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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이발사였고 ,어머니는 재봉사이자 미용사였다 .ㅡ안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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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이발사였고 ,어머니는 재봉사이자 미용사였다      삐아졸라를 들으며 웹사이트에서 점쳐준 나의 전생을 패러디 한다      과거의 당신은 아마도 남자였으며 / 현재의 당신은 불행히도 여자이며 / 인간의 모습으로 당신이 태어난 곳과 시기는 현재의 보루네오 섬이고 / 여자의 모습으로 당신이 태어난 곳과 시기는 강원도 태백이고 / 대략 1350년 정도입니다 / 대략 1972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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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이발사였고 ,어머니는 재봉사이자 미용사였다

 

 

    삐아졸라를 들으며 웹사이트에서 점쳐준 나의 전생을 패

러디 한다

 

    과거의 당신은 아마도 남자였으며 / 현재의 당신은 불행

히도 여자이며 / 인간의 모습으로 당신이 태어난 곳과 시기

는 현재의 보루네오 섬이고 / 여자의 모습으로 당신이 태어

난 곳과 시기는 강원도 태백이고 / 대략 1350년 정도입니다

/ 대략 1972년 여름의 일입니다 / 당신의 직업 혹은 주로 했

던 것은 랍비 , 성직자 , 전도사입니다 / 당신의 직업 혹은 주

로 하는 짓은 비정규직 , 계약직 , 시간제입니다

 

( 어쩌자는 것인가 )

 

    삐아졸라의 아버지는 이발사였고 , 어머니는 재봉사이자

미용사였다고 한다

    내 아버지는 광부였고 , 어머니는 장성 제1 광업소급식사

이자 세탁부였다

 

( 몰라 , 얼음 죽을 때까지 얼음 )

 

강 옆에서 물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 * 처럼

삐아졸라를 들으며 나는 내가 다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

 

 

*김도연 산문집 『 눈이야기 』에서 .

 

78 / 79 쪽에서

 

안현미 시집 "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ㅡ제 3 부 중 .

 

 


 

시집 한 권을 뒤적이다 보니 날이 밝아 일요일  아침 ,

어제의 눈은 흔적도 없다 .

어딘가 높은 봉우리의 만년 쯤 되는 노파로 살아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 그것은 내가 당장 알 수 없는 일 .

오늘의 하루만 겨우 사는 나는 ,

 

도종환의 시에서 시작한 시 끝잇기가 끝이 아니었다 .

이번엔 김도연의 산문으로 들어서야 하는건가 ?

겨울 산 바람이 계곡마다 서려서 몹시 깊을텐데 닿을수나

있을지 기약없는 여행을 시작했네 후회하자니 ,

돌아갈 차가 편도 뿐이다 .

 

y*****7 2016.11.27. 신고 공감 5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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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 ㅡ 안현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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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현 ㅡ     가을엔 시시한 게 좋아 시시한 하루 시시한 모임 시시한영화 다시 시시한 하늘까지     가을엔 다시 시시한 게 좋아 알고도 모르게 영 모르지는않게 조금씩 조금씩 슬프달 것도 없이 시시각각 바뀌어가는 거의 아름다운 시시한 생각 생각들 가을엔 아무래도 시시할수록 좋아 그녀가 사랑했던 월요일들과 손톱만큼 지혜로워지는 이마들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아지는 추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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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현 ㅡ

 

    가을엔 시시한 게 좋아 시시한 하루 시시한 모임 시시한

영화 다시 시시한 하늘까지

 

    가을엔 다시 시시한 게 좋아 알고도 모르게 영 모르지는

않게 조금씩 조금씩 슬프달 것도 없이 시시각각 바뀌어가

는 거의 아름다운 시시한 생각 생각들 가을엔 아무래도 시

시할수록 좋아 그녀가 사랑했던 월요일들과 손톱만큼 지혜

로워지는 이마들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아지는 추분과 환

타 빛깔로 빛나는 숲 그 숲속에 가마솥 뚜껑처럼 누워 있는

조상들의 무덤과 성묘를 마치고 방금 막 집으로 돌아가버

린 여자애처럼 세로쓰기를 좋아하고 안드로메다 페가수스

카시오페이아 같은 가을 별들을 사랑했으나 자꾸 희미해지

는 당신 ,

 

     가을엔 아무래도 시시해지는 게 좋아 알고도 모르게 영

모르지는 않게 자꾸자꾸 슬퍼지려는 마음이 다시 시시해져

버리게 빨리 늙어버리게

 

본문 82 쪽에서 ㅡ

 

안현미 시집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 중에

 

 


 

 

시시하다 , 시(時)시 (詩)해 . 시시하지 , 시시한 것들 .

시간에도 말에도 시인의 환타 빛 숲이 그대로 들이부어져

포글포글 간지럽다 

 

마시면 김은 다 빠져나간 닝닝한 맛의 달달함 

간지러운 탄산의 즐거움을 잊은 시간 

따라놓고 잊어버린 투명한 잔의 고독 같은 것  

생각난 듯 잔을 들으면 어느새  닝닝한 온기

 

아무렇지 않은 우리들의 가을을 안타까워하느라

나라는 촛불잔치를 벌이게 한다

숲으로 가야할 환타의 빛은 발길을 돌려

모두의 촛대로 올라가 앉고

 

그럼에도 어느 주일의 상행선과 하행선은

까만 밤까지 헤드라이트를 쏘겠지 ...

 

그 위를 이울고 있는 하 현은 오래 잊었던 당신일까 ...

y*****7 2016.11.28.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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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수리센터 ㅡ 안현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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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 수 리 센 터 p에게      누나 ...... 나 ...... 내일부터 꽃을 준 여자랑 연애할 거예요   밑바닥에서 사랑까지 생을 바꾸어야만 다다를 수 있는사랑 묵묵부답인 사랑 마네킹 같은 사랑 ...... 위상공간 같은 지옥과 싸이버 같은 천국을 하루에도 수십차례 왔다 갔다 하는 사랑 꽃이 , 꽃이 , p지 않는 사랑 ...... 울거나 술을마시거나 울면서 술을 마시거나 하여간 취생몽사 몽생
"이별수리센터 ㅡ 안현미 詩" 내용보기
이 별 수 리 센 터

 

p에게

 

    누나 ...... 나 ...... 내일부터 꽃을 준 여자랑 연애할 거예

요   밑바닥에서 사랑까지 생을 바꾸어야만 다다를 수 있는

사랑 묵묵부답인 사랑 마네킹 같은 사랑 ...... 위상공간 같

은 지옥과 싸이버 같은 천국을 하루에도 수십차례 왔다 갔

다 하는 사랑 꽃이 , 꽃이 , p지 않는 사랑 ...... 울거나 술을

마시거나 울면서 술을 마시거나 하여간 취생몽사 몽생취

사의 흐리멍덩한 사랑 ...... 변증법적인 단계를 거쳐 서른

이 되고 싶다는 말 ...... 공산당선언만큼 낡아버린 그 말 누

나 ...... 나 ...... 내일부터 꽃을 준 여자랑 여행할 거예요 다

른 차원으로 사랑할 거예요 색연필로 그려준 누나의 사랑

과 ...... 꽃도 시들면 쉰내가 난다던 말은 분리수거해서 사

용할게요 ......그러니 누나 ...... 봄이나 기다리며 생을 낭비

하자던 약속 같은 건 종량제 쓰레기봉투에나 버려줘요 ......

