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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의 이유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읽고 ![]()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죽음의 수용소를 재건하는 일,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 중 상상조차 힘든 참상과 강제된 죽음으로 점철된 ‘수용소의 진실과 가르침을 마주하는 일’은 여간 어렵지 않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이 담긴 책들, 가령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아트 슈피겔만의 『쥐』 등이 나로 하여금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세우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줬다. 아직 책을 읽지는 못했으나 『이것이 인간인가』를 쓴 '프리모 레비' 역시 아우슈비츠 수용소(라거)의 생존자로서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후 직접 경험한 것들을 글로 써내며 역사를 증언하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타깝게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길고 긴 삶의 무게를 내려놓은 그가 쓴 또 다른 저서이자 마지막 작품인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이제야 집어든다. 책 표지를 덮고 있는, 검푸른 바닷속 해초인지 밧줄인지 모를 것들이 마치 손길을 뻗는 듯한 모습과 책 제목으로 미루어 보건대, 누군가는 구조되어 뭍으로 나갔고 다른 누군가는 바다의 심연으로 가라앉았을 듯하다. 곧이어 홀로코스트로 인한 희생자와 생존자 모두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겠지, 하고 생각하는 찰나에 저자는 뜻밖의 이야기로 독자를 놀라게 만든다. "생존자들 가운데는 라거 생활에서 특권을 누린 사람들이 훨씬 많았으며 라거의 역사는 자기처럼 바닥까지 가(본 사람은 돌아오지 못했거나, 자신의 관찰 능력이 고통과 몰이해로 마비되었다) 보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쓰였다.(17쪽)"는 것이다.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며 무감각한 '회색 인간' 혹은 최악의 사람들을 '구조된 자'라고 호명하며, 그야말로 적자(適者)가 생존했다고 비판한다. 물론 저자도 구조된 무리에 섞여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여전한 고문처럼 끝나지 않은 삶을 살아내며 역사적 진실과 더불어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를 나누고자 침묵보단 증언(이야기)하기로 결심한다.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때 자신은 도덕적으로 미성숙했고 무지했기에 지식인이 아니었다고, 라거의 경험 덕분에 비로소 지식인에 가까워졌다고, 그곳은 그에게 주변을 돌아보고 인간을 가늠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대학이었다고. 그가 보고 겪은 바에 따르면,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에게 과로, 구타, 추위, 질병도 견디기 힘든 것들이지만, 무엇보다 굶주림을 빼놓을 수 없어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결할(물 위로 떠오를) 방법을 궁리하다 결국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르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용변을 보게 하거나 의복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거나, 아니면 숟가락 없이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식사를 하도록 강제함으로써 무력감과 박탈감을 불러일으킴은 물론, 인간의 존엄성마저 위협하는 공격을 당해 이른바 문명인의 자격을 내려놓기에 이른다. 특히 수용소에서 사용된 언어에 관한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못해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섬뜩하기까지 하다. 사람들이 복종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자(SS 군인)가 마치 귀머거리나 가축을 대하듯 단계적으로 소리를 질러댄 대상이 대부분 독일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저자를 포함하여)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포로들이라는 점, 아울러 교양 없는 외국인(강제이송자)에게 라거의 독일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목숨을 위협하는 언어'였던 반면, 지식인(조국의 이방인)에게는 알아듣지만 말하려 하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게 만드는 '야만적인 은어'였다는 사실이 그러하다. 그런 이유로 말미암아 "그들 중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무대에서 사라졌다.(114쪽)" 책의 말미에서 1959년에 독일어 번역본으로 출간된 『이것이 인간인가』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독자들에게 인간성의 본질과 한계에 대한 물음을 안긴다. 원문(이탈리아어)에서 재현하고자 심혈을 기울였던 모든 걸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독일어로 옮기는 과정이 '번역이라기보다는 복원에 대한 문제(211쪽)'였다고 밝힌다. 정작 이 책의 독자들은 당대를 살았던 독일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는 그들을 지켜보면서 당시의 비극이 독일인 대다수의 정신적 나태함과 그릇된 국민적 자부심에서 비롯되었지만 가장 큰 잘못은 전체주의 국가의 구조(시스템) 자체에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어쩌면 진정한 구조(救助)는 정상적인 구조(構造) 안에서 비로소 이뤄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들의 후손이 과거의 죄를 반성하는 내용의 편지들을 보내왔는데, 이에 저자는 "비인간적인 것을 그토록 인간적인 방식으로 묘사하는 책들이 새로운 세대들에게 중요(236쪽)"하다고 덧붙인다. 비인간적인 것을 인간적인 방식으로 그려내는 일, 내게는 감히 엄두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기에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을 간직한 채 프리모 레비 같은 시대의 증언자에게 기대려 한다. "당신들은 왜 '사전에' 도망가지 않았나? 왜 저항하지 않았나?"와 같이 공감은커녕 2차 가해와 다름 없는 역질문을 경계하고, "그들이야말로 왜 범죄임을 알고도 자행했는가?"라고 되물어야 한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증언(이야기)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인 동시에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시도가 아닐까 싶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커진 시대를 사는 한 사람으로서, 이제 그가 던진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지난날과 오늘날을 같은 잣대로 판단하지 않으며 올바른 문제의식, 반성과 성찰의 자세로 응답할 차례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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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고 나서 추가로 구입하게 된 책입니다. 프리모 레비의 색깔이 가장 잘 드러난 책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에 대해서, 사람이 어떤 환경에 처햇을 때 어떤 모습을 드러내는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
|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다음으로 구입한 책입니다.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에 완성한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지만 무거움을 견딜수 없는 인생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고 무겁습니다. 괴로움을 견디고 기록을 남겨주어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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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 글들을 통해 피해자들의 고통과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들의 책들을 보았다. 이 책은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날 것 그대로의 수용소 증언이다. 놀랍다. 프리모 레비는 피해자로, 끝까지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은 자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음을 고발한다. 살아 남은 자는 구조된 자이나 '수치'를 느끼며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들이다. 수용소에 대한 진실된 고발이 그동안 알고 있던 피해자들의 증언들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꼭 읽어봐야 할 귀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