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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세계를 확장이 끝이 없어 보입니다 자긴 무의식에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지 분석의 대상으로 잡았던 것 같읍니다
농담에 이런 무의식의 쾌락의 원칙이 적용된다니 생각해 보면 그럴듯하기도 하고 그 반대도 적용될 것 같기도 하다 독일어로 된 단어와 농담의 단어들이 우리 정서와 상당히 먼것 같은 느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사소로운 것에서 의미있는 것으로 유추해낸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읍니다 프로이트 저서중에서 가장 싶게 읽은 도서이지만 그러나 가장 작은 인상을 준 것 같읍니다 기대가 큰것에서 실망을 안겨준 것 같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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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제과점에 들어가 파이를 주문한 뒤 파이를 다시 내밀고 대신 브랜디를 먹는다. 그러고는 값을 지불하지 않고 가려하자 주인이 붙잡는다. 왜 이러는 거죠? 술값을 내야죠. 그 대신 파이를 주지 않았소? 그 파이값도 내지 않았잖아요? 나는 그 파이를 먹지도 않았는데요. 어이가 없는 웃음을 끌어내는 교활한 논리라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싶어 과정을 한번 더 되짚어보게 되는 대화다. 한국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유승호 주연 영화 <봉이 김선달>의 주인공인 봉이 김선달의 무전취식 방식이다. 장터로 나간 김선달은 한 장사꾼에게 옷을 가리키며 이것이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옷이오라고 대답하자 한걸음 다가간 김선달은 이번엔 잣을 가리키며 이것이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잣이오라고 대답하자 잣을 한웅큼 집어 입에 넣고는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사꾼에게 이번엔 자신의 머리에 쓰고 있는 갓을 가리키며 이것이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갓이오라고 대답하자 자리를 뜬다. 물론 장사꾼에서 팔을 잡혀서는 뜬금없이 왜 이런 짓을 하는 건지 설명해야만 했다. 아, 오시오라길래 왔고 자시오 라길래 자셨고 가시오라길래 가는데 뭐가 문제냐며 어깨를 으쓱 이를 프로이트는 현학적 사고 오류라고 말한다. 즉, 의도된 교활한 논리로 순간 상대방에게 스턴을 거는 것이다. 반면 말하는 이도 모르게 사실을 털어놓음으로써 지금까지의 논리를 무효화시키며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자동적 사고 오류가 있다. 신랑감이 중매인과 신부될 사람의 집에 방문한다. 신부될 사람의 집에는 아름다운 은그릇이 진열된 유리찬장이 있었다. 이를 보고 중매쟁이가 이것만 봐도 이 사람들이 얼마나 부유한지 견적 나오지 않느냐. 남자는 의심스럽게 오늘 만남을 위해 빌렸을지 어떻게 아느냐고 말하자 중매쟁이는 딱 잘라서 말한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이 사람들에게 뭔가 빌려줄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요?" 즉, 빌렸다는 말에 반박하려 본의 아니게 이 사람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물건을 함부로 빌려줄 멍청한 인간은 없을 것이라는 걸 부지불식 간에 털어놓은 셈이다. 이는 시트콤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알겠지만, 제목만으로 이 책이 마치 마법처럼 너의 그 농담에는 무의식적 가시가 있어, 그 가시는 너의 과거 어디에서 비롯되었지 라고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나는 노암 촘스키의 책을 잘못 구매한 줄로만 알았다. 시작하자마자 농담을 분석하려 문장 구조를 해체하기 시작하자 프로이트가 이 책의 제목을 얼마나 잘 지었는지 놀랄 따름이었다. 다소 낚인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인고하고 견디면서 1부라는 문장 분석을 지나면 이후부터는 달달한 열매를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썩 괜찮은 상큼한 열매를 찾은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물론 2부를 읽으려면 1부를 읽어야 한다는 전제 때문에 건너뛸 수는 없다는 것을 참고하기 바란다.