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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2년, 미소공위가 깨지고, 통일건국도 물 건너간다..
"해방 2년, 미소공위가 깨지고, 통일건국도 물 건너간다.." 내용보기
역사학자 김기협이 해방공간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쓰는 해방일기는 우리들이 피상적으로 알아왔던 당시의 일들을 보다 세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우리들이 학교 다닐 때, 배워왔던 내용들, 역사책에서 들었던 내용들과는 다소 거리가 먼 진실들을 파 헤치고 있다. 60년도 더 지난 시점에서 그것들을 새롭게 안다고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겠지만, 우리가 지금이나마 그때의 일
"해방 2년, 미소공위가 깨지고, 통일건국도 물 건너간다.." 내용보기

역사학자 김기협이 해방공간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쓰는 해방일기는 우리들이 피상적으로 알아왔던 당시의 일들을 보다 세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우리들이 학교 다닐 때, 배워왔던 내용들, 역사책에서 들었던 내용들과는 다소 거리가 먼 진실들을 파 헤치고 있다. 60년도 더 지난 시점에서 그것들을 새롭게 안다고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겠지만, 우리가 지금이나마 그때의 일을 살펴보는 것은 과거를 한탄하고 아쉬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때, 그 공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현재 우리나라 정치의 원형임을 감안할 때,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 당시의 일들을 살펴본다는 것은 현재의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 교훈을 찾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책 [해방일기 7]은 해방 후 2년이 되는 시점, 1947 5월부터 8월까지 넉달 동안을 다루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들 중,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단연 몽양 여운형의 암살과 미소공위의 결렬을 들 수가 있다. 미소공위의 결렬은 저자가 부제로 붙인 것마냥 해방의 약속이 깨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2차세계대전에서 손을 잡았던 미국과 소련의 관계는 전쟁이 끝난 후, 시간이 흐르면서 적대적인 관계로 변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1947 3월 트루먼 독트린은 소련과의 협력을 포기하는 선언이었으며, 이는 냉전의 시작을 의미했다. 조선의 독립문제도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1947 5월 미소공위가 재개되면서 미국과 소련 대표단은 진지한 자세를 가지고 회담에 열성을 보였다. 이는 순조로운 통일건국에 대한 희망을 높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은 이승만으로 대표되는 극우파에게는 재앙이었다. 이에 극우파는 미소공위를 주도하고 있는 중간파, 즉 여운형과 김규식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사실 당시 미소공위가 진정으로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들 중간파밖에 없었다. 극우파는 통일국가보다는 미국에 의존하는 국가를 세우기 위해 반탁의 깃발아래 뭉치고 있었으며, 이들은 미국과 조선인들 사이의 이간질은 물론, 노골적으로 미소공위에 돌을 던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극좌는 말로는 미소공위의 성공을 바란다고 하면서도, 이를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내부 헤게모니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1947 7, 우파의 김규식과 함께 좌우합작, 남북합작을 추진해온 여운형이 암살당하면서, 그리고 미국측의 미소공위에 대한 태도변화가 나타나면서 조선의 통일 건국은 무망해지기 시작했다. 바로 냉전의 시작이 미국으로 하여금 기존의 태도를 버리게 만든 것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현대사를 배우면서 미소공위가 결렬되고부터 분단건국으로 향하기 시작했고, 또한 미소공위의 결렬원인을 소련측의 태도변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김기협이 전하는 [해방일기]는 해방되는 그 시점에서부터 이미 분단건국을 위해 질주하는 극우파들이 존재했고, 미소공위의 결렬은 미국측의 태도변화에 있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해준다. 여운형은 해방 후 암살당하기 전까지 모두 12번의 테러를 당했다고 한다. 1947 5월초 11번째 테러와 그가 결국 목숨을 잃는 두달 뒤의 12번째 테러는 장소와 방법이 동일했다. 비록 그를 죽인 자는 조선인이었지만, 그 뒤에는 미소공위의 결렬과 분단건국을 획책하는 극우파와 그리고 미군정의 방조가 있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해방공간에서 일어난 정치현상들을 기존에 우리가 배워왔던 좌우대립이 아니라 중극대립, 즉 중간파와 극단파의 대립으로 보고 있다. 좌우대립이라는 구도에서 우리가 보아온 것은 극우파와 극좌파의 첨예한 대결양상이었지만, 해방공간에서 일어났던 사실은 이들 극우와 극좌 모두를 포함한 극단파와 통일건국을 염원한 중간파의 대립이었다는 것이다. 극좌는 소련의 지원을 받아, 그리고 극우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국가를 수립하여 자신들이 헤게모니를 쥐려는 생각밖에 없었으며, 이들은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었다. 이들을 보면서 현재의 정치세력들이 겹쳐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그래서 지금의 극우들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라 칭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방조선의 인민이 바란 것은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실현이었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자유보다는 평등, 특히 사회경제적 평등에 중점을 두는 사회주의 성향의 민주주의였다. 기득권층으로 구성된 한민당과 정상배 이승만의 세력이 손을 잡고 미국의 후원아래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억누르며 세운 것이 대한민국이었다.” (285) 저자의 말처럼 해방공간에서의 분단은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당연한 것 이었는지도 모른다. 국가나 민족보다는 자신들의 헤게모니만을 생각한 극단파들이 모든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친일파들의 금력과 미군정을 등에 업은 권력에서 시작된 그들 극우의 행태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해방 후 2년이 지난 시점, 이제 남북은 각기 분단건국을 향해 달려가게 될 것이다. 김기협의 [해방일기] 다음 편은 또 어떤 사실들을 우리에게 알려줄지 기대된다.



k*****1 2014.06.17. 신고 공감 6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