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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철학적이지 않아야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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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진 철학자 탈레스를 보고 하녀가 비웃으면 말했다. "탈레스는 하늘의 것을 보는 데는 열심이면서 발치 앞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장자'에 보면 제나라 환공과 윤편의 이야기가 이와 비슷하다. 수레바퀴를 깎는 윤편이 환공에게 무슨 글을 보고 계시냐고 묻자 환공은 성인의 말씀이라고 한다. 윤편은 그들이 살아 있느냐고 묻고 환공은 이미 돌아가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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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진 철학자 탈레스를 보고 하녀가 비웃으면 말했다. 

"탈레스는 하늘의 것을 보는 데는 열심이면서 발치 앞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


'장자'에 보면 제나라 환공과 윤편의 이야기가 이와 비슷하다. 수레바퀴를 깎는 윤편이 환공에게 무슨 글을 보고 계시냐고 묻자 환공은 성인의 말씀이라고 한다. 윤편은 그들이 살아 있느냐고 묻고 환공은 이미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에 윤편은 '왕께서 읽는 것은 그저 찌꺼기입니다.'라고 말한다. 환공이 화를 내며 이유를 묻자. 

'수레바퀴 깎는 일마저도 많이 깎으면 헐거워지고, 덜 깎으면 빡빡해서 굴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깎는 것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뿐 입으로는 전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제 자식에게도 이 일을 물려주지 못하고 바퀴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 성인들 또한 핵심적 깨달음은 책에 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철학이 철학적일 뿐이라면 철학은 영원히 철학 그 자체로 남을 수밖에 없다. 철학이 현실로 내려와 세상 바퀴의 굴대에 맞추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뜬구름 잡는 형이상학에 불과할 것이다. 철학을 쉽게 설명하고자 하는 책은 수도 없이 나온다. 그중에 가장 보편적인 스타일은 바로 일상이나 쉬운 주제에서 철학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철학자와 하녀'는 현장 인문학자인 저자가 유식한 철학이 아닌 일깨우는 철학을 위해 쓴것으로, '수유너머'라는 연구 공동체 생활을 하는 그의 현장 철학이 짙게 배어나는 책이다.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을 다시 한번 철학적 눈으로 돌아보면서 철학이 우리에게 어떻게 의미 있는 것이 되어가는 지를 보여준다. 니체 전문가인 저자가 니체의 글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철학자들의 글을 끌어와 현실을 재해석 하지만 어렵지 않고 흥미롭기까지 하다. 


최근 노숙자를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연이 늘어나고 있다. 결과가 얼마나 과장된 것인지 모르지만, 실제로 인문학 강의를 듣고 노숙자 생활을 접은 채 일상으로 돌아간 사람도 많다고 한다. 나는 그것이 어떤 이유에선지 무척 궁금했다. 여태까지 내가 내린 결론은, 시선을 나 자신에게 돌린다는 것, 내 과거 내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현재의 나를 부끄러워 하게 된다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가장 필요한 자세라는 것이다. 그런 자세를 갖게 된 사람이 여전히 길바닥에서 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오히려 어떤 철학자보다 더 깨달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 그가 그곳을 박차고 나와 다시 시작해보겠다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다른 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철학과 인문학이 누군가에게 유성처럼 박히는 경험이 된다는 것은 철학하는 사람에게나 본인에게나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경험이다.  


책의 서문에는 노들장애인 야간학교 엠티 중에 한 학생이 별을 보다 눈물이 쏟아져 나올뻔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것은 어떤 천문학자나 철학자가 본 별보다 아릅답고 완벽한 존재로서의 '별'이었다. 그 학생은 그 별을 보고 그녀가 살아야 할 방향을 다시 깨달았다. 저자는 철학이 바로 이런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보거나 듣고 정신을 확 깨뜨리며 스스로를 다그칠 수 있는 것, 카프카의 말처럼 우리 안에 꽁꽁 얼어있는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 같은 철학이 진짜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이 철학자의 것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야 말로 가장 슬픈 일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생에 쫓기면서 책 한권 읽을 여유 없는 사람들에게 각성하라고만 쓴 책은 아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철학이 없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는 불편함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위정자나 리더계층에서 철학이 없다면 문제는 다르다.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오직 시키는 일이니 했다는 '아이히만' 같은 이에게 없던 것은 '능력'이 아니라, '철학'이었다. 저자의 이런 생각은 제목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다', '저항하는 존재는 말소되지 않는다', '바로 잡아주는 사람과 깨뜨려주는 사람', '천국에는 철학이 없다' 등등이다. 나는 특히 마지막 순간에 다들 용서하는 선한 이들과 달리 루쉰이 '죽음'이라는 잡문에서 남긴 글귀가 맘에 들었다. '멋대로 원망하도록 하라. 나 역시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겠다.' 누군가에 대한 미움에 대해 확신이 있는 것 만큼 스스로의 삶에 당당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종국에 가서는 타협하고 인정하면서 좋은게 좋은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당당한 자세가 특히 지금 우리에겐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YES마니아 : 로얄 c****o 2015.09.21. 신고 공감 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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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삶 그자체 ~!《철학자와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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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살다보면, 깨달음이 너무 늦게 도착할 때가 있다. 이상은의 노랫가사처럼 지나고 나서야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젊음이었고 사랑이었다. 삶이라는 것이 딱 그렇다. 그때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뒤통수를 치는 횟수가 많아지는 것이 인지상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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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살다보면, 깨달음이 너무 늦게 도착할 때가 있다. 이상은의 노랫가사처럼 지나고 나서야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젊음이었고 사랑이었다. 삶이라는 것이 딱 그렇다. 그때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뒤통수를 치는 횟수가 많아지는 것이 인지상정의 인생인지도.  어쩌면 인생에 완벽함을 기대하는 것은 오만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하여 늘 쫓기듯 살면서 에서 찾아오는 후회와 함께 찾아오는 깨달음이란 놈 앞에 자유로운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철학과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 항상 현실의 문제가 도드라져 보여 마음이 차분해지게 되는 것 같다. 거리의 철학자라 불리는 고병권은 철학자와 하녀에서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이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철학은 지옥에서 도망치지 않고 또 거기서 낙담하지 않고, 지옥을 생존조건으로 삼아 거기서도 좋은 삶을 꾸리려는 자의 것이다.” 라고. 지옥 같은 삶에서 필요한 것이 정말 철학일까?