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1부가 재밌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말 그대로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 대한 분석을 기대하고 펼친 사람이라면 다소 지루한 시간을 버텨야만 한다. 그럼에도 꽤 재밌는 분석이 많았다. 연구자들이 이름 붙여 놓은 것에 의하면 이 농담은 소리의 통일성을 이용하여 고유 명사로 장난을 치는 저급한 소리 농담이다. 이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던 농담으로, 아주 고차원이라서 도무지 나는 이해할 수 없어서 못 웃겠다는 뜻의 하이(high) 개그라고도 불려왔다. 그러다 최근에야 빛을 발한 아재 개그를 예로 들 수 있다. 말 그대로 말장난에 불과하다. 일부에게는 취향을 저격하여 듣는 족족 빵빵 터지지만, 대체로는 한 두번까지는 웃어줄 수 있지만 반복해서 드립을 칠 경우 울대를 세게 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이러한 농담은 영미권은 물론 일본과 같은 아시아에서도 가장 기초적이지만 큰 웃음은 유발하지 못하는 농담에 속한다. 물론 그저 '말장난'에 불과하다면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 상황이 대입된다면 웃음의 크기는 다소 달라질 수 있다. 말장난과 패러디로 빵빵 터지는 대표적 작품으로 <심슨 가족들(The Simpson)>이 있다. 한 회만 봐도 눈이 뱅글뱅글 돌 정도로 수많은 말장난이 오가지만,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인 바트가 꾸준히 치는 장난이 있다. 모의 술집으로 장난 전화를 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맨더 허갠키스(amanda huggenkiss)라는 사람을 찾는다고 말한 다음 모가 큰 소리로 가게에 이 이름을 소리치며 찾도록 하는 것이다. I want a man to hug and kiss!' 프로이트가 말하는 이 '저급한 소리 농담'은 세 번 이상 칠 경우 사람의 폭력성을 일깨우는 아재 개그가 될 수도 있고 상황에 개입되어 웃음을 유발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바트의 장난 전화가 웃음을 주는 데에는 모의 헌신이 필요하다. 즉, 한 사람이 멍청이가 되는 상황이 필요하다. 이처럼 악의성이 있으며 누군가에게 불쾌함을 줄 수 있는 의도를 가진 농담을 "경향성을 갖는 농담"이라고 한다. 따라서 장난 전화에 시달리던 사람이라면 바트의 장난 전화가 불쾌할 수 있다. 장난 전화를 하는 행위 자체를 비윤리적이라고 보는 사람에게도 바트는 궁둥짝을 때려야 할 버르장머리 없는 놈에 불과하다. 그래서 농담은 이전부터 말이 많았다. 100% 허구로 만든 농담이란 없다. 허언증 갤을 떠도는 수 많은 허언에도 현실이 반영되어 있고 개인적 의견 또는 평소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던 생각들이 녹아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부 상황에서 "농담이야"라는 말은 상대방을 할퀴는 동시에 '이 말에 상처 받는다면 너는 쫌생이'라는 느낌까지 전달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해 농담과 언어 폭력의 경계에 서 있는 이들이 많다. 독자들은 단순한 비유로도 분개하고 흥분하게 됨으로써 그 비유가 그 자체로 농담처럼 보이는지 아니면 단지 어떤 요소의 첨가로 인해 농담처럼 보이는지를 구분하고 싶은 생각을 잃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농담의 대상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지만, 이 농담을 듣는 제삼자는 말그대로 빵빵 터질 수 있다. 이것이 경향성 농담의 큰 단점이자 장점이다. 가장 말초적인 웃음을 끌어낸다. 물론 윤리적이라고 볼 순 없지만 한번쯤 생각했던 그리고 생각으로만 그쳤던 것에 칼집을 낸다는 것은 대리만족과 공감을 불러일으켜 큰 웃음을 만든다. 농담과 언어 폭력의 경계에 선 사람들에게 당한 적이 있다면 혐오스럽게 생각하겠지만, 떠올려 보면 자신도 그런 농담에 웃은 적이 있을 것이다. 직장 상사나 분위기 파악 못하는 친구나 정치인 등 한번쯤 그들을 뒤에서 씹고 뜯으면서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면 안 되지만 솔직히 웃을 수밖에 없는 농담, 바로 경향적 농담이 가장 큰 웃음을 이끌어 낸다. 경향적 농담에서는 그렇게도 억제할 수 없는 갑작스러운 폭발적 웃음을 악의 없는 농담에서는 얻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처럼 웃음을 끌어내는 데에는 상대방의 반응도 중요하다. 설명충 또는 나만 불편해?라는 프로 불편러들의 반응은 웃음을 반감시키거나 농담을 던진 이들을 나쁜놈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 유명 토크쇼 중 하나인 엘렌쇼의 진행자 엘렌 드제너러스가 리우 올림픽 육상 부문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우사인볼트를 보고는 "마트에 갈 때 우사인 볼트 등에 업혀서 가면 되겠다"라는 농담을 던진 것이 화제가 되었다. 