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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이 모여 소중한 인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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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의 삶이 다양하다는 것을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느낀다. 그들이 살아가는 무수한 삶들이 작은 이야기로 모여 조각이 되고, 연륜이 되며 인생이 됨을 살펴보게 된다. 책은 희로애락이 명멸하는 가운데 가족을 이루고 서로 의지하면서 한 사람의 인생이 이루어져 감을 알게 한다. 가만히 생각하면 우리들의 삶도 별로 다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이야기 속의 인생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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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의 삶이 다양하다는 것을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느낀다. 그들이 살아가는 무수한 삶들이 작은 이야기로 모여 조각이 되고, 연륜이 되며 인생이 됨을 살펴보게 된다. 책은 희로애락이 명멸하는 가운데 가족을 이루고 서로 의지하면서 한 사람의 인생이 이루어져 감을 알게 한다. 가만히 생각하면 우리들의 삶도 별로 다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이야기 속의 인생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목처럼 ‘사소한 것들’이라 명명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결국은 생활이고, 삶의 이유며, 가치로까지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저자는 다작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긴 호흡의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작은 이야기 속에 삶을 녹여 낸다. 그의 언어와 이야기는 섬광처럼 반짝이는 빛을 보여주는 예리함이 있지 않나 한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삶의 조각들을 가지고 선택과 결단으로 선의의 삶을 추구해 나가는 모습이 반딧불처럼 우리들의 뇌리에 반짝임으로 다가온다. 그의 심리는 인물들을 통해 따뜻하며 긍정적이고, 화사하게 우리들에게 전해져 온다. 언어들이 유아기의 고향집을 연상하게 하고 깊이 내면화하며 빠져들게 한다.



화려한 문체나 거창한 배경들이 그의 이야기를 이끌어가지 않는다. 언어들은 흔히 우리들의 일상을 보는 듯 평범하다. 그러기에 동질성을 느끼며 인물들의 심리 속에 빠져들고 진지하게 삶의 문제를 궁구해 보게 된다. 간명하고 말끔한 표현이 인물들에게 쉽게 다가가도록 만든다. 또한 그들의 심리를 쉽게 공감하게 만든다. 우리가 늘 만나고. 살고. 부대끼며. 기억하던 것들이니까? 이 글의 인물 펄롱은 특별한 인물이 아니다. 시골에서 가난한 하인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녀가 없는 주인의 배려로 그 집에서 운 좋게 성장한다. 주인은 자신의 자식인 양 펄롱이 자라게 하고 여러 혜택도 준다. 그것이 성장한 펄롱의 인격에도 많은 영향으로 작용한다. 선의를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마음이 기본이 되는 삶을 살게 된다.



펄롱은 자녀들을 여럿 두고 있다.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생활을 잘 한다. 건강하게 어려움을 겪지 않고 성장을 해나간다. 다복한 일상의 가정 모습을 보인다. 이 모든 것이 어릴 적 돌봐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것들이 이웃들과의 나눔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가정에서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아이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마음도 보인다. 따뜻함과 무난함의 삶을 이뤄가고 있는 게다. 소시민들의 행복을 느끼는 가정을 이루어가면서 마을의 일원이 된다. 그런 삶에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바른 사회가 무엇인가? 그 사회를 위해서 자신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걱정에 사로잡하는 일이다.



한 번은 펄롱은 자신이 취급하는 물건을 전해 주기 위해 수녀원으로 간다. 그곳애서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펄롱은 한 소녀를 만난다. 소녀는 통제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소녀의 눈빛은 간절하게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일하고 있는 소녀, 행동에 제약을 받고 있는 소녀, 펄롱은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보호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성장할 때 주변에서 보호를 받음으로 지금 이렇게 다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가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그 소녀를 그냥 두게 하지 않는다. 결국 필롱은 아이들 데리고 수녀원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것이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라는 것은 잘 안다. 뒤에 어떠한 위험이 따를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냥 둘 수 없다는 건강한 마음이 작용하고 실행에 옮긴다.



어느 정도 세상을 걸어가다 보면 정지해 있는 듯한 때도 있다. 요즘 내 삶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게 그렇게 멈춰 있는 듯함을 느낀다. 하는 일은 없고, 시간은 흘러가고, 그리 자꾸만 비워진 마음의 공간을 만날 때가 많다. 어떤 일에 몰두하다가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가도 감짝 놀라 자신을 돌아볼 때가 있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자문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내 걸음의 안타까움이다. 이런 속에서 책의 이야기가 나에게 다가왔고 가볍게 읽으면서 삶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래, 삶은 순간순간이 생활을 찾고,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가지면 되는 거다. 거기서 보람을 만날 수 있다. 보람이란 것은 삶의 가장 보배로운 열매가 아닐까? 삶에서 깊이 모를 아득한 심연에 헤매는 것은 사치가 되는 게다. 일상에서 기쁨을 찾고 보람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이 책의 이야기를 통해 삶을 숙고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기꺼웠다.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멀리 가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시내에서 시 외곽에서 운 없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 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고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해 창고보다도 추운 집에서 지내며 외투를 입고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자들은 매달 첫째 금요일에 아동수당을 받으려고 장바구니를 들고 우체국에 줄을 섰다. 시골로 가면 젖을 짜달라고 우는 젖소들이 있었다. p23



1980년대의 실상이 잘 드러나 있다. 어려운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은 아픔이다. 이 아픔을 그냥 바라보느냐 관여를 하느냐는 사회의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이 어려운 일에는 대부분 관여를 하지 않는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의 현상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혼자서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자꾸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걱정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써지는 일이다. 그런 일을 외면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돕고 의지할 때 문제가 해결을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게다.



아내 아일린은 더욱 평범하다. 가족들이 무사하고 걱정 없이 살면 그것이 행복이다. 이웃과도 무난한 관계를 선호한다. 가족의 삶에 문제가 될 만한 일은 만들지 않기를 원한다. 남편과 만나 살면서 세상의 어느 주부처럼 가정을 지키며 아이들의 성장에 행복을 느끼는 생활을 해나간다.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인 사람이다. 그러기에 남편이 무슨 거창한 도의나 정의를 추구하는 것을 힘들어 한다. 펄롱이 소녀를 구하는 일은 아내 아일린에게도 충격적인 일이 될 게다. 소시민들의 삶이 거의 그렇지 않을까 여겨진다.

