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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아무리 남과의 관계가 돈독하다고 해도 혈육을 나눈 것에 미치지 못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 연유로 어느 누구에게나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낮선 타인으로부터 기인하는 어떤 부정적인 시선이나 행동에 상관없이, 자신을 보호해주고 감싸주며 진정한 사랑의 기운을 느끼게 만드는 가장 든든하면서도 신뢰할만한 한 대상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상대적인 면도 있어서 기대가 많으면 그만큼 실망도 커지는 것처럼, 행여 가족 간에 뜻하지 않은 불미스러운 문제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면, 상처를 받는 그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다른 무엇에도 견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스런 아픔으로 남게 될 것이고,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때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뜻하지 않은 문제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거나, 혹은 자신에게 더 이상의 유의미한 것으로 인식되지 못할 때, 언제든지 자신의 의지로 그 인연의 끈을 과감하고 냉정하게 잘라 내버리고는 한다. 하지만 가족의 경우에는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고 또한 인위적으로 회피한다고 해서 결코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에 가족이라는 관계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항상 긍정적인 면만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유교라는 전통적인 가치관에 대한 영향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가족에 대한 그동안의 우리의 대체적인 인식은 다소 폐쇄적이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이유로 아무리 불편하고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도 참아야 하고 설사 상처받는 일이 있다 해도, 그것을 혼자 속으로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왔는지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이 작품은 한 가족의 불행하고 어두운 질곡의 역사를 애틋하면서도 섬세하게 다루어 내어, 독자들로 하여금 가족과 자기 자신이라는 관계의 설정을 다시금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의미 있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3대에 걸친 어느 가족이 겪어야만 했던 가슴이 아릴만큼의 애틋하면서도 고단한 삶을 회고한 것으로, 회한과 비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화해와 희망을 음미할 수 있는 조금은 특별한 느낌의 가족사를 담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모두 6편의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각각의 단편 그 자체만으로도 한편의 작품성 있는 소설로 치부해도 될 정도로 문학의 풍미를 자랑한다. 소설 첫 꼭지의 이야기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 한때 깊은 사랑에 빠진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가족이라는 둥지를 떠나 방황하는 둘째 아들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이어지는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내용은, 사랑 하나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즉흥적이면서도 일시적인 사랑을 즐기는 것에 이미 익숙해진 집안 막내의 이야기와, 자신의 친오빠인줄 모르고 사랑에 빠졌다가 나중에서야 밝혀진 가족사의 비밀을 알고, 타인과의 이성적인 관계에 불편함을 느끼는 셋째의 안타까운 심정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연이어 등장하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장남의 이야기는, 아내와의 권태기를 이기지 못하다가 급기야는 사내 여직원과 불륜에 빠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외유하는 모습이 나타나있고, 한편 고등학교 학생인 그의 딸은 어린 시절 단짝 친구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지만 외면을 당하고, 설상가상으로 학급에서 왕따로 취급되는 등의 혼란스런 청소년기를 보내는 가슴 아픈 상황이 전개되어 있다. 이 작품은 어느 단편을 딱 꼬집어서 말하기 힘들만큼 저마다의 이유 있는 사연들이 눈에 띄지만, 아무래도 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아버지가 과거를 회상하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그는 전쟁이라는 아비귀환의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참혹하고 끔찍한 위안부의 실상을 접하게 되는데, 이 점은 훗날 자신의 불행한 가족사와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부분보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아버지라는 한 개인의 인생으로부터 파생된 질곡의 역사가, 이후 세대로 침착되어 전이되는 과정이 애잔하게 다가오는 이 작품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그 본연의 가치와 목적이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보게 한다. 또한 이 소설은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각 단편의 유기적인 구성의 묘미와, 이를 바탕으로 공감을 느끼게 하는 감성적인 문체와 서술,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내용 안에서 독자들이 몇 가지의 의미 있는 작가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 아닐까 싶다. 