그 기사 제목만 접했을 때는 육상계의 아이돌인 우사인 볼트를 욕보인 것이 문제가 되었나라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이 농담에 돌을 던진 것은 흑인 비하라는 이유였다. 여기에 엘렌은 '자신은 인종차별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며 우사인 볼트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런 농담을 꺼냈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며 단호하게 얘기한다. 이처럼 농담은 받아들이는 상대의 반응에 따라 좌우될 수도 있다. 어떤 말 중개상이 고객에게 승용마를 추천한다. "당신이 이 말을 타고 새벽 네시에 출발하면 여섯시 반경에는 프레스부르크에 도착할 것입니다." "프레스부르크에서 아침 여섯시 반에 뭘하게요?" 일상 대화에서도 상대방이 이해한다는 가정하에 쓰이는 전위는 대화를 부드럽게 만든다. <서른, 외국어를 다시 시작하다>를 보면 '외국어'를 기점으로 언어를 분석한다. 여기서는 일상 속 전위가 이렇게 이루어진다. 가령, 내 새 와이셔츠 어때?라고 물었을 때 괜찮아, 마음에 들어 또는 아니 마음에 안 들어라고 대답할 수 있지만, 니가 지난 번에 산 빨간색 치마랑 잘 어울리겠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한다. 대화하는 두 당사자가 서로 협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대처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관련성의 격언을 위반함으로써 화자는 단순히 예 아니오로 대답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대답하면 오해의 소지 또한 생긴다는 점도 알아 두어야 한다. 특히 반어법이 그렇다. 게임하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머니가 "게임 하느라 고생이 많다"라고 얘기했을 때 아들이 "네, 렙업하느라 힘드네요. 과일 좀 깎아주세요."라고 대답하면 머리채를 잡힐 것이다. 이처럼 농담은 받아들이는 사람과의 일종의 협업이라고 볼 수도 있다. 협업이 필요한 또 다른 형식의 농담으로는 음담패설이 있다. 프로이트는 외설적 농담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자신이 주창한 이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리비도와 유년기의 성적인 범위를 언급한다. 다소 약한 음담패설이라고 볼 수 있는 '구애'의 말을 여성에게 속삭였을 때 여성이 반응을 한다면 관계를 맺는 것이고 여성이 방어적 자세를 취한다면 성적 공격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남성에게는 음담패설을 하는 것 자체가 쾌락의 목적이 된다. 즉, 음담패설이 농담이 되는 일차적 조건은 "여성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계층에 따라서도 차이를 볼 수 있다. 창녀나 접대부에게는 직접적인 음담패설을 건넨다. 쾌락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삼자가 있거나 보다 교양을 갖춘 계층으로 올라가면 여자가 끼이는 순간 음담패설을 멈춘다. 이는 개개인의 성향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체로 상대 여성을 어떤 식으로 대하느냐라는 아슬아슬한 쾌락의 정도를 나타내는 기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말한 여성의 태도 그리고 제삼자의 유무라는 음담패설의 작용 기준은 음담패설의 '정도'는 고려하지 않은 듯 하다. 가령 회식 자리나 모임에서 여성이 있음에도 그걸 고려하지 않고 무심코 던지는, 생각을 두 번 하면 깨닫는 식의 음담패설은 1. 여기서는 자신은 이 음담패설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은연 중 깨닫는 식의 농담이다. 많은 여성이 은연중 당한 성희롱적 발언이 2, 매춘부에게 드러내놓고 관계를 요구하는 식의 농담이 3이라고 본다면 1은 농담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며 3으로 갈수록 유혹에 가깝다. 농담에서도 역시 가장 훌륭한 농담 성과는 가장 풍부한 사고 내용을 표현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상원 의원이었던 밥 돌은 <대통령의 위트>라는 저서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유머러스함에 순위를 매겼다. 