하지만 필롱은 조금 다르다. 펄롱의 지금의 건강한 삶이 이웃의 도움으로 이루어졌고 그것을 펄롱은 잊지 못한다. 만일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는 어떻게 성장했을까? 펄롱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글 속의 소녀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불의라고 여기는 일에 자신이 맞서 싸우지 않으면 소녀의 내일이 어떻게 될지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것이 거대한 세력인 종교 집단이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소녀를 빼내게 되는 상황을 만든다. 그 결과보다는 그런 도우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저자는 그런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건강한 의식과 행동을 바라고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당시의 사회에 만연했던 개인주의와 권위주의에 의한 개인의 인권 침탈을 아프게 인식하고 해결책을 모색해본 이야기가 아닌가 여겨진다. 나는 어려운 가운데 내리는 건강한 삶의 길을 응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짧은 글속에, 사소한 이야기 안에 묵직한 의미가 담겨있다. 그것을 진한 다툼으로 문제를 격하게 만들어 가지 않는다. 정의를 추구하고 선의를 찾는 삶을 내어줄 뿐이다. 길거리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문화적인, 바람직한 삶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쉬운 언어와 일상의 생활을 통해 넌지시 던지는 메시지는 이 이야기가 건네는 세상에 대한 참된 악수가 아닐까? 난 주인공 인물의 따뜻한 손을 만지며 글을 단숨에 읽었다. 마음에 넉넉하게 차오르는 것이 있었다. 삶을 궁구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었다.

j****3 2024.08.10. 신고 공감 65 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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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고 투명한 경계를 허무는 힘
"얇고 투명한 경계를 허무는 힘" 내용보기
짧은 중편소설이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결말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무척 은유적이다. 처음 읽을 때 어떤 결핍 같은 것, 알 수 없는 불편함이 계속 맴돈다. 문장이 간결해서 편하게 읽었지만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옮긴이의 후기를 읽고 조금 이해했다.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 번역의 뉘앙스를 설명했다고 한다.) 클레어 키건은 절제력이 대단하다. 꽉 채워 설명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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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중편소설이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결말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무척 은유적이다. 처음 읽을 때 어떤 결핍 같은 것, 알 수 없는 불편함이 계속 맴돈다. 문장이 간결해서 편하게 읽었지만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옮긴이의 후기를 읽고 조금 이해했다.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 번역의 뉘앙스를 설명했다고 한다.)

클레어 키건은 절제력이 대단하다. 꽉 채워 설명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 독자를 무척 신뢰하는 듯하다. 스스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사건을 있는 그대로 심심하게 보여주고 있으나,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생각을 통해 여러 가지를 암시한다. (작가가 직접 밝혔듯이) 배경묘사도 은유적으로 활용한다. 한번 읽어서 모두 파악하기는 힘들다. 두 번 세 번 읽을 때 알아챌 수 있을 것들도 많다. 짧은 소설이라 여러 번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체는 건조하고, 묘사는 화려하지 않다. 중천의 태양에도 어슴푸레한 1980년대 아일랜드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펄롱의 태생과 어린 시절은 당시 아일랜드의 상황을 닮았다.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움. 미래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벗어나 현재의 펄롱이 있기까지 지탱해 준 것은 주위의 “사소한" 배려와 구원이었다. 마지막 순간 그가 ‘그처럼 사소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심연에는- 스스로 확신하지는 못했지만-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그들의' 배려와 사랑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역사는 불연속 한 결정들의 총합이다. 각각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마치 대단한 것처럼 보인다. 의도적으로 과도한 서사가 개입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정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고뇌에 찬 결단은 인생에서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 결단도 사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인간의 결단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책의 뒷면에 (광고문구처럼) 적힌 거창한 설명이 거슬린다.
‘수월한 침묵과 자멸적 용기의 갈림길, 그 앞에 움츠러든 한 소시민을 둘러싼 세계’
클레어 키건은 이 평가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 같다. 펄롱의 결정을 '고뇌하는 영웅의 서사'로 그리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침묵과 용기의 경계면은 두께가 없고 투명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펄롱이 아니라 누구라도 세라의 손을 잡아 줄 수 있었다는 말이 하고 싶었을 것이다. 선과 악의 갈림길에 선 소시민의 고뇌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면 누구라도 가지고 있는 내면의 허물어야 할 ‘경계’를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죽음과 삶, 절망과 희망, 좌절과 용기… 같은 얇고 투명한 경계면.





 



 

