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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바스티안 하프너의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은 1978년에 출간된 책이다. 제목의 의미는 히틀러를 다룬 주요한 저술들이 이미 나와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저술들을 독자들이 읽고 이해함에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몇 가지 주석을 덧붙였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실제 예켈의 [히틀러의 세계관](우리나라에는 미출간)과 요하임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하프너의 글은 제목과 달리 단지 주석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히틀러에 대한 독일인들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 필요했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남긴 이 어두운 유산은 우리 독일인들을 계속 짓누른다. 우리가 그를 선출했다면, 어떻게 우리 스스로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아우슈비츠를 허용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히틀러의 유산은 여전히, 우리가 거리낌없이 현재와 미래를 대할 수 없게 한다. - p. 24 中에서 - 더구나 "오늘날의 세계는 우리 마음에 들든 안 들든 분명 히틀러의 작품이다."라는 저자의 목소리는 이 책이 단지 독일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와 학살을 저지른 히틀러에 대한 글은 그에 대한 비판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책은 '생애 - 성과 - 성공 - 오류 - 실수 - 범죄 - 배신'이라는 항목을 통하여 히틀러를 서술함으로써 열광적인 호평과 격렬한 반박을 동시에 받게 된다. 그에게 '성과'와 '성공'이라는 표현이 가능한 것일까? 그동안 그러한 부분들은 히틀러의 범죄에 다다르기 위한 과정으로 인식되었기에 하프너의 이러한 시도는 확실히 논란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어쩌면 단순히 히틀러의 성과와 성공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고 폄하함으로써 가려지는 것들, 예를 들어 히틀러의 경쟁 세력의 패착과 그릇된 판단들이 그동안 히틀러의 악명으로 인하여 제대로 지적되지 않았기에 이러한 시도는 확실히 참신하면서도 우리의 시야를 더욱 넓혀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은 제목처럼 히틀러를 이해하기 위한 부분에 충실하면서도 기존의 관점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거나 다루기를 꺼려한 부분들도 접할 수 있게 된다.
거의 민족 전체를 자신의 지지자로 만들었는데, 그것도 1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더욱이 선전술 때문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업적을 통해서였다. 히틀러가 1920년대에 선전술이나 최면 능력이 있는 웅변술, 또는 대중 연출가로서 화려한 기술만을 이용하는 동안에는 채 5퍼센트도 안 되는 지지자를 얻었으며, (중략) 1930~1933년의 경제적 곤궁이 40퍼센트를 보태주었다. (중략) 1933년 정권을 잡은 이후에 나머지 결정적인 50퍼센트의 지지자들을 주로 업적을 통해 얻었다. - p. 75 ~ 76 中에서 - 이러한 서술은 1933년 그가 제국 수상이 된 시점에 실업자가 600만 명이 있었으나, 1936년에는 완전고용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통하여 뒷받침되고 있다. 흔히 히틀러의 뛰어난 연설을 통하여 대중의 호감을 이끌어냈다고 생각하였지만, 하프너의 이러한 설명은 실질적으로 그가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지지자들이 증가하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1934년 '장검의 밤'에 벌어진 에른스트 룀과 돌격대(SA) 지도부에 대한 숙청은 나치 초창기에 테러를 수단으로 삼되 적절히 그 강도를 조절하는 그의 정치적인 역량마저 보여주고 있기에 이러한 부분들은 확실히 히틀러가 가진 정치적인 능력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성과란 그 자체로는 도덕적으로 중립입니다. 좋거나 나쁜 뿐,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다."라는 그의 말대로 히틀러의 성과는 그동안 도덕적인 관점에서 무시되었기에 하프너는 그러한 부분을 과감히 성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성과에 감춰진 문제를 지적함으로써 하프너는 히틀러에 대한 보다 냉철하면서도 객관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예를 들자면 1938년 히틀러가 사망하였다는 과정을 통하여 그랬다면 그가 위대한 독일의 정치가로 남았으리라는 추측에 대하여 단순히 가정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상황 속에서 당시 히틀러에 의하여 파괴된 독일 헌법과 그에 의하여 구축된 조직, 후계자가 준비되지 않았던 불확실성을 지적함으로써 그의 성과에 가려진 문제점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하트너가 히틀러의 악명에 가리워진 그의 성과를, 또한 그의 성과에 가려진 문제점을 우리에게 명확하게 보여줌으로써 히틀러를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끔 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대목에서도 그러한 