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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서적에서 나오고 있는 '10 그레이트 이펙트' 시리즈라는 게 있다. 역사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10권의 책을 선정하여 말 그대로 오늘날까지 그것이 어떤 의미와 영향력을 가졌는 지 살펴보는 시리즈인데 '국가론 이펙트'는 그 중 여덟 번째 책이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플라톤의 대표적인 책 '국가론'을 다루고 있다. 정치철학 방면에 있어서 '국가론'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최초로 '정체'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한 책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여기서 당시 정세적으로 혼돈 상황에 있었던 아테네를 투영하여 보다 굳건한 정치체제의 설립을 사유한다. 현명한 1인의 철인을 중심으로 한 각 자의 덕목에 맞게 주어진 각 자의 직분에 저마다 최선을 다하며 유기적으로 짜여진 체제. 이것이 플라톤이 바라던 국가의 이상적 모델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 모델은 늘 독재정치와 전체주의를 가져올 위험이 있다. 원래 플라톤은 귀족주의자에다 엘리트주의자로 그만큼 민주주의를 우매한 대중들에 의한 정치라고 부정적으로 여겼던 그이므로 그러한 위험은 더욱 크다고 하겠다. 아니나 다를까 세계 2차 대전을 일으켰던 히틀러의 나치는 이것을 자신들 체제의 정당성 근거로 내세우기도 했다. 때문에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쓴 칼 포퍼는 그 책에서 플라톤의 국가론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플라톤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큰만큼 명암이 뚜렷하게 존재한다. 영국의 유명한 사회철학자이기도 한 사이먼 블랙번은 원래 자신은 플라톤에 대해 회의적이었음을 밝히면서 '국가론'이 가진 명암을 조금의 가감도 없이 객관적으로 서술해 놓는다. 그런 이유로 국가론이 가진 가치와 한계를 살피는 데 가장 좋은 안내서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고 이 책을 그저 국가론에 대한 해설서라고만 여기면 곤란하다. 사이먼 블랙번은 플라톤이 그 책에서 무엇을 말했나를 중시하기 보다는 오늘에 와서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행한 사유 실험이 어떤 의미가 있을 지에 더욱 천착하기 때문이다. 사이먼 블랙번은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했던 가장 중요한 사유 실험은 어떤 측면에서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가장 비중있게 다루었던 사유 실험은 실제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되었는데 그건 투기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 기록된 아테네의 밀로스 침략이라고 한다. 당시 스파르타로부터 위협당하고 있던 아테네는 다른 속국들이 아테네로부터 이탈하여 힘을 감소시키지 않도록 키클라데스 제도 서쪽에 있는 조그만 섬 국가인 밀로스를 침략한다. '국가론'이 나오기 40년 전의 일로 당시 아테네는 38척의 전함과 1만 명의 병사를 밀로스에게 보냈지만 밀로스에선 고작 500명의 병사가 이에 맞서야 했다. 그만큼 힘의 격차가 있었다. 밀로스는 도덕적 견지에서 이같은 강자가 약자를 함부로 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들어 자비를 베풀고 물러가 줄 것을 부탁한다. 늘 명예와 정의를 외쳐왔던 아테네였기에 그리했던 것이지만 아테네는 거부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이익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의 관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좀 추상적인 차원에서 법을 보자면 거기엔 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자연법이고 다른 하나는 '노모스'다. 노모스는 흔히 규범이라 번역되는 것으로 어떤 공동체에서만 통용되는 법을 말한다. 이런 이유로 대체로 관습법으로 많이 번역된다. 반면 자연법은 그러한 공동체의 한계를 벗어나 인류 보편의 이성에 따른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세상 어디에서나 항구적인 모습으로 적용되는 '정의' 같은 것 말이다. 아테네와 밀로스 사이의 논쟁은 그러니까 자연법과 노모스 즉 관습법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밀로스는 자연법을 들어 아테네의 침략을 비난했지만 아테네는 자기들만의 노모스를 들어 침략을 정당화한다. 사이먼 블랙번에 따르면 플라톤의 국가론은 이같은 노모스의 한계를 벗어나는 데 있다고 한다. 문제는 노모스가 어떻게 형성되는가 이다. 플라톤은 이것을 내면화의 과정이라 본다. 타인의 시선이 없었다면 노모스가 내부에 자리잡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거다. 이러한 내면화된 노모스를 극복하고 어떻게 하면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뛰어 넘어 무사공평한 입장에서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추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비중있게 벌인 사유 실험의 중요한 목표였다고 사이먼 블랙번은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플라톤의 문제 의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단적인 예로 세월호의 참사가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플라톤의 철인은 바로 그러한 무사공평의 견지에서 철두철미하게 이성에 기반하여 도덕적으로 행위하는 자를 뜻한다. 