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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이와 깜빡이 - 서로 달라도 우리는 모두 친구! 이 책에서 등장하는 째깍이와 깜빡이는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시계이다. 째깍이는 바늘 시계고, 깜빡이는 전자시계이다. 째깍이는 벽에 걸려있고, 깜빡이는 장식장에 놓여있다. 째깍이는 다정이네 부모님 혼수품으로 들어왔고, 깜빡이는 백화점 사은품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모양, 서로 다른 위치, 서로 다른 시기에 들어왔기에, 째깍이와 깜빡이는 서로를 헐뜯는다. “넌 정말 무식해. 내가 왜 바늘을 조금씩 돌리면서 시간을 가리키는 줄 알아? 바로, 우리가 조금씩 돌면서 밤이 되고 낮이 되는 이치를 나타내는 거란 말이야!” “이치? 어쨌거나, 넌 애들 골치만 아프게 하는 시계야. 나처럼 숫자를 그대로 보려주면 오죽 좋냐고! 게다가 너는 시끄러운 소리까지 내잖아.” (pp.12-13) 한 치에 물러섬이 없는 두 시계는 서로 안 맞기 시작해서 결국 서로 다른 시간을 가리키게 된다. 정확한 시간을 알려줘야 하는 시계가 안 맞기 시작하자, 째깍이와 깜빡이는 버려질 위기에 처해진다. 그제서야 그 둘은 시간을 맞춰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잊혀진 다른 시계 - 토끼시계와 사각시계 등의 도움을 받고 진정한 친구로 거듭난다.
이 동화에서처럼 우리도 서로의 다른점, 차이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서로 생긴 점이 달라서, 혼혈아동을 차별하는 등의 인종차별을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서로 위치가 달라서, 지역감정 등의 대립 등이 일어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더 작게 본다면 최근 대두되는 학교에서 소위 ‘왕따’문화도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지 않고 배척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째깍이와 깜빡이는 둘 다 같은 시간을 가리켜야하는 시계였듯이, 우리도 서로 크고 작은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모두 공통 된 사회의 일원이라는 점이 같다. 따라서 서로 다른 점을 그대로 인정하고 어긋난 시간을 함께 맞춰나가듯, 우리도 편견을 버리고 서로 이해와 인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이 책은 서로 다른 점으로 출발하는 갈등에서부터 화해하는 과정을 그려내면서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므로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꼭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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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이와 깜빡이 그리고 사각이와 토끼.. 바늘로 가는 시계와 전자시계가 서로 제가 더 좋은 시계라고 싸우다가 문제를 일으키고.. 그 과정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아이들이 이제는 시계들을 특별한 시선으로 볼 것 같네요. 그러면서 상상력도 커질 것 같습니다.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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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들이 의인화된 이야기라서 친숙한 느낌으로 아이와 함께 읽을 수 있었다. 전개가 나름 스릴도 있고 재미가 있어서 다음 상황이 궁금해 단번에 읽었다. 이야기의 메세지도 초등 저학년들에게 아주 적합한 것 같았다. 생활 속에서 늘 마주치는 그리고 그림이 깜찍하고 귀여워서 그런지 아이가 좋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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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동화 아니라구요.
무려 째깍이와 깜빡이다. 아이가 손으로 또박또박 써내려 간 것 같은 제목과 양 갈래 머리에 동글동글한 얼굴의 아이. 동화구나 싶은 데. 그냥 동화가 아니란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가족동화. 책을 읽으면 바로 수긍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이에서 어른까지. 째깍이와 깜빡이는 생각보다 깊고, 넓은 메시지를 담아낸다.