흐름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앞서 성과에 대해서는 도덕적인 관점이 무시된다는 것과 더불어 성공은 언제나 양측이 있기 마련이라는 전제하에 그는 히틀러의 성공을 그의 개인적인 성과로 확대 해석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통상 히틀러가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한 종말을 선사하고 정권을 장악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지만, 하프너는 그러한 히틀러의 정치적인 성공이 비단 히틀러의 개인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바이마르 공화국은 이미 종말이 예정되어 있었으며, 그러한 종말도 히틀러가 아닌 국가를 거부하고 자신들을 위해 국가를 파괴할 각오가 되어 있는 우파로 인하여 무너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과정 중에 히틀러는 어부지리로 그들의 갈등을 기반으로 정권을 장악한 것이었다. 또한 베르사유 조약을 부정하면서 재무장을 선언, 이후 오스트리아와 체코까지 별다른 전투없이 합병한 그의 외교적인 성공도 그의 능력(사실 저자는 히틀러의 능력은 오로지 정치에만 한정하고 있다.)이라기 보다는 그에 대처한 영국과 프랑스의 무능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한다. 1924년 독일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던 프랑스가 루르 지방을 장악하였으나, 영국은 독일에 대한 유화적인 제스처를 표함으로써 실패를 가져왔고, 1938년의 뮌헨 회담 역시 체코의 수테텐 지방에 대한 합병을 영국과 프랑스가 나서서 승인하였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물론 히틀러의 그러한 행보는 다소 도박적이고 허장성세의 면모를 보여주었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보다 강경하게 대응했다면 그러한 성공은 역사에 등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성공은 양측이 존재한다는 하프너의 표현은 히틀러의 성공에 가리워진 경쟁 세력의 무능함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오류', '실수', '범죄', '배신'은 오늘날 그 누구라도 주저없이 그를 설명할 수 있는 항목들이지만, 하프너의 설명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한 부분들이 많다. 독일에 대한 열렬한 애국심으로 인하여 오스트리아 국적임에도 불구하고, 독일로 건너가서 독일군으로 자원 입대하여 제1차 세계대전에 적극적으로 임하였으며, 그러한 애국심을 바탕으로 독일의 정권을 잡은 뒤에 천년제국으로 만들기 위하여 그러한 광기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주었다는 것으로 히틀러를 이해하기 쉬운데, 하프너는 그러한 관점에 대한 색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히틀러는 국가에 관심이 없었고, 국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며, 국가를 하찮게 여겼다. 오직 민족과 종족만이 중요할 뿐 국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국가란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으로, 한마디로 전쟁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다. - p. 148 中에서 - 히틀러에게 있어서 국가가 단순히 그의 야욕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점은 다소 충격적이다. 하프너는 국가가 존쟁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전쟁 역시 국가의 비상 사태로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지, 다른 민족의 희생을 대가로 생존공간을 정복하거나 종족의 개선이나 세계지배권을 얻기 위해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견을 통하여 히틀러의 그러한 오류를 지적한다.
과연 하프너의 그러한 지적은 올바른 것일까? 그가 이끌던 '나치당'이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의 연설과 행보에서 국가와 민족을 강조한 점을 보면 언뜻 이해하기 쉽지 않은 대목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했던 그가 아닌가? 하프너는 그러한 부분을 '배신'이라는 항목을 통하여 전쟁 중 그가 한 말드을 통하여 논리적인 설명을 이끌어 낸다. "이 시점에서도 나는 역시 얼음처럼 차가워요. 도이치 민족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 피를 흘릴 만큼 충분히 강하고 또 희생의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이 민족은 쓰러져서 더욱 강한 다른 세력에게 파괴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도이치 민족을 위해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을 것이오." - p. 196 中에서 - "전쟁에 패배한다면 민족도 패배하는 것이다. 도이치 민족이 가장 원시적인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기반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런 것들을 스스로 파괴하는 편이 낫다. 민족이 허약하다는 판정이 났고, 미래는 더욱 강한 동쪽 민족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쟁 뒤에 남는 것은 어차피 열등한 자들이다. 우수한 자들은 전사했으니까." - p. 249 中에서 - 각각 1941년과 1945년 히틀러가 외교관과 그의 측근인 알베르트 슈페어에게 한 이 말은 확실히 기존의 히틀러에 대한 관점을 흔들리게 만들고 있다.