 

철학자가 하늘의 별만 보고 가다가 우물에 빠졌다. 별을 보느라 바로 앞의 우물을 보지 못한 철학자를 보며 하녀는 비웃는다.  세상의 모든 지식를 가졌을지라도 당장 자기 앞에 있는 우물을 보지 못하는 철학자가 어떻게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안다 할지라도, 눈 앞의 장애물을 보지 못하는 지식은 필요없는 지식 즉, 죽은 지식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하녀의 비웃음과는 달리 철학자는 그런 하녀가 더 한심해 보일 수도 있다. 먼 하늘의 별이 품고 있는 지식의 원천을 알리 없는 무식한 하녀가 삶의 원대한 뜻을 어찌 알까싶기도 하다. 하녀는 눈 앞의 우물(실존)보다 무한 정신세계(현학적 유희)를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테니까. 이렇게 시작된 철학자와 하녀의 동상이몽으로 '철학' 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들을 수 있게 된다. 가난한 사람에게 현학적 허세와 비현실적 몽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철학이 현실에서 실용가능한 지혜로서 통용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일상에서의 철학', '가난한 이들이 껴안을 수 있는 철학','다르게 느끼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 바로 철학이라한다.

 

나는 철학이 박식함에 있지 않고 일깨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 불가능과 무능력, 궁핍과 빈곤을 양산하고 규정하는 모든 조건에 맞서 분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철학은 다르게 느끼는 것이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며 결국 다르게 사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가난한 이들이 껴안을 수 있는 철학이며, 가난한 이들이 철학자에게 선사하는 철학에 대한 좋은 정의라고 생각한다

니체가 어지러운 세상에 자발적으로 살아가길 원했던 것처럼 ,  참된 철학은 현실이 중단된 곳, 즉 누구도 뛰어들고 싶지 않아 하는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는 저자. 저자는 이러한 현실, 이 지옥이라 불리우는 현실에서 도피처로서의 학문이 아닌 지옥같은 세상에서 필요한 철학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한다. 척박한 삶에서 건져올리는 철학 한 줄이야말로 참된 공부이며 진리에 이르는 방법이라 한다.  

 

공부란 자신이 가진 미약한 것에서 시작해서 계속해서 앎을 생산하고 더 나아가는 것이지, 어떤 방법을 알아내서 단번에 도달하게 되는 게 아니다. 진리에 이르는 방법은 따로 없고 진리가 가는 길이 진리의 방법이다. 그리고 공부란 그 길을 스스로 내면서 나아가는 일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르게 내면에 고착되어 왔던 프레임의 세계가 너무 강해 '다름'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다는 것을. 저자의 말처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철학이라지만, 내면이 견고해지지 않으면, 삶에서 '다름'을 추구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인문학이 점차 현학적이 되어버리면서 터져나오기 시작한 인문학의 위기설 가운데 사회학을 전공한 인문학자 고병권의 《철학자와 하녀》는 현학적 유희나 비현실적인 몽상이 아닌, 삶에서의 리얼리티가 바탕이 되는 '앎'의 철학을 말한다. 철학의 뿌리는 바로 이러한 '현실'의 리얼리티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삶' 그자체이다.  아무리 밤하늘의 별이 아름답다 한들 당장 먹고 살 빵과 물이 없다면  삶은 영속되지 않을 것이고, 빵과 물이 있다해도 별의 아름다움을 헤아릴 줄 모른다면 영혼 없는 삶을 영위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삶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천착하고 관조할 줄 아는 삶을 최고의 삶이라 했듯이 삶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좋은 삶을 향한 철학적 추구이다. 삶의 리얼리티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인문학의 정신일테니까...... 아. 이제야 알겠다. 삶에서 깨달음이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애써 외면해 왔던 것이라는 걸.

