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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글들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그 당시 읽었던 소설과 수필,시.... 시험을 보기 위해 펼쳐든 글들은 절대로 문학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활자에 지나지 않았다. 소나기에 나오던 소년과 소녀의 모습도 결코 아름답지 않았고. 낙엽을 태우던 냄새는 어떤 향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추운 겨울 산수유 열매를 따기 위해 산속을 헤매던 아버지의 마음도 헤아릴수 없었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야 이 글들이 다시 읽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느낌은 그 때와 같지 않다. 비로서 문학으로 보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윤오영 선생님의 곶감과 수필도 같은 맥락으로 읽기 시작했다. 방망이 깍던 노인. 한 편의 짧은 글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당시 시험에는 이 글이 어떻게 출제가 되었을까? 전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다시 읽어본 방망이 깍던 노인은 그저 아름다운 한 편의 수필이었다. 그걸로 족할뿐이다.
그는 수필을 곶감에 비유했다. 곶감을 만들려면 먼저 그 고운 껍질을 벗겨야 한다. 좋은 글이 되려면 먼저 문장기(文章氣)를 벗겨야 하는 것과 한가지 이치다. 그 다음엔 시득시득하게 말린다.그러면 속에 있떤 당분이 겉으로 드러나 하얀 시설이 앉는다.만일 덜 익었거나 상했으면 시설은 앉지 않는다. 시설이 잘 앉은 다음에 혹은 납작하게 혹은 네모지게 혹은 타원형으로 매만져 놓는다. 글쓰는 이의 개성을 말한다. 감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곶감은 오래간다. [ 윤오영 론 中 ]
이 책은 윤오영 선생의 여러 수필집에 수록된 글들을 가려 뽑아 놓은 것이니, 윤오영 대표 수필집 정도 될 것이다.정민 선생이 편집을 맡았다. [방망이 깍던 노인] , [마고자],[소녀]와 같은 대표작을 비롯해 55편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짧은 글들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알짜배기들이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 마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 지고, 마음이 차분히 가라 앉는다. [소녀]라는 작품을 보자. 한살 터울인 먼 친척뻘 소년,소녀사이에 벌어지는 수줍음이 물씬 풍겨난다. 자신의 방에 미처 치우지 못한 채 걸려있는 적삼을 혹시나 오빠가 훔쳐 볼까봐 안절부절 하는 모습. 상상만 하더라도 그 수줍음에 내 얼굴이 빨개질정도이다. 소소한 일상이 평범한 사물이 그 의 손끝에닿자 아름다운 노래가 된 듯 하다. 이 세상에서 오직 나 혼자만이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인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방대한 일들을 이야기한 측상락(厠上樂)은 제목만큼이나 기발하다.
저자는 수필이라는 분야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비단 수필뿐이 아닌 문학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연암문장]이라는 글은 박지원 선생에 대한 평론집과 같다. 연암의 작품 전반에 대한 그의 안목은 매우 뛰어나다. 때론 엄청난 독설을 풀기도 하지만, 연암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애정과 부러움이다. 그 마음 그대로가 윤오영 이라는 작가의 문학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어떠한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붓가는 대로 자유롭게 쓴 글이 수필이라고 하지만,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학작품으로서의 자유로운 산문만이 수필이라고 이야기한다. 