 평가할 때 “결국 대의명분에 맞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오래가고 좋은 평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 대의명분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순간의 이익을 쫓는 정치인들은 쉽게 꺽이고 정치 수명이 짧습니다.”라고 말한다. 아울러 정치인에 당부하는 말에는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가지라는 말과 더불어 국민에 반보 앞서는 스탠스, 정책 학습 능력 등을 이야기한다.
김대중은 유신 이후 일본 망명, 납치사건, 미국 망명을 겪으면서 국제정치에 혜안을 갖는다. 물론 이는 어려서부터 일본 정치 평론을 읽고, 공부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지식을 바탕으로 국제정치의 흐름은 물론이고 중국의 부상 등도 예견했다. 대통령은 “나는 늘 ‘도랑에 든 소는 양쪽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다’는 비유적인 표현까지 써가면서 적극적이거 창조적인 외교”를 말하면서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미중 외교 등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사실 미중 외교는 물론이고 외교의 기본적인 ABC조차 모르는 이들이 국제관계를 망치는 모습을 보면 돌아가셨지만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민생은 무너지고, 의료 든 오랫동안 공들인 우리나라의 선진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
아마 다음에 정권을 잡는 사람은 이순신 장군에 서애 유성룡에게 써 주었다는 재조산하(再造山河)라는 말을 실감할 것이다. 이 말을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김대중의 길을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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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 추운 겨울을 견디며 피어나는 꽃. 강인함과 끈기를 상징하는 꽃.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을 이야기할때 이 꽃에 비유하곤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에 나도 대한민국 국민이었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워낙에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고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육성회고록'을 읽으며 그분에 대한 나의 생각과 마음이 너무 얉기만 했다는걸 느낄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겪은 고난은 글만으로도 너무나 힘들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 고난들을 나약한 인간이 어떻게 이겨낼수 있수 있었을지.. 그분의 인내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감히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그저 고난을 이겨낸 것이 다가 아닌, 그 고통속에서도 혼돈의 아수라장인 대한민국을 바로서게 하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루어낼 방안과,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수 있는 방안과, 대한민국의 복지를 이루어낼 방안과, 대한민국을 살려낼 무수한 방안, 방안들... 이 모든 것들을 고민하고 하나하나 이루나가는 과정이 그저 경이롭기만 했다. 또 하나는, '용서와 화합'이다. 자신을 비방하고 거짓으로 선동한것도 모자라 생명의 위해를 가한 자들까지도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모습을 보며 기꺼이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이 되고도 남음직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김대중 100년과 대한민국 100년을 재조명하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 생전에 진행한 41회의 구술 인터뷰 녹취록을 바탕으로 펴낸 '김대중 육성 회고록'. 이토록 위대한 대통령과 한시대를 살았다는것이 새삼 감사하고 신기하고 가슴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
올 해는 김대중 대통령님께서 태어나신 지 백년이 되는 해입니다. 일제시대에 학생이었고, 광복 뒤 국가 재건에 참여하셨습니다. 민주주의, 평화, 성 평등, 경제의 정상적인 발전 등… 평생 국가와 국민을 위한 삶을 사셨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지금…아직도 넘어야할 산이 많지만…민주주의 하, 불완전하지만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타인의 잘못에는 단호하게 대응 하셨지만, 사람은 용서 하셨습니다. 본인의 신념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계셨고요. 민주주의는 국민이 스스로 쟁취 해야지만 올바르게 발전하며, 일본은 미국이 만들어준 민주주의 하에서 살다보니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했다는 말씀이 깊게 다가옵니다. 또힌 국가의 미래에 있어 외교 관계가 중요하며 정치인은 실리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말씀도 감명 깊었습니다. |
김대중이 서거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에게서 배울 것이 많기에 이렇게 계속해서 책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엄청난 독서광이자 한국에서 유일하게 노벨상을 받은 인물이 아닌가? 그의 육성을 이렇게나마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까?? #김대중 #육성 #회고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