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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의 농가에 운석이 떨어져 운석을 찾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 지역으로 출몰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이 방문한 이유는 운석의 가격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적인 연구에도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운석을 찾고자 했다. 우리나라 진주에서는 비닐하우스에 떨어졌다고 하여 우리 밭에는 떨어지지 않나 하고 다들 기대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밭 주인보다는 습득하는 이에게 소유권이 있기 때문에 모두들 눈을 크게 뜨고 운석을 찾아 헤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운석이 만약 머리에 떨어진다면? 만약 우리집에 떨어져 내 아이의 머리에 맞는다면? 생각도 하기 싫지만, 어쨌든 개빈 익스텐스의 『우주 VS. 알렉스 우즈』는 운석에 맞은 소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운석에 맞은 한 소년과 한 노인과의 삶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따뜻하고 가슴 뭉클하다. 진정한 우정이란 건 이런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겠금 만드는 글이다.
운석에 맞아 코마 상태에 빠졌다 살아난 알렉스 우즈는 대수학과 과학에 관심이 많다. 다른 아이들과는 말도 하지 않고 오로지 혼자 만의 시간을 즐겼던 알렉스는 몇 명의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에 도망치다가 피터슨 씨의 정원으로 피신했다가 피터슨 씨를 알게 되었다. 베트남 참전 용사였던 피터슨 씨는 암으로 세상을 떠난 부인과 살다가 이제는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노인이었다. 유리창을 깼다는 이유때문에 사죄를 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주말마다 피터슨 씨의 집에 방문하던 알렉스는 피터슨 씨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그와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사람들의 우정에는 여러가의 모습들이 있다. 동갑내기들 끼리의 우정도 있고, 이성과의 오래된 우정을 이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나이를 떠나 거의 할아버지 뻘 되는 이와 나누는 우정도 있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토토와 알프레도와의 우정처럼 피터슨 씨와 알렉스 우즈와의 우정도 이런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다리가 불편한 피터슨 씨를 도와 운전을 하고, 그를 도와 편지쓰는 일을 하고 있다. 그에게서 커트 보네거트의 책을 빌려보는 일들이 즐겁다.
원칙을 가지고 살려면 진실함을 가지고 사는 거야. 그건 너만의 것이야. 남이 건드릴 수 있는 게 아니지. (212페이지)
얼마전에 읽은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를 읽으며 가슴아팠던 일들이 떠올랐다. 이 책에서 피터슨 씨도 『미 비포 유』의 윌의 입장과도 비슷하다. 눈도 보이지 않게 되고, 다리도 움직이기 힘들어 혼자 살기 힘든 그는 비참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그런 마음을 깊이 이해하게 되는 알렉스 우즈의 마음을 담았다.
비참하지 않게 죽는 일이란 어떤 것일까, 하는 물음을 나 자신에게 건네본다. 내가 처한 상황이 피터슨 씨와 같은 상황이라면 과연 나는 어떻게 할까. 반대로 누군가의 죽음을 도와줘야 하는 알렉스의 입장이라면? 어려운 일이다. 결정하기까지 너무 힘들것도 같다. 사람의 죽음을 자신이 과연 결정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드는 의문이었다. 합법적으로 죽음을 도와줄 수 있는 곳이 스위스라고 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인간의 생명을 아무리 자신의 결정이었다고 해도 합법적인 자살, 이것이 옳은 일일까 하는 의문이 다시 들었던 것이다.
아이작을 정말 돕는 길이 뭔지 아니? 그냥 그를 위해 함께 있어주는 거야. 친구가 되어주렴. 그의 의견을 존중하고 지지하면서, 효과가 있을 거야. 물론 그렇게 있어주는 건 아주 힘들지. (296페이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가슴뭉클하게 느껴졌던 건 알렉스와 피터슨 씨의 깊은 우정이 있었기 때문인것 같다. 진정으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것. 이것 또한 알렉스의 결정이었기에 가슴 아프지만 뭐라고 말할 수도 없는것 같다.
인간의 존엄성과 진정한 우정, 과학적인 지식을 아우르는 따뜻함을 주는 소설이었고, 책 속의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들이 소설 곳곳에 녹아 있어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을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가의 첫소설이라는데 개빈 익스텐스라는 작가, 마음에 쏙 든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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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측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일이 발생하지만 않는다면 하루를 보내는 것은 마치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떨어뜨리는 것만큼이나 손쉬운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내 기억의 빈 공간(만약 있다면)에 동전이 쌓이는 것처럼 부피를 늘리지 않은 채 하루하루의 일상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다. 예외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따금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평소에는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조금쯤 과도한(그렇다고 생각되는) 통행세를 요구할 때가 있다. 밋밋하고 심심해 할까 봐 그러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개빈 익스텐스가 쓴《우주 vs. 알렉스 우즈》는 돼지저금통에 만 원짜리 지폐를 넣을 때의 뿌듯하고 든든한 느깜처럼 뭔가가 꽉 채워지는 기분이 들게 하는 소설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뭐랄까?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배제한 채 독자가 꼭 알아두어야 할 내용만을 옮긴 듯한, 다소 시니컬하고 간결한 문체로 465페이지의 긴 얘기가 끝날 때까지 독자의 마음을 흔들림 없이 사로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개빈 익스텐스는 비록 30대 중반의 젊지 않은 나이이지만 이 책은 그의 데뷔작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소설은 알렉스(이 소설의 주인공)가 열 살이었을 때 벌어진 일부터 시작된다. 어느 날 그의 집 천장을 뚫고 들어온 2킬로그램짜리 운석에 머리를 맞은 알렉스는 수술을 받고 2주만에 가까스로 깨어난다. 그 후 알렉스는 간헐적 간질을 앓게 되고 걱정이 된 어머니는 알렉스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싱글맘인 그의 어머니는 타로 점을 보거나 그것과 관련된 물건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몇 년 뒤 다시 학교에 나가게 된 알렉스는 동네의 불량배들로부터 심한 괴롭힘을 당한다.