s****e 2023.12.14. 신고 공감 5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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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작은 것들의 선 -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올해의 책] 작은 것들의 선 -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내용보기
작은 것들의 선<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선선’한 바람이 몹시 그리운 여름에 만난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내 마음 한 편에 선(線), 선(善)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석탄과 장작은 주인공 빌 펄롱의 밥줄이자 타인에게 온기를 전하는 매개체이다. 두 사물이 한 자루의 연필로 변하여 펄롱의 손에 쥐어진 모습을 상상해본다. 어린 나이의 어머니와 누군지 모르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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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선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선선’한 바람이 몹시 그리운 여름에 만난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내 마음 한 편에 선(線), 선(善)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석탄과 장작은 주인공 빌 펄롱의 밥줄이자 타인에게 온기를 전하는 매개체이다. 두 사물이 한 자루의 연필로 변하여 펄롱의 손에 쥐어진 모습을 상상해본다. 어린 나이의 어머니와 누군지 모르는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가 인생의 출발점을 찍은 뒤부터 마흔 가까이에 이르기까지 그어온 선을 되돌아본다. 모난 데 없이 둥글게 그려진 테두리 안에서 아내와 딸들이, 그 바깥에서 이웃들이 그린 원과 거리를 좁혔다 넓혔다 하며 살아온 그는 이미 선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흔을 넘어선 나 역시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무탈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이따금 이유 모를 불안감에 스스로 금을 긋고 상대를 경계하거나 갈등을 짐짓 모른 척 지나칠 때가 있다. 마치 그동안 선을 그리던 연필심(心)이 뚝 부러지며 검은 가루를 쏟아내듯, 마흔을 앞둔 펄롱을 멈춰 세워 삶의 의미란 무엇인지 묻게 만드는 일이 생긴다. 바로 펄롱과 대척점에 우뚝 서서 그를 포함한 마을의 대소사에 공공연하게 관여하며 권력을 행사하는 수녀원, 그곳에서 비참하고 끔찍한 생활을 하는 소녀들을 직접 목격한 것이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며 선을 긋는 아내 아일린과, 수녀원과 등져서 좋을 게 없다며 선을 넘지 말라는 식당 주인 미시즈 케호의 말은 어쩌면 펄롱에게 선(善)을 향한 한계선(線)과 다를 바 없지 않았을까. 그 선을 넘지 못한 펄롱은 수녀원에 갇힌 소녀를 남겨둔 채 미사를 보러 간 자신을 위선자라며 책망한다. 특히, 당시 아일랜드 사회에서 여성 교화라는 공동의 선을 위한다는 명목 혹은 종교적 신념 아래 위선(僞善)을 행하는 수녀원의 모습을 보면서 단지 수녀원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묵인하고 외면한 마을 사람들 또한 수녀원의 담장을 더욱더 공고하게 만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대체로 가정, 학교, 직장 등 크고 작은 사회에 속한 개개인은 평등과 공존을 추구하며 서로 사랑과 공감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길 바란다. 그러나 서서히 혹은 급작스레 그 관계의 균형이 깨지면 어딘가에 숨어있던 권력과 위계가 고개 들어 차별과 폭력을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게 하는데, 이런 현실을 단순히 개인의 운이나 능력으로 치부하는 건 또 다른 차별과 폭력이 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 펄롱마저도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각자가 그린 사선(斜線) 위에서 부조리를 그저 바라보거나 애써 회피해왔음을 지켜보는 나 또한 내적 친밀감 아니, 불편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 펄롱은 태어나 지금까지 겪은 사소한 것들에 관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비스듬하게 비껴 그은 줄을 다시 그음으로써 자신 앞의 부당함에 맞서고자 결심한다. 그와 어머니를 보살펴 준 미시즈 윌슨과 네드 아저씨로부터 친절, 배려, 돌봄의 가치를 배웠고, 훗날 아내와 결혼해 아이들을 키우거나 다른 사람들과 일하는 일상의 순간마다 그 가치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비로소 깨닫는다. 반면, 수녀원장이 소녀가 석탄광에 갇힌 사건을 놓고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대목은 펄롱이 이야기하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즉 수녀원에 ‘맡겨진’ 소녀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것들이 곧 생존과 삶의 질에 작고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대비하여 보여준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구(求)하고 있던 펄롱은 자기 마음속에 간직해둔 성냥에 '자신이 구(救)하려는 소녀가 과거의 어머니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불을 댕겨 자기만의 최선(最善)에 한 발 더 다가선다. 선(線)은 무수히 많고 작은 점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선, 개인을 점으로 각각 비유하자면 개인의 인생마다 고유한 시작과 끝이 있을 테고, 각자 때맞춰 점을 찍고 또 다른 목표점을 향해 출발할 것이다. 때로 분기점에서 자의 또는 타의에 따라 경로를 이탈하거나 아예 새로운 길을 선택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나의 선(線)과 당신의 선이 만나고 쌓이는 과정에서 나의 선(善)과 당신의 선도 그 더께를 더해 갈 것이라 믿기에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가 살만한,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꾸는 게 아닐까.
  세상은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으로 나아간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개인의 삶은 사회적 통념이나 시스템과 같은 ‘큰 것’에 의해 정해지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작은’ 선한 행위가 상호작용하면서 가꿔나가는 것임을 펄롱이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주위의 압박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불안감과 동시에 기대감을 안고서 선을 넘으며 그가 했던 말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고,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아서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고. 펄롱이 지나간 실선이 전보다 더 굵게 보이는 건, 아마 다음으로 실선을 넘어 실천에 옮길 사람을 인도하고, 이미 같은 길을 걸어 간 사람들의 눈길이 포개어진 까닭이리라. 
 