아울러 가족이라는 테두리에 얽매여 가족의 구성원이 겪어야만 하는 희생과 파멸의 비극적인 일면을,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홀로 감수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우리 현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도, 독자들은 주목해 볼 만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결말의 과정에 펼쳐져 있는, 아버지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위안부와 관련한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작가는 이 부분과 연관해서 전쟁의 추악함이나 잔인성을 비판하고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더러워진 몸으로 다시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어느 위안부 여성의 비참하고 처절한 절규의 모습을 통해, 가족을 향한 일종의 보이지 않는 소명의식 같은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의 구성원이 되어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부모로부터의 아낌없는 사랑과, 형제와 자매라는 관계에서 형성되는 친밀한 유대감을 기반으로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가족이라는 것은 예기치 않은 불행한 일이 있는 경우에라도, 그것을 포용할 수 있는 충분한 여지를 마련해 줄 수 있어야 하고, 또한 그 안에서 누구든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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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키상 수상작품이란 글귀가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 끈 무라야마 유카의 '별을 담은 배'... 여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삼대에 걸친 한 가문의 이야기는 한 편의 장엄한 드라마를 보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여섯 편의 단편소설 속에는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자신과 가족의 모습이 슬프고 애잔함을 갖게 한다. ‘미즈시마 가(家)'를 이끌고 있으면서 무섭고 폭력적이며 엄한 모습의 아버지상을 보여주는 시게유키로 인해 그의 자식들과 아내들은 하나같이 마음의 상처를 간직하게 된다. 시게유키 역시 전쟁을 몸으로 직접 겪은 세대로서 그의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가 가족들에게 친절하지도 다정하지도 못했던 이유와 후회 섞인 탄식이 예전 우리의 가부장적인 아버지들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토리의 시작은 시게유키의 둘째 아들 ‘아키라’가 어머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오래전에 떠났던 고향으로 향한다. 허나 안타깝게도 그가 도착하기 바로 전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자신을 낳아주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주었던 인정 많은 새엄마의 죽음보다 그녀가 아버지 시게유키와 합치면서 데리고 온 딸 '시에'와의 재회가 아키라는 더 신경 쓰인다.
소꿉친구로 자신을 향한 깊은 사랑을 보여주는 남자친구와의 결혼에 자꾸만 미적거리게 되는 시에.. 그녀를 단단히 옭아매고 있던 끈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다시 만나게 된 작은오빠 아키라로 인해 흔들린다. 보호받아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그녀의 잘못처럼 느껴지게 만든 부모님의 한 마디로 인해 그녀는 움츠려 든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일과 가정에 완벽한 아내와 성실하고 또래에 비해 예의바른 자식들을 둔 장남 미쓰구... 그는 가정에 불만은 없다. 허나 어느 날 우연히 젊은 여직원을 알게 되고 그녀의 젊음에 이끌려 외도를 하게 된다. 가정, 젊은 여자와의 관계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를 찾게 되는데...
막내라는 특권을 온전히 누리며 자란 막내딸 미키... 그녀는 항상 누군가의 짝이 있는 상대와 관계를 맺는다. 죄의식을 느끼지 않지만 이런 그녀의 행동 뒤에는 그녀에게 배신감을 안겨 주었던 아키라와 사에 언니와의 금지된 사랑이 어느 정도 밑바탕에 깔려 있고 폭력적이고 엄한 아버지와 한 없이 다정하고 착하기만 한 어머니 시즈코와의 관계도 영향이 있다.
장남 미쓰구의 딸이자 시게유키의 손녀 사토미... 예쁘다는 소리를 못 듣는 외모에 모든 학생들이 좋아하는 단짝친구를 가진 사토미... 허나 그녀의 단짝친구는 사토미의 오랜 소꿉친구와 연인 사이가 되어 있고 두 사람의 바라보는 사토미의 마음과 학교 폭력으로 인해 소중한 친구에게 상처를 남기고 만다.
미즈시마 가(家)를 이끌고 있는 시게유키를 통해서 전쟁이 주는 상처와 고통이 얼마나 큰지 새삼 알게 해준다. 일본인의 시선으로 행동하던 그에게 위안부로 끌려 온 야에코... 강미주와의 만남은 나라를 떠나 두 사람만의 교감을 형성한다. 잠재되어 있던 의식 뒤에 묻어 둔 미주의 본성을 깨어나게 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죽음을 맞게 된다. 전쟁이 지닌 어두운 모습과 위안부 여인들이 겪은 고통이 온전히 느껴져 아프게 다가오는데 책은 과거사와 위안부에 대한 반성을 도통하지 않는 요즘 극우주의 일본인들과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어 다행이다 싶다.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서로의 이야기는 연결성을 가지고 있어 미즈시마 가(家)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 슬픔이 잘 스며 있어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 슬픔에 마음이 안타까워진다. 여성 작가가 가진 섬세함이 잘 느껴지는 작품으로 책 속에 빠져 들게 만드는 흡입력 역시 좋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가족사를 가지고 있기에 영화나 드라마도 만들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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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16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아, 그래요 사랑은 영원한 상징,/폭풍우를 굽어보면서도 흔들리지 않지요 사랑은 모든 방황하는 배를 이끄는 별이니 /그 높이는 알아도 그 가치는 알지 못하죠(O no! It is an ever fixed mark/That looks on tempests and is never shaken;/It is the star to every wadering bark,/Whose worth's Unknown, although his height be taken)"