단연 1위는 지금도 워싱턴 한 가운데 당당히 앉아 있는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링컨 대통령은 적재적소에 맞는 예리한 농담과 옛이야기를 인용한 농담 그리고 자신의 얼굴이나 처지를 비하하는 식의 농담으로 사람들을 웃겼다. 1863년 가벼운 천연두를 앓게 된 링컨 대통령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갖게 됐군요."라며 웃었다고 한다. 참고로 <대통령의 위트>라는 책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의 유머 감각에 순위를 매긴 다음 가장 높은 순위인 링컨부터 가장 하위에 있는 필모어까지 순서대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 중반부터는 연이은 노잼의 연속으로 입꼬리가 턱까지 처질 위험이 있으니 미국 대통령을 향한 관심이라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웃음을 유발하는 또 다른 요소로는 천진난만함이 있다. 단, 천진난만함은 다른 농담과는 완전히 성질이 다른 것으로, 천진난만함을 표출하는 데에는 억압이 없다는 특성이 있다. 화자가 농담을 의도했다고 보는가 아니면 자신의 교정받지 않은 무지를 토대로 그로부터 선의의 진지한 결혼을 끌어내려 했다고 보는가이다. 후자의 경우만이 천진난만함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천진난만함이 웃음이나 어떤 느낌을 전달하려면 듣는 이들은 모두 아는 일반적인 사실, 즉 억압이라는 존재를 완전히 무시해야만 한다. 또한 그 부분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알고도 모르는 척 하면서 상대를 찌르는 용도로 악용할 수도 있다. 어린아이에게 더 이상 무지가 남아있지 않은데도 무지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며 종종 어린아이들은 자신들에게 달리 허용되지 않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 천진난만한 것처럼 가장하곤 한다. 즉, 아이의 천진난만한 요구에 어른들은 오구오구 지갑을 열지만, 아이가 어느새 자신의 행위가 물질적인 것을 불러온다는 걸 깨닫게 되면 천진난만함을 가장하기도 한다. 어릴 때 혼나던 도중 나는 혼나도 마땅하다고 엉엉 울면 엄마가 웃음을 터뜨린다는 것을 깨닫고 몇 번이나 재연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어느 순간에는 그런 식의 천진난만한 연기는 먹히지 않는다. 이제 알 때가 되었다고 어른이 느끼는 순간 천진난만함은 순식간에 가증스러움 또는 당돌함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재밌었던 건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과정을 다룬 부분이다. 절제된 연민은 유머의 쾌락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흔한 원천 중의 하나이다. 이 문장을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사례로는 수많은 개그맨이 있다. 가장 흔하게로는 음주운전, 도박, 사기를 당한 개그맨들이 돌아오면 으레 이를 개그 소재로 삼는다. 개그맨이 사기나 사업으로 수억을 말아먹었다는 뼈아픈 이야기를 농담 소재로 사용할 경우 웃음을 터뜨리는 대신 그들을 향한 연민이 반감되고 그들이 당시 겪었던 고통에 둔감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좀 더 와닿았던 실제 예로는 엄지 발톱이 부러진 친구 얘기가 있다. 엄지 발가락에 붕대를 친친 감고 나타난 친구는 이제 기분이 좋을 땐 발가락으로 따봉할 수 있다며 농담을 던졌다. 이때 나는 그가 발톱이 부러졌을 때의 통증이나 고통을 생각하기 보다 왕따봉을 떠올림으로써 웃음을 터뜨리고 무의식적으로 많이 아프진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쯤되면 농담도 하나의 문화적 요소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설명충과 프로 불편러 또 웃긴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자신이 웃으면 왜 상대방의 입꼬리가 떨어지는지를 프로이트의 설명을 빌어 이해할 수 있게되었다. 감정 분출은 희극을 방해하는 조건 중에서 가장 강렬한 것 (...) 희극적 쾌락은 강렬한 감정적 참여나 이해 관계가 없이 상당한 무관한 경우에 잘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다. 즉, 한국의 전통적 풍자인 마당 놀이나 판소리가 직접적 감정을 분출하지 않고 이야기를 차용한 것은 관객이 등장 인물에 감정이입을 함으로써 자연스레 양반과 탐관오리를 비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직접적으로 탐관오리 이름을 거론하면서 쌍욕을 걸쭉하게 하는 모습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진 않을 것이다. 