우리 모두 미래의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지도 모르는 존

재들이란 누나의 말은 이별과 함께 수리해서 쓸게요 누

나 ......누 ......나 ......

 

P.s.

 

   끝내기 위해서는 시작해야만 한다 . 끝날 줄 알면서도 시

작해야만 한다 . 그리하여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

 

 

ㅡ 32 / 33  ㅡ

 

안현미 시집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 중에서

 

 


 

 

수리되는 사랑 , 너덜너덜 기운 자국이 군데군데 이불보도 조각보도

요즘은 수리따윈 않는데 ,

 

어느 새벽에 누구십니까 하는 메세지를 받은 적이 있다

그를 아는 사람이냐는 간곡한 질문에

뭘까 , 이 간절함은 ... 싶어져

인물을 찾아가보니 질문자도 질문자가 알고 싶어한 인물도

나는 도무지 모르는 사람들

그렇지만 , 아무 이유 없이 그녀의 글이 토막 난 순대 * 처럼

절절해선  호의도 선의도 아닌 그저 읽었노라는 표시로 남긴

붉은 하트 , 혹은 좋아요 가

그처럼 간절한 부름을 이끌어 낸 거란 사실을 어떻게 말할까

 

온 종일 말을 고르고 골라서 최대한 상처 받지 않도록 답을 건낸다

그러나 이미 나는 한번 상처를 주었다

아는 이가 아니라는 상처 , 모르면서 본 무심함의 상처

 

말들이 돌고 돌아 이젠 오늘 하루 따듯하게 보냈으면 한다는

위로도 인사도 아닌 말들로 끝을 내며

 

그렇구나 , 시인의 시는 수리되는 , 고쳐지는 사랑 아니고

어느날 , 하얗게 밤 세워 쓴 사표가 수리되듯

 

받아들여지는 숙고의 수리구나 ,

어느 날 그녀의 사랑도 , 그 간곡함도 끝내는 수리되기를

 

 

* 애인은 토막난 순대처럼 운다 ㅡ권혁웅 시인님의 제목을 빌렸다 .

 

y*****7 2016.11.29.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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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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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으면 시집은 하루에 몇 권도 읽을수 있다.그런데 정작 읽는 이의 마음 속에 굳은살 처럼 베기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장을 담고 본 적도 없고,익는데 걸리는 시간도 헤아려 본 적은 없지만,왠지 오래된 장에서 깊은맛이 나듯 시집은 그렇게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해야 겨우 하나가 내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은 아닐지.오히려 그것이 시의 매력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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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으면 시집은 하루에 몇 권도 읽을수 있다.그런데 정작 읽는 이의 마음 속에 굳은살 처럼 베기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장을 담고 본 적도 없고,익는데 걸리는 시간도 헤아려 본 적은 없지만,왠지 오래된 장에서 깊은맛이 나듯 시집은 그렇게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해야 겨우 하나가 내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은 아닐지.오히려 그것이 시의 매력일지도 모른다며 기꺼이 시를 사랑하고픈 마음..그러고 보니 짝사랑 하는 마음이 또 이와 같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친구가 선물로 건내 준 시집을 몸이 닿아 버스안에서 읽기 시작했고,정독을 하지 못한 가운데에서도 내 마음속으로 깊게 들어온 시가 있었으니 이건 그야말로 행운 그 자체다.두고 두고 읽어야 어느 순간 툭하고 말을 걸어 오는 것이 시들인데 말이다.

 

상수리나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날 배봉산 근린공원/에 갔지 사는 게 바빠 지척에 두고도 십년 동안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그곳 상수리나무라는 직립의 고독을 만나러/갔지 고독인지 낙엽인지 죽음인지 삶인지 오래 묵은 냄새/가 푸근했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날 죽음이/다음이어야 하는지를 묻기 위해 배봉산 근린공원에 갔지/바퀴 달린 신발을 신은 아이는 바퀴를 굴리며 혼자 놀고 있/었지 어차피 잠시 동안만 그렇게 함께 있는 거지 백년 후에/는 아이도 나도 없지 상수리나무만 홀로 남아 오래전 먼저/저를 안아버렸던 여자의 젖가슴을 기억해줄 테지/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날 그곳에 갔지 직립의 고독을/만나러 갔지 죽음이 다음이어여 하는지를 묻기 위해 상수/리나무를 만나러 갔지 /38

 

배롱나무의 안쪽

마음을 고쳐먹을 요량으로 찾아갔던가,개심사,고쳐먹/을 마음을 내 눈앞에 가져와보라고 배롱나무는 일갈했던/거 개심사 주저앉아버린 마음을 끝끝내 주섬주섬 챙겨서/돌아와야 했던가 하여 벌벌벌 떨면서도 돌아와 약탕기를/씻었던가 위독은 위독일 뿐 죽음은 아니기에 배롱나무 가/지를 달여 삶 쪽으로 기운을 뻗쳤던가,개심사 하여 삶은/조금 차도를 보였던가 바야흐로 만화방창(萬化方暢)을 지/나 천우사화(天雨四花)로 열리고 싶은 마음이여,개심사 얼어붙은 강을 마음을 기어이 부여잡고 안쪽에서부터 부풀/어오르는 만삭의

 

 

소설을 읽으며 만나는 반가움 가운데 하나는 소설속 문장과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닮은 생각을 했을 때의 경험이다.시는 소설보다 그와 같은 닮은 꼴을 만나기가 어려운 편이였는데..그래서 언제나 뒤늦게 시인의 시선을 쫓아가는 편이였는데...'배롱나무의 안쪽'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돌았다.시에 씌여진 개심사가 내가 알고 있는 같은 곳의 개심사인지는 모르겠으나,오래 전 개심사를 찾아 나섰던 당시의 내 마음..그 마음이 다시 수면위로 들어난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싶었던 그 간절한 마음...배롱나무도 보이지 않았고,마음이 씻어진 것 같지도 않은,해서 시인의 말처럼 주섬주섬 챙겨 돌아왔을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될 줄이야....눈물 한 방울 쏟고 나니 그때는 느끼지 못햇던 개운함이 이제사 느껴졌다.내게는 너무도 고마운 시가 될 것 같다.

