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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나무들과 꽃들,구름들과 별들에도 기록하셨다.- 마르틴 루터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오랜 여행길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나는 눈을 끔뻑이며 낯선 곳에서의 첫 걸음을 시작했다.눈과 얼음밖에는 보이지 않는 곳,알래스카.드디어 길고 긴 광야 여행이 시작되었다.나도 모르게 아멘이 터져 나왔다.
교회에 미쳐 살아온 그에게 어느날 화장실에서 세수하다 본 지친 얼굴에는 기쁨과 감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열심히 살고 있는 것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은혜였다고 한다.그는 문득 내 안에 조롱 섞인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가식으로 점철된 네 신앙에 하나님이 들어갈 자리는 없어.말이 되지 않았다.나만큼 교회 생활 잘하는 청년 있으면 나와 보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다.
내 마음,내 시간,내 물질 다 드려서 주님의 일을 하는데 어느 누가 나를 저울질할 수 있다는 걸까?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사실은,그래,제대로 허를 찔렸다.은밀한 내 비밀이 벌거벗겨진 느낌이었다.결국 외식하는 기도와 말씀으로 그럴듯하게 각색된 내 교만은,부지불식간에 영적 균형을 흐트려 놓았다고 고백하고 있다.혼자 있을 땐 하나님 없이도 잘할 수 있다는 생각,
여럿이 있을 땐 하나님 이용해서 교묘하게 나를 돋보이게 하는 행동,얄팍한 술수로 하루하루 버텨 나갔고,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것에 더욱 중독되어 갔다.멋진 교회 오빠는 될 수 있어도 하나님의 복된 자녀는 자신 할 수 없었던 한 청년 광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광야를 헤쳐 나갈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자전거였다. 단순한 이유였다.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엡5:10 )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마가12장30~31절) 전자는 구원이라는 값없는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의 태도이고,후자는 예수님께서 강조한 가장 큰 계명이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기까지 성경 속 인물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게 만났던 곳,그래서 더욱 선명한 하나님의 임재를 말씀 가운데 경험했던 곳,맞다.나에겐 광야가 필요했다.말씀대로 살기란 어렵다.그러나 말씀 없이 살기란 더욱 어렵다.떠나기로 했다.진짜 벌거벗겨진 광야에 직접 가 보기로 했다.지금 하나님을 깊게 만나지 못한다면 나는 퇴행적 선데이 크리스천의 삶을 살게 빤해 보였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심장과 두 다리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보고 싶었다.또한 전 세계 오지와 빈민촌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을 만나고자 했다.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싶었다.자전거로 곳곳을 다니면서 보고,만나고,배우고,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말씀에 흠뻑 빠지는 은혜를 누려 보고 싶었다.기대가 되었다고 한다.
같이 있을 때는 결코 느끼지 못한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나 7년 2개월 112개국 하나님의 여정속에 내가 있었다.삶의 지루함에서 떠난 것도 아니요,은혜을 갈망하며 떠난 것은 결코 아니었다.응석받이 아들의 부모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투정처럼 인생의 십일조를 드려 하나님의일이 아닌 하나님을 찾아 떠난 자전거 여행이었다.그 광야의 여정속에 떠나 보니 함께였다.
그의 발길이 가는 곳마다 도움의 손길이 같이 했고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 였음을 이책에서 고백하고 있다.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음같이 폭우 속에서 사막의 한가운데서도 어린아이의 손에 담긴 사랑에서도 결국,하나님의 사랑이었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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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프롤로그에 " 7년 2개월, 전 세계 112개국, 인생의 십일조로 드린 '자건거 광야 여행' 살아 돌아왔다"고 말한다. 아무도 실행에 옮길 수 없는 결단이 아닌가 싶다. 그는 자전거 비전 트립에 목적을 두었다.
"첫째는 관야에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를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격려와 위로의 메세자를 나누는 것, 둘째는 전 세계 오지와 빈민촌 선교지를 탐방하며 앞으로의 사역을 위한 배움을 여는 것"
저자는 자전거 비전 트립을 통해 위와 같은 목적을 이루어 갔다. 그 여정은 쉽지 않았다. 힘들고 지친 여정이었다. 그는 말씀대로 살기, 진짜 믿음에 대한 질문을 삶속에서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광야에선 영적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광야는 어떤 곳인가?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켜 광야훈련을 시켰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훈련이 필요했던 것이다. 교만과 불신앙에 대한 굴복과 하나님 경외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심기 위함이었다. 광야생활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였다. 광야에서는 어느 누구도 살아갈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을 살았다. 철저한 하나님의 살피심이다.
