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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래드 단편집"은 19세기와 20세기를 연결하는 실존주의 작가인 조셉 콘래드의 작품으로,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고립과 고독 속에서 점차 파멸해가는 문명인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소개하고 있는 "청춘"은 석탄 운반석인 유데아 호의 2등 항해사로 첫 출항을 한 마알로가 들려주는 어떤 항해에 관한 기록입니다. 또 다른 작품인 "문명의 전초지"는 카이에르츠와 카알리어라는 두 사나이가 어떤 회사에 고용되어 상아를 수집하도록 아프리카의 한 출장소에 배치되는데, 그 곳에서 문명인인 그들이 급속히 와해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치 모래 사장에 숨어있는 진주를 발견한 듯한 작품입니다.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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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콘래드는 콩고에 파견되면서 여러가지 경험을 하는데 그 경험이 작품에 많이 반영된 것 같아요. <암흑의 핵심>이 워낙 유명하고 영화의 근간이 되었다고 해서 읽어봤는데 술술 읽히는 타입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단편집이 있다고 해서 단편집은 어떤가 싶어 구입하게 되었네요. <문명의 전초지>는 <암흑의 핵심>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네요. 문명사회에 살던 두 사람이 고립된 생활을 하며 마음이 황폐해지는 과정이 잘 그려져요. 결국은 살인이 일어나구요. 제국주의 상황과 맞물리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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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소설가 조셉 콘래드는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작품 활동을 하면서 제임스 조이스와 함게 현대소설 문학의 거장으로 평가 받는 인물이다. 그는 젊은 시절 상당한 시간을 바다에서 보냈다. 그는 선원의 최고직인 선장까지 지냈다. 그의 창작활동은 항해생활을 접고 육지에서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와 그의 특이한 이력은 당시 영국 사회가 상당 부분 해양화되었고 근대 화 과정에서 문학은 해양을 다룬 소재가 상당 부분 차지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조셉 콘래드 단편집에는 청춘, 문명의 전초지, 개펄 이렇게 3작품이 들어가 있다. 청춘. 청춘이란 무엇인가? 청춘이 청춘 아닌, 그러니깐 '어림'과 '늙음'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 라고 의문 또는 호기심을 풀지 않고 줄곧 이야기를 좇아가면 소설의 재미는 한층 더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소설의 시공간의 변화는 출항, 항해, 입항이라는 해상운송의 전형적인 순서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작가의 해상경험이 충분히 반영되었을 것이다. 청춘이 목도하는 절실한 해양은 과연 대양항해를 하면서 청춘의 가치를 시험하는 여러 사건을 유발한다. 그 중 화물창에 적재된 석탄이 발화되어 시작된 선상화재의 현장은 위기를 대하는 선장의 비상식적인 태도와 함께 그 기괴함을 더 한다. 문명의 전초지는 문명이 주는 안도감과 인간 원초적 생명력에 대한 공포감을 주는 양면적인 공간이다. 19세기 말 서구의 식민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아프리카 오지에까지 뻗친 자본주의의 힘과 그것이 지니는 모순, 그리고 문명사회의 대표자인 백인의 허구를 묘사한다. 이것은 백인의 오지 진출은 진보라는 명분을 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상아 약탈의 거점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그들의 선진 문명으로 후진국의 야만을 없애겠다는 선민의식으로 드러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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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조셉 콘래드의 단편 모음이 흔한 편이 아닌데, 3편의 작품이 담긴 전자책을 구입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수록 작품 가운데 <문명의 전초지>는 1896년 작품으로, 이후 콘래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가 되는 <암흑의 핵심(혹은 <어둠의 심연>)>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 회사에 고용되어 아프리카로 보내져 상아를 수집하는 업무를 맡는 사람들이 갑작스레 맞닥뜨리게 된 서구 문명과의 단절을 겪게 됩니다. 문명인들은 자신들의 문명과 연결되어 있어야만 문명인일 수 있습니다. 그 연결이 끊어지는 순간 '미개인'들보다 더 미개인이 되고맙니다. 문명의 인프라가 사라진 곳에서라면 모든 것을 홀로 개척하듯 해 나가야 할 텐데 아무런 연습도 준비도 되지 않은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문명의 헛점과 모순과 그린 문학작품들이 많습니다. 단지 콘래드만의 독창적인 분석이나 미래에 대한 선견지명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100년 전의 걱정이 단지 기우로만 보이지 않는 이 상황까지 우리의 문명은 건강하게, 무언가를 함부로 상처내지 않고 진행되어 왔는지 되짚어볼 필요는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100여 년 전 콘래드와 같은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드러냈던 문제들이 잘 해결돼 왔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근심이 그다지 해결되지 않고 진행형의 상태인 동안은 콘래드의 작품들 역시도 생명이 건재하리라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