비록 그 방법과 결말에 있어서 잘못되었지만, 독일과 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애국심으로 무장되어 있다고 생각한 히틀러에게 국가는 전쟁을 위한 수단이요, 패배 이후에는 그 민족은 생존할 가치가 없다는 그의 인식은 분명 그의 실수이자 범죄이고, 나아가서 독일의 입장에서는 배신에 가까운 행위라 할 수 있다. 연합국이 노르망디 상륙으로 인하여 파리를 수복할 기미가 보이자 파리 주둔 사령관인 콜티츠에게 파리를 파괴하라는 그의 명령(물론 콜티츠는 그것을 거부하고 항복하였다.)이 독일과 독일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확실히 충격적이다. 더구나 그가 멸시하였던 '동쪽 민족(소련, 슬라브족)'을 전쟁에서 승리하였다는 이유로 그들을 강한 민족으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독일 민족을 열등한 자들로 치부하는 것은 왜 히틀러에 대한 연구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히틀러는 독일인을 '세계를 정복한 주인민족 -> 전 세계에 맞서는 영웅민족 -> 사형선고'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들을 자신의 야욕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바라보았던 것임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히틀러에 대한 기존의 관점과는 다른 하프너의 시선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으로도 향하게 된다. 통상 극동 국제 군사 재판과는 달리 보다 엄격히 이루어졌다고 평가되는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이 커다란 문제점을 다루고 있는데, 히틀러의 대량 학살에 대한 본질을 주요 기소가 아닌 부수적인 것으로 다루었다는 부분을 지적한다. 이를 통하여 일반적인 전쟁 범죄는 양측 모두 동일하게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패자에게만 적용됨으로써 독일에 일종의 면죄부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독일 입장에서는 패배를 했기 때문이지 전쟁중 저지른 행위는 양측이 동일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 재판이 히틀러가 저지른 대량 학살에 제대로 초점을 맞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의 전범 재판보다 엄격하게 이루어진 뇌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대한 하프너의 비판은 우리에게는 일본의 전범 재판이 얼마나 엉성하게 진행되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히틀러와 더불어 독일 역사가 끝났다고 믿으면서 기뻐하는 사람은, 그럼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히틀러의 마지막 의지와 유언을 실현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 p. 256 中에서 - 히틀러에게 전쟁 범죄와 책임을 지우면서 그와의 단절을 꾀하는 독일인에 대한 하프너의 이러한 비판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쟁에서 패배하자 독일과 독일민족을 완전히 삭제하려는 히틀러의 의도와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프너는 오히려 이러한 히틀러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하여 그의 공과 과를 명확히 하면서 동시에 그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으로 히틀러에 대한 독일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이 단지 독일에 한정되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는 부분이다. 오늘날 우리의 현대사에 대한 평가는 많은 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너무 성급한 판단으로 인하여 편향된 역사가 나올 수 있다는 의견 때문이다. 하지만, 하프너의 이 책을 보면 현대사를 다루는 것이 과연 성급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현대사에 대한 다수의 역사서가 나온다면 그것을 읽고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보다 정확한 역사로의 지향점을 도출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것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우려스럽기는 하지만, 마냥 미룰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도 결점이야 있겠지. 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일자리와 빵을 준 사람이야."라는 표현은 당시 독일인들이 히틀러에 갖는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이 대목을 보면서 우리는 무언가 떠오르지 않는가? 눈부신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 그에 가리워진 잘못된 점을 지우려고 하거나, 오히려 뻔뻔하게 대중들을 선동하는 세력들을 우리는 독일이 아닌 한국에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하프너가 눈부신 외교 성과와 내정 안정을 통하여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1938년에 히틀러가 사망했더라면 과연 어땠을까라는 가정은 우리 역사에서 암살을 통하여 또 다른 쿠데타와 정국 혼란, 민주주의 퇴보와 같은 문제를 야기한 현실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기에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의 내용과 교훈은 아마 우리에게도 유효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한 히틀러에 의하여 종식된 것으로 알려진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 과정에 대한 하프너의 설명도 우리와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책과 더불어 당시 독일의 역사는 분명 살펴볼 가치가 있으리라 보여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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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 그는 지난 세기를 규정한 문제적 인물이다. 어려서부터 세계 정복이라는 과대망상에 사로 잡혀 전무후무한 2차 세계대전이라는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전쟁을 일으켜 결국 파멸에 도달한 유사(pseudo) 영웅에 대한 다양한 글들을 읽어 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히틀러에 대한 저술들은 그의 악명과 성공을 노골적으로 폄하하기 위한 일종의 프로파간다적인 성격이었다. 