비슷한 연배의 시인이여서 더 공감가는 것이 많았던 것일까.왠지 시인과 만나 수다를 나누면 많은 것들이 통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시인이 불러낸 '나무'들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기분좋게~

 

w*******i 2014.08.08.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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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새벽에 아이들 이불깃을 여미며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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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19깊은 새벽에 아이들 이불깃을 여미며―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안현미 글 창비 펴냄, 2014.5.23. 8000원  깊은 새벽에 아이들 이불깃을 여밉니다. 한밤에도 으레 아이들 이불깃을 여밉니다. 하루 내내 신나게 뛰논 아이들은 꿈나라에서 뛰노느라 잠자리에서 이리저리 구릅니다. 온 하루를 개구지게 뛰논 아이들은 잠자리에서 무척 고단한지 자꾸 뒹굴면서 내 옆구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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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19



깊은 새벽에 아이들 이불깃을 여미며

―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안현미 글

 창비 펴냄, 2014.5.23. 8000원



  깊은 새벽에 아이들 이불깃을 여밉니다. 한밤에도 으레 아이들 이불깃을 여밉니다. 하루 내내 신나게 뛰논 아이들은 꿈나라에서 뛰노느라 잠자리에서 이리저리 구릅니다. 온 하루를 개구지게 뛰논 아이들은 잠자리에서 무척 고단한지 자꾸 뒹굴면서 내 옆구리를 차고 이불을 걷어찹니다. 그러니 나는 밤새 잠을 살짝 옆으로 미루고 틈틈이 이불깃을 여미면서 보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으면 아이들은 밤새 저희가 어떻게 잤는가를 하나도 모릅니다. 알 턱이 없기도 할 테고, 알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밤새 무슨 꿈을 꾸었느냐 하고 물으면, 두 아이는 언제나 대단히 신나게 온갖 놀이를 다 하면서 놀았다고 해요. 그래, 그렇게 꿈에서도 뛰어놀고 날아다니니까 밤새 이불을 차고 구르면서 잘 테지요.



악어가죽 가방을 든 여자가 도착한다 결정적으로 코를 빠뜨린 녹색 카디건을 입고 있다 비에 젖은 트렁크에선 빗물이 떨어지고 호텔 로비의 괘종시계는 자정을 가리키고 있다 (백 퍼센트 호텔)


곤드레나물밥을 먹는다 / 곤드레나물밥을 먹으며 지나가는 시간을 잠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 우리는 잠시 사는 것 (불혹, 블랙홀)



  안현미 님이 빚은 시집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창비,2014)를 읽습니다. 태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산다는 안현미 님은 시를 쓰는 사람이면서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2001년에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았고 2010년에 신동엽문학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시집을 찬찬히 펼치다가 “낮에는 돈 벌고 밤에는 시 쓴다” 같은 말마디를 봅니다. 아하, 이녁은 낮밤을 길디길게 보내는 살림이로군요. 집살림을 꾸리려고 낮에는 몸으로 뛰고, 마음살림을 가꾸려고 밤에는 온힘을 기울이는 하루이지 싶어요.



망우리 지나 딸기원 지나 누군가 무심으로 아니 정성으로 가꿔놓은 파밭 지나 구리 지나 여름을 통과하는 동안 하얗게 하얗게 파꽃이 피는 동안 여름과 초록과 헤어지는 동안 (구리)


우리는 선천적으로 두개의 음악을 가지고 있다. 들숨과 날숨! 낮에는 돈 벌고 밤에는 시 쓴다. (정치적인 시)



  〈정치적인 시〉라는 노래에서 들려주듯이, 우리한테는 누구나 두 가지 노래가 있다고 느낍니다. 들숨하고 날숨. 마시는 숨하고 내쉬는 숨. 숨을 쉬며 사는 우리 가운데 ‘늘 숨을 쉰다’고 느끼는 사람은 무척 드물는지 모르는데, 사람은 누구나 1초라도 숨을 쉬지 않으면 목숨이 끊어져요. 사람뿐 아니라 벌레하고 짐승도 숨을 아주 살짝이라도 안 쉬면 죽습니다. 풀하고 나무조차도 숨을 못 쉬면 그예 죽습니다. 이른바 ‘진공’이라는 데에 들어가면 누구라도 곧바로 죽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숨을 살피면, 들숨하고 날숨은 ‘같은 바람’을 마시더라도 다른 결입니다. 들이마실 적하고 내쉴 적에 다르게 흐르는 바람이에요. 참말로 두 갈래 노래입니다. 마시는 노래요 내쉬는 노래입니다. 받아들이는 노래요 내보내는 노래입니다. 받는 노래요 주는 노래예요.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랑을 아이한테 주고, 아이한테 주는 사랑을 새삼스레 아이한테서 받습니다.



그리하여 그도 그렇겠다 글렌 굴드를 듣는다 당신은 가벼울 필요도 없지만 무거울 필요도 없다 내 생의 앞 겨울을 당신을 훔쳐보면서 설레었으나 그 겨울은 거울처럼 깨져 버렸고 깨진 거울의 파편을 밟고 당신은 지나갔다 (그도 그렇겠다)


오늘은 내 생일인데 밥상이 날아가고 핸드폰이 날아가고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던 삼겹살이 날아가고 소주병이 날아가고 (축 생일)



  아줌마 시인인 안현미 님은 낮밤으로 바쁘게 하루를 지으면서 시를 씁니다. 나는 낮밤으로 바쁘게 살림을 꾸리면서 글을 씁니다. 나는 낮에 밥하고 빨래하고 집 안팎을 건사하고 마을도서관을 열고 아이들을 이끌면서 놀이를 하다가는, 밤이 되어 고단한 몸을 움직여 글 몇 줄을 신나게 씁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슬그머니 일어날라치면 아이들은 “아버지 곧 와?” 하고 묻습니다. 잠든 척하고 잠들지 않은 아이들은, 깊은 밤에도 꿈나라에서 함께 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우리는 늘 마음으로 함께 있어.” 하고 속삭이고는 이불깃을 다시 여미어 줍니다.


