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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글로 전하는 울림, 그 날것 그대로의 삶【소설가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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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자신이 그렇게도 쓰기 귀찮아 했던 그날의 일기장  하단 한쪽에 자리한 '참, 잘했어요!' 도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불현듯 그 도장과 함께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일기를 칭찬하던 낮의 일이 떠올랐고, 칭찬의 기쁨을 되새겨보았다. 아마 그때 이후부터 였을게다. 아이가 일기 쓰기를 즐겨했던게.. 아이는 자그마한 칭찬에도 날아갈듯이 기뻤고, 그 칭찬의 불꽃이 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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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자신이 그렇게도 쓰기 귀찮아 했던 그날의 일기장  하단 한쪽에 자리한 '참, 잘했어요!' 도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불현듯 그 도장과 함께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일기를 칭찬하던 낮의 일이 떠올랐고, 칭찬의 기쁨을 되새겨보았다. 아마 그때 이후부터 였을게다. 아이가 일기 쓰기를 즐겨했던게.. 아이는 자그마한 칭찬에도 날아갈듯이 기뻤고, 그 칭찬의 불꽃이 사그라들지 않게 무던히도 애쓰며 열심히, 성실한 아이로 자리매김했다. 초등 고학년이 됐을때는 꾸준한 노력이 빛을 발해 교내든 시에서 주최하는 글짓기대회든 꽤 좋은 성적을 항상 거두었다. 그건 중학생때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아이가 소녀가 되고부터는 차츰 일기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한창 사춘기 무렵 칭찬이 좋아 썼던 일기장 모두를 고스란히 찢어서 내다버렸다. 거기엔 진짜 자신의 이야기가 들어있지 않았다. 칭찬에 목말라 있던 아이의 배고픔만 들어있을 뿐이었다. 소녀는 이제 일기를 쓰지 않기로 했다. 자연적으로 칭찬과도 멀어졌다. 소녀의 글은 영원한 답보상태였다. 아이의 글에서 멈추어있었다. 소녀가 어른이 되고도 달라지는건 없었다. 오히려 더더욱 멀어지기만 했다. 아이의 글에서 멈춘 글실력을 가지고 어른은 이제 글을 쓴다. 한자한자, 열심히 타자를 치고 펜대를 굴리고 생각을 곱씹어댄다. 이제는 칭찬에 목말라 있는 아이가 아닌, 정말이지 나의 진솔한 삶을 이야기 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소설가,혹은 작가가 되고싶었던 적이 있었냐고? 열에 아홉은 어렸을적 꿈을 물어보면 작가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나도 어릴적에는, 한때나마 그런 꿈을 가져본 적도 있다. 어디까지나 딱 초등학교때까지 말이다. 그 이후로는 그런 꿈을 꿔본적은 없다. 글만 써댄다고 다 작가가 되는것도 아니고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한 소설가가 되있더라..이렇게 쉽게 탄생하는 직업이 작가는 아니지 않나. 오랜시간(뭐..아닌 사람도 더러 있기는 하더라만.) 배곯고 몸 상하고 수십번 고배를 마시고 처절한 고독을 씹고 또 씹고서야 등단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는 곳이 이 글쓰기의 세계라는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린 나이에 등단한다고 해서 그 사람은 필력도 필력이지만 정말 운도 좋아..라고 단정해버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 후부터 또 그들은 치열한 글의 블랙홀에, 창작의 감옥에 갇혀 살아야 하는데. 그래서 말인데 난 작가가 되겠다는 분수에 맞지 않는 꿈을 꾸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궁금하지 않은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궁금하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글을 쓰고있는지... 

소설가들의 삶은 뭔가 다를거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다. 사람 사는 세상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은 어느곳,어느분야에서나 다 적용되는 말이다. 그래서 이들의 삶에 뭐 대단한게 있을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것보다는 그들이 자신의 삶을 나타내며 휘갈기는 단어의 나열이 궁금했다. 삶이 다를거라는 기대가 아닌 똑같은 삶일지라도 작가들의 창작에서 아지랑이를 피우는 삶을 이야기하는 글의 색다름을 파고들고 싶었다. 자신들이 창작열을 불태울때 추구하는 방법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들 속에는 하나같이 예민함이 숨어있다. 스스로는 세상에 초연한 듯 문장으로 풀어냈지만 그 속에는 작가만의 세상을 보는 또다른 문이 분명 존재했다. 창작론 따위는 없다고 말하는 작가, 읽고 소화시키기에도 어려운 확고한 자기만의 글쓰는 방식 등을 열거한 작가들 틈에서, 오히려 창작론을 그럴듯하게 이야기한 작가보다는 일상을 낱낱히 고하고, 우스개소리를 해대며 편하게 휘갈긴 듯한 글들에서 더욱 그 작가의 창작방식을 담을 수 있었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책속에 등장하는 17명의 쟁쟁하고도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이야기는 욕심나지 않을수가 없다. 뭐 특별나고 특출난걸 찾으려고 한다면, 뭔가 글을 쓰는데 있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릴것 같은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읽는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같다. 그저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는지,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있는지, 그 속에서 소설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 정도가 와닿는 글이었다. 이들에게 글쓰기는 그저 삶이다. 우리가 밥을 먹는것과 똑같은 그런 삶.

굳이 다른 점을 꼽으라면 우리가 자신만의 삶을 창조한다면 소설가들은 다양한 이들의 삶을 창조하는 이들이라는 것이 다른 점이라면 다른점일까. 그 속에는 자신의 삶도 있고 가족, 친구, 어느 이름 모를 낯선이들이 그득하다. 우리 모두의 삶이 집약되어 있는 곳이 소설가들이 창조하는 또 하나의 삶(소설) 속이다. 다양한 삶의 거리를 들려주려 펜 끝과 싸워가며, 때로는 유유자적하게 때로는 골때리게 그려내는 삶..그래서 그들은 소설가다.


["나는 리뷰어다" 이벤트 참여 리뷰입니다]



w*****8 2011.11.11. 신고 공감 19 댓글 25
리뷰 총점 종이책
글쟁이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할복한 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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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화폭삼아 우울하나 진실에 가까운 열정을 뿜어낼 때마다 나는 차마 가질 수 없는 이야기를 가진다. 그러곤 벼락같이 찾아드는 온갖 시련의 아련한 향기를 깊이 들이마신다. 날 위한 보상과 특혜로서. 가짜투성인 몸피에서 그나마 진짜를 찾을 수 있는 곳이라곤 언제나 그렇듯 섬약纖弱한 마음뿐이었으므로. 내가 아는 거라곤 그것뿐이고, 이것이 바로 진부하나 충분히 가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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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화폭삼아 우울하나 진실에 가까운 열정을 뿜어낼 때마다 나는 차마 가질 수 없는 이야기를 가진다. 그러곤 벼락같이 찾아드는 온갖 시련의 아련한 향기를 깊이 들이마신다. 날 위한 보상과 특혜로서. 가짜투성인 몸피에서 그나마 진짜를 찾을 수 있는 곳이라곤 언제나 그렇듯 섬약纖弱한 마음뿐이었으므로. 내가 아는 거라곤 그것뿐이고, 이것이 바로 진부하나 충분히 가치 있는 글쓰기의 복채라고 자위自慰하니까.

