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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의 '사랑에 관한 달콤한 거짓말들' 이라는 책을 얼핏 손에 들었을때, 나는 그냥 ' 기분전환용 에세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유명한 작가들이 잡지에 매달 연재하는 짧은 글들을 엮은 책이겠거니 하는 심정이었다고 해야할까? 왠지 제목부터가 그런 느낌을 주는데, 이것이 솔직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책을 열자마자 약간은 거북스러운 제목은 책의 원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원제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연애'), 작가가 단지 사랑 이야기만을 하려는게 아닐 것이라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자신감에 차 있는 작가는 국제 경쟁력이 있는 남자, 자립할 수 있는 남자, 의지 하지 않는 여자등 진정한 연애를 할 수 있는 덕목에 대한 여러가지 주제를 거침없이, 약간은 비관적으로 이야기한다. 때로는 일본 전후 사회와 거품 경제 붕괴 전후의 모습들을 이야기하며 앞으로 벌어질 가까운 미래에 대해서 점쳐보기도 하는데, 정말 고개가 끄덕일정도로 시원시원하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 놓는다.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류는 정말 이 책에서 말하는 국제 경쟁력이 있는 남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젊은 나이에 성공적으로 등단하고 작품 활동 틈틈이 스포츠 경기를 취재하러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그는 아직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창작활동으로 팬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진정 산 정상에 오른 자 만이 그 경치를 논할 수 있다.' 라는 말이 생각나는 그의 당당한 이야기에 우리 젊은이들도 귀 기울여 보는게 어떨지? 주변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옛날이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전부 늙은이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젊은 사람들은 옛날을 모르기 때문이다. '옛날이 좋았어.' 라고 해도 젊은이들은 난처해진다. 지금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서 늙은이들은 옛날이 좋았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니 늙은이 가운데에도 옛날이 좋았다는 등의 바보 같은 소리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옛날이 좋았다고 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시원찮은 인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사람들의 말은 듣지 않도록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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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거짓말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연애... 마치 연애에 관한 얘기인것처럼 제목을 붙여 놓았지만 사실은 생존하는 방법, 좀 가볍게 말하자면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주제이다. 단지 성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이리보고 저리보게 되는 류와 하루키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것은 그렇다.
내 자신이 낙관적일때는 하루키쪽이 좋다. 그러나 좋지 않은 상황을 인식하고 이른바 현실적이 되었을 때는 하루키는 뜬구름 잡는 듯한 희망을 주고 있다는 생각에 거부하게 되고 류의 사진이 눈에 박힌다. 그 뭔가를 꿰뚫어 볼 것 같은 눈이. 이 책은 젊은이라면 반드시라고는 할 수 없어도 읽어봐서 나쁠 것 없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마음은 더 강력하게 추천하고 있다.) 그렇다. 진짜 연애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상깊은구절] 서른이나 마흔 살 연상인 아저씨하고 돈이 얽힌 섹스를 원하는 여자란 대체 어떤 여자일까? 아마 자기 평가가 낮고, 머리도 나쁜 여자일 것이다. 즉, 정말로 불싸안 여자인 것이다. 그런 여자는 앞으로도 늘어갈 것이다. 균일적인 평등 사회가 붕괴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엇비슷하다는 의식은 점차 사라지고, 일본인은 점점 더 쓸쓸함을 느끼게 된다. 섹스밖에 '팔 것'이 없는 여자도 늘어간다. 그런 여자한테 속는 외로운 남자도 늘어간다. 당연히 익명의 밀고도 늘어간다. 매스컴은 점점 더 스캔들을 팔아먹는다. 남의 불행에서 기쁨을 얻는 일본인도 계속 늘어갈 것이다. 글쎄, 남의 일은 내버려 두자. 내 일과 극히 친한 인간 관계를 충실한 것으로 만들기로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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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를 대가라고 보아야 할까, 그럴 듯한 내용으로 독자를 현혹시키는 재주만 남다른 궤변가라고 보아야 할까.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생각이다. 연애상담을 계기로, 이런 저런 단상을 모아 엮은 이 수필집에서는 그런 의문이 한층 더해진다. 젊은 일본 여성들의 연애 문제 상담이 이 책을 엮게 된 계기라지만, 무라카미 류의 단상들은 일반적으로 요청되는 '달콤한 거짓말들'과는 거리가 있다. 연애 문제라는 주제조차 뛰어넘어 정치, 사회, 문화, 경제, 철학, 과학에 대한 담론까지 종횡무진이다. 그런 가운데 류의 메시지는 간단명료하게 드러난다 - 너 자신이 되어라. 대중적 연애라는 환상에 도취되지 말고, 어떤 주어진 틀에 안주하지도 말고, 스스로 서라.