k*****o 2024.12.21. 신고 공감 39 댓글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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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 이 책을 몇 번이나 읽게 될까
"나는 앞으로 이 책을 몇 번이나 읽게 될까 " 내용보기
<맡겨진 소녀>로 클레어 키건을 처음 알았다. 영화 <말없는 소녀>를 GV에서 보고 집에 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바로 샀다. 보통 책 다음 영화를 보게 되지, 영화를 본 다음 책을 읽는 일은 드물었다. 이미 내용을 다 아는 책을 뭐 하러 다시 읽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이 반드시 맞지는 않다는 것을 그 책을 통해 알았다.<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키건이 10여 년 만에 쓴 소설
"나는 앞으로 이 책을 몇 번이나 읽게 될까 " 내용보기
<맡겨진 소녀>로 클레어 키건을 처음 알았다. 영화 <말없는 소녀>를 GV에서 보고 집에 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바로 샀다. 보통 책 다음 영화를 보게 되지, 영화를 본 다음 책을 읽는 일은 드물었다. 이미 내용을 다 아는 책을 뭐 하러 다시 읽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이 반드시 맞지는 않다는 것을 그 책을 통해 알았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키건이 10여 년 만에 쓴 소설이라고 한다. 이런 작가가 이처럼 띄엄띄엄 적게 책을 낸다는 건 독자로서 매우 속상한 일이다. 게다가 이처럼 짧게 내는 것도 역시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 정도 밀도로 꽉 채워 써내는 키건에게 다른 작가처럼 3, 400쪽짜리 책을 써내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신형철 평론가의 추천사처럼 나도 이 분량에 불만이 없다. 오히려 키건의 소설이 이보다 두껍다면 읽다가 숨이 차서 나가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에 대한 소설인가 싶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이야기의 배경으로서 작동할 뿐, 어느 시대와 어느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 한 소시민의 이야기다. 어느 맥락에서 나는 펄롱이었고 어느 맥락에서는 아일린이었다. 소설 마지막의 펄롱일 수도 있을까? 그렇게 될 자신은 없으나 최소한 그러지 못하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할 줄은 알았으면 좋겠다.
읽어본 책이 늘어나고 서가의 책이 쌓여갈수록 생각하게 된다. 언젠가 나중에는 정말 좋아하는 50권 정도만 남겨놓고 모조리 버린 뒤에, 남은 책만 평생 반복해서 읽고 싶다고. 이 소설은 그 50권, 아니 30권이 되더라도 그 안에 남겨야 할 책이다.
주문하고 이 책을 받고 일주일이 지났고 지금껏 두 번을 읽었다. 두 번째로 읽으면서도 이 책을 세 번, 네 번 읽게 될 것임을 짐작했다. 살면서 이 책을 몇 번이나 읽게 될지 궁금하다.
s*****h 2023.12.01. 신고 공감 3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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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을 걷다 - 클레어 키건
"푸른 들판을 걷다 - 클레어 키건" 내용보기
2024. 12월의 다섯 번째 클레어 키건 "푸른 들판을 걷다" ☆☆☆☆☆ 올해 책읽기의 큰 수확중 하나가 바로 '클레이 키건'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이다. <맡겨진 소녀> 로 작가를 만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통해 더욱 가까이 하게 되었고, 소설집 <푸른 들판을 걷다> 로 작가의 세계관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그녀의 글은, 문장은 길지 않다.많은 꾸임과 멋스러운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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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2월의 다섯 번째
클레어 키건 "푸른 들판을 걷다"
☆☆☆☆☆
올해 책읽기의 큰 수확중 하나가 바로 '클레이 키건'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이다. <맡겨진 소녀> 로 작가를 만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통해 더욱 가까이 하게 되었고, 소설집 <푸른 들판을 걷다> 로 작가의 세계관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그녀의 글은, 문장은 길지 않다.많은 꾸임과 멋스러운 문장이 아니라 탁탁 끊어지는 듯한 짧은 문장들이 모여 장면을 떠 오르게하고 그 장면은 인물들을 생각하게 하고 그 삶이 나의 감정들과 동화된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의 강렬함을 표현할 때 긴 이야기로는 그 강렬함을 줄 수 없어 짧은 글을 쓴다는 그녀의 말에 공감한다. 장편을 읽는 것 보다 단편을 읽을 때는 그 이야기의 밀도에 좀 더 집중하게 되는데 작가의 이러한 의도때문인 듯 하다.
이전의 소설들도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었음을, 그리고 주변의 서사나 묘사보다는 인물들의 내면이나 감정에 집중된 이야기였음을 기억해 본다.
이 소설집에는 7편의 작품이 있는데 작품속의 인물들은 아일랜드의 현실을 볼 수 있게 해 준다.시골이라는 보수적인 공간속에서의 농부와 가족들(남편, 아내, 아이들이라는 가족 구성원의 부당한 관계), 사제와 연인, 동화될 수 없는 부자간의 관계 등 그리 편치 않은 현실들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러한 그들이 그 안에서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걸어 나오라고 팔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해 주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작가의 부축을 받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그들에게 안도의 미소를 띄워주고 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소설에 깊은 감명을 받은 배우 킬리언 머피가 제작에 참여해 주연까지 한 영화. 과연 이 소설이 어떻게 영화로 표현이 되었을까 너무 궁금하다. 영화로 만나게 되는 킬리언 머피의 필롱이 기대된다.
'어떻게 보면 대화의 목적은 스스로 이미 아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모든 대화에 보이지 않는 그릇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야기란 그 그릇에 괜찮은 말을 넣고 다른 말을 꺼내 가는 기술이었다. 사랑이 넘치는 대화를 나누면 더없이 따스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고, 결국 그릇은 다시 텅 빈다. 그녀는 인간 혼자서는 스스로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사랑을 나누는 행위 너머에 진짜 앎이 있다고 믿었다. (푸른 들판을 걷다 中) p. 61'
'이미 일어난 과거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였다. 과거는 곧잘 배신을 했고, 천천히 움직였다. 자기만의 속도로 결국은 현재를 따라잡을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뭘 할 수 있을까? 후회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고 슬픔은 과거를 다시 불러올 뿐이었다.('퀴큰 나무 숲의 밤' 中에서) p. 196'
#클레어키건 #푸른들판을걷다 #다산책방 #소설집 #clairekeegan #WalktheBlueFields #책읽기 #북스타그램
YES마니아 : 플래티넘 n******m 2024.12.30. 신고 공감 26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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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축의 이미지가 긴장과 완성도를 높이는 놀라운 성장 소설 - 클레이 키건의 <맡겨진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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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 클레이 키건한줄평 : 함축과 축약의 이미지가 긴장과 완성도를 높이는 놀라운 성장 소설 저자가 '긴 단편 소설'이라고 말하는 단편과 중편 사이에 있는 짧은 소설이다. 양장본으로 책이 만들어졌지만 우리나라 책으로도 100쪽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야기를 구성하는 시간과 공간도 매우 한정적이고 짧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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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 클레이 키건

한줄평 : 함축과 축약의 이미지가 긴장과 완성도를 높이는 놀라운 성장 소설 저자가 '긴 단편 소설'이라고 말하는 단편과 중편 사이에 있는 짧은 소설이다. 양장본으로 책이 만들어졌지만 우리나라 책으로도 100쪽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야기를 구성하는 시간과 공간도 매우 한정적이고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쉽게 읽어 내려가기가 어렵다. 작가가 '애쓴 흔적을 들어내는 데 많은 공'을 들인 작품이기에 우리는 읽으면서 단어가 주는 느낌과 이미지에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서사를 중심으로 읽어간다면 이 책은 두어 시간이면 후루룩 다 읽어낼 만한 수준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읽어보면 알 수 있듯 이 책은 그렇게 읽을 수가 없고 그렇게 읽어서도 안 된다.