바로 그러한 철인 정치로 나아가기 위해 플라톤은 초반에 노모스의 가장 강력한 대변자인 트라시마코스와 글라우콘을 논쟁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트리시마코스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글라우콘은 '기게스의 반지'를 들어 우리가 도덕을 지키는 본질적인 이유는 그것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플라톤의 이들의 관점을 논박하면서 좀 더 자연법적인 의미에서 도덕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자원들을 모아간다. 지금까지 국가론은 어디까지나 정체에 대한 철학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사이먼 블랙번은 여기에 전혀 새로운 빛을 던져주었다.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강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습속적인 것'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사유의 참조로서 '국가론'을 가져온 것이다.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이 어리석은 자와 동의어가 되는 세상이다.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익에 야합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치부되는 세상이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에 불과하고 기게스의 반지가 없더라도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파렴치한 발언을 일삼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 자들이 사회의 윗 부분을 차지하고 총리까지 넘보고 있다. 개탄을 후크송의 후렴구처럼 반복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 어쩌면 오늘의 절망, 오늘의 탄식은 나도 일상에서 늘 저지르고 있는 타협에 근본적으로 배태되어 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 타협이나 타산을 늘 방관한다면 나 역시 언젠가 오늘의 괴물들처럼 될 지 모르겠다고. 어떻게 사는 게 옳게 사는 것인가? 지금의 세상은 이러한 질문을 더욱 근본적으로 요청하는 것 같다. IMF는 우리에게 그저 현실적 이익을 쫓는 것만이 진리라고 여기게 했지만 결국 그것이 가져오는 건 지옥 밖에 없음을 우리는 지금 여기서 똑똑히 보고 있는 것 같다. 그 지옥 속에서 무의미한 화염으로 사라지지 않기 위하여 사이먼 블랙번을 경유하여 바라본 '국가론'에서의 물음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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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이란 누구나 알지만 읽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전 세계에 해당 되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하는 고전이 누구에게나 있을것이다. 나에게도 그 몇권이 있다. 그중 한권이 바로 [국가론]이다.
그러나 쉽게 손이가지 않는다.나중에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그때 보겠다고 했는데 벌써 꽤 오래 됐다. 그러다 최근 고전 읽기에
빠졌다면 빠졌다. 한달에 두 권 이상은 고전을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어렵다는 이유로 후순위에 있는 국가론을 반갑게도
'세종서적'출판사에서 어려워 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쉽게 이해하면서 만날 수 있는 [국가론 이펙트]가 출시가 되어서 국가론을 만나기
전에 먼저 만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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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번이 다시 쓴 플라톤의 국가론을 낱낱이 파헤쳐 보자. 플라톤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지끈한 인물이다. 대학시절 국가론을 읽고 작성하는 레포트가 있었다. 이 책을 들기만 하면 몰려오는 잠이며 이해할 수 없는 글들에 곤혹을 치룬 일이 있었다. 이해하지 못하고 논점이 없이 죽 써내려갔던 레포트를 생각하면 철학자 플라톤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다시 읽는 국가론 어떨까? 블랙번이 말하는 플라톤, 오늘날에 어떤 영향을 끼쳤던가 한 개인이 그를 다시 읽게 만든다. 처음 책을 열었을 때 좀 의아했다. 블랙번이 플라톤에 대해 전혀 몰랐고 접근하려는 의도로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쓴다는 투의 역설이었다. 그래서 더 몰입이 된다고 해야 할까? 작가의 부정적인 관점 아니면 지지하지 않지만 억지로 써 내려가는 글 속에 묘한 매력이 있다고 할까? 처음에는 이것이 비판서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문득 독서를 할 때 비판적으로 읽으라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어쩌면 이 책은 독자를 대신해 비판적으로 꼬집기를 대신해 주는 책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론 이팩트 역시 어렵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당체 헤매게 했다. 그렇지만 정말 이번엔 제대로 읽고야 말겠다는 시각이었다. 첫 몇장은 심하게 어렵더니 읽어내려 갈수록 조금씩 와닿는 부분들도 있었다. 이 책을 백프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대학때 의미없이 써내려갔던 국가론을 생각하면 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선거철이라 그런지 국가론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책에는 통치자의 절대 권력에 대해 언급해 있다. 계급사회에 살면서 유능한 통치자를 만나는 일은 국가적 차원에서 흥망을 좌우한다고 보여진다. 이 리더들은 유능해야 한다. 