  사월에 사월답게 피고 지는 꽃하고 잎을 바라보면서 사월스러운 노래를 듣습니다. 어느덧 꽃잎이 다 떨어진 매화나무 곁에서 새롭게 돋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이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습니다. 매화나무는 꽃잎을 모두 떨구었지만, 나뭇잎을 먼저 내놓은 뒤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과나무는 이제 막 꽃잎을 한껏 벌립니다. 모과나무에 피는 모과꽃이 머잖아 꽃가루받이를 마치고 하나둘 눈송이처럼 떨어질 무렵에는, 이 나무 곁에 있는 다른 나무인 찔레나무에서 새하얀 꽃이 잔치를 벌여요. 그리고, 찔레나무 찔레꽃이 질 무렵에는 우리 집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가 퍽 느즈막하게 꽃을 터뜨리면서 온 마을 새하고 나비를 부릅니다.



새벽 5시, 세탁기를 돌린다 특별시의 시민으로서 세탁기를 돌린다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이 함께 살고 있는 8가구 다세대주택의 새벽을 돌린다 (1인 가족)


엄마는 노루모산을 끼고 살았다 / 신이 되려는 중인지 (화란)



  새벽에 조용히 일어나서 쌀을 씻어서 불립니다. 오늘 아침은 어떤 밥으로 지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합니다. 어제 먹고 남긴 국을 들여다보고, 어젯밤에 등허리가 결리도록 마련한 밑반찬을 살핍니다. 오늘도 새로 밑반찬을 하나 해 볼까 하고 어림하다가는, 살며시 트는 동에 따라 아침부터 바지런히 날아다니는 새들이 들려주는 노래에 귀를 기울입니다.


  나는 시골에서 새하고 풀벌레하고 나비하고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옆에 끼고 삽니다. 그리고 두 아이가 하루 내내 종알종알 종달새처럼 들려주는 노래를 곁에 끼고 삽니다. 아줌마 시인 안현미 님네 어머님은 노루모산을 끼고 살면서 하느님이 되려고 하셨다면, 나는 숲노래를 듣고 아이들 놀이노래를 끼고 살면서 하느님이 되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이틀 동안 내린 비가 밤에 비로소 그쳤으니 오늘은 아침부터 사흘치 빨래를 하면서 열어야겠군요. 어제부터 불린 옥수수 씨앗도 뒷밭에 가지런히 심어야겠고요. 바쁜 사월에 시집 한 권을 동무처럼 책상맡에 놓습니다. 2016.4.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이달의 사락 h*******e 2016.04.0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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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의 가능성 ㅡ 안현미 詩
"어떤 삶의 가능성 ㅡ 안현미 詩" 내용보기
ㅡ 어떤 삶의 가능성     스물두살 때 머리를 깎겠다고 전라도 장수에 간 적 있다그곳엔 아주 아름다운 여승이 있었고 나와 함게 그곳에 머물던 경상도 아가씨는 훗날 운문사 강원으로 들어갔다 나는 돌아왔다 돌아와 한동안 무참함을 앓았다 새로운 인생이 막 시작되려는 중이었는데 내겐 거울도 지도도 없었고그저 눈물뿐이었다 나는 나를 꺼내놓고 나를 벗고 싶었으나 끝내,나는 나를
"어떤 삶의 가능성 ㅡ 안현미 詩" 내용보기

ㅡ 어떤 삶의 가능성

 

 

  스물두살 때 머리를 깎겠다고 전라도 장수에 간 적 있다

그곳엔 아주 아름다운 여승이 있었고 나와 함게 그곳에 머

물던 경상도 아가씨는 훗날 운문사 강원으로 들어갔다 나

는 돌아왔다 돌아와 한동안 무참함을 앓았다 새로운 인생

이 막 시작되려는 중이었는데 내겐 거울도 지도도 없었고

그저 눈물뿐이었다 나는 나를 꺼내놓고 나를 벗고 싶었으

나 끝내,나는 나를 벗을 수 없었고 새로운 인생이 막 시작

되려는 중이었는데 나는 감히 요절을 생각했으니 죄업은

무거웠으나 경기장 밖 미루나무는 무심으로 푸르렀고 그

무심함을 향해 새떼가 로켓처럼 솟아올랐다 다른 차원의

시간이 열리고 있었다 업은 무거웠으나 그런 날이 있었다

 

 

ㅡ 21  쪽 에서 ㅡ

 

안현미 시집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중에서

 


 

무참을 누가 주지 않아도 스스로 무참을 겪는 나이 , 스물두살 .

그런데 , 그 나이 때 뿐일까 . 

평생을 무참함 속에 있어서 우리는 무참이 뭔지도 모른채 익숙해진건 아닌지 ,

그런 생각이 드는 밤엔 무참하겠다 . 

그런 생각이 드는 밤엔 요절을 꿈꾸기도 하겠다 .

 

이미 다 늦어버린 나이엔 요절도 꿈 꿀 수 없어 무참해지고 마는데 ,

 

시가 건낸 무참을 들고 지난 시간을 어쩌질 못하고 있네 .

 

 

 

y*****7 2016.11.30.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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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_ 무거울 필요도 가벼울 필요도 없다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_ 무거울 필요도 가벼울 필요도 없다" 내용보기
누나…… 나…… 내일부터 꽃을 준 여자랑 연애할 거예요(중략)끝내기 위해서는 시작해야만 한다. 끝날 줄 알면서도 시작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이별수리센터」 중에서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흔하디흔한..어설프고 미안한 첫 사랑이 마침내 무력하게 끝났을 때 궁금했다.처음 겪는 고통같은 이 감정은 언제 잊혀질까?내게는 영원할 것 같았고 그래서 내 마음속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_ 무거울 필요도 가벼울 필요도 없다" 내용보기


누나…… 나… 내일부터 꽃을 준 여자랑 연애할 거예요


(중략)


끝내기 위해서는 시작해야만 한다. 


끝날 줄 알면서도 시작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이별수리센터」 중에서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흔하디흔한..어설프고 미안한 첫 사랑이 마침내 무력하게 끝났을 때 궁금했다.


처음 겪는 고통같은 이 감정은 언제 잊혀질까?


내게는 영원할 것 같았고 그래서 내 마음속에 큰 자리를 차지할 것 같던 그 감정은 


그저 잊혀지는게 아니라...