YES마니아 : 로얄 k********2 2014.07.15.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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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줄이기 위하여...
"철학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줄이기 위하여..." 내용보기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이런 장면이 있던 게 생각난다. 나치가 유태인을 선별한다.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자만 추려내고 나머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기 위해서다. 유태인들이 한 줄로 길게 서서 차례차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지 나치 군인들에게 밝히고 있다. 그 줄 어디쯤에 역사학자가 있었다. 평생 역사만 연구해온 노인 학자다. 그는 당당히 역사를 연구했다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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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이런 장면이 있던 게 생각난다. 나치가 유태인을 선별한다.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자만 추려내고 나머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기 위해서다. 유태인들이 한 줄로 길게 서서 차례차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지 나치 군인들에게 밝히고 있다. 그 줄 어디쯤에 역사학자가 있었다. 평생 역사만 연구해온 노인 학자다. 그는 당당히 역사를 연구했다고 말할 참이다. 그 때, 그를 아는 한 젊은이가 다가오더니 그에게 절대 역사학자라 말하지 말고 냄비 때우는 일을 했다고 말하라 한다.  노인 학자는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평생 고귀한 역사를 공부해 온 나에게 고작 냄비 때우는 일이나 했다고 하라니. 도대체 내가 왜 그래야 하냐고 반문한다. 젊은이는 살고 싶으면 그렇게 말하라고 한다. 고개를 가로젓는 노인. 젊은이는 그러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다. 자기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결국 노인의 차례가 돌아왔을 때, 젊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이 분은 말을 할 줄 모르며 평생 냄비 때우는 일을 했다고. 그러자 나치 군인들은 잘됐네. 마침 식당에 때울 냄비가 가득한데 하면서 노인을 차출한다. 노인 학자는 이제 산 것이다. 하지만 노인은 계속 억울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세상에 역사가... 역사를 연구하는 게 이리도 가치가 없다니... 중얼거리며.


 극단적은 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정작 중요한 순간 별 도움이 안 된다. 철학이라고 다를 것인가? 마찬가지이리라. 역사든, 철학이든 얼른 드는 인상은 실생활과 지극히 유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괜히 상아탑 학문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그건 철학이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짊어진 멍에였다. 그걸 우리는 탈레스에 관한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다. 탈레스가 누구인가? 서양철학사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이름이 아니던가?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지 근심하여 물이라고 선언한 최초의 철학자. 그렇게 이 이야기는 철학의 태초에 있었던 것이다. 탈레스는 밤이면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즐겨 관찰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하늘의 별만 바라보며 가다가 그만 발 밑의 우물을 보지 못하고 빠지고 말았다. 그걸 본 트라키아의 한 하녀는 비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멀리 있는 밤하늘의 별들은 잘 보면서 어찌 발 앞의 우물은 보지 못하누."


 현장 인문학자 고병권은 이 하녀의 비웃음을 철학의 임무로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책, '철학자와 하녀'는 교도소에서 재소자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던 도중 한 재소자의 질문 때문에 태어났다. 그 재소자는 저자에게 이렇게 질문했다고 한다.

 "왜 우리가 지금 여기서 철학을 공부해야 합니까?"


 쉰들러리스트의 역사학자, 트리키아 하녀의 비웃음, 재소자의 질문. 이 모두에서 잘 드러나듯이, 분명 철학과 현실엔 괴리가 있다. 철학은 현실 너머를 쫓으려고 하고 현실은 말뿐인 철학을 자신과 상관없다 여긴다. 철학은 배부른 돼지 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이렇게 배고픈데 철학 나부랭이 따위가 무슨 대수냐고 말한다. 허기를 줄여주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철학은 그런 현실을 우매하다고 하고, 현실은 그런 철학을 신선놀음이라 비아냥 거린다. 간격은 좁혀지지 않는다.


 고병권은 이것이 철학과 가난한 사람(나는 이것을 현실이라 부른 것이다.) 모두 불행하게 만든다고 한다.


 철학과 가난한 사람이 대립하는 곳에서는 철학도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도 불행하다. 철학은 기껏해야 현학적 유희이거나 비현실적 몽상에 불과한 것이 되고, 가난한 사람은 현실 논리를 재빨리 추인함으로써 영리한 노예, 성공한 노예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p. 7)


 그러므로 이 같은 불행을 막으려면 단 한 가지 방법 밖에는 없다. 그 간격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그의 책 '철학자와 하녀'는 바로 그것을 위한 여정이다.



 여기에는 전부 6장에 걸쳐 많은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 아래로 통일되게 흐르는 근본적 태도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시각의 전환이다. 이를테면, 누구나 한계라고 생각했던 지점을 오히려  출발이라고 여기는 태도다. 쉽게 발상의 전환이라 해도 좋을 듯 하다. 그건 첫머리에서 그가 철학의 사명을 '지옥에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짓는 일'이며 철학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이 중단된 곳, 즉 누구도 뛰어들고 싶지 않아 하는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이미 드러난다.모두가 'NO'라고 외칠 때, 'YES'를 찾아내려 하는 것. 그것을 저자는 철학이라 여긴다. 아니,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진정한 철학은 무엇보다 이미 있는 현실이 아닌,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므로.


