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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갈곳없는 사람의 막막함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그런 소설.. 갖혀있는 새처럼 놓아 주어도 그 자리밖에 맴 돌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 교도소 앞의 모습을 애잔하게 그려놓았다. 요즘도 그런 풍경이 존재하는 지 알수 없지만(하긴 그 당시에도 그런 것이 존재 했는지는 알수없다) 교도소 앞에서 다시 이 곳으로 돌아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람들은 새파는 곳에서 새를 사서 날려 보냈다. 사내도 그일(새를 놓아 주는것)을 꼭 해보고 싶어서 배회하면서 한푼 두면 떨어진 동전을 주워서 한마리를 날려 본다.
그새는 멀리 날아 간듯 하나 밤에 그 새장사들이 그 새들을 다시 잡아 오는 것을 보면서 새들이 멀리 날아 갈 수 없음을 생각한다..그리고 돌의 초상이란 글 속에 "돌은 캐어 냈던 자리에 도루 갖다 두는게 원칙이야" 라는 말처럼 그곳을 향해 돌아 갈 수 밖에 없는 아니면 돌아 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힘겨운 삶들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 책에서의 단편들은 대체로 비슷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 것 같다. 삶이 피곤한.. 그리고 돌아 갈 곳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디로 찾아 갔는지에 대해서는 독자에게 맡기는 이야기들이.. [인상깊은구절] - 돌의 초상 - ~ 나는 생가가했었다. 그런데 어째서 새는 도망쳐 나갔으면서도 기껏해야 아파트 주위를 맴돌 수밖에 없었을까. 나는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인간에 의해서 길들여진 새라 할지라도 일단 새장 밖으로 ㄷ망 나갔다면 더 멀리 더 많이 높이 날아가 봄직도 한 것이 아니겠는가.. ~ "돌은 캐어 냈던 자리에 도루 갖다 두는게 원칙이야." 공연한 객기로 무거운 돌을 제천선술집까지 지고 왔다가 술김에 선술집 화단 속에 놓고 나올 때 녀석을 그렇게 말했었다. 그래. 어제 노인을 데리고 나올때 나는 어쩜 쓸데없는 욕심을 부려 노인을 데리고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
| 이 소설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대표되는 70년대 도시빈민, 즉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조세희의 연작 소설 중 하나이다. 이 소설이 쓰여진지 30년이 지났지만 현재까지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느끼는 것이 있고, 또한 나 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그의 소설들이 남는 것은 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문제가 현재에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시작은 주인공인 세 남매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다. 아버지는 도시의 빈민들을 더욱 구석으로 몰아붙이는 사회의 횡포에 억울하게 죽고 만다. 그래서 세 남매는 가정을 이끌어 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아버지의 인생을 물려받아 어린 나이에 노동자가 되어버렸고, 아마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그들의 자식들도 가난한 노동자가 될 것이다. 빈민들이 쉽사리 구제될 수 없는 악순환의 반복인 사회 구조의 모순 자체가, 힘 없는 자를 향한 부당한 착취만큼이나 절망적인 사회 현실일 것이다. 아버지는 죽기 전 당신이 꿈꾸는 사회에 대해 말하곤 했다. 그 사회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아버지가 그린 세상에서는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버리고, 바람도 막아 버리고... (중략) 아버지는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 대목은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아버지는 물질적인 충만함이 아닌, 사랑의 충만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원했다. 그리고 모두가 할 일이 있고 일한만큼 먹고사는 사회를 원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아주 소박한 꿈인 것 같았지만 지배계층에 맞추어 돌아가는 사회에서 그것만큼 가능성이 희박한 꿈도 없었을 것이다. 현실은 노동자들에게 굉장히 잔혹하다. 영수는 울면서 일하는 여동생을 보면서 "나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랑 때문에 괴로워했다." 라고 생각하고, 다른 노동자들을 보면서 사람들의 생각을 변혁시키고 싶어했다. 그러나 노조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협상이 끝나버리는데다, 결국 노조 위원장은 구타를 당한다. 글의 앞에서 영수는 '사랑이 없는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던 아버지의 생각에 완전히 동조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기대했던 노조협상이 실패로 끝나버린 마지막에는 아버지의 생각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예외란 있을 수 없었다. 은강에서는 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라는 말은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라는 소설 제목과 함께, 어찌보면 세상을 이렇게 만든 잘못을 저지른 신을 향한 원망과 절망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사랑 때문에 괴로워할 줄 아는 그이기 때문에 또 한번 닥친 시련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