아픔 > 아쉬움 > 담담함...의 과정의 거쳐 내 맘속 작은 공간에 묻어두게 되었고, 


아무일 없이 그렇게 살게 되었다.



가끔은 빛바랜 추억이 맘을 흔들고 지날때가 있기에 몸서리치기도 했지만,


이내 담담히 흘려보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사랑은 언제 수리가될까 


첫사랑이 지나고 그후로도 여러 소중한 인연을 지나왔지만,


아직 그 질문에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하겠다.


다만...


끝내기 위해서는 시작해야만 한다. 

끝날 줄 알면서도 시작해야만 한다. 


이라는 시인의 쌉싸름한 말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될 뿐이다.



얼마전 또 지나간 사랑을 내 맘속 작은 공간에 묻어두고서


"사랑은 어느날 수리되더라."


라며 나지막히 중얼거리며 다시 시집을 읽는다.


그때 누군가 날아가는 그것의 뒤통수를 향해 소리쳤다


"이별! 너는 정말 끔찍하게 아름답구나."



2


한 스님이 물이 가득 찰랑이는 유리컵 속에 한방울의 잉크를 떨어뜨리고 물었다

이 물을 다시 맑고 투명하게 하는 방법이 무엇이겠느냐



3


단 한방울의 잉크를

단 한방울의 잉크가

단 한방울의 잉크로


본디 그것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물구나무선 목요일」 중에서

당신은 무거울 필요도 가벼울 필요도 없다 


당신이 없는 겨울을 거울처럼 듣고 


사랑의 부재 또한 사랑 아니겠는가 


「그도 그렇겠다」 중에서 


라는 시인의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된다.


p.s. 


http://ch.yes24.com/Article/View/29724

▶ 시인 안현미, 고아孤兒의 균형과 고독한 여제사장 - yes24


안현미 시인 “詩는 삶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치유제”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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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2.0



옥상 장독대 위 산당화


산당화 위 안테나


안테나 위 뭉게구름


뭉게구름 위 비행기


떴다 떴다 비행기 우리 비행기


그해 내 마음의 가장 높은 봄을 지나


아득히 날아가던 너라는 비행기



     p 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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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누군가 정성으로 


아니 무심으로 가꿔놓은 파밭 


그 앞에 쪼그려 앉아 파 한단을 다듬는 동안 


그동안만큼이라도 내 생의 햇빛이 남아 있다면, 


그 햇빛을 함께해줄 사람이 있다면, 


여름과 초록과 헤어지는 일쯤은 일도 아닐까 


무심으로 무심으로 파 한단을 다듬을 동안



망우리 지나 딸기원 지나 


누군가 무심으로 


아니 정성으로 가꿔놓은 파밭 지나 구리 지나 


여름을 통과하는 동안 


하얗게 하얗게 파꽃이 피는 동안 


여름과 초록과 헤어지는 동안



     p 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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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사계




꽃이 피었다


!!!



여름


장마가 시작되듯


사랑이 시작되었다


//////



가을


장마가 지나가듯


사랑이 지나갔다


(마침표가 도착했습니다)


.



겨울


합체란 해체를 전제로 한다?



그리하여


사랑이여, 차라리 죽는다면 당신 손에 죽겠다



     p 022, 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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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시



우리는 선천적으로 두 개의 음악을 가지고 있다. 


들숨과 날숨! 


낮에는 돈 벌고 밤에는 시 쓴다. 


운에는 울고 율에는 웃자. 


그리하여 실천으로 우리의 운율은 울음이 되고 웃음이 되고 


종내에는 음악이 되고 시가 되고 밥이 되고 법이 되고 사랑이 된다. 


음, 파, 음, 파 우리는 숨 쉬자. 기억하자. 실천하자. 


후천적으로 조작되고 오염되기 이전 


우리들의 최초의 들숨과 날숨으로, 실천적으로, 실전적으로 정치하게!



     p 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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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수리센터

P에게



누나…… 나… 내일부터 꽃을 준 여자랑 연애할 거예요 밑바닥에서 사랑까지 생을 바꾸어야만 다다를 수 있는 사랑 묵묵부답인 사랑 마네킹 같은 사랑…위상공간 같은 지옥과 싸이버 같은 천국을 하루에도 수십차례 왔다 갔다 하는 사랑 꽃이, 꽃이, P지 않는 사랑… 울거나 술을 마시거나 울면서 술을 마시거나 하여간 취생몽사 몽생취사의 흐리멍덩한 사랑… 변증법적인 단계를 거쳐 서른이 되고 싶다는 말… 공산당선언만큼 낡아버린 그 말 누나… 나… 내일부터 꽃을 준 여자랑 여행할 거예요 다른 차원으로 사랑할 거예요 색연필로 그려준 누나의 사랑과… 꽃도 시들면 쉰내가 난다던 말은 분리수거해서 사용할게요… 그러니 누나… 봄이나 기다리며 생을 낭비하자던 약속 같은 건 종량제 쓰레기봉투에나 버려줘요… 우리 모두 미래의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지도 모르는 존재들이란 누나의 말은 이별과 함께 수리해서 쓸게요 누나… 누… 나


p.s.


끝내기 위해서는 시작해야만 한다. 


끝날 줄 알면서도 시작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p 032, 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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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봄으로 한 여자가 입장한다 맨발이다 일순간 일제히 모든 시선이 여자가 끌고 온 여행가방의 테두리처럼 상처투성이인 그 발에 주목한다 사위는 적막을 껴입은 듯 고요하다 여행가방처럼 먼 길을 끌려다닌 여자의 그림자가 여자를 끌어안고 먼저 쓰러진다 누가 누구의 배후인가 눈물이 고인다 문제를 풀기 위해선 문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눈물도 그와 같다 문제는 뜻밖의 문제가 늘 다시 되풀이된다는 것



그 봄으로 바퀴 달린 신발을 신은 아이가 등장한다 그 봄의 입구에는 19금(禁) 표시가 붙어 있다 누가 누구를 금지하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봄이 이어진다 봄을 사용하기 위해선 봄 안으로 입장해야 한다 문제는 뜻밖의 문제가 늘 다시 되풀이된다는 것



     p 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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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렇겠다



그리하여 그도 그렇겠다 글렌 굴드를 듣는다 당신은 가벼울 필요도 없지만 무거울 필요도 없다 내 생의 앞 겨울을 당신을 훔쳐보면서 설레었으나 그 겨울은 거울처럼 깨져 버렸고 깨진 겨울의 파편을 밟고 당신은 지나갔다 글렌 굴드를 듣는다 


지나치게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 


그게 시라고 나는 생각해오고 있다 


그게 나무라고 나는 생각해오고 있다 포도나무가 있는 여인숙에 홀로 투숙한 여행객의 고독처럼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서 있어야 할 자리라고 매일 아침 자신을 속이는 어떤 허무처럼 일인용이고 일회용인 한개도 재미없는 삶처럼 그리하여 죽음처럼 글렌 굴드를 듣는다 출근과 퇴근, 누가 만든 미로일까? 