 

영감靈感은 성에 낀 유리창에 손가락으로 써내려간 글씨처럼 단발적인 여운을 남긴다. 찰나의 영원을 간직하기 위한 예상된 결핍. 해서 나는 매사에 즉흥적인 편이다. 계획도 없고 구상도 없는, 순간에 완벽하게 의존하는 스타일. 음악을 듣다가 책을 읽다가 용변을 보다가 집안일을 하다가 - 문득문득 밟히는 단어나 어떤 경험이 찾아올라치면 정신없이 적어두는. 그렇게 두서없이 적은 메모(시:창작시/단어/명언/정보-별도 메모)에서 당시의 착상을 추적하고 질문하고 답하다 다른 상황이 끼어들어도 심히 괜찮은 그 과정이 나는 좋다. 설령 메모의 시점과 내용조차 까맣게 잊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적어두었다’라는 사실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으니까. 불협화음에서 조화를 찾고야말겠다는 오기 찬 나만의 룰이 있으니까. 예컨대 매사를 계획적인 일사천리로 해결하는 플랜형이 있는 반면 산만散漫 속에서 자신만의 질서를 잡아가는 나 같은 빙충형도 있어야 세상이 좀 더 다이나믹해지지 않을까. 이질異質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을 테고. ‘생긴 대로 살기’, ‘너는 너 나는 나’ 혹은 ‘동음이의同音異議’. 다 같은 인간이라 하나 기질은 각기 다른, 이는 결국 모든 성향의 인간들을 조화롭게 아우르려는 속세의 거룩하신 뜻에도 핍진하게 부합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 이쯤에서 적당히 개성이라고 해두자. 잠깐! 그렇다고 해서 플랜형이 이상적이고 빙충형은 그렇지 않다 라는 식의 편견은 부디 지양해주시길. 쾌쾌한 보수保守에서 서둘러 탈피하는 자만이 진정의 글을 잡을지니.

 

**** 글쟁이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할복한 전사들 ****

 

인간의 언어가 시간을 묘사할 수 없으리라는 운명을

나는 그 노을을 보면서 깨닫는다.(85쪽, 김훈) 

 

-그게 쓰고 있는 소설과 어떤 관련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장 쓰고 있는 소설에 어떤 영향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길을 잃고 헤매는 나 자신에게는 도움이 되었다고.

그것들은 길을 찾게 해주는 주문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147쪽, 윤성희)

 

‘니들이 다자이오사무를 알아?’ 자살문화를 예술의 끝판이라 여기는 개인이나 집단 혹은 그를 대표하는 나라가 있다. 일본. 물론 나는 그것이 문학의 방편이나 대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의다. 그러나 영혼의 빙의적 표출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직면했을 때는 예외를 둔다. 이점이야말로 문학인(혹은 예술가)의 숙명이자 운명에 다름 아니니까. 다자이오사무를 향한 미시마유키오의 맹렬비판에 대한 반박성 해명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열일곱 명의 작가노트 모음집이다. 삶이 한바탕의 씁쓸한 농담이나 각박한 연출(연기)임을 증거 함으로써 애잔한 동지애를 불러일으키는 <인간실격>. 나는 이 작품과 <사양>의 리뷰로 모 인터넷서점에서 ‘이달의 우수리뷰’로 선정된 바 있다. 그 전에 이미 <만년>을 비롯한 도서출판 b에서 출간된 다자이오사무 3권 전집(<사랑과 미에 대하여>, <유다의 고백>)을 급매해 정독할 정도로 나는 그의 열렬한 팬이었다. 이런 나에게 김경욱 작가의 항변은 지극히 마땅해보였고, 본의 아니게 그를 작가나 평론가라기보다는 듬직한 오사무지원군쯤으로 각인하는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는 고백을 해야겠다.

 

두근두근 글 고이는 애란의 매력에 빠져, 빠져. 그런가하면 지적 겉멋부리기에 한껏 열이 올랐던 대학시절의 김애란. 그녀의 10년 전 경험담은 ‘역시!’라는 공감적 감탄사를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사건의 발단은 헌책방에 동행한 선배의 강매 성 추천으로 구매한 책(기피 대상 1호격의 묵직한 도서 <언어학사>) 곳곳에 남겨진 옛 주인의 흔적. 염불(책)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는 사람처럼 그녀는 책에 적힌 메모에 과잉 호기심과 집착을 보인다. 이는 책 주인의 당시 신상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그녀의 탐정다운 기치旗幟와 연결되고, 마침내 발견된 한 장의 수강신청서를 통해 책 주인의 러브노선의 상대까지 밝혀내기에 이른다. 게다 그들(남자에게만 전화함)과 통화를 시도하는 배짱과 집요함이라니. 나는 이를, 될 성 부른 나무(문학기대주)의 투철한 작가근성이라고 본다. 이 년 전쯤엔가 <두근두근 내 인생>을 필두로 <침이 고인다>, <물속 골리앗>을 줄줄이 읽고 일찍이 나는 이 작가의 범상치 않은 기백을 알아보긴 했었다.

 

글밥으로 굴러먹은 지 꽤 됐소. 처음 소설을 쓸 무렵, 언어들은 이방인들의 창문처럼 나를 유혹했다.(205쪽) 내 글은 보자기를 쓰고 다가오고 그 얼굴을 보려고 하면 돌아앉는다.(206쪽) 첫 문장부터 가히 압도적이더니, 보자기를 쓰고 다가온 영감의 얼굴을 볼라치면 돌아앉아버리다니. 글쓰기의 고충에 대한 비유를 저리도 적확하게 표현하다니. 명민明敏한 글쟁이의 공감대적 시행착오가 반가워지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당연 나는 전.경.린.이라는 이름 석 자를 뇌에 입력시킴으로써 그녀에 대한 예우를 차려본다. 그 다음은 기억의 소관. 글 쓸 때 나또한 도입에 목숨 건다. 이는 누군가에게 내 글이 끝까지 읽혀져야 한다는 희망을 전제로, 매가리 없는 도입의 잠재적 좌절은 곧 ‘소외’랑 직결된다는 사실을 아는 자의 절박切迫이다. 이런 경우, 한 단락을 써놓고 멈칫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고, 지금처럼 되는대로 최대한 용을 써보고도 안되면 쉬다 다시 쓰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지만, 어찌 보면 그것 또한 너무나도 자연스런 수순일 터. 애초부터 목표량을 정해두지 않는 나로선 능히 감내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래선지 조각보처럼 기워진 내 글은 완전과 불완전 사이 어디쯤에서 언제나 파리한 숨을 몰아쉰다.