셰익스피어는 이 시에서 사랑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사랑은 영원한 것이며 흔들리지 않는 밤하늘 별자리와 같다고 말이다. 순간 아름다워 보이는 사랑은 시간이 흐르며 퇴색되어가지만 진실된 사랑은 시간에 영원하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언제나 본질로서의 사랑이 아닌 현상으로서의 사랑인 것을 어쩌랴. 사랑의 주체와 객체에 따라, 혹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볼품없이 흔들리는 그런 사랑 말이다. 미국의 어느 유명한 병원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키스를 할 때 가슴이 뛰는, 소위 느낌이 있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고 한다. 그렇게나 길어? 하고 되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무라야마 유카의 장편소설 <별을 담은 배>를 읽고 있노라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16번이 생각나곤 한다. 책의 제목이 하필이면 왜 '배를 이끄는 별'이 아닌 '별을 담은 배'였을까. 흔들리는 배에 담긴 저마다의 별, 저마다의 사랑이 작가에게 왜 그토록 중요했던 것인지 생각하곤 한다. 읽는 사람에 따라 근친상간을 다룬 그닥 건전하지 못한 소설이라고 평할 수도 있겠으나 저자는 오히려 독자들을 향해 ‘비정상적이고 일방적으로 치부되는 사랑은 거짓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제 손으로 무엇 하나 바꿀 수 없는 무기력한 현실에서 사랑은 그들에게 유일한 탈출구이자 삶의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랑은 그만큼 절실하며 아프게 읽힌다.
"만약에. 오래도록 사에는 그 말을 떠올리는 것조차 금기로 삼았다. '만약에'라는 꿀로 포장된 과거는 달콤하지만, 그 달콤함은 마치 마약과도 같아서 빠지면 빠질수록 독이 되어 마음에 쌓인다. 사에는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을 견제했던 것이다." (p.188 ~ p.189)
무라야마 유카에게 나오키상을 안겨준 이 책은 사실 여섯 편의 에피소드가 서로 인과성 없이 연결된 연작소설로서 ‘미즈시마 가(家)’의 비밀스러운 가족사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스토리는 시게유키의 둘째 아들 ‘아키라’가 어머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오래도록 등지고 살았던 고향으로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자신을 직접 낳지는 않았지만 친자식보다 더 아끼고 사랑해 주었던 인정 많은 새엄마 시즈코의 죽음보다는 오히려 그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하는 이복 여동생 '사에'가 아키라는 더 신경 쓰인다. 아버지 '시게유키'가 가정부였던 '시즈코'와 재혼함으로써 시즈코와 그녀의 딸 '사에'는 '미즈시마' 가문에 새로이 편입되었다. 장남 미쓰구와 둘째 아들 아키라, 이복 여동생 사에와 막내 여동생 미키.
아키라는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사에를 사랑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만남을 적극 권유했던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돌아온 사에를 위로하며 아키라와 사에는 비로소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게 되고 연인으로 발전한다. 피가 섞이지 않은 남남인 줄 알았던 사에가 아버지의 친자식임을 알게된 아키라는 결국 집을 나가고 대학도 포기한 채 떠돌다가 한 사업가의 딸과 결혼하여 정착한다. 한동안 방황하던 사에는 결국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사업을 돕게되고 소꿉친구였던 남자와 결혼을 약속한다.
시즈코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만난 사에와 아키라. 결국 사에는 남자친구와 결별하고 위태롭게 결혼 생활을 유지하던 아키라마저 이혼한다. 독립하여 살면서 유부남과 인스턴트 사랑만 고집하는 막내 여동생 미키와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껴 시골 생활을 동경하는 장남 미쓰구의 가벼운 불륜. 그리고 아내를 잃은 아버지 시게유키의 회상과 젊은 시절의 사랑. 비록 본질적인 사랑은 같을지라도 사랑을 인식하는 주체의 나이에 따라, 그리고 사랑의 대상인 객체가 누구냐에 따라 그 모습은 한 가족 내에서도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그런 말을 순순히 믿고 좋아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만큼 성품이 좋은 것도 아니고 순정파도 아니다. 그럴 용기도 자신감도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부담을 지거나 상처를 입을 만한 위험이 있다 싶으면 미리부터 피하는 기술에만 숙달된다." (p.227)
장년에 이른 미쓰구의 생각이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여인을 애인으로 두고 있는 그는 아내와 고등학생 딸을 둔 평범한 직장인이다. 권태로운 일상과 정년 이후의 불안, 외로움 등에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오십 대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왜 나는, 나일까>에서 장남 미쓰구의 모습은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이 시대의 중년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은퇴 이후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과거 자신 안에 있었던 그 폭발적인 에너지는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가령 증발한 물이 돌고 돌아 비로 내리듯, 지금이라도 잘하면 되살릴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 새삼스레 그런 에너지가 되살아난다 한들 벅차기만 할 듯한 기분도 든다. 그토록 절박했던 방황과 후회와 나중에 생각해보면 자의식의 이면에 불과했던 격렬한 자기혐오, 그런 모든 것을 감당할 만한 힘이 지금의 내게는 이미 없다. 쥐어짜 내도 나올 것이 없다." (p.243~p.244)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진실할수록 위험해지는 관계에 놓인 아키라와 사에, 미키와 미쓰구. 다만 사랑의 모습은 서로 제각각이다. 아직은 어린 막내 여동생 미키의 대책없는 사랑과 열정이 식은 미쓰구의 사랑이 대비된다.
