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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에 대한 글을 읽어면서 무의식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그 윤곽이란 눈으론 볼 수는 없지만 행동에서나 자기가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니 당연히 무의식이라 불러도 타당하지 싶읍니다
충격적인 사건이나 경험등이 의식의 저편으로 깊게 자리를 하게되어 어느 순간 신체적인 불완전한 활동으로 나타나고 이로 인한 고통이 수반되는 현상이 히스테리라고 합니다
트로마란 것도 전쟁이나 주변의 익숙한 상황에서 벗어난 이상상황에 대한 기억이 축적되어 최초경험한 상황과 유사한 상황이 일어날때 신체적인 격렬함이나 이상행동이 히스테리라고 정의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억에서도 망각(서서히 잊혀지는것)이 있는데 어떤 특정의 경험들은 우리의 기억속에 내장되어 있다가 어떤 연관에 의해 기억의 저편에서 의식의 수준으로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경우가 있고 또한 추억의 연상처럼 아주 우리를 해피하게 하는 기억도 있읍니다
이 히스테리에서도 성적인 것에 비중을 많이 두고 설명을 합니다 즉 히스테리의 근원적인 발생원인을 성적인 사건에 연원을 두고 있읍니다 역으로 해석을 해보면 인간이란 성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제약이 없었던 것입니다 즉 난교가 횡행했다는 것입니다 성적인 것에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성적인 제재나 금제나 아니면 도덕적인 기준이 설정되면서 성도덕이 발생하면서 성에 대한 혐오라던지 성에 대한 수치심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즉 성에 대한 초자아가 생성되면서 성에대한 기준이 설정되면서 성적인 경험에서 성적인 히스테리가 연원을 가지고 있지나 않나하는 나의 견해입니다
이 히스테리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재미가 있읍니다 환자와의 적극적인 대화입니다 의식의 상태가 아니라 무의식의 상태(최면상태)에서 대화로 양파껍질 벗기듯이 하나하나 차례대로 환자와의 대화에서 히스테리가 완치된다는 것입니다 즉 최면상태의 말은 마술을 가진 말로 변화되는 모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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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12. YES24. 아침에 수업도 지각한 김에 프로이트의 책을 질렀다. 이제 슬슬 질리는 걸 보아하니 또 사랑에 빠졌나 보다. 그래도 뭐, 프로이트는 재밌으니까. 프로이트의 역사적인 첫걸음, 히스테리 연구 정신분석학이 탄생하기 전, 프로이트는 스승인 브로이어와 함께 최면술을 통해 환자의 정신 속의 숨겨진 감정을 조사하고 그것을 치료하고자 했다. 말하자면 정신분석학의 모태인 셈. 그것이 집대성된 책이 바로 <히스테리 연구>다. 무의식, 방어기제, 저항, 히스테리, 신경증 등의 용어가 정립되기 전이라 조금 어려운 감이 있지만 사례집이다 보니 꽤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이 보인다. 읽다 보면 마치 나 자신이 정신분석학자가 되어 환자들을 마주 대하는 느낌마저 든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공저한 책이다 보니 서로의 글 스타일이라고 할까...그런 것들이 조금씩 보인다. 프로이트는 아주 솔직하고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적는다. 심지어 '환자가 브로이어를 거부하고 나를 받아들였다'는, 스승에게는 다소 치욕적인 내용까지 서슴지 않고 서술한다. 아마 이것이 정신분석의 자유연상법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밑바탕이 아닐지. 또, 이 책의 진정한 묘미는 서문이다. 서문에서 브로이어는 '마지못해' 서문을 써줬다는 인상을 준다. 자신과 결별한 프로이트가 맘에 들지는 않고, 그렇다고 성공한 제자가 자신의 저서이자 스승인 당신의 저서를 재판하겠다는데 서문은 써줘야겠고-. 그런 말투가 서문에서 가득 묻어난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연구에서 더 나아가(혹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 성이론을 전개했지만, 사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서 눈흘긴다'는 속담처럼 히스테리(감정의 전이)는 여전히 연구할 분야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담의 기초로도 쓸 만한 듯하고. 사실 분노-우울-죄책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은 분리 체험이라고 할 수 있는 슬픔이 전이돼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해서 서술해봐야겠다. 독서노트 그러나 내가 두 가지 이유, 즉 누구나 자신의 모든 감정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과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병에 걸린다는 점은 바로 그녀의 도덕성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라는 것 등을 들어 그녀를 위로하였음에도 이러한 위로의 말이 그녀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212p) 코멘트 (밑줄) 이거 좀 와닿는다. 누구나 자기 감정을 책임질 수는 없다. 그러므로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메커니즘은, 한편으로는 도덕적 비겁성에서 비롯된 활동이라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아가 휘두르는 방어 조처라고 말할 수 있다. (163p) 그녀의 가면이 숨겨진 감정을 드러낸다.(185p) 코멘트 <그래트헨의 숨겨진 성욕> 인간의 비참함이란 가면이 아닐지언가! 양립할 수 없는 생각을 <쫓아낸다>는 개념과 히스테리 증상은 심적 흥분이 신체적인 것으로 전환된 것이며, <방어>하고자 하는 의지가 작용하여 분리된 심리군을 형성하는 데에서 발생한다는 생각 등 그 한순간에 구체적인 형상으로 나의 눈앞에 떠올랐다. (211p) 코멘트 기독교가 치유의 의미를 지니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솔직한 죄의 고백(거의 모든 행동=죄이므로)-용서라는 구도는 정신병을 치료해준다. 피암시성이라는 말은 환자 자신의 의식에 떠오른, 혹은 들은 말이나 독서를 통해 외부에서 의식으로 도입된 관념이나 관념군을 비판하는 능력(판단력)이 없음을 뜻한다. (314p) 코멘트 암시성 <-> 비판능력이 있음. 근데 이거 번역어가 좀 이상한데? 피암시성은 심리기제의 저항능력. <정상적인 사람의 사고 과정>: 비판-연상-관념의 각성-새로운 관념과 부조화 -> 이것이 잘 되지 않으면? 이질적 관념의 조화, 비판하는 능력의 결여 혹은 저항능력의 감퇴 =연상력과 비례 -> 판단 능력의 결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