 

만약에? 왜? 과연? 이란 주문을 걸어. 전에 쓴 글이 좋지 않을수록, 주인공들이 명치에 걸려 소화되지 않은 상태로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다.(146쪽)윤성희 작가. 그녀의 글쓰기 규칙은 만약에? 라고 묻고 그다음 왜? 라고 다시 묻는 것이란다. ‘과연’은 소설을 쓰는 중간중간 더 많이 사용한다고. 그녀의 단편 <계단>의 예를 들자면, ‘만약에 그 두 남자가 집을 맞바꾸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바꾸어 물어보면 된다. “만약에?”와 “왜”라는 질문들이 서너 번씩 오고 가다가 어느 정도 일치를 보려할 때, “과연?”이란 질문을 던진다.(151쪽) 이 같은 작문법은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생소한 만큼 머리에 콕콕 박힌다. 이게 다가 아니다. 그녀는 친절하게도 자신이 쓴 이야기의 구성까지 소개한다. 만약에? + 포스트잇에 적어둔 구절들 + 왜? + 전에 쓴 소설들의 많은 단점들 + 과연? + 눈을 감고 한 번에 한 단어씩!이라고 중얼거리는 순간들.(152쪽) 이처럼 그녀의 작문노트는 열일곱 명의 소설가 중 이야기창조자에게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더불어 원하는 존재가 될 수 없으면 능력만큼의 존재라도 되어야 한다든가 좋은 소설을 쓸 수 없다면 최소한 좋은 작가의 태도만은 가져야 한다(152쪽)는 글쟁이로서의 사명감과도 같은 마음가짐이나 태도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는다. 나의 횡설수설을 이해하시라. 공감대가 많을수록 말 주변도 어수선해지는 법. 나는 그녀의 작품이 궁금해졌고, 곧바로 잠정적 구매를 결심했다. 이와는 달리, 이혜경 작가는 <백년 동안의 고독>(G. 마르케스)을 접하던 중, 코끼리라고 불리던 거구의 여자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를 찾아와 먹기 시합을 하는데, 상대의 모자란 인품 때문에 세군도가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는 대목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유인즉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글들을 쓴다면, 그건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품이 모자라서일 거라(198쪽)는 생각을 불러일으켜서라고. 그리고 나는 감격의 직격타라 할 수 있는 문장을 발견했다. 책을 읽다가 내 마음의 현을 오래, 그리고 깊게 퉁긴 이들이 서로 교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의 기쁨은, 아름다운 문장을 만났을 때의 기쁨보다 한결 천진한 데가 있다.(199쪽) 독서는 어떨까. 그녀는 책을 열심히 읽는 시기와, 책을 덜 읽는 시기에 따라 삶의 모양새가 다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책 읽기에 소홀한 기간이 길어지면, 나는 농활 나온 도시 학생들이 심은 뜬 모처럼 느껴진다 - 반면 책을 비교적 성실하게 읽는 시기엔 숙련된 농부가 심은 모처럼 뿌리를 내린다(199쪽).

 

쉼 없이 흔들려야 글이 나오느니. 범사의 멘탈붕괴야말로 글쓰기의 공로자다. 나는 번잡한 마음을 번잡하게 자주 그리곤 한다. 그것은 때때로 낙서나 졸시, 수필 혹은 일기라는 장르를 떠난, 형식과 내용 없는 글로 전락한다. 그러나 그런 고도의 지분거림을 극복한 연후의 희열 또한 대단한 것이어서 어느 순간 글은 뜻하지 않은 보람을 반드시 선사한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그리고 여기, 열일곱 명의 작가들의 경험담은 그런 날 위해 준비된 다정다감한 격려이려니. 감사해하는 나의 마음이 그들에게 가닿길 바라며 이 글을 매듭짓는다.



a*********9 2013.08.06. 신고 공감 17 댓글 15
리뷰 총점 종이책
『소설가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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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가가 있었던가, 하는 놀라움과 ‘역시’ 하는 탄성이 나오게 하는 작가, 그리고 이름과 작품만 접했던 작가까지 총 열 일곱 작가의 창작론이 담긴 책이다. 주제는 같으나 풀어내는 방식에선 확연히 다름을 느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 내용도 있었고 맑은 물 속에 물감 한 방울 톡 떨어져 은은히 퍼지듯 자연스럽게 글로 스며들게 해주는 작가도 있다. 또는 ‘실은 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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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가가 있었던가, 하는 놀라움과 ‘역시’ 하는 탄성이 나오게 하는 작가, 그리고 이름과 작품만 접했던 작가까지 총 열 일곱 작가의 창작론이 담긴 책이다. 주제는 같으나 풀어내는 방식에선 확연히 다름을 느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 내용도 있었고 맑은 물 속에 물감 한 방울 톡 떨어져 은은히 퍼지듯 자연스럽게 글로 스며들게 해주는 작가도 있다. 또는 ‘실은 별 것 없어요’하며 고백의 서 같은 문체로 말해주는 작가도 있었다. 가장 어린 작가인 김애란(1980년생)부터 가장 어르신인 김훈 (1948년생)작가까지, 우리나라의 심장 서울태생(김인숙, 김훈, 심윤경, 윤영수, 하성란)부터 강원도 산골짜기(이순원), 더 멀리 남도의 끝자락 거문도 출생의 작가(한창훈)까지. 작은 나라이지만 다양한 삶과 생활을 가진 작가들이 ‘창작론’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이런 저런 자신의 글쓰기론에 대해 독자에게 고백한다. 그 중 몇몇은, 실은 ‘별 거 없다’, ‘그냥 쓴다’라고 말하는 분이 계셨지만 대부분 문장의 연마, 혼자의 시간, 자연의 언어, 또는 음악과 그림을 통하여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치밀한 플롯을 짜고 시작하는 사람보다 직관과 쓰고 싶다는 열망으로 펜을 잡는다. 등장인물과 이야기의 끝을 잡아놓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다보면 수없이 바뀌고 퇴고해서 전혀 다른 색의 소설로 탄생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꼭 다 발표하지도 않는다. 자신에게 던지는 화두로 시작해서 자신이 답을 얻었다는 결론이 난 이야기는 더욱, 출간을 꺼리게 된다.

