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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펄벅 작가는 외국인이지만 한국사람보다 더 역사적인 부분이나 문화적인 부분, 또 민간신앙적인 부분까지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외국인이 그 당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한국을 소재로 글을 쓴다는 것도 놀라웠고 역사적 사건이나 풍습에 대해 묘사한 부분들은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소설 '대지' 가 잘 알려졌다고 들었는데 그 책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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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은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슬프다. 그래서 학창시절 근현대사를 공부할 때면 먹먹하게 아픈 가슴을 품고 “~이 없었더라면”, “~가 성공했더라면” 등등의 온갖 가정법을 동원하며 망국의 역사를 부정하고 싶었다. 그래서 1881년이라는 구한말의 시대적 배경에서 시작하는 소설 <살아있는 갈대>는 어느 정도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강화도조약 이후 고조되는 개화와 보수의 대립, 그와 함께 진행되는 대원군과 중전의 팽팽한 정치적 긴장 국면에서 중전을 보좌하는 주인공 김일한은 세도정치 가문 출신이지만 벼슬을 멀리하며 오직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충신이다. 그와 그의 가족 4대는 이후 전개되는 조미수호통상조약과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을미사변, 러일전쟁, 을사조약, 경술국치,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독립운동, 태평양전쟁, 그리고 해방 전야의 복잡한 국제정세와 좌우분열 등의 혼란을 겪으며 우리 민족이 걸어온 수난과 인고의 세월을 보여준다.
김일한은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전 속에서 두려움에 빠진 조정에 미국과의 수교를 제안하고 보빙사의 일원으로 미국에 파견되어 서구의 문물을 접하고 돌아온 직후, 임오군란의 와중에 죽을 위기에 처한 중전을 구출하여 충주에 모시는 한편, 갑신정변의 현장에서는 열강의 세력다툼과 개화와 수구의 충돌 가운데 놓이기도 한다. 동학 농민운동의 현장에서는 선량한 양심으로 인정받은 탓에 위기를 모면하고 을미사변의 참상에서 중전의 유해를 마지막으로 정리한 뒤 낙향하여 자녀들을 교육한다.
“살아있는 갈대”는 김일한의 장남 연춘이 지하 독립운동을 하다가 투옥되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민중들 사이에 전설적인 인물로 추앙되며 불리우는 이름이다. 연춘은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지하 독립운동 중 만난 여인과 아들을 낳지만 독립운동에 헌신하고자 가족을 버리고 홀로 의혈단에 들어가 반식민지가 된 중국의 현실과 국공내전을 목격하던 중 의혈단의 폭력성에 회의를 품고 고향으로 되돌아가고 귀국 도중에 아들 사샤를 만나게 된다. 차남 연환은 조선땅에서 교사로 일하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어 일제에 저항하다가 3.1운동 당시 불타는 교회에서 죽임을 당하고 그의 어린 아들 양은 할아버지 일한이 맡아 기르게 된다.
이렇게 망국의 설움과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독립의 희망을 잃지 않던 김일한 일가는 2차대전의 막바지에 이르러 일본의 패망을 감지하고 해방 후 정부 수립을 위한 준비에 착수하지만 조선인의 입장이 배제된 채 미국과 일본의 통치권 이양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되고 무기력한 조선의 운명 앞에서 독립을 외치던 연춘은 일본 경찰의 총에 죽고 만다. 이에 분노하고 낙담한 아들 사샤는 양과 다툰 뒤 소련이 진주하는 북으로 떠나며 장래의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을 암시하는 가운데 소설은 마무리된다.