"엄마가 따르는 규칙과 내가 따라야 할 규칙은 달랐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믿는 대로 행동하는 것, 이게 엄마의 규칙이었다. 그 비현실적인 믿음이 어떤 결과를 낳건, 앞뒤가 맞건 안 맞건 상관없었다. 시험 성적을 잘 받아서 장차 내가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 이게 내가 따라야 할 규칙이었다. 내가 간질을 앓기 때문에 특히 중요했다. 엄마는 내가 뒤쳐져서는 안된다고 굳게 믿었고, 우리 주의 어떤 학교도 내 입학을 거절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p.101)
어느 날 하굣길에서 동네 불량배들을 피해 달아나던 알렉스는 피터슨 씨의 집으로 뛰어든다. 알렉스를 찾지 못한 불량배들은 피터슨 씨 집의 온실 유리를 부수고 알렉스는 속죄의 대가로 피터슨 씨의 편지 쓰는 일을 대신하게 된다. 피터슨 씨는 베트남전의 참전 용사로서 아내를 잃고 은둔자적 삶을 사는 평화주의자이자 휴머니스트였다. 작가는 우연과도 같았던 알렉스와 피터슨의 만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지금 나는 카오스로 가득한 한 세계의 정점인 동시에 또 다른 하나의 세계가 시작하던 바로 그 순간을 묘사하려 한다. 이 순간 덕분에 생각하게 됐다. 보기에 따라 인생은 얼마나 질서정연한가. 또 보기에 따라 얼마나 혼란스러운가. 다음의 이야기는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p.112)
알렉스는 피터슨 씨의 집에서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을 빌려 읽게 된다. 그러던 중 버스 안에서 동네 불량배들을 다시 만났고, 알렉스가 읽고 있던 커트 보네거트의 희귀 초판본이 그들 중 한 명에 의해 버스 밖으로 내던져진다. 알렉스는 그 아이와 주먹다짐을 하고 그 일로 인해 알렉스는 외출 금지 명령을 받는다. 감금 상태에서 풀려난 알렉스는 피터슨 씨에게 사과하고 한동안 공부에만 몰입한다. 어느 날 피터슨 씨의 애완견 커트가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 알렉스는 처음으로 실제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애완견 커트가 죽은 후 피터슨 씨의 정신건강이 염려되었던 알렉스는 <커트 보네거트 세속 교회>라는 이름의 독서 모임을 만든다. 커트 보네거트의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단락을 적어와 피터슨 씨의 집에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모임이었다. 알렉스는 자신이 보관하던 운석을 런던의 자연사박물관에 기증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을 마중나온 피터슨 씨를 만나 함께 귀가하던 중 가벼운 교통사고가 발생한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피터슨 씨는 놀랍게도 진행성핵상마비. 신경이 점차적으로 마비되는 희귀한 퇴행성 질환으로, 아저씨는 이제 3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다.
병원으로부터 피터슨 아저씨의 퇴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알렉스는 피터슨 아저씨를 휠체어에 태워 병원을 빠져 나온다. 피터슨 아저씨를 차에 태워 스위스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이 시작되고 알렉스는 피터슨 아저씨가 죽기 전 스위스 세른에서 마지막 관광을 한다. '과학 혁신 전시관'에서 알렉스는 우주와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데 '별난' 입자의 수명을 생각하고, 우주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생각하고, 우주가 마지막 열적 종말(모든 별이 사라지고 블랙홀이 증발하고 모든 핵자가 붕괴하고, 기본 입자만이 우주의 무한한 어둠 속을 떠다니는 순간)을 겪기 전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하다가, 나는 깨달았다. 인생의 문제란 '별난'입자와 닮았다는 것을. 우주의 크기와 규모에 비하면 다른 모든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작고 금방 지나가는 사건일 뿐이다. 우주의 규모로 보면 눈을 깜박이는 시간보다도 훨씬 더 빨리 사라진다." (p.429)
병원의 신고로 알렉스는 영국 방송사의 뉴스 메이커가 되고 피터슨 아저씨의 유골을 차에 싣고 귀국하던 중 경찰에 의헤 체포된다. 그러나 알렉스는 무사히 석방되어 열여덟 살 생일에 피터슨 씨가 남긴 유언장에 의해 5만 파운드의 상속금을 받는다.