 '철학자와 하녀'는 그렇게 다르게 보기, 생각하기를 제안한다. 이것은 특히 17세기에 많은 철학자나 예술가들이 저마다 앞다투어 신에 대해 언급한 것을 두고 그 의미에 대하여 들뢰즈가 생각한 것을 말하는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들뢰즈는 17세기에 스피노자, 데카르트, 말브랑슈, 라이프니츠 등이 한결같이 신에 대해서 말한 것에 흥미를 느꼈다. 물론 그 때까지는 여전히 기독교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들뢰즈는 다르게 생각했다. 시대가 신을 사유하도록 제약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유에서 자유와 해방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들뢰즈는 이렇게 말했다. "신을 통해 회화는 인간적인 것들, 피조물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유한한 것들에서는 사유할 수 없었던 신을 통해 극한까지 가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 "극한에서는 종교적으로 가장 경건한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불경한 사람이 되는 게 가능합니다."(P. 129)


 그러니까, 들뢰즈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약은 구속이 아니라 오히려 해방의 계기라고. 또한 하이데거는 휠덜린의 시구를 인용해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위험이 있는 곳에는 구원의 힘도 자라네"라고(P. 170)


 바로 이러한 시각의 전환. 그것이야말로 철학이라는 것이며 우리가 그 태도를 지향할 때, 결국 철학과 현실 사이에 놓여진 간격도 줄일 수 있다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자와 하녀'는 이런 책이다. 그것을 하나의 근본 태도로 하여 여름의 수목처럼 가지를 쭉쭉 뻗어나간다. 그 가지의 손 끝에서 개념은 전혀 다르게 정립되고 그 바뀐 의미는 타자를 포용하는 여지를 더욱 넓혀준다. 바람은 언제나 비어있는 공간에 비례해 시원함을 가져다 준다. 자유를 느끼는 감각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우리는 확인하게 될 것이다. 철학은 궁극적으로 자유케 하는 것이라는 걸.


 그 자유를 향한 이 책의 여정은 철학을 말하고 있긴 하지만 그리 어렵지 않다. 말은 쉽고 내용은 부담이 없으니 지하철 안에서나 카페에서 사람을 기다릴 때에도 얼마든지 벗할 수 있는 책이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니 틀림없다.


 부디, 한 번 벗해보시기를...


l****1 2014.11.11.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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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춤추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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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춤추는 세상이다 소셜네트워크의 활성화로 인해 말잔치가 세상을 뒤덮고 있는 세상. 살아오는 동안 이렇게 말을 쏟아내는 시대가 있었을까 싶게 이런저런 말들로 넘쳐난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가슴에 들어온 세상에 대한 눌러놓은 감정을 내 보이는 것은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긍정의 힘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지극히 개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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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춤추는 세상이다

소셜네트워크의 활성화로 인해 말잔치가 세상을 뒤덮고 있는 세상. 살아오는 동안 이렇게 말을 쏟아내는 시대가 있었을까 싶게 이런저런 말들로 넘쳐난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가슴에 들어온 세상에 대한 눌러놓은 감정을 내 보이는 것은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긍정의 힘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내 놓은 것은 좋다. 그렇게 살아온 경험이 없기에 더욱 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쏟아지는 말 속에 그 말을 한 사람들은 얼마나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갖추고 있을까?

 

개인의 의견도 이럴 것인데 사람들의 삶의 방향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인문학자들을 비롯한 대중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공인들의 말잔치도 이에 못지않다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의 열풍으로 강단에서 거리로 내려온 인문학자들의 말잔치도 거들고 있으니 이런 말들이 삶에 허덕이고 그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책임지려는 자세가 있는 것일까 의심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에 인문학의 근본 출발점에서부터 재검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다. 이 책철학자와 하녀의 저자 고병권이 그런 사람이며 고병권은 인문학의 중심인 중 하나인 철학을 전공하는 학자로 철학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실을 바꾸어 주는 힘으로 인문학이 제자리를 확보하려면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 근거한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당면한 현실에 적절한 제시가 아닌가 한다.

 

고병권의 철학자와 하녀에서 하녀는 권력의 테두리 속에서 없이 사는 것을 자랑삼아온 소시민을 지칭하고 있다. 삶의 현장에서 일상을 살아내기도 버거운 사람들인 하녀들에게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철학자라면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도 의미 있는 철학을 해야 한다. ‘하녀도 철학을 통해서 자기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인문학의 출발을 제대로 하자는 이야기다.

