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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이 뭐냐고 질문을 받을 때 타인과는 차별화된 ‘나’를 떠올리곤한다. 딸, 아내, 엄마, 영어선생, 한국인.... 이 책에서는 정체성에 축구나 야구팬,특정정당지지자, 인종을 예를 들어 설명을 했다. 특히 두 심리학과 교수의 사회실험에 대한 일화중에 백인과 흑인 다수인종이 혼합된 팀으로 팀경기를 하면 인종에 상관없이 팀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생겨난다는 것과 공화당과 민주당의 지지자들이나 당원들은 사실보다는 당에 대한 충성도가 의견 결정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제노비스 사건 (칼에 찔려 죽어가는 여자를 목격한 시민이 방관해 죽음.38명의 목격자) 을 통해 그들의 도덕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 보다는 왜 그들은 돕지 않았을까? 가 궁금할 것이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지만, 남들은 안다는 생각과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 지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태였고, 다수가 있다고 도울 가능성이 높은 건 아니다. 그당시 중앙화된 911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경찰도 응답을 못했다. 도움을 줘야 하는 사람이 (선뜻 돕는 동질감을 느끼는) 누구인지 인식하는 데서 부터 돕는 행위가 시작된다. 아이 엄마 마음은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이 안다고 나서서 계단(전철)에 유모차를 들어줬던 적이 여러번 있었다. 책에서 정체성이 고정된 게 아니라, 공유된 정체성은 우리라는 동질감을 심어주고 도움을 준다는 걸 알린다. 요루단 납치 비행기 승객들이 육아를 하는 엄마, 대학생, 서로 정체성이 다를 경우 식량과 화장실 사용에 불만이 있었지만 인질이라는 정체성은 그들을 서로 돕게 만들었다. 책의 말미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인으로서의 장체성을 모두가 공감한다면 더 늦지 않게 우리가 손을 쓸수 있을 것이다라는 희망의 메세지를 전한다. 우리라는 큰 개념으로 세상을 보면 우리는 분열된 세상을 조금은 더 따스한 시선으로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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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서구 문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개인성이라 할 수 있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았던 기나긴 신정정치 시스템 아래에서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사회경제적 계급을 바꿀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이다 죽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니체가 '신이 죽었다'라고 선언했을 때 이미 서양의 중산층은 자신의 정체성을 조금 더 자유롭게 선택하고 빚어낼 수 있었다. 플랫폼 경제가 지배하는 요즘에는 '긱 이코노미'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우리는 플랫폼에 등록하기만 하면 플랫폼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산자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고, 그로부터 경제적인 생산활동을 할 수 있다. N잡과 부캐는 더욱 일상화되어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가장 안정적이라 일컬어지던 공무원과 같은 직업에서 자발적으로 퇴직하고 자신에게 더욱 적합한 정체성을 찾으려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정치 영역에서는 진영과 상관없이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증명하려 진영의 원형적 정체성을 더욱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리더를 중심으로 의견이 극단화되는 '정체성 정치'가 전사회적, 전세계적 타협을 어렵게 만들고 민주주의를 흔들고 있다. 우리는 자의로 타의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체성을 받아들이며 사는 '액체 근대'의 세상에 살고 있다. 도대체 정체성은 무엇이고, 왜 그렇게 사람들은 정체성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일까? 한 사람의 자아를 형성하는데 정체성은 어떤 역할을 하고, 내집단과 외집단은 정체성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정체성을 비롯해 사회 속의 자아, 사회 집단의 역학을 사회심리학과 신경과학의 렌즈를 통해 연구하고 그 내용을 집대성한 책이 <아이덴티티>이다. 주로 행동 관찰과 이론을 뒷받침하는 이야기, 그리고 실험들을 활용하여 저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정체성에 대한 사회신경과학 연구들이 조금 더 많이 포함되기를 바랐던 개인적인 희망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체성과 관련된 폭넓은 주제를 어렵지 않게 집대성해서 독자를 이해시킨다는 측면에서는 명저라는 평가를 하고 싶다. 나는 많은 심리학 서적과 신경과학 서적을 읽고 얻은 지식을 통해서 인문학적인 현상들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일반적인 경향성을 찾거나 통찰을 얻어내는 것을 즐긴다. 지식이 충분히 쌓이기 전에는 이러한 지식이 일상 생활과는 동떨어져 지식 그 자체로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관찰과 지식이 축적될수록 그 과정에서 얻은 통찰과 깨달음들은 내가 현실의 복잡성을 더욱 잘 이해하고 실질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힌트를 제공해주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내가 가장 깊게 고민한 부분은 역시나 '자아'였다. 그리고 정체성은 '자아정체성'이라고 불릴만큼 정체성과 불가분의 관계이기에, 이 책이 자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에 대한 통찰을 더해줬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의 독서는 자신의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독서는 나만의 속도로 명망과 전문 지식이 있는 저자와 깊은 내면소통(을 한다는 점에서 자아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게 일상적인 대화에서 주제로 흔히 다루어지지 않는 다양한 저자들의 글을 통해 지적 영토를 확장시키다 보면, 보편적인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큰 변화가 생길뿐만 아니라 나 역시 그들 중 하나로서 똑같은 인간이면서 동시에 나만의 장단점과 개성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더욱 깨닫게 된다. 