"나는 피터슨 씨가 이 편지를 쓰면서 아주 즐거워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엄마한테 편지를 건네주었다. 엄마는 편지를 읽고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엘리에게 편지를 넘겼다. 엘리는 울지 않았다. 편지를 노려보더니 고개를 까딱 흔들면서 내게 돌려주었다." (p.464)
도서관에 들러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제5 도살장>을 빌렸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결코 인연이 되지 않았을 소설. 어쩌면 내 삶에서 결코 등장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커트 보네거트라는 낯선 이름이 우연처럼 내 삶을 파고들었다.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손쉽고 짧았던 하루가 이렇게 끝나가고 있다. 내가 던진 동전이 언젠가 쨍그랑 소리를 내며 내 기억을 깨울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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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세상은 내가 보는 세상과는 다르다. 아니, 내가 알고 있던 세상과 너무나 다르다. 알렉스 우즈가 속해 있는 세상은 아이들의 세상이었고, 나와는 다른 생각들을 가진 어른들의 세상이었기에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알수가 없는 세상이었다. 남과 다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른이 아닌 아이들에게 남과 다름은 놀림거리일 수도 있고, 두려움으로 다가올수도 있을 것이다. '1.가난하다. 2. 신체적으로 다르다. 3. 정신적으로 다르다. 4.친구나 친척이 남다르다. 5. 게이스럽다.' 는 것은 남과 다른것이라고 우즈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말하는 가난하다의 의미는 빈곤과는 차이가 있고, 게이스럽다의 의미 또한 일반적이지는 않다. 그저 사내아이가 예민하게 굴거나 영화를 보면서 울고, 책을 많이 읽거나 찬송가외에 사랑노래를 부른다면 게이스럽다로 다가오면, 남과 다르기에 다른 시선으로 보는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것에 알렉스 우즈가 포함되어 있다.
항구의 세관앞에서 열일곱의 한 소년이 자동차를 몰고 있다. 헨델의 <메시아>가 울려퍼지는 차안에서 소년은 정신을 잃지 않기위해 애를쓰고 있고, 운전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리고 이 소년 주변으로 경찰이 다가온다. 영국에선 너무나 유명한 소년, 알렉스 우즈. 자동차 조수석 사물함에 113g의 마리화나와 피터슨씨의 유골 단지를 가지고 있고, 간질로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있는 소년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년과 유골 단지속에 들어있는 피터슨씨의 삶을. 형제 자매도 없고, 아버지도 누군지 모르고, 엄마랑 둘이 살면서 엄청나게 새끼를 낳는 고양이 루시가 가족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는 우즈는 분명 일반적이지는 않다. 열 살 때 운석에 맞아 코마에 빠진 적이 있는 아주 아주 유명한 아이니까 말이다. 벼락맞은 대추나무도 만나기 어려운판에, 욕실에 있다가 지붕을 뚫고 들어온 운석에 맞아 코마상태에 빠진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덕분에 뇌 수술을 했고, 그로인해 신체적으로 남과 다르지만 우주의 물질이 소년에게 왔다는 사실은 알렉스에게는 경이로움이었다.
운석과의 조우 이후 알렉스의 운석을 연구한 모니카 위어 박사님을 만나게 되면서 과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지만, 그와 함께 우즈에게 찾아온 간질은 담당 의사인 엔더비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알렉스는 우주 뿐 아니라 뇌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까지 알게 된다. 필연인지 우연인지 알렉스는 점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고, 이 모든것이 학교에서의 왕따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알렉스를 괴롭히는 친구들을 피해 도망간 집에서 만나게 된 피터슨씨. 피터슨씨의 창문을 깬 책임을 지기위해 허드렛일을 돕고, 피터슨씨의 집에 있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알렉스는 피터슨씨와 시나브로 친구가 되어간다. 피터슨 아저씨가 좋아하는 작가인 커트 보네거트 주니어.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관심도 가지질 않을《타이탄의 사이렌》이라는 작품을 읽고는 양심에 따라 결정하는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디니 이 아이는 정말 특별한 아이다.
이제 알렉스에겐 피터슨 아저씨집에 있는 보네거트의 책들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고양이 요람》 ,《제5 도살장》,《챔피언들의 아침식사》를 비롯한 책들은 피터슨 아저씨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기도 하고 화해시키기도 하면서 학교에서의 친구가 아닌 보네거트 관련 독서모임을 창설하기에 이르게 된다 . 십대 소년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라니 대단하지 않은가? 보네거트가 이야기하는 도덕, 생태학, 시간 여행, 외계인의 삶, 20세기 역사, 휴머니즘과 유머까지 모든것을 다루고 있는 <커트 보네거트 세속 교회>. 아이다우면서도 기발한 이 세속 교회가 가능하기나 할까 싶지만 이걸 원하는 이들이 있다. "궁금한 적 있나요. 우리가 여기 왜 있는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주가 어떤 곳인지 관심이 있나요??" (p.242) 자아를 찾는 청소년들의 입에서 나올법한 이야기를 보네거트 독서모임을 통해 알고자 하는 아이 그리고 괴짜 노인.