아빠는 왜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없이, 나중에 데리러 오겠다는 말도 없이 떠났을까? 마당을 가로지르는 묘하게 무르익은 바람이 이제 더 시원하게 느껴지고, 크고 하얀 구름이 헛간을 넘어 다가온다. (21)

서사는 아빠가 주인공을 친척집에 장기간 맡기면서도 아이에게 작별인사도 없이 떠났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매정하고 아빠로서도 빵점이다. 그렇지만 서사를 통해 이해하는 아빠에 대한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넘어 곧바로 서술되는 주변 배경에 대한 아이의 생각을 통해 독자는 또 다른 세상과 서사를 만난다. 

'묘하게 마당을 가로지르는 무르익은 바람' 이 주는 이미지.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바람이 의미하는 것, 크고 하얀 구름이 헛간을 넘어 다가오는 것에 대한 풍경이 주는 이미지의 변화를 생각한다. 독자는 이미지를 구성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말은 하지 않지만 맡겨진 아이에게서 발현되는 것으로 서사와 다름 없는 중요한 문장들이기 때문이다.

"다 잊어버리는군." 킨셀라 아저씨가 말한다. "금방 옷을 갈아입혀 주마."
"하지만 열두 달 지나면 다 잊어버리겠지." 아주머니가 우리 아빠를 흉내 내며 말한다. (22)

여기가 두 분이 주무시는 곳이다. 왠지 모르지만 나는 두 사람이 같이 자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23)

더 이상 부연 설명이 없는 짤막한 대화나 혼잣말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는 다 쓴 다음에 최대한 덜어내기를 하는데 그 과정은 눈물겹다. 나는 작가로서 글을 쓸 때 그 눈물 겨운 덜어내기를 잘 하지 못한다. 고민하면서 써 놓은 그 장면, 그 문장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훌륭한 작가는 욕심을 버리고 문장들을 버린다. 그래야 단촐해진 문장은 더 빛을 발한다. 클레이 키건은 기꺼이 그 작업을 수행했다.

욕조 물이 차오르자 흰 욕실이 어딘가 변해서 눈앞을 가린다. 전부 다 보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23)

이 한 문장을 길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생각한다. '전부 다 보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 한 문장은 이 장면 속에서 그저 욕조 물이 차오르면서 아이가 느끼는 현상에 불과할 뿐이지만 작가가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라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커다란 주제음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짧지만 무언가를 암시하는 이러한 문장은 곧바로 독자에게 중요한 문장임을 깨닫게 하고, 그대로 각인된다. 아, 이 책은 전부 보여주는 책이 아니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눈 앞을 가리는 부연 김 속에서 스스로 이야기를 찾아내야 하는구나. 새삼 다짐하게 만드는 놀라운 문장, 보석 같은 문장으로 뇌리에 깊숙이 박힌다.

나는 책을 읽기 전 우연히 "말 없는 소녀"라는 제목으로 방영되는 영화를 먼저 봤다. 2024년 이 책이 예스24와 알라딘, 그리고 각종 도서 인풀러언서들의 블로그 등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제목과 영화의 장면을 보는 즉시 이 책을 영화화했다는 사실을 느낌으로 알았다. 그래서 나는 꽤 진지하게 영화를 봤다. 나는 책 재목이 '말 없는 소녀'라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소녀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말을 하지 못하는 소녀일 거라는 추측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에서도 간간이 소녀는 말을 했다. 영화에서 제목을 "말 없는 소녀"로 바꾼 이유는 어쩌면 책의 서사가 대화보다는 생각을 중심으로 서술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대화는 아주 필요한 경우에만 간략하게 언급된다. 그리고 중요한 대목은 생각을 표현하는 한 문장으로 스치듯 지나간다. 매우 중요한 서술임에도 그 한 문장 외에는 부가적인 감정의 전달이나 설명이 거의 없다. 독자가 매우 예민하고 세심하고 그 부분을 포착해 내야 한다.

집에 도착하자 개가 일어나서 자동차 앞까지 우리를 마중 나온다. 나는 아주머니나 아저씨가 개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68)

작가는 영민하고 우리는 한 문장을 읽는 즉시 그 대화, 그 문장이 이 소설을 매우 중요하게 만들어 줄 변곡점임을 깨닫는다. 그건 놀랍고도 신비한 일이다. 우리는 책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느슨한 순간에 비범하게 그 장면을 포착해낸다.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라는 아저씨의 말 속에서 곧 그 말이 재현될 장면이 나오겠구나 직감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 소설의 백미가 될 것이다.

"이상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란다." 아저씨가 말한다. ...
아저씨가 웃는가. 이상하고 슬픈 웃음소리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아저씨가 말한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73)

너무 짧은 소설이어서 이 책의 줄거리를 밝히는 것은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에게 매우 송구한 일이어서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 다만 '맡겨진 소녀' '말없는 소녀' 'foster'라는 원제목에서 이 책의 주인공이 어린 소녀이며 누군가에게 맡겨져서 보육을 받는 상황이라는 것 정도는 이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다른 성장소설과 다른 점은 아이가 다시 원래의 가정으로 금방 돌아간다는 것이다. 영원히 맡겨지는 것이 아니다. 방학 기간 동안 잠시 단 둘이 사는 친척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집에서 보살핌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 걷다가 절벽과 암벽이 튀어나와 바다와 만나는 곳에 도착한다. 이제 앞으로 갈 수 없으니 돌아가야 한다. 어쩌면 여기까지 온 것은 돌아가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73)

"그럼 돌아가야 하는 거예요?"
"그래." 아주머니가 말한다. "그렇지만 너도 알고 있었잖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편지를 본다.
"우리처럼 나이 많은 가짜 부모랑 여기서 영영 살 수는 없잖아."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불을 빤히 보면서 울지 않으려고 애쓴다.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정말 오랜만이고, 그래서 울음을 참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는 사실이 이제야 떠오른다. (80)

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차라리 빨리 가고 싶다. 얼른 끝내고 싶다.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축축한 밭과 물이 뚝뚝 떨어지는 나무들, 언덕들을 내다본다. 처음 왔을 때보다 더 푸르러진 것 같다. (81)

아이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집에서 살면서 이전의 집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온전히 자신만을 보살펴주는 사랑을 받았다. 충분히 넘칠만큼 받았고 그만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했다. 그 성장은 나무들이 처음 왔을 때보다 더 푸르러진 것처럼 느끼는 아이의 시선으로 드러난다. 아이는 아이답게 더 푸르러졌다. 이전에는 아이 같지 못했지만 맡겨진 집에서 나무가 푸르른 것처럼 푸른 아이의 정체성을 회복한다. 그리고 아이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깊고 따뜻하고 풍부한 감정을 읽어낸다.  슬픔의 깊이와 넓이까지 헤아린다. 그만큼 자란 것이다.