저자는 자전거 광야 여행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일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들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깨닫는 여행이었다. 여행중에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기도 했다.
인생은 광야이다. 각자의 삶에서 광야를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광야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광야를 헤쳐나가려고 하는 인간의 교만을 놓치 않는다. 왜 그럴까. 살기 위함이다. 광야는 내가 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죽어야만 사는 곳이 광야이다. 저자는 광야를 통해 자신을 버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붙들고 새롭게 나아가는 무대로 삼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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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며 성령이 충만하셨고, 그곳에서 마귀의 유혹을 받으시며 물리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밤 늦게까지 사역을 마치시고 나서 그 다음 날 사역을 하시기 전에 광야(성경에서는 주로 한적한 곳으로 번역되지만 원어로 보면 광야와 같은 단어라고 한다)로 가셔서 기도하시며 새힘을 얻으셨다.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이면 그러한 광야를 꿈꾼다. 그러나 현실 속에 광야를 간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정말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이것도 핑계일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 주님을 쫓았으니까 말이다. 꿈을 꾸지만 현실 앞에 주저하고 결국에는 좌절할 수 밖에 없는 나에게 한 권의 책이 나를 광야의 생활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했다. 그 책이 바로 “떠나 보니 함께 였다”라는 책이다. 저자는 7년 2개월 동안 112개국을 돌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저자는 누구보다 교회 일에 열심이었고, 열정적이었지만 어느 순간 사역은 열심히 하고 있지만 진정한 기쁨과 감사가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하나님을 기만했던 것이다. 각성이 필요했다. 그리고 ‘광야’로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광야의 이야기가 바로 이 책에 담겨져 있다. 저자는 알래스카에서 일종의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북미와 남미로 내려갔다. 북미에서는 힘든 여정 가운데서도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다. 남미로 내려가서는 도리어 저자가 도와 줘야 하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했다. 또한 무법 천지인 그곳에서 저자는 모든 것을 다 잃고 목숨마저 잃을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은 기막히게 역사하셨다. 그것을 통해서 저자는 예수님의 사랑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 3가지를 깨달았다. 첫째는 예수님은 나를 먼저 사랑해 주셨다. 둘째, 예수님은 나를 ‘더 사랑’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나를 ‘끝까지 사랑’해 주셨다. (p. 120-121) 아프리카의 사막과 도시를 돌면서 저자는 눈부시게 성장하는 변화를 맛보기도 했고, 또한 그 속에서 어두운 그늘을 맛보기도 했다. 그리고 저자는 그곳에서 아프리카의 여행의 로망인 세렌게티와 킬로만자로를 포기하고 난민을 돕기로 한 위대한 결심을 한다. 그것은 광야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실천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러한 결심은 말라리아로 부터 그들을 돕기 위해서 모기장을 사기로 하고 제조 업체에 반값을 요구하는 당당한 모습으로 저자를 변화시킨 것 같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누리는 삶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돌면서 모세가 느꼈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 그곳은 세계에서 위험한 지역 중의 하나이긴 하지만 그러기에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긴박했던 내용은 바로 서아프리카에서 가나로 가는 버스에서 강도를 만난 것이다. 영화 같은 현실이 저자에게 닥쳐왔고 그 순간 저자는 오로지 살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순간 기적적으로 경찰 특공대가 왔고, 살 수 있었다. 저자는 가나에 들어와서 한 여인이 “God bless you”의 말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관자이시며 모든 것 되신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체득”(p. 297)라는 고백을 했다. 저자는 마지막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말 힘든 때는 따로 있었다. 하루의 소박한 공급을 기도한 그날 저녁, 정말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받을 때, 깊은 영성과 겸허한 성품을 지닌 이와 교제를 나눌 때, 태곳적 신비가 가득한 광대한 풍경에 압도되었을 때,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터지는 순간들, 바로 그 때에 차오르는 환희로 도무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 너무 힘들었다. 믿을 수 있겠는가? 진심이다. ”(p. 322) 이 내용을 읽으면서 부럽기도 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아직까지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못 느껴서가 아닐까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광야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읽어보자. “내가 경험했던 광야란, 물론 사막이나 들이나 드넓은 눈밭 같은 물리적 공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하나님과 나와 투명하고도 비밀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 그곳이 바로 광야다. 나의 고민이 시작되고, 나의 문제가 하나님을 가려버릴 때 우리는 광야를 찾아야 한다. 광야가 나에게 가르쳐 준 건 기적을 꿈 꿀 수 있는 조그마한 용기였다. 