그의 행적을 되돌아 볼 때, 충분한 개연성이 느껴졌다. 1차 세계대전 패전의 굴욕으로부터 도이치 민족의 자존감을 되살려줄 메시아이자 초인(Übermensch)이었던 이 문제적 인물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결여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에 도달했다. 나의 이런 의문은 최근에 돌베개에서 출간된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이 명쾌하게 해결해 주었다.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가 사는 오늘의 세계는 히틀러의 작품이라는 저자의 테제는 묵직하게 다가온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유대인 약혼자와 영국으로 망명하고 이어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저자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이 책에 앞서 저술된 에버하르트 예켈의 <히틀러의 세계관(1969)>과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1973)> 같은 정전에 주석을 덧붙인다는 의미에서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가 정전으로 삼은 저작들이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면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은 문제적 인간 히틀러에 대한 개설서적인 성격을 띠면서 그의 본질에 접근하고 이해하는데 유용한 방법을 제공한다. 이 주석에서 하프너는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가 별다른 학력을 가지지 못했고, 오스트리아에서 독일로 이주해서 독일군의 일원으로 대량살육전이 벌어진 서부전선에 투입된 베테랑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혹자는 히틀러의 2차 세계대전 초반의 전차부대를 활용한 전격전의 승리가 적들의 오판 내지는 순전히 독일군의 운이었다고 치부하지만, 하프너는 이 책에서 히틀러가 재능 있는 정치가이자 (결론적으로 실패했지만) 유능한 전략가였다고 밝히고 있다. 히틀러가 그저 시대를 잘 만나 출세한 보헤미안이었다는 세간의 평에 대한 하프너의 응답이라고 해야 할까. 한편, 저자는 히틀러가 그렇게 비판한 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을 패전으로 귀결시킨 1918년 11월 혁명이 독일 전제군주정을 무너뜨린 동시에 외국인 신분의 히틀러가 ‘큰 도이치 민족주의’ 틀에서 제3제국 건설에 도달하게 될 권력 투쟁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최대수혜자는 다름 아닌 히틀러였다. 이거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히틀러의 세계관을 다음의 두 가지 목표로 뚜렷하게 제시한다. 첫 번째 목표는 숙적 러시아의 스탈린을 공격하여, 도이치 민족의 동부에서의 생존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러시아 정복이었고, 두 번째는 빈 시절에 확립된 독일 아리안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협하는 국제적 공조가 모두 유대인의 음모에서 비롯되었다는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에 기초한 유대인 학살, 방대한 규모의 홀로코스트였다. 종국에 파멸에 이르는 히틀러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자신의 첫 번째 목표가 1941년 12월 적도 모스크바 앞에서 실패하자 두 번째 목표에 치중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히틀러 성공의 정점에서 파멸에 이르게 되는 극적인 전환점이었다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진중하게 논증한다. 가진 기술이라고는 연설에서 보여준 집단최면 능력 밖에 없는 무명의 정치가가 만성적인 실업과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도이치 민족이 당명한 치명적인 경제문제들을 경제장관이자 독일은행 총재였던 ‘재정마법사’ 히얄마르 샤흐트를 기용해서 일거에 해결하면서 소위 경제기적을 달성하게 된다. 히틀러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던 공산당 같은 그의 골수반대자들도 600만에 달하는 실업자에게 일자리와 빵을 준 히틀러 총통이 행사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에 반대할 수가 없었다. 히틀러는 또한 긴축정책이나 통화안정보다 팽창이 경제문제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뛰어난 경제정책의 본능도 가지고 있었다. 히틀러와 비교할 수 있는 역사적 나폴레옹, 비스마르크, 레닌, 마오 쩌둥과 비교해 볼 때, 히틀러는 자신이 건설한 천년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후계자를 세울 생각도 없었고 비록 선거로 집권하는데 성공했지만 스스로 총통에 자리에 올라 초헌법적인 존재가 되어 자신을 국가와 민족에 동일시하는 과대망상에 도달하게 되었다. 후반부의 <배신>편에서 기술하게 되지만, 이런 히틀러의 과대망상이야말로 도이치 민족에게 재앙이자 비극의 시작이었다. 마르크스가 역사발전 과정에서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국가사회주의(나치즘)의 신봉자 히틀러는 유대인에 대한 아리안 도이치 민족의 종족전쟁을 주문했다. 히틀러에게 독일 국가와 민족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쟁기계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는 독일 민족을 정점으로 한 유럽 통합 혹은 세계 정복 과정에서 생물학적 무장을 통해 종족에 따른 서열화를 꿈꾸었다. 유대인이 세계지배를 획책한다는 망상에 빠져 유대인을 근절시키겠고 결정한 히틀러는 자신의 우호적 친구일 수도 있는 유대인을 적으로 돌리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게 된다. 1938년 여름과 1940년 여름, 뮌헨 협정과 프랑스 전격전의 대성공으로 영국을 배제한 유럽 통합을 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친 히틀러는 바르바로사 작전(1941년 6월 22일 러시아 침공)을 개시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접어든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히틀러에게 부족했던 국가 건설 기술과 끈기를 언급하면서, 히틀러의 보다 건설적인 정치적 상상력의 부재를 지적한다. 전쟁은 궁극적으로 평화를 지향하게 마련인데, 의지력과 에너지 그리고 강력한 성과의 화신이었던 전쟁광에게 모스크바 공략 실패는 파멸의 전주곡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인류에 대한 범죄인 홀로코스트로 서방(영국과 미국)과의 화해 가능성이 사라져 버리자, 자포자기한 히틀러는 1944년 12월 가용한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 아르덴 산맥을 돌파하는 터무니없는 도박을 벌이지만 이미 기울어진 전세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오히려 무모한 병력 운용으로 제3제국의 종말을 앞당긴 결과를 가져왔다. 한편 자신의 운명을 독일 국가와 민족의 그것과 동일시한 히틀러는 파국을 앞두고 전쟁 후에 다시 일어서야할 조국 독일을 잿더미로 만들 파멸 프로젝트를 명령하기에 이른다.