무라카미 류가 연애에 대해 가장 못견뎌하는 것은 통속성이며, 류는 그 통속성을 초월해 연애의 본질(그가 생각하는)로 다가갈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딜런 토머스가 말한 생명의 힘처럼 자신을 충실하게 하고, 삶의 활력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기회다. 단순한 성욕이나 대리 만족, 싸구려 로맨스 따위는 한 푼 어치 가치도 없는 것들이다. 사랑을 하고 싶은가? 그럼 먼저 인간이 되어라! 현모양처가 되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쓰레기 같은 여자로군! 자기 적성을 찾고 능력을 개발하는 게 먼저다!
통속성에 대한 류의 혐오는 대중적 연애를 넘어 일본 사회의 '대중 시스템'에게도 향한다. 남들처럼 생각해라, 남들처럼 행동해라, 공부해서 출세해라, 결혼해서 아이를 길러라.... 그는 일본의 개인주의니 자유주의니 하는 것들은 외피에 지나지 않으며, 진정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 되려는 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사슬이 채워져 있다고 비판한다. 얼마 전 한 유명한 일본의 테크노크라트가 미국으로 망명하며 "연공서열이나 따지는 일본에는 비전이 없다"고 비판, 일본사회가 한창 떠들썩했던 일이 있었다. 이 책은 그 일이 있기 전에 나온 것이지만, 아마도 류는 철두철미 맞는 말이라고 박수를 쳤을 것이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능력에 맞게 대우해야 한다. 이제까지 집단과 인화를 우선하던 방식은 시대에 뒤졌다. 이제 소수의 엘리트는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고 다수는 별볼일 없는 인생을 살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윤리적으로 잘못이 없고, 돌이킬 수도 없다....
그러나 누구나 태어나면서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되는 마당에 인위적인 부와 권력의 조정을 비합리적이라고 매도하는 것이 과연 인간 본질에 합당한 일일까? 집단과 형평을 중시하던 전통적 가치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일까? 대체로 부와 명예를 획득한 기득권층과, 자유분방한 예술가들이 집단이니 통제니 하는 것에 가장 회의적이다. 류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춘 사람이다. 그런 그가 특별한 자기 반성이나 깊은 사색 없이,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말하고 있는 듯한 내용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뭔가 교훈을 줄 수 있을까?
적어도, 사랑에 상처입고 번민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진정 바라는 것이 아무리 달콤한 거짓말에 불과할지라도. 인간이 어찌 매 시간마다 진실만을 갖고 위안을 얻을 수 있으랴. 더구나, 그것이 선글라스를 끼고 해변에서 선탠을 하는 사람이 말하는 진실이라면. [인상깊은구절] 어른들은 젊은 사람들을 내버려 두면 되는 것이다. 아버지 사냥이나 스토킹을 당하지 않도록 자기 방어를 하고, 학교에서 일어나는 이지메 같은 것도 내버려 둔다. 모두가 자기 일만, 자기 가족만, 그리고 자기에게 소중한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 초등학생은 중학생한테 살해당하지 않게 위기감을 갖고 살게 한다. 모르는 사람은 일단 절대로 믿지 않도록 한다. 자기만이라도 어떻게든 충실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한다. 학교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에게는 "안 가도 된다"라고 말해 준다. 여자들은 결코 신통치 않은 남자들을 동정하지 않도록 한다.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새로운 계급 사회가 찾아온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 훈련을 아무 것도 받지 않는 사람, 기술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 커넥션이 전혀 없는 사람, 추한 사람, 재능이 없는 사람, 머리가 나쁜 사람, 그런 사람들은 최저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연애를 할 수 있는 사람도 한정될 것이다. 나는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 제목이 주는 첫인상처럼 편히 쉬고 싶었던 주말, 휴식을 위한 소프트한 에세이는 아니다. 이 책에 달콤한 거짓만들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반어법과 조롱이 뒤섞인 듯한 원제 '누구나 할 수 있는 연애'가 더 어울리는 듯 하다. 모두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 연애에 관한 냉정하고 현실적인 관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마치 부모님이나 인생선배들이 '그 사람은 너와 레벨이 안 맞아''사랑은 동정이 아니야' 따위의 충고를 하는 듯 하다. 아직 학생인 입장에서 이 책을 읽으니 'xxx의 성공법'류의 책보다 더 자기자신을 열심히 경영해야 겠다는 긴장감이 든다. 