 

편안하게 읽혔다. 한 사람의 문체를 적응 하려 치면 또 다른 사람이 전혀 다른 문체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래서 끊어 읽기는 좋다. 그러나 앞의 이야기를 잊어먹기도 좋다. 특히 첫 포문을 연 김경욱 작가의 창작론은 처음부터 머리 아플 정도로 어려워서 올해 발견한 새싹작가 김애란의 글쓰기론으로 넘어가버렸다. 확실히, 그녀의 언어와 문장은 호흡이 끊기지 않는다. 쭈욱 읽어버릴 수 있는, 평범한 속에 비범함이 숨은 문체다. 사물의 세심한 관찰력과 인물 묘사가 탁월한 작가다. 그러나 김훈이나 한창훈 같이 역동적이고 간결한 문체와는 대조적이다. 나에게는 후자의 문장이 시원하다. 김훈은 [내 젊은 날의 숲]을 통해 강렬하게 인상이 박혀있었지만 한창훈의 글은 책만 사놓고 진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그를 더 알고 싶다는 욕망이 거세게 일었다. 그가 왜 그리 바다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써왔는지 알 것 같다. 그의 이야기에는 바다의 짠내가 진동할 것이라고 어렴풋이 예감해본다.

 

평범한 일상들이 글의 소재가 되고 거기서 퍼뜩 떠오르는 단어와 묘사와 문장들이 있다면 잊어먹기 전에 얼른 메모한다. 이미 그들의 소설 속에 나타난 장면들은 우리 삶에서도 흔히 겪을만한 것들이다. 단지 그것을 어떻게 글로 압착하고 다듬어서 표현해내느냐에 따라 소설이 될 수도 있고 한낱 일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김연수“음악이 내게 리얼리티를 보여 준다”(53p)는 주장을 하며 음악이 연상시켜주는 서사의 아이디어를 또 다른 음악을 추적하는 것으로 글을 이어나가고 그것이 습관이 되어버려 “글을 쓰는 내게 음악은 없어서는 안되는 무엇”(53p)이라고 못을 박는다. 김인숙의 경우는 어느 한 곳에 머물고 거기서 얻는 조각들을 퍼즐 맞추듯 써내려 간다. “불러 모아 끼워 맞추는 힘”(62p)이 그녀의 창작론이다. 김훈처럼 인간 언어의 한계에 통탄해하고 그걸 제대로 표현 못하는 자신의 부족함으로 탓하기도 한다. ‘감히 김훈이 부족하단 말인가!’ 라고 역정을 낼만한 독자들도 있겠지만 김훈은 막막한 시공을 헤맨 끝에서야 “단어와 단어들을 겨우 잇대어가”(88p)면서 불가능할 것 같은 소설쓰기를 한다고 고백한다.. 정작 그가 좋아하는 것은 글쓰기가 아니라 노는 일이고 관찰하는 일이며 남들 보기엔 허송세월로까지 비춰질 정도로 한량 스타일이다. 김훈 스스로는 사소한 동기가 한 작품을 만들게 한다지만 그러한 동기가 주어진다고 아무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아니기에 그의 소소한 일상과 인품이 최고의 문장들을 탄생시킨다고 나는 믿는다.

 


아무래도 좋아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는 더 와 닿는다. 익숙한 문체여서라기 보다 좋아하니 그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나보다. 직설적으로 자신의 소설쓰기를 말해주는 작가들의 글은 그나마 쉽다. 그러나 작가다운 기질을 그대로 녹여 은유와 비유 또는 상징적으로 쓴 작가들도 있다. 제목과 머리말만 보고 이 책을 구입한다면 일반 독자에게는 친절과 불친절이 공존하는 책일 것 같고 작가지망생들에겐 안개 속에서 발견한 불분명한 형체 정도가 될 수도 있겠다. 나에게 이 책이 준 기쁨은 작가들의 삶이 아주 조금 친근하게 다가왔다는 정도다. 그들도 사는 걱정, 밥 걱정, 사랑타령 하며 살고 있구나, 작가란 타이틀에 가두어 특별해보이려고 하는 그런 부류라고 생각했던 것을 조금 수정하는 계기가 된다.

 

 



★오타발견★
174p 두 번째 줄 야기” --> 야기


["나는 리뷰어다"이벤트 참여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g********s 2011.11.14. 신고 공감 12 댓글 24
리뷰 총점 종이책
『소설가로 산다는 것』그들의 소설 창작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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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책 중에서도 특히 소설을 좋아하는 내게 『소설가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은 더할 수 없는 호기심을 주었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소설가로 살면서 느끼는 이야기 등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책을 받기 전부터 기쁨에 겨워했었다. 작가를 좋아하고,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들이 쓰는 이야기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알고 싶은 사람이 되고 있었다. 마치 스토커처럼. 책 속에서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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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책 중에서도 특히 소설을 좋아하는 내게 『소설가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은 더할 수 없는 호기심을 주었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소설가로 살면서 느끼는 이야기 등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책을 받기 전부터 기쁨에 겨워했었다. 작가를 좋아하고,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들이 쓰는 이야기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알고 싶은 사람이 되고 있었다. 마치 스토커처럼.

책 속에서 그들의 개인적인 느낌이 있는 흔적을 찾고자 했다.
소설가로 살면서 느끼는 점이 있을거라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작가가 쓰는 창작론'을 말하는 글이었다. 생활하며 쓰는 이야기, 갑자기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이야기, 어떠한 그림을 보고 그 그림을 연상하며 글을 쓰게 되는 동기를 발견한다는 작가들의 말은 인상적이었다. 어느 한 단어를 놓고 작가의 실력 때문에 주르륵 글을 쏟아낼 것 같았던 그 분들에게도 남모르는 고통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글이 말을 걸고,
글이 자꾸 유혹하는 언어들.
그 언어들을 한 편의 소설로 만들어져 가는 일들은 글 잘 쓰는 작가들에게는 쉬운 일 같으면서도 흔히들 산고의 고통으로 만들어낸 글이라고 한다. 그만큼 작가의 마음과 모든 열정들이 그 한 편의 소설로 나타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미 떠나보낸 글들. 또 독자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글들. 작가들의 글은 저마다의 특성 답게 특별한 '소설 창작론'을 보여준다. 에세이로 써진 창작론들은 자신에게 이야기하듯이 썼고 또한 오래전의 추억들, 그리운 이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냈다.

소설가 이순원의 소설에 대한 생각을 글로 옮겨 보고자 한다.

저는 소설을 글로 짓는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의 소재, 집을 짓는 재료에 따라서 초가집을 짓는 것과 기와집을 짓는 것과 양옥을 짓는 것, 또 아파트를 짓는 것들은 저마다 공법이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나무로 짓는 집과 천막으로 짓는 집과 돌로 짓는 집들이 다 어떻게 같은 색깔로 지을 수 있을까? (182페이지 중에서)

소설가는 늘 자신만의 이야기 방법을 찾는다. (책머리에 중에서)

열일곱 분의 작가들 중 내가 좋아하는 작가도 있었고, 한 번도 책을 접해보지 못한 작가들도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이 나올때는 나도 모르게 웃음지으며 '이 작가님은 어떠한 이야기를 풀어 내실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의 페이지를 열고, 사진을 보고, 작가의 글들을 읽어내려갔고, 잘 모르는 작가의 글들은 아,,, 이런 생각을 품고 계셨구나, 이 것 때문에 글을 쓰셨구나 하고 그 작가들에게도 한 발 다가서는 느낌이 들었다. 
 
