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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부모님이 외출을 하셨다. 빈 집에 혼자 있으니 만사가 귀찮다. 끼니를 챙겨 먹는 것도 일인데, 이럴 때면 어김없이 라면 생각이 난다. 끓는 물만 있으면 손쉽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라면 덕에 나와 같은 요리치(!)도 굶어죽질 않는다. 우리나라의 라면 소비량은 세계적이다. 급기야 전 세계로 라면을 수출하기도 한다. 인스턴트식품이 몸에 좋을 리는 없지만, 칼칼한 듯한 국물맛과 더불어 쫄깃한 면발에 이르기까지, 그 자체가 지닌 매력만으로도 가끔은 생각이 나는 게 라면이다. 하지만 라면이 우리 고유의 음식은 아니다. 워낙에 많은 한국인들이 애용하는지라 우리의 것으로 둔갑했을 뿐,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질적인 무언가와 만나게 된다. 그 무엇의 정체성 역시 애매하다. 일본이라고 말하기도, 그렇다고 중국이라고 말하기도 뭐하다. 역사적으로 우리와 중국, 일본의 관계는 아주 밀접한 나머지 떼어내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라면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식에서 삼국이 고루 미친 영향력은 발견된다. 타인의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내 것을 보다 풍성하게 만드는 건 긍정적이다. 음식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무엇이 우리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한 번 즈음은 해볼 필요가 있다. 우린 ‘밥’을 아주 중시한다. 식사시간이 되면 “밥 먹으러 가자”는 말로 모든 상황을 정리한다. 식사로 즐길 수 있는 게 밥뿐은 아니다. 한식을 택할 경우 밥 외에도 국이나 찌개, 반찬 등을 함께 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건 ‘밥’이라는 단어 하나로 귀결된다. 그만큼 우리 삶에서 밥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셈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밀가루 음식을 선호한다. 밥보다는 빵과 국수류에 열광한다. 건강식으로도 알려진 한식을 등한시한 대가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비만인구의 증가라는 무시무시한 결과로 이어졌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한식을 섭취하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한식의 정체성은 모호하다. 오죽했으면 “한국인들이 진정으로 한식을 세계화하고 싶다면 한식이 무엇인지부터 정의하라”고 일본의 한 요리사는 말하기까지 했겠는가. 품격 높은 한식당을 방문해도 예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즐겨먹었을 형태의 한식과는 거리가 다소 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나온다. 본격적인 식사에 앞서 서양의 수프를 떠오르게 하는 죽이 나온다거나 후식으로 떡을 제공하는 식이다. 서양 식당처럼 코스로 하나씩 요리를 주는데, 이 역시 모든 음식을 한 상에 동시에 차리는 것보다는 고급스러워 보일 거라는 판단 때문일 듯하다. 우리의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지도 않은 채 퓨전부터 시도하는 꼴이다. 우리의 무지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몽골의 영향권에 들기 전까지 우린 육식과는 거의 담을 쌓고 지냈다. 경제적인 이유에서 서민들은 고기를 충분히 섭취할 수 없었다. 육류 대신 콩을 먹으며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로 널리 알려진 불고기 역시 엄밀히 따지자면 우리의 것이 아니다. 지지고 볶는 류의 요리를 위해서는 프라이팬과 가스레인지의 도입이 절실한데, 그런 것들이 조선시대에 벌써 등장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치마저도 급격한 변화의 산물이다. 고추가 도입된 건 임란 후의 일이다. 그 전까지는 오늘날처럼 맛깔스러운 빨간색 김치가 존재하지 않았다. 맛 역시 매콤함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우리의 것이 아님에도 마치 우리의 것인 양 받아들인 돈가스와 짬뽕 등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로로 도입된 함박스테이크가 이제는 퇴물이 된 것을 고려할 때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음식들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외래적인 것도 토착민의 선택을 받으면 우리의 것 마냥 변신이 가능하다. 나름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지속적인 변형을 통해 한국적인 것으로 재탄생시키는 게 가능하다. 현재 부족한 건 한식에 대한 애정이다. 어떠한 문화도 자국에서 사랑 받지 못하면서 해외에 널리 퍼지진 않는다. 저자는 세계를 주름 잡은 한류 문화의 성공 요인으로 국내에서의 인기를 꼽는다. 음식도 마찬가지일 거다. 밥으로 대표되는 한국음식은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존재한다. 영양학적으로도 권할 만하다. 지금 부족한 건 우리 자신의 애정이다. 이참에 기분 좋게 ‘밥 도둑’이 한 번 되어보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