표제작인 <별을 담은 배>는 이 소설의 마지막 이야기이다. 아버지 시게유키의 이야기로, 미즈시마 가(家)의 비밀스런 사건과 갈등, 고통의 출발점이자 그것들이 마무리되는 종착점이기도 하다. 일제의 침략 전쟁에 징집되어 전쟁의 공포와 잔인성, 인간의 광기와 상실감을 직접 겪은 그는 전쟁이 남긴 고통스러운 기억과 상처로 인해 고집스럽고 폭력적인 사람으로 변하였다. 자신으로 인해 가족이 해체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는 자신의 과거를 통해 전후세대와의 화해를 도모한다. 그것은 어쩌면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사랑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둘째 아들 아키라의 말이 인상적이다.
키르케고르의 분류에 따르면 문학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랑은 제1단계인 심미적 단계가 주류를 이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사랑, 즉 종교적 단계의 사랑은 찾기 어렵다. 현상으로서의 사랑, 보여지는 사랑은 끝없이 흔들린다. 사랑을 하는 그 남자와 그여자를 통하여 사랑은 순간순간 '다시 발명되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랭보의 시구처럼 말이다. 사랑은 다시 발명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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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유마 유카의 수작, 불 태워 버리고 싶다
읽은 지 이주일이 지난 소설이다. 그래서 기억의 파편들이 더 많이, 더 멀리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 두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책이나 영화를 본다는 것은 때론 흥분과 당혹스러움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이자 표제작이기도 한 <별을 담은 배>를 읽을 때는 몇 번씩이나 어금니를 꽉 깨물어야 했다.
이 소설에, 이 아버지의 사연에 이런 내용이 담겨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아버지라는 존재의 아픔이 조선인 종군위안부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나의 흥분과 당혹스러움이 시작되었다. 특히 야에코가 아닌 강미주가 "물고기처럼 배가 쫙 갈라져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읽었을 때는 입 속에서 비릿한 피맛이 느껴질 정도였다.
책을 다 덮고 나서, 이주일이 흐르고 나서-내겐 시간이 필요했다-다시 생각해보아도 이 소설 불편하다. 아니 불쾌하다. 작품의 해석 나발이고, 나오키 수상작이고 뭐고간에 기분이 나쁜 작품이 되어버렸다. 수를 놓듯이 하나하나 정교하게 문장을 만들어 가는무랴아마 유카의 솜씨는 차지하더라도 소설 속 아버지의 폭력성의 근저에 쉽게 감화되지 못했다. 감화라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다. 젠장, 어휘력이 이렇게 형편없어 지다니.
무라야마 유카는 이 작품을 통해 여러 각도에서 한 가정의 사연을 풀어나간다. 아직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인들의 근친상간이 절절하게 그려져 있지만 그닥 다가오지는 않는다. 이런 소재는 일본에서는 흔할 정도이다. 일본에서 대유행한 <겨울연가>가 일본인들에게 '사라진 것에 대한 추억'을 상기시켰다는 것 이외에 그들에게 친숙한(?) 근친상간의 코드가 삽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몇 번씩이나 울먹이게 만드는 것은 역시 '어머니'라는 코드였다. 배가 아파 낳은 자식이 아닌, 기른 자식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내내 가슴이 아프다. 사실 나는 <별을 담은 배>의 장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에서 어느 순간까지 그 어머니가 혹시 강미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스토리가 그렇게 전개되었다면 내 마음은 어땠을까?