나는 손을 놓으면 물에 빠지기라도 할 것처럼 아저씨를 꼭 붙든 채 아주머니가 목구멍 속으로 흐느끼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는 소리를 듣는다. 꼭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때문에 우는 것 같다. (98)

작가는 구구절절 어떤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다.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 문장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하나도 버릴 것 없는 놀라운 문장들을 읽으며 전율한다. 

더욱 심오한 무언가 때문에 나는 아저씨의 품에 안긴 채 꼭 그를 잡고 놓지 않는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98)

아저씨의 품에 달려가 안긴 채 다가오는 아빠를 보며 '아빠' '아빠'라고 두 번을 부르는 그 외침 속에 작가는 독자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놓으며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아빠'는 누구인가. 그것은 책을 읽은 독자만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가 해석하는 아빠의 이미지에 따라 책은 다시 독자만의 이야기가 되어 다양한 변주로 새롭게 흘러갈 것이다. 이제 이 소녀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책은 그 뒷 이야기를 해주고 있지 않지만, 푸름을 잃은 원래의 집으로 돌아간 다섯 번째 아이는 다시는 자신의 집에서 경험하지 못할 사랑을 경험함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 상상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우리가 그 뒷 이야기를 써내려가야 한다. 수많은 난관과 어려움이 나타나겠지만 아이는 '입을 다물고' '울음을 참으며'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 나가리라.

아이가 성장한 만큼 독자 역시 성장한다. 모르지만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느껴진다. 나는 이미 어른이므로 아이가 느낀 그 폭풍 같은 감정만큼의 성장은 아니겠지만 나무가 조금 더 푸르러지는 것 만큼의 성장, 성숙, 감정의 깊이는 변했으리라 생각한다.

모처럼 훌륭한 소설을 만나 책을 읽고 나서도 기분이 좋다. 결코 슬프지 않은 책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i*******n 2025.01.16. 신고 공감 23 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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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 가득한 표현 속에 담겨진 따뜻한 마음들/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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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를 배경으로 따뜻한 풍경이 펼쳐지는 이야기가 가슴에 다가왔다. 섬세한 심리를 간접적으로 표현해 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무슨 일이든지 간접적으로 얘기해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언어적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가령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처음 머물면서 실수를 한 일을 바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을 어른의 실수로 치장해 아이가 아픔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표현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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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를 배경으로 따뜻한 풍경이 펼쳐지는 이야기가 가슴에 다가왔다. 섬세한 심리를 간접적으로 표현해 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무슨 일이든지 간접적으로 얘기해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언어적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가령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처음 머물면서 실수를 한 일을 바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을 어른의 실수로 치장해 아이가 아픔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직설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표현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도시의 한 가정에서 어딴 부부가 아이는 많고 물질적으로 무척 어렵다. 그런 가운데 아이들의 엄마가 또 아기를 가졌다. 그래서 한 아이를 먼 친척이 되는 집에 한 여름을 맡기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소녀는 자신의 집을 떠나 일정 시간 동안 시골의 한 가정에 머물게 된다는 것을 안다. 아이가 얼마나 힘겨울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아도 쉽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는 환경을 이해하고 그것을 수용한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는 기대감과 힘겨움이 동시에 갖는다. 소녀가 가는 곳은 무척 목가적인 풍경을 지닌 곳이다. 소냐가 그는 집에는 킨셀라 아저씨와 아주머니 둘만 살고 있다.


소녀는 그곳에 처음 머물면서 어려운 마음 상태가 된다. 킨셀라 부부가 아무리 잘 해줘도 마음에 부담이 작용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행동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을 무언중에 느끼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아이가 잘 적응하도록 배려하는 마음을 지닌다. 미처 준비를 해오지 못한 것은 보충해 주고 평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안내도 한다. 소녀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적당한 일도 함께한다. 따뜻한 마음이 서로의 관계를 익숙하게 만들어 가도록 한다. 소녀가 그곳에 있길 원한다면 언제까지나 있어도 좋다고 얘기도 해준다.


아빠가 나를 여기 두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내가 아는 세상으로 다시 데려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이제 나는 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 p17


소녀가 집안 사정으로 킨셀라 부부에게 맡겨지는 상황에 드러난 마음이다. 집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어린아이의 입장에서는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작용하리라. 그것을 잘 포착해 저자는 그려내고 있다. 또한 집의 어려운 사정에서 떠나 마음이 편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기대감도 드러난다. 미묘한 소녀의 심리가 잘 표현된 부분이다. 아마 집에서 떠나 타인의 집에 기거하게 되는 소녀의 섬세한 마음이 이 작품의 맛을 크게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랴 생각한다. 이를 통해서 시골 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성도 좋아질 수 있게 되는 마음 다스림을 하는 소녀의 정신적 성장이 그려진다. 소녀를 키우는 부부의 따뜻한 마음도 소녀의 성장에 맞춤 형태의 도움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글의 배경은 아일랜드로 되어 있다. 소녀가 생활을 해나가는 공간이다. 시골의 특성이 잘 드러나고 목가적인 분위기가 아름답기까지 하다. 킨셀라 부부의 배려하는 마음들이 다양한 언행으로 나타나고 따뜻한 분위기가 되고 있다. 그것들이 이 작품의 매력적인 요소가 아닐까 한다. 소녀가 낯선 곳에서 생활하면서 두려움과 어려움을 느낄 수가 있는데 그렇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이 배려하는 마음이다. 소녀가 시골에 적응하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소녀는 비교적 낯선 분위기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생활을 잘 해나가고 있다. 아저씨가 베풀어 주는 생활에 적응하게 하는 우편함까지의 달리기, 아주머니가 함께해 주는 우물을 긷는 방법 등이 시골 생활의 도움이 된다. 그것은 결국 생활을 익숙하게 하고 자생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소녀가 옷이 없어 시장에 가서 옷을 구입하면서 정을 돈독히 하기도 하고, 종교적 시설에 같이 가면서 타인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한다. 시장에 옷 사러 가서는 킨셀라 부부가 아들을 가지고 있었고 잃었다는 아픈 사연을 알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베푸는 정겨움의 일단을 이해하기도 한다.