각 장마다 다른 스토리를 시작하면서도 항상 결론은 스스로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하며, 의존적이고 약한 성격, 자립하지 못한 무능력한 상태로는 다른 사람을 상대로 사랑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심적, 물적으로 튼튼해진 사람이 멋진 연애, 안정된 연애를 할 가능성이 많고 서로가 만족스럽고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건 불완전한 서로가 만나 도움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나가는 시너지 효과도 있다고 본다. 작가에 대한 자세한 지식은 없지만 그 관점이 마음에 들지 않음에도 작가의 직설적인 어투와 냉소적인 세계관, 분명한 논리가 멋져보여,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사랑이란 연애란 이런 것이다, 라는 결론을 한마디로 낼 수 없는 것처럼 TV나 로맨스 소설류의 현실성없는 스토리에 빠져있다면 한 번쯤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이 에세이도 시선의 폭을 넓히는데 좋을 듯 하다. |
| 나는 애정 결핍증이다. 해질 무렵의 외로운 느낌이 싫어서 “사랑”이란 관념을 화두삼아 신봉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사랑 어쩌구 저쩌구”하는 책 2권을 내리 읽게 되었다. “사랑에 관한 짧은 기억”과 “사랑에 관한 달콤한 거짓말”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다 보면 인터넷 서점에서 사랑이란 단어로 검색되는 모든 책을 사버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그저 가벼운 글들을 담고 있진 않다. 무라카미 류의 연애론이라 말할 수도 있고, 연애란 사회현상에 대한 비평서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걸 다 읽고 나니 지난 번 포기해버린 쥴리아 크리스테바의 “사랑의 역사”를 읽어 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불쑥 들게도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여하튼 류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연애 같은 건 없다. 남자이건 여자이건 마찬가지다. 위험을 부담할 수 있는 인간, 즉 홀로 설 수 있는 남녀에게만 연애를 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라고 단언하면서, 상업주의에 이용되고 있는 우리의 연애에 대한 환상들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삶의 일상 속에서 연애란 관념이 제대로 자리매김하기엔 역시 경제력이 우선한다고.. 연애에 앞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관계성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선 자신의 일상을 사랑하고 재미있는 일들이 많아야 한다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커다란 시스템의 부품으로 살아가길 그만두라고 한다.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만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길이라고.. 결국 연애라는 허상에 이끌려 자신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술이나 퍼마시며 신세 한탄하는 바보 같은 짓거리는 그만두라는 얘기다. 요즘엔 멋진 남자보다 멋진 여자가 많은 시대가 되어버려 연애하기가 쉽진 않아졌다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멋진 여자들과 연애할 기회도 더 많아졌다는 희소식으로 들리기도 하는 건 왜 일까? 하여튼 삶을 살아가면서 사랑이란 환상을 연애라는 꿈을 저버리기란 쉽지 않은 것이고, 이것이 현실속에 녹아 자연스럽게 스며들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사랑"에 대한 몇몇 글을 인용해보면하면..."서로 미쳐버리는 것을 사랑의 증거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던가를 입증 하는 것일 뿐이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상상의 날개에 편승한 찬란한 오해다. "나는 당신을 죽도록 사랑합니다."라는 말의 정체는 "나는 당신을 죽도록 오해합니다"일 것이다." -법정 "무소유"- |
| 결론은 이미 다 나와있는 것을, 무라까미 류씨는 했던 말을 또 하시고 했던 말을 또 하시고 그러신다 이 책을 통해서 그의 말은 홀로 당당하게 선 사람에게 가능한 것이 연애라는 말. 그 어쩔 수 없이 당연한 말이 그의 이 책을 통해서는 너무나 자주 반복되어 마치 이 책을 다 읽고 다면 쇠뇌라도 되는 듯한 느낌이다. 뭐 지당한 말이기 때문에 자꾸 반복되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 문장이 연예의 기본 법칙이라는 것이 조금은 단조로운 느낌이다.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인간 관계를 가지고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다양성의 기본에 개인의 의미가 들어가 있곤 한데 그 의미가 자립성일 수도 있지만 많은 이들은 의존을 하기도 하고 남의 의존을 받아들이기도 하지 않는기? 