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히틀러의 이런 행동을 “배신”으로 규정하고 중세 문학의 걸작 <신들의 황혼>에 비유한다.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종래에 알려진 히틀러 신화를 성과, 성공 그리고 오류 등으로 냉정하게 분류, 분석해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식민제국으로서의 위상을 상실하게 되었고, 미소 냉전으로 유럽은 두 개의 진영으로 맞서게 되었다. 그리고 유대민족의 참화로 이스라엘이 생겨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히틀러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오늘날 세계의 모습이 히틀러의 영향을 받았다는 하프너의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울러 집요하게 바이마르 공화국의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공격했던 독일 우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오늘날 독일 연방공화국에서 히틀러 같은 캐릭터가 등장할 수 없을 거라는 선구적 전망도 빼놓을 수 없다. 저자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저널리스트로서의 냉철한 주관과 문제인식 그리고 논리전개에 감탄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히틀러에 대한 기존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가 있었다. 이후에 읽을 홀로코스트의 직접 피해자 프리모 레비 독서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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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히틀러에 대해서 어떻게, 얼마나 알고 있을까 콧수염부터 떠오르는 생김새, 세계 정복의 야욕으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는 것, 유태인을 잔인한 방법으로 무지 많이 죽였다는 것, 전쟁에서 패배 직전에 지하 벙커에서 애인과 함께 자살했다는 것. 기본적으로 이 정도일 것이고, 그가 실은 오스트리아 출신이라는 것, 되는 것 없고 학벌도 없는 미술학도였다는 것, 당원이 수백 명인 정당에 가입하여 연설원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는 것도 적지 않은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독일과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까? 그가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세계의 지형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에 대한 이해는 너무나도 부족한 것은 아닐까? 혹은 그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은 바로 그 히틀러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한 책이다. 1978년에 나온 책이니, 히틀러가 세계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떠나버린 지 30년 이상이 지나서, 그리고 지금으로부터는 거의 40년 전에 나온 책이다. 그러니 그 세상과 지금의 거의 중간 쯤에서 만나고 있는 책인데, 그 후에도 변화된 세계지도(이를테면 독일의 통일, 소련의 붕괴)만을 감안한다면 지금 씌여진 책보다도 더 현재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책이다('좀처럼 낡지 않는 책들이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에다 '주석'이라고 했다. 히틀러를 다룬 책들이 적지 않고, 자신은 거기에 무언가를 덧붙인다는 얘기다. 통상적으로 그렇게 덧붙이는 얘기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잘못 알려진 것, 더 자세히 알아야 할 것, 좀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 그런 것들인 경우가 많다. 이 책의 주석도 그런 의미다. 그런데 '주석'이라고 한다면 어느 한 일면만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히틀러의 일부가 아니라 히틀러 전체에 주석을 달고 있다. 그래서 주석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옮긴이의 말처럼 '작지만 무게가 나가는 책'이다.
'주석'의 의미처럼 이 책은 누구나 알고 있는, 통상적인 히틀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그래서 상당히 논쟁적일 수 있는 내용들이 많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질 것 같은 내용들도 많다. 이를테면 히틀러가 이룩한 독일의 경제적 성과라든지, 군사적 재능이라든지 하는 것.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유럽 중심의 세계가 파탄이 나고, 식민지들이 독립된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것 같은 느낌 같은 것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쾌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내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그가 결국은 (전쟁에서 실패한) 도이치 민족을 말살하기 위한 목적을 가졌다는 분석도 과연 그럴까 싶다. 또한 전쟁을 일으킨 행위에 대한 뉘른베르크 재판의 부당성(혹은 포인트를 잘못 잡은 점)에 대해서 지적하고, 전쟁 자체는 범죄가 아니라 오로지 그가 명령을 내린 유태인 학살을 비롯한 살인죄만이 범죄라는 것 역시도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그의 실패와 범죄에 독일인의 시각에서, 그의 잘못이지 독일인의 잘못은 아니라고 하는 것도 나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논쟁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끔찍한 인물을 다룬 책이지만 끔찍하지 않다. 한 나라의 정상의 위치에 오르고, 세계 정복의 야욕을 가지고 전쟁을 일으킨 히틀러라는 인물을 우스꽝스럽게 그리지도 않았고, 괴물로만 그리지도 않았다.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자리에 올랐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생각은 어떻게 표출되었으며, 어떤 성과를 보였으며, 무엇이 부족했으며, 어떤 실수를 저질렀으며, 무슨 잘못을 했는지를 최대한 냉정하고도 엄중한 시각에서 보이고 있다. 그의 성과(단기간 내에 독일의 경제 상황을 호전시키고, 실업을 줄였으며, 영토를 되찾고 한 것들)를 얘기하는 것도, 전쟁 자체에 대한 시각도 결코 히틀러라는 인물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가 어떤 인물이었음을 아는 것은 그런 인물이 다시 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경계하고 막는 데 가장 우선적이라는 것은 상식과도 같은 일이다. 서문을 쓴 귀도 크노프의 말처럼 "히틀러 노스탤지어는 무지(無知)라는 토양에만 거주한다."