째깍이와 깜빡이는 초등학생, 다정이네 집의 시계이다. 바늘시계인 째깍이와 숫자시계인 깜빡이는 서로를 깎아내리고, 자신이 이 집에 더 필요한 존재라고 말하기 바쁘다. 각자가 다른 존재이자 본질을 갖고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너 보다 나의 쓸모’를 과시하려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불편하다.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정이의 엄마와 아빠의 결혼 예물이자, 바늘을 조금씩 돌리는 것으로 지구가 조금씩 돌면서 밤이 되고 낮이 되는 이치를 나타내는 째깍이는 그만의 의미를, 아직 바늘시계를 읽는 데 서툰 다정이가 보기 쉬운 깜빡이도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는 데. 왜 그 둘은 경쟁을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은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에게 까지 이어진다. 그 둘의 경쟁이 허물어지고, 결국엔 다정이네 집 모든 시계의 화합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전개에서는 나만이 아닌 우리를 생각할 줄 아는 것, 협동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물건을 아껴 쓰고 소중히 하는 것의 중요성도 내포한다. 서로의 ‘쓸모’를 들어 경쟁하느라 결국엔 제 ‘쓸모’를 다하지 못 하게 되고, 버려질 위기에 처했던 째깍이와 깜빡이가 계속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물건을 아껴 쓰고자 했던 다정이의 태도 덕분이었다. 물건을 소모시키고 버리는 것이 익숙해진 우리에게, “선생님께 물건을 아껴 쓰라고 배웠다고요.“라고 말하는 다정이의 말은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지 않다. 새로운 것을 사달라고 말하지 않는 아이는 익숙하지 않아, 짐짓 작위적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바로, 소생(깜빡이라는 가상의 생)과 화합을 이뤄 낸, 시계들의 이야기 속에서 물건을 소중히 하는 것의 ‘소중함’을 은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와 너, 우리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화합을 도모하는 것, 때로는 나에 대한 많은 것을 말해주곤 하는 나의 물건들, 나의 것들에 대한 애정을 생각해보게 하는 것을, 이 얇은 책이 해냈다. 아이도, 어른도 생각해보아 할 여지가 충분한 주제들. 째깍이와 깜빡이를 아이를 위한 소설이자 어른을 위한 동화, 가족동화라고 말 할 수 있는 이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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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이와 깜빡이, 넌 누가 더 좋니? 가족간의 대화의 계기
사실 난 째깍이를 싫어한다. 째깍째깍 소리가 너무 귀에 거슬려서 무소음 벽걸이 시계를 달기 전까진 자려고 누웠다가 건전지를 빼버리고 잔적도 적잖게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책에서 서로 다정이가 자기를 더좋아한다며 싸우는 두 시계들을 보고나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째깍 거리는 벽걸이 시계를 볼때마다 매일 매일 초침을 빼버리면 소리가 안나지 않을까, 부러트려버릴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만 했었는데...
만약 내가 어릴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밤중에 온 집안의 아날로그 시계의 건전지를 빼는 것 대신 엄마 아빠에게 '째깍이의 소리가 싫어요.' 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책은 가족동화 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책을 부모님과 함께 읽으면 다양한 이야기 거리가 나올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아이에게 부모님은 '너는 째깍이, 깜빡이, 사각이, 토끼 중에 누가 제일 좋니?' 라거나 '깜빡이가 시간이 맞지 않게 되면 어떻게 하고싶어? 등의 질문을 건네기도 좋다. 물론 부모님도 이 책을 읽어야 할수 있는 질문이다.
이 책을 계기로 가족들이 모두 같은 책을 읽고 둘러 앉아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 독서토론회의 시간을 자주 가져보는것도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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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상에서'우리'의 세상으로 나서는 사람들을 위한 동화 "내께 더 좋아!" "아냐 내께 더 좋은 거야!" "난 이것도 할 줄 안다~" "넌 이런 거 못하지?" 어린이들이 있는 공원이나 놀이터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흔히 들려오는 소리. 그렇게 티격태격 하다가 누구 하나 제풀에 꺾이거나 울음이 터져야 끝이나는 싸움이다. 아직 소통과 배려라는 것에 익숙치 않은 아이들에게 이러한 싸움은 그저 돌아서면 잊고마는 사소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러나 좀 더 머리가 굵어지고 사회라는 틀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기가 오면 얘기는 달라진다. 언제까지 내 것만이 정답이고, 나만이 최고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 순 없다. '나' 만의 세상에서 '우리'의 세상으로 나서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바로 동화 <째깍이와 깜빡이> 다. 살기 위해 뭉친 째깍이와 깜빡이의 운명은? 째깍이와 깜빡이는 다정이네 덤앤더머다. 오랜시간 다정이네 시간을 도맡아 왔던 바늘시계 째깍이는 백화점 사은품으로 굴러 들어온 숫자시계 깜빡이가 눈엣가시 같다. 깜빡이 역시 째깍이가 껄끄럽다. 다정이네 와서 처음 째깍이와 나눴던 대화가 아픈 자신을 탓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두 시계는 시계로써 수명이 다하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한다. 둘이 가리키는 시간이 틀려버린 것이다. 쓰레기통에 버려질 위기에 처한 두 시계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째깍이와 깜빡이의 모습에서 '우리'를 보다 째깍이와 깜빡이는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단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바로 혼자서는 절대 이 위기를 해쳐나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철옹성 같던 둘의 사이가 그렇게 하나 둘 허물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안심한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를 발견한다. 쓸데없는 자존심과 시기를 버리고 소통할 때 희망을 발견하는 '우리' 말이다. <째깍이와 깜빡이>는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일깨워 주는 책이다. 째깍이와 깜빡이 때문에 웃고 맘 졸이는 동안 더불어 사는 세상은 어느새 한 발짝 우리 앞으로 다가 와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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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 째깍 깜빡 깜빡, 엄마 저에겐 소중한 물건이에요