어떠한 시련과 절망에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게 하는 힘이 바로 기적이다.” (p. 324) 멀리 가지 않아도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나만의 광야를 만들어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겠다. 저자와 함께 여행한 광야 여행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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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는 말 그대로 척박한 환경이고, 그 누구하나 도와주지 않는 곳이고, 풍족하지 않고, 늘 부족함과 메마름이 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보면서 광야 같은 삶을 싫어한다는 마음이 든다. 모든 것이 형통하고 모든 것이 잘 되는 것만을 원하는 것 같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증명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늘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는 가운데서 형제들에게 떳떳하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못하겠단다. 왜냐하면 잘 살지도 못하면서 자신 있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겠다는 이유에서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 안에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예배와 행사들에 참여하는 신실하고, 경건의 모양을 인정받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과 깊은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공허하고, 기쁨과 감격과 감사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면서 적잖이 놀라게 된다. 그런데 이런 모습들이 의외로 많이 있는 것 같다. 떠나보니 함께 였다의 저자 또한 그랬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의 일에 열심이었고, 그 속에는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은혜가 없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생생한 하나님, 삶의 현장에서 깊숙이 들어와 우리의 삶을 터치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떠나 보니 함께 였다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열정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도 영적인 감격 없이 표류하던 어느날 하나님의 말씀은 나무들과 꽃들, 구름들과 별들에도 기록하셨다는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한마디에 남은 인생의 십일조를 하나님과 오롯이 보내겠다는 심정으로 광야 여행을 계획하고 자전거를 타고 7년 2개월 전 세계 112국을 다니며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시간을 가진 은혜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이 책안에 놀랍게 담겨져 있다. 저자가 300만원을 들고, 7년 2개월 112개국을 광야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공급해 주심의 역사이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옷에 헤지지 않고, 신발이 닳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체험 하나 하나가 가슴 깊숙이 다가온다. 글을 읽는 동안 하나님의 임재와 가슴 깊은 곳에서 흘러넘치는 생수의 강을 맛본다. 벅찬 감격과 저자의 광야 여행 동안 그를 인도했던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나의 삶속에 들어와 계신 하나님이 오버랩 되면서 큰 은혜와 회복의 시간이었다. 이런 것을 보면 그리스도인들도 편안함 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기쁨과 감사를 체험하기 위해서 광야로 내 몰아야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깊이 가지게 되다. 떠나보니 함께였다에 생생하게 그려진 하나님의 역사하신 은혜가 우리의 삶 안에 있다. 그런데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니까 하나님도 침묵하신다. 이 책이 다시 한번 하나님을 더 깊이 갈망하고, 찾고, 인도하심 따라 가라하시면 가고, 멈추라 하시면 멈춰야 되겠다는 결심을 더 견고하게 할 수 있는 복된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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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 보니 함께였다.
떠나 보니 함께였다 라는 책을 처음 받고 책 제목만 봤을때 들어오는 생각은 믿음의 발걸음이었다. 믿음의 발걸음을 뗄 때, 어렵고 힘든 길을 걷게 되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함께하여주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정말 대단했다. 나는 솔직히 말해 믿음을 갖고 한 교회에서 13년째 섬기고 있지만, 하나님께 인생의 십일조를 드리기위해 도전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도전도 되고, 그 큰 믿음에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7년 2개월 동안 자전거 광야 여행이라니.. 112개국을 돌아다니면서 자전거 비전 트립을 통해 겪은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와 역사하심을 이 책을 통해 절절하게 수놓고 있다.
나 자신을 정말 처절하게 돌아볼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정말 큰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한대로 나 또한 똑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고3때 처음 교회에 나와서 누나들의 칭찬을 들으며 항상 유쾌하고 재미있는 아이라는 말을 들으며 교회에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오후 예배 때 들리던 찬양에 매료되어 찬양팀이 되길 소망했고, 아이들이 너무나도 좋아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기를 결심했다. 청년부 순장으로, 찬양팀 리더로, 찬양인도자로, 선교팀장으로.. 늘 장혜일이라는 사람이 일을 계획하고 준비하면 좋은 성과를 내고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말을 들으면서.. 내 자신은 교만에 매몰되기 시작했다. 저자와 똑같은 삶을 살았던 것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는데. 내 자신은 지금도 교만하고 또 교만하다. 내 한마디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찬양을 선포할 때마다 은혜가 충만하다는 말을 들으며 더욱 내 자신을 높여가기 시작했다. 저자가 말한다...