당신은 무거울 필요도 가벼울 필요도 없다 


당신이 없는 겨울을 거울처럼 듣고 


사랑의 부재 또한 사랑 아니겠는가 


지금은 그런 생각도 해보는 겨울이다



     p 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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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나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날 배봉산 근린공원에 갔지 사는 게 바빠 지척에 두고도 십년 동안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그곳 상수리나무라는 직립의 고독을 만나러갔지 고독인지 낙엽인지 죽음인지 삶인지 오래 묵은 냄새가 푸근했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날 죽음이 다음이어야 하는지를 묻기 위해 배봉산 근린공원에 갔지 바퀴 달린 신발을 신은 아이는 바퀴를 굴리며 혼자 놀고 있었지 어차피 잠시 동안만 그렇게 함께 있는 거지 백년 후에는 아이도 나도 없지 상수리나무만 홀로 남아 오래전 먼저 저를 안아버렸던 여자의 젖가슴을 기억해줄 테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날 그곳에 갔지 


직립의 고독을 만나러 갔지 


죽음이 다음이어야 하는지를 묻기 위해 


상수리나무를 만나러 갔지



     p 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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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환전소



그 이야기에 따르면 그 꿈의 환전소는 도서관 가는 길에 있다고 한다 그곳에는 또깨비방망이를 잃어버린 이상하고 어이없는 도깨비들이 죽은 나무나 들여다보면서 일년 내내 주문만 외우고 있다고 한다 


시 나와라 뚝딱! 씨 나와라 뚝딱! 


이상하고 어이없이 아름다운 그 환전소에는 슬픈 것들이 그리운 것들로 옮겨가 앉을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나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선 안되는 듯 절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이상하고 어이없는 도깨비들은 계속 이상하고 


어이없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뚝딱뚝딱하면 시가 나오고……



그 이야기의 또다른 판본에 따르면 그 꿈의 환전소는 악마와 천사의 거리만큼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한다 그 옆에는 한그루 거대한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는 자신의 그림자를 일년 내내 들여다보면서 09시부터 18시까지 매일매일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고 한다 지겹지도 흥겹지도 않은 나라에서 이상한 것은 그 나무 그림자에선 일년 내내 이상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또깨비처럼 나타나 일년 내내 일요일을 환전해주고……



     p 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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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갈



ㅡ 천안이나 아산을 지날 일이 있으면 연락하렴. 죽기 전에 한번 봐야겠다.



구 선생님


여름 감기를 얻었고, 감기를 얻듯 애인들을 얻었던 시절들은 아주 오래전에 지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끌림, 들림, 홀림, 울림. '림'으로 끝나는 단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새벽에는 가을의 약속으로 변경했으며, 꽃병 속에 그려진 하얀 새는 빨간 부리로도 충분히 슬픕니다.



구 선생님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방학 중에 읽으면 좋겠다고 칠판 한가득 판서해주시던 그 책 목록들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때 날리던 흰 분필 가루들과 분필 가루가 묻은 선생님의 손가락을 여전히 기억합니다. 그 책들을 붙들고 겨우겨우 건너온, 사소했지만 힘겨웠던 80년대 제 유년을 기억합니다. 그때 판서를 하시던 선생님의 뒷모습을 기억합니다.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사막의 고독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전갈의 뒷모습을 닮았던.



구 선생님


나이를 거꾸로 센다는 미얀마의 올랑 사키아라는 부족을 생각합니다. 태어나면 60살이고 60년이 지나면 0살이 된다는 그 부족의 나이 계산법을 생각합니다. 제가 지나온 연대기를 생각합니다. 87년이나 86년을 지날 일이 있으면 연락주십시오. 죽기 전에 저도 한번 봐야겠습니다. 



     p 040, 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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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가 외로워질 때까지



서둘러 밥을 먹고 낙산으로 산책 가는

점심시간

산동네 담벼락에 누군가 그려놓은 낙타가 

베란다 그늘 아래 서 있다

그늘 아래서 꿈꾸고 있다

시원한 꿈이겠다


내가 탐하는 그늘은 고비사막에 있다

내 더듬이는 한번 더듬은 것들을 지문처럼 새긴다


돌멩이가 외로워질 때까지

돌멩이가 외로워질 때까지


나는 그게 시라고 생각한다


서둘러 산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점심시간


내가 먹은 밥은 그곳에 있다

나는 그게 시라고 쓰고 싶다



     p 042, 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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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의 재구성



E


얼마 전 15년 동안 살던 동네를 떠나 이사를 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재개발 논리에 강요당해서였지만 뭔가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이동하는 초식동물 같은 기분이 살짝 들기도 했던 게 사살이다. 낯선 공기와 낯선 출근길과 낯선 버스노선도…… 낯선 것투성이의 낯선 일상이 심지어는 마음에 들기까지 했다. 그건 아마도 38년을 사용해도 문득문득 타인처럼 낯선 '나'라는 존재가 그저 그런 낯선 것 투성이 중 하나일 뿐이라는 어떤 극미한 안도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색깔로 치자면 모과향이 풍부한 희미한 노랑 같은.



W


최초의 바다, 당신이 내게 보여준, 설명하고 싶었지만 설명할 수 없었던 그 거대한 아름다움, 위악도 위선도 아닌 바흐의 평균율 같은, 인간의 왕에게조차 공평하게 생의 비린내를 선사하는, 메멘또 모리, 메멘또 모리, 그렇게 출렁이던, 당신이 내게 보여준, 최초의,



S


남쪽으로 튀고, 라는 소설책을 읽었어. 소설 속 등장인물이 말했지. "국민연금은 낼 수 없어! 국민연금을 내야 한다면 난 국민을 관두겠어!" 반했지. 쉽게 반하고 쉽게 희망하고 쉽게 취하고 뭐든지 쉽게 정드는 게 내 특기니깐. 그런 내가 마음에 들던 당신과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던 당신. 그렇게 극과 극인 당신들에게 반했던 최초의 순간들이 너무 닮아 있어서 그 순간 당황했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돌려 바라봤던 남쪽 하늘. 이 별을 떠나는 누군가가 도착할 가로도 세로도 없는, 3차원도 4차원도 아닌 무차원의 위상공간 같았던.



