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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무위자연, 물아일체라는 말이다. 장자 또한 공자 만큼 많이 들어봤지만 그의 책을 읽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번에 만난 ‘마음으로 읽는 장자’는 이런 나에게 장자의 사상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만 솔직히 읽으면서도 공자와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 제자백가를 대표하는 고전의 하나인 장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자 가장 위험한 책’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또한 호평과 악평의 양 극단을 달리는 저작이라고도 한다. 때문에 이 책은 장자에서 필요한 부분을 뽑아 번역한 초역본이라 한다. 장자가 전하는 것은 대략 7만 자 인데 이 책에서는 16,000자만 뽑아 구성했다고 한다. 각장의 주제는 슬픔, 길 읽은 사람들, 위험한 앎, 돈, 쓸모,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운명, 즐거움, 마음이 살아 있는 사람들, 세상의 본래 모습, 죽어가는 마음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사랑, 돌봄 이렇게 13장으로 되어 있다. 어린이 용 장자로 읽었을 때엔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른용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다소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어떤 대상을 욕구하거나 사유하지 않는 무위라는 개념이, 자기 존재를 성립시키며 절로 움직이는 자연이란 개념이 나와 너무 동떨어져 있어 그런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논쟁가들은.... 사람들의 입을 이길 수는 있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천하) (36) 쓸모로 판단하지 말고 자연이 쓰는 대로 맡기세요. 자연이 쓰는 것이 진짜 쓸모 있는 것이고... 이것이 자연스러운 길입니다. (제물론) (115) 아지랑이며 티끌은 살아 있는 생명들이 서로 숨을 뿜어주는 것이었구나. (소요유) (186) 마음을 이길 수 없으면 그냥 마음을 따르세요. 그러면 그런 마음을 미워하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기지 못하는 마음을 따르지 않고 억지를 부린다면 거듭 상처를 받게 됩니다. 거듭 상처 받고 오래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양왕) (290) 이 책에 나와 있는 글 중에 기억에 남는 부분을 체크한 것인데 몇 번을 읽고 그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여기 쓴 글은 그나마 두어번 읽으면 이해할 수 있는 글이었으나 아닌 글도 많아서 ‘강상구 작가의 그때 장자를 만났다’란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장자’란 제목으로 된 책도 꼭 찾아서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고전은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 논어를 읽을 때 그랬지만 그것도 몇 번 읽으니 어렵지 않게 내 생활로 들어왔다. 장자라는 책 역시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내 주위로 스며들지 않을까? 아직 내 마음이 장자를 읽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읽다보면 마음이 장자에게로 환하게 열리지 않을까? 때론 지금 현실과 너무 달라 이게 과연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까 의문을 품기도 하지만, 생각을 받아들이고 고개 끄덕일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처음 읽는 장자였기에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가까이 두고 천천히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올해는 장자를 제대로 만나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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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세상에서 죽어가는 마음을 살리다' 장자가 필요한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하는 것 같다. 한 권의 알토란같은 시집처럼 구성되어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참 좋다. 또, 구성 역시 마음 가는 장으로 찾아 갈 수 있어서 좋다. 마음의 편안함을 주는 책이다. 항상 새로운 의문을 던져준다. 장자의 매력일까? 엮은이의 능력일까? 두 사람의 조화이겠지.... 번뜩 정신들게 하는 부분이 많다. 일상에 빠져 허덕이는 자신에 대한 반성을 잘 이끌어 준다. "마음에는 자연이 준 유유자적함이 있습니다. 방 안에 빈 공간이 없으면 고부 갈등이 생깁니다. 마음에 자연이 준 유유자적함이 없으면 눈, 귀, 코, 입, 마음, 앎, 이 여섯 개의 구멍이 서로 다투게 됩니다." 장자는 누구나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가진 책이란 생각이 들어봤다.... 하지만, 장자의 책은 쉬 익혀지지 않는다. 그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주는 대목이지 않을까? 마음, 그것은 누구에게나, 누구나 있는 것이라 생각되지만, 자신의 마음이 자리한 곳은 굉장히 부족한듯 하다. 자신의 마음까지 닿은 길을 닦는 이는 없다. 현재의 도가 사상이 풀어야 하는 숙제는 세상과 통하는 길의 통로를 마련하는데 있지 못하다. 자신의 내면의 길을 만드는 싸움에 전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다. 도가 사상을 노장으로 묶는 것에도 반대다. 아니 전제 자체를 바꾸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장자 사상으로... 길은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는 말로 정의하는 장자와, 완성된 길을 찾는다는 노자는 분명 극의 대립점에 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멋진 책 장자.... 나는 이 책을 화장실에 두기로 한다. 아마, 장자도 가장 크게 기뻐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봤다. 가장 크게 자신의 마음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인 화장실... 장자 역시 한 없이 기뻐할 수는 없어도, 슬픔 가득히 이 후 가능성에 기댈만한 장소이지 않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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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인간들의 사상이 폭발적으로 발전한 시기이기도 했다. 우리가 잘 아는 공자니 맹자니 하는 인물들이 모두 이 시기를 배경으로 활동했다. 이른바 제자백가 시대다. 이들은 하나의 학문적 전통을 형성해서 유가나 법가 같은 후대에도 널리 알려진 학파를 이루었고, 근래엔 묵가나 명가 같은 조금 덜 알려진 부분도 제법 언급되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도가다. 노자와 장자로부터 시작된 이 사상은 자기를 비우고, 자연(법)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순리를 따르는 삶을 중요하게 여긴 사상이다. 조금은 현실 도피적 경향으로 보이지만(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어차피 육신을 가진 인간이 현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니 결국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하면 덜 집착하고, 자기만족의 삶을 살 수 있는지가 주가 될 수밖에 없다.