째깍이와 깜빡이 그리고 다정이 이 동화의 주인공은 바로 째깍 이와 깜빡이 그리고 다정 이입니다. 째깍이는 벽에 붙어있는 바늘 시계이고 깜빡이는 장식대 위에 놓인 작은 숫자 시계입니다. 다정 이의 가족과 함께 사는 째깍 이와 깜빡이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서로 자신의 시간이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이죠. 그러던 어느 날 째각 이와 깜빡이는 다정이의 엄마에 의해 버려질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다정이는 째깍 이와 깜빡이를 엄마에게서 지키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될까요? 다정이는 째각 이와 깜빡이를 지켜 냈을까요
물건의 소중함 “엄마! 한 번만 더 기회 주면 안 돼요? 한 번만요, 네? 불쌍하단 말이에요. 네?” “시계가 뭐가 불쌍해? 살아 있는 동물도 아닌데.” 다정이는 째깍 이와 깜빡이를 불쌍하다고 표현합니다. 시계는 살아있지도, 그렇다고 동물도 아닙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움직이는 모든 것을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한 아이들의 눈으로 본 물건들은 모두 살아있는 생물체고 소중한 물건입니다. 물건을 소중하게 다루고 함부로 버리지 않는 동화 속 다정 이의 모습은 동화를 읽는 아이들이나 동화를 읽어주는 어른들에게도 모두 배워야 할 교훈으로 다가옵니다. 아이들과 함께 ‘째깍 이와 깜빡이’를 읽으며 집안에 꼭꼭 숨어있는 우리에게 소중하지만 잘 보이지 않았던 물건들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물건의 소중함을 깨닫고 작은 것이라도 아껴쓰는 모습을 함께 실천해 보는 것도 좋은 교육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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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어른 함께 읽는 가족동화 <째깍이와 깜빡이>는 다정이네 집에 사는 시계들의 이야기다. 바늘시계 째깍이와 숫자시계 깜빡이는 틈만 나면 싸우고 서로를 무시한다. 째깍이는 다정이네 오랜 터줏대감이었는데, 백화점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깜빡이가 이 집에 들어오게 되면서 첫 만남부터 꼬이는 상황이 발생했다. 게다가 이 둘이 서로 헐뜯으며 싸우는 통에 안방의 시계 '사각이'와 다정이 방 시계 '토끼'는 말 한마디 못해보고 외롭게 지내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만다. 째깍이와 깜빡이가 서로 싸우는 통에 시간을 잘 맞추지 못하게 되자 드디어! 이 둘의 극적 화해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째깍이와 깜빡이> 이야기에는 아주 많은 교훈이 들어있다. 째깍이와 깜빡이가 화해하게 되면서 이 동화를 읽는 아이는 '친구와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자'라는 교훈을 얻는다. 토끼와 사각이가 자신들을 항상 무시하던 깜빡이를 도와주는 부분에서는 '남을 도와주면 뿌듯하구나'라는 교훈이 있다. 그리고 째깍이와 깜빡이를 위기에서 구해준 다정이를 통해 '나도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말고 아껴써야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가족동화답게 엄마, 아빠도 '아이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자'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겠다. 전체적으로 <째깍이와 깜빡이>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동화의 내용이 어른과 아이를 모두 사로잡기에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화이다보니 글씨 크기가 큼지막하고 중요 내용에는 글씨체를 달리하여 읽기 쉽게 만들어 준 것은 좋았다. 하지만 조금은 유치한 일러스트가 눈길을 끌지 못하는 점이 매우 아쉽다. 내가 어릴적 보던(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즈음) 동화책들과 다를바 없는 일러스트는 지금 시대와는 동떨어진 느낌이 들어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작가가 하나의 이야기에 너무 많은 교훈을 담으려고 하다보니, 아이들이 교훈을 다 받아들이면서 읽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요즘 나온 동화는 어떤 이야기일까?', '내 아이에게 흥미를 주는 이야기일까?'라고 생각하며 이 책을 집어드는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개선할 여지가 있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가격이 좀 더 저렴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10% 할인된 가격도 책의 두께와 차별성에 비해 높은 가격에 책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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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이와 깜빡이>는 다정이네 집에 있는 두 시계 이야기 이다. 째깍이는 초침시계이고, 깜빡이는 전자시계이다. 두 시계는 늘 서로 잘났다고 싸우는데, 다정이는 엄마와 함께 두 시계로 시계 읽는 법을 배우곤 하는데, 어느 날 무슨 이유에선지 두 시계의 시간이 정확하지가 않다. 때문에 다정이 엄마 아빠는 두 시계를 버리고 새 시계를 사려한다. 학교에서 물건을 아껴쓰라는 배움을 듣고, 아빠에게 시계들에게 단 하루의 기회를 주고 그 시간이 지나도 시계의 시간이 정확하지 않으면 시계를 바꿀 약속을 받는다.