알렉스 우즈가 경험하는 세상은 오묘하다. 알렉스 스스로 찾아서 만들어 내는 세상이기에 다를 수 밖에 없는 세상이고 그러기에 재미있는 세상이다. 작가 개빈 익스텐스는 알렉스의 세상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책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피터슨씨와 알렉스의 입을 통해 안락사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다. 얼마전에 동영상을 통해 안락사를 다룬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는데, 법으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의 죽음의 조력자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내용들이 나오고 있다.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것. 그 중에서도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맞는 문제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누가 정답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는 사람이 아픔과 두려움을 감내하면서 섭리를 따라야 하는것이 정답인지, 섭리를 따른다면 의료시설을 거부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기에, 알렉스와 피터슨씨가 들려주는 안락사에 관한 이야기를 편하게 들을 수만은 없다. 책에서도 이야기를 한다. 안락사는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맞이하는 자살이기에 죽음의 조력자들은 피터슨씨에게 언제라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죽음 의지를 계속 물어본다.
문제는 피터슨씨와 함께 한 이가 열일곱의 알렉스라는 것이다. 보네거트를 통해서 우주와 삶을 이야기하고, 보통의 아이와는 분명 다르다고 해도 소년은 소년이다. 괴짜 노인의 친구로 친구의 곁을 지킨다고 해도, 아이의 간헐적 발작이 찾아온 것은 그 만큼 아이에게 힘겨운 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누구도 잘잘못을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그저 벌써 벌어진 일이기에 엄마는 아이를 다독일 수 밖에 없고, 피터슨씨가 알렉스에게 남긴 유산을 그의 뜻에 맞게 사용함으로써 피터슨씨의 바램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면 될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러면 다 해결되는 걸까? 수돗물같이 보이는 무색의 투명한 펜토바르비탈나트륨을 녹인 작은 유리컵이 알렉스를 계속 따라다니지는 않을까? 친구를 위해 참고 있다 터져나온 울음이 그걸로 완벽하게 끝이 날 수 있을까? 삶과 죽음 그리고 우주까지 모든 것을 다루고 있음에도 어느것 하나 쉽게 풀리지 않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잔하게 마음을 아리게 하는 이야기가 개빈 익스텐스의 이야기속에 담겨져 있다. 내가 꺼낼 순 없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꺼내어야만 하는 이야기를 말이다. '우주의 일부가 되어버린 피터슨 아저씨! 잘 지내시죠?'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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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운석을 맞은 아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온다. 확률적으로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는 게 우리 삶이라는 걸 알려주듯 말이다. 알렉스는 한동안 집에서 생활한다. 운석을 맞은 충격으로 간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간헐적으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러나 알렉스는 몸이 주는 신호를 감지하고 점차 잘 견디게 된다. 알렉스는 운석 때문인지 공부를 열심히 한다. 특히, 과학, 우주를 좋아한다. 문제는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한다. 엄마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할 고통이다. 그러다 아이들을 피해 어느 헛간으로 피하는데, 그곳에서 소중한 인연 피터슨 씨를 만난다. ‘카오스에서 질서를 찾는 것은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질서 아래 숨은 카오스를 찾을 수도 있다. 질서니 카오스니 이런 개념들은 불안정하다. 옷을 바꿔 입고 장난치는 쌍둥이와도 같다. 질서와 카오스는 자주 섞이고 겹친다. 시작과 끝이 그렇듯이. 세상일은 겉보기보다 복잡하기도 하고 단순하기도 하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 111쪽 월남전에 참전했고 아내가 죽은 후 애완견 커트와 지내는 피터슨은 주변 사람들과 교류가 적다. 이웃들에게는 괴팍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알렉스와는 점점 가까워진다. ‘커트 보거네트’를 좋아해 개 이름까지 커트라 지은 피터슨을 통해 그의 소설과 만난다. 그러다 애완견 커트가 갑자기 죽게 되고 혼자 남은 피터슨의 강이 악화된다. 급기야 불치병 진단을 받는다. 알렉스는 커트 보거네트를 읽는 독서 모임을 만들어 피터슨이 사람들과 교류하게 도와준다. 피터슨은 다가오는 죽음을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하려 한다. 그러니까 자살을 시도한다. 