아마 그런 간큰 인물이 있었다면 언제쯤 포졸들에게 질질 끌려갈까를 구경하려 늘어선 사람들은 있겠지만. 확실히 내가 이 책을 읽기 전 기대한 내용만을 담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농담과 웃음에 대해 막연하게 갖고 있던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정리한 책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아쉽지만, 또 다른 영역을 건드려 활성화시킬 수 있는 연결 고리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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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심리학 시리즈 중 하나고 열린책들에서 나와서 선택합니다. 양장이라 있어 보이고 자간 및 줄간격이 너무 좁은 흠이 있지만 정성스런 번역이 좋아서요. 오래 두고 두고 읽어야 해서 양장 강추합니다. 농담을 잘 못하는 편이라 무의식과의 관계라니 흥미로워요. 의외로 이런 면이 있었구나 새로 알게 되어서 신기했고. 전기나 영화로만 보기와는 다른 프로이트를 맛볼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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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05. YES24 아침에 주문해서 오후에 왔다. 이로써 프로이트 전집을 모두 구매했다. 웃는 무의식과 마주하기 프로이트 전집 중(별권까지 포함해서) 제일 마지막에 읽은 책이라 그런지 지루함이 더했다. 프로이트는 [새로운 이론 언급 ->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 영역이라 중복해서 발언 -> 자신도 모르는 새로운 이론 발견]이라는 방식을 통해 논지를 전개해가기 때문에 그의 전집의 반쯤 읽으면 상당히 지루해지지만, 이 책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우선 목차부터 살펴보면 이렇다. (보통 프로이트의 논문들은 목차를 상술하지 않는데 이 책은 좀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다) 제1부 분석적 부분 1. 서문 2. 농담의 기술 3. 농담의 경향성 제2부 종합적 부분 4. 농담의 쾌락기제와 심리적 기원 5. 농담의 동기들: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농담 제3부 이론적 부분 6. 꿈과 무의식에 대한 농담의 관계 7. 농담과 희극적인 것의 종류 이 중 1부는 '어떻게 하면 농담이 말해지는가?'를 다룬다. 독일어 농담을 주로 서술했기 때문에 웃지 못한다는 게 흠.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건 분석적인 프로이트의 성격 정도? 그런 농담이 있구나...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솔직히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다. 애초에 외국어 농담이니. 2부는 '농담을 왜 하는가?'이다. 프로이트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제목만 보고도 대충 내용을 알 수 있다. 쾌락을 위해/사회적 계급이 낮은 사람이 높은 인사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3부는 왜 농담이 무의식과 연관이 있느냐인데, 딱히 그렇게 혁신적이진 않다. 농담과 무의식이 관련이 있고 농담은 일종의 무의식의 욕망 성취를 위한 도구이다- 이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그래서 이쯤되면 살짝 비판적인 생각마저 든다. 프로이트는 너무 모든 것을 무의식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게 아닌가? 물론 농담을 하는 이유라든가 농담의 법칙 등을 서술한 건 좋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수많은 책들을 통해 증명된 바이기 때문에 더 언급할 가치는 없다. 프로이트가 농담에 관해 서술하면서 '프로이트만의 색채'를 보여준 부분은 바로 무의식과 농담의 관계인데, 이마저 안 읽어도 대강 예상할 수 있을 만큼 뻔하다. 물론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이 애초에 신생학문이기 때문에 그의 생각이 중복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1,2부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읽었으나 3부는 읽다 말았다. 프로이트를 공부한 사람에게는 지루한 책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를 법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