국내에서 처음 소개된 무랴아마 유카의 <별을 담은 배>를 만난 것은 분명 행운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수작이기도 하다. 무라야마 유카의 문장을 제대로 살린 번역도 좋다. 그러나 불쾌하다. 늘 폭력만 휘둘러대는 아버지가 속해 있는 가정의 일원들과 그들의 사연을 보여 주면서, 마지막에는 아버지의 아픔을 보여주는 구성으로 되어 있는 이 소설은 불쾌하다. 왜 아니겠는가? 전쟁에 끌려간 아버지, 그곳에서 만난 한 조선인 여자. 아무런 이유없이 일본군들에게 끌려와 성적 배설구임을 강요당하며 고향의 노래인 아리랑-지금도 이를 악 물고 있다-을 부르는 강미자. 이것때문에 고통받고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이걸 읽는 한국인인 내가 '소설 속 아버지에게 저런 엄청난 아픔이 있었구나'하며 가슴아파 할 수 있겠는가. 이 소설은 내게 표지의 광고문안처럼 "삼대 여섯 명의 주인공이 펼치는 감동의 대서사시"가 아니었다. 내가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 문학을 보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상기하게 하는 작품일 뿐이었다. 초심을 잃지 말자, 그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은 내게 취미나 소일거리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피해의식이라고 해도 소용없다. 아버지의 폭력과 강미주의 아픔은 같은 입장일 수 없다. 둘 다 전쟁의 피해자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게 표현하는 것 자체도 불경스럽다. 그것이 유망한 일본 작가인 무라야마 유카와 한국인 독자인 내가 서로 갈라지는 지점이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계속 보고 싶다.
* 군대에서 고참들에게 당했던 일명 '고목 나무 위의 매미'가 일본군의 잔재였다니. <추억은 방울방울>에서 '국민체조 시작~'이라는 음악 이후의 최고 충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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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버지, 아들, 딸, 손녀라는 삼대의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로 다른 시각에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들 가족에게는 아픈 가족사가 있다. 그 아픔은 당사자인 아키라와 시에만의 아픔이 아닌 가족 모두의 아픔이다. 아버지 시게유키의 전처에서 태어난 아키라와 후처인 시즈코가 데리고 온 시에의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가 아픔의 시작이었을까? 후처로 들어오기 전 이 집의 가정부로 일하고 있던 시즈코에게서 딸을 얻은 아버지 시게유키의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아키라와 시에가 한 아버지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살았던 시즈코의 잘못일까? 하지만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손녀인 사토미를 제외한 가족들은 그 아픔을 서로 공유하면서 자기만의 방법으로 가족을 위로하고 치유하고자 노력한다.
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지만 늘 시에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키라. 너무도 아픈 사랑이었기에 그 사랑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늘 떠남이라는 방법을 택한다. 대학 시절 오토바이를 타고 가족 곁을 떠났고, 현재 아내와의 이혼,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만난 가족의 곁을 다시 떠나려한다. 그가 선택한 떠남이 과연 그 아픔을 치유할 수 있을까? 그가 말했듯이 '갈 데까지 다 갔는데도 단념할 수 없는 일' -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시에는 영원히 단념할 수 없을 것이다. 시에 역시 오빠인 아키라를 잊지 못한다. 고등학교 시절 성폭행을 당한 후 그녀를 위로해주고 감싸준 아키라. 어느 틈엔가 그녀 역시 오빠를 사랑하게되었고 끝내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아키라가 그녀 곁을 떠난 십오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그에 대한 감정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는 소제목이 그녀의 마음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그녀는 분명 알고있다. 다시는 그녀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의 불꽃은 죽을 때까지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늘 열정없는 삶을 살아가는 장남 미쓰구. 세월의 흐름 속에 그는 여전히 열정없이 살아가고 있다. 우연히 선배에게 끌려가 참가한 데모.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입사한 회사,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바람을 피우고.....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채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용기없고 열정없이 살고있는 중년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손녀 사토미 역시 나름의 고민을 안고 있다. 자신의 진로 문제와 함께 일본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지메'의 희생자인 사토미. 