책 읽는 스타일이 다르듯 소설을 읽는 사람들도 제각각 자기 기분에 따라, 취향에 따라 느낌이 다 제각각이듯 소설가들의 생각 또한 다 다르게 다가왔다. 어느 작가의 글에서는 다정함을 읽었고, 어느 작가의 글에서는 차가운 도시적 감성을 느끼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너무 다른 생각들을 품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다양한 작가 만큼, 작가들의 다양한 생각만큼 다양한 작품들을 우리는 만날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독자는 다양하고 좋은 작품들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나는 리뷰어다"이벤트 참여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1.11.09. 신고 공감 8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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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도 뭉치니 힘이 되었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
"먼지도 뭉치니 힘이 되었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 내용보기
정의(定義)를 묻는 질문을 받으면 갑자기 머리가 띵해진다. 함축된 질문의 묵직함 때문이다. 그에 대한 답을 달 준비가 되었다면 나는 이미 관련 책을 읽었을 것이고, 준비가 안됐다면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맞다. 만약 답을 달 수준이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은 내게 그런 의미를 갖는 책이었다.     나는 무언가로 살지 않았다. 그냥 살았다
"먼지도 뭉치니 힘이 되었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 내용보기

정의(定義)묻는 질문을 받으면 갑자기 머리가 띵해진다. 함축된 질문의 묵직함 때문이다. 그에 대한 답을 달 준비가 되었다면 나는 이미 관련 책을 읽었을 것이고, 준비가 안됐다면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맞다. 만약 답을 달 수준이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은 내게 그런 의미를 갖는 책이었다.  

 

나는 무언가로 살지 않았다. 그냥 살았다. 그래서 30대 초반까지 나는 늘 허기를 느꼈다. 내 배는 너무 고팠다. 굳이 만 시간의 법칙을 들먹이지 않아도, 최소한 어떤 분야를 기웃이라도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나 또한 그들과 같이 글로 밥을 먹었다. 그 사실을 나는 늘 부끄러워했다. 그나마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괜찮은 경력이었지만 가장 부끄러운 경력이기도 했다. 당시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녹화 시간을 두 시간 앞두고, 그 직전까지 글을 쓰느라 거반 죽었다가 글만 넘기고나면 다시 살아나는 나를 혐오했다. 그 생명력이 내겐 견딜 수 없을 만큼 치욕적으로 느껴졌다. 참 달라지지 않았다. 늘 제 자리였다. 

 

그 후 나름대로 꾸준히 책을 읽었다. 나름이라는 기준은 얼마나 모호하고 어리석은가. 그런 지지부진한 삶을 살았다. 그래도 실날같이 쌓이는 것들이 있었다. 오로지 시간 때문이었다. 먼지를 뭉쳤더니 먼지도 힘이 되었다. 그 먼지같은 녀석들의 힘으로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근 10년을 소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몇 몇을 제외하고는 소설가들이 많이 낯설었다. 김애란의 소설을 작년에 읽어보았다. 그녀의 글이 내겐 편치 않았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두 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그녀의 글에서 느껴지는 어떤 구질구질한 정서가 싫었던 것 같다. 교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녀보다 나은 것이 어느 하나라도 있다고 구질하다라는 말을 감히 붙일 수 있겠는가. 리뷰어의 대단한 권세다. 기가 막혀 웃고 만다.

 

생각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나 좋았다. 소설가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고, 그들의 고충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과대 평가한다는 느낌을 주는 작가도 있었고, 자신을 감옥 속에 가둔 채 스스로에게 구형하는 작가도 있었다. 문학 안에서의 삶을 쿨하게 즐기는 작가도 있었고, 공부하듯이 파는 작가도 있었다. 다양성의 매력을 나는 글 안에서 즐겼다.

 

특히 나 같은 사람을 만나는 기쁨까지 덤으로 누렸다. 그 분이 알면 불같이 화를 낼지 아니면 기가 막혀 껄껄 웃을지 모르겠다. 열 일곱 분의 소설가 중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분들이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김종광, 심윤경, 윤성희는 그들의 조심스런 사유의 행태가 마음에 들었고, 전경린과 한창훈은 이름 석자만 알던 차여서 더 반가운 만남이 되었다. 지금껏 내게 함정임은 김소진의 아내였는데 이번에 누구의 아내가 아닌 소설가로 보이지 않는 대면을 하였다. 윤영수, 서하진, 이혜경은 같은 느낌과 다른 정서로 다가왔다. 나이들어도 그들만이 가지는 아우라가 멋졌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던 만남은 김경욱과 김훈과의 만남이었다. 김경욱의 글은 마치 한 편의 평론을 읽는 느낌이었다. 작가와 주인공과의 거리, 문학이 가지는 현재적 의미, 문학의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잘 녹아져있었다. 권영민이 왜 그의 글을 맨 앞에 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에 대한 전체 주제를 통괄하는 멋진 글이었다. 다른 글이 각론이라면 김경욱의 글은 총론이었다.

 

또한 김훈은 그만의 사유를 보여주었다.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될 문제인 것 같은데, 인칭의 문제를 화두로 자신의 소설론을 풀어냈다. 느낌은 많이 달랐지만 고종석이 떠올랐다. 그가 가진 유럽의 정서를 사랑했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김훈은 너무 무거워서 부담스러웠다. 너무 좋은 물건은 때론 안팔리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그의 책이 베스트 셀러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또한 좋은 책이 아니라는 말도 아니다. 김훈이란 사람이 그렇다는 거다. 그의 고뇌가 전달됐다. 무겁게 태어난 사람은 무겁게 사는 법이다. 그를 위해 조용히 외쳐본다. '브라보'

 

세월이 흘렀다. 20대에 원치도 않는 직업으로 피를 흘리던 내 청춘도 사라지고 없다. 언젠가부터 흰머리가 나더니 이제는 볼도 쳐지고 주름은 온 얼굴을 덮고 있다. 글로 밥벌이를 시작했던 시간으로부터 도망치고자 싸워왔던 시간들이었다. 감히 작가는 꿈도 꾸지 않았고 나는 문학소녀 출신도 아니다. 왜 내 시작이 글로부터 됐어야 했는지에 대해 끝없는 자문을 했었다. 나만의 觀이 서지 않는다면 절대 글이란 걸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기에 내 평생 다시는 글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이 자리에 있다. 그리고 지금 힘들어도 행복하다.                                                 

   

 사진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

 

 

 

 

d*********2 2012.03.28. 신고 공감 7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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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래가지고 소설가 해먹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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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래가지고 소설가 해먹겠어?!" 내용보기

다음 지문을 읽고 알맞은 답을 고르시오…..