소녀는 시골에서의 생활에 추억을 쌓아간다. 그것이 아마 앞으로의 삶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집의 아이들도 시골 할아버지 집에 더러 가도록 했다. 그곳에서 흙과 살면서 나무들도 익히고 강물에서 고기들을 잡기도 하면서 어린 시절 한 시간을 보냈다. 그것이 성장하면서 건강한 추억이 되고 삶의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시골에서 성장할 수 있다면 아이들에겐 그것을 권장하고픈 마음도 있다. 이 글 속에서의 소녀도 한 여름의 시간을 그렇게 보낸다. 그것이 아마 삶의 소중한 자산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소녀의 집에서 남동생이 태어나고 소녀가 학교에 갈 때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집에 데려다 준다. 소녀는 아쉬움을 느끼며 그들과 헤어진다. 킨셀라 부부도 언제든 다시 시골에 와도 된다고 해준다. 헤어짐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들이 정겨운 분위기를 마련한다. 읽는 내 마음도 훈훈해 진다.


저자는 이 글에서 자신의 판단을 직설적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스스로 판단하고 파악하도록 하는 중심 흐리기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나 행동들을 독자는 그들의 언행을 통해서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해야 한다. 마지막에 사용된 아빠의 중의적인 의미도 그런 한 가지 요소일 게다. 은은하고 따뜻한 이미지가 그들로 인해 더욱 사랑으로 영글어져 온다.


작가의 시선이 내 마음의 한 부분에 들어와 소녀를 통해서 말을 건다. 세상은 그리 혼탁하고 피곤한 곳만은 아니라고. 소녀의 눈을 통해 사람들의 따뜻한 사랑이 전해지며, 살만한 세상임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행복한 읽음이 되었다.

j****3 2024.04.03. 신고 공감 2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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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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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책은 처음 읽는데. 우선 책의 두께가 얇고, 글자가 큰편이고 줄사이가 넓어 쉽게 읽힙니다.섬세하게 표현되는 풍경과 상황..딱 뭐라고 나오지 않아도, 아 그렇구나, 하고 알게되는 상황들.이런일이 있었는지 몰랐는데 그 딱 한 편린을 보게 된 느낌.그리고 자신이 받았던 그대로 돌려주는 그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마지막 장면에서 '서로 돕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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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책은 처음 읽는데. 우선 책의 두께가 얇고, 글자가 큰편이고 줄사이가 넓어 쉽게 읽힙니다.
섬세하게 표현되는 풍경과 상황..
딱 뭐라고 나오지 않아도, 아 그렇구나, 하고 알게되는 상황들.
이런일이 있었는지 몰랐는데 그 딱 한 편린을 보게 된 느낌.
그리고 자신이 받았던 그대로 돌려주는 그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서로 돕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하는 그 마음이 모든것의 동력이었다고 생각된다.
h*******e 2023.11.28. 신고 공감 2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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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찾아오면 꺼내 읽게 될 책... 인간다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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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 때 사락 블친님이 작성한 우수 리뷰를 읽고나서 구입한 클레어 키컨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당시 읽고 있던 책이 있어서 잠시 미뤄두었던 것이 1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구입 후 1년 만에 읽은 책이지만 출판사 소개글처럼 "크리스마스마다 반복해서 꺼내 읽을 새로운 고전의 탄생"이 과장이 아닐만큼 132쪽의 짧은 분량임에도 오랜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소설은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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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이맘 때 사락 블친님이 작성한 우수 리뷰를 읽고나서 구입한 클레어 키컨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당시 읽고 있던 책이 있어서 잠시 미뤄두었던 것이 1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구입 후 1년 만에 읽은 책이지만 출판사 소개글처럼 "크리스마스마다 반복해서 꺼내 읽을 새로운 고전의 탄생"이 과장이 아닐만큼 132쪽의 짧은 분량임에도 오랜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소설은 1980년대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겨울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은 실제 인물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허구이지만 사건의 배경이 되는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고 아일랜드 정부에서 지원한 시설이었다.

 소설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을씨년스럽다. 주인공인 펄롱이 사는 소도시는 당시 아일랜드의 경기 침체로 조선소가 문을 닫고 공장은 여러 차례 해고를 단행해 해고된 사람들이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줄을 설 정도 혹독한 시기였다. 펄롱은 석탄, 토탄, 장작 등을 팔며 아내와 다섯 딸을 키우고 있는데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나름 안락한 생활을 하며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혹독한 시기였지만 그럴수록 펄롱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 24쪽

 경기 침체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아이들이 잘 커서 좋은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펄롱의 결심은 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공감할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펄롱의 결심을 흔들리게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수녀회에서 맡아 운영하는 직업여학교와 막달레나 세탁소. 전반적으로 평판이 좋았으나 그곳에 관한 다른 이야기도 들리는 곳. 직업학교에 있는 학생들이 학생이 아니라 타락한 여자들이라 교화를 받는 중이라거나 사생아로 태어난 아이들을 부유한 미국인 등에게 입양시키고 그 과정에서 수녀들이 상당한 돈을 챙긴다는 이야기...