이후에도 이 도가 사상, 후에는 도교로 발전한 민간 신앙으로서의 도가는 은근 중국 민중 문화에 깊게 영향을 주었다. 불교나 유교가 국가적인 종교, 사상 체제와 합쳐져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다면, 반대로 도가는 대체로 민중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다. 물론 도교가 되면 지극히 현실중심적인 기복신앙화 되는 면도 있지만.
이 책은 그 도가 사상을 종합한 책인 ‘장자’(도가 사상가인 그 인물과 이름이 같다)의 일부를 발췌 편집해 읽기 쉽게 우리말로 번역한 책이다. 참고로 ‘장자’는 크게 내편, 외편, 잡편으로 구성되는데 그 중 내편을 장자가 쓰거나 말한 것을 모았고, 나머지는 그 제자들과 계승자들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엔 그 내편 중에서도 일부만 장자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기록된 것으로 본다고 하는데, 어찌되었든 도가 사상의 핵심적인 책이라고 할 만.
처음엔 그냥 호기심에 빼본 책이었는데, 의외로 금세 빠져들게 만든다. 우선은 편집자가 ‘장자’ 중에서도 독자가 관심을 가질 것 같은 내용들을 위주로 뽑아서 모아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루하거나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은 과감히 생략하고, 여러 책들로부터 뽑은 내용을 순서에 구애받지 않게 주제별로 과감히 모았다. 예컨대 이 책에 실린 장자의 첫 번째 구절은 이렇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마음이 죽는 것입니다.” 캬~
물론 편집을 잘했다고 다 재미가 있는 건 아닐 터. 조금은 현실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내 성향과도 어느 정도 맞는 면이 있기 때문에 글이 더 와 닿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 북다트로 표시를 해 가며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었으니까.
편집자가 나름 순서를 정해 항목을 배열했지만, 꼭 거기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저 아무 데나 펴서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찾아 읽고 생각해 보면 충분할 일. 형식이나 허례를 멀리하려 했던 장자의 생각에 그게 더 부합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자기 위로를 위한 책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뭔가 위로를 받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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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무식해서 장자라는 책이 정확히 어떤 책인지를 모르겠다. 장자의 말을 모아 제자들이 엮은 책인지, 그가 직접 쓴 책인지. 이 마음으로 읽는 장자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것이 더욱 미궁 속으로 빠졌다. 장자 중 부분 부분을 발췌 해석해서 단편적으로 읽을 수 있게 한 책인데, 읽다보면 공자얘기도 나오고 딴 사람 얘기도 나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스토리 속에 장자의 비평이나 의견은 생략되어 있으니 더 헷갈리는 것이지. 뭐 어쨌거나 그것은 철학 공부를 나중에 좀더 제대로 하면서 살피기로 하고. 이 책을 보고 그렇게 느낀 것인지, 장자와 내가 안맞는 것인지는 모르나 나는 이 책이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다. 책의 글씨보다 공백이 더 많은 것에서 알 수 있듯, 내용이 너무 빈약한 것도 흠이고. 공감이 안되거나 반대의견을 가진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괜히 존경받는 철학자가 아니다. 인상 깊었던 부분을 조금 옮겨 본다. -------------------------- 아침에만 피는 버섯은 아침저녁을 모르고 여름 한 철 쓰르라미는 봄가을을 모릅니다. ……몸에만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앎에도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습니다. -------------------------- -------------------------- 우리는 자기가 마주친 것은 압니다. 그러나 마주치지 않은 것은 모르게 마련입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하는지 압니다. 그러나 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하는지 모릅니다. 모르는 것이나 할 수 없는 것은 정말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쩔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해보려 애쓰니 슬프지 않습니까? …… 앎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한다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 -------------------------- 한 가지에 집착해서, 본래 같다는 것을 모릅니다. 이것을 '조삼'이라고 합니다. '조삼'이 뭘까요? 