그리고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국가를 이끄는 그 무거운 짐을 가볍게 짊어지고 명쾌한 해결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수한 리더를 잘 선별하는 일도 어찌되었든 대중에게 달려있다. 복잡 다양한 이 시대를 이끌어줄 진정한 리더가 독수리 오형제처럼 이 나라를 세계를 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마저 하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이상주의 국가에 도달하는 것일까? 플라톤이 꼬집는 것은 정의로움에 대해 인간의 원조척인 도덕적 자아에 관점을 두고 있다. 결국 모든 문제들이 개인의 존재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라는 논점에서 산은 원래 산이었고, 물도 원래 물이었다라는 관점에서 된다. 원래대로 돌아가라. 이것이 그가 답일까? 정말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이것은 미래에 대해 더욱 생각하게 만든다. 현재의 내가 미래를 반영하게 만든다는 건 엄청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도덕...내 도덕적 자아는 어디에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상주의 사회인가, 유토피아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직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다. 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 그의 지식과 이론과 철학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마치 어떨 땐 그가 신인가 싶기까지 하다. 지식의 가치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저명한 철학자의 생각과 사상이 수세기를 걸치면서 이렇게 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일이란 심장 떨리는 일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익히 들어봄직한 친근한 이름들, 전 세계의 그 누군가의 가슴을 무수히 떨리게 하는 철학자들이다. 가장 많이 사랑받지 않았을까? 문명의 발달이 미개하던 시절에 어떻게 지금 읽어도 진부하지 않은 사상과 철학들을 갖게 되었을까? 그것도 미래에 가치있는 고민들을 앞서 해주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마음이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대화를 통해 배우고 고찰했다. 대화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공부이고 철학적 고찰이 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은 원래대로 돌아가야 된다. 결국 모든 원점은 인간이라는 작은 단위 존재인 것이다. 정의사회, 이상사회도 결국 인간이 종속된다. 종속관계의 인간이 도덕적 자아를 회복할 때 결국 국가의 성장과 발달을 관장한다고 여겨진다. 절대권력의 통치자 이도 바로 인간이다. 인간이 인간성을 회복할 때 우리는 진부한 과거를 벚어나 원대한 포부로 미래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철학자를 타임머신을 타고 만나본 느낌이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해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저자의 비판적 시각도 좋았고, 그 시각이 책을 읽는 내내 변화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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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론을 읽기 전에 선이해를 돕는데 유용한 책이다 작금의 시기가 국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견해와 담론 등이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벌이지는 시기에 살고 있다 근래의 시대와는 달리 강성 극우 국가 지도자들의 다수 등장과 자국 무한이기주의로 국제 정세가 또한 심히 요동치고 있고 한국은 군부 독재 시대를 마감하고 민주화 시대를 접어들면서 집권한 정권들은 국민의 요구를 충족치 못하고 국민의 안위를 지키지 못한 무능을 보여 왔다 이와 같은 시점에서 다양한 국가의 존재와 구성에 대한 담론을 듣고 관점을 정리하기에 앞서 국가론의 원조격이라 할 플라톤의 저서를 이해하기 쉽도록 안목을 잡아주는 책으로 바른 가치 정립에 유용하리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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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국가론 이펙트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읽어야 할 고전들이 여러권 있다.
그 중에서도 플라톤의 국가론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필독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플라톤이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철학을 떠올리며 어렵다 난해하다 의 단어들이 뒤따른다.
나 역시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한 사람인 것이다.
책의 서두에 시작한 저자의 전공자가 아님이 왠지 나에게도 반가운건 무엇일지......(한참을 웃었다)
이전에 국가론을 보았지만 아직까지도 어려운 얘기인지라 여전히 어렵게만 느껴진다.
희미한 기억에 의하면 정의란 국가 없이 존재한다는 것과 엘리트 지배계급들...그리고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왜 그런지에 대해서 수 많은 설명을 보더라도 이해는 가지 않았고 수많은 생각과 고민을 해야 겨우
이해 할 수 있는 것임에 나에겐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본 서 국가론 이펙트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철학과 석좌 연구 교수로 재직중인 사이먼 블랙번이
집필한 책이다.