이 책이 나왔을 때 열광적인 호평과 격렬한 반박이 함께 있었다 한다. 그 이유를 알 만하다. 호평도 반박도 히틀러라는 인물이 단면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본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 놓은 이 세계에 대한 다양한 시각도 반영한다고 본다. 그리고 여전히 그에 대해서 논의할 것이 많음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가 죽은 지 70년, 이 책이 나온 지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도. (2015.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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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모든 것은 끝장난 후였다. 비열하게 삶을 구걸하다 죽느냐, 명예롭게 스스로 죽을 것이냐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죽자 곳곳에서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이들이 비로소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으나 뒤틀렸던 세계는 마침내 제대로 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 20세기, 인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 셋으로 나는 프로이트와 마르크스 그리고 히틀러를 꼽는다. 프로이트는 억압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인간 정신세계를 고찰했고, 마르크스는 고대부터 이어져온 굴종의 사회 틀의 붕괴를 꾀했다. 두 인물이 미친 영향은 막대했다. 하지만 둘 다 실천가보다는 이론가에 가까웠다. 히틀러는 두 인물과는 달리 실질적인 변화를 사회에 가져온 인물이다. 앞서 언급한 두 인물이 여전히 적잖은 추종자들이 존재하는 반면 히틀러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건 금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틀러가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준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그로 인해 사망에 이른 이들의 숫자를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쟁이 대개 그러하듯 그의 치하에서 사람들은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죽어나갔다. 그는 전 세계 대부분을 자신의 적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으며,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힌 가운데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많은 이들은 그를 ‘괴물’이라 칭한다. 혹자는 니체가 부르짖은 초인에 심취한 인물이었다고 히틀러를 평하기도 했지만, 어쨌건 그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괴물에 가까웠다. 히틀러는 여러 모로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그의 쉰 목소리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으며, 그의 연설 역시 모두에게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히틀러를 자발적으로 지지했다. 히틀러는 폭동 등을 통해 권력을 잡지 않았다. 그가 시도한 라인란트 진군, 오스트리아 합병, 주데텐란트 점령 등은 동시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다. 당시 독일이 어마어마한 배상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으며, 패전국의 지위로 인해 한 풀 꺾인 자존심을 되찾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의 집권을 설명하기가 쉽잖다. 게다가 그는 엄연히 따졌을 때 독일인도 아니다. 정체성의 모호함은 그가 추구한 바의 모호함으로 이어진다. 그는 유대인을 하나의 민족으로 이해하는 듯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던 유대인은 민족보다 종교를 통해 설명할 때 보다 분명해진다. 한동안 자제력을 유지해가며 미국과의 결전을 피해오던 그가 갑작스레 선전포고를 하고, 동부전선을 포기한 채 서부전선으로 군사력을 집중한 사실 역시 많은 사람들의 의아함을 부르는 바다. 그는 군사적으로 결코 문외한이 아니었다. 아주 명석하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유리한지 판단을 못할 정도로 멍청하지도 않았다. 저자는 그의 삶 자체가 애초부터 파멸을 향하고 있었다고 본다. 실제로 히틀러는 극단에 가까울 정도로 승리만을 갈망한다. 패배하느니 차라리 목숨을 버리는 게 낫다는 그의 사고는 자신에게도 엄격히 적용됐다. 영원한 권력을 희망했지만 이를 이룰 수 없게 된다면 당연히 죽음을 택해야 한다고 은연중에 그는 스스로를 세뇌시켜왔다. 한동안 그는 승승장구하며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할 필요는 없을 것만 같은 행보를 보인다. 이에 대해서도 저자는 긍정적으로 평하지 않았다. 그에게 승전을 선사한 적들이 실은 허울뿐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히틀러가 바이마르 공화국이나 파리 평화체제에 죽음의 일격을 가했든 아니든, 그가 독일의 보수주의자들이나 프랑스를 유린했든 아니든, 그는 언제나 이미 쓰러지는 상대를 만났고, 이미 죽어가는 상대를 죽인 것이다. 인정해야 하는 것은 그가 이미 쓰러지는 것, 이미 죽어가는 것, 오직 안락 사살만 기다리는 것에 대한 본능을 가졌다는 점이다. 