 

나아가 고병권은 철학이란박식함이 아니라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세상과 자신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은 자신을 점거했던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깨부수는 공부이며 이 공부를 위해 공부를 위한 공부는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런 시각으로 서른여섯가지 주제로 접근하고 있다. 그동안 인문학 각계에서 보여준 원론에 치우친 말잔치가 아니라 저자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전개한다. 모든 이야기가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옳은 말은 옳은 말일 뿐이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옳은 말이 대중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이로부터 삶이 바뀔 수 있는 실제적 가치와 합치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동안 자기계발서나 인문학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좋은 말들이 좋은 말로만 머물러버리고 마는 현상을 지켜보면서 말이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들어와 자기화 되는 변화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삶의 변화는 결국 좋은 말이 있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 좋은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좋은 말을 자기 목소리로 다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여야 자신에게 의미 있는 말로 된다는 것이다. 이 책 철학자와 하녀는 우리 시대의 화두인 인문학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에서 적절한 지적으로 우리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한다.

m*****8 2014.07.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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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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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철학자 탈레스는 별을 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지고 말았다.그것을 본 트라케의 하녀가 깔깔대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탈레스는 하늘의 것을 보는 데는 열심이면서 발치 앞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철학자들은 이 재치 만점의 하녀를 좋아하지 않았다.철학자들은 그녀를 철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는 무지한 대중의 상징으로 삼았다.누구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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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철학자 탈레스는 별을 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지고 말았다.그것을 본 트라케의 하녀가 깔깔대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탈레스는 하늘의 것을 보는 데는 열심이면서 발치 앞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철학자들은 이 재치 만점의 하녀를 좋아하지 않았다.철학자들은 그녀를 철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는 무지한 대중의 상징으로 삼았다.누구보다도 소크라테스가 그랬다.그는 발치에만 눈을 두고 다니는 이들 눈을 다른 곳에 돌릴 여유를 갖지 못하는 이들 당장의 이익을 위해 능수능란하게 말하지만 결국에는 옳은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상대방의 비위나 맞추고 있는 이들을 비웃었다."/5~6

 

제목의 궁금증은 머릿말에서 싱겁게 풀려버렸다.제목에서 무엇을 상상했던 것일까~^^

무튼 철학자와 하녀의 그 오묘한 경계가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면 '철학'은 더이상 학문이 아닌 우리가 매일 숨쉬는 공기와 같은 것으로 인식하게 되지 않을까? 예전에 철학이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은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생각했기 때문이고,지금 철학이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고민하며 살아야 하는데,고민한 대로 실천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부끄러움을 발견하기 때문인 듯 하다.그럼에도 누군가는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 보다 후회와 반성이란 반복의 후련도 필요한 것이라며 위로를 건낸다. 철학이란 타이틀로 세상에 나오는 책들을 찾아 보는 까닭도 그래서이지 않을까? 조금은 어렵고,읽으면서 그러지 못함에 반성을 하기도 하지만,그런 과정이 왜 필요한 지를 알게 되는 것.저자 역시 철학 공부를 오랫동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완전한 혹은 부끄러운 자신을 본다고 했다.때로는 세상속 사람들을 통해서,그리고 때론 앞서 살았던 선배들의 책들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머릿말에서 풀어낸 비밀 때문에 맥이 살짝 빠졌다고는 했지만,이렇게 멋진 제목이 또 있을까 생각했다. 열심히 사고 한다고 하지만 결국 나와 타인의 작은 다름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때론 책에서 배운대로 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적 문제가 되면 얼마나 달라지는지,마치 책 속에서 수많은 현실을 보고 나를 돌아본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현실에선 책과 달리 행동할 때마다 얼굴이 여간 화끈 거리는 것이 아니다.그럼에도 저자가 책 속에 소개한 책들을 메모하는 내 모습~^^

애써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란,지금은 아니지만 열심히 훈련을 통해 언젠가는...이란 상상!!

철학은 지옥에서 하는 것이다 라는 1장의 주제에 실린 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철학은 인간 안에 자기 극복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모든 것을 잃은 지옥에서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음을,아니 모든 것을 잃었기에 오히려 인간이 가진 참된 것이 드러난다는 걸 철학은 말해준다.깨달음은 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천국에는 우리 자신에 대한 극복의 가능성도 필요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래서 천국에는 철학이 없고 신은 철학자가 아니다.철학은 지옥에서 도망치지 않고 또 거기서 낙담하지 않고 지옥을 생존조건으로 삼아 거기서도 좋은 삶을 꾸리려는 자의 것이다./20

w*******i 2014.06.0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eBook
철학자와 하녀 -고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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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분께 추천을 받아 읽기 시작했는데 철학자라는 단어가 주는 거리감과는 달리 상당히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철학책이라기 보다 조금은 딱딱하지만 울림을 주는 에세이라고 봐도 될듯한데 강신주씨의 책과는 또 다른 느낌. 철학은 우리 멀리에 있지 않다는 것. 조금더 가치있는 인생을 살기위해, 조금더 자신을 더 잘알기 위해 필요한 것이 철학이라는 사실을 무겁지도, 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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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분께 추천을 받아 읽기 시작했는데 철학자라는 단어가 주는 거리감과는 달리 상당히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철학책이라기 보다 조금은 딱딱하지만 울림을 주는 에세이라고 봐도 될듯한데 강신주씨의 책과는 또 다른 느낌. 철학은 우리 멀리에 있지 않다는 것. 조금더 가치있는 인생을 살기위해, 조금더 자신을 더 잘알기 위해 필요한 것이 철학이라는 사실을 무겁지도, 또 가볍지도 않게 전하고 있다. 내 수준에 딱 맞는, 아니 살짝 높지만 읽어나갈 수 있을 정도의 이야기.