결국 책의 내용은 째깍이와 깜빡이가 시간내에 얼마나 정확한 시간을 맞춰 집안에서 살아남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장 처음 다정이가 시계배우는 모습을 읽을 때 새삼 내가 시계읽는 법을 배웠는지 헤아려 봤는데, 도무지 기억 조차 나지 않는다. 얼마나 까마득한 옛날인지,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나도 모르는 새 어린 시절에서 너무도 멀리 왔구나 느낄수 있었다. 더 이상 어린이 책을 보고 그저 즐겨지지만은 않았다.
사실 대개의 동화가 그렇듯이 개연성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대체 왜 시계는 갑자기 시간이 맞지 않는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깜빡이가 어떤 이유로 눈을 뜰 수 있었던 건지, 대개 아이들이 생각하듯, 우리의 꿈과 희망만으로 이뤄지는 일은 없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또 아버지는 왜 시계를 버릴 생각부터 하는지, 물건에게 하루의 말미를 주겠다는 것은 무엇인지 납득이 되지가 않는다. 사실 이것은 어른 독자로서 이 책을 바라 보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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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을 때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점은 이책의 두 주인공이 문제를 같이 해결하는데 있어서 시계로서 갖는 제약들이 많이 때문에, 자신들의 생존의 문제를 걸고 펼쳐지는 서스펜스가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가족 끼리 둘러 앉아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이 들은 째깍이와 깜빡이 두 시계가 집안에 꼭 남아 있을 수 있기를 손에 땀을 쥐며 바랄것이다. 마지막에 깜빡이를 향해 다같이 소리를 지르는 장면에서, 내게 조카같은 친구가 있어 같이 읽게 된다면, "깜빡아~!"하고 불러보라고 했을 것 같다. 이야기를 즐긴기는 것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그런 것이다. 등장인물에 공감하고, 그 안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 그러다 보면 그들의 위기도 나의 위기가 되고, 그들의 행복도 내것이 된다.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경험하는 기회를 주고 싶다면 이 책은 그 결말이 기대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책으로서의 역할은 톡톡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 책을 통해, 물건 아껴쓰기, 친구와 싸우지 않고 평소에 잘 지내기, 어려울때 돕기, 같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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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 째깍이와 깜빡이 사이
아침 일찍 학교를 가려는 아이에게 엄마는 잔소리아닌 잔소리를 한다. ‘차 조심해라,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곧장 집으로 와라.’ 그리고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 우리는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친구와는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렇지만 잔소리를 듣는만큼 더욱 친구와 자주 싸우고 토라진다. 우리는 매일 사람들과 잘 지내야된다는 말을 듣고, 생각을 하면서도 왜 잘 되지 않는 것일까?
<째깍이와 깜빡이>는 다정이네 집에 있는 바늘시계와 숫자시계이다. 처음 만난 날에도 서로가 시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둘은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서로를 흘끔흘끔 쳐다보기만 할 뿐 누구 먼저 말 걸고 싶은 마음을 내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다정이가 학원 차를 놓치고 다정이 아빠가 틀린 시계의 시간 때문에 일찍 나가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생긴다. 이 일로 다정이네 부모님은 두 시계들을 버리려고 하지만 다정이는 시계들에게 기회를 달라며 부모님이 시계를 버리지 않도록 말린다. 시계들도 서로를 깎아 내리고 미워하던 옛 모습을 벗고 서로 힘을 모아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결국 시계들은 버려지지 않게 되었고,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었다.
서로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모습은 낯을 가리는 우리의 모습과 같다. 먼저 말 걸고 싶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는 모습도 우리와 같다. 사실은 그런게 아닌데, 친해지고 싶은데 어떤 말을 해야 될지 몰라 움츠리고만 있는 시계의 모습은 우리를 나타낸다.
사실 째깍이와 깜빡이는 서로를 미워했다기보다 부러워했다. 높은 곳에 걸린 째깍이는 바깥세상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고, 낮은 곳에 놓여진 깜빡이는 가족들의 따스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둘은 이 부러움을 꾹 참고 제가 잘났다고 잘난 체를 하고 싶어했다. 사실은 남들을 부러워하지만 자기가 더 잘났다며 으스대는 꼴이 우리의 모습과 똑같지 않나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주 가까이에서 우리는 때로 째깍이, 깜빡이가 되어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다. 친구와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은 아이한테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도, 어른도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중에가서는 시계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진정한 기쁨(깜빡이가 살아남)을 맞이한다.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기뻐하는 시계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감정이 선이 되어 서로를 이어주고 있지는 않은지, 작은 동화로 아이도 어른도 교훈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