알렉스가 발견하고 고비를 넘겼지만 피터슨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 열여덟 알렉스는 그런 피터슨의 마음을 이해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돕는다. 그리고 중대한 계획을 함께 실행한다. 스위스로 자살여행을 떠난다. 피터슨의 선택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죽음과 맞닿는 여행, 둘은 행복하다. ‘입자들은 튀어나오면서 존재하는 동시에 순간의 작은 파편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너무 빨라서 그것들의 존재를 기록할 만큼 예민한 도구는 발명되지 않았다. 사라진 다음에나 그 존재를 짐작할 수 있을 뿐.(…) 나는 깨달았다. 인생의 문제란 ‘별난’ 입자와 닮았다는 것을. 우주의 크기와 규모에 비하면 다른 모든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작고 금방 지나가는 사건일 뿐이다. 우주의 규모로 보면, 별조차 눈을 깜박이는 시간보다 훨씬 더 빨리 지나간다.’ 429쪽 알렉스와 피터슨의 사귐을 통해 삶과 죽음, 우정에 대해 생각한다. 우연이 운명으로 이어지는 뜨겁고 따뜻한 이야기. 책에 등장하는 물리학 용어나, 우주에 대한 이론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거대한 우주 공간에서 펼쳐지는 삶의 향연은 아름답다. 때로 치열하게 망가지고 때로 폭발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책을 통해 만나는 커트 보거네트의 소설에 대한 부분도 매우 흥미롭다. 이 책을 읽고 커트 보거네트의 소설을 읽는 이가 늘지 않을까 싶다. 나부터도 그렇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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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우정은 나이와 국경을 초월한다. 개빈 익스텐스의 처녀작『우주 vs. 알렉스 우즈』(책세상, 2014)는 괴짜 소년 알렉스와 괴짜 노인 피터슨을 주인공으로 하는데, 소년과 노인이 콤비를 이루는 이야기라 그런진 몰라도 최근 다시 본 감동의 명화 <시네마천국>이 환기되었다. 알렉스 우즈는 열 살 때 욕실 천장을 뚫고 들어온 운석에 머리를 맞고 살아난 당시 무척 요란한 '화제의 인물'이었고, 아이작 피터슨은 월남전 참전 군인 출신으로 아내가 암으로 죽은 후, 늙은 반려견 커트와 더불어 은둔의 삶을 살아가는 외로운 노인네다. 알렉스와 피터슨 두 주인공은 외톨이라는 점 말고도 공통점이 꽤 많다. 가령 이들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는 자유의지론자이고, 신이나 초월자를 믿지 않는 세속적 휴머니스트(당연 무신론자)이고, 커트 보네거트의 모든 작품을 꼼꼼히 읽은 보네거트빠다. 피터슨은 반려견에게 작가의 이름을 붙일 정도로 보네거트빠이고 알렉스에게 그의 작품을 소개하고 빌려준다. 참고로 커트 보네거트는 SF소설과 풍자소설을 쓰는 미국의 휴머니즘 작가로, 대표작으로 전쟁의 폐해와 반전의식이 잘 드러난『제5 도살장』등이 있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이 있다. 토토가 영화에 미쳤다면, 알렉스는 과학에 미친 소년이다. 알렉스의 인생을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알렉스는 열 살에 2킬로그램짜리 운석과 조우했고,그후 측두엽 간질을 앓게 되어 평생 항간질제인 카르바마제핀을 먹어야 한다. 덕분에 알렉스는 과학을 사랑하는 소년이 되었다. 처음엔 운명적인 운석과 천체물리학자 모니카 위어의 영향 때문에 천문학자가 되려고 하지만 측두엽 간질과 소아 간질 전문의 신경과 의사 엔더비 선생님으로 인해 뇌에 흥미가 생겨 신경과학자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은 물리학의 간결한 법칙성에 매료된 나머지 이론 물리학자가 되어 우주의 정체를 밝혀줄 만물 이론을 연구하고자 한다. 알렉스는 열 일곱에 운전면허 시험에 통과하고 마리화나를 과학적으로 재배할 줄 알았다. 그리고 열 여덟이 되어선 만물 이론을 공부하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 적지 않은 유산을 물려 받게 된다.
알렉스의 엄마 로웨나 우즈는 대체의학이나 점성술 같은 뉴에이지를 맹신하는 타로카드점의 주인장이다. 싱글맘인 우즈 부인은 개인의 운명이 미리 규정되어 있다는 마술적 견해를 지지하는 엉뚱한 인물이지만 아들의 교육만큼은 딱 부러지는 엄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알렉스의 뇌구조는 이런 엄마와 전혀 다르다. 알렉스는 수학과 과학, 책을 좋아하는 범생이로, 모든 사건들이 인과적으로 명백하게 규정된 것은 아니라는 비결정론을 신봉한다.
"엄마는 모든 일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일어난단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엄마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사 대부분은 순전히 우연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중에 생각해 보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순간이 있기는 하다. 모든 일을 바꾸는 사건이 있다."(264쪽)
알렉스는 피터슨의 소개로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을 읽게 된다. 도덕, 생태학, 시간 여행, 외계인의 삶, 20세기 역사, 휴머니즘, 유머 등의 문제의식에 푹 빠지게 된 알렉스는 결국 커트 보네거트만 읽는 일요일 독서모임을 열게 된다. 이름은 '커트 보네거트 세속교회'이다. 한마디로 세속적인 인본주의자들의 독서회라 하겠다. 알렉스와 피터슨 외에 그리피스 여사, 신경과 의사 엔더비, 글래스턴베리 도서관 사서 피오나 피턴과 소피 헤인스, 선생님 출신의 블레스드 부부, 프리랜서 음식평론가 그레고리 아델만 등이 독서모임의 회원이다. 아쉽게도 이들의 활동은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용 별점 하나를 깎았다.