플라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 플라톤의 글에 대해서 쓴다는 것이 어딘가 안맞아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는 것에 나름 생각을 정리 해 보았다.
세상을 바꾼 10대의 위대한 책들
종의기원,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인권, 전쟁론, 꾸란, 성서, 국부론, 자본론, 국가론, 군주론
이 책들 중의 한 권을 읽음에 무한한 영광을 느끼지만 아직 내것으로 그 어느하나 소화하지
못했음에 나의 짧은 지식과 이해력을 탓할 뿐이였다.
과연, 인간이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정답이 무엇일까?
인간에 대한 물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그 최초의 생각과 고찰은 아무래도
지금의 인간은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심오 했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많은 부족함을 느끼며 방할이 다가오면 다시 한번 꼭 보리라 하며 다음 기회를 기약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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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머리를 쥐어뜯은 경험은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다. 그만큼 나에게는 이 책이 상당히 어려웠다. 학교 다닐 때 돌려보던 족보나 자습서, 요약서 등을 생각하며 책을 집어 들었던 나에게 이 책은 플라톤의 <국가론> 그 자체보다 더 어려운 해설서였다. 이 책을 국가론에 대한 해설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구성 자체는 해설서처럼 보인다. 국가론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부분을 발췌하여 제시한 후 그와 관련된 주제를 풀어나가는 형식이기에 얼핏 보기에는 각 내용에 대한 저자의 해석을 토대로 각각의 주제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자 자신이 말하듯 플라톤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는, 오히려 플라톤과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처럼 현실, 경험론자인 저자는 플라톤의 국가론에 대한 자신의 견해나 해석을 덧붙이는 것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플라톤 이후의 수많은 사상가, 시인, 작가들의 작품이나 사상 속에서 플라톤의 사상이 어떻게 함께 어우러지는지 혹은 어떤 비판을 받는지를 보여주면서 플라톤의 사상에 담겨있는 수많은 함축적 의미들을 독자의 눈앞에 펼쳐놓는다. 그렇기에 이 책이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플라톤 하나만으로도 머리에 쥐가 날 정도인데 거기에 칸트나 데이비드 흄, 기독교적 세계관, 수학적 관념 등이 더해지니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머리를 쥐어뜯지 않고 책을 읽어 내려갈 수 있었을까?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끝까지 보는 성격인지라 마지막 문장까지 쭉 읽어 내려갔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보일 듯 말 듯 하면서도 그 실체를 잡기 어려웠던 저자(블랙번)의 생각은 다음 문장을 읽고 나서야 저자가 플라톤의 <국가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국가론>의 Ⅸ권은 마음의 상태와 영혼의 조화에 대해 선한 사람이 보이는 관심과 그 사람의 위엄에 관해 더 많은 생각을 하면서 끝을 맺는다. [중략] 그것은 이상적인 삶과 사회를 제시한 것이 실제적인 제안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결점이 무엇인지 가늠해줄 수 있는 척도로 삼기 위함이라는 사실이다.”(p.212) 이 책은 어느 정도의 철학적 기본 소양이 있는 사람에게는 유용할지 몰라도 앞에서 말했듯이 국가론에 관한 기본 입문서로 생각해서 읽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국가론 그 자체보다 더 어려운 책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플라톤이라는 인물과 국가론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해 여러모로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수학적(과학적) 관점 혹은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플라톤의 사상은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눈을 돌려 플라톤을 바라보았듯이 우리의 시선을 플라톤과 <국가론>에 돌리게 하였다는 것, 또한 다시 한 번 이 책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것, 바로 그 점이 이 책이 가진 최대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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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전을 읽은 이유는 그것이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마르지 않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고의 능력’이라고 보면, 사고의 폭을 넓히고 깊게 하는 고전이야 말로 인간 문명의 보석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여기에서 꼭 요구되는 것은 읽는 자가 그것을 쓴 자의 명성이나 권위에 짓눌려 그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믿거나 따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또 반골기질을 가진 자처럼 그 명성과 권위를 혐오하여 부조건 비판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전의 숲을 거닐면서 그 안에서 내 주관과 의지를 발휘하여 배우고, 사색하고, 의심하고, 추론하고, 내 생각을 곁들어 해석하고, 때로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어야 한다. 이러한 독서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의 사고 능력은 자연스럽게 넓어지고 깊어지며, 인간과 역사, 사물에 대한 통찰력이 싹틀 것이다. 