의존한다는 것이 그리 죄의 덕목처럼 한 개인을 무너트리는 최고의 덕목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자본주의가 개인의 능력을 돈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자립이란 의미가 경제적인 자립이며 그것이 완성되었을 때 연애도 개인적인 독립도 가능하다. 아마도 아주 많이 그런 면이 없지 않다. 아니 그게 현실이다. 하지만 아주 많은 이들이 현실감각만으로 연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무직자도 많은 이성 친구들을 두고 있고, 이 무직자들은 유직자들에게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인생의 가치를 주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현실과 이 이성의 다른 하나를 통해 하나로 결론 내릴 수 없는 다른 하나 사랑은 그 오묘한 현실과 감정의 시이소를 타고 중심을 잡는 것, 그리고 단순한 자립으로 표현 할 수 없는 그 어떤 각각의 이유들이 있을 것 같다. 마치 연애를 하듯 아무 생각없이 손이 움직이는 대로 써 보는 독서 감상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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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정말 알기 힘든 족속들이다. 단순히, 사회가 복잡해져서 그렇다고 위안하기에는 너무나 미흡하다. 그러한 현대인들의 모습들이 특히 일본인들의 모습들이 이 책에 무수히 등장한다. 보험금 때문에 일어난 신흥 주택지의 카레라이스 독극물 주입 사건과 편의점의 우롱차 독약 주입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 고베의 살인 사건을 일으킨 14살짜리 중학생에 이르기까지.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이 세태를 고발하는 작가까지도 아무런 대안책 없이 그냥 주저리 주저리 끔찍함에 대해 적고만 있다.
대신 여행지에서 묵었던 별 몇 개의 호텔, 유명한 누군가가 묵었던 방, 어떤 나라의, 지방의, 어떤 전통음식과 어떤 와인 등은 일본인 작가에게 있어서 너무나 소중한 기억들이다. 그런 끔찍한 사건이 연일 아무렇지도 않게 보도되는 나라에서 살아서 그런 것일까? 무국적주의자의 냄새가 뻔하다.
문장 곳곳에 영어단어를 이용해 사회 현상들에 대한 정의를 내려놓은 태도 또한 작가의 국적을 의심케 한다. 물론 지구촌 시대에 살면서 촌스럽게 '무조건 우리 나라 최고!'를 외치자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그러한 구호는 인기를 얻기 힘들다.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성공도 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닌가. 더군다가 그의 소설 중 한 작품은 우리 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남자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여자를 꼬시는(?) 내용의 CF에도 등장할 정도니.
저자는 일본 사회의 문제성을 제시만 하고 두 손 든다. 아예 '해결방법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그저 돈이 얽힌 섹스를 하는 여자들만 한껏 탓하는 수준에서 멈추고 마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톱니바퀴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왜? 그저 아름다운 외국에서의 몽롱한 기억들만이 위안을 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끝에는 여느 책들이 그러하듯 관용을 베풀며 쓴다.
"글세, 남의 일은 내버려두자. 내 일과 극히 친한 인간 관계를 충실한 것으로 만들기로 하자."
독자는 이 책의 제목이 왜 '사랑에 관한 달콤한 거짓말들'인지 쉽게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인상깊은구절] 최근 몇 년 동안 무척 어두운 사건만 일어나고 있는 셈인데, 그에 대한 미디어의 반응은 기본적으로 '무엇인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뭐가 잘못된 것일까? 왜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 것일까? 왜 여고생들이 원조 교제, 매춘 따위를 하는 것일까? 왜 젊은이들이 오야지가리(중년층의 무기력해 보이는 남자들에게 소년들이 폭력을 휘두르거나 금품을 갈취하는 것)같은 짓을 하는 것일까? 어째서 학교에 안 가는 등교 거부아가 십만 명이나 될까? 왜 그렇게 생활 수준이 높고 학력도 좋은 사람들이 옴 진리교 따위 우스꽝스러운 신흥 종교에 현혹되는 것일까? 어째서 중학생이 초등학생을 죽이고 목을 자르는 것일까?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 p.56 위기감을 안 느끼는 젊은 녀석들은 반성 같은 것을 전혀 안 해서 괘씸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분명히 젊은 사람은 위기감 같은 것을 안 느끼는 것 같다. 잡지 가운데서 위기를 호소하는 십대의 투고가는 없다. 생각해 보면 젊은 사람들은 옛날을 모르니까 지금 뭐가 어떻게 이상한지 생각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틀림없이 그들은 '이런 것이 정상이다'고 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