자신에게 가해진 고통을 참지못하고 친구의 이름을 댄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친구에 대한 미안함으로 괴로워하는 사토미를 위로해준 것은 할아버지였다. 가족이 아픔을 주기도하지만 결국 가족을 통해 위로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별을 담은 배'는 이 소설에서 가장 큰 아픔을 지니고 있는 시게유키를 그리고 있다. 아내와 자식에게 왜 폭력을 휘두르고 아픔을 주었는지 그 이유가 밝혀지고 있다. 그 아픔은 개인의 것이 아닌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아픔이었다.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잊을 수 없는 일들. 전쟁에 끌려 나가 중국땅에서 만난 위안부 야에코. 한국 이름 강미주를 통해 일본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옵쓸 짓을 했는가를 알게 되었다. '개만도 못한 짐승은 우리가 아니야. 너희들이야! 이 쪽바리! 왜놈!'이라고 외치며 배가 갈린채 죽은 그녀를 자신이 죽인 것처럼 오랜 세월 그는 스스로를 책망하고 살앗던 것이다. 시게유키는 마음 속으로 얼마나 많은 사과를 했을까. 그러나 그는 다소나마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고자 하는 사과. 즉 용서받는 것을 전제로 하는 사과는 사과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진정한 사과를 하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해야 한다. 그 시대를 겪었던 시게유키같은 사람들의 진실된 고백. 그것만이 미주같은 분들의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어긋나 있는 이들 가족의 사랑법. 그 속에 숨겨진 일본의 부끄러운 역사. 그들은 뒤틀려버린 아픔을 일부러 똑바로 맞추려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치유하기를 멀리서 바라본다. 그들이 겪은 아픔은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갈만큼 큰 것이겠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울타리로 언제나 감싸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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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의 문학을 접할때면 꼭 드는 생각이 있다. 섬나라이지만 지리적으로 그리 먼곳이 아닌데 삶의 정서나 방식이 너무 다르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어렸을때 부터 배워온 일본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오는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역 시 역사적으로도 뗄레야 뗄수가 없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오랫만에 일본의 소설책 한권을 만났다. 일본의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데, 찾아보니 나오키상은 일본의 유명작가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1년에 두차례 신인들의 작품중에서 수상작을 뽑는다고 하며 110년이 넘은 오랜 권위있는 상이라고 한다.
이책의 작가 무라야마 유카의 작품은 처음으로 접해본다. 그래도 일본의 유명작가라 하면 에쿠니가오리, 하루키 정도만 알고 있는데, 이 책 '별을 담은 배'를 읽어보니 무라야마 유카의 작품이 왜 일본의 권위있는 나오키상의 수상작인지 느낄수 있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자칫 처음부분엔 한국인으로서 납득이 잘 가지 않는 가족사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가족이라는 핏줄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일본의 소설들을 읽어보면 가족들내에서 또는 친족간의 결혼과 성적인 관계, 그 내용들을 드러내는데 쉽게 접하지 못한 내용이라 혼란스러웠다. 역시나 일본 소설은... 이라는 선입견이랄까? 특히 배다른 남매인 사에와 아키라와의 관계는 그 연결고리가 마지막까지 흘러간다. 어떻게 보면 사랑은 위대하고 아름답긴 하겠지만, 우리정서인 천륜까지 어겨가면서 가족내에서의 이성적인 사랑이 소설로 되어가는 부분은 처음에 납득이 안갔지만 그들의 사랑에 안타깝기도 했다. 아버지로 나오는 시게유키에게서 모든 사건의 시초가 되는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목수 일을 하시면서 우악스럽게 자식들을 대하면서 첫째 둘째 부인에게도 폭력을 휘두르고 자식들에게도 살갑게 대하지 못했지만 과거에 2차대전 당시 일본군으로 끌려가 모진 고생을 한후 살아돌아와 그 후유증으로 그런 삶을 살게 된것으로 나온다. 마지 막에 두 아내를 잃고 혼자 과거 전쟁의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가야 하는 아픈 음을 다 풀어놓을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어느 누구에게나 어쩌면 보이는것부터 모든것의 시작으로 남을수도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같이 할수 없었던 과거의 경험 은 혼자만 간직해야할 것인지도 모른다. 그 모든 삶이 현재로 나타나는 것이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버지인 시게유키의 전쟁상황에서의 아픔을 읽고 있노라면 그 아픔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표현이 잘 된 소설이다. 시게유키가 전쟁터에서 만난 조선의 종군위안부를 사랑했던 마음을 절절히 느낄수 있었다. 전쟁의 고통은 이긴 자에게도 그리고 상처가 남겨진 자 모두에게 씻기 어려운 과거이다. 그 상처가 시게유키의 현실로 이 소설에서 볼수 있다.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하나하나의 사건이 맞춰져 나중엔 완성된 훌륭한 소설이 되는것을 느꼈다.