하나님을 기만하지 말라!!!
하나님을 기만하고 있었다.. 나 스스로 계획하고 나 자신을 높이고 있었던 것이다. 기쁨과 감사는 부족한채.. 가식으로 점철된 네 신앙에 하나님이 들어갈 자리는 없어.. 라는 책의 글귀가 내 가슴을 때렸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더욱 갈망하고자 한 저자는 광야로 나아간다. 광야.. 거칠고 척박하고 고난의 자리.. 고난의 자리로 나아가는 그 발걸음을 하나님이 귀하게 보신다.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을 그 광야에서 보여주신 것이다.
지금도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지만.. 그 충격에 어질어질 하다.. 내 모습이 참 초라하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인격적인 만남을 사모하자. 가식적으로 하나님을 기만하는 신앙인이 아닌. 내 삶을 드릴 수 있는.. 찬양의 가사처럼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참 감사합니다. 이런 책을 통해 다시한번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사모할 수 있음에 더욱 큰 감동이다.
현재 나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교회생활에 열심을 다하고 있다. 물론 칭찬이라는 달콤함에 묻혀 교만의 자리에 앉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선교를 준비하고 있는 요즘.. 내 생활에 매몰되.. 선교를 이번에는 안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참 .. 하나님은 대단하시다. 그런 내 마음을 아시고 이런 책을 읽게 하심에.. 너무 감사하다.
떠나 보니 함께였다.. 떠나라. 떠나라. 광야로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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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년 전에 선교물품을 준비해서 25명이 태국 치앙마이로 비전트립을 다녀왔다. “우리가 가는 곳, 우리의 발길이 닿는 곳, 우리의 눈길이 머무는 곳, 그 어디에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게 하소서.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고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하면서 ‘호웨이 마깽’이라는 마을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라후족이 살고 있었다. 라후족은 또 여러 족속으로 갈리는 데 그 중 ‘빨간 라후족’이라 불리는 ‘라후댕’이 사는 곳이다. 라후족 중에서도 선교하기가 가장 어려운 족속이다. 고집이 세고 게으르며, 아이들을 잘 돌보지 않고, 교육시키지 않는다. 거리에는 학교에 가지 않은 아이들이 돌아다닌다. 그러다 보니 여자애들은 13살 정도만 되면 남자를 사귀고 임신을 한다고 한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도 영적인 감격 없이 표류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은 나무들과 꽃들, 구름들과 별들에도 기록하셨다”는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한마디에 남은 인생의 십일조를 하나님과 오롯이 보내겠다는 심정으로 광야 여행을 계획하고 2006년부터 7년 2개월 간 자전거로 전 세계 112개국을 자전거로 달린 청년 문종성의 여행기를 담은 것이다. 이 책은 여행안내서가 아니다. 막연한 세계일주가 아니라, ‘자전거 광야 여행’, 즉 비전 트립이다.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 은혜를 청년들에게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로 나누는 것, 전 세계 오지와 빈민촌 선교지를 탐방하며 향후 사역을 위한 배움을 여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저자는 하나님이 창조한 심장과 두 다리로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을 보고 싶어 자전거라는 수단을 택했다. 총칼 든 무장 세력을 포함해 6차례 강도와 도둑을 만나고 2차례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라리아, 풍토병, 고산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걸핏하면 굶었고 힘들었다. 가장 힘든 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황홀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나눌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을 찾을 때나 찾지 않을 때나 항상 나와 함께 계신다.”고 하면서 “우리는 흔히 시험, 결혼, 병마 등 내게 중요한 삶의 고비에서 하나님을 찾는다. 여행해 보니 하나님은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함께 계시더라.”고 고백한다. 저자는 영적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는 광야여행을 한다. 눈과 얼음밖에는 보이지 않는 곳, 알래스카. 드디어 길고 긴 광야 여행이 시작되었다. 저자는 “광야에 나와서 내가 가장 놀란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소한 기도조차 반응하신다.”고 고백했다. “페루 사막 한복판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지치고 목말라 자전거 핸들을 바닥에 던지다시피 하고 쓰러졌다. 시선을 돌렸는데 사막 한가운데 잡초 한 포기가 있었다. 하나님이 그 황량한 사막에도 생명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 이후 작은 것들에도 모두 하나님 손길이 닿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게 됐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라는 뿌리를 갖고 있다. 