 

'철학한다는 것은 곧바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지름길을 믿지 않는 것이다. 삶의 정신적 우회이다. 삶을 다시 씹어보는 것, 말 그대로 반추하는 것이다. 지름길이 아니라 에움길로 걷는 것, 눈을 감고 달리지 않고 충분히 주변을 살펴보는 것, 맹목이 아니라 통찰, 그것이 철학이다. 철학은 한마디로 초조해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지금 다소 초조한 상태이다. 삶을 다시 씹어보니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인 것이다. 갈림길에 서거나 길이 막혔다면 잠시 멈추어 생각해보고 하나의 길을 고르거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문구를 어디선가 보았다. 나에게 자코토 같은 스승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어쩌면 언젠가는 내가 자코토 같은 선생이 되기위해 발버둥치는 시기가 올지도 모를일이다. 그가 '인간이 할수 있는 것이라면 당신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듯이.

 

푸코는 철학이란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가를 알아내려는 노력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를 깨우치게 만드는 문구이다. 어떻게 나를 당신을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가.

 

이밖에도 해석노동(interpretive labor)의 개념도 흥미로웠는데 관리자급으로 올라갈 수록 해석노동에 관심을 덜쏟게 된다는(남녀사이에서도 발생) 개념은 동시에 보고 있는 두 낫씽(Do Nothing)이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등장하고 있어 흥미롭게 볼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이러한 경향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만 따뜻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말이라고나 할까.

b******o 2014.09.3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눈을 들어 별을 보자 [철학자와 하녀] 고병권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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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도 더 지난 시절, 고등학교 3학년 때 저녁 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에 가려고 신발을 갈아신다가 하늘을 보았다. 산중턱을 깎아 만든 학교에서는 그때만 해도 별이 꽤 많이 보였다. 마침 하늘에서 별똥별이 죽 지나간다. 그 짧은 시간에 나는 대학 합격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고, 그 덕분인지 학에 합격했다. 후 20여 년을 지내면서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서 졸업하고 직장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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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도 더 지난 시절, 고등학교 3학년 때 저녁 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에 가려고 신발을 갈아신다가 하늘을 보았다. 산중턱을 깎아 만든 학교에서는 그때만 해도 별이 꽤 많이 보였다. 마침 하늘에서 별똥별이 죽 지나간다. 그 짧은 시간에 나는 대학 합격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고, 그 덕분인지 학에 합격했다. 후 20여 년을 지내면서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서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지금, 그때보다 더 행복해졌다거나 하는 자각은 없다. 이제는 밤에도 너무 환해서 별을 보기가 어렵고, 또 굳이 밤하늘을 올려다볼 마음의 여유도 없으니, 나에게 별은 고작 이 정도의 의미일 뿐이다. 말 그대로 별 볼 일 없는 삶인가.

 

그러나 <철학자와 하녀> (2014, 고병권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에는 별에 대한 이야기 여럿이 소개된다. 우선 '철학자와 하녀'라는 이 책 제목을 만들어낸 기원전 500년대에 트라케에 살았던 하녀가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인 탈레스가 별을 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진 것을 보고 "탈레스는 하늘의 것을 보는 데는 열심이면서 발치 앞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고 비웃은 하녀 말이다.

또 하나의 별은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말한 것으로, “내 마음을 늘 새롭고 더 한층 감탄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속에 있는 도덕률이다.”에 등장한다.

노들장애인야간학교 학생이 엠티에 가서 만난 별은 '변혁, 일깨움, 각성, 용기'를 주었고, 2003년 뉴욕을 덮친 정전에서 사람들은 별을 만났고 이타적인 공동체를 세웠다고 저자는 적었다.

 

저자는 '발치만 보느라 어디로 걷는지 모르는 사람'으로 비웃음당하는 이 하녀가 어느 날 마침내 밤하늘의 별을 보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묻는다. <철학자와 하녀>는 이처럼 현실에 매몰되어 철학, 풀어 말하면 지혜에 대한 사랑을 잃은 이들에게 일상에서 생각하는 삶을 전해준다. 그래서 '철학은 지옥에서 하는 것'이라는 강력한 말이 1장의 제목으로 쓰였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철학은 학문이 아니라 일상이다. 배움과 존재, 소유, 욕심, 자유, 용서, 저항, 공감, 역사. 이 많은 철학적 개념들은 종교와 역사, 철학의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존재론'에서는 불교의 지장보살이 등장하고, '초조함'에서는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와 페르세우스 이야기가, '영혼과 신체'에 대해서는 니체와 플라톤의 사상이 거론되는 식으로 말이다. 학업 공동체인 '수유너머'를 설립해 운영한 세월, 이 공동체를 떠나 미국에 머무르던 시절, 그리고 돌아와서의 이야기가 간간이 섞이면서 저자의 삶은 이런 철학이 어떻게 삶에 녹아드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그러나 저자가 아무리 흥미롭고 쉽게 풀어주어도 철학은 여전히 어렵다. 생각하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뉴스를 이루는 강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나이를 핑계로 배우려는 마음을 접으며, 입때껏 이룬 것도 가진 것도 없다는 초조함으로 근시안적인 선택을 한다. 장애인과 성소수자와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며, 선거일에 투표하는 것 외에는 정치와 사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이 별을 보지 않는 하녀의 모습이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옳은 말은 그저 옳은 말일 뿐이다. 그것이 내 것이 되려면 내 안에서 다시 체험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내 안에서 다시 체험하려면 우선 말의 씨앗을 마음에 심어야 하는 것. <철학자와 하녀>는 내게 그런 씨앗이다.   