서양 철학사, 아니 서양 문명사에서 플라톤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 서두에서 인용하고 있듯이 화이트 헤드는 유럽 철학이란 플라톤 철학에 대한 일련의 주석이라고까지 말했다. 물론 이 책의 저자고 화이트 헤드의 말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했으나, 플라톤을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간에 서양 철학 전체가 플라톤이 드리운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매우 많은 플라톤의 저작 가운데에서도 <국가론>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플라톤이 자신의 철학적 사유가 충분히 숙성하였을 때 쓴 책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아테네가 스파르타와 한창 전쟁을 치르고 있던(펠로폰네소스 전쟁) 때에 태어나 아테네가 패전하고, 아테네의 민주 정치 체제가 퇴화하고 변질하면서 그 와중에 스승이자 친구였던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처형당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의 철학을 전개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서 플라톤의 철학을 바라보는 것이 플라톤의 사고를 좀 더 이해하는 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플라톤 같은 거두라고 하더라도 그 시대적, 공간적 배경의 영향은 결코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 독자도 마찬가지인데, 독자도 자신이 처해져 있는 상황에 따라 같은 책이라도 해석의 방향이 달라진다. 이 책 <국가론 이펙트>는 <국가론>을 긍정적 입장에서 해석하거나 부정적 입장에서 해석한 책은 아니다. 플라톤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저자는 오히려 그 점 때문에 플라톤과 얼마 간의 거리를 두고 ‘현대적’ 관점에서 ‘관찰자적’인 시각으로 플라톤에 대한 역대 철학자들의 저작을 참고하면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국가론>을 읽고 있다. ‘읽고 있다’는 표현은 이 책이 <국가론>을 주해한 책은 결코 아니기 때문에 쓴 것이다. 어쩌면 저자는 우리에게 고전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해 준 책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그 책이 그 동안 독자의 상상력에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 또 앞으로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런 이해를 구해보고자 하는 소박한 시도이다.”라고 이 책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관례적으로 <국가론>은 10권으로 나뉘는데, 이 책도 그 순서를 따라가면서 논란이 되는 부분을 발췌하고, 또 저자가 보기에 중요하다 싶은 부분을 드러내 역대 철학자들의 주장을 보여주거나, 과학적이고 현대적 관점에서 플라톤의 주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어떻게 해석할 수 있으며, 어떤 오류가 있고, 어떤 점은 배울 점이 있는지 자신의 의견을 붙이고 있다. 칼 포퍼는 플라톤을 가리켜 사기꾼이라고까지 악평했다. 플라톤이 주장한 ‘철인 정치론’을 인간의 개성과 자유를 억압하고 학살하는 전체주의와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국가론>이 비록 그 안에 유토피아주의, 전체주의, 신비주의와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더라도, 결과적으로 플라톤의 주장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고 말한다. 플라톤은 항상 ‘선’과 ‘도덕’을 이야기했으며, 마음에 ‘조화로움’이 있는 것이 곧 ‘선’의 상태이며, 조화로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양심에 위배되지 않는 ‘순수한 상태’여야 하며, 이것이 곧 ‘행복’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플라톤의 뜻을 이해하고 그의 책을 읽는다면 칼 포퍼와 같은 악평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또 그의 주장이 국가나 국제 관계까지 확장해서 적용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겠지만, 개인의 도덕적이고 행복을 추구하는 삶에는 분명 교훈이 되는 점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비록 두껍지는 않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차분히 읽다 보면 내 지성과 이성, 도덕과 양심에 형언하기 어렵지만 무엇인가가 스며들어오는 느낌이 있을 것이다. 이것 또한 독서의 기쁨이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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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플라톤을 좋아하시나요? 일단 서양의 정치철학을 공부하게 되면 누구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얘기가 바로 플라톤의 『국가론』입니다. 특히 동양에서 공부하러 온 학생이라면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을 동양의 대동사상이나 태평세 같은 이상론과 비교하게 됩니다. 플라톤은 명실상부 유토피아적 이상주의의 대부격이니까 말입니다. 정치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세계 모든 정치사상의 핵심이 '안거낙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너무 단순하다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동서양 성현들이 꿈꾸었던 이상국가는 하나같이 사람들이 편하게 살 수 있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동안 플라톤의 여러 저작을 읽었지만 그가 글에서 재현한 소크라테스(특히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향연'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에 호감을 느낀 적은 많지만 막상 플라톤이란 인물에 대해선 이렇다할 호감과 감명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러합니다. 물론 플라톤에게 호감을 느끼시는 독자분들도 적지는 않을 겁니다.