N


매일매일 자전하고 공전하는 이 별의 낡은 테라스에 앉아 글렌 굴드를 듣는다. 피아노의 검은 건반과 흰 건반. 아무도 가보지 못한 검은 대륙과 흰 대륙. 자작나무의 영혼을 가진 당신과 함께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아무도 가보지 못한 이 별의 어떤 가능성.



     p 044, 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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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에 빠지다



너는 분홍 꽃, 분홍 강, 분홍 양말, 분홍 크레파스, 분홍 풍선, 분홍 돌고래를 좋아해


도도, 콰가얼룩말, 바다 밍크, 애빙던거북, 공룡, 아틀라스 곰……

매일 수백의 생물이 멸종되고 있는 이 세계


너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어?

너 자신의 멸종을?


새로운, 이라는 강박에만 사로잡힌 이 세계


너는 싸이 몽고메리가 탐사한 아마존의 분홍고래의

멸종되고 말 분홍을 사랑해


너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p 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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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구나무선 목요일



1


비밀이 필요한 계절이었고

우리는 시장에 갔고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아무것도 사지 않앗지만

우리는 값을 치러야 했고

그것은 어딘가로 날아갔다


그때 누군가 날아가는 그것의 뒤통수를 향해 소리쳤다


"이별! 너는 정말 끔찍하게 아름답구나."



2


한 스님이 물이 가득 찰랑이는 유리컵 속에 한방울의 잉크를 떨어뜨리고 물었다

이 물을 다시 맑고 투명하게 하는 방법이 무엇이겠느냐



3


단 한방울의 잉크를

단 한방울의 잉크가

단 한방울의 잉크로


본디 그것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p 054, 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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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셔에게서 훔쳐온 ∞



추곡약수터의 새벽안개를 기억한다 그 새벽에 내 영혼까지 다다르던 그 서늘함을 기억한다 세상의 모든 씨스템의 절반은 불필요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던 너의 말을 기억한다 우리화분이나하나살까?라고 띄어쓰기 없는 답장을 끝내 부치지 못한 것을 기억한다 메밀꽃을 경험한다고 적혀 있던 너의 일기장을 기억한다 눈물 속으로 들어가서 그 눈물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라고, 고백하지 못한 고백을 기억한다 그 모든 기억을 기억하지 않기로 했던 것까지를 기억한다 모든 관계로부터 네가 탈출한 그날 추곡약수터의 새벽 안개를 기록한다 그 새벽에 내 영혼까지 다다르던 그 서늘함을 기록한다 세상의 모든 씨스템의 절반은 불필요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던 너의 말을 기록한다 우리화분이나하나살까?라고 띄어쓰기 없는 답장을 끝내 부치지 못한 것을 기록한다 메밀꽃을 경험한다고 적혀 있던 너의 일기장을 기록한다 눈물 속으로 들어가서 그 눈물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 그게 내가 생각 하는 사랑이라고, 고백하지 못한 고백을 기록한다 그 모든 기억을 기억하지 않기로 했던 것까지를 기록한다 모든 관계로부터 네가 탈출한 그날 추곡약수터의 새벽안개를 기다린다……



     p 060, 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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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봄이고 밤이다

목련이 피어오르는 봄밤이다


노천까페 가로등처럼

덧니를 지닌 처녀들처럼

노랑 껌의 민트향처럼

모든 게 가짜 같은

도둑도 고양이도 빨간 장화도

오늘은 모두 봄이다

오늘은 모두 밤이다


활주로의 빨간 등처럼

콧수염을 기른 사내들처럼

눈깔사탕의 불투명처럼

모든 게 진짜 같은


연두도 분홍도 현기증도

오늘은 모두 비상이다

오늘은 모두 비상이다


사랑에 관한 한 우리는 모두 조금씩 이방인이 될 수 있다

그해 봄밤 미친 여자가 뛰어와 내 그림자를 자신의 것이라 주장했던 것처럼



     p 068, 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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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족



새벽 5시, 

세탁기를 돌린다 

특별시의 시민으로서 세탁기를 돌린다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이 함께 살고 있는 

8가구 다세대주택의 새벽을 돌린다 

필시 누군가의 단잠을 깨울 것이 분명하지만 

특별시의 시민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신없이 세탁기를 돌리고 

출근을 하고 야근을 하고 

정신없이 살아남아야 한다 

정신없이도 살아남아야 한다



새벽 5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을 돌린다 

얼굴도 모르는 강박을 돌려야 한다 

층간소음 다툼으로 살해당할 각오를 하면서도 세탁기를 돌려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신없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을 돌려야 한다 

특별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p 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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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고양이



매일매일 출근해

바닥을 견디는 것

자신을 견디는 것


길고양이의 왼쪽 귀 끝

중성화수술 표시로 잘려나간

삼각형의 투명처럼


거기서부터 삶을 거기서부터 죽음을

Ctrl + C, Ctrl + V 처럼

인생은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는데


투명한 삼각형에 연루되어

그늘지고 멍든 쪽으로

공손하게 두 발을 모으고 있는


왼쪽 귀가 잘려나간

길고양이의 결가부좌처럼


거기서부터 죽음을 거기서부터 삶을

Ctrl + X, Ctrl  + V 처럼

인생은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는데


매일매일 출근해

바닥을 시작하는

자신을 시작하는


투명 고양이



     p 072, 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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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비



남자는 막 막장에서 돌아오는 광부처럼 피곤함을 뒤집어 쓰고 인터뷰 중인데

이를테면 인생이란 매일 반복되는 만찬 앞에서 불같이 화를 내를 왕과 같아서

인생이란 조금 까맣게 슬퍼도 좋았는데


나는 법이라는 거미줄에 걸린 나비*


폭설로 가지 꺾인 소나무에게 묻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냐고 묻는다


소나무가 응답한다

너라면? 너라면?