y*****9 2014.06.1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철학자와 하녀 - 현실 속에서 펼쳐지는 철학적 사유는 무거우면서도 유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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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 님의 책은 니체에 대한 책을 읽은 후로 10년만인 것 같네요. 까다로운 니체 철학을 수월하게 풀어낸 덕에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이번에 읽게 된 책은 철학 에세이네요. 철학이 늘 사람들의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저자이니만큼 이 책에서는 저자의 강점이 가장 잘 발휘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더군요. 머릿말에 작가의 그러한 성격이 잘 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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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병권 님의 책은 니체에 대한 책을 읽은 후로 10년만인 것 같네요. 까다로운 니체 철학을 수월하게 풀어낸 덕에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이번에 읽게 된 책은 철학 에세이네요. 철학이 늘 사람들의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저자이니만큼 이 책에서는 저자의 강점이 가장 잘 발휘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더군요. 머릿말에 작가의 그러한 성격이 잘 드러나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철학이 하늘의 별만을 보는 것이라면 그것은 한가하고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리지만, 그 대척점에서 현실감각이 빈민을 양산하는 현실에 대한 추인이 되어버린다면 그것 역시 노예의 자기위안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책은 내내 이 인상적인 머릿말을 변주하며 흘러가고 있더군요.

 

 편안하고 담담하게 조곤조곤 들려주는 철학자의 생각은 수월하게 읽히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더군요. 현실감각을 잃지 않는 책이기는 합니다만 역시 철학자의 글답게 많은 부분 하늘의 별에 손을 뻗고 있었습니다. 별을 잡건 잡지 못하건 그러한 뻗음 자체가 유익하고 유의미할 수 있음을 섬세하게 드러내면서 말이죠. 인생을 두 번 살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비트겐슈타인의 도전적인 삶은 안주하기만을 원하는 스스로를 돌이켜보게 합니다. 네덜란드어를 전혀 모르는 프랑스인 강사인 자코토가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네덜란드어 학생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낸 일화는, 그것을 가르쳐낸 스승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배워낼 수 있는 사람의 잠재력에 놀라게 되었습니다. 집회에 참여했다 폭력 진압에 상처를 입은 한 장애인이 그런 폭력에 경악하는 대중의 반응에 오히려 놀라워한 일화는 번히 눈을 뜨고도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과 철학자의 눈을 가진 사람의 차이를 명백하게 드러내는 일화였고요. 그런 소중한 일화들에 의미있는 철학적 주석을 달아가는 고병권 님의 글의 여정은 읽는 내내 스스로를 돌이켜보게 만들더군요. 

 

 특히 책 속에서 인용된 루쉰의 글이 기억에 남는데요, 루쉰은 제가 생각했던 바와는 달리 아주 강렬하고 적극적인 인물이더군요. 인생의 쓴맛을 그대로 담아내며 독자를 직격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괴롭하면 일단 한숨 자고 생각해보라, 여정 중에 배고파 죽을 지경이면 음식을 빼앗아서라도 살아남으라, 호랑이를 만나면 나무 위로 피해보고 그래도 결국에 죽을 지경이 되면 시체라도 넘겨주지 말라, 별수 없이 먹히게 된다면 차라리 호랑이를 깨물어보기라도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이상을 놓치지 않는 루쉰의 균형감각이 인상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조만간 루쉰의 책도 읽어보고 싶어지는 소개였네요.

 

 책의 후반부는 좀 더 직접적이고 날이 선 현실 비판이 등장하게 됩니다만 전체적으로 일상 속에서 잊고 있는 것을 편안하게 들려주고 있는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까지 편안하게 현실 속에서 철학적 사유가 펼쳐질 수 있구나 싶어 유쾌하기까지 한 독서였네요. 누구에게나 읽어볼만한 첵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리뷰 총점 종이책
근본적인 철학을 만나다, 철학자와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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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제목을 보면서 <철학자와 하녀>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라는 의구심을 떠올리게 된다. 철학자와 하녀라니 과연 이 공통분모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해보아도 도통 그 문제의 답을 얻어낼 수가 없다. 철학자와 하녀는 전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니 말이다. 철학자라는 이들에 대한 이미지는 그저 그들만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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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제목을 보면서 철학자와 하녀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라는 의구심을 떠올리게 된다. 철학자와 하녀라니 과연 이 공통분모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해보아도 도통 그 문제의 답을 얻어낼 수가 없다. 철학자와 하녀는 전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니 말이다. 철학자라는 이들에 대한 이미지는 그저 그들만의 세계 안에서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도 그들만의 눈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보통이라면 하녀라 함은 그러한 철학적인 문제를 떠올리기는 커녕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서 부단히 지내야 했던 이들이다. 가만히 생각해도 그 둘의 교집합을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어 멍하니 있는 나에게 저자는 서문에서 쉬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전해주고 있다

