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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동아시아를 넘나들며 증오보다는 공존을 모색하는 스토리
"유럽과 동아시아를 넘나들며 증오보다는 공존을 모색하는 스토리 " 내용보기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한국인인데도 한국의 역사와 문화보다는 일본이나 유럽과 같은 외국의 역사와 문화를 더 자세히 아는 편이다.  이런 나와 달리 프랑스 작가 리샤르 콜라스는  소설 <할복>을 통해 자국인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역사와 문화까지도 조예가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국 소설을 통해 오히려 한국전쟁의 과정과 에피소드, 한국문화의 가치를
"유럽과 동아시아를 넘나들며 증오보다는 공존을 모색하는 스토리 " 내용보기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한국인인데도 한국의 역사와 문화보다는 일본이나 유럽과 같은 외국의 역사와 문화를 더 자세히 아는 편이다.  이런 나와 달리 프랑스 작가 리샤르 콜라스는  소설 <할복>을 통해 자국인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역사와 문화까지도 조예가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국 소설을 통해 오히려 한국전쟁의 과정과 에피소드, 한국문화의 가치를 배웠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한국 문화에도 매료되었습니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알게 되었거든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랜 전통을 지닌 가문 출신의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이 귀한 도자기들을 팔아야 했습니다. 일요 장터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도자기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바닥에 깔린 천 조각 위에 도자기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도자기의 가격을 너무싸게 깎는 흥정은 차마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소설 <할복>, 456페이지)

무엇인가를 깨닫고 작은 변화로 나아가게 해주는 책이라면 나에게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소설 <할복>은 올해 만난 좋은 문학 작품이다. 

<할복>의 주인공 볼프강은 독일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독일과 프랑스는 이웃국가지만 역사적으로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다. 일본과 한국보다야 덜 하겠지만 독일과 프랑스도 서로에 대해 나름 애증의 감정을 품고 있다. 
제2차대전과 나치의 프랑스 지배로  독일과 프랑스의 사이는 더욱 안 좋아진다. 볼프강은 독일인과 프랑스인 혼혈로 태어났기에 어릴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중간 입장을 취하는 것에 익숙한 듯 하다. 

내 주변에도 혼혈 지인들이 있어서 주인공 볼프강의 입장이 간접적으로나마 이해가 된다.  
아무리 전쟁이 나라와 나라의 싸움,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폭력적인 다툼이라고 해도 혼혈로 태어난 사람에게 어느 하나의 나라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또 다른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혼혈은 아니고 하나의 민족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라고 해도 타국의 사람이나 문화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해외에서 일하는 한국사람,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사람, 국제커플과 그 자녀, 자국에서 타국의 문화와 언어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또한 볼프강은 문화적으로도 '혼혈'과도 같은 입장이다. 

일본 문화와 사무라이를 동경했고 아버지의 대학 동창인 일본인 겐소쿠를 정신적인 스승으로 생각했으나 커가면서 자랑스러워했던 조국 독일과 동맹관계였던 동경했던 나라 일본이 독일과 마찬가지로 겉보기와 달리 또 다른 충격적인 얼굴을 감추고 있다는 것에 내면적으로 갈등한다. 

성인이 되어 '에밀'이라는 이름을 가진 프랑스인 기자로 신분세탁을 하게 된 볼프강은 한국전쟁 특파원으로 발령받아 부산에서 오랫동안 생활한다. 그곳에서 일본인 기자와 우정을 쌓고 첫 눈에 반한 한국인 여성 선희와 평생가약을 맺게 된다. 선희를 통해 한국을 단순히 일터가 아니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게 된 에밀(볼프강)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알아가고 한국인과 부산에 연민과 애정을 품는다. 에밀은 일본 문화와 한국 문화 사이에서 그 어느 것을 선택하지 않고 두 나라 문화의 장점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  

<할복>은 에밀(볼프강)이라는 개인의 삶을 따라가면서 '민족 대 민족, 나라 대 나라'라는 이분법적인 구조로 세상을 볼 수는 없음을 은연 중에 전한다.
반유대주의보다는 공산주의에 더 반감을 품기에 독소전쟁에서 나치 독일군의 편에 선 프랑스인 용병들, 사이 좋은 독일인 사위를 두었지만 나치즘에는 반대하기에 레지스탕스를 몰래 도운 프랑스인 부부, 조국 일본과 의사라는 사명감 사이에서 심하게 갈등하며 양심 때문에 괴로워한 일본인 의사, 한때 일본군 장교였지만 일본의 전쟁범죄에 회의를 느끼고 한국인 여성의 탈출을 도운 일본인 기자, 오키나와 전쟁에 참전해 장애를 안게 되어 반일감정이 강하지만 한국인 아내의 조카를 구해준 일본인 기자만큼은 미워하지 않고 진심으로 대하는 미국인 재즈바 주인 등...

어쩌면 작가는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증오와 복수보다는 공존과 평화를 모색하는 것이 인간이 야만적이지 않고 품격을 가진 존재가 되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 <할복>의 시대적 배경인 20세기보다 21세기인 지금이 훨씬 더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도, 평생 한 나라에서 하나의 문화만 알고 살아야 하는 운명이 통하지 않는 다극화된 시대다. 
<할복>은 20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도 21세기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공감이나 생각거리를 주는 스토리여서 몰입하면서 읽었다. 겉은 전쟁 이야기 같지만 그 이면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이래도 될까?', '나는 누구인가?'처럼 요즘 인기 있는 철학자기계발서가 전개하는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 <할복>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과 나라를 떠나 인간은 무엇인지....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소설이었다. 
b*******1 2024.09.0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