* 안도현 시인의 인터뷰에서.



     p 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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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봄이고 밤이다. 목련꽃이 촛불처럼 피는 봄밤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분리장벽 설치, 중국의 티베트 독립 유혈진압 사태 등 지구 곳곳이 아픈 밤이다. 가장 늦은 통일을 가장 멋진 통일로 이루어내야 할 국가의 새로운 장관은 색깔이 다른 사람들은 눈앞에서 꺼져버리라고 호통치는 시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련은 국민의 ,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최첨단에서 꽃을 피우는 밤이다. 그리하여 절망할 수 없는 밤이다. 온몸으로, 온몸으로, 힘을 주라, 힘을 주라, 꾹꾹 늘러쓰는 봄이다.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 아아 봄은 갔다. 그러나 다시 봄은 온다. 와야만 한다. 그리하여 절망할 수 없는 봄이다. 바람이 분다. 비가 온다. 분단과 분쟁의 이 미친 비바람 앞에서도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 목련이여 설움이여! 나 자신의 절망이라는 검은 짐승과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 목련이여 설움이여!



* 김수영 「달나라의 장난」에서.



     p 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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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이발사였고, 어머니는 재봉사이자 미용사였다



삐아졸라를 들으며 웹사이트에서 점쳐준 나의 전생을 패러디한다


과거의 당신은 아마도 남자였으며 / 현재의 당신은 불행히도 여자이며 / 인간의 모습으로 당신이 태어난 곳과 시기는 현재의 보르네오 섬이고 / 여자의 모습으로 당신이 태어난 곳과 시기는 강원도 태백이고 / 대략 1350년 정도입니다 / 대략 1972년 여름의 일입니다 / 당신의 직업 혹은 주로 했던 것은 랍비, 성직자, 전도사입니다 / 당신의 직업 혹은 주로 하는 짓은 비정규직, 계약직, 시간제입니다


(어쩌자는 것인가)


삐아졸라의 아버지는 이발사였고, 어머니는 재봉사이자 미용사였다고 한다

내 아버지는 광부였고, 어머니는 장성 제1광업소 급식사이자 세탁부였다


(몰라, 얼음 죽을 때까지 얼음)


강 옆에서 물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삐아졸라를 들으며 나는 내가 다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



* 김도연 산문집 『눈 이야기』에서.



     p 078, 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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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



그 봄으로 한 여자가 입장한다


망할 놈의 봄비

망할 놈의 제비


그 봄에 한 여자가 아프다


봄이 두개라면?

봄이 두부라면?


그 봄에 한 여자가 웃는다


자신이 끌고 다닌 바퀴 달린 가방처럼

테두리가 사라지고 있는 영혼처럼


다시 테두리로 되풀이되는

다시 테두리만 되풀이되는



     p 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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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



가을엔 시시한 게 좋아 시시한 하루 시시한 모임 시시한 영화 다시 새로 시시한 하늘까지


가을엔 다시 시시한 게 좋아 알고도 모르게 영 모르지는 않게 조금씩 조금씩 슬프달 것도 없이 시시각각 바뀌어가는 거의 아름다운 시시한 생각 생각들 가을엔 아무래도 시시할수록 좋아 그녀가 사랑했던 월요일들과 손톱만큼 지혜로워지는 이마들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아지는 추분과 환타 빛깔로 빛나는 숲 그 숲속에 가마솥 뚜껑처럼 누워 있는 조상들의 무덤과 성묘를 마치고 방금 막 집으로 돌아가버린 여자애처럼 세로쓰기를 좋아하고 안드로메다 페가수스 카시오페이아 같은 가을 별들을 사랑했으나 자꾸 희미해지는 당신,


가을엔 아무래도 시시해지는 게 좋아 알고도 모르게 영 모르지는 않게 자꾸자꾸 슬퍼지려는 마음이 다시 시시해져 버리게 빨리 늙어버리게



     p 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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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입구



여자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혼자입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혼자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바람은 불어오고

또다른 국면에서는 미늘에 걸린 물고기들이

죽음을 향해 튀어오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수동 카메라로 여자의 여름을 함께 들여다본 사람

불가능을 사랑했던 시간과 풍랑이 잦았던 마음

잠시 핑, 눈물이 반짝입니다.


수면 위로 튀어오르는 물고기의 비늘도 반짝입니다

모든 오해는 이해의 다른 비늘입니다

아픈 이마에선 눈물의 비린내가 납니다

생각해보면 천국이 직장이라면 그곳이 천국이겠습니까?

또다른 국면에서는 사랑도 직장처럼 변해갑니다


사,라,합,니,다

이응이 빠진 건 눈물을 빠뜨렸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첫사랑을 빌려 읽기도 합니다



     p 086, 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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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시인의 말Ⅰ



어떤 슬픔은 새벽에 출항하고 

어떤 아픔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다.


오늘 우리는 겨우 살아 있다.


어쩌면 저주가 가장 쉬운 용서인지도 모르겠다



2014년 장미가 피는 계절 연희에서

안현미


     p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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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안현미 저
예스24 | 애드온2

b*******s 2017.06.2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내용보기
안현미 시인은 도서관에서 시인의 첫 시집 [곰곰]을 빌려 읽은 후에 새로운 시집이 나오면 무조건 구매하는 시인이 되었다. 두번째 시집 [이별의 재구성]과 세번째 시집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는 샀지만첫 시집 [곰곰]은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나온 걸 갖고 싶어서 살까 말까 고민중이다.(첫 시집은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2006년 1월 출간되었고 2011년 문예중앙에서 첫 시집이 복간되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내용보기

안현미 시인은 도서관에서 시인의 첫 시집 [곰곰]을 빌려 읽은 후에 

새로운 시집이 나오면 무조건 구매하는 시인이 되었다. 

두번째 시집 [이별의 재구성]과 세번째 시집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는 샀지만

첫 시집 [곰곰]은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나온 걸 갖고 싶어서 살까 말까 고민중이다.

(첫 시집은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2006년 1월 출간되었고 

2011년 문예중앙에서 첫 시집이 복간되어 출간되었다.)


'감각적인 언어유희가 도드라지는' 시집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취향일수도 있지만 꽤나 감탄하면서 읽은 시집임에는 틀림없다.


인생이란 원래 뭘 좀 몰라야 살맛 나는 법

- 카이로


나는 나를 꺼내놓고 나를 벗고 싶었으나 끝내, 나는 나를 벗을 수 없었고

- 어떤 삶의 가능성


끝내기 위해서는 시작해야만 한다. 끝날 줄 알면서도 시작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 이별수리센터


시집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에는 

소설가 한창훈님이 쓴 [오죽하면 시를] 이라는 제목의 발문이 있다. 

소설가가 쓴 에세이 같아서 발문도 재밌게 읽었다. 

 

e*****e 2017.01.19. 신고 공감 0 댓글 0