이야기는 피터슨의 불치병을 소재로 존엄사의 문제를 강하게 제기한다. 저자도 알렉스와 피터슨처럼 존엄사 지지자인 것이 분명하다. 내가 보기에 피터슨이 존엄사를 결심한 계기로는 그의 세계관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내 레베카가 췌장암으로 오랫동안 투병하다 세상을 떴다는현실에서도 기인한다. 매우 인상적인 점은 어린 알렉스나 불치병 노인 피터슨 모두 마치 '명상 마스터'처럼 죽음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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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진주에 떨어진 운석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일명 '하늘로또'라고까지 불리우며 운석에 대한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확문적인 분야까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직접 운석을 본다는 것. 자체가 정말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집안 욕실에서 우주에서 떨어지는 운석을 머리에 맞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가늠하기도 어려운 일이 그 일을 직접 겪은 소년이 있다 바로 알렉스 우즈다. 혼자인 소년과 외로운 할아버지의 운명같은 만남 알렉스와 피터슨은 성격도 다르고, 나이차도 많아 처음에는 반목하지만 조금씩 서로의 독특한 대화를 이해하게 되면서, 깊은 우정을 나눈다. 마치 영화 <시네마 천국>의 토토와 알베르토처럼 두 사람의 우정은 알렉스 오래도록 이어진다. 하지만 피터슨이 치료불가능한 불치병에 걸리게 되면서 두 사람의 우정은 변화를 맞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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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라고 하면 어딘지 독특한 사람을 뜻하지만 그것이 좋은 의미로 쓰이지는 않는다. 여기 괴짜라고 하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흔히들 생각하든 괴짜의 좋지 못한 의미를 생각했다면 이제부터는 그 의미를 달리 생각해야할 것 같다. 우선 주인공 소년 알렉스에게 일어난 일이 심상치않다. 확률이 극히 적은, 유성이 지붕을 뚫고 들어와 머리에 맞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극히 확률이 적게도 2주간의 혼수상태를 끝으로 살아났다. 이 특별한 소년은 원래 그랬는지 아니면 유성을 맞고 나서부터인지는 몰라도 화제의 중심이자 동시에 학교에서는 괴짜로 통하며 외톨이로 지낸다. 때론 이 특별함이 남들에게는(몇몇 불량학생) 괴롭히고 싶은 조건이 되기도 한다. 그 어느날도 괴롭힘을 피해 도망치던 중 들어갔던 집에서 만난 피터슨이라는 노인을 만나게 되고 이 둘의 특별한 우정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단 머리에 유성을 맞았다는 것 부터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소재로 눈길을 끌었다. 그렇다고 비현실적인 판타지적인 느낌은 아니다. 확률이 적지만 있을법한 이야기이고 그저 아주 생소한 소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요소는 모 아니면 도일 가망성이 크다. 망하거나 흥하거나. 나에게는 독특하다는 느낌 외에는 별달리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까지 지루할 틈을 주지 않을 정도의 재치와 유머가 담긴 필체 때문이다. 주인공 소년 알렉스의 '괴짜적' 관심사 때문에 신경학이라던가 물리학이라던가 하는 학문적 용어가 자주 등장해서 조금 거슬리기는 했지만 중간에 읽기를 그만둬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외톨이라고만 생각했던 알렉스는 피터슨과 공통으로 좋아할 만한 커트 보네거트라는 작가의 책을 같이 읽고 독서 모임도 만들어 사람들과의 교감과 불치의 병 때문에 서서히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피터슨을 도와주면서 삶에서 중요한 것은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 삶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동시에 피터슨도 알렉스를 통해 포기하려 했던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타인은 분명 나와 다르다. 알렉스도 그냥 평범하게 보자면 그저 물리를 좋아하고 조금은 허약한 모범생 소년에 불과하다. 알렉스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처럼 세상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들의 생각과 편견이 그런 시각들을 만드는데 어쩌면 알렉스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범함에서 비켜간 소년이기는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름은 나쁜게 아니라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편견과 생각들이 나쁜것이 아닐까. 여기서 또 한가지 중요한 이야기 중 하나가 존엄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는 몇몇 소설에서도 흔히 본 소재였지만 여기서 느낀건 이 문제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죽음이라는 어두운 소제임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눈물을 짜네거나 억지로 희망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이상한 것이지 모르겠지만 안타까운 피터슨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작가의 의도와 다른 반응인건가? 그렇다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쨌든 나는 그래서 더 좋았다. 몇몇 소설에서 다룬 이러한 소재에서는 마치 독자의 눈에서 억지로 눈물 방울을 흘리게 하려고 작정한 듯이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와 대화들이 오가서 조금은 짜증이 났었다. 