 펄롱은 뜬소문을 믿고 싶지 않았으나 
어느 날 저녁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일찍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작은 경당에서 바닥에 엎드려 걸레로 윤을 내던 어린 여자아이들 중 하나가 강이나 대문 밖까지만이라도 제발 나가게 해달라고 간청을 하는 일이 있었고, 크리스마스이브를 이틀 남긴 일요일에 다시 석탄을 배달하러 이른 시간 수녀원에 찾아갔다가 창고 안에 갇힌 여자아이를 만나게 되는데 수녀가 여자아이를 대하는 행동이 수상하다.

 펄롱은 고민 끝에 수녀회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아내 아이린에게 하게 되지만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라며 아내는 우리 아이들만 생각하고 수녀회 일은 신경을 끄라고 한다. 아울러 평소 친하게 지내는 단골 식당의 주인 미시즈 케호도 수녀회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며 마을에서 수녀회의 힘이 대단하니 척을 두지 말라고 조언을 한다.

 "교단은 다르지만 다 한통속이야. 어느 한쪽하고 척지면 다른 쪽하고는 원수 되는거야." - 107쪽

 소설 후반부는 고뇌하는 펄롱의 감정을 깊이있게 들여다보며 그동안 어렵게 지켜낸 안락한 삶을 한순간에 잃을 수 있음에도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펄롱의 용기 있는 발걸음을 보여준다. 소설은 펄롱을 영웅처럼 묘사하지는 않는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처럼 선한 행동을 한다는 설레임과 동시에 반드시 맞닥뜨려야 할 두려움도 느끼는 펄롱의 감정을 보여준다. 가족조차 반기지 않을 일이고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만 수녀원 창고에서 데리고 나온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하는 펄롱의 발걸음은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전해준다. 소설은 서두에서 설명한 것처럼 132쪽 밖에 안되는 짧은 소설이지만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와 세상에 맞서 용기를 내기까지 펄롱의 고뇌하는 감정 표현은 흡입력이 대단하다. 문장 하나 하나 놓칠 것 없이 곱씹을만한 소설은 왜 2022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었는지 알게 된다. 끝으로 소설을 읽으면서 간결하면서도 이야기에 푹 빠지게 하는 번역이 인상 깊었는데 옮긴이를 보니 이해가 간다. 옮긴이가 지난 5월에 인상 깊게 읽은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를 쓴 홍한별 번역가다. 아무튼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한 클레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겨울이 찾아오면 꺼내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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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s****6 2025.12.28. 신고 공감 16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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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이 영화를 막아서는 소설
"말 없이 영화를 막아서는 소설" 내용보기
지인이 영화를 세 편 추천했다. 그중 하나가 ‘말없는 소녀’였다. 원작 소설의 제목은 ‘맡겨진 소녀’라고 했다. 그날 저녁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 창을 띄웠다. 영화 제목들은 뒤로하고 ‘맡겨진 소녀’를 입력했다. 영화와 소설을 동시에 소개하는 기사가 떴다. 저자는 이십여 년 사이에 소설을 단 네 권 출간했는데, 여러 문학상을 받은 <맡겨진 소녀>는 아일랜드 교과서에도 실렸
"말 없이 영화를 막아서는 소설" 내용보기
지인이 영화를 세 편 추천했다. 그중 하나가 ‘말없는 소녀’였다. 원작 소설의 제목은 ‘맡겨진 소녀’라고 했다. 그날 저녁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 창을 띄웠다. 영화 제목들은 뒤로하고 ‘맡겨진 소녀’를 입력했다. 영화와 소설을 동시에 소개하는 기사가 떴다. 저자는 이십여 년 사이에 소설을 단 네 권 출간했는데, 여러 문학상을 받은 <맡겨진 소녀>는 아일랜드 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했다. 예스24에 들어와 확인하니 번역되어 나온 클레어 키건의 소설은 둘 있었다. 한 세대에 한 명만 나오는 작가’라는 문구가 눈이 띄었다. 호기심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바로 주문했다.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저자의 다른 책과 함께. 백 페이지 남짓한 소설책 두 권을 받아 들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맡겨진 소녀>부터 읽었다. 를 읽기 시작했다. 묘사가 자세한 것 같지 않은데도 어떤 풍경과 분위기가 저절로 그려졌다. 심지어 등장인물의 마음속까지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소녀도, 소녀를 맡아준 부부도 말이 많지 않았지만, 스치는 장면 속에서 단단한 마음이 보이는 듯했다. 아주머니와 우물로 가는 길에 소녀는 혼자 생각한다. “우리 둘 다 말이 없다. 가끔 사람들이 행복하면 말을 안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 말 많은 이웃의 폭로로 부부의 ‘비밀’과 아픔이 드러난 날, 아저씨는 소녀의 새 “구두 길들이러” 소녀를 데리고 밤 산책에 나선다. 밤길을 걸으며 말한다.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등장인물이 ‘단어 한 낭비하지 않는 작가’라는 찬사를 받는 저자와 닮아 보였다.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자 어리둥절했다. 처음 접하는 세상에 다녀온 듯했다. 소녀는 자신의 느낌을 ‘아빠가 떠난 맛’이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이 소설의 맛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묵직하고 따스하고 벅차고 믿음직스럽고 아련하고 안타깝고 찔린 듯이 아프고 또 설레는 맛, 그리고 내가 잘 느끼지 못한 많은 맛이 숨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소설의 여운을 가득 안고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두 번째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었다. 두 소설은 계속 마음속에서 살아나 말을 걸었다. 일주일쯤 후 두 소설을 다시 읽었다. 줄거리를 아는데도 책을 읽는 동안 수시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문장 하나하나를 새롭게 만났다. 읽어도 읽어도 새로울 것 같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새로울 것 같다. 며칠 후 영화를 검색했다. <말없는 소녀> 예고편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예고편을 봤다. 영화에 대한 평도 좋고, 소설을 몰랐다면 당장 보고 싶을 영화다 싶었다. 망설이다가 영화를 보지 않기로 했다. 소설이 주는 여운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k*******6 2024.04.24. 신고 공감 15 댓글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