다른 모든 경쟁자에 비해 뛰어난 본능으로 그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엄청난 경탄을 불러일으켰거니와 스스로도 경탄했다. 이런 본능은 물론 정치가에게는 매우 쓸모가 있다. 독수리의 시력보다는 콘도르의 후각에 비할 만한 것이다. 실제로 당시 유럽의 어느 국가도 강성하지 못했다. 한때 혁명의 기운으로 들끓었던 프랑스는 이빨 빠진 호랑이마냥 힘을 못 쓰고 있었다. 독일은 이미 오랜 기간 경기침체에 시달리며 히틀러를 향해 열광하는 게 자국의 이익인 양 착각에 빠져들었다. 누가 건드려도 추풍낙엽마냥 스러질 대상들을 히틀러는 잘 요리했을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히틀러는 목적성 없는 전쟁을 이끌었다. 전쟁을 일으킬 때 특정 지역의 영토를 쟁취하는 등의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히틀러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처음부터 계획한 게 없었기에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날뛰었고, 제어라는 것도 불가능했다. 한때 그의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따랐던 이들마저도 마지막 순간에는 히틀러로부터 ‘배신’ 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독일인들이 동조자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결과는 자국의 철저한 파괴뿐이었다. 한때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외톨이었다. 나폴레옹, 비스마르크, 레닌, 마오쩌둥 등. 권력을 구가했던 이들의 삶과 비교했을 때 히틀러는 고립 그 자체였다. 그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 사후 그를 추종하는 반동적인 움직임이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 등을 언급하며 저자는 히틀러의 고독을 부각시켰다. 인격적인 미성숙이 물론 그가 지향한 반유대주의를 정당한 것으로 만들어주진 않는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 없는 한 인간의 욕망에 전 세계가 홀렸었단 사실이 두려울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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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막 상경했던 그 해, 2009년이었을 것이다. 미
국 CBS의 2부작 드라마 <히틀러, 악의 탄생>을 찾아 보고도 히틀러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했다. 극이 주는
몰입도에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경험을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지만, 머릿속에 남은 거라곤 극 중 히틀러의 광기로 -혹은
심리묘사에 치중한 과장된 배우의 연기로- 말미암은 불편하고 찜찜한 공포심 정도였고, 결국 극을 보기 전과 후가 크게 다를 바
없었던 게 사실이었다. (바보인증Yo) 그리고 책 한 권보다 드라마가 나을 거라고 쉽게 생각했던 요 못난 게으름벵이에게 이런 식의 투정은 언제나 그렇듯 별반 놀랍지도 않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드라마만큼이나 쉽게 빠져 들었던 인문학 책은 이것이 처음이다. 작지만 무게있고 방대하지만 복잡하지 않다. 저자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번뜩이는 지성미에 반한 것은 물론이다. 나는 초입에서부터
"히틀러의 생애를 가르는 단면은 종단면"이라는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무의식적으로 여태껏 종단면이 아닌, 횡단면으로 갈라 놓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렇게 하프너의 예리한 관찰을 따라가다보면 반복되는 꾸중아닌 꾸중에 익숙해진 못난 학생이 되는 기분이 들기까지
한다.
하프너가 구분짓는 성과와 성공의 개념 역시 인상적이었다.
하프너는 히틀러가 국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한다. 정치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흠이 없는 국가체제보다는 혼돈 상태를 통제하는 것에 능숙했다는 점까지 짚어낸다. 어쩐지 어디와 무척 닮아 낯설지 않다. 다만, "우리가 의식에서 밀어내면, 그것은 우리를 압박해 올 것이다."라는 서문의 경고를 잊지 않는 한 -그리고 이 땅의 락이 살아 숨쉬는 한(뭐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히틀러를 향해 지겹도록 승부수를 던져볼 만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애비메탈>은 참 좋은 예이다. 이 시대 살아 숨쉬는 모든 히틀러들에게 애비메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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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원래 이렇게 쓰여진거더라도 좀 번역을 우리나라 어순에 맞게 해줬으면 좋았겠는데.. 진짜 보는데 좀 애먹었다. 무슨 말이지? 하면서 다시 또 보고. 첨엔 내 머리 문제인줄 알았는데 진짜 문장이 너무 애매하게 되있고 주어도 불분명한듯하다. 예를 들면 ' 누군가는 스스로 내세운 위대한 목적에 자신을 온전히 바쳐 역사를 만들겠다는 명예욕을 가진 남자들에게 사생활이 거의 없거나 공허한 것이 그다지 특별한 건 아니라고 말 할지 모르겠다' 이 부분. 사실 앞부분은 히틀러 사생활이나 개인적인 것에 관한 것이라 번역이 저래도 읽히기가 수월한데 뒤에 가서 군사적 정치적인 문제 나오면서 군사용어 정치용어 나오면.. 진짜 좀 읽기 힘들다. 그래도 이렇게 유익한 책을 번역해주셨으니 감사하다.