남들이 읽지 않는 책을 읽고 이를 이해하고 기억하기 위해 스스로 대화를 하면서 점점 더 자신만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인식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동시에 꾸준한 명상과 운동을 통해 나의 감정과 생각을 한발짝 떨어져 관찰하는 연습을 하다보니 스스로 모자라다고 생각하거나 못났다고 생각했던 부끄러운 모습들도, 그리고 그러한 모습들을 타인에게서 발견했을 때에도 거기엔 운명처럼 영향을 미친 긴 인과의 사슬이 있었음을 떠올리며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나만의 개성과 자아를 찾기 위해 시작한 여정은 모든 인간이 겪는 감정이 비슷하다는 결론으로 향하며 인류애와 존중심, 자비심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한 편으로 내가 깨달은 독특한 나만의 특징은 내가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소속감을 강하게 느꼈던 곳에서도 나는 종종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을 관찰하듯이 파악한 기억이 있다. 게다가 집단 안에서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나 자신의 독특성을 뽐내기보다 그저 본능적으로 그들과 너무 동화되기를 경계하며 객관적인 관찰자의 입장을 취할 때가 종종 있다. 유행에 둔감하고 가끔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기 때문에 발이 넓은 사람이 되기에는 좋지 않은 성격이지만, 모두가 순응하며 집단의 역학에 휘말릴 때 그러한 상태를 감지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데에는 좋은 성격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맹목적인 순응과 소속감의 위안을 경계하면서 삶의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최근 영화 조커2를 보았다. 전작에서 가족으로부터 학대받고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로부터 존재의 의미를 강탈당한 아서 플렉에게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탄탄한 서사를 전개한다. 자신의 코미디까지 사회의 기준으로 재단하고 조롱했던 사람들에 대해 조커는 극단적인 폭력으로 복수를 하며 내면에 쌓아둔 폭력성을 표출한다. 사회적 자본이 붕괴하고 사회 시스템이 마비된 고담 시의 군중은 조커의 등장을 반기며 도시를 한바탕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가며 보는 이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조커2에서 아서 플렉은 다시 감옥에 갇혀 간수들의 폭력과 조롱을 받는 존재로 등장하고, 리 퀸젤을 비롯한 군중들에게 비춰지는 파괴적인 조커로서의 정체성과 내면의 분노를 표출할 길이 없는 한없이 나약한 아서 플렉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으며 노래를 부르는 환상과 무시를 당하는 현실 사이를 위태롭게 오간다. 결국 군중이 바라는 모습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으로 되돌아가려고 시도했을 때 아서 플렉은 그를 이해해주는 한 사람도 없는 암울한 상태에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관객들의 평은 극단적으로 갈렸다. 1편에서 통쾌하고 폭력적인 복수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던 조커의 모습을 기대했던 관객들로부터는 커다란 실망의 평들이 나왔다. 한편 아서 플렉이라는 그 자체의 캐릭터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경험하기 위해 조금은 다른 기대를 갖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웰메이드 사이코 드라마라고 호평을 내놓기도 했다. 1편과 2편 모두에서 억눌린 분노의 감정, 극심한 정체성 혼란을 보여준 아서 플렉의 이야기가 나에게는 충분히 공감될 수 있는 이야기였기에 나는 영화를 보고난 후 즉각적으로 후자의 평에 가까운 감상을 느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영화를 보는 경험으로부터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의 어두운 면이 나에게도 있음을 더욱 인지하고 경계해야겠다는 경각심도 일깨울 수 있었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한 세계를 가진 개인과 상호작용하며 복잡한 내면을 가진 정체성을 만들어나간다. 이러한 변화는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고, 때문에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마음만 먹으면 끝없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미셸 드 몽테뉴는 가감없는 솔직한 '에세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글을 썼고, 그의 글은 고전이 되어 전세계에서 오래도록 읽히고 있다. 글로 남기지 않아도, 다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며 정체성을 빚어내고 있다. 자신을 관찰하며 느끼는 놀라운 점 중 하나는 나에게 내가 모르던 정체성이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모습을 진지하게 파악하려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예전과 같이 관성에 따라 살아가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자신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인간에 대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면, 스스로 만들어낸 왜곡된 세계관이나 편견으로부터 조금은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점은 고대에서부터 자아와 인간 존재를 연구했던 명상가, 종교인, 성인들, 철학자들이 깨달았던 점이다. 이 책은 조금 더 과학적인 관점에서 정체성을 탐구하는 책이지만, 그 메시지에는 그러한 깨달음들과도 일맥상통하는 지점들이 있었다. 사회 속의 자아를 가진 존재로서 정체성이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한 사람들 모두가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
| 이 책은 여러가지를 다양하게 제시하는 사회심리학책입니다 집단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과 가장 핵심적인 사회적 정체성은 고정적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껑 거기에 연대하려는 마음도 갖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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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이라는 것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는책 실험을 통한 여러가지 예시로 좋은 경험이었다 다만 읽기 난이도는 꽤 있는편이라 목차를 잘살펴보고 자신이 관심있는 파트먼저 읽는것을 추천드립니다. 정체성에 대한 좋은 경험을 하시게 될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