전지적 작가 시점.

3인칭 작가 관찰자 시점.

1인칭 주인공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

 

중고등학교 이후로 문학시간에 제일 황당했던 문제가 이런 것이었다. 시점!(point of view)-소설이 쓰여진 방식, 서술의 초점이 무엇이냐를- 물어대는 질문. , 내 눈에는 모두 다 전지적 작가 시점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3인칭 시점도 1인칭 시점도 모두, 아무리 아닌 척한다고 한들 실은 작가가 가지고 노는 인물과 사건이 아니던가?! 이런 문제가 나오면 나는 거의 늘 답이 헷갈렸다. 전지적 인지능력을 갖춘 어떤 사람이 나는~~~”이라고 했다가 그녀는~~”이라고 했다가 하니, 도통 2~4번의 답을 고를 수가 없었다. 소설을 쓰는 방식.. 어렵구나 했다.

 

그 때부터 나에게는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던 듯하다. 무엇을 쓸 지 알고 있다고 해도 쉽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문장과 이야기의 구조가 이야기 자체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글쓰기는 신이 주신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처음 깨닫는 시점(time)이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새로운 소설가들을 만날 때마다 그의 이력을 체크하는 하나의 버릇이 생겼는데, 첫 번째로 확인하는 것은 그의 출신학교 혹은 전공, 두 번째는 그가 등단했거나 당선되었거나 혹은 첫 작품이 나왔을 때 몇 살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소설가는 일단 타고난 재능에, 충분한 교육수준 (학벌주의는 아니다.)과 오랜 습작이 필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아무도 몰래, 그 작가가 등단 할 당시의 나이와 나의 나이를 견주어 보며 이유 없는 초조함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더욱 필연적인 것이었을까,

[소설가로 산다는 것]을 끝마치기가 이토록 어려웠던 것은?

소설가 17명의 짤막한 창작론 이야기를 나는 꽤 오랫동안이나 붙들고 있어야 했다. 한 권의 책을 거진 세 번의 주말에 걸쳐 나누어 읽었다. 창작의 고통이 혹은 '창작론'이라는 것을 쓰는 것에 대한 찝찝한 부담감이 느껴지는 무거운 책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글의 모습마냥 각기 다른 그들만의 '창작론'을 마주하는 것은 생각만큼 달콤한 경험은 아니었다. 

'아니, 이래가지고 소설가 해 먹겠어??!! "


내 마음과 글이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나에게서 너로, 너에게서 그로, 그에게서 그들로, 그들로부터 다시 우리로, 단수명사에서 복수명사로 넘어갈 수 있을는지를 생각하는 일은 진땀난다. 나는 3인칭 주어를 쓰지 못하듯이 복수명사를 끌어다쓰는 일조차도 머뭇거려진다. 복수명사라는 것이 그 내용과 실체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수명사의 수량적 집합에 불과한 것인지에 관한 의문이 나에게는 공허할수록 절박하다. 곡릉천 개울가에서 놀면서, 나는 1인칭과 3인칭 사이에서 좌초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조바심 속에서 나는 한 줄 한 줄 글을 쓰려 한다.  page 95. 김훈


단수명사와 복수명사 사이에서도 절박한 의문을 느끼는 이가 바로 김훈이라는 사실을 보라. 

소설가로 산다는 것은 이토록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었다.

한 권의 소설을 책으로 펴 내는 것은, 글이 도저히 써지지 않는 깊은 터널과 밤을 지나 새벽녘 몇십번의 수정을 거쳐, 아이를 잉태하고 정성을 다하는 그 10개월 기간의 경험처럼... 수고로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렇게 이야기라는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것이기에..

더욱 많은 '문청'들의 가슴은 해마다 "공모 시즌"이 되면 그렇게나 떨리어 오겠지.

당선작모음집을 구입하여 집으로 돌아오며 말못할 질투와 부푼 꿈을 꾸는 이들도 늘 거기에 있겠지.

생각했다.


소설가의 삶에 대한 엿봄과 함께 얻었던 수확은 내가 잘 몰랐던 이 시대 작가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서하진이라는 작가와 윤영수라는 작가에 끌린다. 여전히 박민규의 가벼움을 질책하며 소설가는 나보다는 더 숭고한 무엇을 표현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핏대를 세우는 나는, 전경린과 김훈의 글 위에 가만히 손을 대어 보는 나는... 언젠가는 소설가로 살고 싶다고 생각해보는 나는...

그렇더라도 소설가 한번 해먹고 싶다고 생각해보는 나는...


조금흔 쓸쓸히 마지막 장을 덮었다.


b*********g 2012.02.22. 신고 공감 6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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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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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형식을 통해 엿본 우리 시대 작가들의 소설 창작론. 김경욱, 김애란, 김연수, 김인숙, 김종광, 김훈, 박민규, 서하진, 심윤경, 윤성희, 윤영수, 이순원, 이혜경, 전경린, 하성란, 한창훈, 함정임 이렇게 총 17인의 작가가 자신들의 글과 그들만의 이야기 방법, 소설 창작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글을 쓰게 만드는 계기는 작가마다 어쩌면 제각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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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이 형식을 통해 엿본 우리 시대 작가들의 소설 창작론. 김경욱, 김애란, 김연수, 김인숙, 김종광, 김훈, 박민규, 서하진, 심윤경, 윤성희, 윤영수, 이순원, 이혜경, 전경린, 하성란, 한창훈, 함정임 이렇게 총 17인의 작가가 자신들의 글과 그들만의 이야기 방법, 소설 창작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글을 쓰게 만드는 계기는 작가마다 어쩌면 제각각이고, 소재를 찾아 헤매는 그들의 방식이나 소설을 써내려가는 형태 역시 각자의 개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이 소설을 써내려가는 방식은 생각보다 거창하거나 천재적인 것은 아니었다. 삶과 타인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 나와 인생에 대한 본연의 질문, 쓰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습성 등 어쩌면 모두, 우리 역시 품고 있는 갈망은 아니었을까. 누군가는 그것을 유려하게 표현하고, 또 누군가는 표현하지 못했음이 달랐을 뿐.

 

  나는 왜 책을 읽고 있는가, 일단은 다른 삶을 엿보고 싶어서이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에게서 위로받고 싶은 마음.