철학이 일상의 삶과 무관하게 저 하늘의 별만을 보는 것이라면 가난한 사람들이 지적하듯 철학은 한가한 일이나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떠받드는 현실 감각 역시 그들 자신을 빈민으로 양산하는 현실에 대한 추인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노예의 자기 위안에 불과할 것이다. 이처럼 철학과 가난한 사람이 대립하는 곳에서는 철학도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도 불행하다. 철학은 기꺽해야 현학적 유희이거나 비현실적 몽상에 불과한 것이 되고, 가난한 사람은 현실 논리를 재빨리 추인함으로써 영리한 노예, 성공한 노예가 될 뿐이다. -본문 

 그저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철학자와 하녀를 보면서 저자는 그들 자신이 가진 벽을 허물기 위해서 철학자만이 가진 철학을 하녀에게 전해주고 하녀가 가진 현실의 눈을 철학자에게 전해줄 필요가 있다 생각을 했다는 것을 보면서 이 책이 일반적인 철학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조금더 살갑게 다가올 책이라는 것을 느끼며 안도의 마음을 안고서 읽어내려가기 시작한다.

 학창시절을 넘어 지금도 가끔 공부를 해야지, 할때면 그 준비하는 시간부터가 벌써 요란하기 마련이다. 교재는 어느 것이 좋으며 조금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며 학원을 가야하는지 동영상을 들어야 하는지, 독서실을 끊어야 할지 집에서 해야할지 오만가지의 생각들이 중첩되면서 공부를 시작하기 전부터 삐걱거리기 마련인데 사전준비가 철저히 필요하다고 말하는 데카르트와 사전준비가 필요 없이 공부를 시작해야만 앎이 시작된다고 이야기하는 스피노자의 이야기를 보면서 이전의 내가 공부했던 모습에 대한 회한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데카르트가 든 예씨에 스피노자의 생각을 풀어보자면 이렇다. 아마도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모루'같이 세련된 것이 곧 바로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망치로 쓸 수 있는 것은 주변에 널린 자갈에 지나지 않고, 집게라고 하는 것은 그저 나뭇가지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인식의 시작이고 공부의 시작이다. 우리가 그것들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한에서 말이다. -본문 

 연장을 탓하기는 했으나 늘 시험이 앞에 다가올 수록 내 스스로의 준비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을 늘 깨달았으면서도 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때 공부를 위한 준비로 더 많은 시간들을 소비하는 헛된 반복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 순간 만큼은 스피노자의 이야기에 한 표를 던지며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현재의 우리가 조선시대를 마주하게 되면 종종 '전근대적이다'라는 평가를 많이 하곤 한다. 그 당시 조금더 문호를 개방하고 세상을 일찍 마주했더라면 우리는 더욱 발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이야기들을 듣게 되는데 이미 지나온 길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우리의 눈에는 아쉬운 점들이 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더 좋은 길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는 '전근대적이다'라는 평가에 대해서 과연 초점을 제대로 맞추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먼저 우리에게 물어보고 있다.

노사관계는 전근대적이고 '전근대적'이라고 말하는 그런 관행은 근대사회인 우리 사회의 병페이지 전근대사회에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치부를 과거 사회에 책임 지우는 우리 시대의 못된 습관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의 한탄에 공감이 간다. 그는 이 땅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왕조, 무려 오백년을 지속한 조선의 체제가 가진 ''이 무엇이었는지 우리가 잘 모른다고 말한다. -본문 

 조선시대에 대한 평가 뿐만이 아니라 장애인이었던 한 남자가 집회에 참여했다가 강력한 억압을 받는 순간을 목도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인에게 무리하게 법을 집행한 주체에 대해 비난을 하며 그 자리에 있었던 장애인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는 오히려 사람들의 그런 시선에 대해서 되물어보고 있다. 전근대적이고 말하는 것은 현재 우리가 과거에 잘못을 넘기려 하는 것과 같이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어서 곁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저자는 철학이라는 이름을 벗어던지고 그 안에 있는 것을 다시금 마주할 수 있게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전근대적인 사고를 안고 현대를 살고 있는 것이 누구였는지에 대해서 절실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나는 철학자도 하녀도 아닌 그저 별볼일 없는 하나의 인간으로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철학자와 하녀의 그 중간에서 살기 위해서 익숙한 그 순간에도 눈을 뜨고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껴본다.

 

 

아르's 추천목록

 

『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저


 

 

독서 기간 : 2014.06.06~06.08

by 아르

 



p********1 2014.06.0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