<살아있는 갈대>는 이렇게 65년간 4대에 걸친 이야기를 600여 페이지에 펼쳐내는데, 단 한 줄도 놓칠 수 없을 만큼 밀도 있게 진행되는 사건들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고뇌와 갈등을 함축적으로 묘사하면서 시대적 배경과 역사의 해석을 객관적이면서도 절제된 어조로 서술한다. 이는 작가가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펄 벅 여사인 것에 주목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선교사의 딸로서 성장기 대부분을 중국에서 보낸 저자는 노벨문학상 수상작 <대지>의 작가로 유명한데, 부산의 한국전쟁 참전군인 묘역을 방문하던 중 만난 한국인 부부를 모델로 주요 등장인물을 세우고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때론 한국인보다 더 한국에 애정이 있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녀가 한국전쟁 중 태어난 혼혈아들을 위한 보육원을 세우고 평생 박애주의적인 활동가로서 살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이유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특히 미국이 조미수호통상조약에도 불구하고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일본의 침략을 묵인했던 것과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조선 민족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으며 이후 전개된 상황들이 얼마나 실망스러웠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슨은 그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의 서술을 보면, 한국에 대한 미국인의 반성적 자세와 세계사적 흐름에서의 객관적 안목도 돋보인다. 이 소설은 1963년에 미국에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뉴욕타임즈가 “한국에 전하는 위대한 유산”이라 평할 만큼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책 머리에”서 작가는 한국이라는 생소한 나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서구의 독자들에게 소설의 역사적 사실성을 강조하는 한편 “한국인들을 묘사할 때 마다 항상 그들에게 진실되려고 노력하였다”고 말하는데, 그 진실성을 소설 전반에 걸쳐 확인할 수 있었다.
<살아있는 갈대>를 읽을 때에는 영문학자이자 번역가인 장왕록, 장영희 교수 부녀도 꼭 기억해야 한다. 1960년대 최초 발간 당시 서울대 장왕록 교수가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였고, 1999년에는 부녀가 함께 <살아있는 갈대>로 개역하여 출간하였다. 생전 장애와 암 투병의 고통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몸소 보여주었던 고 장영희 교수의 따뜻한 마음이 부녀가 함께 번역한 작품의 문체를 통해서도 전해지는 것만 같다. 그러나 번역가들의 전력을 모른 채 작품을 읽는다 할지라도, 작가가 풀어내는 모든 문장과 역사적 서술이 한 치의 어색함도 없이 그대로 잘 전달된다는 점에서 번역본이라는 점이 오히려 놀라울 정도이다. 번역은 분명 문학의 한 종류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
<살아있는 갈대>를 읽는 내내 비슷한 시대적 배경을 공유하는 박경리의 <토지>와 이민진의 <파친코>를 떠올리며 마치 동시대 사람들이 모두 살아있는 것 처럼 상상하기도 했다. <토지>에서는 조선 민족으로서의 아픔과 내적 고뇌가 강한 인상으로 각인되었고 <파친코>에서는 험난한 환경 속에서 각자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다양한 삶의 이면과 희망을 보았다면, <살아있는 갈대>에서는 한국사의 개별적 특성과 세계사적인 보편성까지 넘나드는 폭넓은 안목이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에 감탄하면 할수록, 펄벅의 <대지>는 모두가 잘 알아도 정작 우리의 역사를 다룬 이 훌륭한 작품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내 나름의 생각으로는 번역된 탓에 국문학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도 있을 것 같고, 60년대 첫 출간 당시에는 가슴 아픈 역사를 직접 살아낸 이들로부터는 큰 관심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후 생존과 발전만을 좇아 달려온 나머지 이방인이 풀어낸 우리의 아픈 역사까지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 그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오랜 평화에 익숙해지고 수많은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들, 그리고 적잖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전 세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대한민국의 이름이 자랑스러워지는 21세기에 100여년 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살아있는 갈대>를 읽으라고 권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어루만져주시던 할머니와 어린 나를 안고 고향까지 찾아가 하루 종일 자랑하셨다는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우리 조상들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치던 그 시대를 떠올린다. 바람에 쉽게 휘어져도 결코 부러지지 않고 기어코 다시 일어나는 <살아있는 갈대>는 나의 존재의 뿌리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