  그러면 나는 왜 나아가 글을 써보고 싶은 것일까. 그것 역시 어쩌면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는 아닐까. 나는 가끔 다른 내가 되고 싶다. 그래서 누가 '혹시 아무개씨 아니신가요?'라고 물으면 '어머, 사람 잘못 보셨네요.'하며 우아하게 모르는 척 지나가보고도 싶고, 때론 평범한 일상 속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보고 싶다. 그렇다고 지금에 만족하지 못한다거나 뭐 그런 것은 아닌데, 그저 나를 구성한 다양한 스펙트럼 그 제각각의 하나만에 충실한 삶을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은 것 뿐. 그런데 그것은 때론 현실에서는 용납되지 못하는 일탈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잠깐이나마 제각각의 삶을 살아보고 몰입해 볼 수 있는 연기자가 부럽기도 하다. 어떤 날은 재벌가의 딸이 되어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지독하게 가난한 집안의 억척스런 딸이 되어보기도 하고.

  그런데 현실의 나는 그럴 수 없다. 혹여 내가 그런 시도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거짓이거나 사기가 되어버린다. 간혹 SNS 속에서 타인의 삶을 훔쳐 사는 사람, 혹은 허구의 자신을 가공해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들도 현실의 자기와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던 욕망을 그런 잘못된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었겠지.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도 지탄받지 않을 소설을 빌려 또다른 나를 탄생시켜보고 싶다. 그 속에 살아 숨쉬는, 이미 내가 아닌, 그러나 내가 바라왔던 또다른 나. 소설 속 주인공에 내가 담고 싶었던 모든 것을 이입시켜, 그렇게 가끔 연기하듯 살고 싶어서, 그래서 나는 소설을 언젠가는 꼭 써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

 

  17인의 글 이야기를 보면서, 혼자 또 또다른 나를 탄생시켜 본다. 언젠가 왜 글을 쓰는지 묻는 누군가에게 대답하는 소설 속 작가로 등장하는 나. 비록 현실의 나는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소설 속 나는 작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리. 소설의 힘, 글의 힘은 정말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그런 글을 써내려가는 작가들은 얼마나 대단한지. 그들의 시선, 그들의 실력, 마냥 부럽기만 하다.

 

k*****u 2014.05.24. 신고 공감 4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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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목소리로 듣는 자신의 삶과 글 [소설가로 산다는 것] 김경욱 외 16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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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한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사람이라면 작품의 변화와 함께 작가의 변화를 알 수 있겠지만, 나처럼 겉으로만 슬쩍슬쩍 읽는 불량 독자에게는 작가가 그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명백한 것마저도 놓치고 넘어가기 쉽다. 수많은 은유와 비유, 등장인물과 상황을 통해 이야기하는 그 속삭임을 알아들을 귀가 없
"작가의 목소리로 듣는 자신의 삶과 글 [소설가로 산다는 것] 김경욱 외 16인 지음" 내용보기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한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사람이라면 작품의 변화와 함께 작가의 변화를 알 수 있겠지만, 나처럼 겉으로만 슬쩍슬쩍 읽는 불량 독자에게는 작가가 그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명백한 것마저도 놓치고 넘어가기 쉽다. 수많은 은유와 비유, 등장인물과 상황을 통해 이야기하는 그 속삭임을 알아들을 귀가 없기 때문이다. 많은 책들은 뒤에 작가의 말이나 인터뷰, 평론가의 해설을 싣기도 하는데, 그 글을 읽어 보면 도대체 내가 뭘 읽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부터 차근차근 배워야 할 필요를 느끼는 동시에, 작가들의 직접적인 이야기를 들어보는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저번에 읽은 <젊은 소설가의 고백> (2011, 움베르토 에코 지음, 레드박스 펴냄)은 그런 의미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들을 이해하는 데 직접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문구의 문인기행> (2011, 이문구 지음, 에르디아 펴냄)은 고 이문구 선생님이 현실에서 가까이 지냈던 우리나라 작가들의 삶이 따뜻하게 펼쳐져서, 이를 통해 작가들의 작품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책을 읽다 보니 우리나라 젊은 소설가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는데, 마침 이를 담아낸 책이 나왔다. 바로 <소설가로 산다는 것> (2011, 김경욱, 김애란, 김연수, 김종광, 김훈, 박민규, 서하진, 심윤경, 윤성희, 윤영수, 이순원, 이혜경, 전경린, 하성란, 한창훈, 함정임 지음, 문학사상 펴냄)였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은 문학사상사에서 펴내는 월간지 <문학사상>에,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이라는 이름으로 연재되었던 작가들의 창작 노트를 모은 책이다. 30대부터 60대까지의 우리나라 작가 17분께 자신의 창작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기회였다. 표지에는 작가들의 사진 중에서 눈 부분만을 모아 놓아서, 이분들이 어떤 눈으로 자신의 작품을, 세계를 보는지 암시하고 있다.

개성이 풍부한 작가들답게 정말 충실하게 자신의 작품들을 어떤 마음과 과정으로 썼는지 이야기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글을 쓴 분이 있고, 평론처럼 전개한 분도 있다. 소설 안에는 역사가, 음악이, 삶이, 그림이, 반가움이, 질문이, 심심함이, 절망이, 희망이, 위로가 있었다. 소설 위의 글씨에는 드러나지 않는 그 많은 것들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책들을 통해 나는 자신의 작품을 읽어 주는 작가의 목소리를 듣게 되어서 참 반갑다. 앞으로도 계속 작품으로 만날 이 분들과 인사를 나눈 느낌으로 책을 덮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y*****9 2011.11.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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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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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 까지 학창시절 내가 나에게 가진 가장 큰 불만은 창의력이 부족한 점이었다. 나는 언제나 누구나 생각해 낼 수 있는 그런 평범함이 아닌 나만의 창조적인 상상력을 가지길 원했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지만 텅 빈 머리로는 무작정 앉아만 있다고 해서 좋은 글이 나올 가망은 없다고 생각했다. 문학은 무에서 유를 발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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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 까지 학창시절 내가 나에게 가진 가장 큰 불만은 창의력이 부족한 점이었다. 나는 언제나 누구나 생각해 낼 수 있는 그런 평범함이 아닌 나만의 창조적인 상상력을 가지길 원했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지만 텅 빈 머리로는 무작정 앉아만 있다고 해서 좋은 글이 나올 가망은 없다고 생각했다. 문학은 무에서 유를 발견해내는 창조의 세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고민은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창의력이 부족한 나는 문학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겐 다만 누군가의 창작세계를 감탄하며 즐길 자격만 주어졌을 뿐이다. 이런 내게 완성품인 작품으로서가 아닌 소설가가 직접 자신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에 대해서 말하는 책은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문학소녀였고 소설가가 꿈이었던 내게 말이다. 작가의 창작 노트를 훔쳐볼 수 있는 기회를 이제라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왜 이제야 이런 기회가 주어졌냐고 원망을 해야 할까.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우리시대 작가 17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글’이란 부제가 붙은 《소설가로 산다는 것(2011.10.7. 문학사상)》은 김경욱에서 함정임까지 ‘작가’라는 동일한 직업을 가진 17인이 제각각 다른 색깔로 세상을 바라보고 읽는 17가지 시선이 담긴 책이다. 좋아하는 작가, 익숙한 작가, 낯선 작가 등등 책에서 만난 작가의 글은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조금은 난해한 일상 혹은 이것이 과연 작가의 글쓰는 방식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싶은 에세이까지 17개의 글을 소개한다. 색깔로 표현하자면 총천연색으로 알록달록하다. 소설가의 재능을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규정지었던 나는, 이 책 《소설가로 산다는 것》을 읽으면서 조금 어리둥절했다. 작가의 창작 노트를 훔쳐볼 수 있다고 해서 기대했던 것을 얻을 수 있길 바랐는데 이건 더 뒤죽박죽으로 변한 느낌이다. 하지만 작가를 정의내리거나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누구에게나 펼쳐진 일상 속에서 무엇을 생각해 내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찾아내느냐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온 작가라는 단어가 새삼 가슴을 뜨겁게 한다. 나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궁금해서다. 오늘부터 나의 일상은 매일이 새롭고 치열해 질 것이다. 찾고 싶은 게 있으니까 말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b******s 2012.03.04.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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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큼 비장하진 않더군요.
"생각만큼 비장하진 않더군요." 내용보기
종이에 아무렇게나 휘갈겨 놓고 실없이 웃어댔던 시절이 있었다. 여고시절 H는 500원 짜리 노트에 美 라고 크게 적어놓고 이따금 무언가를 적곤 했었다. 그것은 H의 창작노트였다. “나 나중에 꼭 내 이름을 걸고 시집을 낼 거야. 제목은 美가 좋겠어. 아름다울 미!”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종종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이 녀석이 예술을 하려는가 보다. 배고
"생각만큼 비장하진 않더군요." 내용보기