저는 플라톤 숭배자도 아니고 지지자도 아닙니다. 이 책『국가론 이펙트』(세종서적, 2014)의 저자 사이먼 블랙번도 그러합니다. 저자는 플라톤 전공자도 아니고 이상적인 삶과 사회에 대한 플라톤적 설계에 호감을 느끼지도 않는 철학자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저자는 저처럼 '철학왕 숭배자들'이 아닌 것이죠. 그래서 저자가 논하는 플라톤 사상에 대한 평가와 인식이 궁금해집니다. 저자는 스스로를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주의적 태도를 지향하는 철학자라고 평가합니다. 현대판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가 읽어낸 플라톤의『국가론』은 어떤 모양새일까요? 오랜 세월을 견뎌낸 고전은 삼차원적 다면체의 특성을 지닙니다. 하나의 이론적 범주나 이데올로기로 고정시키기 어려운 법이죠. 플라톤의『국가론』도 단순한 정치철학서가 아닙니다. 보수적인 정치철학이라고 못박을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국가론』이 철학, 정치학, 윤리학을 모두 포괄하는 고전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모든 고대 그리스 철학의 귀결점은 윤리학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국가론』이 던지는 궁극적인 질문도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요약합니다. 플라톤은 이 책을 통해 다름아닌 윤리학의 기본 문제, 즉 바람직한 인간의 삶에 대해 질문을 한 것입니다. 플라톤은 개인의 마음과 국가의 통치체 이 두 가지 각도에서 좋은 삶의 조건과 체제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국가론』이 철학자의 사고실험에 해당한다면, 실험의 목적은 정의로운 삶, 행복한 삶, 그리고 마음의 건강에 대한 조건을 탐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행복. 바로 그렇습니다. 이를 '마음'과 '통치체'라는 두 가지 렌즈로 각각 바라본 것이 바로 플라톤의 철학입니다. 플라톤은 개인의 마음을 이성, 기개, 욕구 세 가지 요소로 구분하였는데, 한편으로는 인간 개개인이 좋은 삶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통치계급, 군인계급, 생산계급으로 구분되는 사회적인 위계질서를 합리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편, 정치적 통치체에 대해서, 플라톤은 다섯 가지 정치체제 혹은 통치체제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도덕을 중시하는 철인왕 체제, 기개를 중시하는 명예정 체제, 부를 중시하는 금권 체제, 자유를 중시하는 민주정, 그리고 일인 독재자에 의한 참주정이 그러합니다. 플라톤이 바라본 이상정치는 철인왕의 통치체제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퇴보하거나 타락하는 정치체계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나 참주정치 모두 플라톤에게는 매우 형편없는 정치체제가 되는 것이죠. 요즘 우리 사회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 특히 선거제도에 대한 불만이 붉거져 나오고 있는데 플라톤이 이 사실을 알면 기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 봐라, 하면서 말입니다.