수필을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볼 때 흔히 수필이라고 일컫는 세간의 비문학 작품적인 문장들은 한낱 잡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성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 신비적 이미지로 되어진 문학이 곧 수필이니, 수필이란 가장 오래된 문학 형태인 동시에 가장 새로운 문학 형태요, 아직도 미래의 문학 형태라고 했다. 이 글을 읽으며 나는 내가 이런저런 이유로 끼적거리는 글들이 모두 잡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어려운 한자와 잘 쓰지 않는 고유어들. 그리고 지금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표현들이 책을 읽는데 조금은 방해가 되지만 묵묵히 읽어나가다 보니 문장의 진미를 느낄 수 있었다. 중간 잠시 언급되는 피천득 선생과의 추억도 흥미로운 이야기였으며, 옛날 이야기처럼 들려주는 몇 편의 이야기들도 꽤나 재미있는 글이었다. 태학산문선의 책들은 보기에도 아름답지만 그 내용은 표지 그 이상으로 참다운 맛을 가지고 있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늙어서 젊은이와 거리가 생김은 세대의 차가 아니라 늙기 전의 나를 읽음이요, 출세해서 교만함은 사람이 변한 게 아니라 출세 전의 나를 잃음이요, 세속에 물들어 타락하고 명리에 휩쓸려 변질됨은 사람이 다른 게 아니라 그 전의 나를 잃음이니, 한마디로 해서 인간을 잃고 나를 잊은 것이다. 이는 나를 오래 못 본 탓이다. 이제 책 속에서 천고의 인간들을 보고, 숨어 있던 나를 찾음이니 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가. 나는 독서의 환희를 여기서 느낀다. [ 나의 독서론 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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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영어로 essay로 번역되지만 수필과 essay는 사뭇 다르다 할 수 있다. 수필(隨筆)은 글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쓴 글이지만, essay는 그것이 비록 personal essay라 하여 사적인 영역을 표방한다 하더라도 결코 펜 가는 대로 쓴 글이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수필은 다른 글과 마찬가지로 시작과 끝, 그리고 중간중간의 매듭이 있어야 하지만 이러한 것에 꼭 얽매이지 않는다. 수필은 보통 서너 페이지 길이에, 단락의 수는 7~12개 정도이다. 하지만 영어권에서 essay로 분류되는 글들은 보통 예닐곱 페이지가 넘기 일쑤이고 긴 것들은 서른 페이지도 훌쩍 넘는다. 일례로 L 러스트 힐스의 에세이 '아이스크림 먹는 법'은 17개의 단락으로 길이는 10페이지가 된다. 반면, 윤오영의 수필 '소창(素窓) 4개 단락으로 2페이지 길이이다.
이러한 동서양의 차이는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아마도 서양 사람들은 글에 더 많은 정보와 경험, 발견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시와 달리 산문은 짧은 길이로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서양화의 화가는 캔버스의 전면을 채워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지만 동양화의 화가는 여백을 색이나 선만큼 화폭에 있어야 하는 것을 자명한 원칙으로 여긴다. 이러한 동서 간의 차이를 알고 윤오영의 수필을 읽어나갈 때 우리는 그의 수필이 지니는 여백의 미를 가슴 깊이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동매실주인의 수필 정신은 에피소드 성격이 짙은 금아의 수필과 대비를 이룬다. 그리고 신변잡기적이고 기발한 발상을 종종 드러내는 이태준의 수필과도 확연히 대조되면서, 늘 그 안에 신비로움과 엉뚱함을 담고 있는 백석의 수필과도 다른 면모를 보인다. '소창'의 아래 대목은 특히 그러하다.
수필과 에세이 모두 새로운 인식의 발견을 보여준다. 시나 소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한 글인 수필과 에세이는 두 주류 문학 장르가 다루기 힘든 영역의 제재를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언어로 우리에게 펼쳐보인다. 다음과 같은 삶에 대한 인식은 치옹(痴翁)의 수필이 아니고서는 접하기가 힘들 것이다.