종이에 아무렇게나 휘갈겨 놓고 실없이 웃어댔던 시절이 있었다. 여고시절 H는 500원 짜리 노트에 美 라고 크게 적어놓고 이따금 무언가를 적곤 했었다. 그것은 H의 창작노트였다. “나 나중에 꼭 내 이름을 걸고 시집을 낼 거야. 제목은 美가 좋겠어. 아름다울 미!”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종종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이 녀석이 예술을 하려는가 보다. 배고픈 예술을 하려는 구나’ 했었다. 시든 소설이든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 그런 의미였다. 예술! 고고하고 뭔가 어렵고 이상한 외래어로 된 수식어를 붙여주어야 할 것 같은 그런 것 말이다.

나는 문득 이 녀석이 요절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어딘가 산에 틀어박혀 도인 같은 생활을 한다던가, 술과 담배에 절은 지독한 염세주의 인간이 되 버린다던가, 그러다 젊은 어느 날 미련 없이 어느 강에 몸을 던져버리진 않을까? 연인과의 동반자살 같은 것도 어울리겠다. 그 우울한 일본소설 같이 말이다. 친구에게 그런 죽음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이미 인간실격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작가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작가는 외롭고, 작가는 괴롭고, 작가는 배고프고, 작가는.......특별하니까.


그간 월간《문학사상》에 연재됐던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이라는 작가의 창작노트를 모아 책으로 펴냈다. 바로 이 책, 『소설가로 산다는 것』이다. 작가가 직접 밝히는 그들의 소설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있다.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실린 17명의 작가들은 적어도 요절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산에 은둔하는 기인도 아니었으며 염세주의자도 아닌 것 같았다. 배고픈 예술가라는 말도 우스운 말이겠다. 신간이 나오면 줄거리 따지지 않고 무작정 집어들 정도는 되는 그런 네임벨류를 가진 작가들이니 말이다. 흔히들 탈고를 산고에 비유할 정도로 괴로운 일이라고 전하는데, 이들은 그런 괴로움쯤은 거뜬히 견딜 것 같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 같았다. ‘소설 창작론’이라는 주제에 각기 다른 에세이를 내 놓은 작가들이지만 그 독특한 글들에서 한결같이 읽히는 것은 자랑스러움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 대한 자부심, 소설가라는 직업에서 느끼는 행복, 지금까지 써 온 글에 대한 또 앞으로 써 나갈 글에 대한 애착 같은 감정들이 조각조각 박혀있었다. 아, 조금은 부러웠다.


오히려 나의 ‘작가’에 대한 환상을 무참히도 깨버렸다. 솔직히 내가 가진 작가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 클래식 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래도 전업 소설가 십 삼년 차나 되면서 소설쓰기의 당위성을 찾지 못했다는 김종광이나, 팔자에 없는 짓이라니 이다지도 시니컬한 윤영수나, 방법 따윈 없다! 무조건 쓰고 묻고 고친다는 윤성희나, 쪼잔한 글쟁이가 되고 싶다는 김훈이라니 어디 상상이나 해 봤겠는가. 그래, 솔직히 더 비장하고 근엄해도 괜찮았을 뻔 했다. 하지만 그저 독자의 입장일 뿐인 나는 절대 알 수 없을 테지. 소설가에게 소설가로서의 삶이란 곧 글쓰기이고, 글쓰기는 곧 생활이고, 생활은 치열할지언정 그다지 비장할 필요는 없으므로 말이다.


이 책을 뭐라고 정의하면 좋을까. 이 시대의 유명 작가들의 창작론, 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나는 이렇게 쓴다’ 정도가 적절할 것 같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이었다면 정말 구태의연한 내용일색이었을 지도. 그것이 아니었던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인 이들이 쓰는 글이라면 당연히 직업적이겠구나! 라는 생각은 ‘소설가가 쓰는 글은 다 소설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바보 같은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한편 한편이 아주 자유롭게 쓰였고 모두 제각각이었다. 모두 한 주제를 두고 쓰인 글이라는 것이 잠간 헛갈릴 때도 있을 정도로 한편 그 느낌이 색달랐다. 어딘가 강의실에 앉아서 듣는 글쓰기 수업을 듣는 것 같은 글이 있는가 하면, 어느 소설이나 작가에 대한 평론을 읽는 것 같은 글도 있었고, 그 한편이 짧은 소설 같은 글도 있었고, 포장마차에서 어묵 탕에 소주 한 병 시켜놓고 마주앉아 푸념을 늘어놓는 것 같은 글도 있었다.


하나같이 어찌나 문학적인지 나름 긴장하고 있었는데 지루하지 않게 읽었다. 아마 이 책에 실린 작가들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주저 없이 이 책을 들겠지만, 잘 모르더라도 흥미롭게 읽어볼 만하다. 그들은 이렇게 글을 쓴다. 자못 감동스럽기도 했고 별나라 이야기 같이 멀게만 느껴지기도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글쓰기로 밥벌이를 한다는 것은 정말로 경이롭다. 하지만 별로 ‘나도 글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m*****2 2011.11.1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