하지만 알렉스와 피터슨이 서로의 우정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죽음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읽고 있는 나 또한 알렉스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알렉스가 말했듯 중요한건 죽음만을 생각하면 인생을 사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찰라보다 빨리 지나가는 시간을 어떻게 지내는 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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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나서 리뷰를 적을 때 가장 괴로운 상황은 어떤 때냐 묻는 다면 책의 내용을 전혀 공감할 수 없을 때이거나 적당히 좋았을 때가 아니라 책을 읽은 뒤 무수한 고민으로 그 어떤 말도, 글도 정리되지 않을 때다. 분명 청소년 소설을 읽고나면 난 이런 어른이 되어야겠다, 혹은 이런 어른을 만났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는데 이 책은 고민 그자체다. 과연 나는 아이에게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알렉스 우즈. 떨어지는 유성(떨어지고 난 뒤에는 운석으로 불린다.)에 맞고 뇌에 외상을 입은 뒤 간질함을 얻은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1인칭 시점이다. 어느정도 먹고 살만한 재산을 물려받았고 그 중에 하나인 가게에 타로점집을 차려 우즈와 함께 살아가는 엄마와 사고 이후 자신의 운석을 보관하던 과학자 위어 박사를 만나게 되고 간질환을 치료해주는 엔더비 박사 그리고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앞서 등장한 엄마, 위어 박사 그리고 엔더비 박사 이상으로 알렉스의 삶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피터슨 할아버지와의 만남이 책의 내용이 된다. 어찌보면 운석을 맞은 알렉스보다 아이가 만나게 되는 4명의 어른들의 모습이 보통의 어른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 책의 분류를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어른들도 반드시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고민 끝에 리뷰의 초점을 알렉스가 만나는 '어른들'에게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내용 그 자체를 떠나서.
알렉스의 엄마는 재산을 물려받기는 했지만 남편없이 아이를 키우는 보통의 부모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초반에 등장하는 보험사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부터 피터슨씨의 집, 유리를 깼으니 직접 집안일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의 모습은 쉽게 만날 수 있는 '친구의 엄마'와는 다르다. 물론 이런 엄마의 다름이 알렉스가 언급한 '죄인'의 해당되는 부분이라 알렉스에게는 이런 엄마에게서 태어난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운석을 보관하고 있던 위어 박사와의 편지내용을 엿보더라도 박사가 아이에게 우주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고 책을 선물함으로써 호기심에서 지적인 충동을 이끌어 내는 방식이 강요나 협박이 아닌 점을 어른이라면 유심히 봐야한다. 어찌보면 알렉스 엄마가 방임에 가깝다면 위어 박사는 그보다는 좀 더 긍정적인 측면이 되는 셈이다. 종교를 믿진 않지만 불교를 긍정적으로 보는 엔더비 박사역시 위어 박사처럼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도출하는 '지원자'측면에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친구같은 부모, 친구같은 선생님의 가장 좋은 예가 아닌가 싶다. 반면 피터슨씨의 경우는 알렉스의 엄마처럼 다소 위험한 상황이라고 보여진다. 얼마전 읽었던 [세상의 수호자들]처럼 세계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부조리들, 어른들도 해결하지 쉽지 않은 문제들을 알렉스에게 보여주는 '연결고리'와 같은 역할을 피터슨씨는 하고 있다. 분명 그들이 생각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바는 '옳은 일'에 속한다. 하지만 보통의 어른의 시각으로 보자면 알렉스가 벌어질 일들에 대해 안전하다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마지막 피터슨씨의 유언장에 적힌 것처럼 그것은 알렉스를 곤란하게 만들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와 나이든 사람과의 만남을 다룬 책들에 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대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어른들 중 하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모험을 선물하는 어른과 모험이 전에 안전한 상태를 고수하려는 사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당연 전자의 경우가 아이에게 이로운 사람이고 내가 만나고 싶어했고, 이제는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모형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은 지금은 끊임없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혹은 비겁해지기 위한 변명 거리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나면 어른이란 아이에게 어떤 모습으로 곁에 있어줘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반성하고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건 분명하다.
