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으면서 너무 안타까웠다. 결딜 수 없는 안타까움에 온몸에 전율이 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믿는 자로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인가 보다.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때보다 악에게 지는 때가 오히려 더 많으며 세상과 타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안타까워하면서 애타하면서 간절해 하면서 주어진 또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 한경직 목사님의 삶에서 나는 그러한 애통함을 읽었다.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템플턴 상을 수상하고 나서 목사님은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신사참배에 대해 가편 투표를 했습니다." 라고 고백하셨다. 목사님의 죄는 다만 그것 뿐이 아니었다. 공산당이 북한의 교회를 핍박할 때 목사님은 교회와 양무리를 버리고 남하하셨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북한군이 서울로 밀고 내려왔을 때도 다시한번 목사님은 서울의 교회와 양무리를 버리셨다. 목사님의 자리를 다른 장로님이 지키셨고 그 장로님은 순교하셨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일이었다. 목사님이 그 후에 남은 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은 겸손이며 성실이며 사랑이며 봉사이었다. 스스로 죄인임을 깊이 인식함으로 나오는 섬김이었다. 목사님의 생애를 존경하며, 그 위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찬양한다. 목사님의 소중한 생애는 이 성경 구절을 증명하고 있는 듯 하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고린도후서 7장 11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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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직 목사님의 긴 삶(향년 98세)과 그 속에서 헌신한 결실들에 대해 다 말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분량으로 편집된 책인 듯 싶다.
마치 그의 삶의 순간순간을 정리, 발췌한 요약본이라 할 수 있다.
1902에 태어나 민족의 수난을 차례로 겪으며 한국기독교의 근본을 든든히 세워주고 죽는 날까지 삶의 모범을 보이신 우리 시대 대표적인 1세대 리더라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목회를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현대의 2, 3세대 목회자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데 한경직 목사님의 삶을 거울로 삼았으면 좋겠다.
책의 제목에서 보듯이 그는 삶을 마치는 날까지 무언가를 소유하려 하지 않았다. 은퇴후에도 좋은 집을 마다하고 자신의 거처를 남한산성 영락여자신학원으로 정했다. 무릇 목회자는 돈과 여자와 검약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근래에 자신이 개척한 교회가 대형교회로 성장하자 마치 자신이 대기업의 소유주인양 자신의 2세 목회자에게 교회를 대물림하려는 목회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듯 으퇴후 모교회에 누를 끼치지 않으로 철저히 자신을 고립시켰다.
한경직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날 남기신 것은 휠체어, 지팡이, 겨울 털모자, 입던 옷가지와 생필품 뿐이었다.
하지만 그분이 정말 그것만 남겼나? 아니지 않나? 그분은 우리 후손들에게 진리와 신앙의 유산과 삶의 모범을 남겨주시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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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 아닐수 없다. 한경직 목사님이라면 한국 기독교 역사를 세운 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정말 이 책을 보면서 그 분과 동해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방법들을 철저하게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학교에서 재고로 나온 책이라 500원에 구입해서 본 책인데 그의 백배 이상의 가치를 느꼈다. 이 책은 한경직 목사님의 일대기를 주로 서술했기 때문에 더불어 기독교 역사를 대충이나마 느끼고 싶다면 한번 꼭 보기를 충고한다. 또한 책 말미에서는 한경직 목사님 생전의 설교를 실어 놓아서 그분의 생각과 사상을 엿볼수 있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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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랬다. 우리 한국 교회에 있어서 자랑거리라고 할 수 있는 분의 삶을 새로이 접하면서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자신이 소유한 것들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삶 속에서 그러한 생활을 실천한 한 분 목회자의 생애를 통하여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이 새로운 도전을 받고 거듭나는 계기를 삼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한경직 목사님. 그분에 대한 아름다운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것보다 그분의 삶을 본받아 자신의 삶 가운에서 실천하는 것이 더 옳은 태도일 것이다. 하나의 유행처럼 그분의 삶에 대해서 말만 하고, 그분의 삶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들을 쉽게 망각해 버린다면, 참으로 슬픈 일일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많이 부르는 찬양, 의 가사처럼 쓰고 빌려줌으로써 모든 사람이 풍성케 되는 비밀을 기독인의 삶 속에서 실천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분은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그분의 정신은 우리 곁에 영원히 남아있으리라. 그의 삶에는 많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하나된 인간이었기에 더 존경을 받는것 같다. 그의 북한에서 내려올때나 6.25의 피난과정과 신사참배는 그가 너무 인간적이었기에 더 감동이 된다.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 그의 많은 사적이나 설교보다는 그가 드러낸 죄의 고백과 후회에서 나오는 용서가 아닐까 싶다. 나는 그분을 존경한다. 나와 같은 인간이라서 더... [인상깊은구절] 수차례에 걸친 대형 전도집회는 진리를 수호하고 복음을 전파하려는 열망의 소산이었다. 한경직 목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피얼스 박사를 통하여 알게 되어 교제를 갖게 된 세계적인 부흥 운동가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한국 교회를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 한국에 온 그레이엄 목사는 1956년 2월 26일 주일 아침, 설교를 위해 영락교회 교인들 앞에 서게 되었다. 한경직 목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강단으로 올라가던 그는 수많은 교인들이 고개를 숙이고 진정으로 기도드리는 모습에서 은혜를 받았다. "존경하는 한경직 목사님의 초청을 받고 이 강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미국에서 들은 것보다도 훨씬 크군요. 10년이라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런 성장을 이루다니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알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그레이엄 목사의설교는 단순하지만 마음 깊이 스며드는 뜨거운 설교였다. 오후에는 서울운동장에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주강사로 한 전도대회가 있을 예정이었다.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에 은혜를 받은 영락교회 교인들은 믿지 않는 친지들이 주님을 영접할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예배가 끝나자 친지들을 하나라도 더 불러오려고 서둘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