내가 읽어본 전형적인 일본소설이란 생각이 이 책의 처음부분에 접했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가족간의 사랑과 애착이 느껴 지는 소설이었다. 결국엔 이 책의 설명 그대로 가족이란 함께 있을때 이루어지는 하나의 배가 아닐까 생각한다. 상처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상처가 있어도 그것을 보듬어 줄수 있는 것은 가족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가족의 소중함을 마지막에 느낄수 있다. 무리하게 그 진실을 강요하지 않는다. 독자가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가 전하려 는 메세지는 가슴 따뜻하게 다가온다. 오랫만에 훌륭한 일본 소설을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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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번역되었던 책이 다시 번역되어 출간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 흔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면, 그 책에 대한 번역가의 애정이 남달라서일까요, 그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찬사와 사랑이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일까요. 한 쪽에만 해당될 수도, 양쪽 모두의 이유일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작품이 재번역된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작가가 있다는 것도,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지나갔을테니까요. [별을 담은 배]는 129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그것이 2003년이니 벌써 11년도 더 전의 일이네요. 좋은 작품은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죠. 이 작품도 부디 그렇게 되길 바라봅니다. 가족들의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다루고 있는 일본인의 눈으로 본 전쟁과 위안부 소재는 하나의 살아있는 역사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총 여섯 편의 연작 단편집입니다. 각각의 주인공은 한 가족이에요. 의붓동생인 줄 알았다가 사랑에 빠진 사에가 사실은 이복동생이라는 충격에 집을 나간 아키라, 집안의 막내로서 힘겨움을 감내하고 명랑한 척 지내온 미키가 감추고 있던 어둠, 한 남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아키라를 마음에서 지우지 못한 사에, 집안의 장남으로서 살아왔고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50대를 맞이한 미쓰구가 겪는 고뇌, 그의 딸인 사토미가 맛보는 청춘의 쌉싸름함,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일이 일어난 시작을 만들어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 시게유키가 노년을 맞이하여 과거를 되돌아보는 감회가 그려져 있어요. 그 때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고통들-10대인 사토미가 느끼는 친구에 대한 동경과 약간의 질투, 30대를 갓 넘긴 미키가 겪는 삶에 대한 불안함 등-이 마치 작가가 한 명 한 명의 캐릭터 안에 녹아있는 듯 그들의 입을 빌어 저마다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키라와 사에의 사랑도 가슴 아팠고, 미쓰구가 느끼는 허무함도 안쓰러웠지만 역시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아버지 시게유키가 등장하는 파트인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전쟁에 참가했던 시게유키는 그 곳에서 인간이 인간답지 못할 수 있다는 것, 사람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 몸으로 겪게 됩니다. 그 곳에서 만난 조선인 위안부 야에코, 한국이름 강미주.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이 조선인임을 잊지 않고 정체성을 지켜나가려했던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인 그녀를 사랑하게 된 시게유키는 참혹하게 그녀를 잃었고 현재에서는 그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인물로 비춰지죠. 겪어보지 못한 전쟁을 젊은 사람들이 뭘 알고 떠드는가 우습기만 하고, 그렇다고 전우들과 시간을 보내며 그 때를 미화시키는 것도 고통스럽기만 한 시게유키. 작가는 전쟁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변화해버린 시게유키라는 인물을 통해 전쟁 그 자체의 참혹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일본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할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합니다. 일본 정부에 대해 우리국민의 불신이 깊어지는 요즘, 일본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라고 외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 시게유키의 두 번째 부인 시즈코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을 듯 합니다. 지주막하출혈로 이미 작품의 처음부터 죽음을 맞은 그녀는 미쓰구와 아키라를 키워내고, 사에와 미키를 낳은 후처입니다. 미쓰구와 아키라의 어머니였던 하루요가 살아있을 때부터 이미 시게유키와 관계를 맺어왔고 그로 인해 사에를 덜컥 갖게 된 그녀는, 작품 안에서 그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가족들에게 그 누구보다 강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자리잡고 있어요. 아키라가 사에와 이복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토록 분노하고 절망했던 이유는 사에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 하루요보다 키워준 어머니 시즈코에 대해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몇 십년의 세월을 자신의 죄를 비는 마음으로 인내하고 한 가정을 이끌어온 그녀. 그녀의 부재는 가슴 아프지만 그 부재가 오히려 가족들이 서로를 살피고 보듬으며 앞으로 한 발 내딛을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연작단편집이지만 작품이 가진 서사의 매력이 대단합니다. 작가의 냉철한 시각은 물론 마음을 울리는 감성이 공존하고 한 인간의 삶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보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나오키상을 받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야기로서의 재미와 전달하려는 메시지, 모두 훌륭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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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편의 단편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별을 담은 배는 삼대에 걸친 한 가족의 이야기 입니다. 각각의 여섯명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 들려 주는 이야기 속에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마음의 고통을 엿볼수 있습니다. 