그 뿌리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런데 우리는 뿌리에서 자란 화려한 열매를 가치 있게 여긴다. 사회적 인정, 부와 권력, 명예를 중요시한다.” 저자가 경험했던 광야란 사막이나 들이나 드넓은 눈밭 같은 물리적 공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세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하나님과 투명하고도 비밀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 그 곳이 바로 광야다. 그 광야로 나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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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아브라함이 생각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나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네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자세히 보게 되면, 보여준 땅이 아니라, 보여줄 땅, 즉 미래형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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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오롯이 보내겠다는 일념으로 실행한 7년 2개월 112개국의 자전거를 이용한 순례길, ‘예수님과 함께 떠난 자전거 광야 여행’이라는 부제가 더 선명하게 이 책의 내용을 잘 상징해 주고 있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의 노예생활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세에 의해 해방되어 40년 동안 훈련받던 곳이다. 성경에서는 광야를 ‘불 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다. 히브리어로 ‘광야’는 ‘미드바르’이다. 브루그만이라는 미국의 성경학자는 이를 ‘아무 것도 없음의 자리’라고 설명해 준다. 이 ‘미드바르’의 동사형은 ‘다바르’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순종하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저자는 나름대로 하나님을 열심히 신앙한다고 자부하였다. 그러나 그런 신앙의 핵심에는 자신이 존재하고 있었고, 하나님을 기만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성경말씀을 읽으며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삶에 강한 도전을 받고 직접 하나님과 독대하는 광야체험을 하고자 1년 간 준비를 하고 단 돈 삼백만원을 지참하고 출발한 순례길이다. 저자는 떠나기 전에 보호자인 어머님의 동의를 ‘장기 기증’까지 해 놓고 떠난 것을 보면, 일사각오를 엿 볼 수 있다. 결국 저자는 세상의 인연과 편리함, 개인적인 나태와 안일을 철저히 배제한 온전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생명을 담보한 영적인 광야체험을 출발한 것이다. 저자는 자기 자신의 생명과 생활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고 출발한 순례 여정이기에 따지고 보면 하나님께 엄청난 부담을 지우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여정에서 일어 나고 만난 모든 사람과 사건을 통해 얼마나 하나님이 저자를 세밀히 사랑하고 있는가를 확인시켜 준 것임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멕시코 현지의 경찰관이 가르쳐 준대로 돈이 없을 경우, 안전하게 숙식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주로 소방서와 경찰서를 이용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다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한 번은 미국에서 음식과 물이 없는 사막에서 위기감에 휩싸여 있을 때 도로로 뛰쳐나가 지나가는 차를 세우고 도움을 청했을 때는 네 대의 차에서 음식과 물은 물론 연락처까지 주면서 급한 일이 생기면 연락을 주라는 친절까지 베풀어 주었다. 페루에서 만난 몸에 문신을 한 호세라는 사람에게서 받은 특별한 도움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끝까지 따라 와서 도움을 주겠다고 강청을 하고, 에콰도르에서 도둑을 만나 여비가 없는 것을 걱정하여 길거리 모금을 해 준 이벤트와 사막의 안전을 위해 80KM를 동행해 준 사랑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다 그렇듯이 좋은 일과 형통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혼자하는 자전거 여행은 언제나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멕시코에서는 카메라와 캠코더, 니카라과에서는 외장하드와 mp3등을, 베네스웰라에서는 컴퓨터와 가방, 에콰도르에서 다시 컴퓨터 및 기타 장비들과 현금들을 도난당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자전거의 짐과 자전거까지 몽땅 강탈을 당하고 말았다. 저자는 이 사건의 후유증으로 망연자실하여 며칠을 하나님과의 교제도 끊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 내가 네게서 그들에게 옮겼다’는 메시지가 떠올랐고, 그러게 생각하니 평안이 찾아 왔고 새로운 힘이 생기더라는 간증이다. 미국령의 알레스카에서 출발한 기록은 히말라야 안나프르나 정상에 오르는 것으로 끝나 있다. 그러나, 저자가 들려 준 순례 체험은 나에게는 하나님의 간접 체험이며, 멈추지 않는 도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