- '소창' 마지막 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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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아 선생은 수필을 일컬어 “청자연적이고 난이고 학이고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라고 말했다. 윤오영은 수필에 대해 “소설은 밤栗에, 시를 복숭아에 비유한다면 수필은 곶감乾柿에 비유될 것이다. 감이 곧 곶감은 아니 듯, 고운 껍질을 벗겨서 시득시득하게 말리면 당분이 겉으로 드러나 하얀 시설이 앉는데 곶감의 시설은 수필의 생명과도 같은 수필 특유의 것.” 이라 고 비유했다. 수필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금아와 치옹의 생각의 차이를 알 수 있는데, 금아의 것이 서양적이고 보들보들한 실크천 같은 느낌의 글이라면 치옹의 것은 동양적이고 까실까실한 모시처럼 느껴진다. 금아의 글을 읽으면 봄바람 쐬는 듯한 느낌에 괜히 마음이 들뜨는데, 치옹의 것을 읽으면 마음이 되레 차분해진다. 가을바람 맞으며 하늘 바라보는 것처럼. 윤오영의 「곶감과 수필」은 정민 교수가 엮은 것으로 교과서에 실린 《방망이 깎던 노인》, 《마고자》, 《달밤》등이 포함되어 있다. 윤오영은 수필 창작과 이론 전개에 힘쓴 현대 수필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수필가로 평가되는데, 특히 그는 수필이 문학의 한 장르이므로 잡문이나 만필(漫筆)과는 구분되어야 하며 타 장르의 작가들처럼 습작과 문장수련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故윤오영 선생의 수필을 읽을 때면 ‘시’를 읽는 것같이 조심스러워 진다. 연잎에 떨어진 물방울이 구슬이 되어 떨어질 듯 말 듯한 위태로운 움직임을 하는 것 같은 위태로움이 느껴진다. 그것은 생기 있으면서 모나지 않고 탱탱하면서 맑고 아름다움이다. 스타일이라는 것이 개성을 말한다면, 윤오영의 글은 ‘윤오영 스타일’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의 독특함이 두드러진다. 그의 글은 무겁지 않으나 무겁다. 자애로운 표정으로 눈가에 주름이 한껏 잡히도록 웃으면서도 뼈 있는 말을 내뱉는 할아버지 같다. 책은 두 가지로 분류 할 수 있다. 빨리 읽어도 되는 책, 그리고 천천히 읽어야 하는 책. 「곶감과 수필」은 한 숨에 읽는 책이 아니라 천천히 맛과 향을 음미하며 읽어야 하는 책이다.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거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책이죠.’ 「곶감과 수필」이 그렇다. 윤오영의 글이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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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학교 생활에서 제일 갓뎀이였던 시절이 중학교 시절이다. 남자 중학교라서 그런 부분도 있겠으나, 초등학교를 갓 졸업하고..뭔가 짐승같은 느낌의 같은반 인간들은(친구라 하기도 싫음)...하나같이 거지 같았다. 공부 못하는건 둘째치고, 더럽거나 양아치거나...쓰레기. 뭐, 이 즈음의 선생님도 매한가지였다. 공부 잘하는 순서대로 앉히는건 애교로 봐주겠고..은근 슬쩍 야비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막말을 일삼는 건...같은 반의 인간들이나 선생님들이나 똑같았다. 여하튼, 터미네이터가 그시절로 돌아가서 그들을 다 쳐죽인다면, 내가 돈이라도 좀 찔러주고 싶을 정도로 그 시절은 갓뎀이였다.
하지만, 갓뎀이 아닌 것이 있었으니, 그건 국어 교과서였다. 이 책의 '방망이 깎던 노인'을 비롯하여, '이해의 선물','현이의 연극','신록예찬' 등등...개같은 학교 생활이랑은 정반대로 주옥같은 글들은 교과서에 다 실렸었다.
나이가 먹고 세월이 지나니...그 시절의 인간들이나 선생들은 생각이 나지 않고.. (심지어, 그들이 그저 그렇게 살거나 힘들게 살고 있다는 소문에 행복감을 느낄 정도지만) 글들이 생각이 나서, 지난 겨울 즈음이든가..블로그 절친님께서 올리신 내용을 보고 당장 구입했다. 그리고는...한 편 한 편...아껴 아껴 읽었고 좋았던 글들은 여러번 읽기도 하였다.
이렇게 잘 쓴 글들은 더 이상 나오지않는 것일까. 나는 이런 글들이 항상 그립다. 글에서 이렇게 품위와 품격이 느껴지는건... 기교만 휘양찬란하고 삐까뻔쩍하지 않고, 그 속에 바다보다 더 깊은 깊이가 있기 때문이겠다. 글을 사랑하듯 삶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듯 글을 사랑하는 마음이 오롯이 느껴진다.