원숭이를 기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습니다. 도토리의 총 개수엔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원숭이들이 화를 내고 기뻐하는 것이 결정적 작용을 했습니다. 이것도 나름대로 옳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 사실 위의 것은 원숭이가 실제로 옳은 건데, 미래의 4개 수익보다는 당연히 당장의 4개 수익의 가치가 높으니까. ㅋㅋㅋ 철학자가 그런 관점에서 쓰지 않았다는 것은 알지만. -------------------------- 자라는 당황해 뒤로 물러나며 개구리에게 바다 이야기를 해줍니다. "천 리 길이 멀다지만 바다의 크기를 말하기엔 부족해. 천길이 높다지만 바다의 깊이를 말하기엔 부족해. 우 임금 시절에 십 년 동안 아홉 번이나 홍수가 났어. 그러나 바닷물은 불지 않았어. 탕 임금 시절에 팔 년 동안 일곱 번이나 가뭄이 들었어. 그러나 바닷물은 줄지 않았어. 바다는 시간이 흘러도 바뀌지 않아. 바닷물은 많아지거나 적어지지도 않고 늘거나 줄지도 않아. 이런 것이 바로 동해 바다에 사는 큰 즐거움이야." -------------------------- -------------------------- 허세 부리는 사람들은 세력이 남보다 떨어지면 슬퍼합니다. 세력이 물질을 추구하는 무리들은 사건·사고를 즐기며, 자기가 기용될 기회를 만나면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세태를 따라가다가 무언가에 무언가로 이용되기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몸과 마음이 세상일에 빠져 돌아오지 못합니다. 슬프지 않습니까? -------------------------- -------------------------- 옛날에는 '뜻을 얻었다'는 말이 '초헌이나 면류관'(초헌은 벼슬아치가 타던 수레, 면류관은 제왕이 정복에 갖추어 쓰던 관으로, 출세 했다는 의미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즐거움에 더할 게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것이 초헌이나 면류관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초헌을 타고 면류관을 쓰는 것은 밖의 것이 우연히 들어와 잠시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잠시 머물러 오니 막을 수도 없고 잠시 머물다 가니 잡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초헌을 타고 면류관을 썼다고 뜻을 늘어놓지도 않았고 가난하다고 세속에 영합하지도 앟았습니다. 즐거움은 이러나저러나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걱정이 없었습니다. -------------------------- 참 옳은 말이다. 자신의 뜻을 이룬다는 것은 자신의 즐거움에 더할 것이 없다는 것. 즉 자신의 행복/즐거움이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하고, 자기 자신만의 즐거움의 기준이 있어야 할텐데, 남을 의식하고 남에 의해 행복이 결정된다. 그 안에 내가 없다. 하지만 재밌는건 기원전에 살았던 장자마저도 옛날엔 그랬다고 하면 그 옛날은 대체 언제일까? 그 옛날이란 것은 사실은 실제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이상향은 아닐까? -------------------------- 내가 귀 밝다고 말할 때 그것은 무언가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듣는 것입니다. 내가 눈 밝다고 말할 때 그것은 무언가를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보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보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욕망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욕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남들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욕망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남들이 즐기는 것을 즐기려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즐거움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 --------------------------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빈 배가 와서 자기 배에 부딪치면 아무리 속 좁은 사람이라도 화를 내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 배에 한 사람이라도 타고 있으면 배를 밀어라 당겨라 소리를 지를 겁니다. 한 번 소리쳐서 듣지 않고 다시 소리쳐도 듣지 않아 세 번 소리를 지르게 되면 욕설이 따를 것입니다. 아까는 화를 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화를 내게 되는 것은 아까는 빈 배였고 이번에는 사람이 배에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빈 배처럼 자기를 비우고 세상에서 노닌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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