역사상 플라톤을 위해 '악마의 대변인'을 자처했거나 자처하고 있는 학자나 지식인들이 존재합니다. 가령 화이트헤드나 에머슨 같은 학자들이 플라톤의 사상적 영향력을 극찬한 이들입니다. 반면에 서구철학에서 유럽적 전통은 플라톤에 대한 부정이 강한 편입니다. 위대한 유물론자들과 과학철학자들은 플라톤이 오류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령 니체와 마르크스, 칼 포퍼와 같은 이들이 대표적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책을 읽고 과연 누구의 입장을 더 지지할지 궁금해 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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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론 이펙트 사이먼 블랙번 지음 / 윤희기 옮김
플라톤의 ‘국가론’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다. 저자는 플라톤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철학자도 아니고 그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다. 조심스럽게 그에 대해서 알아가는 또는 피해갈 수 없는 그에 대해서 연구하는 입장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그러기에 플라톤의 국가론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입문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플라톤에 대한 최소한의 선입견으로 그의 저서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플라톤의 옹호자가 아니지만 그가 끼친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친절하게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두 거장을 서로 비교하며 자세하게 설명한다. 형이상학을 추구하는 플라톤보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더 추구할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우리를 잘 변호해 죽기도 한다. 긴 서문을 통해 그가 얼마나 고민하며 이 책을 썼는지 잘 보여준다. 그들이 말했던 것처럼 글을 읽고 세상을 알아가는 이들은 한 참 뒤떨어지고 창의성이 약하고 쉽게 고착화되어 한 이론에 휘말릴 위험이 많은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살아 꿈틀거리는 생각들을 공유하고 발전시켜가야 하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많고 그들처럼 뛰어난 능력도 없기에 이렇게 글로써 그들의 생각을 얻어가는 아쉬움이 있다. 저자의 이야기처럼 용기를 내어 나의 생각의 그림자를 찾아 나서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또한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과 함께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에 책임감과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회 정의를 외치는 이상 국가 건설은 말 그대로 이상일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우리 형편과는 전혀 관련 없는 하나의 몽상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감겨 있다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소망이 없을 것이다. 오늘도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살려는 발버둥이 필요한 시점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래저래 힘들지만 이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마음에 새로운 각오를 한다. 그리고 물음표를 던진다. ‘어떻게 살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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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준혁 교수님의 마키아벨리 '군주'를 배우면서 흥미가 생긴 정치 철학. 그리고 정치철학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톤의 군주론.
#1.
'국가론'은 플라톤이 50대 초반이던 기원전 375년경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관례적으로 국가론은 10권으로 나뉜다. (플라톤이 나눈 것이 아니라 파피루스의 길이에 맞추어 임의로 구분된 것이라 보는 것이 일반적) 일반적으로 1권은 서론에 해당하고 마지막 원은 결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지만. 극적인 측면에서나 이론적인 측면에서 두 권 모두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 . 책의 가장 첫 장P45, P46쪽에 플라톤의 국가론에 대한 대략적인 정리가 잘 나와있다.
#2
으아.....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무식한건지... 아님 작가가 너무 유식한건지.. 분명 한국어인데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잖아;;; 서론에서 이미 사람기를 확 죽여놓는다. 저자 블랙번은 옥스포트 펨부르크 칼리지의 펠로우로 재직했고 케임브리지 대학교 철학과 교수였단다. 아.. 옥스브리지는 역시 넘사벽인가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읽어보자! 하고 읽어도 중간중간 내 정신세계는 안드로메다를 헤매고 있더라. 기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에 대한 이해가 깔리지 않은 상태에서 ( 바로 나같은 상태에서) 섣불리 덤볐다간 큰코다치겠군.
#3 저자는 플라톤 전공자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한다.
'플라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에 시간을 트자하지 못할 정도로 젊은 시절의 상당 부분을 그리스 연구에 바치지 않은 사람은 플라톤에 관한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사고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는 나 자신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이 말은 내 사고의 촉수가 본능적으로 플라톤의 사상 그 자체에 닿아 있는 것이지 그 사상을 써내려갈 때의 플라톤의 상황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P43' 플라톤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그것도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은 가지고 있고 성향을 가지고 있는 철학자가 플라톤을 논한다. 새로운 시각을 가져보자는 시도였을까? 그것이 성공하였는지 실패하였는지는.... 나는 모른다. 나는 이 책을 흡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독자가 아니었기에.. 일단 한 번 책을 읽으면 무조건 끝까지 읽어는 보자는 주의기 때문에 붙잡고는 있었지만;; 큼큼;; 오기로, 도전정신으로 다 읽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다시 한 번 그 오기로 읽고픈 마음이 든다. 옥스브리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픈 지적 허세인가?? ㅋㅋㅋㅋㅋㅋㅋ
#4. 책의 정리가 깔끔하게 되어있는 건 점수를 높게 주고 싶다. 하나의 개념을 던지고 그 개념을 풀어나가는 형식의 전개. '유추', '도덕과 기개','관습과 비도덕주의' 등등의 키워드를 잡고 국가론의 한 꼭지를 가지고 와서 저자의 해석이 들어가는 그런 전개.
그리고 또하나 종이의 질이 참 좋다. 성경책처럼까진 아니지만 매우 얇고 가볍다. 많은 내용이 들어가 있지만 종이의 두께때문에 전체적 볼륨도 많이 준 거 같다.
자, 조금 더 내공을 쌓고 다시 도전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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