윤오영의 글처럼..은은한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
| 윤오영의 수필을 생각하면 얼핏 학창시절 국어교과서에 나온 「방망이 깍던 노인」을 떠올리게 된다. 곶감과 수필이라…과연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도 참으로 정다운 제목이 아닌가. 그래서 여름날 매미소리 가득한 오후에 땡볕을 피하느라 그늘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몇 장 넘기지 않아 편자의 「윤오영론」을 보는데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수필을 곶감에 비유했다. 곶감을 만들려면 먼저 그 고운 껍질을 벗겨야 한다. 좋은 글이 되려면 먼저 문장기(文章氣)를 벗겨야 하는 것과 한가지 이치다. 그 다음엔 시득시득하게 말린다. 그러면 속에 있던 당분이 겉으로 드러나 하얀 시설이 앉는다. 만일 덜 익었거나 상했으면 시설은 앉지 않는다. 시설이 잘 앉은 다음에 혹은 납작하게 혹은 네모지게 혹은 타원형으로 매만져 놓는다. 글쓰는 이의 개성을 말한다. 감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곶감은 오래간다.」(10쪽) 참으로 탁월한 비유가 아닌가! 게다가 그는 수필의 정신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수필의 정신은 산문정신이니, 평소에 쌓인 온축과 박학이 완전히 융화되고 체질화되고 생활이 되어 사물에 접할 때마다 자기의 독특한 리듬을 타고 흘러, 혹은 유머도 풍기고 혹은 위트도 빛내며, 혹은 풍자도 되고 혹은 우화도 되며 구비마다 새로운 기축(機軸)을 열되 어느 때 어느 줄을 튕겨도 거문고 소리는 거문고 소리, 비파는 비파 소리를 잃지 않는 것이 산문정신의 높은 경지라고 했다.」(10∼11쪽) 그의 이론은 공허하거나 관념적이지 않다. 그것은 그의 작품을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의 「깍두기설」은 이런 그의 정신이 고스란히 묻어난 걸작이라 하겠다. 깍두기는 조선 정종(正宗) 때 홍현주(洪顯周)의 부인이 창안한 음식으로 궁중에 진상할 기회가 있어 바친 음식이다. 부인은 아무렇게나 깍둑 썬 무에다가 고춧가루와 양념을 한 것을 바쳤는데 임금이 그 맛에 탄복하였다. 윤오영이 「깍두기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깍두기 예찬론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항상 있으나 소홀하기 쉬운 부분에 대한 각성, 그리고 "거문고 소리는 거문고 소리, 비파는 비파 소리를 잃지 않는" 것처럼 깍두기는 오미(五味)가 각각의 맛을 내며 조화롭게 만드는데 그 신선한 맛의 비결이 있음에 초점을 두고 있다. 격조높은 글이란 무엇인가. 수필을 신변잡기에 관한 글이라고 그렇고 그렇겠지 라고 생각한다면 윤오영의 수필―『곶감과 수필』을 꼭 권하고 싶다. 깍두기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격조높다는 것은 그 재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료를 가지고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과 맛의 청신함에 있는 것이며 요리를 내놓을 때 보이는 단아한 자태에 있는 것이다. 요즈음은 사방에서 현란한 것들이 눈에 많이 띈다. 선전구나 수식어도 요란하다. 그리고 정말이지 말도 많이 한다. 이런데 지친 눈을 돌려 책을 덮고 푸른 녹음을 보니 시끄러운 매미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고 미미하지만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느꼈다. 여름날 땡볕을 피해 읽었던 책이 풍경이 되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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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문학에서 가장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장르이다. 우리가 쓰는 글 중 가장 많이 쓰는 것을 분류한다면 우리는 수필을 가장 많이 쓴다고 할 수 있다. 편지, 일기 그 외의 글들, 수필은 그 자유로움으로 가장 많이 쓰는 글이 되어 있다. 흔히 쓰는 글 중에서 더욱 글을 잘 쓰기란 힘든 일이다. 수필이란 것이 붓 가는 대로 쓴다고 하지만 잘 쓴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써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윤오영은 수필을 곶감에 비교한다. 감은 오래 가지 못하지만 곶감은 오래 간다는 그의 말, 그것은 수필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좋은 비유이다.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다.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소재를 대상으로 수필은 씌여진다.
그래서 수필은 다른 문학에 비해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데 유리하고 공감을 얻기도 쉽다. 그래서 수필에서 얻어진 사색과 깨우침은 오래오래 독자에게 남는 것이다. 윤오영의 수필은 위에 말한 수필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다. 간결하고 담백한 그의 문체에서 우리는 감동과 사색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 옛것을 돌이키게 하는 그의 글은 정이 담겨 있다.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들, 그들은 빠른 속도로 지나가 버린 것들을 그리워 한다. 그들에게 윤오영의 수필은 작은 위안과 감동을 준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우리가 가을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 수가 있을까." 나는, "앞으로 그리 길지 못한 가을이나마 또 몇 번이나 이렇게 한가하게 즐길 수 있겠소." 하고 웃었다. 그리고 소동파의 글을 외웠다. "밤에 달이 밝기에 뒷산 절에 올라갔다. 상인도 마침 마루에서 달을 보고 있다가 반가워한다. 뜰 안에 달빛이 고여 바다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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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오영은 국어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수필가다. 수필의 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집으로만 보다가 한번은 제대로 봐야 할 것 같아 이 책을 샀다. 두껍지도 않고 글도 무겁지 않고 그러면서 읽는 맛은 제대로 느껴진다. 마치 이런 게 삶의 깊이라고 하는 것처럼.