책을 읽고 히틀러에 대해서 그동안 잘 못 알아왔던 사실을 알고, 그가 왜 몰락하였는 지, 또 대체 어떤 사람이었는 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근데 책을 읽다보면 1장 생애에서 히틀러의 성격과 뒷 장에서 그가 행동하는 것들이 좀 애매하게 안맞는 것도 같다. 그리고 의문이 갔던 부분은 P. 213에 1939년 10월에 '폴란드 고위관료와 지식인 학살' 이야기를 다룬 것이었다. 이건 히틀러가 아니라 스탈린이 행한 카틴 숲 학살사건으로 알고 있어 인터넷에 검색해보았는데, 러시아가 그 사건을 자기네들이 한거라고 인정한건 1989년 이라 한다. 이 책이 나온 시기가는 1978년이므로 아무래도 책에선 그 사실이 나오진 않은 것 같다. 그 외엔 딱히 의문점이 없었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P. 49에서 슈테판 게오르게의 시가 나오는 부분과, 7월 20일의 히틀러 암살 작전을 시행했던 슈타우펜베르크가 그의 제자였다는 사실이었다. 히틀러가 막 등장하려던 시기에 쓰여진 그의 시나 그의 말은, 정말 히틀러의 등장을 예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움을 줄 유일한 사람, 남자를 낳을[시대]' 그러나 책에 나온 내용에 따르면, 그는 히틀러의 등장을 처음엔 열렬하게 환영하다 후에는 지지하지 않고 망명을 갔다고 한다.
그 당시 악랄한 목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국민들을 홀린 히틀러라는 사람이 참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 데,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내가 놀란 건 그의 정신상태였다. 진짜 희안하다. 쓸 모 없는 건 버리는 사람이다.. 맨 마지막엔 독일 국민들을 향해 '이정도도 못 버텨내면 더 강한 제국한테 지배받는 게 당연하다.' 하며 독일 국민들을 아예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그가 그래도 초기에 독일에서 지지를 받고 총통까지 될 수 있었던 건, 그의 엄청난 말빨도 있었을 테지만 완전고용이나 군사정비 등의 성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히틀러 자신의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의견을 수렴했다는 것에, 그건 히틀러의 성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히틀러가 단순히 말빨로 사람들을 지배했다고 막 엄청난 사람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던데..사실 말빨로도 자기 편으로 만들었지만 그건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한다. 완전고용 됬을 때 90퍼 됬다한다. 1940년까지, 히틀러가 가는 곳엔 적절한 시기가 있었다. 그는 그 시기를 잘 알고 잘 타고 들어갔다. 그가 독일에 등장했을 때, 독일은 정치적으로 위태로운 시기였고, 사람들은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다. 게다가 그는 약한 국가들을 상대론 이겼지만 막상 강국들과 싸울 땐 이기지 못하였다. 그리고 실패의 기미를 보이자 무슨 자폭하듯이 굴고 학살만 열심히 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폴레옹도 히틀러랑 똑같은 정복자 아니냐고 한다. 여기선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왜 다른 지, 비스마르크와 히틀러가 왜 다른 지 이렇게 말한다. ' 비스마르크는 이룩할 수 있는 것을 이룩한 다음에는 평화주의자가 되었다. 나폴레옹은 히틀러처럼 정복자로는 실패했지만 프랑스 정치가로서의 성과에서 많은 것이 남았다. 그의 위대한 법전 작업, 교육제도 등이 보존되었다. 지방행서부서들과 지방장관을 지닌 엄격한 국가조직도 그가 만들어낸 그대로 오늘 날까지 남아 있다. 그 뒤 국가 형식에 여러 변화들이 나타났지만 그것은 여전하다. 하지만 히틀러는 그 어떤 국가조직도 만들어내지 않았고, 10년 동안 독일 국민을 압도하고 전 세계가 숨을 멈추고 지켜보게 만든 성과들이 모조리 일과성으로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 성과들이 파국으로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최종적인것을 지향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도 그렇다. ' - P.91
진짜 그 사람의 능력을 알 수 있는 건, 그 사람이 위험에 처했을 때 라고 본다. 히틀러는 위험에 처했을 때, 사실 능력을 크게 발휘하지 못 했다. 오히려 스스로가 독일을 실패의 구덩이로 몰아넣는 듯 했다. 어쩌면 자신의 무능력함을 들키기 싫어서 그랬는 지도 모른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좋든 실든 오늘 이 세계는 히틀러의 작품이지만 난 히틀러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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