복잡한 가족 관계로 상처 받은 사람들은 그 고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오랜 세월 마음의 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삼대에 걸친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는 성별과 나이도 다르지만 가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쟁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아픈 이별을 했던 과거 때문에 마음의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시게유키와 의붓남매 사에와 아키라의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과 사랑에 대한 두려움으로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미키 그리고 현재의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일탈을 꿈꾸는 미쓰구와 십대 사토미가 자신들의 사랑으로 인해 고통받고 힘들어 하는 모습 속에서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늦둥이 아키라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자신을 돌보아주시던 분과 재혼한 아버지 그리고 그런 새어머니와 함께 들어온 사에는 어린 시절부터 아키라의 친구이고 가족이었습니다. 어린 아키라는 새어머니와 사에를 좋아했지만 청년이 된 큰 아들 미쓰구는 아버지의 재혼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자신으로서 그 결정을 어떻게 할수 없었습니다. 전쟁의 상처를 가지고 돌아온 아버지는 설상가상으로 보증을 잘못해서 집안이 어려워지게 되자 성격까지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는 술을 마시고 돌아와 아이들과 새어머니에게 화를 내는 일이 많아졌고 그럴때마다 사에와 아키라 그리고 새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미카는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아버지의 학대는 계속 되었고 그런 아버지를 피하고 싶었던 아이들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키라는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와 자신의 힘으로 성공했습니다.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아키라에게 미카에게서 온 전화는 마음을 흔들리게 했습니다. 생각하기 싫었던 고향에서의 아픔을 떠올리면서 쉽게 고향으로 가지 못하는 아키라의 사연은 무엇일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진정한 사랑을 찾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일탈을 꿈꾸는 미카와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떠나버린 옛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을 잡지 못하는 사에와 완벽한 삶을 가꾸는 아내 때문에 또 다른 사랑을 생각하는 중년의 미쓰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마음이 아픈 사토미 그들 모두는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현실에서의 사랑은 우울하기만 합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었지만 그 사랑을 유지하고 싶은 가족들 그리고 그 가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사랑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수 있는 이야기 별을 담은 배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받고 상처를 주지만 되돌아보면 가족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여섯편의 단편이지만 한편 한편 읽어 가다 보면 각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그렇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이해하지 못했던 가족들의 상처와 고통이 조금씩 풀어 나가는 모습을 통해 가족이기 때문에 이해되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 흥미를 가지게 되었지만 읽은 후에는 왜 나오키상을 받게 되었는지를 이해할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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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는 애매하다. 그러나 번역을 볼 때 유명한 분이 하셨다. 이 책은 총 여섯 편의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장편소설을 이루고 있다. 인과성 없이 독립적으로 구성된 각각의 이야기들은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사건이 드러나고 전개되면서 긴밀한 연관성을 띄게 된다. 마치 퍼즐 조각이 모여 전체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처럼, 여섯 편의 이야기를 모두 읽었을 때 인물과 사건에 얽힌 의문점이 해소되면서 저자의 전달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깨닫게 된다. 네 번째부터 여섯 번째까지 이야기인 [왜 나는, 나일까] [구름송이] [별을 담은 배]는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자아’를 찾기 위해 고민하고 방황하는 큰아들 미쓰구, 손녀 사토미, 아버지 시게유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렇게 가족사의 이야기를 담아 놓은 ‘미즈시마 가(家)’의 비밀스러운 가족사를 드라마틱하게 펼쳐 놓았다. 알고 보니 이 책은 몇 년 전에 발행이 되었다가 이번에 새롭게 일본문학 전문 번역으로 활동해온 김난주 번역가가 자신의 기존 번역본의 부족한 부분을 다듬어 재 번역본으로 내놓았다. 그렇게 나온 책이 읽어 가면서 오묘하게 이어가는 스토리들이 큰아들 미쓰구와 그의 아내 요리코의 딸인 사토미의 갈등과 방황을 다룬 [구름송이]는 이 시대 십 대들의 성장과 ‘자아 찾기’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고등학교 학생인 사토미는 공부보다는 만화를 그리는 데 더 열중하지만, 좋은 대학에 가길 원하는 요리코와 사사건건 부딪친다. 소설의 전반부는 사랑과 가족의 본질 및 의미를 탐구하는 [그래도 사랑이니까], [꺼지지 않는 불꽃], [이별을 끝에 둔 사랑] 등 세 편이다. 진로에 대한 고민, 짝사랑의 아픔, 또래 집단과의 갈등 등 사토미가 처한 현실은 오늘날 십 대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방황하고 있는 수많은 사토미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우리는 소설 속에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읽으면서 서로가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들추고 자신만의 상처 속의 삶을 십 대들의 현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본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재인식 등 현대사의 큰 흐름을 녹여내면서 과거사의 올바른 인식의 촉구, 현실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의식의 변화 등을 여러모로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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