야단스럽지 않은 글, 화려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은 글. 대신에 잔잔하게 묵묵하게 여운을 남기면서 맺지 않은 듯 맺어 놓은 글들. 이 책에 실린 글의 분위기처럼 나도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급해 하지 않는 인생, 안달내지 않는 인생, 주어진 처지에 고마움을 느끼는 인생. 이렇게 자연스럽게 수긍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작가가 살았던 시대가 시대인지라 쓰인 글에 한자어가 꽤 나온다. 경우에 따라서는 읽기 거북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호감을 갖고 있었던지라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면 뜻을 찾아 가며 읽었는데, 그것까지 좋았다. 다른 작가였다면 나는 툴툴거렸을지도 모른다. 교과서에 실리는 글이라고 다 따분한 게 아니다. 실릴 때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을 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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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라는 수필에서....
아버지의 얼굴엔 항상 미소가 머금어져 있다. 직업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마술을 연구하는 분이라 그러신 걸까. 고3겨울방학, 자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 왔는데 아버지가 식구를 모두 거실로 불렀다. 재미있는걸 보여 주신단다. 으레 그랬듯 새로 개발한 마술을 보여 주시려나 했는데 마술 도구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죽 한번 둘러보시더니 갑자기 입을 벌리고 영구 흉내를 내셨다. 우리 가족은 모두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다. 영구흉내가 재미 있었던 게 아니라 아버지 입속에 있어야할 앞니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우스워 보이던지. 그렇게 마냥 신나게 웃고는 방으로 들어 왔는데 나도모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날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울어야할 눈물까지 몽땅 흘려 버렸다. 너무나 아름다우신 분이다. 너무나 사랑하는 분이다. 아버지는 생각이 참 깊으신 분이었다. 우리에게 당신의 치아가 빠진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참 많이 고민하셨을 것이다. 잘못하면 집안 분위기 전체가 우울해져 버렸을 테니까. 며칠 뒤 아버지는 다시 식구를 모두 불렀다.
처음한 틀니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가짜 치아를 들고는 또 장난을 치셨다. 그 치아를 손에 쥐고는 나의 볼을 깨물기도 하고 어머니 옷을 끌기도 하면서. 또다시 쏟아지려는 눈물을 감추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던지. 윤오영의 「치아」에서 작가도 볼이 쏙 들어간 어머니를 보며 이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머니 마음은 자식만 따라다닌다” 한다. 어디 어머니 뿐이겠는가. 오직 자식만을 위해 살아오신 분들. 요즘 아버지는 가정에서 정신적 중추가 아닌 경제적 중추로 바뀌어 버렸다. 얼마전 ‘아버지’라는 소설이 우리의 가슴을 때렸음을 기억할 것이다. 현대가 도대체 어떤 시대 이길래 이런 소설까지 등장한 걸까. 가난하지만 진실하게 출렁이는 사랑으로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 상이 잘 나타있는 「아버지의 귀로」나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과 희생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인 이청준의 「눈길」에서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곽재구의 「성묘」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의 묘지 앞에서 정신을 차린다. 풍수지탄이라는 사자성어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부모님의 무덤 앞에서 무슨 효도를 할 텐가. [인상깊은구절] 염소는 천사외다 |
| 곶감과 수필은 '방망이 깎던 노인'과 '소녀','양잠설' 등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친숙한 수필을 써온 윤오영의 수필집이다. 일상 속에서 있었던 일들을 덤덤하고 편안한 문체로 써내려 간 그의 수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가지 교훈과 삶에 대한 깨달음 등을 담고 있지만 딱딱한 느낌이 전혀 없이 따뜻한 느낌과 잔잔한 감동 등 갖게한다. 소설을 밤에 시를 복숭아에 그리고 수필은 곶감에 비유하는 작가의 이야기처럼 자신의 이야기에 껍질을 벗겨내고, 여러번의 손질을 거쳐서 좋은 글이 탄생한다는 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결국 이 책의 매력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생각을 솔직하게 엿볼 수 있다는 점이었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