p.s 함께 읽어야 할 책 보다 이 책 이후에 읽어보고 싶은 책들만 한가득이다. 봐야 할 영화도 만만치 않다. 이 책은 연쇄독서, 연쇄 문화활동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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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어린 소년과 극장 영사기사의 우정을 그린 영화, '시네마천국'
보수적인 고집불통 할아버지와 이민자 몽족 소년과의 우정을 그린 영화, '그랜토리노' 두 영화 모두 많은 나이차와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사랑과 우정을 나누게 되는 따뜻한 영화들이다. 그리고 여기 또 한편의 영화와 같은 소설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과학을 좋아하고 책읽기를 즐기는 외톨이 소년 알렉스와 베트남전 참전 이후 평화를 사랑하는 휴머니스트가 된 조금은 괴짜같은 노인 피터슨의 우정을 그린 <우주 vs. 알렉스 우즈>다. 이 작품이 출간되던 2013년 작가는 영국에서 가장 핫한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었다. 현실에서 쉽게 다루지 못한 안락사에 대해서 유머와 위트가 있는 동시에 따뜻한 가슴찡한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서 독자들과 평론가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데뷔작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작가의 스토리텔링의 힘은 크다.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을 맞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머리에 정통으로 말이다. 아마도 로또에 당첨되는 것보다 어려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 천문학적인 학률이 일어났다. 바로 우리 주인공 알렉스에게. 남들에게 평범하게 보이지 않은 알렉스에게 이 일은 그를 더욱 비범하게 만들어버리는 계기가 된다. 이로인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게 되고 어느날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중에 우연히 낯선 집에 들어가게 된다. 그로써 괴짜 노인 피터슨을 만나게 되고 이때부터 두 사람의 짤지만 아름다운 우정의 시간이 시작된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당연히 살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죽을 권리도 당연히 있을까? 맘대로 죽을 권리는 없는 듯 하다. 물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말이다. 만약 내가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어떨까? 점점 죽음이 찾아오는 병에 걸렸다면 말이다. 우리의 괴짜 노인 피터슨처럼 말이다. 진행성핵상마비. 신경이 점차적으로 마비되는 희귀한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피터슨은 3년밖에 살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아름답게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알렉스로 인해 구사일생(?) 목숨을 건지게 되지만 피터슨은 기쁘지 않다.
안락사는 두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말기암 환자처럼 큰 고통을 수반하는 경우 고통을 줄이기 위해 약물을 투여하여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라고 하고 환자나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치료 약물을 중단하는 경우를 '소극적' 안락사라고 한다. '존엄사'는 뇌사 상태등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을때 품위있게 죽음을 맞아하도록 생명유지 장치를 떼어내는 것을 말한다. 피터슨과 알렉스는 '존엄사'가 합법적인 스위스로 그들의 마지막이 될 아니 또 다른 시작이 될 이별여행을 떠난다. 그곳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게 되고 알렉스는 평소 피터슨이 좋아했던 작가 커트 보네커트의 <제5도살장>의 한구절을 낭독하며 그를 떠나보낸다.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하면서..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웃고 울고 가슴찡했던 시간을 보낸것 같다. 한편의 영화를 본듯한 착각이 든다. 이 소설이 각본으로 각색되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좋을 것 같다. 두 사람의 진심어린 우정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가슴 울리는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신예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다음엔 어떤 재미있고 따듯한 이야기를 들려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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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원래 중3 아들에게 권한 책이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우주에 관심도 많고 존엄사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는 이유, 아주 단순하게 이 책을 만나게 되었지요. 제목이 주는 중의법스러운 묘한 어감도 호기심을 자극했고, 책날개(뒷면)에 적혀있는 삶에 초연한듯한 문구들을 읽는 순간 느낀 먹먹함은 저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했습니다.
엄마는 타로점을 치는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 우아하게 말하면 영혼의 세계에서 주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일을 하는데요, 주인공 우즈가 겪는 많은 사건들과 그것에 대처하는 엄마의 태도에서 진심으로 그녀의 맑은 영혼을 마주하게 됩니다. 모자가 단 둘이 사는 집에 어느날 우연히 찾아온 엄청난 대형 사건! 우즈가 욕실에 있다 운석을 머리에 맞습니다. 말도 안될거 같은 일이 자신에게 생기고 이후 우즈는 복잡다단한 일을 겪습니다. 외톨이 우즈가 자신을 괴롭히던 일당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피신한 곳(피터슨의 집) 에서부터 이 소설을 진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외로운 노인 피터슨, 다리를 절고 괴짜 기질이 다분하며 입도 아주 건 노인을 만나고 그와 함께 커트 보네거트에 심취합니다. 처음 까칠했던 피터슨도 우즈와 함게하는 시간을 즐기고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을 매개로 열 세살 소년과 노인은 점점 우정을 쌓아갑니다.
그러다 피터슨은 점점 건강이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되는데요, 자살을 시도하고 우즈의 도움으로 입원하는 등 점차 더해가는 인체의 쇠락에 힘겨워합니다. 이 모든것을 지며보다 좀 더 살겠다고 지지부진해 하다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하느니 품위를 지키며 편안하게 잠자듯 가고 싶어하는 피터슨을 위해 우즈는 조심히 그리고 진중하게 준비를 해요. 몇 년에 걸쳐 쌓아온 신뢰, 서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배려하는 두 사람. 그들이 내린 결정은 섣부른 것이 절대 아닙니다. 관심사가 비슷하고 같은 책을 읽고 공감하고 서로 통하는 사이, 둘은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배려하는 친구에요. 우즈와 피터슨의 마지막 여정은 너무 감정적이지도 너무 이성적이지도 않게 잘 버무려져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되었습니다. 안락사를 다룬 알파치노 주연의 '유 돈트 노 잭'이었던가요. 소설을 읽으며 그 드라마가 생각났는데요, 조용히 삶을 마감할 권리에 대해 다시한번 우리 모두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게 하는 [우주 VS.알렉스 우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